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리터너-7화 (7/118)
  • [■] 패배가 뭔지 알려 드리죠 [■]

    ─────

    "다녀왔어!"

    "아이고, 내 아들!"

    이지혁은 그에게 달려와 안기는 어머니를 끌어안으며 빙그레 웃었다.

    "왜 이리 호들갑이야?"

    "호들갑이라니! 아들내미가 그 무섭다는 능관부에 끌려갔다 왔는데!"

    "능관부?"

    KSF를 그렇게도 부르나? 뭔가 농림수산부 같은 느낌인데?

    "별일은 없었지? 거기, 사람 고문한다는 소문도 있던데."

    "에이, 멀쩡한 거 보고 있으면서 뭔 소리야?"

    KSF가 인식이 더럽구나.

    이상하다? 그 순둥이들만 있는 곳이 왜 이리 인식이 더럽지?

    이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따져 보면 다들 굉장히 친절하지 않던가.

    재워주지, 밥 잘 주지, TV까지 틀어준다.

    유리로 된 벽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능력자를 가두는 곳이란 걸 감안하면 그 정도 장치는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인식이 안 좋다.

    "밥 잘 먹고, 잘 지내다가 왔어."

    "그래그래, 다행이다. 내 새끼."

    어머니는 정말 안심했다는 듯 연신 이지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거기가 그리 무섭대?"

    "말도 마라. 잡혀가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엄마도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거긴 기자들도 못 건드리는 곳이래."

    '그야 국가 기밀급 자료들을 다룰 테니까.'

    이 공포심의 근원이 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능력자.

    인간은 다른 것을 배척한다.

    능력자는 평범한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근본부터 다른 비인류(非人類).

    하늘을 날고, 불을 쏘고, 번개를 내려치는 인간을 같은 인간이랍시고 존중하고 이해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겉으로는 아닌 척하더라도 속으로는 그들을 두려워하고 배척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원래 그렇고, 그게 자연스럽다.

    순간, 이예원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말은 안 해도 오라비가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귀여운 녀석.

    "괴물."

    "예원아!"

    이예원은 어머니의 고함 소리에 후다닥 방으로 달아났다.

    마치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치마를 들추고 뛰어가는 초등학생 같다.

    하하하, 귀여운 녀석.

    얼마나 귀여운지 깨물어 죽여 버리고 싶네.

    "아들······."

    어머니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아들, 뭐, 그, 능력자인가 사이커(Psyker)인가 하는, 그런 거야?"

    이지혁은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아냐, 엄마. 나 일반인이야."

    "일반인?"

    뚱한 얼굴이다.

    KSF의 한심한 놈들이라면 배 째라고 우겨 넘기겠지만, 그래도 어머니다 보니 최대한 설명을 해본다.

    "근데 그냥 좀 비슷한 거야. 쟤들이 말하는 그런 능력자는 아니고, 그냥 비스무리한. 응?"

    "비슷한 거?"

    "어. 설명하긴 난감한데, 여하튼 그래."

    "무슨 소린지 원."

    이지혁은 혼란스러워하는 어머니를 슬금슬금 밀어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웠다!"

    반짝반짝 빛나는 모니터를 보자 이제야 집에 들어왔다는 실감이 든다. 이지혁은 컴퓨터를 켜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컴퓨터에 앉았다.

    "이게 제일 마음에 든다니까."

    현실에 돌아온 보람이 팍팍 느껴진다.

    찬양하라, 전 인류가 쌓아 올린 장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경배하라, 장르 작가들이 피와 땀으로······ 정확히는 담배와 커피로 쌓아 올린 무수한 장르 소설들을.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부터 시작할까?"

    게이트가 열리든 집이 난리가 나든 나랑 무슨 상관이려나.

    이지혁은 집에 들어오면서 사 온 콜라를 컴퓨터 옆에 내려놓고는 게임을 켰다.

    백수는 뭔 일을 겪어도 백수고······.

    폐인은 뭔 일을 겪어도 폐인인 법.

    이지혁이 과자를 흡입하는 소리와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만이 방을 시끄럽게 채워갔다.

    * * *

    "저 녀석은 그 와중에도 게임이야?"

    저녁이 되어 집에 들어온 이지혁의 아버지 이철중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굳게 닫힌 이지혁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이지혁이 KSF에 잡혀가면서 얼마나 난리가 났던가.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또 게임질이라니.

    "담대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다니까."

    "애가 왜 멍청해요!"

    "내 자식이지만 냉정하게 평가해야지."

    "당신도 냉정하게 평가 받고 싶은 모양이죠?"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박선덕이 슬금슬금 공격을 가해오자 이철중은 꼬리를 내렸다.

    "거기선 별일 없었대?"

    이럴 땐 말을 돌리는 게 최고다.

    "그냥 들어와서 컴퓨터부터 켜는 것 보면 별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있나요."

    "으으음······."

    KSF라면 사자처럼 사납던 능력자가 토끼처럼 온순해져 나온다는 소문이 짜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3일이나 있다가 왔는데 태연하다면 다행히 별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럼 내 자식이······."

    "그러게요."

    능력자.

    혹은 사이커(Psyker).

    5년 전부터 나타난 돌연변이들.

    인간이되 인간 같지 않은 능력을 발휘하는 존재들.

    인류를 침략한 게이트를 상대로 인류를 지키는 영웅이자 신인류.

    혹은 인간이 아닌 악마들.

    여러 명칭으로 불리고, 여러 평가를 받지만, 현대의 사이커가 사회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가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이커 되면 돈 많이 번다고 하지 않았나?"

    "당신은 애가 어떤 상탠지도 모르는데, 지금 돈이 문제예요?"

    "사실 문제될 건 없잖아. 사이커 돼서 나쁜 일 있었다는 사람 들어본 적 없어? 따지고 보면 좋아해야 할 일이지."

    "그래도 좀 불안하잖아요."

    "애 앞에서 절대 그런 티 내지 마. 섭섭해할 거야."

    "그럴게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식이 특별한 능력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이철중 부부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은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티비를 보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예원이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상관없잖아."

    "응?"

    "어차피 저기서 안 나오는데."

    "······."

    박선덕의 눈에 굳게 닫힌 방문이 들어왔다.

    "능력자든 아니든 어차피 만날 게임이나 하고 노는 잉여 인생인데, 뭔 상관이야?"

    오빠한테 그러면 안 된다.

    네가 그래도 동생인데 오빠를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할 말은 너무나도 많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엔 저 닫힌 문과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게임 소리의 압박이 너무 컸다.

    "너는 그러면 안 된다."

    "내가 미쳤어? 저리 살게?"

    존중해야 할 대상에서 반면교사쯤으로 입장이 격하된 줄도 모른 채 이지혁은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세상엔 모르는 게 나은 일도 있는 법이었다.

    * * *

    - 와! 님 좀 쩌는 듯? 그 넌타깃(Non-Target) 스킬을 찾아가서 다 맞네요. ㄷㄷㄷ

    - 자석 달았나? 보고 피하지는 못해도 가서 맞지는 말아야지.

    - 알고 보면 저거 천상계임. 지금 일부러 저러는 거임.

    - 천상계는 개뿔!

    - 솔직히 저 인간을 욕할 게 아니라 저 인간이랑 큐 잡힌 우리 레이팅을 반성해야 함.

    - ㅇㅈ

    이지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게임에 집중했다.

    이젠 감을 좀 잡은 것 같다!

    조금만 더 하면 쭉쭉 올라가서 그동안의 설움을 모조리 돌려받으리라.

    - 나 감 잡아감. 이제 곧 승급할 수 있을 듯.

    - 다시 태어나라.

    - 아니, 그냥 화면 녹화해서 한 번만 다시 보라니까. 니가 니 모니터를 부수고 싶어질 거다.

