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리터너-48화 (48/118)
  • [■] 앞에 두고는 말도 못 하면서 [■]

    ─────

    시작은 사소한 일이었다.

    근 한 달 넘게 제대로 된 휴일이 없다가 이제야 휴일이 생겼다. 이 빌어먹을 직장은 사람을 쉬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하는 일에 비해서 월급도 짠 편인데, 쉬는 날을 안 줘서 추가 수당으로 연봉을 부풀리고 있었다.

    NDF가 해외로 나간 사이에 KSF의 업무는 굉장히 과중되었고, 덕분에 과거보다 더 긴 시간을 일해야 했고, 쉬는 날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한 달 동안 쉬지도 못하고 일했더니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서 기분 전환도 풀 겸 간단하게 쇼핑을 즐기러 나왔을 뿐이다.

    분명 쇼핑을 할 때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결제를 할 때였다.

    평소처럼 결제를 할 시점에 능력자 전용 할인 카드를 내밀었고, 그걸 본 캐셔의 표정이 변한 게 모든 일의 시발점이었다.

    친절하기 그지없던 캐셔가 갑자기 퉁명스럽게 사람을 비꼬기 시작하고, 영문을 모르는 그는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했는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다른 곳으로 가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친절하기 짝이 없던 사람들이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능력자라는 것을 아는 시점부터 태도가 돌변했다.

    "빌어먹을."

    곽명훈은 쌍소리를 뱉으며 밖으로 나왔다.

    사려고 했던 물건은 카운터에 팽개친 이후였다.

    할인 카드 할인 금액이 제대로 지불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고서야 저 이상한 반응을 어찌 이해하란 말인가.

    "내가 뭔 죄졌어?"

    그가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쓸 때, 귓가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저래, 저 사람?"

    "능력자래."

    "아, 근데 왜?"

    "능력자 새끼가 할인 카드 쓰고 돈 펑펑 써 대니 사람들이 좋게 볼 리가 있나. 저게 다 세금인데. 세금 빨아먹는 새끼들."

    "그래도 나름 목숨 걸고 고생하는 사람들이잖아."

    "목숨은 무슨 목숨이야, 소방관보다도 사망자 수가 적다던데. 그리고 쟤들이 뭐 소방관처럼 바쁘기나 하냐? 게이트 그거 얼마나 열린다고. 만날 놀기만 놀면서 돈은 돈대로 엄청 받아가고, 거기에 각종 혜택은 다 받잖아. 국회의원 새끼들이 법을 엿같이 만들어둬서는."

    곽명훈은 이를 꽉 깨물었다.

    소방관보다 사망자 수가 적다고?

    전국의 소방관 수와 능력자들의 수를 비교하고 나서야 할 말이다. 사망률로 따진다면 둘은 서로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런 말을 늘어놓는 놈의 주둥아리를 뭉개 버리고 싶었다.

    이 달에 작전을 하다가 사망한 그의 동료가 저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다행이겠지.

    '뭣 때문에 그리 아등바등 살아온 거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휴일도 없이 미친 듯이 일에만 매달렸다. 당장 눈앞에 떨어진 일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가 고생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안전이 지켜진다는 자부심으로 버텨왔다.

    그런데 저런 대접이라니.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뭘 안다고 저런 소리를 해 댄다는 말인가.

    동료들이 요즘 인터넷을 보다 보면 속이 뒤집어진다는 말을 할 때도 그는 한때 그러고 말겠지 싶었다.

    보통 사람들도 나름 불안할 테니까.

    하지만 이건 정도를 넘은 것이 아닌가.

    '이건 혐오 수준인데…….'

    자신이 뭘 잘못했다고 이런 혐오를 받아야 하는가.

    나라가 시키는 대로 목숨을 걸고 일한 대가가 이런 혐오라고.

    곽명훈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무리 게이트 사태가 어떻게 대처되는가에 대한 매커니즘을 알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씨발."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욕설을 내뱉고 그 자리를 뜨는 것뿐이었다.

    능력자는 민간인과 트러블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동안 수도 없이 들어온 수칙이었다.

    능력자 특별법에 의거하면 능력자는 흉기를 가진 인간과 같은 급으로 분류된다. 아니, 법의 엄정함을 따지자면 그보다 더할 것이다.

    간단한 폭행은 특수 폭행이 되기가 예사였고, 심하면 살인미수가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법정 역시 능력자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편이라 심심하면 법정 최고형이 떨어졌다.

    "진짜 개 같네."

    받는 것은 돈 조금이 전부고, 권리보다 의무가 너무 크다.

    "그리고 씨발, 저 새끼들 할인은 왜 해주냐고. 그게 말이 되냐? 돈도 처받는 데 이중으로 할인을 해줄 필요가 뭐가 있어? 지들이 하는 게 뭐가 있다고."

    곽명훈은 발을 빨리 놀렸다.

    여기 더 있다가는 분명히 시비가 걸릴 것이다. 저놈들이 시비를 걸기 이전에 자신이 더 참지 못할 확률이 컸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곽명훈의 인생도 끝이다.

    '괜히 나왔네.'

    차라리 집에서 발 닦고 잠이나 잘걸.

    앞으로도 될 수 있으면 사람이 많은 곳으로는 돌아다니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그 돈 몇 푼 아끼겠답시고 카드를 쓰지도 말아야겠고.

    민감한 시기에 생각 없이 행동한 그의 잘못이었다.

    곽명훈은 깊게 한숨을 쉬며 자신을 반성했다. 귀에 그 말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 새끼들, 그냥 다 몬스터에 쓸려서 뒈져 버려야 하는데 말이야."

    안다.

    군중심리에 휩쓸려서 한 말이다.

    옆에 여자가 있으니 괜히 세 보이겠답시고 한 말일지도 모른다. 평소였다면 미친놈이 앞에서는 하지도 못할 말을 쉽게 한다고 웃고 넘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안 된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버텨내던 그의 머리가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곽명훈이 고개를 돌려 말이 나온 곳을 바라보았다.

    짧게 머리를 깎은 근육질 청년이 곽명훈과 시선이 마주치자 당황한 듯 고개를 슬쩍 내리깐다.

    '관두자.'

    곽명훈은 참으려고 애썼다. 여기서 민간인들을 붙들고 드잡이질한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겠는가.

    그냥 가던 길이나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저 꼬나보는 것 좀 봐. 잘하면 사람 하나 죽이겠네."

    "야, 말 조심해. 진짜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죽이려고 하면 죽여야지. 잘난 능력자님이 사람 죽인다는데, 누가 말리겠어."

    "됐다. 가자. 술 처먹었으면 곱게 집에나 가야지, 왜 엄한 사람 붙들고 시비야?"

    "아니, 내가 틀린 말 했어?"

    "마! 입 좀 다물라고."

    곽명훈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곽명훈은 몸을 돌리고 그를 향해 독설을 뱉어낸 사람들을 향해 걸어갔다.

    "어어?"

    곽명훈이 다가오자 당황한 이들이 얼굴을 붉힌다.

    "뭐라고 했습니까?"

    "…예?"

