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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의 랭킹 1위-12화 (12/200)
  • ◈12화

    며칠 복잡한 일에 연루되어 있다 보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개인 칭호 능력.

    정혁은 뒤늦게 자신의 추가된 능력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오아시스의 대장장이]

    - 숙련도가 크게 증가합니다.

    - 무기 및 방어구 제작의 성공률이 비약적으로 증가합니다.

    - 어디서든 무기와 방어구 제작 및 제련이 가능합니다. (세부 능력이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 인벤토리 무게에 제약이 없습니다.

    - 근접 및 원거리 전투에 굉장히 취약합니다.

    - 체력의 최대 범위가 레벨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

    다시 봐도 참 거지같은 칭호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정혁은 깊이 한숨을 쉰 뒤 아래에 추가된 능력들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 조건이 성립된다면 오아시스의 대장장이는 어디서든 고품질의 재료를 획득하고 개인 대장간을 열어 무기와 방어구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 당신이 믿는 대상에게 칭호의 전체가 공개됩니다.

    - 오아시스의 대장장이가 만들어 낸 물건은 모두 본인에게 귀속되며 언제든 재구성을 해제하거나 다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청색으로 표시된 추가 능력들은 정혁이 정독을 마치자 본래의 하얀색으로 돌아갔다.

    그는 상태 창을 닫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물론 이 정도면 본연의 쓰레기와 다름없었던 능력에 비해 상당히 고품질의 독특한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대장간을 오픈하는 데에는 전설급 재료 혹은 숙련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키메라 때를 생각해 보면 정혁은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 언제든 채광 활성화 스킬을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그것만 있다면 25레벨의 플레이어의 능력을 훨씬 웃도는 전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이 쉽지 않다.

    세상 천지에 전설급 재료들이 널려 있진 않지 않은가.

    또 실험해서 부딪쳐 봐야 한다.

    목숨을 최대한 보전해 내는 한에서 말이다.

    ‘그나마 만족스러운 부분은 소리만 지를 줄 아는 저 여자에게 내가 조금의 마음이라도 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스! 그렇지. 나는 지조 있는 남자다. 한번 아니면, 아닌 거라구. 너는 그렇게 계속해서 나를 허접으로 봐라. 핫하!’

    정혁이 빙글거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하늬안이 창밖을 보다가 정혁의 미소를 보고는 경악하며 시선을 돌렸다.

    ‘허접에 변태 기질까지 추가해야겠네.’

    하늬안은 속으로 학을 떼면서 고개를 저었다.

    잠시의 즐거움을 뒤로하고 정혁은 몸을 일으켜 나갈 채비를 했다.

    하늬안이 건네준 증명서를 허리끈에 차고 새로 장만한 말루아 황소의 가죽옷 세트를 갖춰 입었다.

    그러고 보니 아무리 대장장이라지만 기본적인 개인 무기 하나 없는 것이 아쉬워서 다음에는 자신에게도 좋은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움직이자 하늬안도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무기는 어디다 뒀대?”

    그녀의 무기가 보이지 않자 정혁이 물었다.

    “도돈치아에서 그만한 무기를 대놓고 들고 다니면 언제 뒤통수를 맞거나 포위될지 모르거든. 여기는 진짜 무법 지대라 중립을 지키려거든 확실한 편이 좋아.”

    하늬안은 증명서를 톡톡 치면서 말했다.

    “무기 한정 축소 마법서를 가지고 있어. 워낙 커서 이렇게 마을에서는 종종 축소해서 지니고 다니지.”

    그러고 보니 하늬안의 두 귀에 작은 검 모양의 귀걸이가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정혁은 귀걸이를 보면서 귀에 달린 상태로 축소 마법을 해제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럴 일 절대 없으니까, 이상한 생각 좀 하지 마.”

    하늬안이 질색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자리를 옮겨 창틀에 걸터앉은 뒤 팔짱을 끼고 채비를 마무리하는 정혁을 향해 물었다.

    “자.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어디로 갈 생각이야? 도돈치아는 왜 온 거고?”

    “도돈치아는 네가 데리고 왔는데?”

    정혁이 되묻자 하늬안이 고개를 저었다.

    “기절해서 말에 실려 가면서도 도돈치아로 가야 된다고 중얼거렸잖아.”

    ‘역시 나는 기절해 있는 순간에도 대단하구만.’

    정혁은 잠시 자신이 한이었을 때로 돌아간 듯 급상승하는 자존감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일단 도돈치아에서 믿을 만한 은행나무 엘프를 만나야 해.”

