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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202화 (202/261)

유령도시 (3)

시로에게 스펙을 주사해 압박했다. 시로도 세포붕괴로 죽고 싶지 않은지 변이 억제제에 대한 정보를 순순히 불었다. 역시 자기 목숨이 달려있으면 말하기 마련이다. 예상대로 억제제는 중화제와 유사한 성분이었다.

나상철의 말대로라면 동맹도 스펙과 유사한 전투자극제를 자체적으로 생산했고 그 독성을 중화시키기 위해 중화제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게 사실일까? 아닐 것이다. 연방의 스펙이 가진 부작용. 때맞춰 동맹이 가지고 있는 중화제를 놓고 본다면 연방과 동맹이 갈라서면서 자료가 둘로 나뉘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거나 그렇지 않거나, 중요한 것은 변이에 대한 부분이었다.

변종이나 빗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멸종되도록 고안한 것은 이해했다. 꾸준히 억제제나 중화제를 맞아야 세포 변이로 인한 붕괴를 막을 수 있게 했을 것이다. 그게 이성이 있는 변종이나 빗치에게는 자연스러운 목줄이 될 테니까.

문제는 생태계 변이었다. 이끼처럼 생긴 식물. 거의 5~6m가 넘게 자라나는 해바라기. 강한 자극성 수액을 가진 잡초와 넝쿨. 고작 하룻밤 사이에 싹을 틔우고 가죽 신발에 뿌리를 내리는 괴이함까지. 이걸 알고 있을까?

“생태계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원하지 않은 변이가 일어날 건 예측하지 못한 건가?”

“큭. 원하지 않았다니?”

그런가? 이렇게 급속도로 생태계가 변하는 것도 예상했었던 건가? 그렇다면 예상했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의도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계획을 세울 때는 변수까지 고려하는 법이니까.

“좋아. 변이가 불완전해질 것을 예상했다고 치고. 그래서 중화제만으로도 억제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건가?”

“칙쇼! FUCK! 중화제부터 달라고 늦기 전에!”

시로가 부들부들 떨리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그렇게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는 시로의 몸을 보곤 담담하게 말했다.

“흠. 세포붕괴 전에는 사지 경련을 일으킨다는 소리군.”

“제발. 빨리.”

팔다리는 떠는 건 연기다. 아마도 실험체가 세포붕괴 되는 것을 지켜봤었겠지. 주사제의 양을 절반으로 줄여서 놨는데 저렇게 전신 경련을 일으킬 리 없었다. 아니면, 말고. 내 냉막한 눈빛에 시로는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애처롭고 잔혹해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전혀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몇 가지 더 물을 게 있어서. 변이 억제제는 효과가 얼마나 가지? 영구적인가?”

“정기적으로 맞아야 효과 있다. 내성 문제도 있고.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빨리 달라고!”

이런. 너무 오래 끌면 시로가 알아챌 위험이 있었다. 내가 스펙 용량을 절반으로 놨다는 것을 알아채면 이다음부터는 스펙으로 협박하는 게 먹히지 않을지도 몰랐다. 칙-소리와 함께 중화제가 시로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스펙을 절반으로 줄여서 줬으니, 중화제도 절반으로 줄여서 놨다. 중화제를 맞자 불안했던 시로의 얼굴이 수치심과 분노로 구겨졌다.

“정신간섭인지 정신지배인지 모르겠지만, 그거 나한테 안 통해. 머리 굴리다가 터지는 수 있다. 적당히 하라고.”

“......”

까득-

중화제가 제한적이지만 억제제의 효과가 있다는 게 확인됐으니, 급한 불은 껐다. 남은 것은 억제제든 중화제든 제법을 알아내는 것인데, 가능했다.

시로 같이 과학을 명분 삼고 인류의 미래를 운운하는 것들은 자기 목숨을 버려야 할 경우 둘로 나뉜다.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자들과 자기 목숨에 집착하는 놈들. 그리고 대부분은 후자였다. 시로도 자기 목숨에 집착하는 놈이니 시간만 충분하다면 충분히 알아낼 자신이 있었다.

‘정신계열 능력이 문제야.’

놈을 구워삶는 동안 갑자기 정신계열 능력이 더 강해지거나 정신공격의 대상을 바꾸면 위험했다. 내가 놈의 정신간섭에 당하지 않으니, 유미나 인아를 공략할 것이 분명했다. 유미나 인아의 정신력이 나보다 약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약하고 강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쯧- 골치 아픈 놈이네.”

인간의 정신을 장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넋이 나간 난민들을 생각해 보면 일반인에 대한 정신지배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봐야 했다. 멀찍이 떨어져 기다리고 있던 유미와 인아에게 현재까지 얻은 정보와 시로가 가진 정신계열 능력을 설명했다.

