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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224화 (224/261)

인간 (5)

씻으라고 했는데 움직이지 못하고 벌벌 떠는 사람들.

“잡아먹지 않으니까 어서 씻도록 해요.”

“......”

“상황을 설명해 줄 테니까. 우선 씻고 나와요.”

“......”

“아이들 부모는 누구죠? 애들도 씻겨야 하니까 가족들이 애들 데려가요.”

“......”

아이들 부모든 가족이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싸우고 도망치는 도중에 가족들은 죽고 애들만 이렇게 잡혀있는 것이었다. 4~5살 먹은 아이들이 혼자 씻기란 힘들었다.

존댓말로 조용조용히 이야기할 때마다 흠칫흠칫 몸을 떠는 사람들이었다. 3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애, 어른 할 것 없이 한마디 할 때마다 석고상에 진동 모터를 달아 놓은 것처럼 벌벌 떨어대니 점점 지쳐갔다.

“애들도 씻어야 하는데 한 명씩 데려가서 씻기세요.”

“......”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욕조에 물이 받아져 있었다. 수도꼭지를 돌려보니 물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 확인하고 나올 때까지도 사람들은 꼼짝하지 않고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타올라라!”

치이이익!

백염이 타오르며 욕조에 받아둔 물 표면이 순식간에 끓어올랐다. 화장실에서 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자 부르르 떠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먹히기 힘들었다. 한 번 휘젓자 딱 씻기 좋게 따끈따끈한 온도가 됐다.

지금 상황에서는 강압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 두 사람 씻으면서 여기 이 애들도 씻기도록.”

여자 둘에 아이 둘을 묶어 잡아넣었다. 도살장에 들어가는 가축처럼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는 여자들이었다. 방마다 욕조에 물이 받아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2~3명씩 나눠 씻게 했다.

[페니 유미와 인아보고 사람들 좀 챙기라고 해.]

쇼핑을 마치고 짐을 알뜰하게 챙긴 인아와 유미가 밝은 표정으로 올라왔다.

“사람들은요?”

인아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일단 상태가 안 좋아서 씻게 했어.”

“아. 그. 읍내처럼... 그런가요?”

유미는 읍내에서 봤던 사람들이 떠올랐는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가서 좀 다독여줘. 여자들이 많으니까.”

“네.”

“사람들이 씻고 나오면 옷도 좀 입히고...”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유미와 인아에게 사람들을 맡기고 방들을 뒤졌다. 포로들을 굶겨 죽이지 않으려고 했는지 아니면 이곳에 본래 살고 있던 생존자들이 모아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반 식량들도 제법 있었다.

“제법 양이 되는데?”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이 정도 양이라면 본래 콘도에 있었던 식량인가?’

그렇다고 보기엔 양이 너무 많았다. 여기에 있던 자들이 지나가던 생존자들을 유인 사냥하는 것과 동시에 스노모빌과 스키, 보드를 이용해 인근 지역을 돌아다니며 약탈한 것 같았다.

즉석 식품류는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종류는 다양하게 있었다. 쌀이나 밀가루 같은 것도 상당히 많았다. 변이가 진행될수록 주식이 인육으로 변한 자들이 늘어나 일반 식량에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이 정도 양이라면 충분히 봄까지 버틸 수 있었다.

씻으라고 한 생존자들을 어떻게 할까 싶었다. 식량이 넉넉하게 있으니 이대로 두고 가도 될까?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스키장이기 때문에 지나가는 생존자들이 있다면 이곳에 들릴 가능성이 컸다. 사람들 생각은 비슷했다. 우리가 스키와 스노모빌을 구하려고 이곳으로 왔듯 인근을 지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곳으로 올 확률이 높았다.

한겨울에 이동할 정도로 굶주린 생존자들이 이곳에 남겨진 사람들을 그냥 둘 리 만무했다. 그 굶주린 생존자들이 변이를 일으킨 자들이라면 여기 있던 사람들은 다시 가축으로 전락할 것이고, 일반적인 생존자들이라면 식량을 놓고 죽고 죽이게 될 것이다.