    “은행나무 엘프?”

    하늬안이 되물었고 정혁은 고개만 끄덕했다.

    “도대체가 쉬운 게 없네. 그놈들 지랄맞은 성격에 망할 냄새까지, 알지?”

    ‘알지. 알고말고. 왜 내가 걔들을 전부 몰살시키려고 했는데.’

    사실 엘프라는 작자들은 인간을 거의 하등 종족 취급한다.

    엘프는 오아시스의 세계 속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이기도 했고 인간에게 마법의 기초에 대해 전수해주기까지 했으며 사실상 세계의 주인 행세를 오래 했었기 때문에 점점 그들 아래에 있었던 인간이 영역을 넓히고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자연의 섭리를 무너트리는 것에 대한 증오가 가득했다.

    대다수는 말이다.

    인간이 좋아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휴먼엘프들이나 인간과 엘프 사이에서 태어난 아엘프들 말고는 이러한 이유로 인간 자체를 싫어한다.

    그중에서도 은행나무 엘프는 가장 보수적이며 강경파에 속한다.

    인간과 연루되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훼방을 놓거나 망쳐 버린다.

    그들의 주장으로 인간에게서 나는 냄새가 정말 싫다고 하는데 오히려 은행나무를 터로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나는 은행 냄새가 더 끔찍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는 듯하다.

    은행나무 엘프의 영토를 지나가다 인간 행상을 공격하는 그들을 만나게 된 한은 서서히 나는 은행 냄새에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한을 발견하고 그들이 먼저 다가와 한에게 역겨운 인간 냄새가 난다며 조롱하기 시작했고 이 사건을 시발점 삼아 한은 은행나무 엘프를 오아시스에서 지워 버리려는 의지의 대장정을 걷게 된다.

    이래저래 한은 거의 절반 이상의 은행나무 엘프를 죽였지만 분노한 엘라에 의해서 대학살극은 마무리 된다.

    그들이 극단적으로 인간을 싫어한다 해도 지금의 정혁 입장에서는 그들 중 엘라가 있는 곳까지 그를 안내할 녀석이 꼭 필요했다.

    분명 은행나무 엘프들 사이에서도 배척받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만약에 없다면 깨어 있는 은행나무 엘프라도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발품을 파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난 그냥 대장장이 정혁으로 보인다는 거지? 맞지? 그치?”

    정혁은 방을 나서기 전에 하늬안에게 재차 물었다.

    “너 혹시 자학 좋아해? 그게 취미야? SM?”

    하늬안이 주먹을 불끈 쥐며 대꾸했다.

    ‘말을 말자.’

    당분간은 이 감각을 잘 유지해서 다른 플레이어들이나 종족들에게도 오아시스라는 타이틀을 들키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만큼 큰 위험이 도사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들은 천천히 여관을 나서 거리로 향하기 시작했다.

    ***

    “여기… 부탁한 거….”

    어두운 골목에 위치한 은행나무 엘프의 주요 근거지 ‘은행밤’의 지하에서는 몇몇의 은행나무 엘프들이 모여서 회동 중에 있다.

    그들은 다음 테러 위치를 결정하고 최근 연맹과 있었던 은밀한 거래를 통해 얻는 특제 폭탄들을 포장하고 있었다.

    왜소한 엘프 하나가 건장한 엘프에게 검은 화약 봉투를 건네자 건장한 엘프는 화약 봉투를 거칠게 빼앗아 들고는 건네준 엘프를 밀쳤다.

    엘프는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이제 꺼져, 냄새나니까.”

    건장한 엘프에게 밀쳐진 엘프는 침묵하며 상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사라졌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증명서를 허리춤에서 분리한 뒤 검은 엑스의 증명서로 바꿨다.

    그리곤 은행밤을 완전히 나가 거리로 향했다.

    “아린!”

    그를 따라 은행밤에서 여자 엘프가 뛰어나왔다.

    키도 그보다 조금 더 크고 피부색도 더 어두웠다.

    아린이라 불린 엘프보다는 더 고결한 엘프에 가까웠다.

    “절대 잊지 마. 너는 엘프야 알지?”

    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신의 허리에 매단 은행나무 엘프의 증명서를 가리켰다.

    그리곤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다시 은행밤 안으로 들어갔다.

    아린은 그녀가 사라진 은행밤 입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비켜, 혼종아.”

    아린의 곁으로 덩치 큰 은행나무 엘프 남성들이 지나쳤다.

