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리터너-29화 (29/118)
  • [■] 그렇게 대놓고 말하지는 말아요 [■]

    ─────

    베라프에서의 이지혁은 완전무결한 존재였다.

    그의 공격력은 세상을 단 한 번의 마법으로 뒤집어놓았고, 그의 정신은 굳건하다 못해 한 치도 변하지 않는 철옹성이었다.

    그리고 그의 육체는 모든 공격을 받아내고도 단숨에 원형을 회복해 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게 문제지.

    "아아아아아아!"

    이지혁이 촉수에 끌려 바닥으로 파고들며 비명을 질렀다.

    "아프다! 아파! 아이고! 엄마아아아!"

    최정훈은 그 광경을 보며 혀를 찼다.

    아니, 사실 좀 걱정해 주고는 싶다.

    정말 걱정해 주고 싶은데…….

    사람이 저리도 경박하게 아파하냐!

    이보세요, 이지혁 씨. 당신은 인류의 수호자나 마찬가지인 입장입니다. 최소한의 체통은 지키셔야죠!

    대체 어느 거물이 저딴 식으로 비명을 지른단 말이냐!

    바둥바둥거리며 바닥으로 끌려 들어가는 이지혁을 보자 도와야 된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뭔가 상황이 좀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냥 뭐, 그냥…….

    "야, 이노무 자식들아! 내가 이리 끌려가는데!"

    차라리 저렇게 말이라도 안 했으면…….

    움찔거리던 뒤꿈치를 내리누른 최정훈이 한숨을 쉬며 서아영에게 말했다.

    "도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뭐, 그렇긴 한데……."

    서아영도 떨떠름한지 입맛을 다시다가 입을 열었다.

    "저, 저 양반 좀 끌어내 봐요."

    "으음……."

    그나마 개중에 힘이 제일 좋은 아이언 박성찬이 머리를 긁으며 앞으로 나섰다.

    "이상하게 도통 위기감이 없네, 이거."

    허리까지 땅으로 파고든 이지혁을 보며 박성찬이 물었다.

    "아파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아니, 뭐, 그냥……."

    만화에서나 많이 본 상황 같아서.

    하기야 저 좁은 구멍을 온몸으로 넓히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진데, 아프기야 무지 아프겠지. 아무리 단단한 능력자의 몸뚱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거, 근데……."

    "빨리 좀 해결해 봐요!"

    "으음……."

    박성찬이 이지혁의 팔을 잡고는 살짝 고민하는 듯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근데요."

    "넹?"

    "이거 현실이잖아요. 내가 잡아 뽑으면 저 촉수보다 이지혁 씨의 다리가 먼저 끊어지지 않을까?"

    "……."

    자, 잠깐.

    생각을 좀 해보고…….

    당기지 마!

    말 그렇게 해놓고 실실 웃으면서 당기지 말라고!

    "땅을 파면 되잖아! 땅을!"

    "아, 그렇네."

    박성찬이 머리를 벅벅 긁고는 씨익 웃었다.

    그가 주먹을 들더니, 머리 위까지 끌어 올렸다.

    사람 머리통만 한 주먹에 핏대가 서는 것을 보자 뭔가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파는 걸……."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박성찬의 주먹이 바닥을 내리갈겼다.

    콰앙!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바닥이 움푹 파이며 이지혁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야, 이!"

    뭔가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전신을 파고드는 고통에 입을 떼기도 힘들었다.

    "아, 씨! 더럽게 아프네, 진짜!"

    아니다. 입은 잘 떼어진다.

    아마 죽기 직전까지 몰려도 입을 잘 떼어지겠지!

    이지혁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이 새끼가! 원거리형이었어?"

    영상에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더니, 갑자기 자신에게만 촉수를 쓰다니!

    사람 차별도 유분수지!

    "너, 이제 뒈……."

    바닥으로 낙하하는 이지혁에게 박성찬이 소리를 질렀다.

    "이지혁 씨! 다리! 다리!"

    응?

    내 다리?

    내 다리가 뭐 어떤데?

    이지혁의 눈이 아래로 향하자 그곳에는 여전히 굳건하게 다리를 움켜잡고 있는 촉수가 보였다.

    "하……."

    일단 이 촉수를 끊어내야…….

    순간, 이지혁의 눈에 바닥에서부터 튀어나와 있는 촉수의 아랫부분이 크게 꿀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으음…….

    아니지?

    아니겠지?

    휘익!

    뭔가 투덜댈 틈도 없이 어린아이 손에 잡힌 장난감처럼 몸이 허공으로 급격하게 휘둘러졌다. 동시에 눈앞으로 지면이 맹렬한 속도로 들이차기 시작했다.

    이거, 예전에 술 엄청 처먹고 아스팔트가 일어설 때랑 비슷한 기분인 거 같은데?

    "실드!"

    쾅! 쾅! 쾅! 쾅! 쾅!

    장난감처럼 좌우로 휘둘러져 바닥에 연속으로 처박힌 이지혁이 축 늘어졌다.

    "이지혁 씨!"

    서아영이 소리를 지르며 이지혁에게로 달려갔다.

    아무리 능력자라도 저런 타격에 무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

    이지혁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프다고오오오오!"

    이지혁이 고개를 번쩍 들며 소리쳤다.

    "아파! 아프다고, 이 망할!"

    다리를 잡혀 허공에서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린 이지혁이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체통 좀……."

    최정훈이 한숨을 푹 쉬었다.

    왜 저 인간은 이런 장면에서도 이런 그림이 나오는 건가!

    지금 무척 진지한 상황이거든?

    "그건 그렇고, 몸뚱아리 엄청 단단하네?"

    보통 그 정도 타격을 받았다면 지금쯤 걸레 조각이 되었어야 할 텐데, 생채기도 나지 않은 것 같다.

    "단단하겠냐!"

    귀신같이 그 말을 들은 이지혁이 소리쳤다.

    실드도 모르는 무지렁이들 같으니.

    "끄응……."

    그런데 왜 이리 뼛속까지 아프냐?

    충격 자체는 완벽히 흡수하지 못했는지, 둔중한 통증이 느껴졌다.

    원래 이런 게 골병드는 상처라고 하던데.

    내장이 뒤집어지는 듯한 고통에 이지혁이 이를 갈았다.

    "쯧!"

    손끝으로 마나를 끌어모아 다리를 잡은 촉수를 향해 가볍게 뿜어냈다.

    촤악!

    촉수가 잘리며 녹색 체액이 쭈욱 뿜어져 나온다.

    이지혁은 빙글 몸을 돌리며 바닥으로 착지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지혁의 몸 주변으로 대여섯 개의 촉수가 동시에 솟아올랐다.

    하지만 이지혁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몰라서 당한 거지, 알고도 당할 거 같으냐?

    이지혁의 육체에서 시커먼 촉수가 돋아나 사방으로 뻗어졌다.

    이지혁의 검은 촉수와 몬스터의 새하얀 촉수가 맞물리며 얽혀들기 시작했다.

    인간과 몬스터가 아니라 몬스터와 몬스터가 싸우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음, 저거 좀……."

    끄덕.

    최정훈의 읊조림에 서아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랄까, 촉수와 촉수가 서로 휘감기며, 다시 촉수와 촉수가 그…….

    "징그러워."

    "그렇게 대놓고 말하지는 말아요."

    "메스꺼워."

    "조금 그런 면이 없지는 않지만."

    최정훈은 혀를 찼다.

    생각해 보니 저 양반… 진짜 폼이 안 나는 타입이네.

    남들은 불 뿜고 벼락 내리치고 바람을 타고 다니는데, 만날 하는 거라고는 시커먼 거 몰고 다니고, 촉수 휘두르고, 징그러운 몬스터 떼나 부리다니.

    세계관만 달랐으면 바로 악역이지.

    "지금도 악역이 아닌 것 같지는 않지만."