    - 멘탈 보소. 저건 배워야 함. 간디급임, 간디.

    - 저 **랑 같이 게임해 주고 있는 내가 간디다.

    * * *

    "음······."

    채팅창을 껐다.

    역시 채팅은 게임하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인생은 혼자 사는 거니까.

    "아들, 혹시 KSF에서 일하라거나 하지 않았어?"

    "아니, 못 들었는데?"

    "아, 그런 말은 없었구나."

    "응, 전혀 없었어. 앞으로도 그럴 일 없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이지혁은 모니터에 집중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래? 이상하네?"

    능력자가 되긴 했는데 등록을 안 한다?

    '등록을 꼭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왜 안 하는 거지?'

    어머니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지금이야 그런 일이 없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 KSF에서 아들을 모셔가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럼 그렇지, 내 자식인데.'

    어릴 적부터 워낙 게으르며, 놀기를 좋아하고, 싹퉁머리가 없어서 그렇지, 머리 하나는 좋았던 이지혁 아닌가.

    그런 아들이 잉여 인간이 돼서 돌아왔을 리가 없다. 한 달을 넘도록 푹 쉬었으니, 이제 다시 사회를 향해 날갯짓을 할 시기가 된 것이다.

    그래, 그리 생각했다.

    그리 믿었다.

    어리석게도.

    * * *

    퍼억!

    이지혁은 코끝을 스쳐 지나가 벽에 처박혔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밥. 처.먹.으.라. 했.을. 텐.데?"

    "사, 살려주세요."

    콰악.

    박선덕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내미의 머리채를 힘껏 움켜잡았다.

    "나와! 나와, 이 썩을 놈아! 책상 꼬라지 봐라. 넌 대체 뭐가 되려고 밥도 안 처먹고 게임을 하냐? 그, 그, 뭐야? 프, 프로 게이?"

    "프로 게이머야, 엄마."

    "그래. 프로 게이머 할 거냐? 프로 게이머 해? 아니지, 지금도 프로 게이머지.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게임하는데, 그게 프로 게이머지!"

    "아, 엄마! 머리털 빠져!"

    "어차피 방구석에서 나가지도 않는 놈이 머리털 좀 빠지면 어때!"

    처음엔 조금 어색해하던 가족들은 변하지 않는 이지혁을 보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에게 그는 '그냥 집에서 노는 자식 놈'에서 '능력은 있는데 집에서 노는 자식 놈'이 되었다.

    어머니에게 그는 '컴퓨터 귀신이 붙은 안타까운 내 자식'에서 '여전히 컴퓨터 귀신은 붙어 있지만 알고 보면 능력이 좀 있을지도 모르는 썩을 놈의 자식'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예원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화 없이 그를 잉여 인간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굳건하게도.

    "나가!"

    현관 밖으로 쫓겨난 이지혁이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엄마!"

    "왜!"

    "돈은 주고 내보내야지."

    순간, 집 안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쿵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지혁은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달아났다.

    잡히면 최소한 중상이다.

    "엄마, 나 저녁에 올게!"

    "오지 마! 그냥 나가!"

    이지혁은 집에서 도망 나왔다. 하지만 백수인 그가 갈 곳이 어디 있으랴. 급하게 도망 나온다고 지갑도 못 챙겨 나왔으니, 돈 드는 곳은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아파트 공원 벤치에 오도카니 앉았다.

    "아니, 내가 그 개고생을 하고 왔는데 여기선 좀 잉여롭게 살 수도 있는 거지. 천 년을 고생해 봐라, 뭘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가."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5년이다.

    하지만 5년이라고 해도 적어도 1년 정도는 잔소리 없이 봐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조금 놀긴 했다, 조금.

    대책 없이 조금 놀긴 했지만, 그 정도야 이해해 줄 수 있는 부분 아닌가!

    "하······."

    이지혁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저녁까지 어디서 뭘 하나?"

    엄마가 잔뜩 독이 올라 있으니 적어도 세네 시간은 시간을 때우다 집에 들어가야 살인 사건 피해자로 보도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

    재빠르게 지갑을 챙겨 나오지 못한 것을 보면 아직 현대에 적응을 완벽히 한 건 아닌 모양이다.

    베라프로 끌려가기 전이었다면 몽둥이와 식칼과 부침개가 허공을 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지갑은 챙겨 나왔을 텐데!

    아쉬워하면 뭐하나, 이미 지나간 것을.

    중요한 건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다.

    "야."

    이지혁이 허공을 향해 말했다.

    "돈 좀 있냐? 좀 빌려줘 봐."

    대답은 없었다.

    "안 떼먹어.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줄 테니까, 이만 원만 줘봐!"

    허공과 협상을 시도하는 이지혁을 보며 몇몇 사람들이 혀를 차며 지나갔다.

    그때, 허공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 * *

    수면에 이는 파문처럼 일렁이던 허공에서 한 여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단발머리를 한 여인은 아직 여자라기보다는 소녀라 불러야 할 만큼 앳된 모습이었다. 얼굴은 귀염상이지만 표정이 워낙 무뚝뚝해서 귀여움이 드러나지 않았다.

    도가윤.

    그녀가 지금 이지혁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떻게 알았지?"

    이지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콜라 하나 사 주면 말해주지."

    "비이성적 교환. 교환할 가치 없음."

    "그럼 말든가."

    "……."

    도가윤의 모습이 순간 사라진다 싶더니, 몇 분 후 그녀가 손에 콜라 캔을 들고 나타났다.

    "땡큐."

    "대답 먼저."

    "거, 야박하네."

    이지혁은 손을 내밀어 도가윤이 들고 있는 콜라 캔을 뺏어 들었다. 도가윤 역시 순순히 콜라를 그에게 넘겼다.

    그래봤자 천 원짜리. 이걸로 협박이 될 리가 없다.

    "바보도 아니고, 집에서 나올 때부터 졸졸 따라오는데 눈치 못 챌 이유가 있나?"

    "은신 중이었음. 알아챌 수 없음. 알려지지 않은 기술이 있을 것이라 추정."

    "뭐, 그건 니들이 알아내야 할 일이지. 겨우 천 원짜리 콜라 하나로 빼내기엔 너무 고급 정보지?"

    도가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뭐지, 이자는?

    KSF에서도 자신의 은신 능력은 인정 받고 있다. 그렇기에 대게이트전보다는 요인 감시 쪽의 임무를 주로 맡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근접 감시를 시작한 지 불과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 버리다니!

    그녀가 감시 임무를 시작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평가 수정. 판단할 수 없음.'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말 많은 허당이라고 생각했는데, 매번 볼 때마다 자꾸 새로운 모습이 툭툭 튀어나온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동안 수많은 능력자들을 감시했지만, 이처럼 몇 번이고 평가를 수정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지혁을 감시하면서부터는 벌써 몇 번째 평가를 수정하고 있었다.

    "뭐, 그건 됐고, 돈 좀 빌려주라."

    도가윤의 무표정이 조금 무너졌다.

    맡겨놓은 것도 아니고, 돈 빌려 달라는 사람이 뭘 믿고 저리 당당하단 말인가.

    그리고 언제 봤다고 자신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없다."

    "이만 원만!"

    "……."

    뭔가 저렴한 액수에 도가윤은 말문이 막혀왔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이만 원이면 빌려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교묘한 협상이다.

    "없다."

    "만 원!"

    도가윤이 멍한 얼굴로 이지혁을 바라보았다.

    지금 액수로 협상할 상황이 아니지 않나?

    설마 진짜 이만 원이 없겠는가. 주기 싫다는 걸 돌려 말한 거지.

    "없다."

    "오천 원!"