식량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동안, 유미와 인아가 생존자들을 관리하게 했다. 씻겼으니 입히고 먹인 뒤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당장 먹일 만한 식품들을 챙기는데 페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페니의 감정에는 혐오감이 느껴졌다.

혐오라. 페니도 억제제의 효과를 보는 건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분명히 흘러온 감정은 혐오였다.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링크를 강화하면 페니가 보는 것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유미와 인아가 싸늘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굴비 엮듯 엮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이 사람들 미쳤어요.”

유미가 눈을 흘기며 막 포박한 여자와 아이들을 노려봤다. 인아는 대답대신 노끈으로 생존자들을 묶는 손길을 더 빨리했다.

“정상일 리 없지. 당장에라도 잡아먹힐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 살았을 테니까.”

정상이라면 그게 더 이상했다. 미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유미와 인아의 표정은 그게 아니었다. 화가 난 표정 그대로였다.

“무슨 일인데 화가 났어?”

“화요? 안 났어요.”

유미는 화가 나지 않았다고 뾰족하게 대답했다.

“그래.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갑자기 이러는데? 읍내에 있던 사람들 눈에 밟혀 했었잖아.”

유미가 입을 합 다물었다. 꾹-꾹-사람들을 묶던 인아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사람들이 한 아이를 산 채로 잡아먹으려고 했어요.”

“뭐?”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묶고 있었어요.”

“...... 아이는?”

“죽지는 않았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요.”

유미와 인아에게 포박당하면서 몸을 부르르 떠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의 입가에 묻은 붉은 피가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얼굴과 손가락에 동상을 입은 흔적이 언뜻 보였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가벼운 동상을 입은 흔적이었다. 내가 봤을 때는 동상의 흔적이 없었다.

“동상?”

“네. 공격받은 꼬마가 약하기는 하지만 빙결계열 능력을 가지고 있었나 봐요.”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갔다. 포박이 끝나 옆으로 밀려난 여자와 아이를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엎드려 애원하기 시작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저... 저도 능력이 생길지 몰라요. 살려주세요.”

“흐으으앙. 살려주세요.”

여자는 고장이 난 녹음기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고 아이는 공포에 질려 울먹거렸다. 두 사람의 입가에 묻은 붉은 피가 설명을 대신했다.

능력이 있으면 먹이가 아니라 동료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언제 먹이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절박함. 힘이 없으면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생존자들은 힘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비록 조금 전까지 죽음의 고비를 함께 겪었던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

전신이 산채로 물어뜯긴 아이는 결국 숨을 거뒀다. 죽음의 목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변이가 일어났지만, 상처가 아물지 않고 계속 터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심하게 뜯겼군.”

뼈가 드러날 정도로 뜯긴 곳도 있었다. 근육과 힘줄이 손상됐고 내장도 일부 유실됐다. 이러고도 숨이 단번에 끊어지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피가 멎지 않아?”

“우리와 비슷할까 싶어서 강제로 관을 삽입해 음식을 넣었지만, 소화하지 못하더라고요.”

인아가 담담하게 아이의 시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변이가 일어나면 재생능력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빗치나 변종처럼 급속 재생능력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재생능력이 생겼다. 그런데 아직도 피가 조금씩 흐르는 상처는 이상했다. 게다가 유동식을 소화하지 못했다니.

“음. 살아남기 위해 급속변이가 일어났던 것 같아.”

“네?”

“그러니까 일반 유동식이 아니라, 인육이나 피를 넣었으면 흡수를 했을 거야.”

내 대답에 인아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옆에 있던 유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왜 급속재생을 하지 못한 거죠?”

“능력을 숨긴 사람이 있다는 거겠지.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

“어떤 능력이요?”

“레드 존에서 봤던 그것과 비슷한 능력.”

“아!”

인아와 유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를 물어뜯은 사람 가운데 레드 존에서 봤던 소화액을 가진 괴물과 비슷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섞여 있었다.

