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류 (2)
횡으로 반듯하게 잘려나간 소파가 살가죽 벌어지는 소리를 냈다. 바닥에 구르며 공격한 놈을 찾았다. 먼저 이능력을 쓰는 놈을 잡아야 했다. 잘린 소파와 테이블은 엄폐물이 될 수 없었다. 내 염화 능력이 시야에 영향을 많이 받듯, 물을 다루는 능력도 목표가 시야에 있을 때 효과적으로 발동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호오? 이거 놀랍군? 직접 육안으로 봤는데도 믿기 지가 않아. 신기해.”
이런 미친. 또라이 같은 노인네가! 대가리를 홀랑 태워버릴 요량으로 필립을 노려봤다. 믿음을 운운해 놓고 기습을 해? 타오르는 분노를 연료삼아 염화를 일으켰다. 노인의 머리통을 태워야 할 불꽃이 투명한 물에 막혔다.
치이이익-
물이 끓어오르며 하얗게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물로 막아?’ 바로 눈앞에서 이글이글 타들어 가는 불꽃을 보면서 필립은 마냥 신기한 얼굴이었다.
“불꽃이 저 여자의 능력이 아니라 자네 능력이었어. 흘.”
“이런 빌어먹을 노인네가!”
크게 소리를 질러 적들의 주의를 내 쪽으로 끌었다.
[위급상황. A]
인아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인아가 밖에 있는 슬레이브에게 텔레파시로 명령을 내렸다. 내 적의와 살의를 직접 받으면서도 필립이 즐겁다는 듯 활짝 웃었다. 노인이라고 볼 수 없는 천진난만한 웃음이었다.
“흘-흘-흘- 미안하네. 흘. 미안해. 꼭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서 말이야.”
필립의 눈동자가 나에게서 인아를 향해 움직였다. 인아가 슬레이브를 조종하고 있다는 걸 들키면 안 됐다.
“죽여 버린다!”
필립의 전신을 태울 것처럼 강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치이이이익!
내 발화 공격이 막히는 것과 동시에 투명한 물로 만든 원형 톱이 떠올랐다. 나와 인아를 향해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한 물의 톱. ‘필립이 능력자?’ 흘흘 거리는 필립은 크게 피어오른 불꽃에 신경 쓰고 있었다. ‘그가 아니다. 그럼 누구?’
능력은 시야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필립의 시야는 불꽃과 물이 만들어낸 수증기로 인해 제한받고 있었다.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 이렇게 정밀하게 물의 톱을 만들어 제어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는 것은 물을 다루는 놈은 따로 있다는 말이었다.
‘필립을 방어하고 나와 인아를 견제하는 게 가능하다니.’
위이이잉-
물로 만들어진 원형 톱날이 둥실둥실 나와 인아를 위협했다. 불꽃을 끄라는 소리였다. 말도 하지 않고 행동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강제하는 놈이었다. 불을 끄라고 말하는 순간, 그 방향으로 백린 연막탄을 던지려고 했었는데.
위이이잉-
물로 만든 원반이 맹렬하게 나와 인아를 협박했다. 이 거리라면 나는 피할 수 있어도 인아는 피하지 못했다.
[위치까지 5분 걸려요.]
인아가 수신호를 보냈다.
5분. 최소한 5분 이상 버텨야 했다. 시간을 끌어야 했다.
“왜? 왜 공격했나? 엉?”
불꽃을 키웠다 줄였다 해 필립과 경호원의 시선을 끌며 고함을 질렀다.
“흘흘- 말하지 않았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니까. 또 보여 줄 게 있나? 응?”
필립이 기대한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글렀다. 이 미친 노인네는 글러 먹었다. 뭔가 더 있나 쥐어짜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내 뒤로 와.]
인아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최악의 상황이라면 폭탄을 터뜨려야 했다. 염화 능력을 한계까지 발동한다면 폭발에서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순간적인 고온으로 인해 인아가 타격을 받겠지만, 최대한 막는다면 화상 정도로 끝날 수 있을 것이다.
폭탄을 터뜨리려면 정신을 방어에 집중해야 했다. 필립의 머리를 태우려고 피워 올렸던 불꽃을 끄고 허리춤에 매달린 기폭장치 안전핀을 뽑았다. 끓어오르던 수증기가 사라지자 고개를 갸우뚱하던 필립이 날 보고 활짝 웃었다.
“자폭할 건가? 진짜? 자폭해 버릴 생각인가? 여긴 인화물질도 많아서 터지면 위험할 텐데, 뒤에 있는 아가씨는 불쌍해서 어쩌누.”
