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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232화 (232/261)

합류 (6)

좀비에게 공격받지 않는다고 해서 슬레이브들이 식량을 가져온다면 남은 사람들은 뭘 하겠냐? 계속해서 그렇게 식량을 구해오고 자신들은 소비만 할 건가? 아니라면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날 따라갈 테니 내가 먹을 것을 챙기라고 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어떻게 할 것인지는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안경 낀 여자도 알고 있었다. 그녀도 1년 가까이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식량 취급받았던 그녀였다. 그러니 그녀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입을 다물고 눈치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 근저에는 내가 대놓고 죽이거나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오운도라는 사람의 다소 퉁명스러운 언사에도 무력행사를 하지 않았던 것이 주요했다. 예상대로였다.

인아와 유미는 오운도나 안경 낀 여자가 말하는 것을 듣고 약간 짜증이 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내가 여자를 보고 웃자, 여자는 자신이 뭔가 잘못했나 싶었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어. 그러니까.”

안경 뒤에 있는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이었다.

“큼. 내가 이야기함세.”

오운도가 끼어들었다. 오운도는 몇 발 남지 않은 탄띠가 걸린 k6중기관총을 옆에 세워놓고 큼큼 헛기침을 했다.

“저기 저 사람들은 변이를 일으킨 것 아닌가? 어떤 변이를 일으켰는지는 모르지만, 좀비들 사이를 돌아다녀도 공격받지 않았단 말이지. 그리고 자네 말에 토하나 달지 않고 따르는 것 같고. 그걸 보면 사람이 다 그렇지 않겠는가?”

대답대신 살짝 웃자, 오운도가 다시 큼-하고 헛기침을 한 뒤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무런 위협 없이 좀비들 사이를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누가 무익한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겠나. 그러니까 이 처자의 말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이상은 현실에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현실을 무시한 이상은 망상이 되고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연방이나 동맹, 레드 존의 그녀와는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양들을 먹이는 목자가 되길 원하는 건 아니었다.

“딱히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하나는 분명히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뭔가?”

“......”

“제가 원하는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겁니다. 당장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함께 하겠다고 하신 이상, 하나는 확실히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할까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무임승차는 없다. 모든 일에는 그에 합당한 대가가 따른다. 그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큼. 그거야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안 그렇소?”

오운도가 크게 대답하자. 사람들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전부 동의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

읍내 중심가에 있는 두 곳. 실내 체육관과 대형 마트는 서로 붙어있지 않았다. 쌍안경으로 확인해 보니 양측 모두 옥상에 경비들과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불바다가 된 이쪽 지역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내 체육관은 모르겠지만 대형 마트에는 여러 가지 물품이 있었다. 라이터 기름도 있었고 식용유나 술도 있었다. 화염병을 만들 재료를 뽑아내는 건 문제가 없었다. 그러니까 대형 마트를 둘러싼 좀비들은 마음만 먹으면 태워죽일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건 대형 마트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일부러 좀비들을 그냥 두고 있다는 소리였다.

“다른 생존자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고 그런 거겠죠?”

유미가 쌍안경을 내렸다. 인아는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는 실내 체육관을 바라봤다.

“실내 체육관에는 식량이 많지 않았을 텐데, 두 그룹이 적대적인 관계라면 머지않아 싸우겠군요.”

“그렇겠지. 우선 식량부터 챙기자. 대형 마트와 실내 체육관 주변은 피해서 작은 마트나 편의점, 식당을 중심으로 식량을 챙기면서 생존자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도록 해. 빗치나 변종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슬레이브들은 뭉쳐서 다니게 하고.”

인아가 곧바로 슬레이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슬레이브 다섯에 페니까지 끼어 여섯이 한꺼번에 이동하기 시작했다.

“음. 그런데 사람들을 감시하지 않아도 되나요?”

약간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유미가 사람들을 바라봤다. 오운도가 제일 연장자였고 앞장서서 나섰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오운도를 중심으로 뭉쳐있었다.

“도망치려고 한다면 그걸로 끝이겠지. 하지만 저 아저씨 그걸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 않아.”

“그래도 저건 아니지 않나요? 오운도가 실질적으로 민심? 사람들 마음? 그런 걸 장악할 수 있잖아요.”

유미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따지면 강원도로 먼저 보낸 김경태도 마찬가지였어.”

“맞아요. 김경태 아저씨도 배신할 가능성이 있잖아요. 근데 왜 그냥 보내셨어요? 차라리 페니나 인아를 같이 보내서 견제하도록 하는 게 낫지 않았어요?”

인아와 내가 동맹의 중심도시 대전에 들어간 사이, 유미와 페니는 철조망 밖에서 곤충들과 서바이벌을 하고 있었다. 대전에서 겪은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줬지만, 다른 것을 설명할 기회가 없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가? 기존의 민주주의는 불가능했다. 연방처럼 작심하고 계급사회를 만들고 전자화폐를 통해 통제하는 대신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안전을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동맹처럼 될 가능성이 컸다. 대전에서 봤던 동맹의 형태, 대의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한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나마 동맹은 군사력과 기술력에 규모까지 거대했기 때문에 버텼지 우리는 아니었다. 차라리 연방처럼 수직적인 구조가 더 생존하기엔 유리했다. 하지만 연방을 따라하는 것도 무리였다. 연방처럼 어느 정도 인프라가 구축된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는 아무런 인프라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나씩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강제적으로 계급사회로 간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힘이나 능력만을 가지고 지배하려고 든다면 사람들은 힘과 능력을 갖기 위해 다시 흩어질 것이다. 힘과 능력이 있으니 너희를 지배하겠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사회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힘과 능력 위주로 나가기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다.

