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동맹 (1)
네이팜을 사용하던 동맹의 지휘관이 떠올랐다. 네이팜으로 자폭만 했을까? 네이팜 폭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연방과 싸우기 전부터 네이팜을 쓸 일이 있다는 소리였다. 곤충이나 기형적인 수풀을 제거하는데 네이팜보다 더 싸고 효과적인 것은 많지 않았다.
우리가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안, 변화한 생태계 속에서 싸우고 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백린은? 연방이 동맹과 싸우기 위해서 백린 연막탄을 썼다고 생각했었다.
어째서 네이팜을 쓰지 않고 백린 연막탄을 썼지? 네이팜이 백린 연막탄보다 싸고 기대효과도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린 연막탄을 썼다는 건, 백린 연막탄이 가진 특징이 필요했다는 소리였다.
‘탐지 슬레이브가 있으니까 적의 시야를 제한시키려고 백린 연막탄을 쓴다?’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네이팜이 더 효과적으로 보였다. 싸고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고, 일반 연막탄과 섞어서 써도 됐다. 그런데도 백린 연막탄을 주로 사용했다는 것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소리였다.
“개미들이 순식간에 죽는데요?”
“바퀴벌레도 그렇고 곤충들은 불에 약한 것 같아요.”
인아와 유미가 네이팜으로 타버린 개미들을 보며 품평했다. 하지만 내가 보는 것은 달랐다. 바퀴벌레도 그렇고 개미도 마찬가지였다. 불에 약한데도 불길을 무서워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곤충의 본능으로만 움직이고 있다면 열기가 느껴지는 순간 도망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바퀴벌레는 앞이 타는 동안 뒤에서는 탄 시체를 밀어내며 접근했었고, 지금 개미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쪽으로 몰려든 개미들은 해자처럼 파둔 구덩이를 채우고 철책의 절반가량까지 시체를 쌓아 올렸다. 이렇게 여러 차례 반복한다면? 철책을 건너갈 수 있을지 몰랐다. 그것을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긴 막대기를 이용해 철책 건너편에 있는 개미 사체를 옆으로 흩어놓으려고 했지만, 개미들이 서로 엉겨 붙어 탔기 때문에 제대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냥 철책 밖으로 나와서 작업하면 그만인데, 왜 저러죠?”
“철책 밖이 위험해서 그렇지 않을까?”
유미의 질문에 인아가 대답했다. 유미가 살짝 인아를 째려보곤 다시 말했다.
“전부 이렇게 막아놨으면 어떻게 들어가실 생각이에요? 헬기나 그런 게 없으면 들키지 않고 들어가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중 삼중으로 쳐진 철책에 사람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보면, 좁은 길을 제외하곤 지뢰가 매설 됐을 가능성이 컸다. 철책을 뚫고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연방처럼 방벽으로 막아 놓은 지역이 따로 있을 수도 있었다.
“일단 주변을 살펴보자.”
유미와 인아를 데리고 주변을 살폈다. 역시 동맹 측도 나름대로 대비가 철저했다. 삼중 철책은 기본에, 멀리 연구 단지로 보이는 곳에는 컨테이너로 쌓은 방벽이 세워져 있었다. 들키지 않고 들어가기 쉽지 않은 구조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비병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양동 작전을 하기에는 텅 빈 공간이 너무 많았다. 네이팜을 사용하고 지뢰까지 매설해 놨으니 뭣도 모르고 들어가면 그 주변까지 폭파시켜 버릴 가능성이 컸다. 한두 번이야 괜찮다고 하더라도 데미지가 누적되는 걸 피하기는 어려웠다.
겉으로 보이는 병력은 적다고 하더라도, 안쪽에는 슬레이브들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주요 포인트에는 저격수도 있겠지.”
“제 생각도 그래요.”
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슬레이브가 최소 서른은 있어야 하겠는데.’라고 중얼거렸다. 유미는 사방을 도리도리 살피더니 하늘을 보는 유미였다. 하늘을 가만히 쳐다보던 유미가 말했다.
“음. 헬기를 쓰면 어떨까요?”
“조종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힘들어.”
