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리터너-16화 (16/118)
  • [■] 이지혁 씨를 영입하고 싶습니다 [■]

    ─────

    "처리했다고? 그것도 아무 피해 없이?"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군. 그 작은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보시겠습니까?"

    비전에 영상이 들어온다.

    머리 위에서 찍힌 영상을 가만히 지켜보던 남자는 통을 열어 시가를 꺼내 잘랐다.

    탁탁.

    고풍스럽게 성냥으로 붙을 붙인 사내가 깊숙이 머금은, 짙은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후……."

    말없이 시가를 피우며 영상을 보던 남자가 이윽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작은 아니겠지?"

    "아쉽게도 전혀 더함이 없는 영상입니다."

    "그럼 내가 본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만이 남았군."

    남자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다시 한동안 말없이 시가만 피워 대던 남자는 재떨이에 잠시 시가를 올려놓고는 깍지 낀 손을 끌어당긴 무릎 위에 올렸다.

    "모르겠군, 모르겠어.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어. 칼과 창을 든 자들이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사람이 기관단총을 갈겨 버리는 걸 보는 기분이군. 밸런스를 어느 정도는 맞춰줘야 하지 않나?"

    "언제 어디서나 크랙은 나타나기 마련이죠."

    "크랙이라……. 좋은 표현이지만, 적당한 표현은 아니야. 그저 판을 깨는 정도가 아니라는 말이지."

    재떨이에 올려둔 시가를 다시 입에 문 사내가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세 가지 중 현실성이 가장 높은 것은?"

    "회유, 제거, 방치 말입니까?"

    "언제나 방법은 같지. 난이도가 다를 뿐."

    "제거는 불가능합니다."

    "절대?"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실패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제거에 실패하여 그가 우리에게 악감정을 품었을 때 감당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큽니다. 한 번의 실패가 우리의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사내의 눈이 꿈틀했다.

    "너무 나간 발언이군."

    "둑은 언제나 작은 균열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 법이죠."

    사내는 눈살을 찌푸렸다.

    심정적으로는 동의하기 싫지만, 그 말이 맞다는 걸 알기에 재떨이에 반도 타지 않은 시가를 거칠게 비벼 끄는 것으로 불편한 감정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제거는 불가능하다? 그래, 그렇군. 그럼 회유는?"

    "관련 정보를 최대한 모으고 있습니다마는 행동 패턴이 파악되지 않습니다. 돈의 유혹에 넘어오는 타입도 아니고, 집착하는 것도 없습니다."

    "자유인인가?"

    "그렇다고 보기에도 애매합니다. 구속되기 싫어하는 타입이라 보기에는 나름 체제에 순응하려는 의지도 엿보입니다. 종잡을 수 없는 타입이라고 보는 게 가장 맞겠지요."

    "제일 골치 아픈 성향이군. 가족들은?"

    "국가에서 관리 중입니다. 접근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그리 멍청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언제나 틈은 있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비슷한 일을 하다 보면 결국 세상 모든 일에는 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틈을 제대로 노릴 수 있는가가 관건인 것이다.

    "방치, 방치라……. 방치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아. 저런 존재를 방치할 수는 없지. 일단은 감시를 늦추지 말게. 관련된 지원은 내 이름으로 해결하고."

    "알겠습니다."

    사내는 가만히 지도를 바라보다가 펜으로 극동의 작은 나라를 쿡, 찍었다.

    "여기가 핵일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였다.

    하지만 그런 변화에도 얼마나 잘 대처할 수 있는가가 능력 아니겠는가.

    "그리고……."

    "예."

    "그들은 어찌 되었나?"

    질문을 받은 이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음, 알파는?"

    "알파 역시 종적이 모호합니다."

    사내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알파 하나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새로운 변수까지 출현하다니.

    최근 게이트들이 미쳐 날뛰고 있고, 변방국들의 국가 붕괴는 가속화되고 있다. 언젠가 그 여파가 자신의 나라에까지 미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전 세계적 위기 상황에 새로이 출현한 변수.

    이 변수가 어떻게 움직일지가 앞으로의 관건이었다.

    "이자에 대한 호칭을 정리해야겠군. 뭐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알파는 이미 있으니… 베타? 아니면……."

    "저희가 지정한 명칭은 있습니다."

    "뭔가?"

    "Mine입니다."

    "마인. 지뢰, 지뢰라…….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군. 좋아, 앞으로 마인에 관해서는 특급으로 지정하고 상시보고 올리도록."

    "예."

    사내는 창밖을 바라보며 눈을 반쯤 감았다.

    '심상치가 않아.'

    게이트의 변화, 그리고 '알파'까지.

    그것만으로도 걷잡을 수 없는 노릇인데, 이제는 마인의 존재를 주변국들이 주시하기 시작할 것이다. 기형적일 정도로 주변에 강대국이 모여 있는 저 극동이 혼란에 빠지면 그 영향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점점 혼돈으로 치닫는 기분이었다.

    세상의 급격한 변화에 대처하고 있는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하……."

    이지혁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쨍쨍하게 맑은 하늘이 이지혁의 눈을 찔러 들어왔다.

    "날씨 한 번 더럽게 좋네."

    이런 날 출근을 해야 하다니!

    돈이 아니라 휴가를 더 받았어야 하는데!

    이전이었다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출근을 늦춰보려 애썼겠지만, 이제는 그럴 상황이 아니란 걸 너무 잘 알기에 짜증이 울컥울컥 치밀어 올랐다.

    무언가 괴롭힐 것이 없나 찾는 이지혁의 눈에 대문 앞에서 살랑대는 금발이 들어왔다.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보이는 금발을 보며 이지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쟤는 생활도 없나.

    이지혁이 그러려니 하고 대문을 열자 의외의 금발 머리가 거기에 서 있었다.

    "형님, 나오셨습니까?"

    "…뭐야, 너."

    금발은 금발인데 남자다.

    김다현이 대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상황이 깨지고 등 뒤로 소름이 확 올라왔다.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남매라 하는 짓도 똑같은 건가?

    그럼 이놈도 스토커 타입인가!

    수많은 의문이 머리를 휘저었다.

    "이걸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응?"

    김다현이 내민 작은 상자를 본 이지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제 동생이요."

    "…걔?"

    "옙. 생각하시는 걔입니다."

    "으응."

    이지혁은 떨떠름한 얼굴로 상자를 받아 들었다.

    여기 안에 이상한 거 들어 있는 건 아니겠지?

    이지혁의 의심 가득한 눈이 상자를 훑었다.

    지금까지 그런 경우가 없었는데도 받을 때마다 불안한, 이 알 수 없는 심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걔는 뭐하는데?"

    "학교 갔습니다. 제게 꼭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왔어?"

    "예!"

    "니가 오빠잖아?"

    "세상에 여동생보다 지랄 같은 존재는 없는 법이죠."

    이지혁이 김다현의 손을 덥썩 잡았다.

    알 수 없는 공감대가 둘 사이에 형성됐다.

    "힘들지?"

    "…아닙니다."

    "힘내. 언젠가 시집가겠지."

    "데리고 가주시면……."

    "죽고 싶냐?"

    "아닙니다."

    금세 기가 죽은 김다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지혁이 눈물을 삼켰다.

    이 세계로 와서 그가 가장 감당하기 힘든 존재가 누구던가.

    그 망할 동생이다!

    때릴 수도 없고, 팰 수도 없는데, 복장은 뒤집어놓는, 그 악마 같은 인간을 보면서 느꼈던 울분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김다현의 우울한 얼굴이 보인다.

    '그래도 예원이가 걔보다야 정상이지.'

    도긴개긴이지만, 미친년도 급이 있는 법이다.

