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스트 DUST-221화 (221/261)

인간 (2)

“눈!”

인아의 입에서 탄식처럼 눈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눈?”

“앞에서 접근하는 걸 보여준 게 함정이었어요. 실제로는 쌓인 눈 속을 파고 접근......”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것처럼 인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둘 다 죽었어요.”

새로 부하로 삼은 남자와 여자가 죽었다는 소리였다. 그 둘의 능력이라면 빗치나 변종이 와도 몇 분은 버틸 수 있었을 텐데 고작 2분도 버티지 못했다.

“대화는?”

“말을 걸 겨를이 없었어요. 바로 목을 뜯겨버렸거든요.”

“바로 목이 뜯겼다고?”

“네.”

“둘 다?”

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상을 썼다. 링크가 끊기기 전에 들어온 정보를 되새김질하는 표정이었다.

“적의 숫자는 20명 내외. 무장은 총기와 날붙이. 육체 능력과 방어력은 최소 슬레이브급.”

슬레이브급이라면 문제가 있었다. 힘이야 새로 부하로 만들었던 자들이 더 좋았지만, 슬레이브와 변이가 시작된 사람들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방어력이었다.

내가 그렇듯 변이를 일으킨 사람들은 일반인들보다 비약적으로 육체 능력이 좋아졌다. 하지만 방어력은 비슷했다. 총이 통했다는 소리였다. 변종이나 빗치, 슬레이브가 까다로운 이유는 소구경 총화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들이 총화기가 통하지 않는다니, 변종이나 빗치에 가깝게 변이를 일으켰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는 건. 상당히 많은 사람을 먹었다는 소리였다. 변종과 빗치를 포함해. 훈련받은 타격조원 5명이 스펙을 사용하면 변종이나 빗치와 싸울 수 있었다. 변이를 일으킨 사람 20명이라면 스펙을 사용한 타격조 5명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는 전력이 아니었다.

그렇게 변종과 빗치를 사냥해 먹었다면 지금 저쪽 개개인의 능력은 저들이 잡아먹은 변종이나 빗치와 유사할 것이다. 아니, 저들이 새로운 변종이나 빗치가 됐다고 봐야 했다.

‘변종이나 빗치와 유사하게 변할수록 서로 견제하게 될 텐데?’

유미와 인아만 보더라도 약을 먹기 전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사이였다. 그런데 20명 넘는 그룹을 형성했다고? 문득 그 여자가 떠올랐다. 레드 존에 있던 그녀. 그 여자는 변종과 빗치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혹시 여기도?’

아니면 애초에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위계질서가 만들어졌을지 몰랐다. 서열이 잡혔든, 변이와 섭식 진화를 거치면서 독립 개별적인 부분이 약해졌던 무엇이든 간에 스물이 넘는 변이체가 우리를 노리고 있었다.

“젠장. 시간을 벌어야 해. 나와 유미가 전방을 막을 테니, 페니와 인아는 뒤에서 오는 놈이 없는지 확인해. 뒤쪽으로 오는 놈들이 없으면 3층으로 올라간다.”

페니와 인아가 복도 뒤편을 확인하고 계단을 올랐다.

“3층까지 이상 무.”

계단을 타고 인아의 목소리가 울렸다. 20이 넘는 숫자를 이용해 뚫고 들어오지 않을까 했는데 놈들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형광등을 깨서 알람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전등이 전부 LED등이었다. 벽에 걸린 액자를 깨 유리를 바닥에 깔았다. 계단에는 한쪽에 쌓여있는 빈 맥주병을 깨서 흩뿌리며 올라갔다. 그동안 놈들은 기척조차 내지 않았다.

“이거 이상한데요.”

유미가 코끝을 소매로 훔치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는 밖을 내다봤다. 어둠이 내렸지만, 시야에는 문제가 없었다.

“확실히...”

스물이나 되는 놈들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인아의 말대로라면 쌓인 눈 아래 숨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

하룻밤이 지나는 동안 적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반응이 없다고 해서 저들이 우리를 감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눈 밑에서 포위하고 있으면 나갈 수도 없잖아요.”