    능력자가 마음을 먹고 눈앞에서 똑바로 말을 하기 시작하자 일반 사람들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맨몸인 데 반해 저 사람은 총보다 더한 것을 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뇨, 그냥……."

    곽명훈이 짧은 머리의 청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죽었으면 좋겠다구요?"

    "아뇨……."

    "그게 사람한테 할 소립니까? 제가 당신한테 무슨 죄라도 지었나요?"

    대답은 없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사내가 있을 뿐이었다.

    '앞에 두고는 말도 못하면서.'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도 윗사람들의 뒷담화를 하니까. 그도 윗사람들의 앞에서 그 말을 그대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경우가 좀 다르지 않은가.

    뒷담화라는 것은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하는 것이다. 들으라고 하는 뒷담화는 뒷담화가 아니었다.

    뒷담화를 깔려면 최소한 곽명훈이 이 자리를 벗어난 다음에 했어야지.

    "사람 함부로 욕하고 하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뭔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네요."

    "예."

    "다음부터는 조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쪽두요."

    곽명훈의 시선이 얼큰하게 취한 취객으로 돌아갔다.

    "뭐, 이 새끼야?"

    하지만 취객의 반응은 청년처럼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술이 저만큼 들어갔는데 겁이 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당장 염라대왕 앞에 가도 멱살을 잡을 것 같은 기센데.

    곽명훈은 한숨을 쉬고 몸을 돌렸다.

    취객이랑 드잡이질을 해서 뭣하겠는가.

    하지만 그건 곽명훈의 실수였다.

    퍼억!

    머리 뒤에서 뭔가 강렬한 타격감이 느껴진다.

    곽명훈이 순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멍해졌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려보니 취객이 몸을 가누지 못해 휘청이고 있고, 그의 신발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신었어야 할 신발은 곽명훈의 발치에 나뒹굴고 있었다.

    "이……!"

    사람의 인내심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곽명훈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세상에는 적반하장을 당연하게 알고 사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이 개새끼야! 너희 능력자 놈들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좆도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아가리만 산 새끼가! 뭘 봐!"

    곽명훈이 이를 꽉 깨물었다.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려고 애는 쓰고 있지만, 참기가 너무 힘들다.

    "성질 같아서는 진짜……."

    확 뭉개놓고 싶다.

    곽명훈은 몸이 절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뭘 잘못했다고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평소라면 당연히 저 안하무인의 취객을 탓해야 했을 사람들이 곽명훈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왜 사람을 그렇게 봐요?"

    실수다.

    원래라면 하지 않았어야 할 실수였다.

    하지만 곽명훈 역시 너무 지쳐 있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지쳐 있는데 이런 대접을 받으니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뭐 잘못했어? 너희 어머니 죽은 게 왜 내 탓이야, 이 새끼야!"

    곽명훈이 소리치자 취객이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원래는 그를 막아서던 친구도 취객이 전력으로 힘을 쓰자 어찌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장난하나."

    곽명훈이 짜증을 부리며 자신에게 달려들던 취객을 슬쩍 피하고는 그 등을 짓눌렀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취객이 바닥으로 나뒹군다.

    "제기랄."

    보나마나 한소리 듣겠군.

    곽명훈은 저질러 버린 사태의 수습을 생각하며 짜증을 냈다. 정당방위이긴 하지만 민간인에 손을 댔으니 감봉이나 근신 정도는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엿 같은 법, 엿 같은 규정.

    가만히 앉아서 당하기만 해도 위신을 떨었트렸다며 처벌을 하는, 제멋대로 규정에 휘둘리는 것도 짜증이 난다.

    그때였다.

    "아아악!"

    곽명훈이 소리를 질렀다.

    다리에서 격통이 느껴진다. 바닥에 널브러졌던 취객이 그의 다리를 깨문 것이다.

    "안 놔? 안 놔?"

    퍽! 퍽!

    곽명훈이 자신의 다리를 깨문 취객의 머리를 후려쳤다.

    하지만 취객은 쉽게 그의 다리를 놓지 않았다.

    퍽! 퍽!

    몇 번이나 더 때리고 나서야 취객이 그의 다리를 놓고 떨어졌다.

    "이런 씨."

    곽명훈의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다리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 것이 깊게 깨물린 모양이었다.

    속에서 천불이 난다. 생각 같아서는 저 취객을 당장에라도 요절내 버리고 싶었다.

    그때, 그의 귀에 기이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너무한 거 아냐, 저거?"

    * * *

    너무하다고?

    뭐가 너무하다는 건가?

    그럼 곽명훈은 누가 다리를 물고 있어서 살점이 잘려 나가도 허허대며 참고 있었어야 한다는 건가?

    "능력자면 좋게 해결할 수도 있잖아.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그냥 때리고 싶었겠지."

    "여하튼 능력자 놈들이란."

    곽명훈은 고개를 내려 그의 다리를 물어뜯던 취객을 바라보았다.

    머리 뒤가 깨졌는지 피를 흘리며 신음을 흘리고 있는 취객을 보니 자신이 좀 심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이 취객은 그의 다리를 놓지 않았을 것이다.

    왜 그런 부분은 봐주지 않는 걸까?

    "일단 신고해. 능력자가 일반인 팬 거잖아."

    "정당방위 아냐?"

    "과잉이지.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곽명훈의 얼굴이 굳어갔다.

    빤히 모든 것을 보고서도 이리 반응한다. 능력자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이 그에 대한 반응을 좋지 않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대체 능력자들이 무슨 피해를 줬다는 말인가.

    능력을 활용한 범죄자가 설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인의 범죄율에 비해 능력자들의 범죄율은 현저히 낮았다.

    같은 죄를 지어도 가중처벌을 받는데다가 국가에서 철저하게 관리를 받는 능력자들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

    "휴……."

    곽명훈은 고개를 저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트러블이 벌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 트러블만으로도 그는 징계를 피할 수 없다. 무척이나 고까운 일이고,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쩌겠는가.

    법이 그렇고, 규정이 그런데.

    "엿 같네."

    곽명훈은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찰이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이 심상치가 않다.

    적의가 가득 담긴 시선들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저 시선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곽명훈이 이를 악물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대가가 이것이다.

    자신들이 한 노력은 평가되지 않고, 그저 작은 특혜에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곽명훈은 바로 저런 이들을 지키기 위해 어제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허무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고작 이런 놈들을 지키려고…….'

    지켜서 무엇하는가, 이들은 그를 같은 사람으로도 보아주지 않는데.

    그가 능력자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그에게 온정의 손길이 쏟아졌을 것이다. 미친놈에게 물렸으니 얼마나 짜증이 나겠냐며 덕담이라도 던졌겠지.

    하지만 단지 능력자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자인 그가 지금 이러한 눈초리를 받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곽명훈은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감쌌다.

    징계가 두려운 게 아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현실이었다.

    징계야 얼마나 가겠는가.

    기껏해야 일주일정도 근신하는 처벌이 내려지겠지.

    그런 징계 정도야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다.

    두려운 것은 그 처벌 이후에는 다시 이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몬스터와 싸워야 한다는 현실이었다.

    곽명훈은 자신이 없었다.