    몬스터에게도 악당이지만, 사람에게도 악당이니까.

    "야, 이노무 자식들아!"

    들었나?

    귀도 밝지!

    "내가 이리 잡아놓고 있으면 본체를 때려야 할 것 아냐! 그러면서도 돈을 받아 처먹나! 니들이 그러고도 공무원이냐!"

    "쯧."

    통렬한 자아비판 잘 들었습니다.

    "지원하죠."

    마음에 안 드는 건 마음에 안 드는 거고, 일단 일은 해야지.

    서아영이 영 탐탁지 않다는 얼굴로 최정훈을 보았다.

    "아니, 일은 해야죠! 저 사람한테만 다 맡겨놓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막말로 너희 요즘 하는 게 뭐냐고!

    생각해 보니 그러네?

    만날 큰일 터지면 이지혁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까지 입에 물고 상모돌리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저희가 노는 것 같죠?"

    "솔직하게 말하자면요."

    "근데 최정훈 씨."

    "네?"

    "제가 최정훈 씨 보고 요즘 노는 것 같으니까 나가서 맨손으로 건물 하나 부수고 오라고 하면 어떠실 것 같아요?"

    "미쳤냐고 하겠죠."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이 그거야."

    "……."

    서아영은 코웃음을 쳤다.

    이지혁이 만날 손쉽게 몬스터를 때려잡으니까 쟤들이 우스워 보이나?

    막말로 어디 가서 화력… 그래, 여러 의미로의 화력으로는 다른 이에게 절대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서아영조차 얼마 전 좀비 드래곤이나 세티에게는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그런데 뭘 어쩌라고?

    서아영이 뚱하게 바라보자 최정훈이 머리를 짚었다.

    "…그렇게 방법이 없나요?"

    "맨손으로 사자 한 마리 잡아보실래요?"

    "아뇨."

    "아니, 사자는 어떻게 해볼 수도 있을 듯싶어요. 코끼리 한 마리만 잡아와 보세요."

    "사람이면 못하죠."

    "그런데 왜 우리보고는 하라고 해요?"

    "…이지혁 씨는 하니까. 같은 능력자시잖아요."

    "같은 능력자?"

    "죄송합니다."

    최정훈은 진심을 담아 서아영에게 사과했다.

    "그, 그렇다고 손 놓고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시늉이라도 해야지."

    아니, 시늉을 하면 안 되지.

    그래도 뭐 어떻게 잡아보겠다는 의지라도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일반인인 최정훈으로서는 그들 간의 전력 차를 정확히 알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나름 능력자와 몬스터에 대한 개념이 잡혀 있다고는 하나 최상위의 파워 밸런스를 그가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아주 손도 못 댈 정도인가?'

    그래도 다들 뭉쳐서 들이대다 보면 어떻게든 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미국이, 프랑스가 전력을 다했음에도 손톱만 한 상처 하나도 입히지 못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지혁에게 따로 단련도 받은 사람들이니까.

    그래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럼 지금 이 지구에서 저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이지혁 씨 한 명이라는 이야긴가?'

    유일한 한 명과 여럿 중 하나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에게도.

    이지혁에게도.

    "일단 그래도 어떻게……."

    그 순간, 이지혁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으아아아아!"

    "응?"

    촉수를 마구 쳐내던 이지혁이 끝도 없이 밀려오는 촉수 앞에 당황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아!"

    이지혁의 눈앞에서 수백 개의 촉수들이 마구 꿈틀대고 있었다. 멘탈에 상처를 입은 이지혁이 고개를 돌려 눈앞을 외면했다.

    "징그러어어어어!"

    "……."

    최정훈은 작금의 상황을 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했다.

    뭔가 보고 있으면 본인은 상당히 괴로울 것 같긴 한데… 뭐지, 이 유쾌함은?

    여기 무척이나 심각한 상황이란 말이다!

    최정훈이 터지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도, 도와야지요."

    서아영이 한숨을 쉬며 앞으로 나섰다.

    "네. 백지장도 맞들면 나으니까요."

    "그렇죠!"

    "근데 어른이 종이 들고 가는데 애가 맞들겠다고 같이 잡으면 종이만 찢어지죠."

    "……."

    "찢어지든 말든 일단은 뭐 돕긴 도와야죠."

    아, 이 사람이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언제나 자신감에 넘쳐서 이지혁의 죽빵을 날려 버리겠다고 소리치던 서아영이 어쩌다가 이리되었는가.

    최정훈은 문득 예전의 그 서아영이 그리워졌다.

    "가요!"

    서아영이 스핏 파이어와 루드라를 이끌고 앞으로 달려 나가려던 찰나, 사태를 주시하던 아펠드리체가 손을 들어 올렸다.

    "잠시."

    "네?"

    아펠드리체는 말없이 이지혁 쪽을 주시했다.

    이지혁의 우수가 쭉 뻗어지더니, 허공에서 검은 마법진이 생겨났다.

    "소환?"

    검은 마법진의 한가운데서 작은 생물이 재빠르게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지혁의 손에서 뻗어 나간 촉수가 작은 생물을 감싼다.

    "오식이?"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것을 확인한 최정훈이 반색했다.

    커어어어엉!

    단숨에 부풀어 오르며 거대한 하울링을 터뜨린 오식이가 앞으로 뛰쳐나간다.

    "가라! 오식아!"

    백만 볼…….

    아니! 물어뜯기!

    * * *

    오식이가 터질 듯한 근육을 더욱 부풀리며 앞으로 뛰쳐나간다.

    이지혁은 밀려오는 촉수들을 실드와 촉수로 막아내며 오식이를 응원했다.

    "죽여 버려!"

    그러면서도 뒤를 흘겨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쓸모없는 것들!"

    적당히 레벨 5 게이트에 맞춰서 레벨업을 시켜놨더니, 갑자기 이런 과격한 것들이 튀어나와 다시금 쓸모가 없어졌다.

    이럴 바에야 아예 확실하게 레벨업을 시켜서 더더욱 과격한 것들이 튀어나와도 나 없이도 처리할 수 있을 만큼 단련을 시켜야지!

    그 긴박한 순간에도 의지를 확실히 다진 이지혁의 눈빛에 서아영은 불현듯 불안함을 느꼈다.

    "뭐, 뭐지?"

    "예?"

    "아니에요, 아무것도."

    서아영이 어깨를 감싸고 떠는 동안에도 오식이는 광포하게 질주하여 말미잘 몬스터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촤아악!

    말미잘의 짧은 촉수가 열리더니, 시커먼 액체가 오식이에게로 뿜어졌다.

    허공에서 몸을 돌려 액체를 피해내는 오식이.

    산성액이 스쳐 지나간 털이 그슬리며 매캐한 연기를 뿜어냈다.

    크륵!

    오식이가 눈에서 흉성을 줄기줄기 뿜어내며 말미잘의 육체에 주먹을 때려 박았다.

    터엉!

    가죽 북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말미잘의 동체가 뒤로 훅 밀려난다.

    "잘한다!"

    "나이스!"

    응원단이 되어버린 NDF가 다 함께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최정훈은 그 광경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게 아닌데……."

    치어리더 하라고 데려온 거 아니란 말이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정해민이 뚱한 얼굴로 최정훈을 바라보았다.

    "이럴 거면 이 사람들은 뭐하러 데려왔어요? 괜히 힘만 더 들게?"

    "…죄송합니다."

    파견 인원을 정한 사람이 본인인지라 변명의 여지조차 없었다.

    '나 요즘 자꾸 죄송하다 소리만 하는 거 같은데?'

    밖에서 목에 깁스하고 다니면 뭐하나.

    집에서 찬밥인데.

    뭔가 가슴에서 서글픈 무언가가 요동치는 느낌을 받으며 최정훈은 오식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커어엉!

    오식이가 다시금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지만, 말미잘은 그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연체동물처럼 몸을 뒤틀며 오식이의 공격을 피해냈다.