    도가윤은 이제 괴이한 생물체를 바라보는 눈으로 이지혁을 살폈다.

    눈꼬리가 파들파들 떨리는 것이, 정말 간절한 모양이다.

    오천 원이면 지나가다 적선 통에도 던져 넣을 수 있는 금액인데, 그 정도야 빌려줘도…….

    아니, 그보다 이렇게 계속 거절하다 보면 저 액수가 어디까지 떨어지는 걸까?

    한 500원까지 낮춰볼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감시하다 들킨 바람에 자존심도 상하고 어떻게 알아낸 건지 확인하려 모습을 드러냈는데, 어느 순간 얼마를 빌려줄 것인지 협상을 하고 있다.

    '구걸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라 짐작. 항목 추가.'

    평가 항목에 하나를 더 추가한 도가윤이 싸늘한 눈으로 이지혁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말해주면 이만 원."

    이지혁이 피식 웃었다.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휘휘 젓는다.

    '그래도 이만 원은 너무했나?'

    명절에 애들 세뱃돈 주는 것도 아니고, 이만 원에 정보를 캐내겠다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평소라면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텐데, 이 인간과 함께 있다 보니 판단력이 흐려진 모양이다.

    그런 도가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지혁이 퉁명스레 말했다.

    "진짜?"

    "……."

    "무르기 없기!"

    그만둘까?

    정말 이 인간이랑 이런 거래를 하는 게 옳을까?

    뭔가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준다."

    이지혁은 희희낙락하며 소리쳤다.

    "자, 봐봐."

    그의 손이 머리 위로 번쩍 들렸다. 그러더니 아래로 힘차게 내려쳐진다.

    휘잉!

    이지혁이 만들어낸 손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세차게 스치고 지나갔다.

    "느꼈지?"

    "뭘?"

    "바람 말이야, 바람!"

    "느꼈다. 그래서?"

    이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야."

    "……응?"

    "자, 설명 다 해줬으니 이만 원."

    도가윤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이해 불가! 알아들을 수 없다!"

    하지만 이지혁은 여전히 히죽히죽 웃을 뿐이었다.

    "난 분명히 설명해 준다고 했고, 넌 설명해 주면 이만 원을 준다고 했지. 그래서 나는 설명했고, 너는 설명을 들었어. 그런데 우리가 말한 내용 중에 내가 너를 반드시 이해시켜야 한다는 부분이 있었나?"

    "……없다."

    "논리적으로 틀린 부분이라도?"

    도가윤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대화라는 것은 암묵적인 합의와 함의로 이루어지는 것 아니던가!

    그 부분을 이렇게 물고 늘어진다면 무서워서 어디 입이나 열겠는가 말이다!

    이지혁은 도가윤의 표정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불만이 가득한 모양이니 힌트를 하나 더 주지. 네가 몸을 숨긴다고 해도 네 몸이 움직이면 공기는 그에 따라 흔들리기 마련이지. 여기까지."

    공기?

    설마 지금 그녀의 몸이 움직이면서 만들어낸 공기의 파동을 느꼈다는 건가?

    도가윤은 멍한 눈으로 이지혁을 바라보았다.

    그건 능력자고 아니고의 수준이 아니라 거의 박쥐 수준의 감지 능력 아닌가.

    '육체 계열이라 했는데?'

    지금까지의 분석 내용과 도가윤의 관찰에 따르면, 이지혁은 육체 계열과 공간 이동, 두 가지의 능력을 의심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말대로라면 거기에 감지 능력까지 추가해야 한다.

    대체 몇 가지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척.

    이지혁의 손이 앞으로 내밀어졌다.

    "내놔."

    "……."

    약속을 했고, 이지혁은 약속을 지켰다. 그러니 도가윤이 돈을 줘야 하는 게 옳다.

    그런데 뭘까?

    이 사기당하는 느낌은.

    명절날 무릎과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삼두고배하며 고이고이 모아온 세뱃돈을 '네가 가지고 있으면 잃어버리니까, 엄마가 보관했다가 네가 필요할 때 줄게'라는 얄팍한 수작에 낚여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도가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지갑에 손을 넣어 돈을 꺼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약속은 약속!

    "여기."

    이지혁은 도가윤이 내민 돈을 날름 낚아챘다.

    "감사, 감사. 아직 그래도 세상에는 따뜻한 온정이 남아 있었군."

    능글맞다.

    굳이 저런 대사는 안 해도 되지 않나?

    도가윤의 미간이 미묘하게 좁혀졌다.

    이 인간은 계속 감시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분명 능력이 있다는 건 알겠다.

    그것도 도가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뭔가가 있다는 감도 느껴진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감시한다고 해서 그에게서 뭔가를 밝혀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도가윤은 희희낙락하는 이지혁을 보았다.

    '이상한 인간.'

    분명 뭔가 능력이 있다.

    보통 인간이라면 그 능력을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 나사 몇 개 풀려 보이는 인간은 그런 욕구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도가윤에게는 천적 같은 인간인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이지혁이 눈치를 주었다 해도 도가윤이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지?'

    사실 이쯤 되면 그냥 임무 실패를 선언하고 복귀하는 게 옳다. 은밀한 감시가 불가능해진 시점부터 그녀의 임무는 지속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도가윤은 자신에게도 미묘한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때, 그녀의 허벅지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도가윤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들었다.

    * * *

    마녀.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쉰다. 하필이면 이 시점에 전화가 올 게 뭐람.

    도가윤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뭐해?

    "임무 중."

    - 임무 좀 내버려 두고 지원 좀 가줘야겠어. 거기 근처에 또 게이트가 생성됐어.

    "게이트?"

    게이트란 사실에 놀란 것이 아니다.

    주변에 또 게이트가 열렸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

    - 나도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지금 윗대가리들도 전부 비상 걸렸어.

    게이트란 건 이렇게 한 구역에 집중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게이트가 자주 열리는 곳이라 해도 한 번 게이트가 생성되면 최소 1년은 안전하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그런데 최근 두 달 사이에 이쪽 구역에만 게이트가 열린 횟수가 세 번이다.

    그런데 게이트가 또 열렸다고?

    "위치는?"

    - 폰으로 전송해 뒀어.

    "접수. 지체 없이 이동하겠음. 그리고……."

    - 응?

    도가윤이 담배를 뻑뻑 피워 대고 있는 이지혁을 보며 말했다.

    "감시 대상과 동행을 요청함."

    - 동행? 너 지금 걔랑 같이 있는 거야?

    "그러함."

    - 왜? 걸렸어? 네가?

    휴대폰을 잡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동행을 요청함."

    - 흐음, 사유는?

    "감시 대상의 능력 확인."

    - 오케이. 승인할게. 다만, 조심해야 해. 그 인간, 신분상으로는 민간인이라는 것 알고 있지?

    "승인 확인. 이행함."

    - 그래. 그럼 수고 좀 해줘. 최정훈 씨 먼저 갈 거야.

    "라져."

    도가윤은 이지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게이트가 생성됨. 동행을 요청함."

    이지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

    "그러함."

    "나?"

    "동어 반복. 무의미함. 효율성 없음."

    이지혁이 피식 웃더니 벤치에 등을 한껏 기댔다.

    "이보세요,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저는 민간인입니다. 내가 왜 거길 가야 하냐고. 바빠 보이는데, 어서 가보시죠?"

    도가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동행 및 현장에 머무르는 조건으로 3만 원."

    "누굴 거지로 아나?"

    "5만 원."

    "아니, 돈이 문제가 아니고, 나는 민간인이라니까?"

    "10만 원."

    "출발하시죠."

    이지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가윤은 그런 그를 보며 평가 항목에 인간쓰레기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 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위치가 어디죠?"

    "이쪽으로."