    예원이가 반항아라면, 김다솜은 그냥 맛이 갔다.

    사고야 예원이보다 덜 치겠지만, 한 번 치면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어 버리는 타입이다.

    그런 애에게 시달렸으니 사람이 피폐해지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끔찍한 일 여럿 겪었겠지.

    인간에 대한 동정심이 손톱 때만큼은 남아 있는 이지혁이 안쓰럽다는 시선으로 김다현을 보았다.

    "그,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절 동정하지 말란 말입니다!"

    "안다, 그 마음 알아!"

    "뭘 안다고!"

    "출근하자."

    이지혁은 눈물을 글썽이는 김다현의 발을 재촉했다.

    이대로 두면 정말로 울지도 모르겠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만 가면 되는데도 오늘따라 길이 길게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그들의 앞을 막아서는 이들마저 있었다.

    검은 양복을 빼입은 세 명의 인형이 평화롭게 걸어가는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김다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시비야 걸릴 수도 있다.

    겉으로 '나는 능력자입니다'라고 표를 내고 다니는 사람은 흔치 않았으니까.

    문제는 이곳이 일반인 출입 금지 구역이라는 것이다.

    이 안에서 그들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목적을 가진 일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누구냐?"

    김다현은 이지혁의 앞을 가로막듯 한 걸음 나섰다.

    '근데 나 뭐하고 있는 거지?'

    이건 자연스럽게 꼬봉이 된 모양새가 아닌가.

    이지혁의 능력을 눈앞에서 지켜본 것과 김다솜의 아우라가 그가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몸이 움직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김다현의 움직임을 지켜본 이들 중 가운데 있던 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여자?'

    세 사람 중 가운데 있는 이는 여자였다.

    한 걸음 나섰다는 건 책임자라는 뜻인데?

    "그쪽 분에게는 용무가 없습니다. 저희가 뵙고 싶은 분은 뒤에 계신 분이죠."

    묘한 억양이 섞여 있는 말이었다.

    직감적으로 이들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한 김다현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 비상 버튼을 누르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외국인이 들어올 수 있었나?"

    "외교관 신분이면 가능하지요."

    "외교관?"

    외교관이라도 능력자 거주구는…….

    아니, 생각해 보면 능력자이면서 외교관이라면 이 안으로도 들어올 수 있을지 몰랐다.

    "아무래도 좋아. 출근해야 하니 비켜주시겠어?"

    "그쪽에는 용무가 없다고 했을 텐데요?"

    "호오, 그래?"

    김다현이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실망이군. 능력자 외교관이면 패스 드리프터라는 이름은 들어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물론 알고야 있죠. 하지만 그뿐입니다. 당신에게는 용무가……."

    "아아, 알았어, 용무가 없다는 거. 그런데 어쩌지? 이제 내가 용무가 생겼는데?"

    김다현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시비를 건다면 받아주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비켜, 인마."

    "헐, 형님!"

    "왜 나한테 온 손님을 니가 막아!"

    "타국에서 온 사람입니다. 형님이 접촉하셔서 좋을 일이 없지요."

    "그걸 왜 니가 판단하세요?"

    "그야……."

    "오늘 네 얼굴이 반듯반듯해 보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김다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이 얼굴로 돌아온다고 쓴 돈과 시간이 얼마던가!

    김다현을 치운 이지혁이 입을 열었다.

    "용건은요?"

    "저희는 바다를 건너왔습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왔죠."

    이지혁이 김다현을 보고 물었다.

    "쟤 뭐래냐?"

    "…일본에서 왔답니다."

    "아, 그래? 그걸 뭐 저리 말해?"

    "한국말이 딸리겠죠."

    이지혁과 김다현의 대화를 들은 여자의 얼굴이 미묘하게 떨렸다.

    뭐지, 이 무식한 놈들은?

    "그래서요?"

    여자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조사대로 이리저리 빙빙 돌리는 것은 딱히 도움이 되지 않을 듯했다.

    직설적으로, 그리고 간결하게.

    "결론적으로 말해서……."

    "예."

    "이지혁 씨를 영입하고 싶습니다."

    뭔 나라가 달라져도 하는 말은 똑같냐.

    이지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영입?"

    이지혁의 말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토 사나라고 합니다. 본국의 명령을 받고 이지혁 씨를 영입하러 왔습니다."

    김다현이 굳은 얼굴로 소리쳤다.

    "어디서 헛수작이냐!"

    이지혁이 김다현의 뒷머리를 잡았다.

    "너 언제 내 매니저로 취직했냐?"

    이지혁의 뚱한 발언에 김다현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찌그러졌다.

    "영입, 영입 말이죠……."

    "그렇습니다."

    "조건은요?"

    "최상의 대우를 약속드립니다."

    이지혁이 하품을 했다.

    "그러니까, 그 최상의 대우가 뭔데요?"

    "금전적인 부분은 물론이며, 가족분들 역시 외교관에 준하는 대우를 약속드립니다."

    이지혁이 김다현을 보며 물었다.

    "외교관에 준하는 대우라는 게 뭐냐?"

    "죄지어도 벌 안 받는다구요."

    "같은 말을 왜 저리 어렵게 한대?"

    "외국인이잖아요."

    "아……."

    이지혁이 미묘한 시선으로 이토 사나를 위아래로 훑자 그녀의 몸이 살짝 떨렸다.

    뭘까, 이 모멸감은?

    그녀의 반응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이지혁이 혀를 찼다.

    "당신, 책임자야?"

    "물론입니다."

    "그런데 협상을 이따위로 해?"

    "무슨 말씀이신지?"

    "연봉 협상이나 마찬가진데, 정확하게 얼마를 주고, 성과급은 얼마며, 휴일은 어떻게 보장해 주는 거며, 근무시간은 어떻게 되는가! 이주할 가족들의 생활은 어찌 보장이 되는가! 현재 내가 근무하고 있는 것보다 조건이 얼마나 더 나은가까지는 기본적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네?"

    이지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뭔 일을 이따위로 하지?

    저런 식으로 설득하는데도 넘어가는 사람이 있나?

    "이봐."

    "예?"

    "니 윗대가리한테 가서 똑똑히 전해."

    이지혁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말했다.

    "나 이지혁을 데려가려면 제대로 조사해서, 제대로 준비하고, 제대로 된 인간을 보내라고 말이야. 한두 푼으로 깔짝댈 거면 애초에 찾아오지도 마."

    "…이지혁 씨, 저희는……."

    "거기까지."

    그녀의 등 뒤에서 숨이 차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죽을 듯이 달려왔는지 숨을 헉헉대는 최정훈이 그곳에서 무릎에 손을 댄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접촉까지 허가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어머, 그런 조항이 있었나요?"

    "지금 즉시 출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사안은 정식 채널을 통해 항의하도록 하죠."

    "아쉽지만 그럼 어쩔 수 없죠. 이지혁 씨, 가까운 시간 내에 또 만나게 되길 기대하……."

    "아니! 그게 아니지! 이 멍청아!"

    "예?"

    "명함을 줘야 할 거 아냐! 내가 연락할 일 있으면 손가락 빨고 기다리리?"

    "……."

    멍한 얼굴로 이지혁을 바라보던 사나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여기……."

    "명함에 국제전화 적혀 있나?"

    "아, 아니요……."

    이지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적어라, 적어."

    "볼펜이……."

    부산스럽게 볼펜을 찾아대던 사나가 간절한 눈으로 최정훈의 가슴 앞주머니에 꽂혀 있는 펜을 바라보았다.

    "뭐, 뭐!"

    "돕고 살아요."

    "아니, 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저랑 당신이 돕고 살면 안 되는 거죠!"