“슬레이브를 각인할 때와 같이 뭔가를 먹이거나 어떤 작용을 해야 하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위험한 능력이야.”

시로 놈이 처음부터 작심하고 유미나 인아를 공략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몰랐다. 놈이 여흥을 즐기겠다고 나를 가지고 놀았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아마도 유미나 인아를 배신시켜 내가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겠지. 음흉한 놈이었다.

“이놈이 다급하니까 내 정신에 간섭하려고 하더라고. 조심해.”

유미는 내 설명을 듣자마자 살짝 떨었다. 피부과 종구를 떠올린 것 같았다. 연방의 실험체가 된 종구가 죽기 직전 폭주하면서 정신능력을 각성해 유미를 강제 지배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유미에게 깊은 상처였다.

유미가 몸을 떠는 것을 본 인아가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음. 생각 중이야.”

시로는 이제까지 내가 만나본 자들 가운데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변화한 생태계에 대한 정보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거대 곤충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위험하긴 했지만, 그냥 처분하기엔 아까웠다. 내가 고민하자 유미가 한마디 던졌다.

“죽여요.”

유미가 살기등등한 얼굴로 말하곤 벌떡 일어섰다.

“당장. 죽여 버려요.”

“자. 잠깐 유미야.”

당장 죽여 버리자는 유미를 간신히 진정시켰다. 연구원을 잡기 위해 이 고생을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죽여 버리면 뭐가 되겠는가? 시로가 내 마음을 어느 정도 읽는 것 같아 죽으면 말고. 아니면 말지. 식으로 의도적으로 생각했지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

스펙과 중화제를 이용해 시로 놈을 계속 괴롭히면 중화제의 특성상 내성이 생길 것이다. 내성이 생기면 스펙으로 인한 변이와 세포붕괴를 막을 수 없게 됐다. 그걸 아는 시로는 어떻게 하든 억제제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시로가 말했다. 변이는 예상했던 것이라고. 그렇다면 억제제와 중화제 가운데 뭐가 먼저 만들어졌을까? 변이를 억제하는 약물이 먼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부하들을 지배하기 위해 다운그레이드한 약물인 중화제가 나왔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시로는 중화제를 이용해 중화제의 내성 문제를 해결한 약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그 제법을 알아내기도 전에 죽여 버리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아니었다. 하지만 유미의 생각을 달랐다. 정신지배를 당해본 경험이 있는 유미는 시로를 빨리 죽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렇다고 네가 가면 어떻게 해. 내가 말했지 근처에 가지 말라고.”

시로 놈에게 갔다가 지배되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혼냈다. 유미가 옆에 있던 자동차 문짝을 북 뜯어내더니 안에 있던 세이프티 바를 뽑아냈다. 날카롭게 꺾인 세이프티 바를 시로에게 던지려는 것을 뜯어말렸다.

“능력은 시각정보에 많이 의존해. 그러니까 좀 기다려봐.”

내 염화 능력도 마찬가지였고 알렉스의 물을 다루는 능력도 그랬다. 제한 거리가 있었고 시각적인 이미지로 집중해야 힘을 쓰기 편했다. 시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로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 여러 겹으로 둘둘 만 뒤, 숨구멍만 작게 뚫은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 씌웠다. 숨구멍을 작게 뚫었기 때문에 시로가 숨을 쉴 때마다 비닐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시로의 입술에 달라붙었다.

“으읍. 읍. 흡.”

간신히 질식하지 않을 정도로만 맞춰놨으니 정신지배든 뭐든 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유미를 안정시키고 세종시 정부청사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

시로를 심문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이동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 서류는 어때? 쓸 만한 자료가 있었어?”

내가 시로를 손봐주는 동안 인아와 유미는 서류를 검토했었다.

“네. 쓸 만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영 껄끄러운 내용도 있었어요.”

“껄끄러운 내용?”

“그 노인이 작심하고 이상한 자료를 넣었더라고.”

인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내용이었는데?”

“연방의 USB에 있던 내용과 연결되는 내용인데요. 아-”

인아가 생각하기도 싫다는 것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니까 변종이나 빗치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했었잖아요.”

“그래.”

“그것과 연관된 내용이에요.”

인아가 설명을 시작했다.

재벌, 대기업, 다국적기업, 군산복합체의 임원진들과 행정부 고위공무원들, 정치인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정치인에게 사람이 필요한 이유는 권력을 얻기 위해서다. 자본가에게 사람이 필요한 이유는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다. 그럼 반대로 권력도 있고 자본도 있다면 타인-사람이 필요할까?

‘그런가? 사람에 대한 관점 자체를 노골적으로 바꾼 건가?’