    오식이가 이를 으득으득 갈며 다시금 공격을 이어 나갔다.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눈이 떨어지지."

    확실히 시선을 조금 끈 것만으로도 영활하게 움직이던 촉수들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이지혁이 마나를 머금은 손을 뻗어 자신에게 덮쳐드는 촉수들을 모조리 잘라냈다.

    '원래는 이걸 저놈들에게 시킬 예정이었는데 말이야.'

    이지혁이 저 뒤에서 응원으로 용기를 주고 있는 NDF들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오거 하나만도 못한 것들.

    쓸모가 없어! 쓸모가!

    누가 보면 버프라도 걸고 있는 줄 알겠네, 진…….

    "어?"

    이지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지금 뭔가 떠오른 것도 같은데?

    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니까 뭐…….

    이지혁이 다시금 재생되기 시작한 촉수들을 보며 몸을 뒤로 훌쩍 날렸다.

    "단타부터."

    우웅.

    이지혁의 앞에 사람만 한 마법진이 몇 개 생겨나더니, 검은 빔을 뿜어냈다.

    과아아아앙!

    레이저처럼 날아간 빔이 말미잘의 육체를 꿰뚫는다.

    말미잘이 요동을 치며 체액을 사방으로 뿌려 댔다.

    그로테스크한데?

    저런 타입은 영화에서도 못 쓰겠다. 매우, 굉장히 끔찍한 광경이 나올 거야. 여자들은 못 보는 영화가 되겠는걸?

    몸을 비트는 말미잘에게 달려든 오식이가 커다란 입을 쫘악 벌리고는 사람 몸통보다 훨씬 굵은 중앙 촉수들을 말 그대로 물어뜯어 버린다.

    뚜둑! 뚜둑!

    두어 개의 촉수가 끊겨 나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독립적으로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대던 촉수가 산성액을 좌우로 뿜어 대다가 얌전해진다.

    "…진짜 징그럽네."

    이지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아까 얻어맞은 것 때문에 속이 미식거리는데, 저런 광경까지 봐야 하다니!

    베라프에 저런 애들이 없어서 다행이다.

    있었으면 부하고 뭐고 일격에 먼지로 만들어 버렸을 거야.

    말미잘이 크게 요동을 치더니, 촉수들이 고슴도치처럼 주변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크르르륵!

    오식이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촉수를 피하려 했지만, 수많은 촉수들을 미처 다 피해내지는 못하고 결국 복부를 꿰뚫리고 말았다.

    커엉!

    고통스러운 오식이의 비명을 들으며 이지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소모품이어야 하는데…….'

    정이 들었어.

    이러다가는 못 써먹겠는걸?

    인간도 아닌 몬스터에게 정이 들다니, 베라프에서의 이지혁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정이라…….'

    뇌가 고정되어 있다는 말은 어찌 보자면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거니까, 나름 인간성을 거세당한 거라고 말 할 수 있으려나?

    아니, 그래도 나름 감정적 교류는 이루어졌는데?

    아무래도 지구로 돌아오고 나서부터 이지혁의 마음도 약해진 모양이었다.

    하기야 베라프에서의 이지혁이라면 오식이 이전에 아펠드리체도 결코 저대로 내버려 두지는 않았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속시키거나 죽여 버렸을 것이다.

    "흐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계속 변하는 게 또 사람이다.

    그리 따져 보면 이 변화가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일천 년 동안 변화를 제대로 겪지 못하고 살아왔더니, 지금 가슴에서 일어나는 이 감정이 미묘하게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지혁의 촉수가 쭈욱 뻗어져 나가 오식이의 등을 쑤시고 들어갔다.

    크륵!

    등 뒤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이를 악물던 오식이가 이내 육체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순수한 흑마력에 환호했다.

    커어어어엉!

    오른 손톱으로 배를 파고든 촉수를 단숨에 잘라 뽑아낸다. 뻥 뚫린 구멍이 부글부글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다시 원래의 모습을 회복했다.

    "어디 보자……."

    이지혁이 눈을 감으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허공에 거대한 마법진이 만들어진다.

    고오오오!

    이지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며 마법진이 활성화되었다.

    저 말미잘 같은 것에게 가장 효율적인 공격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바다 생물이니까…….

    "불이겠지?"

    이지혁의 손짓과 함께 마법진이 빛을 발하더니, 아주 작고 음울한 검은 불씨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검은 불씨는 마나를 빨아들이며 더더욱 커지기 시작하더니, 작은 공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사람처럼 커졌다. 그러고는 이내 집채만 한 검은 불길이 허공에서 타올랐다.

    "아……."

    서아영은 그 광경을 보며 몸을 떨었다.

    그녀 역시 화염 계열 능력자.

    불꽃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서아영이 보기에도 저기 보이는 불꽃은 그녀가 다루는 불꽃과는 그 근원부터 달라 보였다.

    그녀의 불꽃이 세상을 태우는 태양이라면, 저 불꽃은 세상을 집어삼키는 악마의 혓바닥 같았다.

    음울하고…….

    음습하며…….

    또한 잔혹하다.

    "가라!"

    이지혁의 외침과 함께 마법진이 진동하더니, 불꽃을 뿜어냈다.

    화르르륵!

    집채만 한 검은 화염이 타오르며 말미잘에게로 날아들었다.

    "오식아!"

    발밑에 검은 게이트가 생겨나자 오식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던졌다.

    고오오!

    촉수를 휘두르며 발악하던 말미잘의 육체를 검은 화염이 덮쳐들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

    불꽃은 마치 작렬하는 천신의 창처럼 허공으로 거대한 화염의 기둥을 만들어내며 타올랐다.

    검은 용이 하늘로 승천하듯, 검은 토네이도가 맹렬하게 회전하듯…….

    구름을 뚫고 세상 끝까지 솟아오른 거대한 화염의 기둥 앞에 NDF들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흠……."

    이지혁 역시 자신이 만들어낸 광경이 흡족한지 미소를 지었다.

    "좋은데?"

    마정석을 흡수하고부터 마나가 어느 정도는 채워진 느낌이다. 지금 한 번의 마법으로 많은 부분이 소실되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은 마나가 쭉 빠진 탈력감보다는 그가 만들어낸 광경이 주는 정신적 만족감이 더 컸다.

    화염이 천천히 사그라들고…….

    이지혁은 모습을 드러낸 말미잘을 보며 혀를 찼다.

    그곳에는 검고 붉은 고깃덩어리 같은 것이 그 끈질긴 생명을 부여잡으며 꿈틀대고 있었다.

    "그러게 왜 이 동네까지 와서 말이야."

    지구는 내 구역이라고 친구들한테 못 들었니?

    아, 친구 없구나?

    이지혁은 혀를 끌끌, 차며 말미잘의 잔해로 다가갔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칭찬은 해주지."

    그걸 맞고도 아직 살아 있다는 것만큼은 정말 칭찬할 만한 일이었다.

    생명력 하나는 인정해 줄 만하다, 생명력 하나는.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게이트가 항상 동급의 괴물들을 소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말미잘은 좀비 드래곤이나 세티에 비한다면 너무 급이 떨어졌다.

    그 둘이었다면 이 한 방을 맞고 저리 완벽하게 박살이 나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좀비 드래곤이라면 버텼을 것이고, 세티라면 피해냈겠지.

    이지혁이 게이트를 일일이 확인한 것도 아니니 게이트의 크기가 달랐을 수도 있고, 게이트의 크기가 같다고 해도 거기서 항상 동급의 몬스터가 넘어온다고 할 수도 없는 부분이겠지만.

    "그래도 뭔가 찝찝한데?"

    이지혁이 겉이 숯처럼 변해 버린 말미잘의 동체에 촉수를 박아 넣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생명체다.

    그런데 마나는 있을까?

    "드레인."