    "사람 일이 다 그런 거지. 한국 사람들 정 많다고 들었는데, 각박하네, 진짜."

    이지혁이 김다현을 보며 속닥거렸다.

    "야, 한국말 잘하는데?"

    "그러게요. 아깐 왜 그랬지?"

    결국 최정훈에게 펜을 얻어낸 그녀는 명함 뒤에 전화번호를 적고는 이지혁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니 상사도 걱정이 많겠다."

    "유능한데……."

    "명함 한 장 더 줘봐."

    그녀는 별다른 질문 없이 명함을 내밀었고, 거기에 이지혁이 뭔가를 쓰고는 내밀었다.

    "내 이메일이다. 조건은 여기로 보내."

    "알겠습니다."

    최정훈이 소리쳤다.

    "헐! 이지혁 씨,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뭐, 왜!"

    "지금 제 눈앞에서 국가를 등지는 행위를 하고 계신 겁니까!"

    이지혁이 코웃음을 쳤다.

    "모든 인간은 국가와 직장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요! 뭐, 빤한 걸 물으시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건 비교해 보는 게 쫄리면 근무 조건 상향시켜 주든가!"

    아니, 이 이상 뭘!

    삼 주 동안 삼 일 출근해 놓고는 더 이상 뭘 어쩌라고!

    일을 하기 싫으면 안 한다고 하든가!

    여기서 더 뭘 어떻게 하라고, 이 양심도 없는 놈아!

    최정훈이 뒤를 돌아 하늘을 보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동안 이지혁은 이토 사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거기 윗대가리한테 말 좀 잘해줘."

    "아… 네."

    그 말이 끝나자 요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세 사람을 잡고 끌어냈다.

    끌려가면서도 이토 사나는 이지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말 독특한 인간이네.'

    그래도 덕분에 목적은 다 달성했다. 이제 다음 기회를 보면 된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지혁, 이지혁이라……."

    가운데에 앉은 사내는 양손을 깍지 껴 코앞에 두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사내를 두고 옆에 앉아 있던 이가 서아영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왜 미리 보고 하지 않았지, 서아영 부장?"

    "뭘 말입니까?"

    "이지혁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말이야."

    서아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언제부터 일개 요원에 대해 일일이 보고를 받으셨죠? 제 선에서 처리할 문제 아닙니까?"

    "일개 요원? 지금 일개 요원이라고 했나?"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서류를 집어 던졌다.

    서아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허공에 휘날리는 서류들을 바라보았다.

    "보이나? 각국에서 온 이지혁에 대한 정보 요청 공문들이다. 정보처에서 온 것도 아니라 수장 직인으로 날아온 문서들이야. 다른 나라들이 우리보다 먼저 정보를 확보하겠다고 움직이고 있어. 그런데 뭐라고 대답할까? 우리도 모른다고 해야겠어?"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 정보처가 무능한 거죠."

    "서아영!"

    "그만!"

    목소리가 커지자 가운데 사내가 깍지를 풀고는 고개를 들었다.

    "서아영 부장."

    "예."

    "자네 나름의 노림수가 있다는 것은 알겠네. 좋아, 그 정도 지위에 있다면 단독으로 뭔가 노려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 그런데 말이야……."

    "……."

    "일이 너무 커졌어. 핵폭탄이라도 숨겨두고 있다가 들켰다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거야. 우리도 모르고 있던 상상을 초월하는 대량 학살 병기가 우리의 국토에서 발견된 거지. 윗분들도 지금 정신이 없으시네."

    "그래서요?"

    사내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이지혁을 통제할 수 있겠나?"

    서아영은 웃어버렸다.

    통제?

    한때 할 수 있다고 믿던 때도 있었지.

    지금은 곁에 두고 눈을 떼지 않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으십니까?"

    "무리겠지. 그래, 무리겠지."

    그런 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지혁에 대한 통제가 쉬워 보였다면 날아온 것은 정보 요청 공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대한민국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힘을 국가에서도 조심스레 정보만 얻어가려 하는데, 대한민국이 그를 통제한다?

    웃기는 소리였다.

    진짜 강한 힘은 국가를 초월한다.

    "어떤 사람인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죠."

    "야망은?"

    "없습니다."

    "원하는 것은?"

    "그것 역시 딱히."

    대답을 해놓고도 서아영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정말 없나?

    이지혁이 야망도 없고, 원하는 것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그저 보이는 겉모습만으로 유추한 것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당당하게 대답해도 될까?

    정말 이지혁이 속으로 뭘 생각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나?

    서아영은 이곳에서 대답을 하고 있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잘 안다고 느끼다가도 다시 생각해 보면 이지혁은 의문투성이의 인간이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조금도 예상할 수 없고, 과거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리고 앞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을 잘 안답시고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통제가 안 된다면 감시라도 똑바로 하도록."

    서아영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가 이지혁에 대해 내놓았던 결론이 똑같이 돌아온다.

    이곳에서마저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이지혁에 대한 대처법이 적어도 국가 내에서는 없다는 말과 동일했다.

    "알겠습니다."

    "이번 일은 책임을 묻지 않겠다. 공이 워낙 크니 오히려 상을 줘야겠지. 포상을 준비하지. 수고했네, 서아영 부장."

    "별말씀을요."

    "나가보게."

    서아영이 밖으로 나가자 사내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한숨을 쉬었다.

    "이지혁, 이지혁이라……."

    왜 하필 이곳에 그런 괴물 같은 놈이 나타났단 말인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겠군."

    지독한 변수였다.

    일단 계획을 짜려면 성향부터 파악해야 할 텐데…….

    "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 *

    "네?"

    서아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사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아무리 능력을 쏟아부어도 괜찮을 만한, 크고 넓은 공터요?"

    "네."

    이지혁은 입으로 과자를 쑤셔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있기야… 하겠지만, 그걸 왜요?"

    "필요하니까요."

    "수배는 해볼게요. 그런데 뭐하시려구요?"

    "굴려야죠."

    "뭘?"

    "너."

    "……?"

    이지혁의 말에 서아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굴린다고?

    나를?

    "날 굴린다고요?"

    "당신뿐 아니고 전부."

    "…뭔 소리예요, 대체?"

    이지혁이 피식 웃었다.

    "앞으로도 몬스터는 계속 쏟아져 나올 삘이던데,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짐 덩어리로 살 생각이에요?"

    "짐 덩어리……."

    서아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화가 나고 열이 받는 발언이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적어도 이번 사태에서 자신들이 한 거라고는 이지혁이 올 때까지 괴수의 발목이나 잡고 늘어지는 것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뭐! 단련이라도 하라는 거예요?"

    "한다고 되나, 그게."

    "그럼요?"

    "당해야지."

    "…네?"

    이지혁은 피식 웃었다.

    단련을 하는 게 아니라 죽고 싶을 정도로 당해보면 된다.

    그럼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강해진다.

    자신도 그랬으니까.

    자살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천 년도 더 전에 죽었겠지.

    그게 안 되니 여기까지 온 거지만.

    "여하튼 할 거예요, 말 거예요?"

    서아영이 고민에 빠진 얼굴로 볼을 두드렸다.

    자존심이 상하고 짜증이 나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좀 더 강해져야 한다.

    하지만 능력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키울 수 있는 거라면 누가 고생을 하겠느냔 말이다.

    "강해지게 해줄 수 있어요?"

    "물론이죠."

    "모두가 이지혁 씨 같지는 않아요."

    "나 정도만 되면 정말 다행이게요."

    "네?"

    이지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됐고! 당신이 대장이니 당신이 정해요. 할 건지, 말 건지."

    서아영의 눈이 불을 뿜었다.

    "강해질수만 있으면 하겠어요."