    모르면 몰랐지, 이러한 현실을 알고 나서도 이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 자신이 없다.

    "무슨 일입니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얼굴을 들이민다.

    평소에 부르면 오는 데 한참 걸리는 사람들이 오늘따라 빨리도 왔다.

    "저기 폭행 났어요. 저 사람 능력자래요."

    경찰이 상황을 슬쩍 살피더니 곤란하다는 눈으로 곽명훈을 보았다.

    능력자에 대한 체포는 그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오죽하면 경찰 내에서도 능력자만 따로 다루는 부서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출동했는데 부서가 다르다고 발을 빼버릴 수는 없는 노릇.

    한 경찰이 바닥에 쓰러진 취객을 살피기 시작했고, 다른 한 사람이 슬금슬금 곽명훈에게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

    "서까지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예."

    곽명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달가운 상황은 아니지만,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이 경찰을 따라가면 저 야비한 군중들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니까.

    '쇼핑을 나온 게 실수네.'

    오늘 일은 아마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짙은 회의감을 억지로 짓누르며 곽명훈은 경찰을 향해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경찰이 조금은 곤란하다는 눈으로 곽명훈을 바라보더니 뒷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냈다.

    곽명훈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수갑을 차라구요? 제가 반항이라도 했나요?"

    "협조 부탁드립니다."

    "…경우가 아닌 것 같은데."

    단순한 폭행 사건이고, 그는 가해자라기보다는 피해자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상황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그에게 수갑을 채우려 하고 있었다.

    곽명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제가 피해잔데, 제가 왜 수갑을 차야 합니까?"

    곽명훈의 말에 경찰은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앵무새도 아니고…….'

    막 곽명훈이 항의를 하려는 찰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차라고 하면 차면 그만이지. 뭔 말이 많아!"

    곽명훈이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목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하지만 한 번 물꼬가 터지자 딱히 진원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사방에서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좋게 해결할 수도 있는 일인데, 나이도 많고 취한 사람한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가 있어!"

    "일부러 그런 거 아냐?"

    "저 눈 보라니까? 잘하면 사람 죽이겠네."

    곽명훈은 참담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경찰이 와서 용기를 얻었다고는 해도 이런 반응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젠 누구의 잘못을 따지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이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TV만 틀면 능력자들이 영웅처럼 대접 받았고, 실제 생활에서도 능력자라고 하면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을 무슨 외계인 보는 것처럼 대하고 있지 않은가.

    불과 몇 달 만에 인식이 왜 이렇게까지 달라진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는 게 낫겠다.'

    수갑이고 뭐고, 이런 상황을 좀 더 마주하고 있다가는 정신이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곽명훈은 잔뜩 굳은 얼굴로 경찰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갑이든 뭐든 빨리 채워라.

    더 이상 더러운 꼴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경찰 역시 곽명훈의 심정을 아는 것인지 신속하게 수갑을 채웠다.

    철컥.

    그러고는 바닥에 쓰러진 취객을 부축해 일으켰다.

    "병원부터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은데?"

    "술을 너무 먹어서 그런 것 같아. 외상은 조금 있는데, 그리 큰 상처는 아니야."

    "그래도 병원에서 검사부터 해야지. 조서야 나중에 꾸며도 되잖아."

    "그럴까?"

    곽명훈은 경찰의 인도로 순찰차를 향해 걸어갔다.

    끔찍한 하루였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욕만 잔뜩 먹은 느낌이었다.

    "비켜주세요. 조금 비켜주세요."

    경찰이 둘러싼 인파를 밀어낸다.

    곽명훈은 순순히 그 경찰이 만들어낸 길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다리에서 뭔가 걸리는 느낌을 받은 곽명훈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이!"

    "뭐하는 겁니까?"

    곽명훈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그와 시선을 마주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 중에 누군가 곽명훈의 다리를 건 사람이 있다.

    "뭐하는 거냐고 했습니다."

    경찰은 사정도 모른 채 곽명훈을 쪼아댔다.

    곽명훈의 입에서 허탈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어나세요. 자꾸 이런 식으로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곤란합니다."

    비협조적?

    곽명훈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대체 뭘 보고 비협조적이라는 거지?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줘야 협조적이라고 해줄 건가.

    제 발로 경찰서로 뛰어가서 유치장으로 슬라이딩이라도 하라는 건가?

    곽명훈이 대놓고 불만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경찰도 찔끔하여 헛기침을 해 댔다.

    "크흠, 일어나십시오. 서에 가서 이야기하시죠."

    "제길……."

    곽명훈이 짜증을 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공권력에 반항하지 마라."

    "경찰한테 눈 부라리는 것 봐, 저거."

    "저 새끼들은 경찰도 안중에 없다니까. 저 봐."

    곽명훈이 당황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체 자신이 뭘 했다고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온단 말인가.

    열이 확 끓어오른다.

    "닥쳐, 이 새끼들아!"

    실수라면 실수였다.

    화를 내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성으로는 알고 있었다. 괜히 감정에 몸을 맡겨 의미도 없는 비난을 해 대는 사람들과 같아질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평소라면 덤덤하게 넘어갈 수 있을 일이 오늘따라 자꾸 거슬렸다.

    "이 새끼?"

    분위기가 싸해진다.

    곽명훈은 짜증을 확 냈다.

    성질 같아서는 다 박살을 내버리고 싶다.

    이런 것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왔다는 것이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대체 자신은 뭘 위해서 그동안 헌신해 왔단 말인가.

    까앙!

    그때, 그의 발치에 뭔가가 떨어진다. 반쯤 마신 음료수 캔이 바닥에서 튀어 오르며 그의 바지를 축축하게 적신다.

    "……."

    곽명훈은 말없이 캔을 바라보았다.

    이게 대가인가?

    이런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능력자들이 희생되었는가?

    그런데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이런 취급뿐이었다.

    곽명훈이 이를 꽉 깨물었다.

    "세금 도둑놈!"

    "씨발, 저런 새끼들은 그냥 몬스터한테 찢겨 죽어야 해."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이 사람인 척하고 있네."

    곽명훈의 눈에 핏발이 섰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싸우면 안 된다.

    "어디, 민간인이랑 드잡이질을 해! 몬스터나 잡을 것이지."

    "그 일 아니면 할 것도 없는 것들이. 보통 사람 노는 데 오지 말라고!"

    기이하게 달아오르고 있다.

    평소라면 이 사람들도 능력자를 앞에다 둔 채 대놓고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 상황이 꼬여서 그런지 막말을 서슴지 않고 쏟아냈다.

    수갑을 차고 경찰의 통제하에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조심성을 앗아갔을지도 모른다.

    "이……."

    "뭘 꼬나봐, 이 범죄자 새끼야!"

    "하는 것도 없는 것들이 세금이나 축내고 말이야! 우리가 너흴 먹여 살리고 있는 거야!"

    "특별법을 강화해야 한다니까. 불안해서 살 수가 있나."

    곽명훈은 이성을 잃어갔다.

    너무 억울하고 또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다.

    "이 개새끼들아! 우리가 너희한테 뭘 잘못했는데! 목숨 걸고 싸워준 게 잘못이냐!"