“이건 문제네. 놈들이 포위만 하고 접근을 하지 않으니......”

내 말에 인아가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다.

“설마 아직도 대화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인아는 처음부터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다. 대화를 해보려고 했다가 새로 얻은 부하 둘을 잃었는데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느냐는 표정이었다.

환경에 따라 사람의 행동이 바뀌는 법이었다. 사태가 발생하고 이제 곧 1년이었다. 좀비, 변종, 빗치들과 싸우고 같은 인간들끼리 먹고 먹히는 삶을 살았던 자들이었다. 저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리가 대화하겠다고 하는 것 차체가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하시겠다는 건가요?”

“그래. 어느 정도 무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상태일 가능성이 높아. 선제공격을 받았다고 해서 죽이겠다고 하면 대화가 불가능해.”

“그건 그렇지만...... 누가 대화를 하고 누가 경계를 서요? 경계를 서는 사람은 집중 공격당할 텐데요?”

“내가 한다. 대화도 내가 하고. 경계도 내가 선다.”

“예?”

어제도 내가 경계를 섰다면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상황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위기 감응이라면 놈들의 움직임에 충분히 반응했을 것이다. 공격을 피하면서 대화를 시도했다면 어느 정도 이야기가 먹혔을 가능성도 있었다. 염화 능력도 있었으니 무력시위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아-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면 힘들겠는데요.”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눈이 제법 펑펑 내렸던 야밤에 기습할까 싶었는데 기습도 없었고 인기척도 없었다. 하지만 느껴졌다. 하얗게 쌓인 밖 어딘가에서 놈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었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따끔거릴 정도로 강한 살기가 느껴졌다. 그 살기를 무시하고 텅 빈 눈 위에 고함을 질렀다.

“.... 그래서 계속 변종이나 빗치를 먹게 되면 세포 붕괴가 된다! 우리에겐 변이 억제제가 있고 억제제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다.”

“......”

“이대로 가면 미래가 없지 않은가? 언제까지 사람을 잡아먹고 살 것인가? 매콤한 김치찌개와 구수한 된장찌개가 그립지 않은가?”

“......”

“사랑하는 사람이 없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고 싶지는 않은가? 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으면? 그때도 인육을 먹고 다른 사람들을 사냥하고 다닌 생각인가?”

“......”

저들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유미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도 틀렸네요.”

하루하루 시간이 흘렀다. 매일 나는 시간에 맞춰 아무도 보이지 않는 눈밭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어째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으며 앞으로 어떤 세상이 될 것인지, 이대로 가면 희망이 없고 미래도 없다는 것을 혼신을 다해 외쳤다.

“이대로 가면 식량이 먼저 떨어지겠어요.”

인아가 반쯤 비어버린 배낭에서 음식을 꺼냈다.

“오늘. 오늘까지만 대화를 시도해 보자.”

미래를 찾기로 다짐하고 만나는 처음이었다. 죽고 죽이는 건 두렵지 않았다. 단지 말이 통하지 않아 피를 흘리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제가 저들에게 죽었어도 이렇게 시간을 주셨을까요?”

인아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화살처럼 꽂히는 것 같았다.

내가 목숨의 위협을 받았어도 이렇게 기다리자 말할 수 있었을까? 알고 있었다. 새로 잡아온 자들을 인아의 부하로 삼았기 때문에 이렇게 담담하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순간 날카로운 소리가 조그맣게 허공을 갈랐다.

까득-

끄직-

계단에 깔아둔 유리조각이 밟히는 소리였다. 놈들이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유미와 페니가 경계를 서고 있었는데.

[페니? 경계는?]

다급하게 페니를 불렀다. 페니에게서는 경계 중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놈들이 유미와 페니의 경계를 뚫고 들어온 것이었다.

[놈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돌아와.]

