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류 (1)
“시체는 바로 태워버려.”
“아직 날이 밝지 않았는데요? 지금 태워요?”
“이대로 불을 피우면 우리 위치가 노출......”
내가 흥분해서 사리 판단을 잘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유미와 인아가 시체를 태우라는 내 말에 반대했다. 사실 흥분하지도 않았고 화가 나지도 않았다. 내 머릿속은 상황을 바꿀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낸 결론이 태우는 것이었다.
“태워!”
내 강경한 목소리에 인아가 슬레이브들을 움직였다.
화륵!
화르르르르.
슬레이브들이 시체를 태우기 시작했다. 고기 타는 냄새와 젖은 나무에서 올라오는 특유의 연기냄새가 아직 어두운 새벽하늘을 가로질렀다.
사람들의 눈빛에 들어선 것은 두려움과 혐오 그리고 불신이었다. 너도 그 짐승들과 마찬가지구나 하는 얼굴. 혹시나 했지만 이제는 기대하지 않겠다는 표정. 공포 속에 숨겨진 감정은 혐오 그 자체였다. 그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그러니 서운하지 않았다.
자유를 원한다며 난리를 친 덕에 그나마 있었던 자유가 사라졌다. 우리 아이는 잘못이 없다며 호소했던 행동으로 인정이 없어졌다. 단순히 가담한 사람 때문에 이제는 단순한 실수나 오해도 위험하게 됐다며 속닥이는 사람들. 그들은 장작 속에서 타들어 가는 시체를 욕했다. 저들 때문에 우리가 힘들어졌다고 자신들을 잘 따라갔는데 왜 불똥이 튀었냐고 짜증냈다.
유미가 사람들이 쑥덕이는 소리를 듣고는 그들을 날카롭게 째려봤다.
“썩었네요. 하는 생각이 썩었어요.”
유미의 말에 동의한다는 것처럼 인아도 냉기를 풀풀 날렸다.
화르르륵!
타닥! 타닥!
불꽃 속에서 시체들이 끓는 소리를 냈다.
“무슨 생각을 하던 생각하는 건 자유지만, 행동하면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지.”
내 나지막한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속닥이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
“......”
저들은 날 배신한 것일까? 배신이라는 건 서로 믿음이 있었을 때 하는 말이었다. 저들은 내게 있어 신뢰의 대상도 아니었고 애정의 대상도 아니었다.
강원도로 간 김경택이 조직을 흡수한 뒤 나에게 덤비면 그건 배신이었다. 김경택을 신뢰해서 사람들을 맡겼으니까. 유미나 인아가 내 뒤통수를 치면 배신이었다. 이 둘을 믿었으니까. 하지만 모닥불 속에서 타고 있는 시체들은 날 배신했을까? 따지고 보면 아니었다.
애초에 믿지 않았기 때문에 5명당 2명씩 인아의 슬레이브를 끼워 넣었다. 신뢰했다면 슬레이브로 감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슬레이브로 감시했기 때문에 저들은 도망치기 위해서 감시의 족쇄를 끊기 위해 슬레이브를 죽인 것이다.
그랬다. 이들과 우리의 관계는 딱 그런 관계였다.
스펙을 주지 않았다면 저들은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콘도 밖으로 나갈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스펙이 있었기 때문에 한겨울 밖으로 나갈 수 있었고 그랬기에 저들은 자유를 꿈꿀 수 있었다.
왜 스펙을 줬을까? 저들을 위해서? 아니면 내 목적을 위해서?
그렇기에 스펙을 줬음에도, 살려줬음에도 도망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냉정하게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도망치려고 하면 죽는다고 분명하게 말했다면? 그렇게 대놓고 경고했다면 도망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공포로 억압했다면, 대놓고 전리품처럼 취급했다면 그렇게 쉽게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에 대한 내 태도가 어중간했다. 지배자나 약탈자도 아니고 구원자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도 문제였다.
해방자 혹은 구원자인가? 아니면 또 다른 약탈자나 지배자인가?
“결정을 강요받는 느낌이군. 웃기게도.”
내 나지막한 혼잣말에 유미가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카락을 풀며 타오르는 시체들을 노려봤다. 질끈 묶고 있던 끈을 풀자 어깨 아래로 내려온 긴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강요가 아니에요.”
“......”
“살려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은 죽어도 싸요.”
인아도 동의한다는 것처럼 짧게 커트한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날카롭게 잘린 커트 머리가 붉게 타오르는 불빛을 비단처럼 반사했다.
