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5화 (15/200)
  • ◈15화

    거대한 폭발음이 분쟁 지역 도돈치아를 강타했다.

    에드리아는 떨리는 은행밤과 거슬리는 폭발음 속에서 당황하며 잠을 깼다.

    그녀는 방에서 재빨리 달려 나와 모두가 모여 있는 1층 로비로 향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로비의 한쪽에서 음료와 찻잔들을 정리하고 있었고 다른 쪽 테이블에는 다른 엘프들이 모여서 결의에 찬 표정으로 폭발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젯밤 은행밤을 나섰던 엘프들 역시 돌아와 있었다.

    폭발은 10여 분간 산발적으로 지속됐다.

    폭발음이 끝나고 몇 분이 지나자 바깥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에드리아의 아버지는 판자를 들고 와 출입구를 봉쇄했다.

    분쟁을 넘어 전쟁급 규모의 전투가 벌어질 것 같으면 도돈치아의 모든 가게들은 이런 조치를 취하곤 한다.

    나머지 엘프들은 은행밤의 지하로 이동했다.

    늙은 엘프가 까마귀 전령을 소환해 은신 마법을 씌우고 아직 잠그지 않은 창문으로 날려 보냈다.

    “축복받은 딸, 에드리아야. 이제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에드리아의 어머니는 에드리아를 품에 안아 올리며 말했다.

    “아린은 돌아왔어요?”

    에드리아가 물었지만 어머니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더 이상 더러운 그 아이는 필요가 없다.”

    필요.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서 따뜻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린은 우리에게 단순한 필요에 그치지 않았던 걸까.’

    에드리아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은행밤 지하로 들어갔다.

    문이 굳게 닫히고 위에서 잠기는 소리가 났다.

    - 쾅쾅쾅!

    은행밤의 출입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한참 이어졌다.

    그리곤 폭발음과 함께 문이 박살났다.

    “너희 이, 비열한!”

    인간의 목소리였다.

    위에 남아 있던 은행나무 엘프들과 인간들이 격돌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유 연맹의 일원들이었다.

    마법이 난무하고 피가 낭자했다.

    은행밤이 은행나무 엘프들의 본진이긴 했지만 이미 도돈치아 이곳저곳으로 흩어진 뒤였기 때문에 이곳에 남은 엘프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에드리아는 지하 땅굴을 통해 이동하면서 은행밤에서 들리는 소란에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 저기 아버지가 아직…?”

    에드리아의 어머니는 에드리아를 품에 꼭 안을 뿐 대꾸를 해 주지 않았다.

    ***

    “손님! 지금 나가실 거예요?”

    폭발음에 1층으로 내려온 정혁을 향해 여관 주인장이 고함치듯 말했다.

    정혁은 사력을 다해 고개를 저었고 주인장은 나무판자들을 정혁에게 던져 주며 말했다.

    “문하고 창문 막는 걸 도와줘요! 이 젠장 맞을 놈들!”

    얼떨결에 판자들을 받게 된 정혁은 인벤토리에서 제련 망치를 꺼내 테이블에 놓인 못들을 집어 들고 창문으로 향했다.

    바깥은 굉장히 분주했다.

    사람들이고 다른 종족들이고 할 것 없이 이 전쟁에 가담 의지가 없는 자들은 각기 건물 안으로 피신하기에 바빴다.

    분쟁 지역 도돈치아의 자치 관리 지구 소속 인원들이 백색 망토를 두르고 폭발이 발생한 곳으로 달려갔다.

    그들보다 더욱 빠르게 자유 연맹의 인원들은 각자의 무기를 쥐고 도로로 혹은 골목으로, 지붕 위로 달리거나 거의 날다시피 하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비명, 공포, 옅게 퍼지는 피 냄새와 혼란의 서막.

    익숙한 분위기였기에 평소라면 심장이 두근거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위치도 힘도 없다.

    정혁은 판에 못을 덧대 좀 더 강하게 보강하고는 뒤로 물러섰다.

    주인장은 여관 전체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말했다.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는 누구도 나갈 수 없습니다. 저는 옥상에 올린 백색 깃발을 확인해 보러 갈 테니 필요한 것이 있다면 로비에 메모로 남겨 주세요.”

    주인장은 자신의 덩치 때문에 흘러내린 허리띠를 조여 매고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옥상으로 향했다.

    2층의 숙소로 이동한 정혁은 어느새 대도 두 자루를 본래의 모습으로 바꾸어 뒤로 메고 서 있는 하늬안과 판자로 막은 창문 사이로 밖을 보고 있는 아린을 발견했다.

