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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225화 (225/261)

인간 (6)

돌아가던 발전기가 멈추자, 전기온돌로 달궈졌던 방이 급속도로 식기 시작했다.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사람들도 핵폭탄이 터졌다는 소리에 서로 속닥이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스노모빌 가운데 움직이는 게 있는지 확인해봐.”

“네.”

유미가 페니와 함께 아래로 내려갔다. 도도독 소리가 순식간에 복도에서 사라졌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인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깐만. 생각 좀 해보고.”

삽시간에 나이를 먹은 것 같았다. 며칠 동안 마음고생을 했는데 빌어먹을 핵 때문에 이제까지 고민했던 게 홀랑 날아간 기분이었다.

한반도에 있는 핵은 전부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상황은 매우. 심각하게. 복잡했다. 연방과 동맹이 서로 싸우는 와중에 전술핵을 사용했다면, 주한 미군이 보유하고 있던 핵이 연방과 동맹이라는 두 세력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미국의 영향력이 한반도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최소한 한반도에서는 인류 연방과 자유 동맹이라는 세력이 미국보다 더 큰 힘을 가지게 됐다는 소리였다.

“연방과 동맹이 서로에게 핵을 썼다면 개판이 될 거고. 그게 아니라 국가 단위로 시작한 핵전쟁이라면 상호 확증파괴의 시작이라는 소린데.”

하늘을 살폈다. 연속적으로 핵이 터진 기미는 없었다. 상호 확증파괴는(Mutually Assured Destruction. MAD.) 아니었다. 만약, 상호 확증파괴라면 핵이 계속 떨어졌어야 했다.

“뭐하는 짓이지? 이제서.”

사태가 발생한 직후에 핵전쟁이 시작됐으면 모를까 지금에 와서 전략핵도 아니고 전술핵이 터질 이유가 없었다. 복잡했다. 페니를 통해 다섯 대의 스노모빌 가운데 하나가 움직인다는 연락이 왔다.

“핵폭탄이면 방사능 오염이 있지 않나요?”

인아가 냉정한 표정으로 창문 밖을 살폈다. 묶인 사람들도 내 입을 바라봤다.

“그건 문제없어.”

“문제가 없는 건가요?”

“그래. 살아남은 자들은 방사능에 내성이 있을 테니까.”

일본원전 사태로 인해 세계가 방사능에 오염됐다. 방사능에 강한 인류로 만들기 위해 바이러스를 만들었으니 방사능 걱정 때문에 핵을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자들은 방사능에 내성이 있었다. 언제고 핵을 쓰리라 생각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전술핵을 사용했다니 여러모로 복잡했다.

“일단 한반도에 있는 전술핵을 동맹과 연방이 갈라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어.”

“핵전쟁을 하겠네요.”

어쩔지 모르겠다. 동맹이 연방의 시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전술핵을 쓰자, 연방이 ‘우리도 있다.’는 식으로 전술핵을 썼다면 의외로 대치 상태가 계속될 가능성도 있었다.

“서로 핵을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도 있어서.”

“그렇군요. 계획대로 강원도로 가실 건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인아가 묶인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처리할까요?”

무심한 인아의 눈빛. 나에게 보여주던 그런 눈빛이 아니었다. 냉혹하고 잔인하게 행동하면서도 그 내면에 연민과 감정이 남아있는 유미와는 달리. 인아는 확실히 그 근본이 달랐다. 나와 유미가 완전히 죽지 않은 상황에서 변이를 일으킨 경우라고 한다면, 인아는 확실히 죽었다가 부활한 케이스였다.

죽었다가 살아난다. 인아의 경우에는 한 나절이 넘게 걸렸지만, 황 씨네 딸은 아니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빗치로 부활했다.

빗치가 될 변이인자를 가지고 있던 여자는 죽고 난 뒤 부활을 했다. 그걸 이용해서 식인종 무리를 소탕했었다. 생각이 이어졌다. 황 씨네 딸과 접했던 남자들은 변종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변이를 일으켜 능력이 발현된 자들은? 변이를 일으켰다는 것은 일종의 변이인자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좀비로 부활하거나 변종 빗치로 부활하는 사람은 일종의 변이인자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만약, 변이를 일으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죽는다면? 그 시체가 비교적 온전한 상황이라면? 변종이나 빗치로 부활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 아이.”

“네? 아이라뇨?”

“이 사람들이 잡아먹으려고 했던 애. 죽었지?”

인아가 갑자기 아이를 말하는 날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레드 존에서 괴물이 사용한 소화액 비슷한 것에 당했기 때문에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죽었다고 하셨잖아요.”

이제까지 변종이나 빗치를 죽일 때는 머리를 터트리거나 목을 잘랐다. 아까 생존자들에게 뜯겨 죽은 아이는...... 생각을 자르기라도 한 것처럼 뾰족한 비명이 허공을 찔렀다.

“꺄아아악! 아아악!”

“우와악! 괴물이닷!”

“변종이야!”

“끼얏!”