타닥! 치이이익!
끓어오른 기름이 눈밭에 튀며 소리를 냈다.
물과 기름을 억지로 섞어둔 것처럼. ‘우리’라는 단어는 불안한 단어였다. 상호 신뢰도 없고 합리적인 규칙마저 찾기 힘든 세계엔 불안만 가득할 따름이었다. 신뢰와 규칙 없이 만든 인간관계는 그게 무엇이든 휴지처럼 가벼웠다. 그게 싫다면, 가벼움이 싫다면 무겁게 만드는 것을 선택하면 그만이었다.
‘압도적인 힘.’
힘이 신뢰나 합의, 규칙을 대신했다. 힘이 신뢰고 힘이 규칙이었다.
이건 놀랍도록 돈이 신뢰고 돈이 규칙인 사회와 유사했다. 올백은 지금 세상이 예전보다 더 자유로운 세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올백은 내가 예전의 세상과 같은 세상을 만든다고 말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기존 세상의 변형된 화신이었다. 돈의 위치에 능력이나 힘을 대입시키면 그게 올백이 생각하는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하아- 젠장.”
나지막하게 새어나온 내 한숨 소리에 인아와 유미가 나를 힐끗 쳐다봤다. 인아의 날카로운 커트머리와, 유미의 흔들리는 포니테일이 불꽃과 함께 흔들렸다. 날카로운 새벽바람이 설원을 할퀴고 지나갔다.
‘왜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법니까?’
토크쇼에서 진행자가 방청객들에게 질문했다.
‘차를 바꾸려고요.’
‘전세를 벗어나고 싶어서요.’
‘결혼자금 모아야죠.’
‘이번에 유럽 여행 가려고요.’
다양한 이유가 나왔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 가운데 기억에 남는 대답.
‘자유롭고 싶어서요.’
한 사람의 대답이 떠올랐다.
처음 생존자들을 규합해 조직을 만들었을 때 했던 생각이 오버랩 됐다.
‘왜 사람들을 모으고 조직을 만들어요?’ 유미가 질문했다.
그 당시 내 대답은 하나였다. ‘자유롭기 위해서.’
조직은 다수를 바탕으로 한 힘. 그 힘을 이용해 자유를 얻고 싶었다.
결국, 필요한 것은 ‘힘’이었으며 원하는 것은 ‘자유’였다.
그러니까 너도 똑같아.
힘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자유를 추구한다는 것은...
올백과 지금 죽은 사람들 그리고 내가 같은 층위에 있다고 윙윙거렸다. 바지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 들었다. 퐁-소리와 함께 손톱만 한 알약이 삐져나왔다. 까득-물 없이 씹자. 쓰고 떫은맛이 혓바닥을 자극했다.
시체가 타면서 나는 냄새가 어스름한 새벽 눈밭을 가득 채웠다. 입안에서 맴도는 억제제를 침으로 삼켰다. 불을 피웠으니 높은 곳에서 망을 보는 놈들이 있다면, 이곳으로 올 것이 분명했다.
“불을 더 크게 키워.”
인아의 슬레이브들이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에 나무토막을 던져 넣었다. 불똥이 사방으로 튀며 지글거리는 기름 끓는 소리가 났다. 고기가 익는 냄새가 이윽고 고기 타는 탄내로 변했다. 짙은 냄새가 서늘하고 맑은 공기를 더럽혔다.
“이글루를 부숴. 흔적을 지우고 해가 뜨기 전에 움직인다.”
“아. 유인!”
“이쪽에 몰릴 동안 통과할 생각이었군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유미가 ‘역시.’하는 표정으로 이글루를 부쉈다. 펀치 한 방에 눈과 얼음으로 만들어진 이글루가 산산조각이 났다.
사람들을 추슬러 이동을 시작했다. 스노모빌은 요란한 소리를 냈기 때문에 스노모빌을 썰매처럼 끌고 갔다. 그렇게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는 야영지를 뒤로하고 움직였다. 그렇게 1시간가량 걸었을까? 묵직한 소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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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야영지가 있던 방향에서 괴성이 들렸다. 메아리가 생길 정도로 거친 소리였다. 아직 어둑한 하늘을 찢어발기는 소리.
퀘에에에에엑!
공기가 흔들리는 느낌.
꾸어어어어어!
