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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의 랭킹 1위-2화 (2/200)
  • ◈2화

    오아시스의 시간으로 저녁 7시.

    모든 대장장이가 밥을 먹으러 간 뒤 홀로 절망의 구덩이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던 정혁에게 찾아든 낯선 목소리는 겨우 그의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자살 충동을 뒤로 미룰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무시할 수 있었지만 무시 했다간 무시무시한 줘 패도록의 금니를 볼 것이 뻔했다.

    “눼이….”

    정혁은 힘없이 대답하며 작업장을 지나 상점과 연결되는 문의 커튼을 들어 상점 안으로 들어온 어떤 이를 바라보았다.

    “어?”

    오.

    정혁은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앞에는 자신의 키만 한 대도 두 자루를 등에 메고서 싱긋 웃고 있는 적색 머리카락의 여성이 서 있었다.

    그러나 정혁을 보더니 그녀의 눈에는 왠지 모르게 실망한 눈빛이 서렸다.

    낯이 익었다.

    정혁의 기억이 맞다면 그녀는 길드 ‘제논의 기사단’ 소속의 신흥 검사 ‘하늬안’이었다.

    정혁과는 과거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정혁은 그녀를 '한'이었던 그에게 10일 정도 죽지 않을 만큼의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로그아웃으로 도망쳤던 여자로 기억했다.

    정혁은 알 수 없는 즐거움에 속으로 키득거렸다.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그녀는 혹시 정혁을 알아본 것일까?

    “처음 보는 분이시네? 이 시간에는 보통 ‘에드가’가 있었는데. 당신, 뭘 알긴 해요? 강철 망치도 다됐나. 한창일 때 이런 사람에게 가게를 다 맡기고….”

    그녀의 시선은 정혁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단어 하나하나가 비수처럼 정혁의 마음에 꽂혔고 정혁의 인상이 단번에 구겨졌다.

    하긴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강철 망치의 조합장 성깔에 대한 명성이 자자했기에 이곳에서 일하는 플레이어 역시 어느 정도 레벨이 되고 능력이 되는 사람만 계약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정혁은 어떻게 지금의 쓰레기 같은 스탯으로 이곳에서 일하게 된 것일까.

    정혁은 이것도 꼭 조 패더럴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펴언하게 둘러보세요. 하늬안 님.”

    이빨을 꽉 깨물며 그녀에게 대답해 주고 그는 카운터 근처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하늬안은 전시되어 있는 각종 장비를 둘러보고서 자신의 무기 두 자루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맡기려구요.”

    정혁은 그녀의 무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도 : 절] [대도 : 멸]

    - 소유자 : 포효의 검사 하늬안

    - 오아시스력 144년에 제작되었으며 두 명의 장인의 혼이 새겨졌다는 전설적인 검

    - 두 자루가 함께 있을 때 특수한 세트 효과가 발동합니다.

    - 내구도 45%

    대장장이의 능력 때문인지 그녀의 무기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가 가시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오,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그래봐야 악몽의 비수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아니, 뭐해요?”

    혼자서 자기 만족에 취해 있던 정혁에게 약간은 격앙된 하늬안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네?”

    “맡긴다구요.”

    “아, 네.”

    일단 "네."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정혁은 혼란스러웠다.

    망치질하는 법조차도 방금 알았다.

    무기를 받으면 접수 절차는 어떻게 되고 작업이 완료되면 연락은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금액 처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그래, 일단은 작업장으로 옮겨 놓기로 했다.

    손님이 왔으니 물건은 받아야지.

    정혁은 호기롭게 의자에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리곤 두 자루의 검을 번쩍 안아 들려는 자세를 취했다.

    “…?”

    당황스러웠다.

    분명 들려고 했는데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민망함에 다시 한번 힘을 주어 보았지만 여전히 움직임이 없다.

    하늬안이 슬슬 화가 난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서 그를 보았다.

    정혁은 사력을 다해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속으로 온갖 욕지거리가 다 튀어나왔다.

    “하…. 나, 참 진짜.”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조 패더럴은 아니더라도 에드가 정도는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제논의 기사단을 너무 물로 보는 거 아냐? 이러면 섭섭한데 정말.”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 속에서 정혁은 쓰레기 중에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었다.

    대장장이인데 무기 하나 제대로 들 체력조차 없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아니, 이게 말이나 되는 설정이냐고!

    “다, 닥쳐 봐!”

    당황과 혼란 속에서 정혁이 비명을 지르듯 하늬안에게 윽박질렀다.

    “닥쳐 봐? 닥쳐 봐아?”

    하늬안의 얼굴이 단번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쪼렙 알바생 주제에 닥쳐 보라고? 조 패더럴 밑에 있는 놈들은 싸가지가 다 바가지네!”

