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류 (4)
요란하게 불똥이 튀는 연막탄이었다. 불꽃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불꽃이 튀었다. 적외선 감지교란이라고 하더니, 불똥이 적외선 감지를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연막탄이 터지면서 뿌옇게 시야가 차단되자 근처까지 다가온 놈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 여자 목소리였다.
“거기서.”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리였다. 무시하고 연막과 불똥에 의지해 도망쳤다. 그 여자가 계속 말했다.
“주변은 이미 수색대가 겹겹이 포위하고 있습니다.”
건너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끈질기게 우리를 추격했다.
“여기서 나가고 싶다면 얌전히 이쪽으로 오세요.”
“......”
“계속 도망친다면, 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알아챌 수 있었다. 저 목소리는 로라 스튜어트의 목소리였다. 로라가 여기 있다는 소리는 응접실에 서류 상자를 가져 온 뒤, 바로 이곳으로 왔다는 소리였다.
“......”
“상처를 도려낸 건가요? 그 상황에서 제일 정확한 행동을 했네요. 빠른 대응이었습니다.”
“......”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헛된 발버둥을 치다 죽겠습니까? 우리는 당신들의 시체만 수습해 가도 그만입니다. 그럼 그 좋은 판단력으로 생각해 보시길.”
인아의 상처를 도려냈던 곳까지 다가왔다는 소리였다. 짙은 연막이 시야를 가리고 있지만, 이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바로 떨쳐버리지 못하고 시간을 끌면 잡혔다.
“움직이면 경고 없이 쏘겠습니다.”
“......”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의 시체만 있어도 됩니다. 부디 자중하시길 바랍니다.”
“......”
인아가 맞은 그 총알이라면 위험했다. 위기 감응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 지금 총알을 피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것보다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적외선 감지를 교란하는 연막 속에서도 어떻게 도망치는 방향을 알 수 있을까? 방향을 안다?
‘탐지 슬레이브가 있다는 소리.’
탐지 슬레이브 기술은 연방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로라는 연방의 스파이 확정이다.
‘어디 있지?’
탐지 슬레이브는 어린 꼬마였다. 인아가 잡혀 있던 곳에는 꼬마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서 우리 위치를 알려줬을까? 우리가 말없이 제자리에 서 있자, 포기했다고 생각했는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로라가 우리를 안심시켰다.
“협조하면 나쁘게 대하지 않겠습니다. 자료를 보지 않았습니까? 당신을 실험한 건 동맹의 늙은 괴물들이었습니다.”
“......”
혹시라도 우리가 기습할 것에 대비해, 아주 천천히 연막을 뚫고 다가오고 있었다. 역시 노련했다. 능력이 있었다면 연막을 이용해 셋 정도는 금방 처리할 수 있었는데.
‘젠장.’
‘생각해라. 생각해.’
놈들은 어떻게 탈출하려고 했을까? 외부에서 어떻게 침입했을까? 지상으로 뚫고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하늘.”
“예?”
수신호를 보냈다.
[조명탄! 조명탄 가지고 있지?]
[여기]
인아가 허리춤에 매단 조명탄을 팔꿈치로 건드렸다. 팔이 뒤로 묶였기 때문에 팔꿈치로 여기 있다고 표시한 것이었다.
앞면이냐? 뒷면이냐? 내 추론이 틀렸다면 이걸로 끝이었다. 조명탄을 하늘을 향해 쐈다. 작은 조명탄이 하늘 위로 떠오르자, 호텔 인근 상공을 수색하던 서치라이트들이 조명탄이 올라간 이 근처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서치라이트의 밝은 빛에 어두운색으로 덧칠한 비행선이 딱 걸렸다. 서치라이트가 비행선을 포착하자마자 뚝 끊겼던 공습경보가 다시 발동됐다.
애애애앵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30mm 대공포가 하늘을 향해 쏟아졌다. 예광탄이 붉은 궤적을 보이며 검은 비행선을 두들겨 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조명탄 때문에 서치라이트에 걸린 비행선이 허둥지둥 고도를 높였다. 비행기였다면 대공포를 피했겠지만, 탈출을 돕기 위해 고도를 낮춰 운행하고 있던 비행선은 느릿하게 움직이는 과녁에 불과했다. 삽시간에 벌집이 된 비행선이 허무한 폭발음을 내며 공중에서 산화됐다.
[뛰어.]
내 수신호를 받은 인아가 내 뒤를 따라 뛰었다.
애애애앵
정체불명의 비행선을 격추했지만,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공습경보가 끊이지 않았다. 높은 사이렌 소리는 우리가 달려가는 발걸음 소리를 삼켰다. 로라가 멈추라며 고함을 질렀지만, 그 소리도 사이렌에 묻혀 버렸다.
비행선에 탐지 슬레이브가 타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대로였다. 비행선이 폭파된 뒤, 로라는 우리를 곧바로 추격하지 못했다.
“이대로 탈출할 건가요?”
“아니. 저쪽은 우리를 끝까지 따라 붙을 거야. 여기서 처리해야 해.”
“위험해요.”