유미와 페니가 내려오는 동안, 마지막으로 저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우리에겐 억제제가 있다. 그걸 맞으면 식인 욕구가 가라앉아. 일반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된다. 사람을 잡아먹지 않아도 괜찮아진다고. 그래도 우리와 싸울 건가?”

“......”

까득-

우직-

대답 대신 유리를 밟고 계단을 오르는 소리만 들렸다.

“좋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일주일이었다. 이쪽에서는 두 명이 희생됐고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끝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었다.

“흐흐흐. 억제제라? 그게 억제제일지 독약일지 어떻게 알지?”

계단 아래서 낮고 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신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가 먹는 걸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좋아. 그렇다고 치지. 미래라고 했던가?”

내가 일주일간 반복해서 소리쳤던 것을 듣고 있었다. 아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반복해서 말했으니까. 저쪽의 입이 열렸으니 아주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 미래다. 식육의 끝은 파멸이야. 미래가 없다.”

“크흐흐흐! 어떻게 생겼는지 정말 궁금하군. 계단 중간에서 봤으면 좋겠는데... 음 이렇게 하지, 이쪽에서는 대표로 나 혼자 올라 갈 테니, 그쪽에서는 당신 혼자 내려올 수 있겠나? 희망 전도사 양반?”

내려가려는 내 소매를 인아가 살짝 잡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인아가 고개를 저었다. 인아가 고개를 젓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마침 유미와 페니가 다가왔다.

“함정이라고 하더라도 나 혼자라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어.”

“그게 아니라.”

“인아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아. 혹시라도 놈들이 날 붙잡아 놓고 여기를 우회해서 공격하려고 할 가능성도 있어. 이쪽으로 놈들이 오면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어쨌든 저쪽이 공격하면요?”

유미의 말에 인아도 나와 눈을 마주쳤다.

“피 흘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끝까지 싸우려고 한다면 싸움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유미가 팔을 붕붕 돌리며 말했다.

“단숨에 죽여도 돼요? 팔다리를 꺾어봐야 금방 재생할 텐데......”

“그래. 대화를 해보자는 게 거짓이고, 함정이라면 죽여야지.”

내 대답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던 인아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페니를 통해 이곳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테니까. 문제가 있으면 페니를 통해 전해줘. 나머지는 미리 이야기했던 방법대로 움직인다.”

“알겠어요.”

“네.”

바로 계단 중간으로 내려갔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바닥에 깔아놓은 유리조각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힐끗 아래를 보니 놈은 먼저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너저분하고 굶주린 몰골이 아닐까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190cm는 될 법한 덩치에 잘 빠진 몸매는 종합격투기 선수 같았다. 올백으로 깔끔하게 넘긴 머리에 가지런히 정리된 턱수염을 매만지며 난간에 기대, 내가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대화를 하자고 해놓고서 매너가 없는 것 아닌가?”

“바로 내려왔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사람을 잡아먹게 생기지 않은 모습. 깔끔하고 샤프한 모습이었다. 사내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억제제라는 약을 우리에게 주겠다?”

“원한다면.”

사내가 크흐-하며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나를 쳐다봤다. 반달로 휘어진 눈동자는 전혀 웃지 않고 있었다. 내 마음을 꿰뚫어 보려는 것처럼 사내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궁금하군. 우리에게 그 약을 준다고 해서 뭐가 이득이지?”

“이득이라......”

“설마 아무런 이득도 없이 공으로 주겠다는 건가? 변이를 억제할 수 있는 약을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주겠다는 거야? 크흐흐.”

“이 약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약을 퍼뜨려 주는 것. 그게 대가다.”

사내의 반쪽으로 눈이 살짝 감겼다. 깨끗하게 정리된 턱수염을 매만지던 사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과연 그런 건가? 머리를 제법 잘 썼군. 정체불명의 약을 퍼뜨려 달라? 그게 효과가 있다면 효과가 있는 데로 네놈의 영향력은 커지겠군. 효과가 없다면 우리 세력이 깎여 나갈 테고 말이야. 쥐새끼 같은 방식인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나? 희망 전도사.”