팔이 묶인 사람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으득. 으적. 고기를 찢는 소리, 생살을 씹어 삼키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산채로 잡아먹히는 여자의 눈동자에는 절망이 차올랐다. 왈칵 입에서 피를 흘리는 여자의 묶인 두 팔이 배에 달라붙어 있는 아이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우왕좌왕 도망치려고 한 사람들이었지만, 굴비를 엮듯 서로 엮어 놨기 때문에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다시 뒹굴었다. 조금이라도 더 흩어지려고 버둥거렸지만, 그뿐이었다. 인아가 여자의 배에 머리를 박고 내장을 파먹는 꼬마의 뒤통수를 내리치려 했다.

쩌저저적!

주변의 습기가 얼어붙는 것처럼 하얗게 얼음 결정이 맺혔다. 냉기를 다루는 능력이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아야 멈춰!”

꼬마의 머리를 내리치려던 인아가 내 말을 듣고 바로 뒤로 물러섰다.

드드드드득!

차갑게 식은 바닥에 흐르는 뜨거운 피. 갓 죽은 사람에게서 흘러나온 따뜻한 피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꼬마가 뜯어먹던 여자의 몸. 갓 죽은 따뜻한 육체가 순식간에 파랗게 얼어붙었다. 그 여자를 묶은 노끈이 드라이아이스처럼 하얗게 변했다.

“꺄아아앗! 살려주세요.”

“아아앗!”

끈으로 묶여 도망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꼬마가 뿜어내는 냉기에 닿자 발버둥 쳤다. 순식간에 동상을 입는 사람들. 냉기는 마치 안개처럼 피어올라 인접한 사람부터 삼켰다. 냉기의 안개에 몸이 닿은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화르르륵!

냉기에 반응이라도 한 것처럼 내 앞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확인할 것이 있었다.

“그만!”

내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한 것처럼. 으적거리며 씹던 소리가 뚝 끊겼다. 얼어붙은 여자의 내장을 얼음과자 깨먹듯 깨먹던 꼬마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어서 공허한 목소리가 꼬마의 입에서 나왔다. 단 한마디.

“배고파.”

퀭한 눈빛. 식욕밖에 남지 않은 눈빛이 나를 보고 말했다. ‘배고파’ 한마디를 한 꼬마가 다시 고개를 돌려 여자를 먹기 시작했다.

까드득

와그작

여기저기 뜯긴 자국이 있던 꼬마의 육신이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소화액에 당한 흔적은 아주 느리게 아물었지만, 아물고 있기는 했다.

인아가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죽여야죠?’

‘잠깐. 기다려.’

정신을 집중해 사람들을 묶고 있는 끈을 노렸다. 그냥 상상만 하는 것보다 말을 하는 게 더 정확하게 집중됐기 때문에 힘을 실어 말했다.

“타버렷!”

나지막한 내 목소리에 반응한 염화 능력이, 굴비 엮듯 엮은 노끈을 불태웠다. 묶인 끈이 풀리자 사람들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벽에 달라붙었다. 넓은 거실 한가운데는 꼬마가 식사를 하고 있었고 현관 앞에는 나와 인아가 있었기 때문에 밖으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벽에 달라붙어 와들와들 떨었다.

재생능력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꼬마의 신체능력은 상당히 약한 축에 속했다. 일반 좀비 정도나 될까 싶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냉기능력이었다. 죽기 전에는 미약한 냉기능력이라고 하더니, 부활해서 변종이 된 뒤엔 상당히 강한 냉기 능력을 발현하는 꼬마였다.

알렉스도 그렇고 미노도 그랬다. 변종들 가운데 능력을 가진 변종들은 대부분 이성이 있었다. 꼬마 녀석도 분명히 ‘배고파’라고 말했다. 일반 변종으로 변이했다면, 대답대신 으르렁거렸을 것이다. 그냥 두기에는 너무나 위험했다. 5~6살짜리. 욕구에 충실하게 사람들을 잡아먹고 다닐 것이다.

“저 녀석. 장악할 수 있겠어?”

내가 묻자 인아가 잠시 꼬마를 노려 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막 부활한 변종이었으니 이것저것 주워 먹기 전에 감염 장악을 시도하면 충분히 먹힐 것이다.

“주변을 얼리는 냉기가 문제에요.”

“냉기는 내가 막아줄게.”

눈빛으로 ‘셋. 둘. 하나.’ 신호를 보냈다. 내 신호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인아가 꼬마에게 달려들었다. 새파란 알갱이가 냉기를 풀풀 날리며 꼬마의 몸을 가로막았다. 정신을 집중해 올백과 싸웠을 때 사용했던 불기둥을 떠올렸다.

“솟아올라라!”

화르르륵!

작열하는 불기둥이 꼬마의 냉기를 뚫고 치솟아 올랐다. 치이익! 냉기와 열기가 충돌하며 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악!”

“뜨거!”

“아얏!”

수증기와 끓는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물방울이 튈 때마다 벽 쪽에 붙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도망쳤다. 열기로 냉기를 몰아낸 틈을 타, 인아가 꼬마에게 달려들었다. 암사자처럼 꼬마의 목을 단번에 물어버리는 인아였다.

