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3화 (3/200)
  • ◈3화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혁은 얕게 깔린 지푸라기 위에서 눈을 떴다.

    어제 에드가와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얼마 먹지도 않았지만 이 빌어먹을 몸뚱이가 난생 처음 취기라는 것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숙취라는 것도 더불어 경험 중이다.

    주변의 말똥 냄새가 머리를 더 아프게 했다.

    아마도 에드가가 그를 마구간으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날은 기가 막히게 맑았다.

    몇 시인지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가까이서 울리는 망치와 금속 간의 마찰음으로 이미 강철 망치는 한창 영업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머리를 싸매고 몸을 일으켜 벽에 등을 기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제부로 그는 무직이 되었다.

    정혁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겨우 레벨 5밖에 달성하지 못한 망할 캐릭터를 가지고 도대체 뭘 해 먹어야 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스탯 창을 통해 확인한 몸 상태는 혼란과 중독이 적용되어 더디게 회복되고 있었다.

    정혁은 주먹을 감싸 쥐었다.

    마음이 답답했다.

    찾아오는 피로감에 정혁은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쏟아졌다.

    ***

    “정혁 씨. 일어나 보세요.”

    달콤한 향기와 함께 에드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꿈인지, 생시인지.

    어느쪽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혁이 가물가물 눈을 뜨니 에드가가 눈앞에 있었다.

    세상 선해 보이는 미소로 정혁의 숙취를 완벽히 해소시킬 맛있는 음식을 들고 선 그는 정혁이 정신을 차리자 그의 손에 가져온 음식 그릇을 넘겨주고 옆에 세워져 있던 낡은 의자를 펴 아래를 단단히 고정하고 앉았다.

    차림은 여전히 말끔했다.

    “조 패더럴은 더 이상 당신을 찾지 않더군요.”

    정혁이 한술 뜨기 시작하자 에드가는 운을 떼며 주머니에서 은색 휴대용 술병을 다시 꺼냈다.

    그것을 보자 정혁은 속에서 다시 헛구역질이 올라오려고 하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 냈다.

    “무려 3년인데, 그도 참 냉정합니다.”

    한 모금 홀짝 들이킨 에드가가 처량하게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정혁을 바라보았다.

    “어제 했던 말들은 기억이 나나요?”

    “…예?”

    정혁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에드가를 바라보았다.

    에드가는 싱긋 웃고는 마저 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정혁씨가 사실은 다른 사람이라느니, 한이었다느니, 랭킹 1위가 되어야 된다느니.”

    정혁은 먹던 음식이 목에 턱, 하고 걸렸다.

    그러다 씹지도 못하고 잔뜩 뭉친 음식을 억지로 넘겨 버렸다.

    정혁은 에드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봐요, 하하. 술 먹으면 무슨 소린들 못 하겠습니까.”

    에드가는 웃으면서 그에게 마저 먹으라는 손짓을 건넸다.

    정혁은 그저 입맛만 쩝쩝 다실 뿐이었다.

    숙취고 뭐고 확 깨 버렸다.

    문득 에드가의 반응이 궁금해져 정혁은 입을 열었다.

    “…진짜라면요?”

    에드가는 피식 웃었다.

    “믿을 수 있냐구요?”

    그의 말에는 적당한 조소가 섞여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정혁은 고개를 저었다.

    에드가에게는 그저 인생에 어떤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한 사람으로 보이리라 생각했다.

    청춘을 3년이나 낭비한 어리석은 사람으로.

    “글쎄요. 믿을 수 있을까요.”

    에드가의 목소리가 조금은 변했다.

    정혁은 옆에 놓여 있던 물병을 들어 목을 축였다.

    “이 일을 꽤 오래 하다 보면 말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사람들의 특징을 어느 정도 구별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독특한 사람들 역시 잘 기억하게 되죠.”

    정혁은 에드가의 말에서 뉘앙스가 조금 변한 것을 느꼈다.

    “저는 사실 ‘한’이라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대면한 적은 없습니다. 그는 늘 조 패더럴 씨와만 대화했으니까요.”

    맞다.

    정혁의 기억에도 에드가라는 NPC는 없었다.

    사실 정혁은 강철 망치의 작업장에도 잘 들르지 않았다.

    조 패더럴이 필요하면 부르면 그만이었다.

    패더럴은 항상 그가 부를 때마다 총알같이 날아왔다.

    “…강철 망치에서는 말입니다.”

    의미심장한 그의 목소리에 정혁이 다시 한번 에드가를 바라봤을 때 에드가의 표정은 미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딱 한 번 그를 만난 적 있었죠. 아마도 마드리안의 작은 마을 도트란도에서였을 겁니다.”