    “우리는 일단 여기 있는 거야?”

    “당장은 방법이 없잖아.”

    하늬안은 뭔가 불안한 듯이 초조한 얼굴이었다.

    “왜?”

    정혁이 묻자 하늬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느낌이 좋지 않아서.”

    ‘그건 나도 그래 짜샤.’

    정혁이 피식 웃었다.

    “마음 편하게 가져. 어차피 우리 싸움은 아니니까.”

    정혁이 말을 마치며 아린을 바라보았다.

    아린은 그들의 말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듯 계속해서 창밖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 똑똑.

    그 순간 그들의 숙소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셋은 동시에 문을 바라보았고 하늬안은 허리에서 작은 한손 검을 손에 쥐었다.

    정혁이 하늬안에게 손바닥을 보이며 가만히 있으라는 표시를 한 뒤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

    “누구시죠?”

    대답이 없다.

    하늬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좋지 않은 징후다.

    아린은 문을 주시하며 침대 뒤로 몸을 숨겼다.

    - 똑똑똑.

    다시 한번의 노크.

    긴장감이 한껏 고조되었다.

    정혁이 문에 한 걸음 더 다가가 얼굴을 가까이 댔다.

    문 너머에서 옅은 피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아니다.

    이건 짐작이 아니라 확신이다.

    그들만의 독특한… 피 냄새다.

    이건 백 프로… 아크!

    정혁은 순식간에 하늬안 쪽으로 달려가 그녀의 한 손 검을 뺏어 들고 그녀를 문 쪽으로 밀치며 소리 쳤다.

    “찔러 넣어!”

    하늬안은 당황했다가 그 찰나의 순간에 대도 멸을 꺼내 문을 향해 찔렀다.

    정혁은 창문에 대져 있던 판자를 발로 차 부수기 시작했다.

    문 아래로 붉은 피가 천천히 흘러 안으로 들어오고 하늬안이 있는 힘을 다해 검을 뽑으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밖에서 잡고 있는 것처럼 쉽게 뽑히지 않았다.

    “하늬안! 빨리!”

    정혁이 고함을 쳤다.

    하늬안은 문에 발을 대고 있는 힘껏 검을 잡아 당겼다.

    마치 무언가에 꽉 물려 있다가 빠져나오듯 검은 기괴하고 소름끼치는 마찰음을 내며 문에서 뽑혀 나왔다.

    반동으로 하늬안이 창문 가까이까지 밀려 났다.

    동시에 문이 박살이 나면서 기괴한 생명체가 바닥에 고꾸라지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머뭇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정혁은 나머지 판자를 마저 제거했고 하늬안은 검을 등에 고정시키며 아린을 어깨에 들쳐 멨다.

    “빠, 빠, 빨리!”

    하늬안이 비명을 지르며 재촉했다.

    평범한 적이었다면 모르겠지만 문 앞에 고꾸라진 저 이상한 생명체의 기괴한 모습은 천하의 하늬안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얇은 다리가 지탱할 수 없을 만큼 부푼 상체엔 크고 작은 눈동자가 셀 수 없이 많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얼굴로 보이는 어떤 덩어리는 엑스 자로 꿰매져 덜렁 튀어나와 있었으며 상체 한가운데 커다란 입이 달려 있었다.

    아마도 그 입에 하늬안의 검이 들어갔다 나온 것 같았다.

    문 옆으로 얼굴 하나가 비죽 튀어나와 안의 정혁과 하늬안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완전한 대머리에 눈썹도 없는 얼굴이 그들을 바라보자 섬뜩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꼬맹이한테 볼일이 있는데 말이죠오?”

    그 징그러운 인간이 말을 뱉었다.

    “꺼져, 이 새끼야아!”

    마침 애먹이던 판자가 완전히 떨어져 나왔고 정혁은 징그럽게 생긴 얼굴을 향해 욕을 뱉으며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그의 뒤를 따라 하늬안이 따라 뛰어내렸다.

    착지를 잘못해서일까.

    소량의 HP가 닳았다는 경고 메시지가 눈앞을 가렸다가 사라졌다.

    ‘제기랄, 이 빌어먹을 시스템!’

    그들의 뒤를 따라 창문에서 세 마리의 피부가 벗겨진 개가 쫓아 떨어졌다.

    찰나에 하늬안이 한 마리를 완전히 두 동강 내고는 아린을 거의 집어던지다시피 정혁의 곁으로 내려놓았다.

    “각자 생존이야!”

    ‘네?! 저, 저기요?’

