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리터너-118화 (118/118)
  • [■] EPILOGUE [■]

    ─────

    사내는 누가 봐도 멋졌다.

    인종과 연령을 뛰어넘어 그는 확실히 나이스함과 댄디함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사내의 모습을 '멋지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살짝 넘겨 세운 머리와 반듯한 턱 라인, 오뚝한 콧날, 그리고 짙은 눈썹에서 나오는 잘생김을 숨길 수는 없지만, 턱까지 내려온 다크 서클과 피곤에 쩔어 있는 표정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사내는 텀블러에 든 얼음 탄 자양강장제를 쭉쭉 들이켰다.

    그가 그동안 한 것 중에 가장 잘한 일이 아마 이 자양강장제 회사를 다시 세우고 레시피를 복원한 일일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예전에 진즉 과로로 죽었을 테니까.

    "저… 총장님."

    "예?"

    "라트렐 특구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남서부 쪽과 충돌이 났다는데, 지금 현지에서 군경을 파견하고 있습니다."

    "또 왜요?"

    "드란 교단 강경파 쪽에서 베라프로 가는 게이트를 확보하려 한 모양입니다. 출입 금지 구역을 대규모로 밀고 들어갔답니다."

    "끄으으응."

    사내, 최정훈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아니! 왜 허가도 안 받고 그 난리들이냐고! 그냥 간다고 하면 보내준다니까!"

    "애초에 보내 달라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냥 명분이죠."

    "드란 교단에 연락해요. 교황이랑 만나야겠어요."

    "예.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최정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망할 놈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조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기에는 전쟁의 참상를 함께 이겨낸다는 동질감이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있기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가 발생했다.

    문화가 다르고, 살아온 방식이 다르다.

    지구인들도 인종과 종교, 그리고 문화에 따라 서로 죽고 죽이는 충돌이 발생하는데,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최근에는 신성력이 고갈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베라프 인들의 불안이 폭증하고 있었다.

    디오레 12세가 필사적으로 모두를 달래고는 있지만 역부족. 이럴 바에야 차라리 아직 신의 가호가 남아 있는 베라프로 돌아가자는 극성분자들도 나타났다.

    실제로는 과학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2등 국민 취급을 받는 본인들의 처지를 개선하고자 하는 목적이지만 말이다.

    "미국도 그래요. 차별 금지법 발효된 지가 언젠데."

    전쟁은 국가의 개념을 흐리게 만들었다. 전 인류적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전 인류를 총괄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공통된 인식이 생겨났고, 그 결과 전 국가에 개입할 수 있는 세계 기구가 창설되었다.

    그래도 이 꼴이다.

    "당연한 현상이긴 한데……."

    사고가 난다는 것은 나름 살 만하다는 이야기다.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먹고사는 일이 최우선이다 보니 모두가 똘똘 뭉쳤다. 하지만 문명이 재건되고 세상이 바뀌다 보니 충돌이 일어났다.

    어쩌면 이 충돌이야말로 그들의 세상이 다시 살 만해졌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최정훈이 그 가운데서 죽어 나간다는 것만 빼면 좋은 현상이겠지.

    RRRRR.

    그때, 최정훈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끄응……."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한 최정훈이 한숨을 쉬며 전화를 받았다.

    "그래… 무슨 일이니?"

    - 오빠! 이번에 하와이 안 갈래?

    "하와이?"

    - 응.

    "예원아, 오빠가 요즘 정말 바쁘거든? 엄청 바쁘단 말이야. 하와이에 휴양 갈 정신이 있으면 발 닦고 소파에서 삼 일 정도 자고 싶다.

    - 오빠는 항상 바쁘잖아.

    그걸 아는 애가 왜 그러냐고!

    - 가자. 응? 이번에 해민이 언니랑 다솜이도 같이 가기로 했단 말이야.

    "둘 다?"

    - 응.

    "희한하네? 해민 씨는 콘서트 때문에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 바쁜데 시간 냈대. 우리끼리 놀아본 지 오래됐다고. 그래서 다현이 오빠도 오기로 했어.