    이지혁의 촉수가 꿈틀대며 말미잘의 육체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응?

    이거 뭐지?

    이지혁이 익숙한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그냥 마나 아닌가?

    그것도 아주 익숙한 향기가 나는 것 같은데?

    물론 뭐…….

    이지혁이 알지 못하는 생명체라도, 이지혁이 알지 못하는 차원이라고 하더라도 그곳이 마나에 기반한 세상이라면 비슷한 느낌이 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왜 이리 찝찝하지?"

    상식이 아니라 육감이 꿈틀대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이지혁이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와중에도 촉수는 좋다며 말미잘을 꿀꺽꿀꺽 빨아들이고 있었다.

    결국 껍데기만 남기고 모든 것을 빨아들인 촉수가 이지혁에게로 다시 흡수되었다.

    "끝."

    이걸로 상황 정리는 끝이다.

    이지혁이 배를 툭툭, 두드리고는 몸을 돌렸다.

    이번은 왠지 좀 거저 먹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처맞기도 좀 처맞았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최근에 고생을 좀 하긴 했던 모양이다.

    "사람이 꽁으로 먹는 날도 있어야지!"

    이지혁의 혼잣말에 최정훈이 한숨을 쉬었다.

    저 인간 참…….

    프랑스의 전력이 총동원되어도 막지 못한 몬스터를 간단히 처리하고는 꽁으로 먹었다고 해버리면 프랑스는 뭐가 되는가.

    적당히 이 상황을 포장할 외교 수사를 찾고 있는 최정훈이지만, 자비에 중장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비에가 이지혁에게로 뛰어가 다시금 경례를 붙였다.

    이지혁 역시 살짝 굳은 얼굴로 그 인사를 받았다.

    "그대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따라 뛰어 제때 도착한 최정훈이 헐떡거리며 통역을 했다.

    "말로만요?"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프랑스에서 원할 거라고는 하나밖에 없지."

    이지혁의 말을 통역해 들은 자비에가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끝내주는 레스토랑으로 안내해 드리죠."

    "말이 통한다니까."

    이지혁이 자비에의 손을 맞잡으며 마주 웃었다.

    "저도 껴도 됩니까?"

    "비쌉니다."

    "……."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얼굴에서 나온 자비에의 농담에 최정훈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구경은 시켜줄 수 있지. 식전 빵은 무제한으로 나오니까."

    "…감사합니다."

    확실히 이지혁이랑 잘 맞는 인간이 정상적일 리가 없다는, 지극히 타당한 상식이 떠오르는 최정훈이었다.

    * * *

    "다녀올게……."

    김다현은 살짝 질린 얼굴로 그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출근길에 말없이 현관까지 따라온 김다솜은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김다현을 바라보았다.

    그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시선에 김다현이 움찔하여 말했다.

    "언제 오는지 나도 모른다니까."

    프랑스 사태는 해결이 되었지만, 이지혁은 바로 복귀하지 않고 프랑스에 하루 더 머물렀다.

    딱히 이상할 것도 없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어제 퇴근하여 집에 들어왔을 때 휴대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동생을 보며 김다현은 파란을 직감했다.

    그 휴대폰에 떠 있는 것이 지도이며, 빨간 점이 박혀 있는 곳이 프랑스인 것 같다는 사실이 김다현을 괴롭게 만들었다.

    '넌 눈도 없냐?'

    이 시각, 프랑스에 남아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만 생각해 보면 저 아무래도 불법적인 느낌이 팍팍 풍기는 위치 추적 어플이 쫓고 있는 대상이 누군지는 너무도 명확했다.

    왜!

    왜 하필 이지혁인가!

    저 얼굴로! 저 몸매로! 저 성격으로!

    …아, 성격은 빼고.

    여하튼!

    성격이 조금, 아니, 객관적으로 성격은 좀 많이 문제기는 하지만, 저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얼굴을 감안한다면 성격 따위야 문제도 아니지 않은가.

    내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아주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이지혁이라니.

    그 이지혁이라니!

    김다현은 김다솜의 멍한 동공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무섭다.

    내 동생이지만 너무 무서워!

    "어, 언제 올지 진짜 모른다니까."

    "……."

    말을 하란 말이다, 말을!

    말을 안 하고 그러고만 있으면 내가 뭘 어떻게 알고 반응하겠어.

    요구 사항이 있으면 말로 하란 말이다!

    다솜아, 너 예전에는 말도 곧잘 했잖니.

    애가 갈수록 사교성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빠진 김다현이 한숨을 쉬며 김다솜을 바라보았다.

    "언제 오는지 한 번 알아보고 전화 줄게."

    끄덕.

    김다솜이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반응이 왔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반응이 이지혁에 대한 것이다 보니 순수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왜 이지혁인가, 왜! 하필 왜!

    이제 다솜이도 나이가 있으니 남자 친구를 사귄다고 해도 내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다른 놈이라면 으슥한 곳에 끌고 가 손가락 하나라도 다솜이를 건드리다면 몬스터 게이트가 열리는 곳에다가 묶어놓고 꿀까지 발라놓겠다고 협박이라도 할 수 있는데!

    왜 하필 이지혁이란 말인가, 왜!

    대한민국을 통틀어 그가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채 열을 넘지 않을 것이건만, 하필이면 그 열 명 중의 하나… 아니, 독보적인 원탑을…….

    "더럽게 꼬여 가지고."

    왜 하필 그 이지혁의 동생이 그 가증스러운 이예원이고, 그 이예원의 괴롭힘에서 김다솜을 구해준 사람이 이지혁이란 말인가.

    막말로 그거, 그냥 자기 가족이 벌인 사고를 수습한 것뿐인데, 얘는 그 장면 어디에서 이리 홀라당 빠져서…….

    대체 이지혁의 어느 부분이 좋다는 건가!

    얼굴?

    이지혁이 어디 가서 못생겼다 소리 들을 얼굴은 아니겠지만, 솔직히 봐줄 만하다고 하기에는 주변인들의 레벨이 너무 높다.

    우선 최정훈만 하더라도 연예인을 해도 상급일 외모인데다가 자신 역시 대한민국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잘생겼다.

    꼭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하나같이 모델이라도 모아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런 와중에 평범하게 생긴 이지혁이 떨어졌으니…….

    외모든 뭐든 모든 것은 상대적인 법이다.

    평범하게 공부하는 애를 서울대에 떨어뜨려 버리면 제일 멍청한 놈이 되듯이, 평범하게 생긴 애를 NDF에 떨어뜨려 버리면 자동으로 오징어가 된다.

    그래. 뭐, 외모야 그렇다 치자.

    남자는 얼굴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김다현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성격은 더 문제잖아!

    그 개차반을!

    사람이 그래도 사람 같기는 해야지! 그 지랄 맞은 성격을 보고 어떻게 사람이 좋아질 수가 있냐고!

    김다현은 눈두덩이를 주물렀다.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쌓인다. 위가 콕콕 쑤시는 느낌이었다.

    "꼭. 전화 줘."

    김다솜의 낮은 목소리에 김다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에어컨 틀었나?"

    이 겨울에 뭔 놈의 에어컨인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밀려오는 한기에 일단 의심부터 해보는 김다현이었다.

    요즘 자면서도 추워서 이불을 몇 겹이나 덮고 잔다. 그 원인을 보며 김다현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근데……."

    "……."

    "다른 좋은 남자도 많잖아."

    "……."

    왜 대답이 없니, 다솜아.

    오빠가 이리 말을 하는데 대답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김다솜은 그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불쾌함을 가득 담아 그녀의 오라비를 바라보았을 뿐이고, 김다솜의 시선이 불쾌함을 넘어서 경멸로 바뀌려 드는 순간, 김다현은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확인하는 대로 전화할게."

    "응."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금 상쾌해졌다.

    가정 파탄은 일단 막았다.

