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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203화 (203/261)

유령도시 (4)

합류할 지점에 왔지만, 슬레이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사각지대로 은폐하며 이동했다. 시로는 페니의 어깨에 짐짝처럼 매달려 ‘훕.훕.’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슬레이브는? 살아 있는 건 맞아?”

“네. 살아있어요. 확실해요.”

“어느 방향에 있는지 알겠어?”

“대략적으로는 알겠어요.”

본래대로라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 데 대략적이라... 인아도 영 찜찜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잠시 이동을 멈추자 시로가 애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일단 지금은 뒤로 빠지자.”

“네.”

외곽에 있는 단독주택에 들어갔다.

“흡... 읍...”

“나가 있어. 시로랑 얘기 좀 해보게.”

인아, 유미, 페니를 내보내고 시로를 데려왔다. 비닐봉지를 벗기자 시로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시로가 사방을 둘러봤다. 유미나 인아를 찾는 눈빛이었다.

“쿠훕. 큽. 후욱. 여기는 어디야?”

“세종시.”

“......”

“이 동네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

“......”

대답이 없다는 건, 아는 게 있다는 소리였다. 근데 말이 없었다. 거래하고 싶다는 건가? 그렇다면 아직 나를 모른다는 말이었다. 씩-웃어주고 척- 스펙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어차피 한계까지 몰아가려고 했기 때문에 협상은 필요 없었다.

“자. 잠깐!”

“잠깐?”

“멈춰! 계속 맞으면! 그걸 맞으면!”

“알아. 위험하다는 거.”

치익- 버둥거리는 시로에게 주사를 놨다. 절반 분량으로 줄여서 넣어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약하게 자주 넣는 만큼 서서히 중독될 것이다. 중화제도 마찬가지, 이렇게 반복해서 자주 쓰면 내성이 빨리 생길 것이다.

주사기를 바꿔 들었다. 중화제였다. 시로는 또 스펙을 맞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칙-중화제를 연이어서 바로 놓자, 정신을 차린 시로가 날 노려봤다.

“너. 뭘 하려는 거지?”

“......”

“뭘 원하는 거야?”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면 해서 말이지.”

“자발적 참여?”

머리가 좋은 놈이라 그런지 내 말 속에 숨겨진 의미를 알아챈 것 같았다.

“큭. 크흐흐흣. 그래. 좋아. 좋다고. 여기가 세종시라고?”

“그래. 건물도 멀쩡한데 좀비도 없고 사람도 없어서 말이지. 아는 게 있다면 전부 말해줬으면 좋겠어.”

스펙 주사기를 꺼내 들고 상큼하게 웃어줬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궁금하지만 모른다고 어떻게 될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시로가 작게 ‘칙쇼-’라고 중얼거리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작은 사태 초기로 넘어갔다. 정부청사를 건축하면서 재난대비 시설들이 들어갔다. 감염 사태가 발생한 뒤, 이 재난대비 시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졌다.

그게 문제가 됐다. 감염사태에 의해 대부분 죽어 나갔어야 할 말단 공무원들이 생각보다 많이 살아남은 것이다. 이것을 안 연방의 인물들은 세종시 공무원들을 이용할 방법을 찾았다. 연방에 있는 고위직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을 주축으로 세종시 정부청사에 생존한 공무원들과 병력을 움직여 대전 연구단지에 자리 잡은 동맹을 흔들기로 했다.

그들은 우선 ‘지방 행정권을 확보하고 군부대를 규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반적인 조직이라면 서울에서 내린 명령을 무시했겠지만, 공무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살아남은 공무원들은 위에서 내려온 명령대로 주변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행정망을 복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는 대전 연구단지에 자리를 잡은 동맹 세력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됐다. 처음에 동맹 측은 이들과 협상을 하려고 했다. 이미 국가는 무너졌고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그들(연방)의 앞잡이가 되는 것일 뿐이라고 상황을 설명했지만, 공무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들은 재난이 닥쳤으니, 재난 극복을 위해 자신들(공무원)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대전에 있는 동맹 세력과 세종시에 있는 공무원 세력은 충돌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군인과 경찰을 흡수한 공무원 세력은 서울에서 내려온 명령대로 인근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공무원들은 연구 단지를 장악하고 있는 동맹 세력에게 무장해제를 할 것을 요구했다. 사태 초기 동맹 측은 병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자신들과 뜻을 같이한 병력이 모이는데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대로 간다면 대전 연구단지가 저들에게 넘어갈 상황이 됐다.

공무원들에게 대전 연구단지가 넘어간다는 것은 공무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연방에게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동맹의 지휘부는 그걸 용납할 수 없었다. 시간만 더 끈다면 동맹 쪽에 붙은 사람들이 병력이 도착했다. 그러니까 지금만 버티면 됐다.

“그래서 어떻게 했다는 거지?”

“우리가 뭘 할 필요가 있을까? 큭... 크크크.”