야영지에서 최소한 2km는 떨어졌는데도 바로 몇 백 미터 뒤에 있는 것만 같았다. 대기가 흔들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에 오줌을 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는 사람들도 생겼다. 오줌을 지리고 주저앉은 여자의 따귀를 때렸다. 고개가 휙 돌아가고 나서야 눈에 초점이 다시 돌아온 여자였다.
“일어나!”
“흐이이익!”
“입 다물어! 계속 움직여.”
사람들이 허겁지겁 앞으로 내달렸다. 이렇게 급하게 도망치면 금방 체력이 소모될 텐데. 스펙을 사용했으니 어느 정도 버티기는 하겠지만, 밥을 먹을 시간이나 있을지 걱정이었다.
덩치가 큰 동물일수록 울림통이 커서 낮고 묵직한 소리를 낸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어떤 방송에서였다. 호랑이에게 코끼리 울음소리를 들려주자 호랑이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했던 말이었다.
“쯧- 낚이라는 놈들은 낚이지 않고 뭔지 모르는 놈이 걸리다니.”
“뭘까요?”
인아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스노모빌이 움직이며 만든 흔적이 아직 어둑한 뒤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저 어두운 곳에 뭔가가 있었다.
“토끼...”
떠오른 건 토끼였다. 하지만 초식 동물을 저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인아는 내가 토끼라고 말하자, 무슨 토끼가 저런 소리를 내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네? 토끼요?”
“그래 토끼. 유미가 사냥했던 토끼.”
“그 큰 토끼요?”
“비정상적으로 컸었지. 거의 유미 몸통만큼이나 컸으니까.”
“아무리 커도 그렇죠. 토끼가 저런 소리를 낸다고는...”
“당연하지. 저건 토끼가 낼 법한 소리가 아니야.”
“그럼?”
“큰 토끼가 있다는 건. 큰 토끼를 잡아먹는 뭔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내 설명에 인아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초식동물이 있으니 그걸 잡아먹는 육식동물이 있다는 소리군요.”
“그렇지.”
육식동물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놈이 토끼만 먹을까?
시체를 처리하면서 인근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불을 질렀는데 엉뚱한 게 나왔다. 불에 탄 고기 냄새를 맡고 온 것이 분명했다. 지금은 불에 타는 고기 냄새 때문에 후각이 마비되 우리를 추격하지 못하겠지만 언제까지 그럴지 몰랐다.
끌고 가던 스노모빌을 페니에게 끌게 하고 내 쪽으로 온 유미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토끼요. 그거 한 마리만 그랬던 거 아닌가요? 그 뒤에는 본 적이 없었는데.”
바퀴벌레도 그랬었다. 처음에는 하수구에서 스치듯 봤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디선가 엄청나게 번식하고 있었다. 토끼든 개든 고양이든 언제 어디서 떼로 나올지 몰랐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미친 듯이 변이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못 봤다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엔 상황이 녹녹치 않아.”
“맞아요.”
인아가 동의했다. 유미도 그렇다는 것은 알겠지만 왜 갑자기 저런 게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왜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야.”
갑자기 나온 게 아니었다.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이다. 거대 바퀴벌레. 거미. 개미. 벌과 말벌 그리고 토끼까지. 식물까지 생각하면 해바라기를 비롯해 다양한 식물들이 거대화되고 있었다. 우리도 1년 전과 비교해 보면 완전히 변해 있었다.
사람이 피를 주식으로 하고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맨손으로 철거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불꽃을 일으키고 냉기를 뿜고 물을 다루는 사람이 나왔다. 심지어 식물 가운데는 환각과 동물의 정신을 지배하는 식물도 나왔다. 뭐가 나와도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따라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허겁지겁 움직였다. 급하게 도망치다 보면 체력이 빨리 소모되기 마련. 사람들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담배 연기처럼 뿜어졌다.
“다들 지친 것 같아요.”
유미가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걷는 사람들을 보곤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스펙을 썼는데도 이 정도라니. 슬레이브들을 후위로 돌릴까요?”
인아가 한 줄기로 길게 남은 흔적을 돌아보며 말했다.
겨울은 이중삼중으로 체력을 앗아갔다. 추운 날씨는 체온을 앗아갔고 눈길은 체력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이것도 모자라 급하게 도망치려고 허둥거리면 한계에 몰리는 건 당연했다. 그건 피해야 했다.
“30분간 휴식. 최대한 빨리 먹고 체력을 보충한다.”
스펙이 만능은 아니었다. 스펙은 변이의 위험성을 차제하고라도 양날의 칼이었다. 강제적으로 신체능력을 끌어올리는 만큼 사용에 주의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