    조잘거리든 말든 정혁은 이 망할 두 자루의 검을 들어 보고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나 결국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하늬안의 눈이 뒤집어지기 직전 누군가 가게 안으로 빠르게 들어왔다.

    “오, 하늬안. 미안합니다.”

    작은 안경을 콧등에 걸치고서 말쑥하게 차려 입은 장발의 중년 남성이었다.

    흰색의 윤기 나는 머리를 뒤로 묶어 내린 그는 재빨리 카운터 아래에서 장부를 꺼내 손에 쥐었고 정혁에게는 단호히 뒤로 물러서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에드가아! 어디 갔었어요!”

    저 여자. 다르다.

    “한참 찾았는데!”

    저 여자… 저, 저… 분명히 반응이 다르다.

    “혹시 들었어요? 아니, 에드가는 분명 강철 망치의 사람들과는 달라요! 알죠?”

    에드가라고 불린 남자는 하늬안을 보면서 싱긋 웃더니 주머니에서 흰 장갑을 꺼내 착용했다.

    그리고는 겹쳐 놓여 있던 대도를 ‘간단히’ 들어서 테이블 위에 잘 정리해 놓았다.

    정혁은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깨지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그는 천천히 대도의 여러 부위를 살펴보았다.

    “정혁 씨는 들어가 보셔도 됩니다. 화로를 지키셔야죠?”

    그는 마치 꿔다 놓은 보리 자루처럼 우물쭈물 곁에 서 있던 정혁에게 대검을 검수하면서 한마디 던졌다.

    하늬안이 정혁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그리곤 입 모양으로 정확히 “꺼져.”라고 이야기했다.

    정혁은 이를 갈면서 몸을 돌려 작업장으로 향했다.

    10일이 아니라 10년은 더 괴롭혔어야 했다.

    망할! 이런 수모를 받을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다.

    이 빌어먹을 직업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것인가?

    아니, 생각해 보면 대장장이라는 직업이 이렇게 허약할 리가 없었다.

    대장장이가 제련하는 무기는 숙련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크기와 무게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무기나 방어구들을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재료들도 당연히 더 크고 어마어마하게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대장장이라면 기본적으로 힘과 체력 스탯이 월등히 높을 수밖에 없는데 정혁의 상태 창을 보면 두 스탯 모두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구만.”

    조 패더럴.

    그가 화로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곤 정혁에게 뭔가를 던졌다.

    주먹밥이었다.

    정혁은 작업장 한쪽 벽에 기대서 받은 주먹밥을 쪼개 입에 넣었다.

    뭔가, 서글펐다.

    조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난민촌에서 너를 구출한 건 다른 이유는 없다. 대장장이? 강철 망치에는 이름난 대장장이들이 많다. 너 같은 약골 따위를 키워서 대장장이를 만들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바라지 않아. 애초에 그럴 싹수도 보이지 않고.”

    자신의 캐릭터를 직접 만들지 않았기에 과거의 기억이 없는 정혁은 당연히 그의 초보 존이 난민촌이었는지 알 턱이 없었다.

    내 초보 존이 난민촌이었나? 모르겠다.

    캐릭터를 내가 만들지 않았느니 이전의 기억은 없다.

    사실 그는 요즘 오아시스의 초보 존은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모른다.

    ‘한’으로 오아시스에서 살아온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우걱우걱.

    정혁은 입으로 주먹밥을 계속 밀어 넣었다.

    묘하게 기분 나쁜 맛이었지만 허기 졌기에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 봤다. 이제까지 대장장이라는 직업 앞에 이 세계 전체의 이름이 붙은 경우를 말이다. 이 강철 망치의 조 패더럴 조차 ‘신’이라는 존재에게 받아 보지 못한 ‘오아시스의 대장장이’라는 칭호를 너 따위 얼간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억울했다.”

    '잉? 이건 또 무슨 전개?'

    모든 직업을 어느 정도 통달하면 각자 개인만의 특성에 맞는 칭호가 붙게 된다.

    정혁은 그가 한이었을 때도 세계의 이름이 붙은 칭호를 가진 자를 만나 보지 못했다.

    이제야 정혁은 처음에 상태창을 불렀을 때도 바로 칭호가 활성화되어 '오아시스의 대장장이'라는 호칭이 붙어 있었던 기억이 났다.

    “호기심이 들었다. 네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얼마나 성장할지. 도대체 오아시스의 대장장이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그러나….”

    조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별건, 없더군.”

    그는 불쏘시개 몇 개를 동강 내 화로에 던져 넣었다.

    그의 뒷모습이 조금 쳐져 보였다.

    “'한'이라고 들어 봤나?”

    컥.

    정혁은 목이 탁 하고 막혔다.

    주변의 물 주머니를 찾아 급히 들이켰다.

    몇 번 입안의 알갱이들을 씹어 넘기고 조를 주시했다.