동맹은 사실을 전했을 뿐이다.

“어떤 사실을 전했다는 거지?”

“사태가 어디서 시작했는지 알려줬을 뿐.”

“평택에 있는 생체실험장에 대한 정보?”

“크크크크.”

시로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태 초기, 기존의 세상이 망해버렸다는 걸 인정하지 못한 공무원들 살아남은 군인들과 경찰들에게 이 사태의 근원에 대한 정보는 혹할 만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 사태의 원인을 파악해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이 되고 싶었다. 그들은 평택으로 갔고 그 결과 접촉하지 말았어야 할 것과 접촉하게 됐다.

“평택에 뭐가 있었지?”

“노인네가 준 자료를 보지 않았나? 병든 지구를 회복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 있었지. 망가진 지구를 되살려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으니까.”

“자세히.”

“연방 놈들이 연구한 내용 가운데는 구시대 인류의 잔재들을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우리가 놈들의 연구 자료를 빼돌리고 미완성된 바이러스를 유출하자, 연방 놈들은 바로 정화 프로젝트를 실시했을 뿐이지.”

“정화 프로젝트?”

“알다시피 석유화합물은 분해되는데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이 걸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지 지구의 관점에서 보자면 구시대 인간이 만든 것은 전부 독이나 마찬가지야. 연방 놈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신세계를 만드는 데 있어, 생태계에 독이 되는 구시대의 잔재는 필요 없다고.”

“......”

시로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자본주의로 인해 세상이 얼마나 많이 망가졌는가? 자본주의로 인해 생산성이 증가했지만, 그 대가는 무분별한 자원의 소모와 계속된 생태계 파괴였다.

구시대 인류가 만든 문명은 자본주의의 산물이었다. 이익을 위해 만든 건축물은 방사능 폐기물이든 쓰레기든 상관없이 들어간 쓰레기 건축물이었고 그런 자본주의 정신으로 만든 수 많은 물건은 지구를 오염시키는 폐기물을 양산한 꼴이었다.

신세대 인류의 지배자. 귀족이 되고자 하는 연방에서 과거의 잔재, 지구를 병들게 하는 쓰레기를 남겨둘 이유가 없었다. 자본주의건 자본주의 정신으로 만들어진 쓰레기건 반드시 없애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청소를 위해 만든 것이 분해 식물이었다. 동맹이 바이러스를 유출하자 연방은 바로 분해 식물이 만들어지는 변이 체계를 발동시킨 것이다.

“그럼 식물들의 변이는 의도된 건가?”

“그렇지.”

“곤충들은? 거대한 곤충도 의도된 건가?”

“그렇지는 않아. 우리든 연방이든 생태계 전체를 대상으로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본래 동맹에 속한 과학자들은 현재 연방의 밑에서 연구하던 과학자들이었다. 그럼에도 시로는 그들과 자신들을 분리해 말하고 있었다.

“그럼 이곳이 유령도시가 된 이유는 뭐지? 좀비가 없는 이유는? 변이된 곤충 때문인가?”

“곤충이라. 그럴 수도 있지. 군대개미처럼 개미들이 변이를 일으켰다면 남아날 것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

시로가 호기심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확실히 호기심이었다. 뭔가를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시로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군대개미는 아닌 것 같군. 군대개미가 달려들었다면 대규모 불이 났어야 해. 사람들이 병신처럼 가만히 앉아서 개미 밥이 될 리는 없잖아. 불을 지르든 뭘 하든 저항했을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는 군.”

“그럼?”

“아마도 식물에 먹혔겠지.”

“뭐라고?”

“식물을 변이시켜 인류의 잔재를 지워버리고 했던 놈들이다. 식물을 가지고 뭔 짓을 했을지 모른다는 소리야. 그쪽은 내 연구 분야가 아니라서 정확하게 말하기는 힘들지만, 분해하는 식물이 있는데 잡아먹는 식물은 없을까? 그렇다는 거다. 크크크.”

순순히 설명하는 시로였지만, 우리 상황을 자세하게 말해주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놈 말을 하면서 주변을 살폈다. 역시 이놈은 믿을 수 없는 놈이었다.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자 시로가 격하게 반항했다.

“묻는 대로 대답하지 않았나? 읍. 읍.”

“아- 고마웠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대신 오늘은 스펙을 더 놓지 않도록 하지.”

눈과 귀를 막고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웠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아와 유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세종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잠식당한 상태라고 보는 게 맞았다.

“아마도 일종의 식물형인 것이겠지.”

“그 이끼나 넝쿨처럼 말이죠?”

유미가 말했다.

“그래. 넝쿨이나 이끼보다 더 독한 뭔가가 있다고 봐야겠지.”