으득- 꼬마의 가느다란 목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냈다. 그와 함께 꼬마의 주변에서 피어오르던 냉기가 사라졌다. 축 늘어진 꼬마를 내팽개치고 인아가 살포시 웃었다.

사람들은 완전히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꼬마가 변종으로 부활하지 않나. 사람을 순식간에 얼려버릴 정도의 냉기를 뿜어대던 꼬마를 순식간에 처리해 버린 나와 유미를 두려워했다.

꼬마의 냉기로 인해 다섯이 죽었고 여섯이 동상에 걸렸다. 중간에 끓어오른 수증기와 물방울에 맞아 화상을 입은 사람도 넷이나 됐다. 34명이었던 생존자들은 순식간에 27명으로 줄었다. 여기에 제대로 된 약이 없는 이상, 동상과 화상을 입은 사람들도 오래 살기는 틀렸다고 봐야 했다. 인아가 슬레이브가 된 꼬마를 품에 안고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이 사람들 제가 장악할까요?”

“......”

인아의 말뜻은 그랬다. 사람들을 변이시킨 뒤 감염 장악해 부하로 삼자는 소리였다. 사람들을 변이시키려면 능력자들의 살을 줘야 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인아가 무심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지하에 있는 냉동고에 사체가 있었어요. 읍내에서 본 사체니까 능력자들의 시체 같아요. 완자처럼 뭉쳐진 것도 있으니 그걸 쓰면 될 것 같아요.”

“......”

인아의 슬레이브가 된 꼬마는 연방이나 동맹의 슬레이브를 감염시켜 장악했던 것보다 훨씬 자유롭게 움직였다. 마치 진짜 이모가 조카를 데리고 노는 것처럼 인아의 품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자, 유미가 인아의 말에 동의했다.

“이대로 가면 이 사람들 결국엔 죽을 걸요.”

유미의 말에 사람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살고 싶다는, 어떡하든 살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맞아요. 우리가 살려준다고 하더라도 다른 놈들에게 잡혀서 먹이가 되거나 그러겠죠.”

인아가 꼬마의 옆구리를 간질였다. 까르르-웃으며 인아의 품에서 발버둥 치던 꼬마의 주위로 하얀 얼음 결정이 반짝였다.

“그래. 그렇게 해.”

인아가 자지러지게 웃는 꼬마의 귓가에 뭐라 속삭였다. 천진난만하게 웃던 꼬마의 얼굴이 삽시간에 인형처럼 무표정하게 변했다.

“일어나!”

앙증맞은 목소리. 꼬마의 혀 짧은 소리에 성인 남녀들이 쩔쩔매며 일어났다. 꼬마가 사람들을 데리고 지하로 내려갔다.

*

냉동고에 있는 사체를 먹는다고 전부 변이하는 건 아니었다. 변이를 일으켜 최소한 육체능력이라도 발현하지 않는다면 인아가 감염 장악하는 게 의미 없었다. 변이가 일어나지 않는 사람을 감염 장악할 경우 단순한 좀비가 될 뿐이었다.

27명 가운데 변이가 일어난 사람들은 고작 7명이었고 나머지 20명은 그대로였다. 이들은 죽고 나면 일반 좀비로 부활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인아는 변이를 일으켜 능력이 생긴 7명을 감염 장악했다. 그렇게 인아가 통제하는 슬레이브들이 8명으로 늘었다.

8명 가운데 10살 미만의 아이들이 셋이나 됐다. 냉기를 다루는 꼬마와 소화액을 분비하는 여자를 제외하면 나머지 여섯은 전부 일반적인 육체강화였다. 사채를 먹고도 변하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이 검게 죽어있었다.

변이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능력도 생기지 않았다. 이 말은 곧 능력이 발현된 자들의 먹이라는 소리였다.

“살려주십쇼.”

“이대로 떠나면 전부 죽습니다.”

“도와주세요.”

그간 우리가 인육을 먹지 않는 것을 보곤 우리에게 매달리는 사람들이었다.

능력이 없는 일반인이 겨울에 노숙하면서 산을 타는 건 자살행위였다. 심지어 건장한 사내들도 아니었다. 스물 가운데 여자들이 12명이었고 나머지 8명 가운데 5명이 12살 이하의 아이들이었다. 이들을 데리고 태백산맥을 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스펙1과 2를 하나씩 나눠줘.”

“네? 스펙이요?”

“그래. 스펙을 쓰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하지만... 알겠어요.”

유미가 내 얼굴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유미가 스펙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인아가 냉기 꼬마의 손을 잡고 내 옆으로 왔다. 5살짜리 꼬마는 인아의 손가락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이 사람들을 전부 데려가실 생각인가요?”

“그래.”

“흠. 위험하지 않을까요?”

인아가 말하는 위험하다는 것은 중의적인 표현이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기회도 없지. 그리고 단순한 동정심 때문에 데려가는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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