    조는 그의 시선을 느끼고는 말을 이었다.

    “물론 들어는 봤겠지. 이 화로의 근원도 바로 그가 건네준 것이니까.”

    정혁은 보이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주먹밥 조각을 입에 넣었다.

    “강철 망치가 이만큼 자라게 된 것도, 내가 이 세계에서 나름 힘 있는 대장장이가 된 것도 어떻게 보면 그 덕분이라고 할 수 있어. 그랬지만 ‘한’이 사라진 지도 벌써 3년째.”

    푸흡!

    정혁은 이번엔 입에 있던 밥알들을 전부 뱉어 낼 수밖에 없었다.

    3년이라니.

    아무리 오아시스의 시간과 바깥 시간이 차이가 난다고 해도 3년이면 바깥 세상 시간으로 1년 반에 해당한다.

    그는 믿을 가족조차 없는 자신의 몸이 바깥에서 1년 반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아니, 잠깐만. 근데 나는 내 본체를 신이 억지로 소환한게 아니었나? 하지만 이 생김새는 내가 아닌데. 뭘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정혁은 생각했다.

    “몇 달 동안 ‘한’을 만나지 못하고, 오고 가는 자들에게 한의 비보를 들으면서 나는 새로운 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때쯤 우연히 난민촌에서 너를 만나고 데려온 거야. 오아시스의 대장장이는 반드시 강철 망치에 새로운 비전을 보여 줄거라 믿었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헛되었다고 판단될 만큼 언제나 네놈은 제자리걸음이었어.”

    조가 뒤로 돌아서 정혁을 바라보았다.

    악랄한 얼굴은 어디 가고 수심이 가득했다.

    “이젠 네놈을 더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

    타오르는 불꽃의 일렁임 사이로 조의 얼굴이 밝게 비춰졌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정혁은 직감적으로 강철 망치에서 의 이 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부터 네놈 마음이다. 여기서 계속 내 욕이나 처먹으면서 지금처럼 개돼지 같은 삶으로 망치질이나 해 대든 어디 가서 뒤지든 상관하지 않겠다. 내일 이곳에 없으면 떠난 줄 알겠다. 화로는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안 꺼진다.”

    조가 발로 화로 근처의 모래를 걷어차 불꽃 속에 넣었지만 불꽃의 일렁임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그 길로 다시 밖을 향했다.

    열린 문 뒤로 어두움 속에 비친 밝은 별들이 보였다.

    정혁은 주먹밥을 마저 입에 넣었다.

    정혁은 생각을 아무리 정리해도 멍함이 가시지 않았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망할 신 녀석이 요구한 대로 랭킹 1위가 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조 패더럴이 포기했다.

    3년을 노동했음에도 정혁의 상태창의 레벨은 5에 그쳐 있다.

    심지어 상점에 진열된 무기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한다.

    ‘오아시스의 대장장이’이라는 특수한 직업 칭호가 붙어 있어 봤자 실제로 드러나는 장점은 없었다.

    정혁은 의무적으로 턱을 움직인다.

    짭조름한 목 넘김이 이어진다.

    물을 다시 오물거리며 삼킨다.

    시원하지 않다.

    그의 마음 같다.

    “미안합니다, 정혁 씨. 난처하셨겠군요.”

    불꽃을 바라보고 있던 정혁에게 에드가의 목소리가 다가왔다.

    언제 그에게 다가왔는지 알 수 없었다.

    에드가는 장갑을 빼서 입고 있던 조끼 주머니에 넣고는 손을 비비며 그의 곁에 섰다.

    “오늘은 좀 춥네요.”

    '그래. 내 마음도 추워. 부서지겠다.'

    “하늬안에게는 말을 잘 해 놨습니다. 조 패더럴 씨가 오늘도 당신에게 화로를 지키라고 했군요.”

    정혁은 물끄러미 그의 곁에 선 에드가를 보았다.

    에드가는 뒷주머니에서 은색 휴대용 술병을 꺼내 뚜껑을 돌려 따 자연스럽게 마셨다.

    정혁은 에드가에게 손을 뻗었다.

    에드가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그에게 술병을 건넸다.

    정혁은 홀짝 한 모금 마셨다.

    연한 레몬 향이 가미된 보드카가 뜨겁게 입안부터 가슴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래도 보기 좋습니다. 당신의 꾸준함. 일단 조 패더럴의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도 잘 버텨 내고 있으니까요. 곧 더 크게 성장할 날이 올 겁니다.”

    “모르겠어, 에드가.”

    “오, 오늘은 대답도 해 주시는군요.”

    에드가는 그에게 술병을 받고는 싱긋 웃었다.

    그러나 정혁의 심정은 웃고 있는 그에게 침이라도 뱉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혁은 한숨을 깊게 쉬고는 대답했다.

    “그럴 가능성이나 있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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