    마드리안이라면 오아시스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제국 안도리니의 한 지역 이름이다.

    도트란도라는 상세 지명은 익숙하긴 하지만 확연하게 기억나지는 않았다.

    정혁은 점점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강철 망치에서 일하기 전에 저는 행상꾼이었습니다. 마침 아름다운 도트란도의 호숫가에 자리를 펴고 그곳의 사람들에게 몇 개의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었죠.”

    정혁은 무언가 기억이 난 듯 고개를 저으면서 머리를 떨구었다.

    “망할….”

    젠장.

    이 빌어먹을 자식이.

    정혁은 이빨을 깨물었다.

    도트란도의 대혈투.

    정혁은 그날의 기억을 단박에 떠올렸다.

    그가 오아시스에 이름을 떨치기 전의 일이다.

    마드리안 지역의 지역 상권을 가지고 있었던 길드에게 간단히 시비를 걸어 보려고 이동하고 있던 차에 도트란도에서 만난 이상한 행상꾼.

    스쳐 지나가면 모를 물건이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한 가지 독특한 물건은 오아시스에서 정말 귀한 물건에 속했다.

    과거의 ‘한’치고는 꽤나 정중하게 행상꾼에게 물건을 요구했으나 행상꾼은 단호히 거절했고 ‘한’은 으레 그랬듯이 그에게 검을 겨누어 목덜미에 검기를 날렸다.

    하지만 행상꾼은 그의 검기를 가벼이 피했다.

    당시에 ‘한’의 랭킹은 오아시스 전체의 100위 안쪽이었다.

    충분히 강하고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그러나 일반 플레이어도 아니고 NPC가 그의 공격을 쉽게 막아 내자 ‘한’은 오기가 발동했다.

    그는 두 시간을 허름한 행상꾼과 싸웠다.

    그러나 결국 결판을 짓지 못하고 물러나야만 했다.

    행상꾼은 마치 며칠을 굶은 짐승처럼 베이고 베이면서도 그에게 달려들었고 체력이 떨어질수록 강해지는 것 같았다.

    NPC 주제에 말이다.

    “검의 도에서는 몇 번의 나눔만으로 상대를 기억 속 깊이 각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호흡, 움직임 모든 부분을 저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한 상대를 만나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당신’이라고 했다.

    에드가는 분명히 정혁을 그날의 ‘한’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혁에게 순식간에 공포가 엄습했다.

    ‘한’은 모두의 사냥감이었다.

    오아시스 전체의 사냥감이었다.

    그가 캐릭터 이름을 ‘한’이라고 지은 것도 게임 속 모든 생명체들의 마음속에 ‘한’이 되고자 하는 원대한 목표가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목표를 이뤘다.

    만약 세계의 어떤 이가 정혁이 바로 그 ‘한’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고작 레벨 5밖에 안 되는 정혁에게 길고 잔인한 죽음을 선사할지도 모른다.

    “물론 며칠 전까지 당신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저 안타까운 한 사람일 뿐이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무슨 조화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모든 부분에서 내가 기억하고 있던 세계 최강의 남자 ‘한’의 냄새가 납니다. 깊게 나요. 어제의 술자리로 이젠 확신합니다.”

    “···그래서?”

    정혁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에드가, 그는 상당한 실력자다.

    지금의 정혁은 감히 한 합도 맞춰 볼 수 없는 상대다.

    한 합? 이 단어조차도 지금의 정혁에겐 아깝다.

    경계의 눈빛을 세워도 달리 방법은 없다.

    처참한 HP에 처량한 현 상태로는 어떤 적도 제대로 마주할 수 없다.

    “그래서는요. 뭐 어쩌겠습니까.”

    에드가는 몸을 살짝 뒤로 기대며 다리를 꼬아 앉았다.

    그는 다시 술을 한 모금 넘겼다.

    “당신이니까 이야기하는 거지만 사실 즐거웠습니다. 도트란도 말입니다.”

    그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웠다.

    자주 봤던 미소지만 이번만큼은 약간의 살기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행상인이기 전엔 수도 없이 많은 전투 속에서 살았던 저였죠. 당신과의 전투는 옛 전성기의 저를 불러내기에 충분했어요. 그날 이후로 밤마다, 밤마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피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거친 호흡과 칼의 만남, 격돌하는 심장 박동과 터져 내리는 핏방울!”

    뭐, 뭐야.

    이 자식, 이거 왜 이래.