    하지만 대답은 듣지 않는 게 나았다.

    이성적인 대답 대신 담뱃갑을 비롯한 이런저런 물건들이 곽명훈의 발치로 날아들었다.

    "……."

    "아아, 물건 던지시지 마십시오. 이러시면 안 됩니다."

    경찰도 막는 시늉만 해 댄다.

    욕설이 날아들고 물건들이 곽명훈을 향해 날아든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곽명훈은 웃어버렸다.

    아주 지랄들을 하고 있다.

    "그래, 내가 아주 꼴 보기 싫다는 말이지?"

    파지직.

    곽명훈의 이마 앞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그럼 제대로 꼴 보기 싫게 해줄게, 이 개새끼들아!"

    곽명훈이 눈을 부라리더니 전기를 피워 올렸다.

    * * *

    파지지지지직!

    새파란 뇌전이 허공에서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핏대가 선 곽명훈이 주위를 노려보자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광란이 일어났다.

    "으아아아아! 도망쳐!"

    새파란 뇌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본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곽명훈의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저 미친놈이!"

    "이래서 능력자 새끼들은 격리해야 한다니까!"

    곽명훈이 낄낄 웃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경찰이 그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감히 그에게 다가와 그를 제압한다든가 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뭐하냐고?"

    곽명훈이 핏대 선 눈으로 소리쳤다.

    "뭐하는지 몰라서 물어, 이 개새끼들아!"

    방금 전까지는 능력자에 대해 자신들이 더 잘 안다는 듯이 주둥아리를 놀려 대더니, 이제 와서 뭐? 뭐하냐고?

    그럼 알려줘야지.

    "진정하시고! 일단 진정하세요! 이러시면 좋을 게 없습니다."

    "이미 충분히 안 좋아."

    곽명훈이 이를 악물었다.

    "니들 원하는 대로 해줄게. 씨발, 그래, 내가 능력자다, 이 개새끼들아! 어디 제대로 한 번 사고 쳐줄 테니까, 멋대로 까고 놀아보라고!"

    파지지직!

    뇌전이 사람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 안 돼에에에!"

    경찰의 비명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이대로 저 뇌전이 시민들에게 닿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우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퍽! 퍽! 퍽!

    어디선가 날아온 세 개의 촉수가 바닥에 꽂히더니, 뇌전을 흡수하여 바닥으로 흘려냈다.

    "어?"

    검은색의 번들거리는 촉수를 본 사람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것이란 말인가.

    "저게 뭐야?"

    사람들이 촉수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지?"

    그곳에서는 아주 인상이 더러운 청년이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아, 숨차. 씨!"

    청년은 물론 이지혁이었다.

    "야, 이 씨!"

    이지혁이 뭔가 소리를 지르려다가 호흡이 가쁜 듯 숨을 몰아쉬고는 욕지거리를 해 댔다.

    곽명훈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지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사람…….

    어디서 본 사람 같은데?

    "야, 이 미친 새끼야!"

    "……."

    이지혁이 거침없이 욕을 해 대기 시작하자 곽명훈은 정신이 번쩍 든 눈으로 바라보았다.

    뭐지, 이 인간은?

    물론 그가 큰일을 저지를 뻔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처음 보는 인간이, 그것도 나이가 자신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인간이 다짜고짜 욕이라니!

    그런데…….

    이 새끼, 어디서 많이 봤는데?

    "뒈지려면 혼자 뒈지든가! 물귀신도 아니고, 왜 대형 사고를 치려고 해, 이 새끼야! 대가리를 갈아버릴까 보다 그냥!"

    얼굴만 보고는 확신할 수 없었는데, 욕을 들어보니 확실했다.

    이 사람… 이지혁이다.

    NDF의 에이스이자 루머 제조기라고 불리는 그 이지혁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과거 게이트 앞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든다.

    "미치셨어요? 네? 미치셨냐구요?"

    "…아닙니다."

    만약 이지혁이 맞다면 지금 그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폭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 된다.

    소문으로 들은 이지혁의 일화들이 반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눈앞에 있는 놈은 정상적인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성격적로나 능력적으로나 모두.

    "왜 그러는데, 왜?"

    "……."

    곽명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울컥한 것 때문이지만, 왜 그렇게 울컥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지혁이 가만히 곽명훈을 바라보다가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예?"

    영문을 모른 곽명훈이 고개를 갸웃하자 이지혁이 눈을 찌푸렸다.

    "쯧쯧."

    이지혁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그렇게 둘의 대치가 살짝 이어지자 경찰이 슬금슬금 곽명훈에게로 다가왔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수갑을 채운 상황이지만, 그런 것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실 능력자들의 손을 묶는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곽명훈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경찰이 조금은 껄끄러운 얼굴로 곽명훈을 연행해 가려 했다.

    곽명훈 역시 이성이 돌아왔는지 순순히 그의 말을 따르려고 했다.

    그런데 딴지를 거는 인간이 있었다.

    "뭐야? 수갑 왜 찼어?"

    이지혁이었다.

    이지혁이 곽명훈의 손에 찬 수갑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아… 연행 중에 혹시라도 사고가 있을까 봐."

    "뭔 사고를 쳤는데요? 말해봐요."

    "예?"

    "상황이 뭐가 어떻게 됐기에 수갑까지 채우고 데리고 가는 건지 설명해 보라고."

    이지혁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경찰이 애매한 얼굴을 했다.

    따지고 보자면 반항한 적도 없고 협조적이었기에 수갑을 채울 이유가 없긴 했다.

    "그게……."

    대충 상황을 전해 들은 이지혁이 삐딱한 얼굴로 경찰을 바라보았다.

    지혁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경찰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는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곽명훈이 그냥 능력자라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이놈은 또라이의 기질이 풀풀 풍긴다.

    평생 범죄자만 보고 살아온 그다 보니 이지혁이 얼마나 골치 아픈 인간인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알겠어요. 가봐요."

    "예."

    경찰이 곽명훈을 연행해 가려고 하자 이지혁이 입을 열었다.

    "아니, 걔는 두고 가라고."

    "…네?"

    "그 양반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상황 수습이나 하시죠."

    경찰이 황당하다는 듯 이지혁을 바라보았다.

    "그게 뭔 소립니까?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자격이야 있죠."

    대답을 한 것은 이지혁이 아니라 정해민이었다.

    어느새 이지혁의 옆까지 다가온 정해민이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 내밀었다.

    "NDF 소속 정해민입니다. 능력자 관련 범죄는 NDF에 최우선적인 수사 권한이 있음을 알고 계시겠죠? 능력자 인도를 요청합니다."

    "으음……."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교육 받은 바가 있어 NDF가 능력자 전담 기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잠시만 좀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도 잘 몰라서 상부에 확인을 좀 해보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정해민은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를 해본 경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헸다.

    "규정에 따라 인도하겠습니다."

    "네, 감사해요."

    정해민이 싱긋 웃어 보이자 이지혁이 조용히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런 것도 있었어?"

    "쪽팔리니까 조용히 해.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응."

    이지혁은 해맑게 웃었다.

    모르는 걸 뭐 어떻게 하라고.

    모르는 게 죄인가?