    "누가 보내준대? 나는 바빠 죽겠는데 자기는 놀겠다고? 휴가는 꿈도 꾸지 말라고 해."

    - 헐, 오빠 진짜 못됐다. 옛날에는 안 이랬는데.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능력자들의 삶은 그리 변한 것이 없었다. 그렇게나 몰살을 당했음에도 마계에는 여전히 마수들이 득실득실거렸다. 종종 생겨나는 균열을 통해 마수와 타 차원의 몬스터들이 세상을 위협했고, 능력자들은 부지런히 마수들을 처리했다.

    그나마 베라프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지원해 주었기에 과거보다는 수월하게 마수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난이도는 낮아졌지만 능력자들의 수가 워낙에 줄어들다 보니 항상 바쁘게 살 수밖에 없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사람이 급속 이동이 가능한 김다현인데, 그놈이 휴가를 간다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돼."

    - 와! 오빠… 심하다, 진짜. 다현이 오빠도 좀 살아야지.

    "누가 죽였어? 괜찮아, 괜찮아. 안 죽어."

    - 엄마한테 이를 거야?

    "……."

    박선덕 여사의 이름이 나오자 최정훈이 움찔했다. 그가 세상에서 유이하게 두려워하는 사람이 박선덕이었다. 그녀에게는 부채 의식이 있으니까.

    "…그래. 가라, 가. 그래도 나는 못 가. 정말 바빠."

    - 기대도 안 했다. 언니한테나 잘해줘. 얼마 안 남았다며?

    "그래, 얼마 안 남았지."

    -애 나오면 이야기해. 보러 갈 테니까.

    "그래, 고맙다."

    전화를 끊은 최정훈이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걸어 창가로 다가간 최정훈이 전면 유리 아래로 보이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마천루가 그의 눈에 한가득 들어온다.

    '길었지.'

    10년이나 걸렸다. 이만큼이나 오는 데 말이다.

    당장이야 과거보다 더 웅장해 보이기는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긴밀하게 이어져 있던 망을 잃어버린 인류는 도시로, 도시로 모여들었다. 덕분에 도시는 밀집되어 발전될 수 있었지만, 과거처럼 국토를 고르게 사용하고 있지는 못했다.

    '그래도 나름 자부해도 될 거야.'

    여기까지 오기 위해 최정훈이 쏟아부은 노력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밤잠을 줄였고, 단 한시도 쉬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루하루 시간을 헛되게 쓴 적이 없을 정도다.

    물론 수많은 이들이 그를 도와주었다.

    NDF들은 인류에게 피해가 오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그들 역시 나름의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스스로의 삶을 반쯤은 포기하고 세상을 지키려 들었다.

    결국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은 정해민 같은 이도 있지만 말이다.

    "대단한 사람이야."

    결국 정해민은 연예인과 능력자의 삶을 병행하는데 성공했다.

    인류가 도시로, 도시로 밀집하면서 과거에 비해 텔레포터인 자신은 어차피 큰 도움이 안 되니 차라리 사람들을 위로하겠다며 무료로 공연을 돌았다.

    처음에는 비웃던 이들도 나중에는 그녀의 삶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시집갈 생각이 없어 보여 걱정이지만.

    김다솜은 베라프의 마법을 배우며 인류와 베라프를 잇는 통로로 활동했다.

    사교성이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 없던 그녀가 그런 삶을 택했다는 게 의외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시도는 꽤나 성공적이었고, 지금은 대표적인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중이었다.

    김다현과 윤혁규는 NDF를 맡아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부분의 국가는 능력자를 거의 잃어버렸다. 마왕군은 대항할 수 있는 이들만 집요하게 노렸고, 덕분에 국민을 살아남았는데, 군대와 능력자가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상황에 처했다.

    그 공백을 NDF가 메웠다.