    "그럼 부장님 이름으로 소속 능력자들 전부 끌고 오세요."

    "몇 없잖아요."

    "그 몇이라도 다 끌고 와요. 혼자 강해지면 뭔 소용이에요."

    "좋아요. 대신 강해지게 해준다는 그 말… 책임지세요."

    "물론이죠. 대신 제가 시키는 대로 한다고 약속해야 합니다."

    "그 정도야 뭐……."

    이지혁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슬슬 먹어볼까.'

    NDF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으니 이제는 이들을 자신의 손발로 만들 때였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낄낄낄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한 이지혁의 입가에 소름 돋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광경을 보며 모골이 송연해진 서아영이지만, 그녀도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절대 이지혁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됐음을.

    지옥으로 가는 문은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그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 * *

    "하……."

    이지혁은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탄성을 내쉬었다.

    "이거지, 이거."

    하늘에서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이지혁은 비치 체어 옆에 놓인 과일 주스를 들고 쪽 빨았다.

    따뜻한 햇살로 몸이 데워진 상태에서 차가운 음료가 목을 타고 흐르자 더없는 상쾌함이 몸을 감쌌다.

    "이게 힐링이지."

    작열하는 태양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

    사람이 이래서 휴양을 가는구나 하는 기분이 절로 들었다. 게임을 하고 책을 보며 쉬는 것과는 또 다른 휴식이 여기에 있었다.

    우우우웅!

    머리맡 테이블에 올려둔 휴대폰이 울렸다.

    과연 KSF제 특수 스마트폰.

    로밍도 안 걸었는데 여기서도 터지다니!

    이지혁은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어, 엄마."

    - 아들, 뭐하고 있어?

    "어, 나 지금 일광욕하고 있어."

    - 이 날씨에?

    "날씨가 왜? 여긴 더워."

    - 대체 어디기에 덥다 소리가 나와? 사무실 안이니? 바깥 같은데?

    "아, 여기가 어디냐면……."

    이지혁이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야, 여기가 어디라고 했지?"

    "……."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 쓰려져 있던 작은 여자는 대답이 없었다.

    "죽었나?"

    뭐, 알 바 아니고.

    "엄마, 여기가 적도 근처 어디라고 했는데, 여긴 여름이야. 나 지금 수영복 입고 있어."

    - 엄마한테 그런 장난 치는 거 아냐.

    "장난 아닌데……."

    - 너 출근한 지 얼마 됐다고.

    "그야 셔틀이 있으니까. 아니, 이젠 죽었으니 없네."

    "…아직 안 죽었어……."

    바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냐, 엄마. 셔틀 살아 있다."

    - 대체 뭔 소린지 원.

    전화 너머로 혀 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지혁은 씨익 웃고는 말했다.

    "어쨌든 잘 있어. 저녁에 갈게."

    - 그래, 사고 치지 말고! 알았지?

    "어, 엄마."

    이지혁은 전화를 끊고는 테이블 위로 던지듯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아, 한겨울에 여름을 만끽하다니. 이래서 돈을 벌고 휴가를 가는구나."

    따져 보면 베라프에서도 딱히 못할 것은 없는 일이었는데 지구와는 사고방식이 달라서 그런가, 날씨가 다른 곳으로 휴양을 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생각만 했으면 더 간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여유가 없어서였을까?

    무한의 시간을 살아가면서 여유가 없다는 것도 참 웃긴 이야기지만, 실제로 그때의 그에게는 여유라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긴 한데…….

    '뭔가 미묘하게 기분이 이상하다는 말이야.'

    이제야 겨우 바라던 곳으로 돌아와 바라던 삶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는데, 충족감보다는 오히려 묘한 허탈감이 그의 감정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무지 그 허탈감의 원인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역시 휴가가 좋아. 그렇지?"

    "이 개……."

    이지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돌이 그런 말 쓰면 안 되지."

    큰일 나려고 말이야.

    카메라라도 있어서 온 동네 퍼지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이지혁은 기지개를 쫘악 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에 평화로운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였다.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태양이 내리쬐는 해변은 그야말로…….

    "으아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

    "그만! 그만하라고!"

    …지옥 같았다.

    이지혁은 오식이의 발길질에 걷어차여 하늘 높이 날아오른 김다현을 보며 박수를 쳤다.

    퍼어어엉!

    마치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 물분수가 솟아오른다.

    그래도 저게 어디야.

    땅바닥에라도 떨어졌으면 어디 뼈 몇 개 부러지는 걸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오식이는 너무 착해서 문제다.

    꼭 바다 쪽으로 찬다니까?

    이지혁은 테이블 위에 올려둔 담배를 집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평화롭구나."

    "어디가아아아아!"

    저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무시하도록 하자.

    일이 뭐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고?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야…….

    * * *

    "안 된다고요?"

    이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돼요."

    "이 정도면 충분히 넓고 큰 것 같은데?"

    "능력자들이 날뛸 곳인데… 좁죠."

    정확하게는 오식이와 그에게 종속된 몬스터들이 뛰어놀 곳이지만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하죠? 더 큰 곳은 대절이 안 돼요."

    "국내에서 찾을 필요 없잖아요."

    "…네?"

    "사람만 없으면 됩니다. 북극이나 남극도 좋고, 사막 한가운데도 괜찮아요. 아니면 뭐, 무인도 큰 거 하나 빌려도 되겠나?"

    "거길 어떻게 가려구요?"

    이지혁이 고개를 돌려 정해민을 바라보았다.

    "너 CF니 뭐니 찍는다고 해외 좀 다녔지?"

    "으응? 응! 근데 왜 너 자꾸 반말해?"

    내가 애를 낳았으면 100대 후손이 너보다 나이가 많다.

    하지만 이지혁은 그 사실을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조금만 있으면 뼈로 새길 텐데, 뭐하러 입 아프게 말로 하겠는가.

    "마킹되어 있지?"

    "응."

    이지혁이 최정훈을 보았다.

    "마킹되어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해서 가깝고 사람 없는 평평한 곳 좀 알아봐요. 넓을수록 좋고."

    "알겠습니다."

    최정훈은 빠르게 정해민과 의견을 조율하고는 섬을 수배하기 시작했다.

    "찾았습니다."

    "음, 여기요?"

    이지혁이 최정훈이 내민 폰의 화면을 보았다.

    "마킹에서 가까운 섬입니다. 이동 거리도 짧고, 주변은 다 무인도뿐입니다. 관련국에 허가도 받았습니다."

    "헐, 진짜 빠르네?"

    능력이 있는 건 알았지만, 이건 아무리 일사천리라도 수준이 과했다.

    "혹시나 싶어 미리 조사를 좀 해뒀습니다."

    "크, 능력치 보소."

    이지혁은 최정훈의 우월한 능력치에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로 하죠."

    "알겠습니다. 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아이언 박성찬이 불안한 눈으로 이지혁을 바라보았다.

    "이봐, 그런데……."

    "네?"

    "대체 뭐하러 가는 거야?"

    "설명 안 들으셨나?"

    이지혁의 시선이 서아영에게로 향했다.

    서아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안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까요."

    모르는 게 약이라는 건가?

    저거, 저러다가 언젠가는 등에 칼 한 번 맞을 텐데?

    대책 없네, 진짜.

    그렇지만 뭐…….

    "틀린 말도 아니네."

    이젠 돌이킬 수 없지.

    이지혁이 씨익 웃자 영문을 모르는 이들이 어색한 얼굴로 따라 웃었다.

    * * *

    "잘 난다."