    앞서가는 도가윤을 따라 걸으며 이지혁은 뻑뻑해진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거, 아무래도 좀 이상한데?'

    그도 이 세계에 온 이후로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 대부분은 놀았지만, 그래도 그 노는 틈틈이 정보라는 걸 수집했다. 그가 알기로도 게이트는 한 곳을 중심으로 이리 자주 열리지 않는다.

    '나 때문인 것 같은데, 이거.'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면 정보가 좀 더 필요하겠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이 상황에 연관이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이지혁의 이런 육감은 대체로 적중하는 편이었다.

    돈 몇 푼 때문에 가는 게 아니다. 좀 더 정보가 필요했다.

    만약 이지혁이 넘어오면서 뭔가 문제가 생긴 거라면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집 주변에서 계속 게이트가 열릴 테고, 안락한 삶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약 게이트가 이리 자주 열리는 이유가 이지혁이 이 주변으로 차원 이동을 했기 때문이라면…….

    "이사 가야지."

    "음?"

    "아니야."

    이지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요즘 집값도 싸다는데 다른 살기 좋은 곳을 알아봐야겠다고 다짐하는 이지혁이었다.

    원래 사건은 저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해결하는 사람 따로 있는 법이니.

    * * *

    끼이이이익!

    새하얀 세단이 거칠게 턴을 하며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반쯤 썩은 얼굴을 한 최정훈이 내렸다.

    "하······."

    나오는 건 한숨이요, 짓는 건 울상이다.

    대체 무슨 마가 끼었기에 게이트가 이리 연달아 열린다는 말인가. 게이트가 한 번 열릴 때마다 뒤처리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쌓이는데!

    '또 일주일은 집에 못 들어가겠네.'

    이젠 사무실이 집 같다.

    집의 침대는 너무 푹신해서 잠이 안 온다. 모름지기 침대란 사무실 구석탱이에 있는 간이 침대처럼 적당히 등이 배기고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부러질 듯해야 제맛인 법이다.

    "충성."

    "어. 충성."

    좌우에서 경례가 날아들었지만, 대충 받아주고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미 도착한 방위청 대대가 주변을 물샐틈없이 포위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게 말입니다······."

    안면이 있던 정인수의 부관이 상황을 설명했다.

    "배치는 다 됐어요?"

    "일단 저희 쪽은 끝났습니다."

    "대대장님은요?"

    "확인할 것 있다고 가셨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무전 칩니까?"

    "아니요. 그냥 한 번 물어본 거예요."

    "능력자들은요?"

    "지금 도착할 겁니다. 그럼 준비는 다 끝난 거죠?"

    "그게······."

    부관은 우물쭈물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왜 그러시죠?"

    "아무래도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최정훈은 등골을 타고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저 부관의 얼굴만 봐도 일이 뭔가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현장에 그 이지혁이 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이지혁이 아니고서야 게이트 출현 현장에 문제가 있을 리 없다. 절대로!

    최정훈은 머리가 쑤셔오는 것을 느끼며 부관의 뒤를 따랐다.

    오와 열을 칼같이 맞춰 대기하고 있는 대게이트 대대를 헤쳐 도착한 곳에서 최정훈은 자기가 무얼 보고 있는지 의심해야 했다.

    '저게 뭐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대체 뭘까?

    아니, 저거······.

    딱히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정신이 나갔다든가, 굉장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할 만한, 그런 일은 아닌데······.

    확실히 아니긴 한데······.

    그런데······.

    최정훈의 눈에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이지혁의 등이 들어왔다.

    그 이상하게도 얄미워 보이는 등짝에서 세 걸음쯤 떨어져 도가윤이 서 있었다.

    '쟤도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무표정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도가윤의 눈가가 푸들푸들 떨리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어쩌면 평생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저거 대체 뭐하는 거지?

    최정훈은 헛기침을 하며 이지혁에게로 다가갔다.

    목욕탕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아담한 의자에 쪼그려 앉아 있는 이지혁의 어깨 너머로 작은 게임기가 보였다.

    작은 조이스틱을 움켜잡은 이지혁의 등판이 실시간으로 움찔움찔거리고 있었다.

    "K.O!"

    케이오?

    "Perfect!"

    퍼펙트?

    타닥! 타다다닥!

    이지혁은 지금 상가 앞에 비치된 작은 게임기 앞에 쭈그려 앉아서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십여 미터 앞에 게이트가 있는데!

    바로 옆에 무장한 병력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순간, 최정훈은 이지혁의 머리를 쪼개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대체 저 인간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 거지?'

    그의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이들도 차마 말리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는 없는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최정훈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대한민국 국군의 치욕이다.

    소속을 떠나 최정훈은 그들에게 깊은 동정을 느꼈다.

    그들이 어디서 이런 황당한 경우를 겪어보았겠는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던 장교 하나가 최정훈에게 다가와 말했다.

    "오셨습니까?"

    "예. 별일은 없으······ 아뇨, 있네요. 별일 있죠. 있겠죠."

    장교는 처량한 얼굴로 한숨지었다.

    "그쪽 소속이죠?"

    "아닙니다. 아니에요! 정말 아닙니다!"

    최정훈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건 KSF의 명예가 달린 일이다.

    "그쪽 사람들이 데리고 왔는데, 그쪽 소속이 아니라고요?"

    "말하자면 좀 복잡한데······."

    "됐으니까, 저 양반 좀 어떻게 해주십쇼.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대령님 와서 저 꼴 보면 저희 다 초상납니다."

    "예, 알겠습니다."

    최정훈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이지혁에게로 다가갔다.

    사실 그라고 딱히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으, 으흠!"

    "아?"

    최정훈의 헛기침에 이지혁이 고개를 돌렸다.

    "어? 아저씨, 또 보네요."

    "예, 그러네요."

    그 말이 끝이다.

    이지혁은 대충 아는 척을 했다 싶었는지, 최정훈을 무시하고는 다시 게임에 빠져들었다.

    '지나가는 개를 봐도 그것보다는 반가워하겠다.'

    최정훈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평정심!'

    이지혁이 하는 짓거리에 일일이 반응하다가는 수명만 짧아질 뿐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최정훈이었다.

    그런데······ 이지혁도 이지혁이지만, 자꾸 저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언 피스트 6탄인가?'

    취직하기 전에는 많이 했었는데.

    행정고시를 준비하느라 노량진에 살 무렵, 격투 게임의 성지라 불리던 모 게임장에서 밤낮없이 아이언 피스트를 하며 혼을 불사르던 시절도 있었다.

    이젠 다 추억이지.

    퇴근도 못하는데 뭔 놈의 게임인가. 사놓기만 하고 포장도 못 뜯어본 소프트가 한가득이다.

    "낄낄낄낄."

    이지혁이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콤보를 넣기 시작했다.

    "저, 이지혁 씨······."

    "넹?"

    귀 후비면서 대답하지 말자.

    그게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 어린노무 시키야.

    마음이 자꾸 말을 한다.

    "여기 지금 작전구역인데요."

    "저도 그렇게 들은 것 같네요."

    "그런데 대체 왜 여기서 게임을 하고 계시는 건지?"

    이지혁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저 아가씨가 같이 가면 돈 준다고 해서 따라왔는데, 딱히 할 건 없고 지루하던 차에 마침 여기 게임기가 있기에 좀 해보는 중이죠, 뭐."

    "아, 그러시군요."

    제발 좀 정상적으로 살자.

    정상적으로!

    사람답게 사는 게 뭐가 그리 힘드냐.

    그냥 남들은 안 할 것 같은 일은 안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게 그렇게 힘드냐?

    자꾸 마음속으로 절규하는 법을 배우는 최정훈이었다.

    "그런데 이지혁 씨."

    "말씀하세요."