    게이트 하나를 홀로 처리할 수 있는 NDF는 더없이 중요한 전력이 되었다. 세계 기구 산하로 들어간 NDF는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전 세계로 날아가 게이트를 정리했다. 마치 인류의 수호자처럼 말이다.

    도가윤은 NDF를 탈퇴했다.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 중 하나가 도가윤이었다. 가끔 서아영을 찾아와 차 한잔하고 가는 것 외에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최정훈은 그녀가 그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사람을 말이다.

    그리고 서아영은…….

    RRRRR.

    휴대폰의 액정을 확인한 최정훈이 기겁을 하여 전화를 받았다.

    "으응, 무슨 일이야?"

    - 여보. 딸기! 딸기가 먹고 싶어!

    "지금?"

    - 응, 지금!

    "아니, 내가 지금 좀 바쁜데……."

    - 알아. 아는데, 내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우리 애기가 먹고 싶다잖아. 그럼 어떻게 해? 참으라고 해?

    "그런데 너무 바쁘니까."

    - 여보.

    "응?"

    - 바쁜 건 알겠는데, 삼 일째 집에 안 들어온 거 알고 있어? 내가 여보가 보고 싶은데 어쩌지? 내가 지금 거기로 갈까?

    "…사 갈게."

    - 응. 빨리 와, 여보.

    최근 최정훈은 서아영과 결국 결혼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도망을 쳤지만, 이러다가 나이 들어서 난산이라도 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서아영의 협박에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예원이 마지막까지 이를 갈며 방해했지만, 서아영을 이길 수 있는 여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성격적인 부분만이 아니다. 현재 서아영은 세계 최강의 능력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임신과 동시에 활동을 접은 것뿐이지, 명성과 능력으로 그녀를 따라올 이는 없었다.

    심지어 이 세상을 신의 뜻으로 물들인다던 베라프의 극성 분자들이 그녀의 불꽃 한 방에 조용해질 정도였다.

    그러니…….

    '나보고 뭘 어쩌라고!'

    무슨 수로 반항을 하겠는가.

    과거에는 진짜 바빠서 집에 못 들어갔지만, 지금은 집에 들어가기가 무섭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던 이지혁의 말을 들었어야 하는 건데.

    '이지혁이라…….'

    최정훈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는 그 이름이 낯설어지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이지혁은 인류를 구한 성자이자 수호자로 격상되었다. 세상 모두가 그의 이름을 칭송했다.

    하지만 그도 오래가지 않았다.

    이지혁의 업적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당장 닥쳐 온 험난한 삶 앞에 그 업적을 칭송할 시간이 있을 리 없었다. 시간은 모든 것을 앗아갔고, 이지혁의 존재마저 천천히 바래갔다.

    '인간은 간사한 존재이지.'

    그의 은혜를 눈물로 칭송하던 이들도 나중에는 그를 잊었다. 이제는 이지혁이라는 이름을 듣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눈앞에서 지켜본 이들이 아니고서야 그저 과거의 인물로 생각할 뿐이다.

    '힘겹군.'

    최정훈은 문뜩 외로움을 느꼈다.

    세상이 온통 그에게 기대는 상황이 되어서야 최정훈은 이지혁이 어떤 부담을 안고 살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이없는 생각이지.'

    최정훈은 적어도 인류의 멸망을 막아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이지혁은 그의 몇 배나 되는 부담을 짊어지고 싸워온 것이다. 그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겨운 일이었다.

    현실의 힘겨움은 최정훈의 기억 속에서조차 천천히 이지혁이라는 이름을 지워 나갔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을 버릴 수 없는 최정훈이었다.

    "…언제쯤 돌아오시는 겁니까?"

    세월이 너무도 많이 흘렀다.

    처음에는 그저 몇 년일 거라 생각했다. 오 년이 지날 시점에는 이제쯤 돌아올 거라 믿었다. 그가 처음 이계에서 보낸 시간이 그쯤이었으니까.

    하지만 칠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도 이지혁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간 세계는 시간이 이곳과 다른 세계.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지는 최정훈도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남아 있기는 할까? 그의 기억 속에 이 세계가?