*

인간이 인간성이 무너져야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 사태 발생 전 세상이 떠올랐다. 따지고 보면 인간성은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악마 여고생’ 사건이든, ‘밀양 집단 강간’ 사건이든 인성교육이 잘못됐다고 난리를 쳤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

인성보다 이익을, 인간보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조적인 문제, 아니 의도적인 흐름이 있었을 뿐이었다. 무너지면 지배하기 쉬워진다. 인간이 아니게 되면 도구로 삼기 쉽다. 연방과 동맹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인간성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내가 슬레이브들을 인간이 아닌 도구처럼 취급했던 것처럼. 사태가 벌어진 지금, 약자는 인간은 좋은 노예이거나 단백질 공급원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바꿀 만한 무엇인가가 없었다.

“후- 너무 살아남는 것만 생각했어.”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존엄한 가치를 갖는 이유는 인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격이라 불리는 것. ‘인간다운’ ‘인간답게’라고 말할 때는 그 속에 인격이 포함됐다고 믿었다. 그럼 인격이 무너진 인간. 인격이 거세된 인간을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슬레이브들을 도구로 생각할 수 있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인형. 자율성을 거세당하고 인간의 껍데기만 남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격적으로 대우할 필요가 없는 귀중품 정도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이게 현실이라는 것이었다. 함께 있던 사람도 언제든 잡아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인간의 카테고리에 속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앞으로 내가 만날 사람들은 세 종류밖에 없었다.

1) 변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인육을 먹는 사람들

2) 변이를 거부하다. 인육을 먹는 자들에게 잡혀 먹이로 전락한 사람들

3) 변이를 거부하고 똘똘 뭉쳐 고슴도치처럼 경계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이든지 미래나 평화에 동참할 가능성이 없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는 이미 경험했다. 마지막 세 번째 사람들의 행동도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그룹을 하나로 뭉치자고 하면, 자신들이 가진 권력기반을 하나로 합치자고 하는 것이니 반대할 것이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조직을 합치자고 하면 ‘네놈의 먹이가 되느니 싸우다 죽겠다.’고 할 것이다. 능력이 있다는 건 변이를 일으켰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와들와들 떨면서 구석에 모인 사람들을 보니 여러 가지로 착잡했다.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앞으로의 방향이 결정됐다.

내가 생각에 잠기자, 꽁꽁 묶인 사람들이 살려달라며 애원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으으앙. 잘못했어요.”

뭘 잘못했다는 걸까?

옳고 그른 것을 알고 있을까?

살려달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을까?

번쩍

□□□□□□□□□□□□□□

강력한 빛이 서쪽에서 번쩍였다. 순간적이지만 태양보다도 밝은 빛이었다. 서울 방향이었다. 번쩍이는 것과 함께 LED등이 꺼졌다. 발전기가 고장 난 것 같았다. 방안이 어둑해졌다.

“방금 그 빛은 뭐죠?”

“발전기가 고장 난 것 같아요.”

유미와 인아가 창문 밖을 보며 이상하다고 말했다.

“갑자기 뭐하는 짓이야!”

핵을 쓸 거라면 진작 썼어야 했다. 사태가 발생하고 1년이 다 됐는데 갑자기 핵이라니. 변종이나 빗치가 그만큼 위험해졌다는 걸까? 유미와 인아가 혼자서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네?”

“무슨 소리죠?”

진정해야 했지만,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핵이다.”

“예에엣?”

“핵이요? 핵폭탄 말이에요?”

핵이라는 말에 유미와 인아가 화들짝 놀랐다.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사람들도 방금 터진 빛이 핵폭탄이 터진 빛이라는 말에 수군거리는 것으로 변했다.

“그래.”

“왜요?”

“누가 쐈죠?”

“그건 몰라. 하지만 상황이 아주... 더렵게 됐다.”

핵이 터졌으니 스노모빌이 고장났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움직이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알 수 없었다. 전자기기는 전부 죽었다고 봐야 했다. 공중에서 핵을 터뜨린다면 EMP 때문이라는 건데. 지금 상황에서 전술핵으로 EMP라니 무슨 생각인 거지?

번쩍!

□□□□□□□□□□□□□□

이번에는 서남부 방향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대전 방향이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

저절로 욕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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