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스트 DUST-238화 (238/261)

해안선 (2)

해안선을 따라 부산을 도는 것은 처음이었다. 바다를 전망으로 세워진 높은 빌딩들과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화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물들을 뒤로하고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광안대교가 갈치를 토막 낸 것처럼 잘려 있었다. 안쪽에 있는 고층아파트 단지와 주상 복합은 멀쩡한 것이 제법 많았다. 사람의 흔적이 있나 싶어 잠시 멈춰 세우고 쌍안경으로 부서지지 않은 지역을 탐색했다. 10분가량 탐색을 했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부산은 그냥 지나가야 하나? 그 순간 배가 살짝 흔들렸다.

파도?

쿵.

퉁.

요트 뒷부분이 내리눌렸다. 뭐가 물속에서 잡아당기듯 아래로 푹 들어갔던 선미가 고무공 튕기듯 튕겨 올랐다. 뱀장어? 바다뱀처럼 생긴 놈이 요트 뒤에 올라타 주둥이를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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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굵기가 성인 허벅지보다 더 굵은 놈의 길이는 3m가 훌쩍 넘는 길이었다. 갑자기 요트 위로 올라타다니. 두근-뱀장어가 아니다. 위기감응. 심장을 옥죄는 느낌. 저건 위험하다.

“타올라라!”

화르르륵!

치이이익!

불꽃이 제대로 붙지 않아? 불꽃이 안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뚝뚝 떨어져 내렸다. 정신을 집중해 불꽃을 키웠다.

“타버려!”

집중하면 대전차 미사일도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염화 능력을 몇 초나 버티던 놈이었지만, 두 번 연속으로 불을 붙이자 견디지 못하고 발버둥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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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물로 뛰어들어.’ 발버둥 치다 물속으로 꺼져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놈은 물속으로 들어가기는커녕 요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하?!”

변종 들개와 멧돼지의 타액에는 소화액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놈들에게 물리면 제대로 재생되지 않았다. 소총탄도 막아내는 슬레이브의 피부가 변종 들개의 이빨에 힘없이 뜯겼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보다 변이된 짐승들이 더 까다로웠다.

근데 바다뱀이었다. 위기감응까지 발현됐던 것을 보면 위험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접근전을 피해 염화 능력으로 불을 질렀다.

콰득!

콰드드등!

놈이 선실을 박살내고 안쪽으로 파고드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름통!”

장기간 항해를 위해 쌓아둔 기름통이 선실 안쪽에 있었다. 불붙은 바다뱀이 선실 안쪽에서 난동을 부리다 기름통에 불이라도 붙는다면 최악이었다. 옆에 있는 소화기를 들고 바다뱀이 들어간 선실로 뛰어들었다. 물뱀은 엄청난 힘으로 선실 안쪽을 작살내고 난장판을 만들다 힘이 다했는지 풀썩 쓰러져있었다. 반사적으로 소화기부터 뿌렸다.

치이이이익.

소화기에서 하얀 분말가루가 뿜어지며 여기저기 붙은 작은 불꽃을 잡았다. 바다뱀이 조금만 더 난동을 부렸으면 기름통이 위험할 뻔했었다.

“씨발.”

저절로 욕이 나왔다. 정상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엉망일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2월 겨울 바다에 물뱀이라니, 아무리 부산 앞바다 수온이 높다고 하더라도 있을 리 없는 놈이었다. 애초에 우리나라에 물뱀이 서식했었나? 한여름 제주도라면 몰라도 부산 앞바다에서 바다뱀이라니.

자세히 살펴보니 바다뱀과는 조금 달라 보이기도 했다. 길게 생겼는데.

“이거 곰치인가?”

바다뱀인지 곰친지 들어만 봤지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고개가 저절로 저어졌다. 게다가 슬레이브라면 순식간에 숯덩이가 되고도 남을 정도로 강력한 불꽃을 이놈은 잠시나마 버텼다. 변종 들개도 삽시간에 타버렸던 불꽃이었는데 잠시나마 버틴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하는 짓도 이상했다. 불에 닿으면 반사적으로 움츠러들거나 살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드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요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치이이이익!

소화분말을 쏟아낸 소화기가 서서히 멈췄다. 고속으로 이동하던 요트를 따라 오다 요트가 멈추자 위로 올라온 것 같았다. ‘왜 올라왔지?’ 물속에 살고 있던 놈이 미쳤다고 풀쩍뛰어 오를 리 없다는 생각이 들자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바다뱀인지 곰치인지 모를 놈의 사체처리는 나중에 하고 엔진에 시동부터 다시 걸었다. 부릉. 푸륵. 낮은 소리와 함께 엔진에 시동이 걸렸다. 이윽고 잠시 흔들리던 요트가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바다를 갈랐다.