    어쩌면 영영 그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게 언제쯤이었더라?

    찰칵.

    최정훈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남들은 끊으라고, 끊으라고 하지만 이 담배만큼은 끊을 수가 없었다. 이것마저 끊어버리면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놓는 느낌이었으니까.

    그가 돌아왔을 때 함께 담배 한 대 피워줄 사람은 있어야 할 테니까.

    최근에는 박선덕마저 이제는 그만 잊고 살자는 말을 꺼냈다. 아마 이지혁에 집착하는 자신이 안쓰러워하신 말씀이겠지. 부모가 자식을 잊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손을 뻗어 유리를 어루만지던 최정훈의 전화기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휴……."

    최정훈이 고개를 저었다.

    '한시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군.'

    전화를 받은 최정훈이 담담히 말했다.

    "최정훈입니다."

    - 이쪽으로 좀 와줘야겠네.

    "네?"

    대통령에서 퇴임하고 동아시아 총괄 지부장으로 취임한 윤영민이었다.

    - 아무래도 베라프 쪽이 심상치가 않아. 이쪽의 정보로는 알파의 아이들이 암약을 하고 있는 것 같네.

    "바퀴벌레 같은 것들이 진짜."

    최정훈이 남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알파를 따르던 이들은 알파가 사라졌음에도 현실에 투항하지 않았다. 능력자 우월주의로 똘똘 뭉친 그들은 레지스탕스처럼 활동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늘려 나갔다.

    최근 그들은 신을 잃어 혼란에 빠진 베라프 인들을 자극하여 인류와의 전쟁을 획책하는 중이었다.

    "정보가 있습니까?"

    - 아마도 확실한.

    "최대한 빠르게 가겠습니다. 하지만… 대책이 있을까 의문이네요."

    - 그렇겠지. 하지만 마냥 손 놓고 보고 있을 수는 없잖은가.

    "네, 맞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최정훈이 차가운 유리에 이마를 댔다.

    '피곤하군.'

    최근에는 버거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신을 잃고 폭력적으로 변해 버린 베라프 인들과 과거만큼의 편리함을 누리지 못해 향수에 젖어 있는 지구인들. 그 모든 불안 요소가 느슨해진 국가기관의 장악력을 뚫으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벌써 몇 번의 폭동과 몇 번의 자잘한 전쟁이 일어났다.

    * * *

    "그분이 있었다면 감히 날뛰는 이들이 없었을 텐데."

    디오레 12세의 말이었다.

    그리고 최정훈도 그 사실에 공감했다. 지구인들에게는 영웅이고, 베라 프인들에게는 악마나 다름없는 이지혁이다.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아만 있었어도 세상은 안정되었을 것이다.

    '일단 무식하니까.'

    열 받으면 사람이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는 깡패 놈이 아닌가. 법과 질서로 세상을 이끌어야 할 최정훈이 할 말은 아니지만, 한 번씩은 이지혁이 다 뒤집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최정훈이 천천히 세상을 물들여 오는 노을을 보며 미소 지었다.

    "당신이 돌아올 세상을 만든다고 했는데, 아직 이것밖에는 못했네요."

    씁쓸한 목소리.

    "그래도 나름 최선은 다했는데. 능력의 한계라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아니꼬우면 욕하시든지. 달게 들어줄 테니까."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 말을 들어줄 그 사람이.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느끼며 최정훈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움직여야지.'

    힘들고 지치더라도 멈출 수는 없다. 그게 그가 맡은 몫이니까.

    서아영에게 어떻게 변명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몸을 돌린 그의 눈에 헐레벌떡 사무실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김재범이 보였다.

    "무슨 일이야?"

    "그… 운석이 떨어졌답니다."

    "뭐?"

    "운석이요, 운석!"

    "어디에?"

    "서울 한복판이라는데요? 지금 난리가 났어요."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말해?"

    아무리 최정훈이 이 일, 저 일 다 맡아서 하는 잡부나 다름없다지만, 서울에 떨어진 운석까지 신경 쓸 사람은 아니잖은가.