인간이 자본에 종속된 노예라는 비평도 있었고 인간을 사회의 부속품으로 보는 관점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본다면 민주주의가 인간이 자본에 매몰되는 것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었다. 문제는 생명, 유전공학의 발달이었다.

‘죽음이라는 제한이 풀어지면서 엉망이 된 거군.’

지배층이 지배력을 공고히 하려고 했지만, 죽음은 공정했다. 역설적으로 죽음은 없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기회였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권력이 있든 없든, 죽었기에 사후처리를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 있었다.

오래된 정치인 가문도 대가 끊길 수 있었고, 재벌도 3세 4세로 넘어가면서 몰락할 수 있었다. 법제도 마찬가지였다. 상속세를 많이 물게 하거나 증여세를 높게 매기면 죽음을 통해 분배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이성은 눈앞의 이익으로 목줄을 채울 수 있지만, 늙음, 죽음, 불확실성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 가운데 의도하지 않은 죽음이야말로 지배층의 진정한 적이었다.

하지만 생명공학, 유전공학으로 수명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게 된다면? 죽음을 극복할 가능성이 확인됐다면? 최소한 240년의 수명이 보장된다면 어떻게 할까?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면 지배층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일반인들 모든 인류의 삶을 240년이 되도록 기술 공개를 할까? 모든 인류가 젊고 건강하게 최소 240년을 산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 지구가 그런 인류를 감당할 수 있을까? 예전 같으면 3대에 걸친 삶을 혼자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무지하고 탐욕스러운 대중이 젊음과 장수까지 갖게 된다면 지구는 순식간에 황폐화 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지배층은 고민했다. 혼자 먹기에는 위험한 기술이었다. 정보화 사회에서 언제까지 비밀로 가지고 있기는 힘들었다.

군사비밀로 기술을 독점하려고 하면, 군부와 연계될 수밖에 없었다. 국회 청문회 같은 것에서 피하려면 정치권과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지속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을 포섭해야 했다. 이것들을 숨기기 위해서는 행정부 고위 관료의 도움이 필요했다. 자본의 은밀한 이동에는 금융권이 동원됐고 혹시라도 빠져나간 정보들을 회수하는 데는 언론이 있어야 했다.

결국, 그들은 하나의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들은 생각했다. ‘세상의 틀을 바꾸자고.’ 기존의 정치, 경제구조로는 최소 240년 이상의 삶을 사는 신인류를 감당하지 못했다. 탐욕스러운 대중까지 장수와 젊음을 받으면 지구가 병들 것이다. 그러니 대중은 기존의 수명대로 살다 죽고, 지혜롭고 합리적인 자신들이 우매한 대중을 다스리며 긴 시간 군림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현재의 정치제도인 민주주의가 용납할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러니 바꾸자. 이 세상을 바꾸자. 지배층의 생각은 계급사회의 완전한 부활이었다. 단순히 돈과 권력으로 계급이 나뉘는 것이 아닌, 혈통 그 자체가 계급이 될 수 있는 완전한 계급사회의 부활.

우매한 대중들에게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남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 권력을 얻기 위해 마음에도 없이 고개를 숙이며 한 표 부탁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말 그대로 육체적인 능력.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능력 자체가 일반인과 다른 존재가 되는 세계를 원했다.

그러니 새로운 신세계를 만드는 데 있어, 생태계의 빠른 변화도 어느 정도 의도했던 것이었다. 지구를 최대한 빨리 회복시키기 위해 조작했다는 것도 놀라울 것은 아니었다. 인아의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내 말에 유미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렇다니요? 그럼 그놈들이 멍청한 거 아닌가요? 사람들이 죽으면 상품 소비 그거 없어지니까 이익도 없어질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있어서 생산하고 소비해줘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데 이렇게 망해버린 세상에서 뭘 건지겠다는 거죠?”

“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관점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달라.”

“관점을 전환해서요?”

“그래.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은 자본주의 경제구조, 민주주의 정치체계 속에서의 성공이다. 부자든 권력이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두 구조를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어. 지배층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아가 본 자료대로라면 이 사건의 주모자들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버렸다고 봐야 해.”

“네?”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고 한 거다.”

유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런. 이런 세상이 뭐가 좋다고.”

“힘이 있는 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시대가 될 테니까.”

두런두런 이야기를하는 데 인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깐만요. 지금 슬레이브들의 신호가 이상해요.”

“응? 신호가 이상하다니. 여기 있는 슬레이브들은 멀쩡하다고 했잖아?”

“아까는 거리가 좀 멀어서 잘 몰랐는데. 접근할수록 이상해요. 슬레이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도착한 정부청사 인근에는 마중 나와 있어야 할 슬레이브들이 없었다. 사람의 그림자도 없는 황량한 도시에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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