*

거대한 컨테이너 선박이 뒤엉켜 있는 항구 저편으로는 고급 요트들이 정박해 있었다. 반쯤은 불에 탔고, 나머지 요트들도 방치된 흔적이 역력했다. 고급 요트일수록 전자장비가 많이 들어가고 그만큼 EMP에 취약했다. 요트들의 상태를 보니 부산도 고고도 전술핵에 의한 EMP공격을 받은 것 같았다.

‘주요 도시는 전부 당했다고 봐야 하나?’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전자장비만 고장 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와 발전기도 고장 났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고장 난 발전기나 전자부품을 순식간에 수리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한 번 파괴된 것은 수리할 수 없다고 봐야 했다.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인적․물적 자원은 한계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EMP는 실질적으로 문명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이건 미친 짓이었다.

“병신 새끼들.”

뭐가 완전한 지배고, 뭐가 진화된 인류란 말인가? 이래서는 서서히 멸망해가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필립이 말했던 ‘속박에서 자유’라는 말도 시로가 말했던 ‘왕’이나 ‘지배자’도 의미 없었다. 문명이 사라진 세상에서 뭘 지배하고 무슨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건가?

“쯧-”

부르르릉

낮은 엔진 소리와 함께 서서히 서행하는 요트는 내 심정과는 달리 잔잔한 파도를 헤지며 나갔다.

펜트하우스에 있을 때, 확인을 해보겠다며 방벽으로 갔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방벽 안쪽으로 잠입해 제법 얻은 게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묘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뒤섞여 들었다.

봄이 되기 전에 한 번쯤은 나왔어야 했다. 지금은 아직 겨울. 봄이 오려면 최소한 한 달은 있어야 했다. 겨울에는 식물들도 움츠러들었다. 괴식물이나 변이를 일으킨 이끼, 넝쿨들도 카테고리가 식물에 들어간 이상 겨울에는 조금 둔해질 것이다. 상황을 확인하고 비밀실험실이 있는 오산과 평택을 다시 수색하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거대 곤충이나 변이를 일으킨 동물들을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

소형 전술핵을 쓰면서까지 연방과 동맹이 서로 싸웠다. 연방과 동맹은 각기 국제적인 조직이었다. 한반도에서 이렇게 싸웠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충돌했다는 소리였다. 그게 아니라 한국에서만 전술핵을 쓰고 EMP를 터뜨렸다면 대리전을 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본다면 뭔가 유의미한 실험결과가 나왔고 그 실험결과를 둘러싼 대리전 양상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찌 됐든 나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였다. 연방이나 동맹 측 생존자를 찾아 싸움의 결과만 알면 됐다.

계속 싸우고 있는지, 결판이 났는지. 결판이 났다면 어느 한쪽이 승리했는지 아니면 서로 영역을 인정하고 휴전을 했는지. 그것만 알면 그만이었다.

어느 한쪽이 승리했다면 최대한 빨리 울릉도나 제주도 같은 도서 지역으로 이동해 농성준비를 하는 것이 나았다. 싸우고 있는 도중이라면 이틈을 이용해 최대한 많은 물자를 뽑아내야 했다. 휴전 중이라면 양양에 있는 거점을 중심으로 북쪽에 있는 속초를 장악 강원도 동북부를 세력권으로 두고 차근차근 세력을 키우면 됐다.

‘운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레드 존의 그년이 떠올랐다. 운명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정교하게 조작된 인과의 흐름이었다. 실험으로 통제되는 상황에서 우연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원인이 있고 그 원인에 따른 결과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결과를 바꾸고 싶다면 원인을 바꿔야 했다.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원인을 잡기 위해서 홀로 나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운명 따위도 아니었고, 우연 따위도 아니었다. 내 선택이었다. 내 선택이어야만 했다.

*

배를 항구에 대는 것은 위험했다. 항구에서 200m가량 떨어진 곳에 닻을 내린 뒤, 비상용 고무보트를 이용해 항구로 들어갔다. 고급 아파트 단지와 연결된 요트 전용 항구에 들어서자 죽음의 흔적이 날 반겼다.

사태 초기에 배를 타고 도망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탈출하지 못하고 몰살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시체라고 보기에 민망할 정도인 모습들. 거의 머리카락과 백골이 뒤엉켜있는 모습이었다. 사태 초기에 벌어진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고 봐야 했다.

이게 이대로 방치됐다는 소리는 연방이든 동맹이든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장소라는 의미였다. 연방이든 동맹이든 방치한 장소가 떠올랐다. 타격조가 기피했던 장소, 동맹의 나경철도 따라오지 못했던 곳이 언뜻 생각났다.

‘레드 존.’

서울로 따지자면 동남부 지역. 이곳은 부산의 레드 존이라고 봐야 했다.

만에 하나 그렇다고 한다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노를 저어 재빨리 요트를 향해 되돌아갔다. 불안하면서도 뭔가 발견할 것만 같은 미묘한 감각이 나를 유혹했다. 전쟁의 향방이라든지 남부지방의 상황을 알고 싶다면 부산에서 정보를 얻는 것이 제일 정확했겠지만, 깔끔하게 포기했다.