    정혁이 당황하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하늬안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한 손 검을 정혁에게 던져 주었다.

    그리곤 그들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린은 공포에 질린 표정이 되어서 정혁의 옷깃을 꽉 쥐었다.

    “저, 저 이씨! 야, 이, 일단 뛰어!”

    남은 두 마리의 개는 정혁과 아린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창문엔 아까 그 녀석이 햇빛에 반짝이는 머리를 꺼내 바깥을 보며 싱글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빨라 봐야 아무런 능력이 있는 맨몸 상태에서는 태생적으로 달리기에 특화된 동물을 이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오히려 정혁이 아린보다 느렸다.

    아린은 이미 정혁을 쥐었던 옷깃을 놔 버린 지 오래였다.

    바로 뒤까지 쫒아온 개 짖는 소리에 정혁은 한 손 검을 자신의 뒤로 마구 휘둘러 댔지만 위협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정혁의 엉덩이를 향해 한 마리가 돌진하려는 순간에 하늬안이 공중에서 뛰어들어 녀석을 베어 넘기고 뒤를 따르던 개의 속도를 이용해 검을 땅에 박아 넣어 그대로 반으로 갈라 버렸다.

    그녀는 찰랑거리는 적색 머리카락을 몇 번 흔들면서 싱긋 웃었다.

    “쫄았어?”

    정혁이 이를 갈았다.

    ‘얼마나 웃겼을까.뒤로 검을 휘적이는 내 모습….’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에 마음 쓸 여유가 없다.

    “나중에 보자 진짜.”

    하늬안이 땅에 박힌 검을 뽑았다.

    정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건물들이 문을 걸어 잠갔다.

    아마 판자든 뭐든 전부 대 놓았을 것이다.

    함성과 욕지거리가 골목 이쪽과 저쪽에서 들려왔다.

    거리는 온통 전쟁 통이다.

    ‘아니, 아크 녀석들이 갑자기 우리를 노리는 이유는 뭐지? 아니지.정확히는 우리라기 보단 아린을 노리고 있는 건데.’

    “궁금하겠다아. 그치?”

    소름.

    뒷덜미까지 차오르는 소름에 정혁과 하늬안이 건물 옥상을 바라보았다.

    일전의 그 대머리 빡빡이가 그들을 아래로 필자내려다보고 있었다.

    “흑마법사야. 재창조 계열의…….”

    하늬안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재창조는 상당히 고등 마법에 속한다.

    정혁이 무기나 장비를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그의 특별한 능력이지만 재창조는누구나 습득할 수 있는 마법이다.

    하지만 그 ‘누구나’가 ‘아무나’ 될 수는 없다.

    게다가 재창조의 대상이 생명체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아크의 흑마법사들은 세계에서 유명하다.

    힘 때문이 아니라 이런 괴기스럽고 독특한 재창조를 즐기는 것으로 말이다.

    “그냐앙, 그 꼬맹이마안, 넘겨주면 되는데에에.”

    대머리 흑마법사는 두 손을 가운데로 모아 검지를 서로 톡톡 맞대며 수줍게 말했다.

    ‘하, 죽이고 싶다.진짜.’

    “아엘프는 세상에 많잖아! 번지수 잘못 찾았어! 그쪽으로 가!”

    하늬안이 인상을 구기며 녀석에게 고함쳤다.

    그러나 대머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윙크하며 말했다.

    “나는 쟤가 좋은 거얼.”

    ‘제기랄.더, 더는 못 참겠다.’

    “야. 저거 주둥이 좀 베 주면 안 되겠냐?”

    정혁의 말에 하늬안이 이빨을 깨물며 대답했다.

    “처음으로 마음이 맞네.”

    ‘그러고 보니 아린 상태를 확인 안 한 것 같….’

    아린은 이미 사색이 되어서 거품을 물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차피 우린 도움이 안 되니까. 일단 도망칠게. 시간 좀 벌어 줄 수 있어?”

    정혁의 물음에 하늬안은 전투 의지에 가득 차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 그 일전에 그 이공간을 열수는 없는 거야?”

    정혁은 상태 창을 활성화시켜 보았다.

    주변에 전설급 재료가 있을 리 만무한 데다가 아직 숙련도도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에 뭐가 되진 않을 것 같다.

    ‘일단 튀자.튀는 거다.’

    “없어. 안 돼. 몰라! 간다, 우리?”

    하늬안이 콧방귀를 뀌더니 손짓을 했고 정혁은 아린의 손을 잡고 다시 골목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이어 찢어질 듯한 하늬안의 비명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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