    또 하나 하늘로 날아가는 사람을 보며 이지혁이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종잇장도 아니고, 사람이 저리 훨훨 날아가는 건 매우 비현실적인 모습이지만, 뭔가 사람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이지혁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또 하나의 사람을 날려 버린 오식이가 고개를 돌려 이지혁과 눈을 마주치더니 혀를 내밀고는 헥헥댔다.

    마치 칭찬을 바라는 것 같은 모습에 이지혁이 흐뭇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눈 깔아."

    끼잉.

    "아, 진짜 더럽게 못생겼네. 조그마할 때는 귀여웠는데. 창식이 보는 것 같아서 이상하다."

    오거가 창식이를 닮아서 기분 나쁘다고 하면 창식이는 뭐가 되는 건가.

    이지혁은 해변을 바라보면서 하품을 했다.

    오식이뿐 아니라 이번에 종속시킨 몬스터들이 넷이나 이곳에 와 있었다. 그리고 이지혁에 명령에 따라 최대한 상처를 내지 않으면서 능력자들을 뚜드려 까고 있는 중이었다.

    또 하나 바다로 날아가는 능력자를 보며 이지혁이 휘파람을 불었다.

    "옷 좀 입지."

    강렬한 삼각 수영복을 입고 구릿빛의 몸을 빛내며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박성찬.

    그래도 나름 수련을 하자고 온 것인데, 저런 복장은 무슨 정신머리로 하는 것인지 감이 안 잡힐 정도였다.

    "여하튼 능력자 놈들치고 제정신 박힌 놈이 없다니까."

    연역법으로는 증명이 어렵지만, 귀납으로 하면 빼박이다.

    멀쩡한 놈 찾기가 힘든데!

    "거… 남 말 하실……."

    "네?"

    이지혁이 뒤를 돌아보자 어정쩡한 자세의 최정훈이 한 손에 아이스커피를 들고 있었다.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지혁이 커피를 쭉 들이켜고는 탄성을 뱉었다.

    "쌉싸름하네요. 프로 같아요."

    "바리스타 자격증 정도는 있습니다."

    "못하는 게 없네, 진짜."

    최정훈의 뒤편으로 급조된 천막이 보인다.

    천막 주제에 안으로 얼핏얼핏 최신식 기계도 보인다.

    으드드득.

    그때, 이 가는 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다.

    얼굴이 완전 흙 범벅이 된 정해민이 고개를 돌리더니 최정훈을 노려보았다.

    썩을 인간!

    커피 메이커까지 옮기게 만들다니!

    살기 어린 정해민의 눈빛을 보면서 최정훈은 고개를 슬쩍 돌렸다.

    아니, 이지혁이 필요한 거 다 챙기라고 했는데, 나보고 뭘 어쩌라고.

    난들 이럴 줄 알았나?

    다른 사람이야 전투 훈련이지만, 정해민은 텔레포터니 많이 옮기는 게 훈련이라며 있는 살림, 없는 살림 모조리 끌어모으 게 만든 이지혁이었다.

    그러니까 원망은 이지혁에게 해야지!

    정해민의 살기 어린 눈빛을 무시하며 최정훈이 이지혁을 바라보았다.

    "이런 훈련이 정말 도움이 되는 겁니까?"

    이지혁의 눈에 오식이의 주먹에 맞아 모래사장에 통통 튕기는 김다현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럴걸요?"

    "괜히 몸만 상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살살 하라고 해뒀어요."

    살살?

    저게?

    니 눈에는 사람이 100m를 날아가는 게 살살로 보이냐?

    "살살이 아닌 거 같습니다만……."

    이지혁이 피식 웃으며 빨대로 아메리카노를 쭉쭉 빨아댕겼다.

    "원래 맞으면 그 자리에서 황천길 익스프레스 탑승하는 건데, 맞고도 살아 있으면 살살이지."

    거, 그럴싸한데?

    아니, 아니지!

    후유증이 문제잖아, 후유증이!

    "저러다 제구실도 못하게 되면 어쩝니까?"

    "아저씨, 걱정이 참 많으시네요."

    "부부장, 형, 최정훈 씨, 그쪽."

    많고 많은 호칭 중에 왜 하필 아저씨인가.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네? 아저씨?"

    "…아닙니다."

    아저씨, 아저씨라…….

    따져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여기서 계속 일하다는 총각으로 늙어 죽겠지.

    최정훈의 눈가에 짭짜름한 이슬이 맺혔다.

    "지금 저 사람들이 제구실을 하는 걸로 보여요?"

    "……."

    "오거 같은 애들은 앞으로도 계속 올 거예요. 누가 봐도 빤하잖아요. 그런데 힘 빼고 상대해 주는 오식이 하나를 감당 못해서 쩔쩔매는데, 앞으로는 오죽하겠어요?"

    이지혁의 말은 틀린 부분이 없었다.

    최정훈 역시 말로는 하지 못했지만, 내심 불안해하던 부분이었다.

    이지혁이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이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무너져 버리지 않았을까?

    "사실 이번만 한 사태는 블랙 먼데이 이후로도 초유의 사태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질 거라는 보장이……."

    "아뇨."

    이지혁이 최정훈의 말을 잘랐다.

    "올 거예요, 계속."

    너무나도 확신에 찬 어조에 최정훈조차 일순 의문에 빠졌다.

    '무슨 근거라도 있는 건가?'

    이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찮아 죽겠지만… 사람 좀 만들어놔야 앞으로가 조금이라도 편해지니까."

    이지혁이 고개를 과격하게 꺽더니 손을 털고 앞으로 나갔다.

    몬스터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만들어내도 좋겠지만, 지능을 신뢰할 수 없는 몬스터들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베라프에서처럼 전 인류를 적으로 돌릴 생각이 아니라면 이곳에서는 어느 정도 조화를 맞춰서 살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마물의 군대를 이끌며 세상을 휩쓸다가는 언젠가 세상 전체와 싸우는 날이 올 것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를 숭배하거나 증오하기 마련이니까.

    숭배도, 증오도 결말은 좋지 못하다.

    그러니까…….

    "이 머저리들을 사람 구실 하게는 만들어봐야지."

    무척이나 힘들겠지만 말이야.

    응? 내가?

    아니, 쟤들이…….

    * * *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쇄살인에 대해 경찰은 아직 범인의 종적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홉 번째 희생자가 발생한 지금, 이대로라면 역사상 가장…….]

    "어휴……."

    박선덕은 눈살을 찌푸리며 TV를 돌렸다.

    연쇄살인이라니, 말만 들어도 심장이 쿵덕대는 느낌이었다.

    "세상이 너무 무서워졌어."

    "응?"

    소파에서 뒹굴대며 휴대폰으로 톡을 보내고 과자까지 집어먹던 이예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박선덕을 보았다.

    "아니다."

    "으응?"

    박선덕은 한숨을 쉬었다.

    저 광경이 이상하게 눈에 익은데?

    이사 온 이후로 전처럼 머리를 귀신같이 물들이고 밤마다 밖으로 도는 짓거리를 하지 않게 된 것은 좋지만, 다른 의미로 막장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너, 살 좀 찌지 않았니?"

    "진짜? 살 쪄 보여? 아닌데?"

    지금 니가 쫄티처럼 입고 있는 그 티셔츠, 얼마 전에 크다고 징징댔던 그 티 아니니?

    엄마가 잘못 본 거니?

    학교만 갔다 오면 하루 종일 그러고 있는데 살이 안 찌면 그게 사람이냐, 이 잡것아.

    활동성 있는 반항아와 고분고분한 집순이 중 어느 쪽이 딸로 더 우월한가를 고민하던 박선덕은 중도를 모르는 대책 없는 극단주의자들의 횡포에 절망했다.

    다른 집 애들은 참 잘도 크더만, 이것들은 대체!