    "여기가 이제 곧 작전이 벌어질 것 같아서 그런데, 계속 거기서 게임하실 건가요?"

    "아? 가도 돼요?"

    "네?"

    "저는 가고 싶은데 저 아가씨가 주기로 한 돈을 아직 안 줘서요. 저도 여기 뭐 꿀 발라놓은 것도 아니고, 돈만 주시면 갈게요."

    최정훈은 말없이 도가윤을 바라보았다.

    도리도리.

    하지만 도가윤은 그의 눈빛을 거부했다.

    "왜!"

    "아직 안 됨!"

    단호한 도가윤의 반응에 최정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지혁 씨, 여긴 조금 있으면 총알이 쏟아지고 몬스터가 튀어나옵니다."

    "저도 좀 그만하고 싶은데, 게임이 끝나지를 않네요. 워낙 실력이 출중해서 그런가?"

    "하?"

    최정훈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지금 컴퓨터나 까고 있는 주제에 실력을 논하는 건가?

    그 허접한 실력으로?

    최정훈은 한 번 더 참아보기로 했다.

    "거, 돈은 제가 드릴 테니, 이제 그만하시는 게 어떠실까요?"

    "에이, 돈이 중요한 게 아니죠. 이 콤보 보이시죠? 제가 예전에 이걸로 좀 날렸거든요."

    "날려요?"

    최정훈이 피식 웃었다.

    웬만하면 좀 참아보려고 했는데, 더 이상은 안 되겠다.

    그는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가슴이 타오르는 걸 보니 아닌 모양이다. 그의 손은 풍신을 잊지 않고 있었다.

    드디어 이 버르장머리 없는 하룻강아지에게 어른의 무서움을 알려줄 시간이 온 것이다.

    어디 보자.

    게이트가 열리려면 아직 시간이 좀 있다.

    이 인간을 깔끔하게 치우고 남은 배치를 지시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신경을 긁는 이 인간을 이곳에 둔 채 지시를 할 것인가.

    어느 쪽의 효율이 높을지는 빤하다.

    완벽한 이유가 만들어졌다.

    "그럼 지면 그만하시겠네요?"

    "그럼요. 그런데 제가 질 일이 있어야죠."

    "그래요? 그럼 어디······."

    최정훈의 눈이 빛났다.

    그의 안에 봉인되었던 승부 본능이 지금 그의 검은 슈트를 뚫으며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평소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던 가르마를 가볍게 흐트러뜨린 최정훈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흠?"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건지, 이지혁도 긴장한 기색으로 최정훈을 바라보았다.

    "그럼 제가······."

    이 순간, 남자의 피할 수 없는 승부가 시작되었다.

    "패배가 뭔지 알려 드리죠."

    * * *

    믿었다.

    평소에 수도 없이 갈궈 대긴 했지만······.

    그의 능력을 믿었고, 그의 수완을 믿었고, 그의 인간됨을 믿었다.

    KSF 최고의 엘리트.

    그 수완과 능력만으로 능력자들이 득실득실대는 KSF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립한 남자.

    일반인들의 희망, 그 자체.

    그래,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기에 구박하고 화내고 짜증을 내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슴 넓은 남자이니까!

    하지만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던 믿음이 산산이 깨지고 있었다.

    서아영은 할 말을 잃은 채 그녀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수십 명의 남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저 끔찍한 광경을.

    그 한중간에서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애나 하라고 만들어놓은 듯한 작은 게임기에 들러붙어 있는 그들을.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이해해 보려고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서른이 넘은 사람이 열 살이나 차이가 나는 애를 상대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버럭버럭 소리 지르는 장면만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거, 자꾸 밀지 말라고요!"

    "좁은 걸 어쩌라고요."

    "왜 자꾸 팔을 툭툭, 치고 그럽니까! 진짜!"

    "좁아서 그래요. 좁아서."

    "와, 진짜 게임 더럽게 하네! 진짜!"

    "좁아서 그렇다니까요."

    최정훈은 짜증과 울분을 한껏 담아 소리쳤다.

    실력대로라면 상대도 안 될 놈이다. 그런데 이놈이 게임을 너무 더럽게 한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버튼을 과격하게 누르는 척하며 오른쪽 팔꿈치로 스틱을 잡고 있는 자신의 팔을 툭툭 밀어 댄다!

    이게 대체 무슨 개매너란 말인가!

    그렇다고 반칙을 주장하자니 성인 남성 둘이서 대전을 즐기기에는 그들 앞에 놓인 게임기가 너무도 아담하다.

    구조상 어깨가 맞붙고 팔꿈치가 슬그머니 넘어올 만도 하다.

    사실 그런 정도였다면 그도 불만을 표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놈은 그런 정도가 아니라, 그 상황을 교묘히 이용해서 그의 조작을 방해하고 있었다.

    "팔 자꾸 치지 말라니까요!"

    "에이, 그거 때문에 지는 거 아닌 것 같은데?"

    "뭐요? 내가 그 팔꿈치만 아니었어도 벌써 이겼어요!"

    "참 변명이 실시간으로 업뎃되네. 버전 업 쩝니다."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요! 왜 꼭 결정적일 때 팔을 밀어 대는 거냐고요!"

    "결정적일 때니까 힘이 들어가는 거죠!"

    "와!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네! 자리 한 번 바꿉시다!"

    이지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싫~은~데~요~"

    "한 번만! 한 번만 바꿔서 하자니까요! 진짜로 한 번이면 됩니다! 딱 한 번만!"

    "그 말만 좀 덜해도 한 판은 이겼겠다. 아이고, 뜨셨네. 떴으면 죽어야죠."

    "와, 진짜! 이따위로 게임할 겁니까?"

    그 순간, 서아영의 머리에서 뭔가가 투둑, 끊어졌다.

    끊어진 그녀의 이성은 사자후가 되어 터져 나왔다.

    "야아아아아아! 이 화상아아아아아!"

    * * *

    플레임 위치의 불꽃이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그러니까……."

    서아영은 연신 손부채질을 해 댔다.

    이 열을 식히지 못하면 어느 순간 눈앞에 있는 이 남자를 태워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게임을 하셨다?"

    "아니, 원래는 한 판이면 끝나는 일이었는데, 이 양반이 게임을 너무 더럽게 하니까!"

    "꼭 지고 나면 더럽게 한다고 그러더라."

    "실제로 더럽게 했잖습니까! 이게 뭐 축굽니까? 축구예요? 아니, 축구도 아니지! 난 뭔 무에타이 하는 줄 알았네!"

    "제가 무에타이 캐릭을 잘 쓰긴 하죠."

    "아, 그래서 실제로도 무에타이를 하셨구나?"

    실로 훌륭한 이차전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서아영은 그저 열이 뻗칠 뿐이었다.

    "손모가지 조이스틱에 붙여 버리기 전에 조용하시죠?"

    "예."

    "넵."

    서아영은 냅다 소리쳤다.

    "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이에요, 없는 사람이에요!"

    최정훈은 입을 다물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여기가 어디에요! 게이트 열리는 곳 아니에요? 주변 상황 통제하기도 바쁜 시간에 게임을 하고 있어요? 최정훈 씨, 왜 그래요? 스트레스로 맛이 갔어요? 잘라 달라고 시위하는 거예요, 뭐예요!"

    "죄송합니다."

    마음의 땀이 흐른다.

    저 빌어먹을 놈이 팔꿈치만 쓰지 않았어도 이런 비참한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아저씨."

    "……네?"

    "연습 좀 하셔야겠어요. 실력이 영 아니네요."

    하느님.

    저 새끼 죽이고 지옥 가겠습니다.

    "당신이 더 문제야! 왜 여기서 게임질이야, 게임질이!"

    이지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네, 죄송합니다."

    이상하다.