    "운석 떨어진 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상공에 게이트 뜬 거 아냐? 정인수 장군이 알아서 하겠지. 한국은 그 사람 관할이잖아."

    "예, 맞습니다. 그런데……."

    "뭘?"

    최정훈은 기이한 느낌에 빠졌다.

    이상하다.

    이 기분은 대체 뭐지?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 같은데…….

    "진압하려고 들어간 KSF 일개 대대가 손도 못 써보고 튕겨났답니다."

    "1개 대대?"

    최정훈의 눈이 커졌다.

    KSF도 과거의 KSF가 아니다. 자신들이 받은 수련의 고통을 그대로 되돌려 주겠다는 NDF의 가르침……을 빙자한 괴롭힘을 당하며 전 세계 최고의 능력자 부대로 거듭난 지가 오래였다.

    그런 KSF 1개 대대가 손도 써보지 못했다는 건 몇 년 만에 레벨 8 이상의 몬스터가 출현했다는 뜻이다.

    "피해는?"

    "사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정신만 잃은 정돕니다."

    "…더 심각한데……."

    상처조차 없이 제압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차이가 크다는 뜻이었다. 최정훈의 얼굴이 더없이 심각해졌다. 그렇다는 건 최소 레벨 9… 아니, 사상 최초의 몬스터가 출현한 건지도 몰랐다. 레벨 10 이상의.

    "화면은?"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위성이 전파방해라도 받는지 주변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전화는 가능합니다."

    "그게 무슨 경우야?"

    "저도 잘……."

    "알았어. 여하튼 그래서?"

    "네! 지금 수색대가 안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통화 연결해 놨습니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으시고 대책을 마련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다."

    최정훈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레벨 10이라면 마왕급.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일단은 NDF 소집해. 지금 당장 서울로 이동하라고."

    "예!"

    "그리고……."

    그 순간,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김재범의 전화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피커 연결해."

    "예!"

    사무실에 마련된 독에 전화를 꽂자 이내 커다란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이거 뭐야?

    최정훈은 즉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 사람!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

    이게 무슨 소린가. 분명 운석이 떨어졌고, KSF가…….

    "상황은?"

    -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희생자인지, 아니면 타깃인지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지금 미동도……. 아니! 움직입니다!

    최정훈이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 미묘하게 움직입……. 아니, 저 새끼 뭐하는 거지?

    "응?"

    - 아니. 거기서 바닥을 왜 더듬……. 너, 우냐? 어?

    최정훈의 얼굴이 멍해졌다.

    '이거, 어디선가?'

    기억이 밀려온다.

    옛 기억. 조금은 황당하고, 어쩌면 조금은 따뜻한.

    영원히 잊지 못할 그 광경이 말이다.

    최정훈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다. 가슴으로부터 저릿함이 밀려왔다. 주체하기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헤치며 그 소리가 들려온다.

    당연하다는 듯이.

    - 아스팔트으으으으으으으으으!

    "큭큭큭큭큭."

    혼란에 빠져 버린 전화기 너머의 상황을 들으며 최정훈이 웃었다. 눈물을 흘리며 어찌할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총장님?"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의 김재범에게 최정훈이 소리쳤다.

    "재범아!"

    "예!"

    "콜라 가져와라!"

    "네?"

    김재범의 황당한 얼굴을 보며 최정훈이 눈가를 훔쳤다.

    "냉장고에 한 박스 사뒀으니까 지금 당장 가져와. 바로 가야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뛰어나가는 김재범을 보며 최정훈이 크게 웃었다. 숨이 꺽꺽 넘어가도록 웃은 최정훈이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의 버튼을 꾹 눌렀다.

    이제 모두가 모일 것이다.

    돌아온 그 사람을 환영하기 위해서.

    전화기 건너편으로 들려오는 소란을 들으며 최정훈은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 아저씨, 콜라 사 먹게 돈 좀 빌려주면 안 돼요?

    -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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