“최소한 로라는 잡아야 해.”
“능력도 쓸 수 없잖아요. 발화 능력도 쓰지 못하면서 접근전을 하신다고요? 저들은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자들이에요.”
저들과 싸워봤기 때문인지 인아가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저는 팔이 묶여 있다고요. 혼자 싸우겠다는 건가요? 네?”
나 혼자 셋이나 되는 추격자들과 싸우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팔이 묶인 인아가 한 사람 몫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싸우려면 인아의 묶인 팔을 풀어야 했다.
“하아- 이대로 도망치면 더 위험해져.”
“그러니까 혼자 싸울 생각이냐고요? 안 돼요. 죽는다고요.”
이제는 우릴 보자마자 죽이려고 할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저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수색대의 수색까지 뚫는 건 불가능했다. 수색대를 뚫기 위해 교전하는 동안 뒤치기를 당할 위험도 있었다. 지금 처리하고 가는 게 맞았다.
“로라는 죽여야 해”
연방은 내가 아니라, 유미를 포획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로라가 내 정보를 확인했으니, 이대로 그녀가 연방으로 돌아간다면 나와 유미를 잡기 위한 전담팀이 생길 가능성도 있었다.
“인아야. 참아.”
“네?”
“팔을. 아니 손목을 잘랐다 붙이자.”
“네에?”
“총에 맞았던 부분을 도려냈을 때 확인했어. 재생력은 비교적 정상이다. 팔목을 단숨에 끊어내고 이어 붙이면 다시 회복될 거다.”
“자. 잠깐만요.”
“미안.”
인아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그대로 손목을 잘랐다. 손목을 자르고 묶인 케이블을 뺀 뒤, 손목을 다시 절단면에 가져다 댔다. 특유의 재생력이 절단된 손목을 다시 붙이기 시작했다. 읍-읍-하며 뭐라고 욕하는 것 같았다. 무시하고 눈물을 글썽이는 인아를 꼭 안아줬다. 읍-읍-하며 항의하던 인아가 잠잠해졌다. 특유의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바로 힘을 쓰기는 무리였다. 인아는 잘렸던 손목을 어루만지며 몸을 살짝 떨었다.
“후- 정말 싸워야겠어요? 연막도 흩어졌는데?”
“아직 뜨거운 게 하나 남았어.”
내가 백린 연막탄을 톡톡-건드렸다. 인아가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기회는 한 번이었다.
*
예상대로 로라와 연방의 특수부대는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추적하고 있었다. 포위망을 조여오던 동맹의 수색팀은 난민들의 발작 같은 저항에 질려 전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는가 봐요.”
“그랬다면 연방이 이겼겠지.”
동맹의 가장 큰 힘은 인구에 있었다. 어떤 의미로든 쓸모 있는 생존자만을 받아들이는 연방과 달리, 동맹은 생존자들을 조건 없이 전부 수용했다. 수도권에 있는 동맹의 지부도 마찬가지였고 대전에 있는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무작위로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동맹을 단숨에 밀어버릴 수 있었을 거다. 그러지 못했다는 건, 사람을 조종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 많거나 까다롭다는 소리였다. 그 조건도 실전에 쓸 정도로 안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나라면 수색대를 조종했을 테니까 말이다. 훈련병이라도 군인을 조종한다면 우리를 잡는 것도 쉬웠다.
“그럼 난민들만 조종할 수 있다는 거로군요.”
“그것도 이 근방에 있는 난민들만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아.”
모닥불에 모여 기계처럼 감자를 먹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표정하고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뜨거운 감자를 입에 밀어 넣던 사람들.
“칫- 이놈이고 저놈이고 마음에 들지 않아. 여기 불을 붙여.”
“어디까지요?”
“이 근처 전부.”
“휴- 알겠어요.”
난민들이 버리고 간 모닥불과 땔감들을 사방에 흩어 불을 질렀다. 불꽃이 서서히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따닥-따닥- 나무 타는 소리와 함께 주변이 불바다가 됐다. 여기저기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잠시 뒤, 우리 뒤를 추격하는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온다. 준비.]
인아가 내 수신호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로라와 연방의 특수부대를 합해 넷이었다. 로라를 뺀 나머지 셋은 고글을 쓰고 있었다. 섬광탄이 근거리에서 터졌으니 센서가 나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혹시나 적외선 감지기가 살아있을 걸 대비해 불을 지른 게 유효했다.
여기저기 불타오르는 곳을 보곤 로라가 뒤따르는 자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일렬로 이동하던 진형이 다이아몬드 진형으로 변했다. 인아는 제대로 된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인아를 붙잡았을 때도 인아는 고작 섬광탄과 연막탄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연막탄을 터뜨리고 도망쳤으니, 제대로 된 무기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이아몬드 진형 중앙에 백린 연막탄을 던졌다.
쾅!
낮은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백린이 흩어지며 하얀 연막을 피워 올렸다. 근거리에서 백린을 뒤집어썼지만,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고글까지 덮어쓴 셋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로라는 아니었다. 얼굴과 머리카락에 백린이 붙어 타들어 가자, 어떻게 하지 못하고 데굴데굴 굴렀다.