    '그리고 저것도 참 희한하지.'

    오라비 싫다고, 싫다고 노래를 부를 때는 언제고, 이제는 하는 짓이 영락없이 닮아가고 있지 않은가.

    저러다 진짜 지 오빠처럼 될까 봐 겁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지 오빠는 하루 종일 먹고 또 먹어도 살이라도 안 찌는 신기한 체질인데, 저건 하는 짓은 닮으면서 왜 그 체질은 물려받지 못했다는 말인가.

    디리리릭.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지혁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음, 아들. 다녀왔……."

    박선덕은 순간 할 말을 잃고 이지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들! 왜 이리 까매졌어? 하루 만에!"

    이지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태닝한 거야, 태닝."

    "이 겨울에 뭔 태닝이야! 그리고 태닝을 했으면 멋져져야 하는 것 아니니? 넌 그냥 인종이 바뀌었는데?"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 이지혁이 절망 어린 어투로 말했다.

    "이게 누구 때문인데! 엄마가 이렇게 낳았잖아! 내가 거기서는 몬스터라는 소리도 들었어!"

    갑자기 설움이 복받친다!

    피부색이 다르고, 머리색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눈이 조금만 더 크고 코가 조금만 더 오뚝했으면 어떻게 우겨볼 수라도 있었을 텐데!

    "거기는 어디니?"

    "…그런 데가 있어."

    "그리고 내가 그렇게 낳았다니… 오해다, 얘. 너도 처음에는 얼마나 예뻤다고. 눈도 크고."

    "그런데?"

    "자라면서 그렇게 된 걸 뭘 어쩌겠니."

    "결과물은 이따윈데 책임지는 사람 하나가 없어! 이게 무슨 정치판도 아니고!"

    "일단 너는 남자니까 나보다는 아빠한테 따져 보렴."

    "어?"

    아, 아버지…….

    맞다.

    "그러고 보니 얼굴 본 지가 좀 된 거 같은데……. 엄마, 이사 올 때 아버지 같이 왔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삿짐도 같이 날랐잖아."

    "그랬었나?"

    그 털끝 같은 존재감이 서글프다, 이 시대의 가장이여.

    "그럼 지금은 어디 가셨는데?"

    "출근했잖아!"

    "아, 그래? 취직 다시 하셨어?"

    "네 아버지 한국 에너지 나가신 지가 벌써 한 달 다 되어간다. 너는 왜 그리 정신이 없니?"

    "…엄마, 내가 정신이 없는 게 아닌 것 같아."

    "응? 뭔 소리니?"

    이지혁은 차마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아버지, 잘 지내시죠?

    한집에 사는데 이상하게 아버지가 그립네요.

    회사에서는 사람들이 좀 알아보나요?

    아, 이거… 생각하니 무섭네.

    회사에서도 그러면 어쩌지?

    혼자서 밥 먹는 건 아니겠지?

    가까운 시일 내에 아버지 회사를 한 번 들러봐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이지혁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 씼니?"

    "씻고 왔어."

    "어디서?"

    이지혁이 씨익 웃었다.

    "몰디브?"

    이지혁의 말에 박선덕의 얼굴이 미묘해졌다.

    "지혁아."

    "응?"

    "회사 일이 많이 힘드니?"

    어?

    …엄마, 나 미친 거 아냐. 진짜야!

    진짜 그쪽으로 갔다 왔다니까?

    와, 이거, 증명할 방법도 없고… 미치겠네.

    "아!"

    이지혁이 휴대폰을 꺼내서 씨익 웃으며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니?"

    "사진."

    이지혁이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내밀자 박선덕이 코웃음을 쳤다.

    "합성이네."

    "헐."

    "너, 엄마 너무 쉽게 보는 거 아니니?"

    엄마가 자식을 너무 한심하게 보는 거야!

    내가 어디 가서 이런 대접 받는 사람이 아닌데!

    "여하튼 씻고 왔어. 그러니까 들어간다."

    "그래. 밥은?"

    "있다가 같이 먹지 뭐."

    "그래, 그럼."

    이지혁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박선덕이 손짓으로 이예원을 불렀다.

    이예원도 눈이 반짝반짝해서 박선덕의 옆으로 붙었다.

    "맞는 거 같지?"

    "응, 엄마. 나도 봤어."

    이지혁이 찍은 사진 구석에 분명히 정해민의 모습이 있었다.

    두 모녀는 매의 눈으로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텔레포트로 가면 몰디브에 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잖아?"

    "응. 그럼 금방 갔다 오겠지."

    "그럼 뭐야? 밀월여행?"

    "에이, 엄마. 너무 나갔다. 그런데 모르지, 또!"

    이지혁은 방 밖에서 들리는, 꺅꺅대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뭔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

    컴퓨터를 켠 이지혁이 간만에 게임을 켜지 않고 게이트 출현 장소들을 지도 위에 띄우기 시작했다.

    시간대, 장소별로 게이트의 위치를 눈에 넣은 이지혁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 주변으로 모이고는 있었어.'

    하지만 이상하게도 NDF로 들어간 이후로는 이지혁 주변에 게이트가 다가오던 것이 멈췄다.

    그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큰 범위에 다른 종류의 게이트가 출현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변화 양상에 뒤섞여 이지혁이 타깃에서 제외된 것인지, 그게 아니면 더 크게 이지혁을 조여오기 시작한 것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것을 파악하기에는 정보가 모자랐다.

    굳이 한국을 떠나 훈련을 하는 것도 확인의 일환이었다.

    만약 그가 있는 바다 쪽으로 게이트가 열린다면 이지혁을 쫓아오던 게이트의 양상이 그대로라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뭔가 변화가 생긴 것일 테니까.

    어느 쪽이든 감당 못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처가 필요한 것은 이지혁의 시간은 이제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 하나 점령하는 데 10년이 걸려도 조급하지 않던 그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정신적으로도 급할 게 없었다.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데만 걸린 시간이 얼마인가.

    이제야 겨우 일반인과 비슷한 시간 감각을 가지게 된 이지혁이다.

    "애매하군."

    지금 당장은 여유가 있었다.

    오거나 히드라 같은 고위급 몬스터라고 해도 이지혁에게는 딱히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것들만 넘어온다는 법은 없지 않나.

    내일 당장 드래곤급의 생명체가 출현한다면 세계는 멸망이다.

    지금의 이지혁으로서는 한 마리의 드래곤도 상대하기 버겁다.

    그런데 만약 떼로 출현한다면?

    '과학이 이리 무력하게 느껴지나…….'

    시간이 조금 더 있다면 인간은 언젠가 드래곤도 상대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문제는 지금 이 세계에 누구도 그런 고위 생명체에 대한 대처를 고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막상 드래곤이 출현하고 그 대처법을 찾는다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

    그때는 이미 세계가 거의 박살 난 뒤일 것이다.

    "흐음……."

    이지혁이 머리를 갸웃했다.

    우선 떠오르는 대처법은 두 가지.

    하나는 능력자들의 힘을 모으고 그들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지금처럼 소수의 능력자들만을 끌어 올리는 게 아니라 피라미드식으로 가용한 능력자는 모조리 써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마나를 어떻게 해야 해.'

    사실 급한 것은 이쪽이었다.

    지금이야 전투 도중에 회수하는 마나로 근근이 균형을 갖추고는 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한계에 봉착한다.

    처음 하나의 시체를 만들어내는 것에 실패한다면, 이지혁은 평범한 능력자에 불과하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말이야."

    무한한 마나를 끌어올 방법이 있기는 하다.

    문제는 그 방법이 되레 이 세계의 파멸을 가속화시킬 수 있단 것이다.