    김다솜의 배웅 아닌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 김다현은 멍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쨍쨍 내리쬐는 태양을 바라보며 김다현이 씹어뱉듯 말했다.

    "날씨 한 번 더럽게 좋네."

    눈물 나게 말이야.

    * * *

    프랑스에서 거나하게 식사를 대접 받고 최고급 스위트룸에서 하루를 잘 보낸 이지혁이 NDF로 돌아오자마자 한 일은 당연하게도 컴퓨터를 켜는 일이었다.

    최정훈이 말을 잘해줘서 엄마한테 외박했다고 욕을 먹을 일도 없었다.

    덕분에 지금 이지혁은 기분이 좋았다.

    프랑스 최고급 호텔의 장식을 보며 싸구려 운운하던 저 망할 도마뱀 년만 없었어도 기분이 열 배는 더 나았을 것이라는 점만 뺴면 말이다!

    옆자리에서 나란히 컴퓨터를 부팅하고 있던 아펠드리체가 이지혁의 시선을 느끼고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왜 그러세요?"

    "…끙."

    "또 그 이야기인가요? 제가 말했잖아요. 금이라고 해도 그런 식으로 쓰면 재료를 낭비하는 거라고요. 당신도 제 거처를 보았으니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최소한의 심미안은 갖출 수 있었을 텐데요?"

    그래, 너희 집 아주 휘황찬란했지.

    근데 그거, 니가 했냐?

    드워프들 뼛골이 바스라지는 걸 내가 봤는데!

    지 손으로는 하지도 못하고 불평만 늘어놓던 게… 뭐?

    심미안?

    눈알을 확 뽑아버릴라.

    오죽하면 드워프 족장이 이지혁을 붙들고 눈물의 하소연을 했겠는가.

    물론 그 하소연은 고스란히 아펠드리체에게 들어갔고, 드워프 족장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응?

    내가 찔렀냐고?

    천만에. 그저 그 양반이 분위기를 못 읽은 거였지.

    나는 그때도 이미 특급 감시 대상이었단 말이다. 24시간 CCTV와 도청기가 따라다니는 수준이었지. 그런데 내 주변에서 아펠드리체 험담을 했으니, 뭐.

    생각해 보면 저 도마뱀도 굉장히 지독하네?

    이지혁의 기색을 읽었는지 아펠드리체가 괜히 모니터를 바라보며 딴청을 피웠다.

    "장식은 중요한 거예요. 최소한 보고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야죠. 보고 기분이 나쁜 장식은 장식으로서 가치가 없죠."

    "내가 너를 보면 기분이 나쁜데, 어떻게 좀 내 정신건강을 위해 꺼져 주지 않을래?"

    "절 보고 기분 나쁘다니, 이상한 말이네요. 지혁 씨에게 맞춰서 나름 신경을 쓴 외몬데……."

    "안이 도마뱀이잖아."

    "그런 부분은 서로 익스큐즈하자구요. 저도 지혁 씨의 얼굴을 보고 있잖아요."

    "내 얼굴이 왜!"

    우리 엄마가 낳아준 내 얼굴이 뭐가 어때서!

    내가 살면서 한 번도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요즘 여기서 자괴감이 쩐다고! 진짜!

    니 원래 얼굴은 생각 안 하냐?

    피부는 비늘로 뒤덮여서 이빨은 삐죽 튀어나와 가지고는!

    "하, 못생긴 도마뱀에게 이런 식의 소리를 듣다니."

    "어머? 저희 일족에서는 제가 미인 중의 미인이라 꼽힌답니다. 실례예요."

    "그러시겠지."

    이지혁은 코웃음을 쳤다.

    망할 도마뱀들이 니가 이쁘니, 내가 이쁘니 하면 뭐하겠는가.

    어차피 다 같은 도마뱀인데.

    이지혁이 게임을 켜면서 투닥거리자 최정훈이 슬그머니 다가와 입을 열었다.

    "지혁 씨."

    "네?"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네?"

    이지혁이 가만히 최정훈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게임 시작하기 전이니 잠깐 시간 내는 것 정도야 별일도 아니었다. 특히나 이 남자에게라면.

    "여기서 말하면 안 되는 거죠?"

    "부장님과 셋이 말하고 싶습니다."

    "뭐, 그러시죠."

    그러자 저 구석에서 귀를 쫑긋쫑긋하고 있던 정해민이 쪼르르 달려와 이지혁의 옆에 섰다.

    "…넌 귀가 막혔냐?"

    "헤헤, 나도, 나도."

    "셋이라는 말이 안 들리나?"

    정해민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했다.

    "셋이 넷 된다고 별일 있는 거 아니잖아."

    "세 대 맞을 거 네 대 처맞으면 말이 달라질 텐데?"

    "여자를 때릴 거야? 야만인!"

    이지혁이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여자고 뭐고 닥치는 대로 패고 살아온 게 천 년이다."

    "그 농담, 재미없어."

    농담?

    농담인지 아닌지 한 번 겪어볼래?

    이지혁이 은근한 눈으로 바라보자 정해민이 볼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왜 그래!

    이노무 꼬맹이가 미쳤나!

    이지혁이 몸을 부르르 떨자 최정훈이 빙긋 웃으며 중재를 했다.

    "정해민 씨까지는 괜찮습니다."

    권력 구조가 이리 만들어지는 거야, 이 사람아!

    그걸 괜찮다고 하면 안 되지!

    "거 봐."

    "에휴……."

    이지혁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최정훈이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저번에도 깽판을 친 그 회의실이었다.

    자리에 사람들이 앉자 최정훈이 입을 열었다.

    "네 사람이 다 왔네요."

    "다섯이지."

    "네?"

    이지혁이 가만히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자 최정훈이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가윤 씨까지 모두 다섯이네요."

    "넵."

    최정훈이 거두절미하고 용건을 꺼냈다.

    "이지혁 씨."

    "말씀하시죠."

    "미국에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이지혁이 뚱한 표정이 되었다.

    "이건 뭐, 심심하면 요청이네. 안 한다고 해요."

    "하하하……."

    "버릇 나빠져."

    아니, 일단 뭔 말인지는 들어보고 말을 해라!

    뭘 듣지도 않고 안 한대!

    "보나마나 뭐 몬스터나 때려잡아 달라는 거겠죠. 저번에 받은 것들도 충분한데, 굳이 뭘 더 챙기겠다고 가서 개고생을 할 필요가 없죠."

    "아뇨, 이지혁 씨."

    최정훈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라면 제가 이리 자리를 만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음?"

    "솔직히 이지혁 씨도 요즘 좀 버거움을 느끼고 계시지 않습니까?"

    "흐음……."

    이지혁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미국의 부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들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었다.

    자꾸 이러다가는 전 세계에 출현하는 모든 몬스터를 이지혁이 막아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확실히 좀……."

    그 순간, 최정훈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빙긋 웃었다.

    "그래서 이번 미국의 제안이 꽤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네?"

    "미국에서 자국 능력자들에 대한 훈련을 이지혁 씨에게 요청해 왔습니다."

    "…네?"

    이지혁이 멍하게 되물었다.

    * * *

    "훈련입니까?"

    크리스토퍼는 시가에 불을 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짙은 연기가 그의 입안에서 맴돌다가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래."

    "훈련이라니요? 저희가 그들에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대놓고 불쾌함을 표하는 부하를 보면서도 크리스토퍼는 나무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사실 그도 이게 매우 굴욕적인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까.

    능력자 분야에서도 세계 최강국이라는 자부심이 있던 그들에게 타국의 능력자에게 훈련을 부탁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현실이 문제지, 현실이."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자존심 같은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자존심을 버리려는 게 아니야! 되레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는 거네."

    "자존심을 지킨다고 하셨습니까?"

    크리스토퍼는 신경질적으로 시가의 재를 재떨이에 떨어냈다. 그러고는 다시 시가를 입에 물고 빨아당겼다. 시가 끝이 붉게 타오르며 선명한 연기를 만들어냈다.