    애초에 NDF에 수사권이 있다는 걸 이지혁이 알 리가 없지 않나.

    말해준 사람도 없는데…….

    "근데 넌 그런 거 어찌 알았냐?"

    "들었으니까."

    "그런데 왜 아무도 나한테는 말 안 해준 거야?"

    "너한테 수사를 시킬 사람이 누가 있겠어?"

    야, 그런 말을 그리 해맑게 웃으면서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무척이나 뻘쭘하잖니.

    이지혁은 이 뻘쭘함을 탈출할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커피 한잔하러 갈래요?"

    곽명훈은 멍한 눈으로 이지혁을 바라보았다.

    * * *

    "어, 그러니까……."

    이지혁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빡 돌았다?"

    "예……."

    곽명훈도 어색한지 말끝을 흘렸다.

    원래 두 사람이 커피를 먹던 카페로 이동한 이지혁은 곽명훈을 건너편에 앉히고 말을 이어갔다.

    "아니, 그래도 좀 참지."

    "죄송합니다. 저도 제가 왜 그리 화가 났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벌이든 징역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뭐,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이지혁은 조금은 안쓰러운 얼굴로 곽명훈을 바라보았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곽명훈이 화가 난 것은 그 본인의 잘못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곽명훈의 잘못이기는 하지만, 그를 케어해 주지 못한 국가에 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했다.

    "전투를 그만큼이나 했는데 제정신일 리가 없지."

    이지혁이 혀를 찼다.

    "이 나라 놈들은 사람을 무슨 소모품 보듯이 한단 말이야."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싸우고 또 싸운데다가 동료의 죽음도 여러 번이나 목격했다.

    그런 사람이 제정신일 리가 있겠는가.

    윗대가리라는 작자들이 조금만 생각이 있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대처를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윗대가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한국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쯧.'

    이지혁이 아는 것을 모른다는 것은 심각했다.

    "야, KSF에는 치료 프로그램이 없냐?"

    "응? 치료 프로그램? 그게 뭔데?"

    "됐다. 앓느니 죽지."

    무서운 동네다.

    사람을 몬스터와의 싸움에 갈아 넣고 있으면서도 그들에 대한 케어는 전혀 신경 써주지 않고 있다는 말 아닌가.

    전투 중독증이나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에 대한 부작용도 전혀 신경 써주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능력자들이 과도한 폭력성을 내보이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아저씨."

    "네? 네!"

    곽명훈은 군기가 바짝 들어가서 대답을 했다.

    일단 NDF 요원들은 계급상으로도 KSF보다는 높다.

    거기에 요즘 한국, 아니, 전 세계 능력자들 중에서도 가장 핫한 이지혁이다 보니 조금도 소홀할 수가 없었다.

    "아저씨 잘못 아니니까 집에 가요. 그리고 명상을 하든 요가를 하든 일단 마음 좀 다스려요. 그러다 대형 사고 나요."

    "…집에 가라구요?"

    "네. 집 없어요?"

    "아뇨. 제가 생각해도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데, 그냥 집에 가도 됩니까? 징계야 나중에 받더라도 지금 입창 안 해도 괜찮습니까?"

    "입창이 뭐예요?"

    "영창 들어간다고, 바보야!"

    이지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 다쳤어요?"

    "취객 하나가……."

    "들어보니 그건 정당방위니까 됐고, 그거 말고 뭐 다치거나 잘못된 거 있어요?"

    "일반인을 공격했는데요?"

    "내가 막았으니 됐잖아."

    "그래도……."

    이지혁이 짜증을 냈다.

    "아, 그래서 어쩌라고! 세상에 폭행 미수도 있어? 그런 죄는 없잖아요!"

    "그런 죄야 없지만……."

    곽명훈은 찝찝한 기분을 떨쳐 내지 못했다. 기분이 영 이상하다.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는 분명 그들에게 해를 끼칠 생각으로 공격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 죄도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도 되는 걸까?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으려고 하고, 그걸 잡은 사람이 벌을 주지 않으려 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 됐어. 그냥 집에 가."

    "그래도……."

    "팍, 씨!"

    이지혁이 화를 내자 곽명훈은 찔끔하여 고개를 숙였다.

    누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저 사람과 척을 지는 것만은 절대 사양이었다.

    차라리 오거랑 맞다이를 뜰망정 이지혁과는 엮이지 말라는 대한민국 능력자계의 격언이 있지 않은가.

    "정말 가도 되는 겁니까?"

    "아, 가라고!"

    이지혁이 짜증을 팍팍 내자 곽명훈은 슬그머니 자리에 일어났다.

    어차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보고가 될 거고, 징계는 떨어질 것이다.

    지금 집에 가 있는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RRRR.

    아니나 다를까,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예, 곽명훈입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욕설이 쏟아져 내렸다.

    '그럼 그렇지.'

    곽명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영창이 어쩌고 징역이 어쩌고 하는 소리가 마구 들려온다. 곽명훈이 지금 당장 복귀하겠다는 말을 하려는 찰나, 전화기가 그의 손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벗어나더니 이지혁의 손에 들렸다.

    "어?"

    전화기는 왜?

    그의 의문이 채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이지혁이 전화기를 귀에 대더니 입을 열었다.

    "너 누구야?"

    곽명훈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 * *

    "뭐?"

    KSF 강북 지부장 이태수는 황당한 얼굴로 전화기를 얼굴에서 떼 화면을 바라보았다.

    곽명훈.

    잘못 건 건가 싶어서 본 것은 아니다.

    방금 전까지도 통화했는데 잘못 봤을 리가 있나.

    그만큼이나 지금 이태수가 황당하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상부에서 전화가 와 번화가 한복판에서 능력자가 능력을 발휘해 시민들을 위협했다는, 엿 같은 소식을 전해온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 말 자체로도 속이 뒤집어지는데, 부하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느니, 이 일이 커지면 니가 진급이나 할 수 있겠냐느니 온갖 잔소리와 욕을 들은 게 두 번째 문제였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 너 누구냐고.

    "하하하……."

    이태수는 황당하게 웃었다.

    자신이 누군가.

    KSF 강북 지부장이다.

    경찰서장이 아니라 경찰청장이라도 자신에게 이렇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웬만한 차관급이 아니고서야 자신을 이따위로 대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부하 직원의 전화를 받은 놈이 그에게 반말을 찍찍 해 댄다?

    '미쳤나?'

    화도 나지 않는다.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누구십니까?"

    - 내가 먼저 물었는데?

    "하하, 이 사람 보게?"

    이쯤 되니 화가 치밀기 시작한다. 대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어린 것을 보아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따위로 나온다?

    '진짜 쓴맛이 뭔지 좀 보여줘야 하나?'

    이태수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진정시키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나 KSF 강북 지부장 이태수요. 이야기했으니 어디 한 번 들어봅시다. 당신 누구요?"

    - 이지혁인데.

    "아, 당신이 이지혁이군. 그래, 그런데… 이지혀어어억?"

    강북 지부장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이지혁이라니, 설마 이 이지혁이 내가 아는 그 이지혁은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곽명훈이 미친 게 아니라면 자기 전화기로 누군가 상사와 장난을 친다면 당장 전화기를 빼앗으려고 할 텐데, 그러기는커녕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꼴이 아닌가.