“약효를 믿기 어렵다면, 샘플을 주지.”

“샘플?”

“그래. 샘플. 변이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자가 있다면 먹여봐. 효과가 있다면 다시 이야기하면 되지 않나?”

“샘플이라. 나쁘지 않겠군. 그런데 그 약은 얼마나 있나? 여기저기 뿌릴 만큼은 되는 건가?”

“적지 않게 있다.”

그 말에 사내의 입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뱀장어처럼 길게 늘어나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좋아. 아주 좋아. 그럼 걱정이 없겠군.”

대화가 통하는 건가?

순간 심장이 욱신-거렸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강한 반응. 위기감응이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과 동시에 내 눈이 있던 곳의 공기가 우그러드는 모습이 보였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손으로 사과를 으깨는 것처럼 내 눈이 있던 곳의 공간이 으깨지는 것 같았다.

화륵!

반사적으로 올백 머리를 향해 염화 능력을 발동했다. 놈이 내 눈을 노렸던 것처럼 나도 놈의 눈을 노리고 불꽃을 피워 올렸다.

퍽!

불꽃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작은 폭발이 일어나며 조그만 충격파가 터졌다. 바람에 의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다시 올백으로 넘기며 입맛을 다시는 남자였다.

“이거. 그걸 피하다니 놀라운데? 좋은 반응이야. 크흐흐흐.”

나를 생포할 생각으로 내 눈을 공격했다. 죽이고자 했다면 머리를 박살내려고 했거나 사지를 꺾으려고 했을 것이다.

“내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가?”

“말귀라니. 내 귀는 항상 열려있다고. 근데 네놈의 개소리는 열린 내 귀를 썩게 하더군. 미래? 크하하핫! 사랑? 가족? 크흐흐! 무슨 개소리를 그렇게 하지? 뭐야 그 표정은? 내가 개소리라고 해서 열 받은 건가? 그래? 크흐흐.”

사내가 한 손으로는 올백머리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기 배를 잡고 웃었다. 욱신-내리누르는 심장의 경고에 따라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움켜잡으려는 것만 같았다.

‘염력? 아니면 공기를 제어하는 능력인가?’

처음에는 감이 좋은 놈이라고 생각했는지 장난삼아 기습했었는데, 자신의 공격을 전부 피하자 사내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입만 산 건 아니란 소린가? 간만에 흥분되는군.”

사내가 날 보고 입맛을 다셨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나? 대화할 생각이 없었나? 왜지? 왜 지옥 같은 삶을 살려고 하는 거지?”

“크흐흐흣. 지옥 같은 삶이라니? 나는 지금 이 세상이 천국 같은데 말이야? 우리는 말이지 네놈이 만들겠다는 세상이 역겨운 지옥을 다시 만들자는 개소리로 들렸다고. 멍. 멍. 크흐흐흣.”

사내의 얼굴이 짙은 살기가 감돌았다. 마치 생사 대적을 만난 것처럼 흉흉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하는 사내였다. 어째서? 인간성을 회복하고 다시 믿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고 했을 뿐인데? 인육에서 자유롭고 싶지 않은 건가? 이 세상이 희망도 미래도 없는 세상이 천국이라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죽이자. 놈을 처분하기로 마음먹자 신경이 날카롭게 세워졌다. 심장이 낮게 두근거리며 경고음을 냈다. 페니에게 접근하는 놈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자 사내가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이죽거렸다.

“눈빛이 바뀌었군. 조금은 좋은 표정을 지을 줄도 알잖아.”

동시에 허공이 출렁거렸다.

쾅!

화르르륵!

공중에서 놈의 능력과 내 염화 능력이 충돌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이 투명한 막과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창문 밖으로 다른 놈들이 위층을 향해 뛰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단숨에 뛰어올랐던 놈이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 없는 시체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놈은 동료가 죽었음에도 전혀 상관없다는 것처럼 오히려 즐겁다는 듯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위에 있는 여자들도 제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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