광기가 가득한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정말 자폭할까? 진짜? 오 바로 앞에서 자폭하는 놈을 보겠는데?’ 그런 표정이었다.
“미친 늙은이 같으니. 뭘 원해?”
“응? 말하지 않았나? 자네가 우리와 함께하길 바랄 뿐이네. 그래서 아직까지 자네와 저 아가씨 목이 달려있는 거고 말이야. 흘-흘-”
팅- 안전핀을 뽑았다. 쥐고 있던 클립을 놓으면 자폭버튼을 누르지 않더라도 폭발될 것이다. 내가 손에 힘을 빼는 순간 여기는 불바다가 됐다.
[패러글라이더 준비해.]
인아에게 신호를 보낸 뒤, 내 목을 노리는 물의 톱 앞에 자폭장치를 쥔 팔을 내밀었다. 일촉즉발의 대치가 잠시 이어졌다.
“듀얼 능력은...”
노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일본어로 중얼거리며 뭔가를 빠르게 계산하기 시작하는 시로가 보였다. 한참을 적어 내려가던 시로가 흘러내린 동그란 안경을 다시 고쳐 쓰고 뭔가를 빠르게 적기 시작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필립이 탄성을 내뱉었다. ‘호오-오. 그렇게? 잠깐만. 그게 아니라.’ 늙은이가 시로가 그린 낙서 같은 계산식에 뭔가를 추가했다.
‘뭐야. 이 미친놈들은?’
자폭장치의 안전핀을 뽑았는데도 변하는 게 없었다. 붉은 머리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레이나였다. 레이나는 필립과 시로가 주거니 받거니 한창 토론하고 있는 걸 무시한 채,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내가 미친 척하고 자폭 버튼을 눌러버리면 이들은 폭사였다. 나와 인아는 내 발화 능력으로 폭발의 여파에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지만, 나머지는 전부 폭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폭탄 따위 무시다. 꼴리면 폭파하든가?’ 이런 취급이었다.
자기 목숨을 걸고 도박한다고? 과학자가? 나를 원한다고 했으면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시간을 들였어야 했다. 기습해 놓고 휘하로 들어오라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폭탄을 터뜨리면 필립을 데려가는 건 불가능했다. 마치 자폐아처럼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레이나는 다루기 힘들어 보였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
등 뒤에 있는 인아에게 신호를 보냈다. 내 신호를 확인했는지 등에서 인아의 손길이 느껴졌다.
[포인트마다 경비병이 있어요. 경비병을 처리하고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요.]
인아가 등을 꾹꾹 눌러 신호를 보내왔다.
[내가 신호하면 시로를 잡아.]
[알겠어요.]
시로를 납치하기로 했다.
‘무슨 생각이지?’
물을 다루는 능력자가 처음부터 작심하고 연속 공격을 했다면, 나는 몰라도 인아는 확실히 죽었다. 왜 공격을 멈추고 협박만 하고 있을까?
‘뭐 됐다.’
다행스럽게도 무의미한 대치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인아가 내 등을 꾹꾹 눌렀다.
[포인트 잡았어요. 바로 공격할까요?]
[잠깐. 대기.]
필립은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중얼 거리기 시작했다. 시로는 낙서하듯이 계속 적어 내려갔다. 종이가 떨어지거나 종이를 찢어 구겨 버리면 뒤에 서 있던 슬레이브들이 버린 종이, 찢어진 종이를 챙겨 넣었다.
“예지가 맞을까? 차원의 분화를 고려하면 예지가 존재하는 순간, 다시 차원이 분화된다는 소린데. 불가능해. 예지는 아닌 것 같아. 예지라면 차를 마시러 나오지 않았을 게야. 무슨 핑계를 대서든 피했겠지. 아니, 아닌가? 반대로 피할 자신이 있었으니 피한 건가?”
“......”
“정말 예지일까? 그럼 이다음도 안다는 소린가? 그건 아니야. 예지가 아니라면 뭐지? 예지가 아닌데, 예지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면 예지의 정의부터 다시 정해야...”
혼자 중얼거리던 필립이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는 물의 톱을 보곤 물음표가 떠오른 표정을 지었다. 마치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지?’ 하는 표정이었다. 가만히 나와 인아를 쳐다보던 필립의 표정이 느낌표로 변했다. ‘아. 그랬었지!’하는 얼굴이었다.
“흐음. 수고했네. 알렉스.”
“SHIT!”
나와 인아를 노리던 물의 톱이 촤륵-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쏟아졌다. 계단에서 백린 연막탄을 터뜨렸을 때가 떠올랐다. 바닥을 적셨던 물기가 사라졌었다. 알렉스. 금발 놈이 물을 다루는 능력자였다.