    그럼 이태수가 판단하기에 지금 전화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이런 언동을 해도 될 만한 사람이라는 뜻이거나 곽명훈으로서도 무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 전화를 받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 어느 쪽이든 이태수에게 있어서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만약 그가 아는 그 이지혁이라면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한다.

    그러니까…….

    "NDF의 그 이지혁 씨입니까?"

    - 어.

    "……."

    아, 씨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지?

    왜 이 새끼가 거기서 전화를 받는 거지?

    이태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 인간과는 엮이면 안 된다.

    이 인간과 엮여서 피 본 사람을 한둘 본 게 아니다.

    그 인간 같지도 않은 서아영이나 그 괴물 같은 최정훈도 감당 못해서 위장약을 달고 살게 만든 사람이 바로 이지혁 아닌가.

    그런데 평범한 소시민인 이태수가 이지혁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하하하. 반갑습니다, 이지혁 씨."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이태수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받아주든 받아주지 않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든 전화를 끊어야 한다.

    이태수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왜 전화해서 난리예요? 이 사람이 뭔 잘못을 했는데?

    "하하, 그게 말입니다……."

    그 순간, 이태수는 첫 번째 실수를 저질렀다.

    "일반인을 상대로 능력을 쓴 게 잘못입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흉기를 휘두른 거나 다름없죠."

    - 그래요?

    "네."

    - 그럼 능력자 상대로는 해도 괜찮은 거네? 당신 어디야?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요?"

    이태수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소문이 틀리지 않았다. 이놈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빨리 이 상황을 정리하고 곽명훈과 따로 말을 해야 한다.

    "여하튼 규정이 그렇습니다. 죄송하지만, 곽명훈 요원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 그런 거 난 모르겠고…….

    모르면 안 되지!

    너도 능력자고, NDF 요원인데, 규정을 모르면 어떻게 하니.

    이태수가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찾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 여하튼 이 사람한테 뭐 징계 같은 거 떨어지면 내가 만나러 갈 테니까 그리 알아요.

    "제, 제가 그러는 게 아닙니다. 윗선에서 진행하는 거란 말입니다. 제가 뭐라고 혼자서 징계 주고 하겠습니까! 다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 그럼 징계 내리는 놈더러 나한테 전화하라고 해요.

    "아……."

    좋은데?

    그의 상사도 이지혁이라는 이름을 들어간 보고서를 받게 된다면 어떠한 토도 달지 않고 도장을 찍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이지혁이라는 이름은 이제 만능 키나 다름 없으니까.

    "그,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 그리고 전화 한 통 갈 거예요.

    "네?"

    - 끊어요.

    뚝.

    전화가 끊겼다.

    이태수는 위마 위로 흐른 식은땀을 닦아내며 한숨을 쉬었다.

    "하……."

    곽명훈은 왜 하필 이 미친놈이랑 같이 있단 말인가.

    사람 수명 줄이려고 작정을 했나!

    "그나저나 왜 이지혁이 거기 있는 거지?"

    물론 번화가에서 일이 벌어졌다고 했으니 이지혁이 그곳을 지나는 중이었다 하더라도 무리는 아니었다.

    기막힌 우연으로 마주쳤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인간이 곽명훈을 감싸고도는 건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RRRR.

    그때,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으으응?"

    전화에 뜬 이름을 본 이태수의 표정이 썩어가기 시작했다.

    안 받고 싶다.

    안 받아야 한다.

    하지만 받지 않을 수 없는 전화였다.

    "끄응……."

    이태수가 힘없이 전화를 받았다.

    "예. KSF 강북 지부 이태숩니다."

    - 최정훈입니다.

    이태수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 * *

    "쯧."

    최정훈과의 통화를 마친 이지혁이 씁쓸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이제 됐어요."

    "아……."

    곽명훈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만약 이지혁이 없었다면 자신은 지금쯤 유치장에서 떨어질 징계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지혁이 있었기에 모든 상황을 별문제 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절 도와주시는 겁니까?"

    곽명훈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물었다.

    "억울하니까."

    "네?"

    "그렇게 징계 받으면 억울하잖아요."

    "하지만 규정이……."

    "규정이 엿 같으면 규정을 바꿔야지, 규정이 엿 같은데도 지키고 있으면 그게 잘못된 거죠."

    곽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자라면 누구나 했던 생각이다.

    지금의 규정이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모르는 능력자는 없었다.

    하지만 그 규정이라는 것은 국가에서 만든 것이고, 국가를 상대로 싸울 힘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힘이 있다 하더라도 위를 장악하고 있는 이들이 그들보다 강한 능력자다 보니, 위에서 직접 개혁에 나서지 않는 이상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뭐… 그러려고 한 것도 아니고, 정상참작의 여지도 있으니까요."

    "네?"

    이지혁은 대답하지 않고 새로 주문한 커피를 쭉 빨아 먹었다.

    끊임없이 전투에 내몰리는 병사들이 스트레스성 장애에 시달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는 사태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사람이 보통 사람과 같은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베라프에서는 신관이라는 절대적인 치유 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쳐서 날뛰는 병사들이 심심치 않게 나왔다.

    그러나 현대의 능력자들은 그 이상의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있었다.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게이트 앞에서 언제 나올지 모르는 몬스터들을 항상 기다리고 있어야 하고, 아차 하는 순간 몬스터에게 찢겨 죽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정상적인 마인드로 살 수 있겠는가.

    이런 것을 케어해 줘야 하는 것이 국가와 기관의 일이었다.

    오늘 곽명훈의 저지른 일은 분명 잘못이다. 아무리 사정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반인에게 능력을 쓴 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곽명훈을 그렇게 끌고 간 것은 국가고, KSF였다.

    그렇다면 책임은 곽명훈이 아니라 그들이 져야 한다.

    그것이 이지혁의 지론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배알 꼴리는 거고.'

    일반인이라는 이유로 위험에서는 도망치면서 막상 그들을 대신해 싸우고 있는 이를 비난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이지혁이 능력자들과의 관계가 더 좋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사정을 듣고 보니 딱히 곽명훈을 나무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바꿔야 할 것이 있다면 곽명훈이 아니라 이런 이들을 방치하고 있는 KSF였다.

    이지혁은 그리 생각했다.

    "영화 시간 지났잖아!"

    "……."

    그리고 이년들도 정신감정을 좀 받아봐야 한다. 지금 영화가 중요한가!

    "이제 가봐요. 가는 길에 또 사고 치지 말구요."

    "진짜 가도 됩니까?"

    "저랑 데이트라도 할 생각이에요? 그런데 나는 남자는 관심 없는데 어떻게 하지?"

    "넌 여자도 관심 없잖아."

    "듣고 보니 그런 듯."

    곽명훈은 조금은 얼떨떨한 얼굴로 이지혁을 바라보았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길지는 않지만 대화도 나눠보았다. 그러고 나니 이상한 결론이 난다.

    '좋은 사람 아닌가?'