    그러면 이지혁은 진정으로 이 세계에 멸망을 가져오는 자가 되어버릴 테니, 이 방법은 일단 제외.

    그럼 다른 방법은…….

    '우선은 에테르를 어떻게 쌓아보는 수밖에 없겠네.'

    마나가 안 된다면 능력을 키우는 수밖에.

    그러기 위해서는 능력자들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인 분석이 필요했다.

    생각해 보면 의문투성이다.

    능력이라는 건 왜 출현한 것일까?

    인간이 불을 뿜는 게 너무도 당연한 세계에서 천 년이 넘도록 살다 오다 보니 너무 쉽게 적응해 버렸지만, 따져 보자면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근본적으로 파고들어 봐야 했다.

    "그러려면 좀 더 굴려봐야겠네."

    능력자들의 메커니즘을 조금 더 연구해 볼 필요가 있었다. 실험 재료들이야 싱싱한 걸로 마련해 두었으니까 걱정이 없다.

    이지혁이 흑마도사스러운 미소를 짓는 순간, 지옥과도 같은 첫날을 보내고 겨우 쉬고 있던 NDF의 요원들은 알 수 없는 오한에 몸을 떨어야 했다.

    이튿날.

    이지혁은 집 앞으로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는 정해민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얘는 뭐지?'

    보통 아이돌이라고 하면 자기 스케줄이 최우선이고, 이런 곳에 차출되어 다니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게 정상 아닌가?

    당연히 반발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반발이 없다.

    알아봐 달라고 징징대는 것 말고는 딱히 스타 의식이라는 것도 느껴지지 않고.

    아이돌은 아이돌인데, 성향 자체는 뭔가 털털한 노처녀 같은 느낌이다.

    아, 우는 건 빼고.

    "선글라스는 왜 꼈냐? 면상은 왜 그렇고?"

    선글라스와 마스크, 그 안에 선크림을 이중으로 덕지덕지 바른 정해민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얼굴 탔단 말이야!"

    "그럼 안 탈 줄 알았나? 아서라. 주름은 잡을 수 없다."

    "주름이 문제가 아니라 갑자기 타서 나타나면 어디 여행 갔다 왔다고 열애설 의심 기사 뜬다고!"

    "거, 복잡하네."

    "빨리 와.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어디서 사진 찍는 기자가 있을지도 몰라."

    "아무도 없네요."

    "어떻게 알아?"

    "믿지 말든가."

    의심스런 눈으로 이지혁을 보던 정해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내밀었다.

    "잡아."

    이지혁은 두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순간, 그들의 모습이 퍽, 꺼지더니 일전의 섬에 나타났다.

    이지혁이 마지막이었는지 이미 해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좋은 아침."

    개새끼.

    눈으로 말을 할 수 있다면 수도 없는 육두문자가 그에게 날아들었을 것이다.

    "자, 어제는 몸 좀 풀었으니까 오늘부터는 본격적으로 해봐야죠?"

    "그전에……."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스핏 파이어. 윤혁규.

    이지혁과는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자다.

    같은 소속이긴 하지만 딱히 친분은 없는, 그런 사이?

    "우리가 왜 이런 걸 해야 하는 거지?"

    이지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약하니까?"

    스핏 파이어의 눈이 일그러졌다.

    "우리가? 우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사이커다!"

    "그래도 약하잖아."

    "…아주 자신감이 철철 넘쳐흐르는군. 네가 광역기에 재주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봐야 원격 계열."

    "호오?"

    "내가 약하다는 말을 네 손으로 증명할 용기가 있나?"

    "으으음……."

    이지혁이 고민된다는 듯 턱을 긁었다.

    "구분이 잘 안 돼서 묻는데 말이에요."

    스핏 파이어는 대답 없이 이지혁을 노려보았다.

    "훈련을 하기 싫다는 건가요, 아니면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건가요?"

    "물론 후자다. 사람들은 개고생하는데 노는 꼴이 눈꼴시다고 말해주지."

    "남자답네."

    빙빙 돌려서 다른 이유를 대지도 않고.

    좋아, 아주 좋아.

    그런데…….

    이지혁이 피식 웃었다.

    "약해 빠진 게 입은 살았네."

    베라프였다면 약자는 그저 강자의 먹이일 뿐이다. 이곳이니까 이지혁도 최대한 그들을 존중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나온다면 내 식대로 하는 수밖에.

    "그럼 어디……."

    이지혁이 주먹을 쥐고 스핏 파이어를 가리켰다.

    "얼마나 강한지 한 번 보자고."

    대신 각오는 해야 할 거야.

    이젠 내 식대로 할 거니까 말이야.

    이지혁의 눈에 붉은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 * *

    스핏 파이어 윤혁규는 블랙 먼데이에 각성한 대한민국의 대표 능력자 중 하나였다. 능력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핏 파이어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었다.

    인지도적인 측면에서는 플레임 위치에 밀리는 편이긴 하지만, 능력적인 측면에서는 그녀보다 스핏 파이어를 더 높이 치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그런 윤혁규가 지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고 중 하나라고 서슴없이 칭할 수 있는 그가 몬스터도 아닌 사람 앞에서 떨고 있는 것이다.

    '뭐지?'

    대책 없이 나선 것은 아니다.

    이지혁이 강하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 강함이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눈으로 보고도 모를 정도의 멍청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설 수 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이지혁의 대인 대응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

    사자를 혼자서 잡아낼 수 있는 사냥꾼이라고 해서 격투가와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과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종목이 다른 스포츠와 같았다. 한쪽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보인다고 해서 반대쪽도 잘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스핏 파이어의 대인 능력은 NDF에 소속된 인물들 중에서도 최고에 속했다.

    서아영이 몬스터를 상대하는 능력에서는 그보다 나을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승부를 겨루게 된다면 얼마 걸리지 않아 그녀를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그가 생각한 이지혁의 성향은 서아영과 비슷했다.

    먼 거리에서 압도적인 화력을 퍼부어대는 화력형.

    이 정도 거리에서라면 승부의 주도권은 당연히 자신에게 있어야 맞았다.

    그런데…….

    '왜 떨리는 거지?'

    몸이 그의 강함을 알아서?

    그럴 리가.

    이지혁이 얼마나 강한지 몰랐던 게 아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이런 기분이 들 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그런 게 아니었다.

    이지혁이 미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기 시작한 시점부터 몸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딱히 이지혁이 위협을 가한 것도 아니었다.

    투기를 마구 뿜어낸다거나 살기를 날린다거나, 그런 과격한 짓은 물론, 감정을 담아서 노려보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여전히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살짝 올라간 눈꼬리로 가만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별것 아닌 동작과 별것 아닌 시선.

    긴 시간은 아니지만, 요 며칠 동안 계속 보아온 일상적인 것들이 갑자기 그 의미를 바꾸며 윤혁규에 세상으로 밀고 들어왔다.

    윤혁규가 피가 날 것처럼 입술을 꽉 깨물었다.

    "호오?"

    이지혁이 그 광경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생각보다 쓸 만할지도 모르겠다.

    본능적으로 이지혁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꽤나 좋은 징조였다. 겉모습으로는 알 수 없는, 숨겨진 강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니까.

    이지혁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순간, 반응이 급변한 것도 재미있다. 상대의 미묘한 변화를 즉각적으로 캐치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뿐.

    사냥을 잘하는 개나 사냥을 못하는 개나 사자 앞에서는 그저 둘 다 똑같은 개일 뿐이다.

    목덜미를 물어 비틀어 버리면 죽는 것은 똑같으니까.

    이지혁이 가만히 윤혁규를 바라보다가 하품을 했다.

    "증명하라고 하지 않았나요?"