좋은 생각이지만 헬기도 없고, 조종사도 없었다.
“그런가요? 헬기를 높이 띄워놓고 패러글라이더로 내려가면 소리 없이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헤헤헤.”
“정부청사에 헬기가 있으니 헬기 조종사도 거기 있지 않을까요? 최소한 두 명은 있을 텐데요.”
“그러니까 거기서 헬기를 탈취해 침투하자는 말이야?”
내 말에 유미가 활짝 웃었다. 꿀밤을 놓고 싶었지만, 그냥 머리를 쓰다듬고 말았다.
“뭐. 그쪽을 공격하면서 양동을 하려고 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찔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방향은 야트막한 산지와 골프장을 끼고 있었다. 세 겹의 철책과 지뢰밭을 뚫고 지나가면 저격수가 저격하기 좋은 골프장을 지나쳐야 했다. 터진 공간을 지나가는 데 성공하더라도 컨테이너로 쌓은 방벽을 넘어가야 연구단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진입한다고 끝이 아니었다. 연구원을 납치하려면 살려서 데리고 나와야 하는데,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패러글라이더를 활용해 들어가는 방법이 제일 안전했다. 양동작전으로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었다. 들어갈 때 조용히 들어갈 수 있어야, 나올 때 양동작전을 사용해 비교적 수월하게 탈출할 수 있었다.
“이거 유미 말대로 패러글라이더를 써야 할까?”
빙 돌아 남쪽에서 북쪽으로, 그러니까 시내 쪽에서 외곽에 있는 연구단지 방향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쪽은 CCTV로 감시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지 않겠어요? 좀비들이 있으면 좀비들을 이용할 수도 있고, 빗치나 변종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고개는 끄덕였지만 기대하지 않았다. 서울에서야 연방과 동맹이 서로 견제하고 있었고 변종이나 빗치들도 상당히 강한 개체들이 있었기 때문에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이곳을 보니 대전 시내는 얼추 정리가 끝난 것처럼 보였다. 대전 시내로 들어가 보자는 인아의 말에, 내 생각을 알아채기라고 한 것처럼 유미가 반대했다.
“들어갔다가 들키기라도 한다면 어쩌려고요.”
경계 병력이 적은 이유는 서울에서 벌어지는 공방전이 원인일 가능성이 컸다. 동맹이 치누크 헬기를 이용해 천이 넘는 병력을 옮겼던 것을 보면, 확실히 그랬다. 대전에 좀비와 변종, 빗치가 득실거리는데 서울 전선에 병력을 밀어 넣을 수 있을까? 그러니 반대로 생각하면 대전은 동맹이 거의 장악하고 있다고 짐작하는 게 맞았다.
“밤에 들어가 보죠. 유미와 페니가 양동을 준비하고 저하고 유현 씨가 들어가 봐요.”
“헬기는요? 헬기를 탈취해서 패러글라이더로 들어가는 게 낫다니까요.”
인아와 유미가 서로 자기 의견을 내세웠다.
결정은, 대전 시내를 통하는 방법이었다. 세종시 정부청사 인근에 대기하고 있는 슬레이브는 일반적인 슬레이브보다 자율성이 뛰어났지만, 헬기 조종사를 구분하고 능동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라고 장담하기 힘들었다.
“슬레이브 숫자가 많다면 숫자로 어떻게 해보겠지만, 둘 가지고 헬기를 탈취하고 조종사까지 챙기는 건 불가능해. 우리가 직접 간다고 해도 된다는 보장이 없어.”
“그럼 힘을 써야 할지도 모르니까 저랑 같이 가는 게 낫지 않아요?”
“아니. 인아가 세종시에 있는 슬레이브들과 교신하는 것도 그렇고 내 발화 능력을 생각해 보면 벨런스를 생각해도 이번에는 나와 인아가 같이 가는 게 맞아.”
“알겠어요.”