    저 깐죽 대마왕이 깐죽거리지 않고 고분고분 사과를 한다?

    "통제구역에서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는 것도 몰라요?"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뭔 말을 해야 하지?

    서아영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화내고 싶다!

    짜증 내고 싶다!

    "그러니까!"

    "예, 제가 다 잘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사과하지 말라고!

    깐죽거리라고!

    그래야 꼬투리라도 잡지!

    그렇게 사과해 버리면 어디서 이 분을 풀어야 해!

    "최정훈 씨!"

    "예?"

    "그러면 안 되는 거 몰라요?"

    "……저군요."

    최정훈은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다.

    행정고시에 합격했을 때만 해도 어머니가 참 좋아하셨는데.

    자식이 이런 꼴을 당할 줄 알았다면 절대 좋아하지 않으셨겠지?

    구름이 흐려 보이는 건 눈물이 나서가 아냐.

    "저……."

    구세주가 나타났다.

    "무슨 일입니까?"

    일순 사무 모드로 돌입한 최정훈이 나타난 이를 반겼다.

    "은근슬쩍 넘기려고 하지 말라구요!"

    서아영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난 못 들은 거다.

    "무슨 일이냐니까요?"

    빨리 말해! 이 상황을 넘길 수 있게!

    "게이트가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네?"

    최정훈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얼마나 빠르다는 겁니까? 좀 더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까지는 최소한 게이트 발현 시점부터 활성 시점까지 3일은 소요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지금 게이트 발현 시점부터 겨우 25시간 경과했는데 거의 열릴 지경입니다."

    "흐으음……."

    최정훈은 심각해진 얼굴로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이게 특이 케이스가 아니라는 게 문제인데…….'

    한 주 정도 전부터 이러한 경우가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다.

    아직 모든 게이트가 이러한 현상을 보이는 건 아니지만, 이미 각국마다 두어 번은 이런 현상을 겪고 있었다.

    '보통 일이 아니야.'

    만약 이러한 현상이 일반적으로 벌어지게 된다면,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대게이트 대처법은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강국의 지원을 받아 겨우겨우 대처하고 있는 약소국들은 일시에 균형을 잃어버릴 확률도 높았다.

    하나 그건 나중의 일이고,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이 중요했다.

    "대원들은?"

    "도착함."

    도가윤이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주변을 포위한 병력들 사이로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가장 앞에서 오던 근육질의 남자가 그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더니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이언 박성찬.

    백화점 사태 때 인간 기둥이 되었던 그가 이지혁을 알아보고는 삿대질을 해 댔다.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내가 너 때문에 무슨 꼴을 당한 줄 알아?"

    이지혁의 대답은 간단했다.

    "누구?"

    "뭐야! 나야, 나! 너, 나 기억 못하냐?"

    "아시는 분?"

    최정훈은 이지혁의 뜬금없는 물음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때 백화점에서……."

    "아."

    이지혁이 손뼉을 짝, 치며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때 그 사람이구나. 반가워요."

    '진짜 잊고 있었군.'

    저게 놀리려고 하는 짓이 아니라는 게 더 문제였다. 사람을 삼 일 동안 잠도 못 자게 그 꼴을 만들어뒀으면 적어도 기억은 해 줘야지.

    물론 이지혁이 뭘 잘못한 건 아니니 할 말은 없지만.

    하지만 박성찬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반가워? 반가아워? 야, 이 새끼야! 내가 너 때문에 삼 일 동안 무슨 꼴을 당한 줄 알아?"

    "거기 삼 일이나 있었어요?"

    "그래! 삼 일이나 있었다! 삼 일이나!"

    "아……."

    이지혁이 정말 안타깝다는 얼굴로 물었다.

    "삼 일이나?"

    "그래! 삼 일 동안 기둥 받치고 있는다고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났다!"

    "그럼……."

    "뭐?"

    "화장실은?"

    주위가 조용해졌다.

    "어? 아, 아니, 화장실은……."

    "거, 덩치 보니 많이 드실 것 같은데, 삼 일 동안이나 화장실을 못 가셨으면, 그……."

    "아, 아니야!"

    "기저귀?"

    "아니야! 안 찼어!"

    주변 사람들이 슬금슬금 물러나는 게 느껴진다. 박성찬은 필사적으로 손을 휘저었다.

    "아니야! 진짜야! 아냐!"

    "그걸 참으셨나?"

    "물론!"

    "진짜로?"

    "10여 초만 더 늦었으면 아마 난 이 자리에 없었겠지."

    "다행이네요."

    이지혁은 안도했다는 듯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이게 아니잖아! 이 새끼야!"

    박성찬이 근육을 꿈틀거리며 소리쳤다.

    "아! 시끄러우니까 구석에 박혀 있어!"

    "어느…… 예, 박혀 있죠. 뭐, 그게 어렵다고."

    박성찬이 귀기를 풀풀 날리는 서아영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주저 없이 구석에 박혔다.

    "쯧쯧쯧."

    이지혁의 혀 차는 소리가 아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박성찬은 눈 딱 감고 외면했다.

    '마녀한테 잘못 보이면 지옥 본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었다.

    '아니, 근데 저 새끼는 뭐지?'

    그러고 보니 저 인간은 대체 뭔데 저 마녀가 있는 곳에서 저리 여유롭게 혀까지 차고 있다는 말인가.

    웬만큼 거물이 아니고서야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박성찬이 이지혁에 대한 궁금증을 느낄 즈음, 서아영은 복잡해진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언제 열릴지 모르겠다?"

    "예. 조금 전에 95%에 도달하더니 멈췄습니다. 그 이후로 진척이 없는 상황입니다."

    "대령님은?"

    "상부랑 연락 중이십니다."

    "연락한다고 윗대가리들이 뭘 아나?"

    부관은 대답하기 곤란한지 말을 삼켰다.

    서아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붉은 물결이 일렁인다. 저 일렁이는 물결이 어느 순간 그 입을 벌리면 그 안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올 것이다.

    "대피는?"

    "반경 5㎞ 끝났습니다."

    "5㎞? 장난해요? 그걸로 뭘 어쩌겠다고?"

    최정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심 한가운데서 사람 대피시키는 게 쉬운 일입니까? 5㎞ 확보하는 데도 가용 인력에 경찰 협조도 모자라서 향우회 인원들까지 동원했습니다. 지금도 계속 대피 중입니다. 개미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라고요."

    "그래서 게임하고 계셨나?"

    "……."

    최정훈은 직감했다.

    이거… 평생 간다.

    저 망할 계집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그날까지, 그는 이 사건으로 두고두고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이번 상황만 끝나면…….'

    최정훈이 주머니에 느껴지는 사직서를 굳게 움켜잡았다.

    "니들도 긴장 타고 대기하고 있어."

    "예."

    아이언과 함께 도착한 능력자들이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이지혁은 그 광경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좀 높은 사람인가?'

    그동안 워낙 쉽게 쉽게 엮이다 보니 더없이 만만해 보였는데, 지금 하는 거 보니 지위가 꽤 높은 모양이다.

    "그리고……."

    서아영이 이지혁을 보고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저 인간은 또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서아영은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주물렀다.

    혹시나 주름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최근에는 저 인간 때문에 얼굴을 펼 날이 없다.

    그녀는 이지혁을 내버려 두고 도가윤을 노려보았다.

    "어쩔 생각이야!"

    도가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생각 필요 없음."

    "뭐? 아무 생각 없다는 거야?"

    도가윤이 고개를 저었다.

    "정정해야 함. 생각 없는 게 아님. 생각이 필요하지 않음."

    "그건 또 뭔 소리야?"

    "게이트 발생 시 주변에 존재. 항시 문제가 생김."

    "어?"