    이지혁이 피식 웃고는 한 걸음 윤혁규에게 다가갔다.

    다가온다?

    윤혁규의 굳어진 얼굴에 혼란이 섞여들었다.

    어째서 다가오는 걸까?

    이지혁의 전투 성향을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거리를 벌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근접해도 자신 하나 정도는 언제든지 쓰러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아니면…….

    혼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이지혁은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얼굴을 바짝 들이댄 이지혁이 윤혁규의 귓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꿈틀은 대봐야죠? 그렇죠?"

    지렁이 취급을 당한 윤혁규가 발작적으로 손을 모아 이지혁의 가슴에 댔다.

    파아아앗!

    화염의 광선!

    불꽃, 그 자체를 다루는 서아영과는 다르다.

    작열하는 화염의 포탄이 스핏 파이어의 손에서 뿜어진다.

    날아간 화염의 포탄이 바다와 충돌하여 거대한 수증기의 폭발을 만들어낼 때, 스핏 파이어는 눈앞에서 사라진 이지혁의 자취를 쫓고 있었다.

    "어디냐!"

    "거, 빤한 걸 묻네."

    "큭!"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스핏 파이어가 몸을 돌리지도 않은 채 등 뒤로 뛰어들었다.

    등 뒤에서 무엇이 준비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피하겠답시고 거리를 벌리는 것은 그냥 자살이다. 거리가 더 벌어지는 순간에 그로서는 이지혁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멍청이."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콰드득!

    허리에 틀어박히는 끔찍한 고통에 스핏 파이어의 입이 쩍 벌어졌다.

    "……."

    너무나도 극렬한 고통에 벌어진 입에서는 신음조차 나오지 못했다.

    아득해진 시야 속으로 모래바닥이 들어온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스핏 파이어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 광경을 보며 이지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약한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고통에 저항하는 것은 근성의 문제다. 고작 한 대 맞았다고 저리 굴러 댄다면 실전에서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팔이 날아가고 다리가 잘려도 칼을 휘둘러야 하는 게 전장이다.

    "쯧쯧."

    이지혁이 바닥에서 경련하는 윤혁규에게 다가가더니, 머리맡에 쪼그려 앉았다.

    "증명 아직 덜했는데?"

    "끄으으……."

    윤혁규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음, 어쩌지? 증명이 아직 덜됐는데……."

    이지혁이 고개를 돌려 서아영들을 바라보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이들이 흠칫 뒤로 물러났다.

    "어쩔까요?"

    "…뭘요?"

    "얼마나 강한지 증명을 하라는데, 아직 나는 증명이 덜된 것 같은데 얘가 뻗었잖아요. 그럼 증명할 방법이 좀 모호해지는데… 증명하는 거 도와줄 사람 있어요?"

    '너희도 덤빌래?'를 참 고상하게도 말하는구나.

    "저, 저희는 괜찮아요."

    이지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그럼요."

    다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혁은 입맛을 다시고는 이제야 경련이 잦아들고 있는 윤혁규를 잡았다.

    "최정훈 씨."

    "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애들 없어요? 치료하는 애들."

    "치료사 말씀이십니까? 능력 계열이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매우 희귀합니다. 한 국가에 한 명이 있을까 말까 한 수준입니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에는 안타깝게도 치료사가 없습니다."

    "어디 있는데요?"

    "네?"

    "한국에는 없다면서요? 어디 있어요?"

    "가까이는 일본과 중국에 있죠."

    "일본."

    이지혁이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윤혁규의 머리를 움켜잡고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본에 악감정 있어?"

    "……."

    "이제까지의 감정은 다 버려야 할 거야. 이제 곧 죽을 만큼 증오하거나 있는 모든 걸 던져서라도 은혜를 갚고 싶어지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거거든."

    윤혁규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아……."

    "오, 말도 하네?"

    이지혁이 윤혁규의 머리를 모래바닥에 처박았다.

    "증명하라고 하시니, 증명해 드리지요. 원망은 저쪽에 하세요. 동료 대신 증명을 할 생각은 없어 보이네."

    윤혁규의 머리를 움켜잡은 이지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뭐라고요?"

    일본의 치료사, 기타무라 렌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원? 한국?"

    "그렇다."

    "제가 왜 한국에 지원을 가야 합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능력자들이 나가 있는 지역으로 지원을 나가는 것이지."

    "…왜 그래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만."

    "뭐랄까, 국익을 위해서라고 해두지."

    국익, 국익이라…….

    기타무라 렌은 국익이란 단어에 눈살을 찌푸렸다.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어차피 제 의견은 그리 중요하지 않겠군요."

    "귀관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한다."

    "아니요, 일은 일이니까요.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안내할 사람이 와 있다."

    사내가 가리킨 손끝을 따라간 기타무라 렌의 눈이 커졌다.

    "정해민?"

    에스 걸스의 정해민?

    그 사람이 왜 이곳에 와 있는 거지?

    기타무라 렌은 두근대는 가슴을 느끼며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기타무라 렌입니다."

    "정해민이에요. 한국말 잘하시네요."

    "아, 예. 공부를 좀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팬입니다."

    정해민은 기타무라 렌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데?'

    그 태도에 위화감을 느낀 기타무라 렌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알고 있는 에스 걸스의 정해민은 팬 서비스의 화신이었다.

    팬이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사진 찍고 사인하고 같이 놀다가 매니저의 손에 질질 끌려간다거나, 질린 팬이 도망가야 서비스가 끝난다는 전설의 아이돌.

    오랜 덕질로 그 모습이 연출이 아니라 실제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렌으로서는 이런 정해민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뭔가 말하려는 기타무라 렌을 정해민의 들어 올려진 손이 가로막았다.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

    "…네?"

    "사람 죽어요."

    "아, 예!"

    급박한 일인가?

    아니, 능력자들이 한국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런데 사람이 죽는다고 해외 게이트에 파견이라도 간 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다급해 보이는 정해민의 얼굴을 보니 더 물을 수가 없었다.

    렌이 등 뒤의 상관에게 보고를 하고는 정해민에게 다가가 섰다.

    "손을 드려야 합니까?"

    정해민은 말없이 렌의 손을 움켜잡고는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스슷.

    순간, 눈앞의 사물들이 흐려진다 싶더니, 어느새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작열하는 태양.

    눈부신 바다.

    반짝이는 모래.

    처참한 시체.

    응?

    처참한 시체?

    기타무라 렌이 몸을 경직시킨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피투성이의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듯 가슴이 미약하게 움직이고는 있지만, 그냥 시체라고 해도 다들 납득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멀쩡한데 한 사람만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광경이 묘한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대체 이게 무슨……."

    아니, 가만히 보니 다른 사람들도 멀쩡하진 않았다.

    귀신이라도 본 듯 파랗게 질려 있는 얼굴을 보자니, 그들도 상태가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은 거지?

    그제야 렌의 눈에 또 다른 한 남자가 들어왔다.

    쓰러져 있는 남자의 머리맡에 쪼그려 앉아 있는 남자.

    "…뭐지?"

    눈꼬리가 날카롭게 말려 올라가 있는 남자가 쓰러진 사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른다.

    퍼뜩 정신이 든 렌이 소리쳤다.

    "환자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렌이 지른 고함 소리에 남자, 이지혁의 고개가 들렸다.

    이지혁과 눈을 마주친 렌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겨우 스물이나 넘었을까 싶은 얼굴인데?

    저런 꼬맹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왜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저놈을 막지 않는 건가.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떻게 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저리 멀찍이 떨어져서는!

    '한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어.'

    그때, 이지혁의 입이 열렸다.

    "니가 치료사야?"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낀 기타무라 렌이 침을 꿀꺽 삼켰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