동시에 좀비를 이용했다. 좀비와 목숨 걸고 싸우지 않더라도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식량을 구한다면 당신들은 무엇을 하겠냐고 말했다. 무임승차가 없다는 것을 통해 직업군인이 생기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음. 그러니까 지금 상황도 생각하고 계셨다는 소리죠?”

“어. 그래. 이게 실패한다면 정말 모든 걸 포기하고 떠날 거다.”

“하하핫. 차라리 지금 떠나는 게 낫지 않아요?”

유미가 골치 아픈 건 싫다는 것처럼 웃었다.

“말했잖아. 그건 최후의 방법이라고. 제일 좋은 건 세력을 만드는 거야.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세력을 만드는 게 좋아.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긴 일러. 그리고 욕심도 생겼고.”

승산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내 말에 유미가 미소 지었다.

“알겠어요.”

제일 중요한 것은 안전과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연방과 동맹처럼 계속해서 슬레이브를 늘려 안전을 확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슬레이브의 숫자가 늘면 전투식량의 원료가 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억제제가 있었다. 인아가 감염 장악을 통해 슬레이브를 늘인다고 하더라도 일반 식량으로 대체할 수 있어, 우리가 지켜야 할 사람들을 먹는 모순을 피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전쟁이 벌어질 경우 사람들과 함께 싸울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문제는 식량이었다. 도시 농원을 시험했지만, 도시 농원만으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건 불가능했다. 좋든 싫든 농경지의 확보는 필수적이었고 수백-수천이 먹을 쌀을 재배할 정도의 토지를 전부 방벽으로 둘러싸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일정한 면적의 토지를 경작하는 마을을 만들고 그 마을 단위의 경작지를 방벽으로 감싸거나 아니면 마을을 요새화하는 방식으로 방어해야 했다. 중앙이 있고 작은 마을들이 방사형으로 펼쳐진 모양. 중세시대 영주의 본성과 인근 마을이나 비슷한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일까? 각 마을에 대항하는 촌장이 필요했다. 적당한 인망이 있고 자율적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며 중앙에 협조적인 인물이 필요했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김경태와 오운도는 그런 촌장의 역할을 맡길 사람들이었다.

“옛날 봉건제도 비슷한 느낌이네요.”

“그래. 교통과 통신이 제한적이 된 지금은 이게 제일 현실적인 구조야. 자연스럽기도 하고.”

“어라? 그럼 영주님이 되시겠다는 건가요? 공작님? 백작님?”

유미가 웃음을 참았다.

“뭐. 구조가 그렇다는 거야. 그렇게 영역을 넓히고 세력을 모으다 보면 최소한 어이없이 죽어 나가는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거야.”

이야기를 들으며 슬레이브들을 통제하던 인아의 표정이 살짝 딱딱해졌다.

“소규모 그룹으로 뭉쳐진 생존자들을 찾았어요. 4명으로 이뤄진 그룹 하나와 3명으로 이뤄진 그룹 둘이요. 어떻게 할까요?”

“페니를 통해 교섭할 게. 사람들이 응한다면 여기로 데려오려고.”

“알겠어요. 일단 찾은 식량이 조금 그래요.”

“어떤데?”

“생쌀이나 잡곡류가 많고 즉석식품이나 가공식품들은 거의 없었어요.”

사태 발생 1년이 가까웠으니 당연한 일일지 몰랐다. 그나마 쌀이나 잡곡은 버려진 식당이나 가정집에서 구할 수 있었다.

“일단 전부 챙겨와.”

페니를 통해 사람들과 교섭을 하게 시켰다. 억제제를 함께 먹고 페니는 많이 변했다.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식량을 모으고 사람들을 모았다. 몇 차례 식량을 모으는 동안 계속해서 소규모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 더러운 새끼 죽어!”

새로 데려온 사람들 가운데 한 남자가 식칼을 들고 한 사내를 행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사람 살려!”

급작스럽게 공격받은 사람이 허둥지둥 도망쳤다. 읍내라는 좁은 지역에서 1년 가까이 살아남으면서 원한관계가 쌓인 사람이 없을 리 없었다. 한쪽에서 사내들이 혈투를 벌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자들이 전신에 손톱자국을 내며 뒤엉켜 있었다. 사기 치고 약탈하고 죽고 죽였던 과거가 사람들 사이에 깊게 배어있었다.

사람들에게 살 길을 보여주면 되리라고 생각했었지만, 내 착각이었다. 뒤틀린 1년은 생각보다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어렵군요.”

“그래. 간과했었네. 앞으로 원한 관계가 드러나면 바로 즉결 처분하는 걸로 하자.”

가족과 가족 개인과 개인 정도의 문제라면 그래도 여파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일정 그룹과 그룹의 관계나 조직과 조직의 관계라면 문제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어떤 그룹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 사람이나 그룹이 가진 원한 관계까지 받아들인다는 의미였다. 앞으로는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이틀 동안 읍내에 머물면서 사람들을 모았다. 11명이었던 사람들이 조금씩 숫자가 늘어 42명이 됐다. 사람들을 데리고 강원도로 향했다. 쌀과 잡곡 위주였지만 식량을 넉넉하게 구했기 때문에 춘천에 들르지 않고 바로 양양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변종 들개의 습격을 두 차례 겪었고 변종 멧돼지의 습격도 한차례 겪었지만, 40명이 양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양양 시내는 자동차와 콘크리트 블록으로 방벽을 만든 요새가 되어 있었다. 좀비들도 소탕됐는지 깔끔하게 정리된 시내엔 사람들이 눈을 치우고 있었다. 사람들을 이끌고 외벽으로 향하자 망루에서 경계를 서던 사람이 총을 겨눴다.

“꼼짝 마! 어? 리더십니까?”

아는 얼굴이 망루에서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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