    정혁은 180도 변해 버린 에드가의 모습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명의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건 오히려 정혁의 캐릭터에 더 어울리는 이미지인데 말이다.

    “딱, 딱 한 번만 더! 당신과 겨뤄 보고 싶었지만, 그 이후로 당신은 더 높은 곳으로 더 강하게 성장했습니다. 제가 감히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말이에요. 하지만 저 역시도 열심히 했답니다! 당신을 찾기 위해 강철 망치에도 들어가고 매일 매일 꾸준히 훈련도 했죠! 하지만 이거 보세요!”

    에드가가 갑자기 일어나 정혁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곤 그를 번쩍 들어 올려 벽에 부딪쳐 밀착시켰다.

    그 바람에 소량의 HP가 떨어졌다.

    당황한 정혁이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어림없는 발버둥이었다.

    “이거 놔, 이 새끼야!”

    고함을 질러봐도 소용이 없었다.

    에드가는 찬찬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닙니다.”

    에드가는 정혁을 우측으로 집어던졌다.

    또, 소량의 HP가 닳았다.

    “지금 당신은 아무 맛도 없는 밍밍한 물과 다름없어요. 어찌된 영문인지 이제는 무기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쓰레기가 되어 버렸죠. 내 갈증을 채우지 못할 것만 같아요. 다시 그 전의 전투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에드가는 머리를 붙잡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거칠게 호흡했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지. 아니야.”

    그러다 다시 싱긋 웃으면서 손뼉을 치고 손바닥을 비열하게 비볐다.

    “저는 알아요. 당신은 여기서 결코 멈추지 않을거야. 확실해. 그렇죠?”

    에드가는 큰 숨을 들이쉬었다.

    이런 미친놈은 또 처음이었다.

    정혁은 자신보다 더 미친놈은 없을 거라고 믿었는데 플레이어도 아니고 NPC의 상태가 이 정도라니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자유도가 높은 오아시스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다고 말해 줘요!”

    에드가가 호통치듯 말했다.

    정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기가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

    에드가가 발산하는 에너지가 주변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지금의 정혁은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궁지에 몰린 쥐새끼 같았다.

    “좋아,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당신은 분명 성장할 거고, 분명 나를 즐겁게 해 주겠죠?”

    정혁이 더욱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때 주지 못했던 이걸 당신에게 드리려고 합니다.”

    에드가는 정혁에게 작은 나무 토큰은 던져 주었다.

    정혁은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고대룡 젠트라의 초대장….”

    어떻게 그것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또 에드가는 무슨 생각으로 그것을 자판에 올려 놓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최고의 용을 만나 가호를 받고 싶었던 ‘한’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었다.

    용의 가호는 오아시스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10위권 내의 랭커들은 모두 용 군단의 가호를 받아 지니고 있다.

    각자의 세력에 따라 용 군단도 나뉘고 가호를 줄 수 있는 용의 등급도 다르지만 일단 용에게 가호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오아시스에서 어느 정도 지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모든 용들의 선대 고대룡 젠트라에겐 아직 어떤 누구도 가호를 받아 본 적이 없다.

    또한 누구도 만나 본 적 없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세간에는 그저 전설로 내려올 뿐이다.

    그런 고대룡을 만날 수 있는 초대장이 찌그러진 원형의 나무 토큰일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한’은 집요한 추적 끝에 토큰의 존재를 캐낼 수 있었고 우연을 더한 우연으로 토큰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강하고 강했던 당시의 한이 아니라 한없이 나약한 지금의 정혁이 세계를 뒤흔들 만한 이 아이템을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혁이 그의 곁에 떨어진 토큰을 손에 쥐자 짜릿한 번개 줄기가 그의 몸 전체를 감쌌다가 가슴으로 말려 들어갔다.

    [젠트라가 당신의 존재를 기억합니다. 그가 당신을 만나길 원합니다. 토큰의 소유권은 플레이어 ‘정혁’에게 귀속됩니다.]

    세상에.

    정혁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느새 에드가는 평소의 온순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밖에 말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혁 씨. 간단한 물건들을 꾸려 봇짐에 넣어 두었어요. 부디 평안한 여행길이 되기를.”

    정혁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천천히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에드가의 시선을 느끼고는 뒤로 돌아보았다.

    에드가는 빙긋 웃으면서 다시 술을 한 모금 넘겼다.

    “에드가, 오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거야.”

    “그거야말로 제가 바라는 일입니다.”

    재수 없는 새끼.

    뒤졌다, 진짜.

    정혁은 침을 한 번 뱉고는 당당하게 마구간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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