    아니, 이 사람… 따져 보면 자신이 사고 칠 뻔한 걸 막아주고, 그러고도 화 한 번 내지 않고 상황을 모두 수습해 준 다음, 징계까지 막아줬다.

    이런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사람들은 왜 이런 사람을 상종하지 말라고 하는 거지?

    이렇게나 착하고 좋은 사람인데?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심각하게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럼 일어나 보겠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네, 잘 가요."

    이지혁이 손을 흔들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이 사람, 정말 착한 거 같은데?

    곽명훈이 대체 왜 이지혁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졌는가를 고민할 때, 그의 전화기와 이지혁의 스마트워치가 동시에 울리기 시작했다.

    "어?"

    "응?"

    이지혁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게이트 열린 모양인데?"

    "빨간색인 거 보면 긴급이야. 구석에 있던 게 발견이라도 됐나? 이 근처인 거 같은데?"

    정해민의 말에 이지혁이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

    몇 번 터치를 한 이지혁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 뭐 어케 확인하는 거야?"

    "…넌 안 해도 돼. 확인은 내가 한다."

    "응."

    요즘 묘하게 쟤가 나를 무시하기 시작한 것 같은데… 아니겠지?

    이지혁이 날카로운 눈으로 정해민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스마트워치를 확인하더니 굳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근처네."

    "어디래?"

    "음, 무척 근처야."

    "어디?"

    "저기."

    정해민이 손을 뻗어 창밖을 가리켰다.

    "응?"

    정해민의 손을 따라가 보니 길 끝에 커다란 게이트가 보였다.

    게이트가 얼마나 큰지 바로 앞에 있다고 착각될 정도였다.

    "크네."

    "응."

    "가깝네."

    "응."

    "오, 열린다."

    "응."

    이지혁이 고개를 푹 숙였다.

    좀 쉬자! 사람이 좀 쉬기도 해야지!

    어휴, 썩을 진짜!

    이지혁이 힘없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내 팔자야."

    휴식은 개풀이.

    * * *

    우우우웅!

    게이트가 열리고, 그 안에서 마수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게이트가 열리는 거야 흔히 있는 일이다.

    도심 한복판에 게이트가 나타나는 것 역시 가끔씩은 벌어지는 일이라 그리 놀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 커다란 게이트가 도심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나더니, 놀랄 틈도 없이 바로 열려 버리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이트가 나타나자 호기심에 은근슬쩍 다가와 보던 사람들이 푸른색 게이트가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는 당황하여 비명을 질렀고, 그 게이트가 순식간에 열려 버리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망쳐!"

    "신고해! 신고하라고!"

    비명과 울음소리가 아비규환을 만들고 있었다.

    카아아아아!

    몬스터의 떼가 게이트 안에서 나온다.

    보통은 게이트 안에서 나오는 몬스터들도 일정한 규칙성이 있었다.

    예를 들면 처음 이지혁이 마주한 게이트에서는 고블린들만 나왔다. 고블린과 다른 종류의 몬스터들이 섞여 나오지는 않았다.

    다른 게이트들 역시 보통 그러한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열린 게이트는 조금 달랐다.

    커다란 게이트 안에서 온갖 마수들이 동시에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익숙한 빌더 몽키나 고블린부터 시작해서 하늘을 날아오르는 와이번들과 바닥으로 파고들기 시작하는 거대한 웜까지.

    그 외에도 수많은 종류의 몬스터들이 마치 지옥문이라도 열린 것처럼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살려줘!"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을 쳤지만, 인간의 다리로 몬스터를 따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아아악!"

    곳곳에서 몬스터에 희생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KSF는 대체 뭘 하는 거야!"

    "사람들이 죽어 나가잖아! 이 무능한 새끼들!"

    이지혁은 카페 밖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와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하……."

    속 시끄러운 사태다.

    차라리 드래곤이라도 나왔다면 상대하기가 더 쉬웠을 텐데, 자잘한 몬스터들이 우르르 나온 상황이라 일일이 잡아 죽여야 하는, 귀찮은 사태였다.

    "일단 지원 요청했어."

    "응."

    "연락 완료. 곧 도착함."

    "응?"

    이지혁이 어느새 자신 옆으로 바짝 다가와 있는 도가윤을 보았다.

    잘도 숨어 있더니, 상황을 보고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다솜이는?"

    "저쪽에."

    "걔부터 안전한 데로 옮겨놓고 와."

    "라져."

    도가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르륵 모습을 감췄다.

    이지혁은 정해민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 안 위험하겠냐?"

    "위험하면 텔 타면 돼."

    "…사기캐네."

    그러고 보면 얘가 누구한테 당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주변 정리가 끝나자 이제 몬스터들이 눈에 들어온다.

    "흐음……."

    이지혁이 날뛰는 몬스터들을 보고는 고개를 돌려 곽명훈을 바라보았다.

    "도울 거야?"

    "물론입니다."

    "착하기도 하지."

    살짝 비꼬는 듯한 이지혁의 발언에 곽명훈은 얼굴을 붉혔다.

    그가 당한 일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두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일이니까요."

    "좋은 마인드야."

    이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들의 눈에 순찰차를 몰아 그들 앞으로 거칠게 다가오는 이들이 보였다.

    "어, 어떻게 좀 해주십시오!"

    조금 전, 곽명훈을 체포해 가려던 경찰들이었다. 그때는 과잉으로 사람을 진압해 대더니, 아쉬운 일이 생기니 찾아온 모양이었다.

    "와, 뻔뻔하다, 진짜. 양심도 없나?"

    이지혁의 말에 경찰들이 얼굴을 붉혔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곽명훈은 진지하게 경찰들의 말을 받았다.

    "아저씨는 짜증도 안 나요?"

    "네?"

    "그런 취급 받았는데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나 보네요. 전생에 간디셨나?"

    "하하하……."

    곽명훈은 어색하게 웃고는 대답했다.

    "흔한 일이지 않습니까?"

    "네?"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이라고 뭐가 달랐겠습니까? 블랙 먼데이 이전에도 똑같았죠. 군인은 항상 더럽다고 욕하고, 무능하다고 화내고… 항상 그랬었죠. 그런데도 군인들은 결국 나라를 지키지 않았습니까."

    "음……."

    "존중이 없던 것은 그때도 똑같았죠. 2년 동안 개고생해도 가산점 하나 못 받던 시대였는데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그리 대접 못 받는 것도 아니죠."

    이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군 장병에 대한 처우는 차마 말만이라도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 외에도 많다. 제대로 된 장갑 하나 받지 못하고 현장에 뛰어드는 소방관이라든가…….

    세상은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덕분에 유지되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일까?'

    일방적인 희생 위에 쌓여진 토대는 언젠가는 붕괴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지혁 씨 입장에서 보면 저는 하찮은 전력에 불과하겠지만, 전력으로 돕겠습니다."

    "어, 그게……."

    나 뭐할 생각 없는데?

    이지혁이 머리를 긁었다.

    "전 그냥 구경할 건데요?"

    "구경요? 뭔 소리세요?"

    곽명훈이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업무도 끝났고, 난 그냥 놀러 나온 거라 할 일 없는데요? 일이야 KSF가 하겠죠. 아니면 일 없는 우리 애들이 와서 처리하든가."