    "사건을 만들 필요 없음. 자체적으로 사건이 생김. 집을 벗어났을 시 확률적으로는 100%임."

    최정훈이 질린 얼굴로 이지혁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인간이 집 밖에서 설치는 걸 본 게 이번으로 세 번다.

    그런데 그 세 번 모두 게이트가 열렸고, 이지혁이 거기에 휘말렸다.

    이번에도?

    '미묘하긴 한데.'

    한 번은 최정훈이 데리고 갔고, 이번에는 도가윤이 데리고 왔으니, 가는 곳마다 휘말린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아니. 그런 것까지 감안한다면 거의 걸어 다니는 게이트 발생기나 인간 재난 수준 아닌가?'

    물론 일개 인간이 게이트 발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가는 족족 게이트가 열리는 곳만 찾아다니는 것도 재능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불행을 몰고 다니는 재능.

    "게, 게이트 변화합니다!"

    최정훈의 고개가 돌아갔다.

    96.

    측정기의 수치가 변해 있었다. 95였던 수치가 96으로 변했다.

    "자, 이제 언제 열릴지 모르니까 비상대기…… 뭐야, 저거!"

    97, 98, 99…….

    순식간에 수치가 연속으로 변화한다.

    "게이트! 게이트 열립니다! 게이트 열립니다!"

    서아영이 단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위치로!"

    능력자들이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난다.

    포위하고 있는 군 병력 뒤로 빠르게!

    '어?'

    최정훈의 손에 잡혀 질질 끌려가던 이지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은 게이트 앞을 능력 있는 것들이 틀어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정인수 대령 어디 갔어?"

    "대령님이다, 대령님! 여기 있으니까 닥치고 물러나기나 해!"

    어느새 지휘소에 나타난 정인수가 소리를 빽! 질렀다.

    "열립니다!"

    "사격 준비!"

    긴장된 목소리와 함께 게이트가 환한 빛을 발하더니, 차원의 틈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물 같기도 하고, 공기의 덩어리 같기도 한, 흐물거리는 형상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뭐지?"

    서아영이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최정훈의 대답이 빠르게 따라 붙었다.

    "처음 보는 유형입니다. 다들 조심하십시오!"

    이제까지 등장한 적 없는 형태의 괴물이었다.

    "대원들 대기하고! 정인수 대령님!"

    "알아! 사격 준비!"

    이지혁은 그 광경을 지켜보고 눈을 떨었다.

    '아니, 저거……!'

    * * *

    저거, 브라드 아닌가?'

    브라드.

    마력으로 이루어진 집약 생명체.

    베라프에서도 흔치 않은 형태의 몬스터다.

    정확히 말하자면, 몬스터라기보다는 요정 계열에 가까웠지만.

    '미묘하게 다른데…….'

    이지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번에 나타난 고블린도 베라프의 고블린과 매우 흡사했지만 분명 조금 달랐다. 베라프의 고블린보다 약했고, 생김새도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브라드도 그랬다.

    느낌은 비슷한데, 색이라든가 형태가 미묘하게 다르다.

    '단순히 우연인가?'

    이지혁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서아영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화력대, 사격 준비! 대원들은 후방 지원! 근접계는 나서지 말고, 원격계는 언제든 화력 지원할 수 있도록 대기해!"

    최아영의 지시와 함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이뤄졌다.

    '호오?'

    성격이 더러운 건 둘째 치더라도, 지휘는 깔끔하고 합리적이다.

    '윗대가리치고는 말이지.'

    베라프에서도 몬스터를 상대하는 대규모 전투야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때 가장 위험한 건 바로 몬스터가 아니라 생각 없는 지휘관이다.

    지휘관이 제대로 된 놈이 아니면 보통 몬스터에게 다짜고짜 기사를 돌격시키고 법사로 지원 때리고, 성직자로 축복 뿌리며, 일반 군대로 지원을 시키는데…….

    그런 식으로 전투를 하게 되면 해결 자체는 빠르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고위 능력자인 기사들을 다수 잃게 된다. 그럼 반복되는 전투에서의 소모를 버틸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서아영의 지휘는 꽤나 적절했다.

    일단은 보충되기 어려운 주요 전력의 소모를 최소화하며 군대를 투입하여 몬스터의 성향과 공략법을 찾아본 뒤에 해결하는 방식.

    '나이도 어린 게 그런 걸 어디서 배웠지?'

    저 경험이 풀풀 오러처럼 피어오르는 공정식 대령이 군말없이 서아영의 지시를 따르는 걸 보면 능력은 확실한 모양이었다. 의외로 말이다.

    "사격 개시!"

    투두두두두!

    서아영의 지시와 함께 소총이 불을 뿜었다.

    건물 꼭대기에 배치된 MG 50까지 화력지원을 하자 아스팔트가 진흙처럼 파이며 튀어 올랐다.

    "으음……."

    서아영은 미간을 좁혔다.

    "뭐야! 이거!"

    "안 먹혀, 안 먹힌다!"

    총탄이 브라드를 그냥 뚫고 지나갔다. 이제껏 나타난 몬스터 중 총탄의 화력이 전혀 피해를 못 주는 경우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아예 통과되어 버리는 경우는 없었다.

    순식간에 혼란이 퍼져 나간다.

    서아영이 소리쳤다.

    "지원화기!"

    더 이상의 지시는 무의미했다. 박격포와 RPG-7이 몬스터들을 향해 날아갔다.

    콰콰쾅!

    터져 나오는 폭음에 귀가 따끔하다.

    하지만 브라드는 조금 흩어지는 듯한 모습을 보일 뿐,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안 되지.'

    이지혁은 혀를 찼다.

    그가 알고 있는 브라드와 지금 눈앞에 있는 저 짝퉁 브라드가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짓들은 모두 뻘짓이다.

    왜냐면… 브라드는 물리 면역이니까.

    물리적인 타격은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마법을 통한 소멸이나 신성력을 통한 정화. 무투 계열이 마나를 활용하여 타격을 주는 방법도 있지만, 그 방법도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러니 마나가 전혀 실려 있지 않은 총탄이나 폭탄으로는 피해를 줄 수가 없다.

    "안 통합니다!"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서아영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지속사! 원거리 대원들 지원 개시!"

    밀집해 있는 병력 뒤에서 형형색색의 빛이 날아든다.

    지금까지 여유롭게 허공을 유영하던 브라드들이 빛과 충돌하며 거칠게 몸을 떨었다.

    서아영의 옆을 지키던 최정훈이 입을 열었다.

    "물리 계열은 효과가 없습니다. 에테르 직접 공격으로 섬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적 개체 수 증가 중. 화력을 올려야 합니다."

    "알겠어요. 원격 요원들 화력집중! 대령님! 일반 병력 뒤로 빼세요!"

    정인수는 가타부타 말없이 지시를 내렸다.

    화염과 뇌전이 떨어져 내린다.

    이지혁은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게이트 앞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마법이랑은 좀 다르군. 차라리 무투가 쪽의 능력과 흡사하겠어. 위력을 쉽게 뽑아낼 수 있는 대신에 변화가 제한된 건가? 재미있네.'

    화염을 뿜어내는 능력자는 아까부터 계속 화염을 뿜고 있고, 광원 형태의 능력자도 동일한 공격을 하고 있었다.

    베라프의 마도사들이 마나를 매개체로 다양한 속성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제한적인 모양새였다.

    '대신 빠르다.'

    마법사들이 수식과 계산을 이행해야 하느라 일정 이상의 로딩이 필요한 반면, 이곳의 능력자들은 로딩 없이 공격이 나간다.

    장단이 있다.

    수준이 낮은 능력자와 마도사가 맞붙었을 때는 마도사가 아무것도 못해보고 소멸될 테지만, 거꾸로 수준이 높은 마도사와 능력자가 붙는다면 능력자는 마도사의 장난감이 될 것이다.