    "이봐."

    "네."

    "어느 쪽이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인가를 생각해 보란 말이야."

    대답을 듣지도 않고 크리스토퍼가 말을 이었다.

    "우리의 능력자들을 이지혁에게 훈련 받게 하는 쪽이 자존심이 상하는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몬스터가 출현할 때마다 이지혁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해결 좀 해달라고 대가리를 처박고 비는 쪽이 자존심이 상하는 건가?"

    "명백히 후자입니다."

    "그렇지, 그게 문제지."

    이미 세티가 출현했다.

    앞으로도 그런 몬스터가 출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나.

    그런데 앞으로 그런 몬스터들이 출현할 때마다 해결 방법이 이지혁에게 부탁하는 것밖에 없다면, 그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인가.

    "쯧."

    크리스토퍼라고 그런 일을 부탁하고 싶던 것이 아니다. 설령 성사가 된다고 해도 각종 관련 부서의 협조를 얻어내고, 윗선에다 허락을 받아내는 등 수많은 일들이 남아 있다.

    그에게는 이 일이 그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라도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훈련을 받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능력자의 능력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계발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거나 보게."

    크리스토퍼가 돌린 모니터에 매우 잘생긴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스핏 파이어 윤혁규.

    그가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를 아주 박살 내놓고 있는 장면이었다.

    "레벨 4네."

    "…진짜입니까?"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전에는 레벨 4 게이트에 상위급 능력자를 자주 투입했다고 하더군. 저 스핏 파이어도 그런 식으로 몇 번이나 투입되던 것을 확인했네. 그런데 특정 시점 이후부터는 저들 하나하나가 레벨 4 정도는 홀로 감당하더군."

    "으으음!"

    "그게 이지혁의 출현 시점과 겹친다는 게 단순히 우연일까?"

    "아니겠죠."

    "그래, 아니겠지. 그래서 지금 우리는 자존심 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속이 편하지는 않군요."

    "익숙해져야 할 거야."

    크리스토퍼는 시가를 꽉 움켜잡았다.

    익숙해져야 한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날 테니까.

    "그건 그렇고, 알파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들어오는 것이 없나?"

    "워낙 종적이 잡히지 않다 보니……."

    "흐음……."

    이지혁이 바닥에 묻혀 있는 핵폭탄이라면, 알파는 어디엔가 굴러다니고 있는 고폭탄 같은 존재였다.

    터졌을 때의 위험도는 이지혁이 높을지 모르겠지만, 알파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는 문제가 있었다.

    "훈련으로 인원이 빠지기 시작하면 감시 문제도 있을 텐데 말이야."

    "그렇습니다."

    "일단은 계속 종적을 찾아보라고 해."

    "예."

    크리스토퍼는 모니터 안의 화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예측이 안 되는군, 예측이."

    이지혁도, 알파도…….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 * *

    "자국 능력자에 대한 훈련요?"

    "그렇습니다."

    "걔들 자존심이 있을 텐데?"

    최정훈도 그 부분이 무척이나 의외였다.

    세계 최강국의 체면을 내려놓고 이지혁에게 교육을 부탁했다는 것.

    물론 상황이 이해 안 가는 바는 아니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번에 출현한 세티 같은 몬스터가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흠……."

    서아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전 반대예요."

    "음?"

    최정훈이 서아영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입니까?"

    "따져 보면, 그거… 타국의 전력을 강하게 해주는 것 아닌가요? 굳이 그런 일을 해서 좋을 게 없잖아요. 게다가 미국이라고요."

    틀린 말은 아니지.

    최정훈 역시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타국에 이득을 안겨주는 일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상황이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 부분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 간다면 이지혁 씨에게 너무 막대한 부담이 지워진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서아영이 가만히 고개를 돌려 이지혁을 바라보았다.

    관심도 없다는 듯 책상에 다리를 올린 채 의자에 한껏 기대 휴대폰 게임을 하며 낄낄대고 있는 이지혁의 모습과 막대한 부담이라는 말이 뒤섞이지 못하고 있었다.

    "부담?"

    "…예."

    사람이 이리 말을 하면 힘든 척이라도 해줘야 힘이 실릴 것 아니냐고, 이 인간아!

    최정훈의 속이 타올랐지만, 애초에 그런 걸 신경 쓰면 이지혁일 리가 없다.

    도플갱어겠지.

    "부담이… 흐음, 부담이 있어 보이는… 흐음……."

    최정훈의 이마에 땀이 돋아났다.

    "쉬시는 거니까요. 사실 지금도 모든 사태를 해결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야 농땡이 부리니까."

    "크흠……."

    자꾸 사실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있는 사실 그대로 말하지 말란 말이야!

    예로부터 진실을 말하는 자들은 단명했다는 것도 모르는 건가!

    "그러다가 사약 처먹지."

    "네?"

    "아닙니다."

    최정훈은 가볍게 손을 내저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아무래도 이지혁 씨가 모든 곳을 다 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청소부도 아니고, 용병도 아닙니다. 요청이 들어온다고 모든 곳을 다 가준다면 싸구려가 될 뿐이죠."

    "우리?"

    "…이지혁 씨요."

    "응."

    그거 하나 그냥 안 넘어가 주나?

    쪼잔한 인간.

    "그래도 나는 도움이 되고 있는데?"

    정해민이 반색하며 이지혁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그래도 옮겨주고 데려오고 하잖아!"

    이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해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은 셔틀이다."

    이지혁의 쓰담쓰담을 받으며 정해민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기분이 미묘한데?"

    인정인 듯 인정 아닌, 인정 같은 기분이다.

    "그래도 뭐, 저 응원단들보다야 나으니까."

    서아영이 정해민의 말에 으르렁댔다.

    "뭐, 이 꼬맹이가?"

    "너, 언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지혁아! 쟤 좀 봐!"

    이지혁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둘 다 처날려 버리기 전에 조용하지?"

    둘은 두말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이지혁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놓고는 자세를 바로 했다.

    "미국 놈들을 훈련시켜 주는 게 어떠냐, 이 말이에요?"

    "미국뿐 아닙니다. 요청하는 곳이 있다면 상황을 봐서 도와주고 얻을 것이 많습니다. 게다가 이지혁 씨의 시간과 노력이 절약된다는 커다란 장점도 있으니까요."

    이지혁이 코를 매만지며 눈을 감았다.

    물론 장기적으로 본다면 매우 도움이 될 만한 일이겠지만, 먼 훗날의 이득을 위해서 지금 당장 고생을 해야 한다는 말은 언제나 옳고, 언제나 싫은 말이다.

    그냥 지금 편하고 나중에 고생하면 안 될까?

    "별로 안 하고 싶은데……."

    "이지혁 씨에게 도움이 됩니다! 도움이 되는 일인데, 왜 안 하려고 하십니까!"

    이지혁이 뚱한 얼굴로 최정훈을 바라보았다.

    "운동하고, 공부하고, 음식도 잘 챙겨 먹고, 소금기는 피하시고, 그 자양강장제 좀 적당히 드셔야죠?"

    "…네?"

    "그게 다 최정훈 씨한테 도움이 되는 일인데, 왜 안 해요?"

    "……."

    아니, 뭐 그거야…….

    그…….

    어? 진짜 할 말이 없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사람이 어떻게 옳은 일만 하고 살아!"

    "으으……."

    논리에서 밀린 최정훈이 몸을 떨었다.

    저 이지혁에게 밀리다니! 그것도 논리로!

    뭔가 굴욕적이었다.

    "그, 그래도……."

    이지혁이 혀를 쯧쯧, 차더니 턱가를 손으로 주물렀다.

    "야!"

    이지혁이 밖으로 소리를 지르자 낮은 음성이 문을 넘어 들려왔다.

    "왜 그러세요?"

    "사람이 부르면 들어와서 말해야지!"