    곽명훈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만한 힘이 있으면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방관하겠다는 겁니까?"

    "내가 충전이 안 되는 건전지 같은 거라……."

    나중에 마왕이라도 나왔는데 지금 쓴 마나 때문에 마왕을 상대하지 못하게 되는 사태라도 벌어지면 인류 멸망이거든요?

    내가 귀찮아서 안 하는 게 아니거든?

    "농담할 시간 없습니다."

    "농담 아닌데……."

    곽명훈이 얼굴을 굳혔다.

    "제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뭐 얼마나 봤다고 사람을 잘못 봤다 소리가 나와요. 얼굴 본지 한 시간도 안 됐구만, 그렇게 사람을 제멋대로 판단하고 하니까 사건에 휘말리는 거예요."

    "반성하죠."

    말은 그렇게 하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더 이상은 시간 낭비 할 수가 없겠네요. 가보겠습니다."

    곽명훈은 그 말을 끝으로 이지혁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게이트를 향해 달려 나갔다.

    "으음……."

    이지혁은 그 광경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좋은 사람이네.

    참 좋은 사람이야.

    사고를 크게 치기는 했지만, 본성은 나쁘지 않은 사람 같았다. 하기야 이지혁도 한 달 동안 쉬지도 못하고 개고생을 했는데 그런 꼴을 당하면 다 뒤집어엎어 버리고 싶을 테지.

    그런데 그러고도 사람들을 돕겠다고 저러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안 도와줘?"

    "내가 왜?"

    "그래도 사람들 죽는 거 보면 기분 나쁘잖아."

    "그렇기야 하지만."

    사실 딱히 그리 기분 나쁘지도 않은데…….

    이지혁이 머리를 긁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만 재확인하는 것 같아서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제길."

    이지혁의 시선이 곽명훈에게로 꽂혔다.

    * * *

    "크으윽!"

    곽명훈은 이를 악물었다.

    중과부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게이트에서 끊임없이 몬스터들이 밀려나오고 있었다.

    그도 예전보다는 강해졌다.

    그로서는 감히 우러러볼 수도 없는 NDF의 요원들이 주기적으로 지사를 찾아와서 훈련을 해주기 시작한 지가 두 달쯤 됐다.

    훈련은 더없이 힘들지만 예전보다 에테르를 활용하는 법을 많이 익힐 수 있었고, 덕분에 두 달 전보다는 적어도 두 배쯤 더 강해졌다 자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두 배 강해진다고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가 백 명이 있다고 해도 이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결할 수 없다면 바짓가랑이라도 물고 늘어진다. 그러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겠지.

    그가 바라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콰앙!

    바로 옆에서 뭔가 폭발한다.

    귀가 순간적으로 멍해지고,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큭."

    하지만 곽명훈은 쓰러지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주변을 향해 전류를 뿌려 댄 곽명훈이 흔들리는 몸을 다잡았다.

    크아아아!

    그리고 그의 눈에 커다란 빌더 몽키가 팔을 휘둘러 오는 것이 포착되었다.

    '못 피해?'

    끝.

    무모했을지 모른다.

    적어도 몇 개 지부는 합세해서 처리해야 할 만한 게이트였다.

    그런데 혼자서 막으려 했으니 당연히 이렇게 될 수밖에.

    미련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미련한 일인 것을 알면서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다.

    빌더 몽키의 커다란 팔이 그의 머리에 거의 와 닿고 있었다.

    '제길.'

    곽명훈은 눈을 똑바로 떴다.

    눈을 감고 죽고 싶지는 않았다.

    "이 아재 보소?"

    그 순간, 귓가로 환청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퉁!

    가죽 북을 튕기는 듯한 소음과 함께 빌더 몽키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

    카아아아아악!

    얼마나 높이 떴는지, 거의 점으로 보일 지경까지 떠오른 빌더 몽키가 낙하하기 시작했다.

    "헐……."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곽명훈이 입을 쩍 벌렸다.

    "꼭 이런 양반들이 제일 먼저 뒈진다니까. 아재요, 그러다 죽어요. 정신 차리세요."

    "이, 이지혁 씨?"

    고개를 돌려보니 이지혁이 혀를 차며 그를 보고 있었다.

    "도와주시는 겁니까?"

    "생각을 좀 해봤는데……."

    "네?"

    "마나는 그렇다 치고, 에테르는 충전되더라고."

    "네?"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한 곽명훈이 되물었지만, 이지혁은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지 그저 몬스터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에테르만 쓰면 어느 정도 위력이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뭐, 겸사겸사."

    이지혁이 씨익 웃더니 말했다.

    "어디 한 번 실력 좀 볼까요? 내 등 뒤로 붙어요. 적당히 나가떨어지는 애들한테 전류 한 번씩만 남겨주면 됩니다. 막타 잘 쳐요."

    "네?"

    "시작!"

    이지혁이 그 말을 남기고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곽명훈은 영문도 모른 채 이지혁의 등을 따라 뛰었다.

    그리고 곽명훈은 보았다.

    왜 이지혁이라는 이름이 대한민국의 능력자들에게 회자되고 또 회자되는지를 말이다.

    퉁퉁퉁퉁퉁!

    그건 마치 음악소리 같았다.

    이지혁의 앞에 걸리는 몬스터들은 뭔가 해볼 틈도 없이 뒤로 튕겨 나가기 바빴다. 장난스러운 이지혁에 손짓에 휘말린 몬스터들이 물리법칙을 무시한 것처럼 뒤로 튕겨났다.

    "이게 뭐야?"

    눈으로 보고 있지만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이게 가능한 건가?

    투투투투퉁!

    이지혁이 속도를 높이며 손발을 좀 더 빨리 놀리기 시작했다.

    이지혁의 정권에 맞은 커다란 몬스터가 뒤쪽으로 폭풍처럼 휘돌며 튕겨 나간다!

    그 폭풍에 휘말린 몬스터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아, 효율 썩었어."

    하지만 이지혁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대고 있었다.

    "막타 치라니까!"

    "아, 네! 네!"

    이게 게임도 아닌데, 막타는 뭔 소린가.

    따져 물을 상황이 아니니 그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곽명훈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몬스터들을 향해 전류를 날려 댔다.

    "죽이지는 말아요!"

    "그게 조절이 됩니까?"

    "잘하면 된다니까! 잘!"

    "……."

    이 새끼, 좀 또라이 같은데?

    처음 좋았던 이지혁에 대한 인상이 점점 나빠지는 것을 느끼는 곽명훈이었다.

    "아, 죽이지 말라니까!"

    뭔 소리지?

    이지혁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당황한 곽명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늘에서 끝없는 불의 비가 두 사람과 몬스터들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불비의 정체를 짐작해 낸 곽명훈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여기 사람 있다고, 이 미친 인간아아아아아!"

    "낄낄낄낄."

    곽명훈의 비명을 들으며 낄낄 웃는 이지혁의 웃음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NDF의 인간들은 다 또라이라는 말을 믿어야 했다.

    곽명훈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얽히지 말걸."

    이미 늦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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