인아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슬레이브가 없다면 인아의 전투력은 급감했다. 일반 빗치들 보다 강했지만, 인아의 전투력 절반은 슬레이브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인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유령 도시가 됐다는 건 사람들이 전부 당했다는 거야. 사람뿐 아니라 좀비나 변종, 빗치까지 당했다고 봐야겠지.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좀비나 변종 빗치들이 있었으니까 말이야. 무장을 한 사람들이 전부 당했고, 다른 것들도 전부 당했다. 심지어 이곳에 남겨두고 간 슬레이브도 당했다는 건 위험하다는 소리다. 괜히 위험한 곳을 들쑤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이것들이 퍼질 수도 있는데요?”

인아는 슬레이브들을 구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소탕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과 싸우고 싶지 않아.”

시로의 말대로라면 여기 있는 것들은 분명히 퍼질 것이다. 혼자 퍼질 수 있을까? 스스로 움직여서 퍼질 것이라면 진작 사방으로 퍼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건 변이된 식물이 퍼지기 위해서는 매개체나 숙주가 필요하다는 소리였다.

“그럼 그냥 두고 가실 생각이세요?”

“아니. 사람들을 유혹할 미끼는 정리하고 가야지.”

“유혹할 미끼요?”

유미가 무슨 미끼냐는 표정을 지었다.

“무기. 멀쩡한 건물.”

“아-”

확실히 장갑차나 전차, 헬기는 생존자들을 유혹할 미끼로는 훌륭했다. 정부청사를 발견한 생존자들이 무기를 차지하겠다고 안으로 들어간다면? 안에 있는 뭔가가 생존자들을 숙주로 삼을 위험이 있었다.

“일단 정부청사에는 불을 지르도록 하자. 탱크로리(유조차)를 터뜨리면 어떻게든 되겠지.”

“알겠어요.”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화르륵- 불꽃이 흔들렸다. 정신을 집중하자 붉게 타오르던 불꽃이 파란색으로 변했다. 염화 능력은 거의 9할 가깝게 회복됐다. 염화 능력이 돌아온 것을 보면 위기 감응도 회복됐다고 볼 수 있었다.

“좋아. 일단 움직이기 전 좀 먹자.”

인아, 페니 나는 전투식량을 먹고 유미는 내가 전투식량을 다 먹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전투식량을 먹은 뒤 유미는 오래간만에 먹는 싱싱한 피를 즐겼다.

“저놈은요?”

“됐어. 어차피 페니가 들고 가는데, 움직이지도 않는 놈을 먹일 여유는 없다.”

전투 식량을 가지고 있던 슬레이브들이 레드 존을 통과하면서 대거 죽었기 때문에 식량이 모자랐다. 맨홀 변종을 먹은 뒤로 일반 음식이 받지 않았다. 상황이 그렇게 됐기 때문에 좋든 싫든 전투식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쯧-이것도 물어봐야겠군.”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었던 전투식량이 지금은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달게 느껴졌다. 이것도 변이의 부작용이라면 해결 방법이 있을 것이다.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채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버둥거리는 시로가 보였다.

*

탱크로리(유조차)를 찾기 위해 주유소를 돌았다. 건물 안에는 뭐가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시야가 확보된 곳으로만 움직였다. 시로를 한곳에 두고 움직였다가 시로에게 뭔가가 들러붙기라도 하면 골치 아팠기 때문에 같이 움직였다.

3곳이나 허탕을 치자 유미가 웅얼거렸다.

“유조차가 있을까요? 없으면 어떡하죠?”

“있을 거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야지.”

“만들어요?”

“아까 봐둔 수산물 운송 트럭이 있어. 거기에 기름을 넣고 폭발시켜 봐야지.”

“횟집 트럭이요?”

“그래.”

인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무슨 고민 있어?”

“아니요.”

고개를 흔들며 대답하는 인아였지만, 전혀 아닌 표정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봐. 그런 얼굴을 하고 아니라고 하면 누가 믿겠어.”

“아- 이건.”

인아가 화들짝 두 손으로 얼굴을 잠시 가리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슬레이브들이요.”

“그래. 슬레이브들이.”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어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무슨 신호?”

“구조 신호요.”

“쯧- 정확하게 어떻게 신호를 보내는 데?”

인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살려달라고. 그게 함정인 줄 아는데 그래도 계속 머릿속에서 울려서. 계속.”

좋지 않았다. 의미가 불분명한 신호를 보내던 슬레이브들이 구조 신호라는 목적이 뚜렷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곳에 있는 무엇인가가 슬레이브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소리였다.

링커와 슬레이브는 연결되어있었다. 링커의 명령이 슬레이브에게 전달되고 슬레이브가 보고 듣는 것들이 링커에게 전달되기 마련이었다. 인아와 슬레이브들은 링커와 슬레이브만큼 강하게 결속된 것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이어진 것은 이어진 것이었다.

느슨한 연결이라고 하더라도 머릿속에서 슬레이브들이 계속 구조신호를 보낸다면 제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힘들 것이다. 인아의 얼굴을 보니 한계였다. 슬레이브들이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머릿속에서 외치면 그건 정신공격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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