유미가 살짝 풀죽은 목소리를 냈다. 살짝 작은 목소리로 ‘유미가 잘할 거라고 믿어.’ 다독여주자 그나마 표정이 풀리는 유미였다. 그렇게 유미와 페니가 한 조를 이뤄, 외곽에서 시선을 끌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
예상대로 대전시 대부분을 동맹이 장악하고 있었다. 서울 경기지역과는 달리 대전은 의외로 상태가 좋았다. 광역시이긴 하지만 인구밀도가 서울/경기/인천과 비교했을 때 낮았기 때문인지, 초기 확산도 수도권과는 다른 양상으로 일어난 것 같았다.
게다가 애초부터 서울에 터를 잡으려고 했던 연방처럼 동맹은 대전에서 터를 잡으려고 한 것 같았다. 연방이 서울에 방벽을 세울 준비를 하고 있던 것처럼 동맹은 대전에서 세력을 만들 준비를 했던 것 같았다.
연방이 제대로 준비를 마치기 전 사태가 벌어져 수습하는데 힘들어했다면, 동맹은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준비한 것이 분명했다. 삼중으로 된 철책을 만들려면 엄청난 양의 자재가 필요했다. 대량의 자재를 미리 준비한 것도 그랬고, 간이 방벽을 쌓을 정도로 많은 컨테이너를 준비한 것을 봐도 그랬다.
경비가 약한 곳을 찾아 외곽으로 빙 돌았다. 좀비를 대부분 처리했을 거로 추측했던 것과는 달리, 제법 많은 숫자의 좀비들이 몰려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서 둔기를 든 슬레이브들이 좀비들을 척살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좀비들이 많네요. 다 처리한 줄 알았는데.”
“그러게.”
“그래도 변종이나 빗치는 없는 것 같아요.”
약간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변종이나 빗치들이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성을 가진 변종이나 빗치를 포섭했던 것이다. 그렇게 토사구팽을 시켜놨으니 남은 것은 좀비들이었고, 좀비들은 슬레이브로 처리하면 시간이 걸릴 뿐 결국엔 정리 될 것이 분명했다.
“어? 저 좀비는 버티는 데요?”
“변이를 일으킨 놈이네.”
인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곳을 바라보니 좀비 하나가 슬레이브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흉성을 터뜨리고 있었다. 변종처럼 육체적으로 변한 것도 아닌데 맷집이 상당히 좋았다. 변이한 좀비는 슬레이브와 엇비슷했다. 슬레이브 둘 가운데 하나의 팔이 뜯기고 나서야, 그 좀비를 잡을 수 있었다.
“몇 번 본 놈이야.”
“변종이나 빗치도 아니고. 저런 좀비들이 늘어나면 끔찍하겠네요.”
“그렇겠지.”
인간이었을 때는 좀비들의 변화가 끔찍하게 느껴졌었는데, 변이를 일으킨 지금은 담담했다.
“그 좀비 여자였지?”
“네. 체형도 변하지 않았고, 비쩍 마른 좀비 그대로였어요.”
“성별하고 상관없는 건가?”
“성별이요?”
“어. 서울에서 본 것들은 전부 남자였거든.”
빙 돌아가면서 확인했다. 슬레이브들이 나와서 좀비들을 두들겨 팼고, 좀비들은 처음에는 멍하니 두들겨 맞다가 시간이 지난 뒤에야 슬레이브들에게 달려들었다. 변이를 일으킨 좀비는 능동적으로 슬레이브와 싸우는 모습을 보였다.
“확실히 경계병의 숫자는 적어요. 슬레이브도 면적에 비해서는 적고요. 연방의 특수부대라면 그냥 뚫겠는데요?”
“그건 모르지. 허허실실로 안에 들어가면 덫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CCTV는 어때?”
“많아요.”
하늘에서는 블랙호크들이 바쁘게 다니고 있었다. 치누크가 없으니 블랙호크를 사용해서 보급품을 나르고 있는 것 같았다. 보급품과 지원병을 계속 보낸다는 건 그만큼 그쪽 전선이 치열하다는 소리였다.
방벽 인근에 쌓여있는 통을 보니 기름통 같았다. 아마도 좀비들이나 곤충들이 몰려오면 한 번에 막으려고 비축해둔 것 같았다.
“밤에 침투할 건가요?”