    "늘어납니다! 개체 수 계속 늘어납니다."

    "제길."

    서아영이 물러서는 소총 부대를 밀치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호오?"

    이지혁이 눈을 빛내며 서아영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만났던 능력자 중에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는 그녀였다. 이지혁의 본능이 그녀를 강자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럼 그녀는 어느 정도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엄호!"

    서아영이 앞으로 나서자 최정훈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지금까지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우락부락한 근접 계열 능력자들이 서아영의 주위를 호위했다.

    서아영의 양손이 허공으로 들어 올려지고, 허공에서 작은 화염덩어리가 나타났다.

    우우우웅.

    커다란 진동음과 함께 화염이 점차 커지더니, 이내 집채만 한 화염덩어리가 되어 강렬한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피해!"

    "물러서!"

    이지혁은 화염을 보며 감탄했다.

    "와, 세다."

    저만한 능력이면 베라프에서도 상급 마도사로 분류될 것이다. 이곳에 능력자가 출현한 게 5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한 재능이자 굉장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서아영이 만들어낸 화염이 브라드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자 제자리에서 흐느적거리던 브라드들이 화염과 직격하며 터져 나간다.

    콰아아아아!

    화염의 폭풍이 몰아치며 브라드들을 태우고 찢어발겼다.

    확실히 그녀의 능력은 인정해 줄 만했다.

    문제는 상대를 잘못 만났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저걸로 끝이겠지.

    하지만 브라드는 마나 집약 생명체.

    저런 식의 공격으로는 끝을 볼 수 없다.

    되레 위기감을 느낀 브라드는…….

    "어, 어어!"

    "뭉칩니다! 뭉치고 있습니다!"

    다급한 반응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뭉쳐 있던 브라드들의 절반 정도는 소멸되었다. 문제는 남아 있는 브라드들이었다.

    잔해처럼 흐느적거리던 브라드들이 한곳으로 뭉쳐 들기 시작했다.

    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오던 브라드들도 이내 합류하여 하나의 거대한 빛의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이지혁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위험한데."

    "무슨 말씀이시죠?"

    최정훈은 이지혁의 혼잣말을 놓치지 않았다.

    "아뇨. 뭐, 그냥."

    이지혁은 대충 둘러댔지만, 최정훈은 먹이를 문 늑대처럼 그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저 몬스터에 대해 아십니까?"

    "그건 모르는데,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줄은 알겠네요."

    최정훈이 의혹 가득한 얼굴로 이지혁을 응시했다.

    이 인간의 말을 더 들어봐야 하나?

    그럼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대화를 나누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이지혁은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브라드는 물리력이 없다.

    물리 공격을 받지 않는 대신 브라드도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다. 반쯤은 유체화 생명체이니까.

    아크 브라드쯤 되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 골치 아프겠지만, 일반 브라드 정도는 딱히 큰 위협이 되는 몬스터라고 볼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몬스터의 정의를 생각한다면 브라드는 몬스터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럼 왜 브라드가 몬스터로 분류되었는가.

    "조심하세요."

    "예?"

    브라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우웅우우웅!

    거대한 빛으로 뭉쳐 든 브라드가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더니, 주변 건물들을 향해 다가갔다.

    "대기!"

    무슨 일을 하는 줄 알 수 없으니 일단은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이었겠지만…….

    '그것도 오산이지.'

    콰르릉!

    브라드가 다가간 건물이 뜯겨 나가듯 브라드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주변의 두세 건물을 흡수한 브라드의 주변으로 콘크리트와 철근들이 어지럽게 회전했다. 그러더니 형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거대한 콘크리트 조각들 사이로 투명한 빛이 이어져 아교처럼 달라붙었다.

    "이게 뭐야?"

    최정훈의 신음이 들린다.

    나타나 것은 콘크리트와 철근들로 만들어진 거대한 거인.

    현대의 물품으로 만들어진 10미터 크기의 스톤 골렘이 그 웅장한 형체를 드러냈다.

    "세상에……."

    모두가 할 말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몬스터들을 상대해 왔지만, 이 광경은 뭔가 비현실적이다. 말이 10m지 웬만한 건물만 한 바위 거인이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것이다.

    "고, 공격!"

    최정훈이 이성을 되찾고 소리쳤다.

    그러자 각종 화기와 이능들이 스톤 골렘을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그뿐.

    형체가 생겨 직접적인 공격이 닿는다는 느낌을 주었을 뿐, 스톤 골렘은 쏟아지는 화망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쿵! 쿵!

    스톤 골렘이 전진을 시작한다.

    "피해!"

    밟히면 죽는다.

    그 사실을 직감한 이들이 공격을 멈추고 뿔뿔이 흩어졌다. 공포에 질린 군인들이 얽히고 넘어졌지만, 다행히 스톤 골렘의 진격이 느려서 밟히는 이들은 없었다.

    스톤 골렘은 공격을 가하는 이들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한쪽 방향으로 걸어갔다.

    쿵! 쿵! 쿵!

    말 그대로 한쪽 방향으로.

    우르르릉!

    건물이 있으면 건물을 들이받고 헤치며 걸어간다. 사람들을 미리 대피시켰기에 망정이지, 저 건물들에 사람들이 있었다면 대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아니, 이미 대참사지.

    건물이 무너지고, 차들이 날아가고…… 재산 피해로 따지면 실시간으로 세금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어, 어떻게 좀 해봐요!"

    최정훈이 이지혁을 잡고 소리쳤다.

    "아니, 왜 저보고 그러세요? 아저씨가 공무원인데, 공무원이 왜 일반인 보고 사태를 해결하라 그래요."

    "뭔가 아는 눈치더만! 지금 저 사태 안 보여요?"

    "잘 보이죠. 눈이 있으니까. 그런데 제가 뭘 어쩌겠어요."

    "저, 저거 못 막으면 곧 비대피 지역으로 들어간단 말입니다! 그럼 인명 피해가 얼마나 나올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 잘 막으셔야죠."

    이지혁은 최정훈의 손을 밀어냈다.

    능력자들이 달라붙어 골렘의 전진을 막으려 애쓰고 있지만, 중과부적.

    사람이 모기로 보일 수준이다.

    이지혁은 거침없이 전진하는 스톤 골렘의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 세계의 일은 이 세계에.

    이지혁은 그냥 자기한테 닥친 일만 해결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해결법도 애매하다.

    저걸 뭐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러니까…….

    어?

    이지혁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저거 참, 거침없이 가긴 하는데…….

    저거, 방향이 저게…….

    저쪽으로 가면 분명히…….

    이지혁이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 왜?!

    "엄마, 혹시 지금 집에 있어?"

    - 이제 출근하려고. 근데 너는 어디 있냐! 빨리 안 기어 들어와?

    엄마가 내쫓아놓고…….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 엄마, 일단 빨리 집에서 나와. 나오고, 궁금한 게 있는데……."

    - 말하려무나.

    "엄마, 우리 집 전세야?"

    - 아니. 샀지. 우리 거야.

    "아, 그렇구나. 혹시 우리 집이 천재지변이나 몬스터 때문에 무너지거나 하면 어떻게 돼?"

    - 어떻게 되긴.

    어머니의 목소리가 화사하게 들린다.

    - 길에 나앉는 거지. 그런 경우에 가는 보호소가 있긴 한데, 컴퓨터는 없을걸? 그런데 왜?

    "아냐, 엄마. 일단 끊을게. 엄마, 빨리 출근해."

    - 빨리 집에 안 들어와 있으면 죽을 줄 알아!

    "알았어."

    전화를 끊은 이지혁은 저기 멀어져 가는 스톤 골렘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너 거기 안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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