    아린은 잔뜩 위축되어 어깨를 숨겼고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으스대며 아린을 지나쳐 은행밤으로 들어갔다.

    아린은 벽에 붙어 어둠 속의 좁은 골목을 향해 나아갔다.

    아린은 은행나무 엘프와 인간과의 혼혈이다.

    세계는 엘프와 인간의 혼혈을 가리켜 아엘프라고 부른다.

    아엘프들이 따로 모여 맺은 연합과 영토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다른 대륙에서의 일일 뿐이다.

    카탈 대륙에서의 아엘프들은 끔찍한 혼종 취급을 받으며 엘프들에게도 인간들에게도 천대받고 홀대받는다.

    거의 밑바닥 수준에서 삶을 연명하며 뒷거래 노예 품목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나마 아린은 도돈치아에서 은행나무 엘프에 소속되어 그들의 잔심부름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린에게 쏟아지는 비난이나 조롱, 폭력들은 참을 만했지만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같은 동족인 은행나무 엘프들에게서 나는 은은한 은행의 냄새였다.

    그가 아엘프이기에 은행나무 엘프들은 느끼지 못하는 냄새를 그는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욱 그들 사이에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선 방법이 없었다.

    아린은 골목을 떠돌았다.

    이렇게 떠돌다 보면 어디선가 은행나무 엘프 중 하나가 그의 손을 잡고 뭔가를 시킨다.

    그러면 그는 시킨 일을 하고 빵 조각을 얻거나 상한 우유를 받거나 1코퍼 정도의 작은 보상을 받는다.

    이곳에서 아린에게 엘프로서의 공동체성을 일깨우는 것은 엘프밤 주인의 딸 에드리아밖에 없었다.

    그러나 까뒤집어 보면 에드리아 역시 아무리 혼종이라 할지라도 그녀가 혐오하는 인간에게 아린이 기대는 꼴을 보고 싶진 않은 마음이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아린도 알고 있었다.

    아린은 그야말로 도돈치아에서 마음 둘 곳이 없는 외톨이 변종에 불과했다.

    은행나무 엘프들은 거대한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

    도돈치아 북부의 아크 제국 구역에 산발적인 폭발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들의 자유 연맹과 손을 잡았지만 모든 폭발물에는 연맹의 표식을 새겨 놓을 생각이다.

    아크 제국과 자유연맹이 도돈치아에서 치고받아 세력이 약해지면 그 틈을 타 은행나무 엘프들이 치고 들어갈 작전인 것이다.

    오늘 오후면 폭발물을 설치할 것이고 내일 아침 9시를 기해 일제히 폭발하게 될 것이다.

    아마 도돈치아 역사에 기록되는 엄청난 사건이 되리라.

    싸움에 휘말리기 전에 아린은 도돈치아 외곽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아린은 그저 약하고 천대 받는 혼종 아엘프이기 때문이었다.

    “어라? 아엘프?”

    누군가 아린의 손을 잡았다.

    아린은 자신의 손을 잡은 자를 바라보았다.

    적색 머리를 올려 묶은 푸른 눈동자의 여자 인간이었다.

    아린은 재빨리 손을 뿌리치고 뒷걸음질 쳤다.

    에드리아의 확고한 눈빛이 떠올랐다.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어, 어딜 냄새나는 인간이 감히!”

    소리를 친다고 쳤지만 아린의 목소리는 자그맣게 떨렸다.

    인간 여자는 코웃음 치더니 주먹에서 우득 우득 소리를 냈다.

    아린의 눈동자에 공포가 어렸다.

    “진짜네, 아엘프네?”

    그녀의 옆으로 가죽옷을 입은 남자가 어디선가 튀어나와 섰다.

    “신기하다. 그리고… 냄새가 안 나!”

    남자는 아린의 곁에 쑥 하고 접근했다가 빠지더니 만족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찾았다.”

    그의 눈빛이 강렬하게 반짝였다.

    아린의 눈빛에 더욱 깊은 공포가 서렸다.

    겁에 질린 아린에게 그들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린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사건으로 번질 테고 내일의 거사를 망치게 될 수도 있으며 곧 자신이 은행나무 엘프들에게 매장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린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그에게 접근하는 마수의 손아귀를 채찍질하듯 쳐내며 저항했다.

    “가만히 있어봐, 엉아가 잘해 줄게!”

    ‘저 눈! 뭔가를 원하는 눈!’

    궁지에 몰린 아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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