“아니. 바로 들어가자.”
야음을 틈타 침입하는 게 효과적이기는 했지만, 연구소 근처까지 이동하려면 어둡기 전에 들어가는 게 좋았다. 연방에 침입했을 때 통행금지가 있던 것처럼 이곳도 통행금지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야밤에 들어갔다가 CCTV에 걸리면 그것처럼 어이없는 일도 없었다. 낯에 들어가 감시카메라 위치를 파악하는 게 맞았다.
페니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아래로 내려오면 주요 도로를 막아 놓은 곳에는 좀비들이 많이 있고, 좀비들을 막기 위해 비축해둔 휘발유 통이 있다. 그걸 터뜨리면서 혼란을 유도해. 적당히 들쑤시고 난 뒤, 숲으로 도망쳐라.]
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몇 키로 떨어진 곳에서 검은 연기가 뭉클뭉클 솟아올랐다. 앞에서 열심히 좀비들을 때려잡던 슬레이브 셋이 명령을 받았는지 좀비를 잡는 것을 멈추고 방벽 위로 올라섰다.
‘호오?’
유미와 페니가 공격한 곳으로 지원을 보낼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역시, 쉽지 않았다. 발화능력으로 휘발유 통에 불을 붙이려면 20~25m 안쪽으로 접근해야 했다. 그러고도 에너지 소모가 컸다. 그럴 바에야 수류탄 투척이 효과적이었다.
인아와 나, 슬레이브가 수류탄을 던졌다. 50m 넘게 날아간 수류탄이 터지면서 휘발유 통이 폭발했다. 방벽위에 있던 슬레이브들이 불꽃에 휩싸였다. 경계병들이 나와 소화기로 슬레이브에게 붙은 불을 껐다. 틈을 타. 안으로 침투하는데 성공했다.
*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기 힘들었다. 눈에 띄게 감시병이 없는 곳은 CCTV가 돌아가고 있었다. 또 반대로 감시병이 많은 곳도 마찬가지였다. 평균적인 감시병이 있는 곳이 제일 안전한 곳이었다. 나상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적의 심리를 이용한다는 말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사람들을 모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권역은 둘로 나뉘어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고 바로 일반인들이 거주하는 곳이 나오지 않았다. 방벽(외성)-중간 안전지대-방벽(내성)의 형태로 이뤄져 있었다. 생존자들은 두 번째 방벽 안쪽에 거주하고 있었다.
침입하는 데 성공했다고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그대로 걸릴 뻔했다. 하나씩 숨겨진 위험을 회피하며 침투하는 데 성공하자, 인아는 나를 존경하는 눈빛이었다.
안에 거주하고 있는 생존자들은 제법 많아 보였다. 이 거리에 있는 사람들만 수천 명이 넘었다. 안전구역 내에 있는 생존자들만 최소한 몇 만 단위로 살아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식량 소모가 엄청나겠군.”
“배급하고 있겠죠.”
“벌써 가을이야. 배급을 한다고 버틸 상황은 아닌데.”
비축된 식량이 떨어지면 겨울은 참혹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전면전을 건 이유가 인구조절을 위해서일까? 생존자들이 너무 많았다.
연방의 방벽 속에서 봤던 생존자들의 삶이 아름다운 삶, 마치 백화점에 진열된 고가품과 같다면, 이곳에 있는 생존자들의 모습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와글와글 끓어오르는 거리.
한쪽 구석에서는 구걸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웃음을 파는 여자들도 있었다. 성비가 극단적으로 무너진 모습. 군복을 입은 남자들이 양팔에 여자 둘을 끼고 다니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외부 스피커에서는 끊임없이 뉴스가 흘러나왔다.
=자유의 영웅들은 간악한 적들을 몰아내고 또 한 번의 승리를 이뤄냈습니다. 금일 오후 4시 **구 **동을 탈환하는데 성공 생존자들을 해방했습니다.
=여러분의 용기 있는 행동이 우리의 미래와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공허한 울림이 거리를 채웠다. 누군가의 웃음소리 뒤로 어떤 이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 둘을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풍경이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