내가 알렉스가 앉아있던 자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리 자리를 피한 알렉스였다. 확실히 놈은 경험이 많았다.
시야는 굉장히 중요했다. 보는 것이 능력 발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놈이었다.
"SHIT!"
알렉스의 나지막한 욕설이 들렸다. 계속 자리를 이동하는 것 같았다.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이 알렉스라는 걸 확인시켜 준 꼴이었으니, 알렉스가 욕하는 것도 당연했다.
알렉스의 욕설에도 필립은 신경 쓰지 않았다. 필립의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혼란과 호기심으로 뒤죽박죽 흐려져 있었다. 이런 눈을 하는 놈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아무리 좋은 연구를 한다고 포장하더라도, 이들은 자기의 호기심과 탐구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면 기르던 개도 죽일 인간들이었다.
[목표는 필립과 레이나. 머리나 가슴을 노려. 쏘는 순간, 너는 시로를 잡고 탈출해.]
[유현씨는요?]
[바로 뒤따라가지.]
내 등 뒤에 있는 인아를 보호하면서 창문이 있는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내가 창문을 등지고 옆으로 슬슬 발걸음을 옮기자, 한 참 중얼거리며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필립이 고개를 돌려 나를 찾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천진난만하게 웃는 필립이었다. 백치 같은 웃음이었다.
[조준.]
인아에게 수신호를 보내려는 순간, 필립이 전동휠체어에 붙어있는 터치스크린을 조작했다.
삑-
가벼운 전자음과 함께 대형 TV가 켜졌다. 검게 더럽혀진 바다가 화면 속에 떠올랐다. 더렵혀진 바다에 섬이 보였다. 일반적인 섬과는 달리 알록달록한 섬이었다. 가까이 가자 엄청난 면적의 쓰레기가 보였다.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섬을 뒤덮은 쓰레기들. 아니, 쓰레기가 모여 섬을 이룬 것이었다.
쓰레기 섬의 곁을 휘감아 도는 바다는 썩어있었다. 새와 물고기들이 쓰레기를 먹고 죽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은 참혹했다. 죽음의 바다를 뒤로한 시점이 빙글 돌다 육지로 향했다. 녹색으로 보였던 곳은 수풀이 아니었다.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빌딩 옥상에 빽빽하게 칠해진 녹색 방수우레탄의 색이었다. 도시정글은 북적거렸다. 바글바글 모인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매연과 소음이 태양을 가렸다. 빙하가 무너지고 북극곰과 펭귄들이 보금자리를 잃고 떠돌다 죽는 모습이 나왔다.
해가 뜨고 달이 뜨고 시간이 변하면서 울창했던 숲이 개간되고 논과 밭이 됐던 곳에 건물이 올라가고 단층 건물이 2~3층 건물로 이윽고 빌딩으로 변하는 동안 쌓이는 쓰레기. 쓰레기. 그리고 쓰레기. 도시의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범죄들 그런 범죄에 무감각해지는 사람들.
이어서 국가와 국가가 대립하고 테러가 일어나는 화면들이 하나씩 지나갔다. 지진과 쓰나미 태풍이 나오는 장면은 마치 자연이 인간을 벌하려는 모습처럼 편집된 모습이었다.
인간과 쓰레기가 겹쳐지며, 만들어진 것은 거대한 죽음이었다. 쓰레기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인지 인간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인지 모를 괴이한 장면이 전환되며 일본 원전사고 영상이 떠올랐다. 일본에서 시작된 방사능이 지구 전체를 붉게 뒤덮었다.
비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방사능 변이-인류멸망이라는 테마로 끝나는 영상이었다. 공익광고라기에는 너무도 혐오스러운 영상이었다. 목이 마르고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뒤에 있는 인아를 돌아보고 싶었다. 멍하니 자폐아처럼 생각에 잠긴 레이나의 목선이 미끈하게 보였다. 더러운 기분이었다.
삑-
다음에 떠오른 영상은. 괴물의 등장이었다. 죽은 자가 살아나고, 변종과 빗치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영상이었다. 고어나 스너프 필름에 가까운 영상 속에는 생존자들의 처절한 삶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었다.
그런 생존자들을 구하러 온 사람들. 검은 옷과 첨단 무기로 무장한 사람들이 좀비들과 변종. 빗치와 싸우며 생존자들을 구해 높은 방벽이 있는 도시로 향하는 내용이었다. 입안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울근불근 뿌리를 내리는 감정을 억누르고 이런 영상을 왜 보여줬느냐는 눈빛을 보냈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가을에 방송될 영상이었다네. 흘.”