열심히 노를 저어 요트를 향해 가는데 순간적으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전선을 생으로 심장에 꽂은 느낌. 욱신거리다 못해 반드시 죽는다는 감각. 고무보트를 돌려 노를 저었다. 되돌려 노를 젓는 순간 들리는 기이한 소리. 귀로 들리는 게 아니라 뇌로 직접 전달되는 것 같은 강한 파동에 몸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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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득.

닻을 내리 놓은 내 요트 한쪽이 작살났다. 내 요트로 올라온 3m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놈이 선미를 뚫고 대가리를 밀어 넣었다. 기우뚱 기울어지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으적으적. 씹는 소리.

처음에 요트로 올라온 그건 도망쳐 온 것이었다.

저걸 피해 도망쳐 온 것이었다. 기괴하게 생긴 것이었다. 사람의 얼굴을 구겨 놓은 것처럼 생긴 대가리. 그 입안으로 내가 태워 죽인 3m가 넘는 바다뱀이 자장면 면발처럼 빨려 들어갔다. 맨홀 뚜껑처럼 거대한 놈의 눈동자는 바싹 익은 맛을 음미하는 것처럼 좌우를 데굴데굴 살폈다. 거대한 주둥이가 느릿하게 움직일 때마다 타죽은 바다뱀이 놈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콰직.

놈의 상체 무게를 견디지 못한 요트가 서서히 박살나기 시작했다. 콰드드등. 낮은 소리와 함께 요트가 반으로 꺽이며 침몰했다. 하얀 물보라가 튀어 오르는 순간, 놈의 눈꺼풀 없는 눈동자는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봤다. 놈이.

필사적으로 노를 저었다. 방금 나왔던 선착장까지는 고작 50m가 남지 않았다. 놈과 나와의 거리는 150m.

‘무슨 미친 병신 같은.’

사람 얼굴처럼 생긴 대가리라니. 인면어도 아니고. 저런 물고기가 있다는 건 들어보지 못했다. 바다뱀처럼 기다란 몸뚱이에 길이는 족히 20m가 넘어 보였다.

“뭐야 저건?”

욱신거리는 심장. 놈이 따라온다는 소리였다. 수영은 익숙하지 않았다. 50m를 달린다면 4초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를 노 저어가려고 하니 굼벵이가 버둥거리는 느낌이었다. 요트가 침몰하고 그 사이로 어둑한 그림자가 물속에서 흔들렸다. 한번 수축했다 펼쳐지며 순식간에 50~60m를 따라오는 놈이었다.

“씨발.”

뛰어내릴까? 배낭은? 옆에 붙어있는 구명조끼로 배낭을 둘둘 말아 묶고 물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했다. 선착장까지는 고작 30m도 남지 않았다.

두근두근-

배낭에 로프를 감아 묶었다. 욱신- 그대로 고무보트를 박차고 점프했다. 허공에 붕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아래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입이 고무보트를 씹었다.

촤아-악!

콰지지직

고무보트가 그대로 한 입에 삼켜졌다. 으적. 씹은 놈의 눈동자에 의문이 떠올랐다. 알맹이가 없다는 것을 의아해 하는 눈빛. 놈의 눈알에 불을 질렀다.

화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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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것과 같은 소리. 정신이 흐트러지는 것과 동시에 놈의 한쪽 눈알을 태우던 불꽃이 꺼졌다.

풍덩!

허겁지겁 몸부림쳐 선착장에 올라갔다. 배낭에 묶어 놓은 로프를 잡아당겨 배낭을 회수했다. 배낭에 둘둘 말린 구명조끼를 벗겨내며 눈알을 불태운 놈을 쳐다봤다.

놈은 미친 듯이 대가리를 흔들었다. 하얗게 익었던 눈알이 밖으로 밀려 나가는 것처럼 빠졌다. 이어서 새싹이 나는 것처럼 돋아나는 눈알. 투명한 액체 속에 담긴 동공이 나를 보곤 작게 수축됐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위아래로 벌어지는 거대한 주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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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 골이 울리는 감각. 뇌로 직접 파고드는 소리와 함께 놈이 달려들었다.

“타올라라!”

“큿!”

불이 붙지 않았다. 놈의 기괴한 초음파가 문제였다. 선착장을 따라 달리자 놈이 선착장과 정박해 놓은 요트를 박살내며 날 추격했다. 바닥이 터지면서 여기저기 널려있던 백골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욱신-거리는 위기 감응에 반사적으로 메뚜기처럼 점프했다.

콰드득!

내가 있던 자리를 통째로 씹어버린 놈이 미꾸라지처럼 피한 나를 보고 다시 입을 벌렸다. 다시 쏘아지는 초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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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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