    "한 타 중이에요."

    "그놈의 게임."

    하, 엄마…….

    내가 잘못했어.

    우리 엄마가 날 보는 기분이 이랬겠구나.

    쟤는 그거 느껴보라고 일부러 저러고 있는 건가?

    "게이트가 점점 커지나?"

    "그럴 확률이 높아요. 균열은 벌어질 테니까요."

    "흐음……."

    대화 내용을 고민하는 이지혁과는 별개로 방 안의 다른 사람들은 다른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저 목소리, 왜 이리 똑똑히 들리지?

    문밖에서 들리는 음성이면 좀 작거나 아주 크거나 뭔가 한 다리를 거쳐서 들어오는 탁성이 섞이거나 해줘야 할 텐데,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또박또박 들리는 것이 무척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것도 능력의 일종인가?'

    마법을 모르는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론은 간단하네. 몬스터들은 앞으로도 더 날뛸 것이고.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잠잘 틈도 없이 세계 일주를 하며 길바닥에서 살게 된다는 거잖아."

    "정확합니다."

    "그러니 다른 능력자 놈들을 강화시켜서 어떻게든 그걸 해결해 보자?"

    "아주 강한 급이라면 몰라도 나서기 귀찮은 급 정도는 어떻게 알아서 해결해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능력자가 한둘도 아니고……."

    그걸 언제 다 가르치고 있나.

    아무리 훈련을 시킨다고 해…….

    어?

    아니, 따져 보면 굳이 자신이 고생을 해야 할 이유도 없지 않나?

    순간적으로 뭔가를 떠올린 이지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죠!"

    "오?"

    생각보다 간단히 허락한 이지혁을 보며 최정훈이 반색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럼 미국에 연락을 넣겠습니다."

    "아뇨, 아뇨. 아직은 아니죠."

    "네?"

    "준비가 덜됐잖아요."

    준비? 뭔 준비?

    뭔가 또 싸한 느낌을 받는 최정훈이었다.

    "뭐지?"

    하지만 그 싸한 느낌을 더 강렬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서아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마구 살폈다.

    "이상한 기분이 드는데?"

    이지혁이 그 광경을 보며 낄낄댔다.

    여하튼 능력자 놈들이 육감은 살아 있다니까.

    "서아영 부장님."

    서아영이 이지혁의 말을 듣고는 고양이를 본 새끼 쥐처럼 움츠러들었다.

    "사실 외국 놈들이 중요한 게 아니죠. 당장 내 앞에 있는 사람들부터가 별 도움이 안 되는 게 큰 문제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는 건 의미가 없어! 잘해야지! 세상은 결과라고! 그 나이 먹도록 그걸 모르나!"

    니 나이나, 내 나이나…….

    차마 발끈하지도 못한 서아영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서요?"

    "우리는 피라미드식으로 간다."

    "다단계까지 손을 대면 더 이상 분리수거도 안 돼요, 이지혁 씨."

    "후후후후."

    이지혁이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군."

    "……."

    "아니, 이제 교관이라 부르겠다. 교관, 자네들에게 전 세계의 수많은 능력자들의 레벨을 끌어 올려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다."

    우리?

    아니, 왜 니가 아니고, 우리가!

    "그러려면 자네들의 레벨부터 올려야겠지."

    아…….

    이거였구나.

    서아영은 자신이 느낀 불안함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좌절에 빠졌다.

    "애들 다 모아."

    그 음성은 지옥에서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말이다.

    "낄낄낄낄."

    그리고 저건 마귀의 웃음이겠지.

    서아영이 얼굴을 감쌌다.

    * * *

    "뭐?"

    어제 야간조라 늦게 출근한 김다현은 출근하자마자 떨어진 소집 명령에 정신이 없었다.

    "집합?"

    "전원."

    박성찬의 말에 김다현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왜? 누가 또 사고 쳤나?"

    "모르지……. 이지혁이 집합시켰다는데?"

    "그 개새끼……."

    이지혁이라는 말에 김다현은 망설임도 없이 바로 욕부터 뱉어냈다.

    아이언 박성찬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김다현의 의견에 동의를 했다.

    "또 왜 그런데, 또 왜!"

    "알 수가 있나."

    "하, 진짜 돌아버리겠네."

    김다현은 한숨짓는 박성찬을 보며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그들이 생각한 NDF는 결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처음 최고의 능력자들만을 모아서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고 할 때 얼마나 들떴는가. 그곳에 소속된다는 것은 대한민국 최고의 능력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동시에 다른 모든 능력자들의 위에 서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합류 요청이 왔을 때도 두말없이 바로 수락을 한 건데…….

    "처음부터 개판이었지."

    김다현의 머릿속으로 출근 첫날 보았던 이지혁의 모습이 떠올랐다.

    부르르.

    생각만 해도 부러졌던 콧대가 욱신거리는 느낌이다.

    "흐으……."

    엘리트 능력자들의 집단을 생각하고 왔는데, 막상 와보니 이건 뭐…….

    그 대단하다는 플레임 위치는 얼굴마담이나 하고 있고, 그 유능하다는 최정훈은 이지혁 딸랑이나 하고 있다.

    말이 국토방위 조직이지, 이건 실질적으로는 이지혁의 사조직이나 마찬가지다.

    윗대가리부터 이지혁한테 벌벌 떨고 있는데, 뭐가 제대로 돌아가겠냔 말이다!

    "뒈지겠네."

    박성찬이 너스레를 떨자 김다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단 말이지.

    이지혁이 딱히 자신들에게 큰 피해를 끼친 것은 없다.

    물론 평생 가도 잊지 못할 그 지옥에다가 사람을 던져 넣은 것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원한이 되겠지만, 그 이후로 사람을 괴롭힌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아니, 그 이후로는 뭔가를 부려 먹은 적도 잘 없었다.

    부려 먹는 것도 관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지혁에게 그들은 그냥 지나가는 돌멩이 A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도 뭔가 이지혁에 대한 공포심과 불안함을 떨쳐 내고 있지 못한 자신들이 이상하다는 건 이해하고 있다만…….

    "당해보면 그 말 안 나오지."

    정말 끔찍했다.

    할 수만 있다면 머릿속에서 그 6개월 간의 기억을 도려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지금도 한 번씩 그때의 악몽을 꾸며 잠에서 깬다.

    "끙……."

    이게 뭔 군대 재입대하는 꿈도 아니고, 이러다가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 건 아닌가 걱정될 정도다.

    "그래서 어디로 집합하래?"

    "회의실."

    "…가자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회의실로 향하는 김다현의 어깨를 아이언 박성찬이 따스하게 두드려 주었다.

    * * *

    "…왜 불렀답니까?"

    "글쎄요?"

    "아는 것 없어요, 다현 씨?"

    "제가 뭘 알겠어요."

    "그래도 걔중에는 이지혁 씨랑 제일 친하시니까……."

    "뭐, 이 새꺄?"

    김다현이 눈에 불을 켜자 주변 사람들이 소리쳤다.

    "말이 심하네!"

    "그래. 그건 욕이지."

    무심코 말을 건넨 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했다.

    "죄송해요. 헛소리가 나왔네요."

    "조심 좀 하쇼!"

    김다현이 씩씩대며 자리에 앉았다. 주위 사람들이 김다현을 위로했다.

    말을 꺼낸 이가 씁쓰레하게 물었다.

    "근데 내가 말을 그리 잘못한 겁니까?"

    "이보쇼. 일본군에 강제징집되어 끌려간 한국 사람한테 '너는 일본이랑 친하지?'라고 하면 뭔 소리를 듣겠소?"

    "맞아 죽겠죠……."

    "당신이 한 짓이 그거요."

    "…죄송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통감한 자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제 입이 방정이었네요."

    "조심하쇼."

    박성찬은 주의를 주고 나서 몸을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아침에 이지혁이 출근하는 거 본 사람?"