“꺄으으읏! 잡아! 죽여! 죽여 버려!”
바이크 슈트처럼 보이는 복장은 모양만 그런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 방염 기능이 있는지 셋은 백린 연막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 장작이 불타고 있는 드럼통에 수류탄을 넣고 굴렸다.
두두두 굴러간 드럼통이 놈들의 눈앞에서 폭발했다. 사방으로 터지면서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놈들이 재빨리 고글을 벗고 대응하려고 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흩어 떨어지는 불꽃을 뚫고 뛰어들며 ‘이야얏!’ 고함을 질렀다. 제대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뭔가 나타나자 방아쇠를 당기는 놈들이었다.
투두두두두!
고함을 지르며 태클하듯 몸을 숙여 달려들었다. 몸을 숙이는 것과 동시에 스치듯 지나가는 총알들. 위기 감응이 제대로 발동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뿜어졌다. 전신이 긴장과 흥분으로 찌릿찌릿한 느낌이었다.
제대로 훈련을 받은 놈들인지 내가 달라붙자 바로 태클에 대응하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내가 조금 더 빨랐다. 다리를 붙잡아 엎어뜨리며 붙잡은 놈을 방패로 삼았다. 둔탁한 충격과 함께 방패로 삼은 놈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두두두둑!
총탄이 내가 누운 방향으로 쏟아졌다. 쏘아진 총탄은 내가 방패로 삼은 녀석의 몸에 사정없이 틀어박혔다. 놈들이 입고 있는 옷은 방탄 기능까지 있는지 단숨에 관통되지 않았다.
내가 시선을 끈 사이 인아는 반대쪽에 있는 여자의 목에 나이프를 박아 넣었다. ‘크윽.’ 낮게 숨통이 끊어지는 소리를 내고 쓰러졌다. 인아는 재빨리 나이프를 밀어 넣어 목을 절단했다. 나를 향해 총질하던 두 년 가운데 한 년이 인아에게 죽자. 총소리가 외롭게 들렸다. 혼자 열심히 방아쇠를 당기던 여자가 고개를 돌려 동료를 확인했다.
여자가 고개를 돌리는 틈을 타 수류탄을 까 던졌다.
쾅! 쾅!
슬레이브나 빗치에게 수류탄은 살상 효과는 없었지만, 주의를 끄는 역할을 하기엔 충분했다. 갑작스런 수류탄 폭발에 주의가 분산된 틈을 타, 훌륭히 방패 역할을 한 여자의 총을 잡아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둑!
처음 몇 방은 버티는가 싶더니 탄창 하나를 그대로 쏟아 넣자, 방탄복 껍데기만 남기고 알맹이가 녹은 것처럼 무너져 내리는 여자였다. 사격을 멈추자 주변은 사이렌 소리만 들렸다. 가늘고 높은 사이렌 소리 사이로, 기괴한 비명이 들렸다.
“으아아앗. 죽인다.”
“으으읏.”
이제 남은 건 로라 하나였다. 매콤한 백린 연막 안으로 들어가자 로라가 보였다. 로라는 비명을 지르며 자기 얼굴을 도려내고 있었다.
“이이이아아!”
나이프로 자기 눈과 살점을 도려내는 모습은 그로테스크했다.
“죽인다. 죽여. 죽일 거야. 아아아악!”
특유한 재생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살. 그것도 얼굴과 안구를 스스로 파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죽이겠다고 이를 가는 여자에게 정보를 빼낼 상황이 아니었다. 그걸 감시하고 지켜볼 시간도 없었다. 인아에게 감염 장악을 시켜 볼까 싶었지만, 안면이 타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라 힘들었다.
철컥-
로라는 얼굴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정신이 나갔는지, 내가 접근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투두두둑!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를 잃은 육체가 땅바닥에 쓰러졌다.
내 뒤로 인아가 다가섰다.
“가자. 전부 챙겨.”
우리는 조용히 전리품을 수거했다.
전리품은 상당히 많았다. 특히 이들이 쓰던 소총은 굉장히 특이한 소총이었다. 불펍식 소총이라고 탄창을 개머리판 있는 쪽에 넣는 소총이었다. 불펍식을 쓴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총알은 더 신기했다. 총알에 탄피가 없었다. 탄피가 없는 작은 탄창은 가볍고 총알도 많이 들어갔다. 무려 45발이나 들어가는 탄창이었다. 그 외에도 처음 보는 장비들이 많았다.
“옷은 어때?”
“가슴이 조금."
인아는 로라가 입었던 특수복을 입혔다. 방탄에 방염기능까지 있으니 쓸 수 있으면 써야 했다. 인아가 목을 잘라 죽인 여자의 옷도 따로 챙겼으니, 그건 유미를 입히면 됐다.
주변은 난장판이었다. 인근에 거주하는 난민들이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훈련병들로 이뤄진 수색대가 우왕좌왕하면서 팔이나 다리에 총알을 박아 넣었지만, 막지 못해 결국 난민들의 머리를 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