“연방에서 말인가?”
“그렇지. 자료를 읽어봤으니 알겠지만...”
필립의 휠체어에 달린 작은 터치스크린에서 문자가 떠올랐다. 그걸 읽은 노인의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잡혔다.
“아직 읽지 않았군. 자료를 준지 4시간 가까이 지났는데도 읽지 않았다니. 로라. 서류를 가져와.”
인아가 내 등에 신호를 보냈다.
[포인트에 있던 놈들을 처리해서 위험해요. 지금 쏠까요?]
인아가 대기하고 있는 슬레이브가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위기 감응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었다. 흥분하지 말아야 했다.
[잠깐. 놈들이 이런 영상을 보여준 이유가 있어.]
처음 만났을 때 설명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걸 영상으로 보여준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
[시로를 잡을 준비부터 해. 만약 포인트에 있는 슬레이브가 걸릴 것 같으면 바로 쏴버려.]
[알겠어요. 놈들이 알아채면 바로 쏩니다.]
나와 인아는 넓은 유리창을 등지고 서 있었다. 기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응접실에 로라가 서류 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우리 방에 있던 서류 상자였다. 그런데 안에 들어있는 서류의 양이 달랐다. 최소한 2할은 적어보이는 서류 박스를 필립의 앞에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는 로라였다.
필립이 간을 보기 위해 이런저런 서류를 넣은 것이라면, 우리가 봤던 분량 그대로 가져왔어야 했다. 하지만 로라가 들고 온 서류 상자에 담긴 자료의 양은 육안으로 봐도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적었다. 로라가 자의적으로 서류를 더 넣어줬다는 소리였다.
연방의 스파이? 아니면 자발적으로 우릴 도우려고 한 건가?
인아도 서류 상자에 담긴 서류의 양이 확연히 줄어든 것을 보곤 내 손을 붙잡았다. 손바닥을 꾹 누르는 인아였다.
저격 포인트에 대기하고 있는 슬레이브가 발각될 위험이 있다는 소리였다. 필립이 서류 상자를 살피더니 흘-흘거렸다. 마구 뒤섞어 놨던 서류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로라가 정리해놓은 것이 분명했다.
“자료를 보지 못한 것 같으니, 내가 직접 설명하는 게 빠르겠군.”
“......”
“처음에도 말했지만 연방은 세계정부를 원하고 있는 자들이 만든 세력이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변이과정에만 성공하면 바로 인류 진화 프로젝트를 가동하려고 했지.”
“......”
“변이가 일어나면 능력자들이 생길 수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네.”
“.......”
“세계정부를 만들고 귀족으로 군림하고 싶은 놈들에게 있어 통제되지 않는 능력자란 위험한 불순분자에 불과하겠지. 그런 능력자들을 연방 놈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목줄을 채우려고 했다네. 흘. 흘.”
“......”
“하나는 능력을 발현할 경우 변이를 가속, 불안정하게 만들어 스스로 신체 붕괴을 일으키게 하는 생명공학적인 방법과 다른 하나는 특수한 전자파와 영상을 통해 능력을 사용할 수 없도록 뇌에 과부하를 주는 방법이었지.”
“전자파? 영상?”
“흘흘-이제야 관심이 생겼나보군. 전자파를 이용한 방법은 이미 1970년대 성공을 했고, 영상을 이용하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도 1980년대 알아냈다네. 대략 1초에 30프레임 정도면 대부분은 위화감 없이 영상물을 볼 수 있지.”
“그런데 그렇게 흘러가는 프레임 속에 교묘하게 다른 내용이 들어간 프레임을 끼워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흘-흘- 삽입된 프레임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두뇌를 사용하기 시작하지. 그리고 그건 무의식에 영향을 주고 의식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야.”
“프레임 사이에 콜라와 팝콘 프레임을 넣었더니 팝콘과 콜라의 매출이 늘어났다는 실험?”
“그래. 그 실험. 하지만 전두엽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할 정도로 뇌에 변이를 일으킨 능력자들이 그런 영상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
“변종이나 빗치들은 감각기관이 예민하다네. 감각기관만 예민하면 예민하게 느낄 수 있을까? 예민해진 만큼 두뇌가 변해야 예민해진 감각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게야. 흘흘흘-”
“설마 방금 본 영상에...”
“흘-흘-흘- 당분간 능력을 쓰긴...”
“쏴!”
내 외침과 동시에 두꺼운 대형유리가 터졌다. 흘-흘 웃던 필립의 머리통이 12.7mm짜리 바렛 탄환에 터졌다.
팍! 뇌수와 붉은 피가 사방으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