    "프랑스에서 바로 넘어온 것 같던데요?"

    "기분 어떤 거 같았수?"

    "…글쎄요.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데. 좀 지랄 맞아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럼 평소대로네."

    "그렇네요."

    이지혁이 언제는 기분 좋은 적이 있었던가. 괜히 별일도 아닌데 짜증 내고, 화내고, 승질내고, 게임하다가 열 받아서 소리 질러서 사무실 분위기 개판으로 만들어놓기 일쑤였지.

    망할 놈.

    "그래서 오늘 왜 불렀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 없어?"

    "성찬 씨가 모르는데 그걸 저희가 어떻게 알겠어요."

    "으음……."

    박성찬이 머리를 긁었다.

    같은 NDF라고 하더라도 이지혁을 중심으로 나름 서열 아닌 서열이 나뉘어 있었다.

    이지혁을 중심으로 서아영과 최정훈, 그리고 도가윤과 정해민, 최근에는 아펠드리체까지가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외에 아이언이나 패스 드리프터, 스핏 파이어, 루드라, 거기에 렌 등의 1차 NDF가 있고, 그 이후에 합류한 2차 인원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열을 넘으니 마니 했는데, 이러고 보니 어느새 서른이 넘는 인원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김다현과 박성찬은 그나마 이지혁에게 말은 걸어볼 수 있는 진골 중의 진골로 취급 받았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박성찬이 한숨을 쉬자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도통 이해가 안 가는 게……."

    박성찬이 고개를 들자 한 사내가 못마땅함이 가득한 얼굴로 박성찬과 김다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요?"

    "왜 그 작자의 말을 듣는 겁니까?"

    응?

    박성찬이 눈앞에서 조금 건방진 어투로 말하는 자를 가만히 보았다.

    "음, 누구더라?"

    사내가 발끈하여 소리쳤다.

    "김명운입니다. 레드 락(Red Rock!) 김명운!"

    "아, 그래. 레드 락이지, 레드 락……."

    박성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얘도 강화계였지.

    "그래서 뭐라고?"

    "왜 그 애송이의 말을 따르고 있느냐 묻고 있는 겁니다."

    애송이?

    애송이라…….

    음, 그래. 이지혁을 말하는 건가? 그 애송이가?

    박성찬은 아련한 추억에 잠겼다.

    하기야 처음 봤을 때는 나도 그런 줄 알았지. 그 애송이 놈이 나를 기둥 삼아 세우고 갔을 때도 다음에 보면 혼꾸멍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박성찬이 눈가를 훔치자 김다현이 위로를 했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구나."

    "…잠시만."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박성찬이 심드렁한 눈으로 김명운을 보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이지혁이라는 인간이 강하다는 건 압니다. 압도적이죠. 하지만 그것도 그 괴물 놈들과 함께할 때나, 원거리에 있을 때 이야기 아닙니까? 두엇만 힘을 합친다면 근거리에서는 제압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음…….

    어디선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거 같은데…….

    박성찬이 고개를 돌리자 구석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스핏 파이어 윤혁규가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상황이 아주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 아니, 저건 '나만 당할 순 없지'인가?

    '장단 맞춰줄까?'

    끄덕.

    윤혁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박성찬은 씨익 웃으며 다시금 레드 락 김명운을 바라보았다.

    "음, 뭐, 그래, 그렇지……."

    "그런데 사실 선배들은 너무 쫄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분위기 파악한다고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는데, 솔직히 여기 개판이잖습니까."

    "뭐, 그렇지."

    개판이야, 개판이지.

    "어린 노무 새끼 하나가 힘 좀 있다고 위계 무시하고, 계급 무시하고, 제멋대로 굴고 있는데, 그거 언제까지 보고 있을 셈입니까? 한 번 제끼시죠?"

    "제껴?"

    "네. 지가 뭐라고 우리보고 오라 가라입니까? 이 기회에 버릇 한 번 제대로 고쳐 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자…….

    이건 얼마나 처맞아야 고쳐지려나?

    "그래서 어쩌자고?"

    "오늘 이지혁이 오면 한 번 덮치죠. 그러고는 좀 어루만져 주면 세상 무서운 줄도 알지 않겠습니까?"

    니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그러니까, 니 눈에는 우리가 모두 그런 거 하나 생각 못해서 지금 호구처럼 당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 거구나.

    "음, 뭐……."

    원래 교훈이라는 건 머리보다 몸에 새기는 쪽이 좀 더 잊혀지지 않을 테니까, 뭐.

    박성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저희끼리 해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인가?

    나중에는 날 보면 죽여 버리고 싶어질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래도 선택은 니가 한 거니까.

    벌컥!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서아영과 최정훈이 안으로 들어왔다.

    '음…….'

    박성찬은 서아영의 얼굴이 질려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저 여자가 저런 얼굴을 한 것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도가윤과 정해민, 아펠드리체가 안으로 들어오고, 마지막으로 이지혁이 터덜터덜 걸어서 입장했다.

    "후……."

    서아영과 최정훈들이 자연스레 자리에 앉자 이지혁이 단상에 서 입을 열었다.

    "다 왔어요?"

    이지혁의 물음에 최정훈이 주변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현장 나가 있는 사람들 말고는 다 왔습니다."

    "음, 그러면……."

    이지혁이 무슨 말부터 시작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레드 락 김명운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이지혁에게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응?"

    이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얘는 뭐지?

    "왜요?"

    김명운은 대답 없이 이지혁의 바로 앞까지 걸어오더니, 조금은 삐딱한 자세로 서서 말했다.

    "그런데요……."

    "넹?"

    "이지혁 씨는 무슨 자격으로 우리를 오라 가라 하는 겁니까?"

    "자격?"

    "네, 자격이요. 상관이세요? 그런 것도 아닌데, 뭔 자격으로 사람을 오라 가라 해요?"

    이지혁이 가만히 김명운을 보더니 당당히 대답했다.

    "그런 거 없는데요."

    "…그럼 왜 집합시키시는 겁니까?"

    "자격 없으면 못해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불만이면 안 오면 되는 거죠. 내가 뭐, 안 오면 어쩐다고 했나."

    김명운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니, 애초에 상관도 아니면서 집합을 하라고 시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죠."

    "응?"

    이지혁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저 멀리서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스핏 파이어를 보며 물었다.

    "야."

    "네."

    "이거, 시비야?"

    "명백히요."

    "아하!"

    이지혁이 머리를 긁었다.

    지구 샌님들은 시비도 빙 돌아 돌아 걸다 보니 시비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게 어려웠다.

    베라프의 당당한 사나이들이라면 일단 건틀렛을 벗어 면상에 날려 버리든가, 다짜고짜 마법을 날려 사람을 새까맣게 태워 버리는 것으로 시비를 걸 텐데.

    입으로 쫑알쫑알대며 거는 시비를 받아본 게 천 년이 넘어서인지 영 적응이 안 되었다.

    "아, 그러니까 내가 맘에 안 들어서 한판 붙자?"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기본적인 선은 지키자는 거죠."

    "음……."

    이지혁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더니, 다짜고짜 맨 앞자리에 있던 박성찬을 걷어찼다.

    퍼억!

    고무공처럼 튕겨 나간 박성찬이 벽에 처박히더니, 황당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왜! 왜 나를!"

    "몰라서 묻나?"

    저 귀신같은 새끼.

    박성찬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 이거 진짜……."

    이지혁이 다시 레드 락 김명운을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애들까지 상대해야 하나?

    상황을 지켜보던 정해민이 하품을 하더니 말했다.

    "빨리 좀 하면 안 돼?"

    "응?"

    "어차피 팰 건데, 빨리 패고 본론으로 가자. 시간 아깝잖아."

    "그, 그래?"

    그렇다면야 뭐, 원하시는 대로.

    이지혁의 주먹이 빛처럼 김명운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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