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스트 DUST-180화 (180/261)

레드 존 (5)

검은 아스팔트를 다갈색 물결이 뒤덮었다. 스스스슥 갑각질 스치는 소리 사이로 끼륵-거리는 기괴한 소리. 바퀴벌레가 낸다고 믿기 힘든 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렸다. 이래서 휘발유를 부었던 건가? 바퀴벌레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바퀴들과 우리를 동시에 없애려고?

순간적으로 오버 히트시킨 정신력으로 백열을 만들었다. 미사일, 로켓탄을 폭파했던 초고온이 다시 펼쳐졌다. 하얗게 타오르는 불꽃이 밀려오는 다갈색 해일을 숯으로 만들었다. 껍질에 기름이라도 바른 것처럼 순식간에 불타오르는 바퀴벌레들. 앞의 바퀴가 타죽는 것을 알면서도, 바퀴벌레들은 약에 취한 것처럼 달려들었다.

‘미친.’

바퀴벌레는 자기 생존에 집착하는 벌레가 아니었던가? 생존하는데 최적화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는 놈들 아니었나? 본래 가지고 있던 본능을 잊은, 광기에 빠진 바퀴벌레는 더 이상 곤충이 아니었다. 그것은 악의로 뭉쳐진 살의.

반질거리는 등껍질 속에서 날개가 펼쳐졌다. 바닥을 박찬 바퀴들이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날아오른 바퀴벌레의 꼬리 부분에 붙어있는 것은 알집이었다. 암컷들이었다. 저것들이 불길 밖으로 빠져 나가면 순식간에 확산 될 것이다. 그건 막아야 했다.

“타버려!”

화르르르륵!

반원으로 둘러싼 불꽃이 순식간에 커졌다.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던 바퀴벌레들이 불똥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찡-한 두통. 한계다. 정신을 쥐어짜 고함을 질렀다.

“화염병! 화염병 던져!”

휘발유에 시너를 섞고 그 속에 스티로폼을 녹여 만든 네이팜. 유사 네이팜을 담은 화염병이 바퀴벌레 위로 떨어졌다. 어설프게 흉내 낸 것이라고 하더라도 네이팜은 네이팜. 화염병이 터지면서 사방이 불바다가 됐다.

지옥처럼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바퀴벌레들이 몸부림쳤다. 툭-툭- 갑각질이 터졌다. 익어버린 껍데기가 갈라지며 걸쭉한 체액을 쏟아내는 바퀴벌레들. 하수관이 막혀 역류하는 것처럼 솟아나던 바퀴벌레들이 주춤했다. 고함을 지를 힘도 남지 않았다.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미야! 구멍! 구멍 막아!”

유미가 옆에 있는 자동차를 구겼다. 강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차체가 우그러졌다. 유미는 구겨진 차체를 그대로 맨홀 구멍에 때려 박았다. 쿵! 쿵! 못질 하듯 구겨진 차체를 맨홀에 때려 박은 유미였다. 맨홀이 막자, 끼긱-끼긱-금속 갉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퀴벌레들이 입구를 막은 폐차를 턱으로 갉아댔지만 뚫고 나오지 못했다.

‘막았다.’

긴장이 탁 풀렸다. 핑-돌던 어지러움과 욱신거리는 두통이 심해지며 다리가 풀렸다. 열기에 내성이 있는데, 내성을 유지할 정도의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지글지글 타오르는 불길에 전신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털썩 주저앉아 덜덜 떨리는 손을 허리춤에 매고 있는 가방에 넣었다.

잡히는 것이 없었다. 유미에게 피를 먹이느라 들고 있는 비상용 육포는 전부 소진한 상황. ‘정신 차려. 정신.’ 이대로 정신을 놓으면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검붉은 연기를 뿜어내며 타오르는 거리. 새까맣게 숯이 된 바퀴벌레의 사체를 밟으며 유미가 내 쪽으로 왔다.

“오. 오지 마. 피해.”

말라비틀어진 논두렁처럼 건조한 목소리를 쥐어짰다. 유미는 그런 내 말을 무시하고 성큼성큼 다가와 날 번쩍 안아 들었다. 불길에서 벗어난 유미는 말없이 먹을 것을 내 입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정신을 잃기 직전에 간신히 에너지를 채울 수 있었다. 깜빡이던 정신이 서서히 맑아졌다. 유미가 없었다면 또 미쳐 날뛰었을 것이다.

“어떠세요? 괜찮아요.”

“하아- 괜찮아.”

일반적인 음식은 속에서 받지 않았다. 인아와 유미가 챙겨준 육포와 슬레이브들이 먹는 전투식량은 크게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젠장.”

“왜요? 어디가 불편해요?”

그제야 주변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정신없이 먹어대느라 쌓인 빈 껍질들과 널브러진 가방들, 고개를 들어보니 유미는 완전히 홀딱 벗고 있었다. 불길 속에서 싸우기도 했거니와 마지막에는 유사 네이팜으로 만든 불바다 속으로 들어가 맨홀을 틀어막았다. 불길 속에서 돌아다녔으니, 옷이 남아날 리 없었다.

“아니. 인아는? 슬레이브들은?”

“......”

인아와 슬레이브를 묻는 말에 유미의 표정이 조금 어둡게 변했다. 인아의 상태는 심각했다. 변종을 감염시켜보기 위해 놈의 속살을 물었을 뿐인데, 처음에는 약간 부르텄던 입술이 지금은 마치 벌에 쏘인 것처럼 퉁퉁 부어있었다. 의식을 잃은 상태로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자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인아가 타액을 통해 감염 장악을 시킨다면, 그 역도 생각했어야 했다. 변이가 마구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함부로 체액을 접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어차피 변이됐으니까, 인간에서 벗어났으니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잘못이었다. 강한 변종을 장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앞뒤 재지 않았던 것이다.

“슬레이브들은? 몇이나 남았지?”

“페니를 빼고, 10명이요.”

“움직이기는 하고?”

“네. 자율성이 높아서 크게 문제는 없어요.”

인아가 정신을 잃어, 슬레이브들이 정지 상태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너는? 너도 보충해야지.”

“지금은 괜찮아요. 나중에 먹어도 돼요.”

“아니야. 바퀴벌레도 그렇고 변종들도 그렇고 위험해.”

이가 빠진 진동 나이프로 팔뚝을 그었다. 유미는 잠시 멈칫하다 작게 한숨을 쉬고는 피를 받아 마셨다. 뜨거운 감촉과 시원한 느낌 피를 빨리는 느낌이 확실히 변했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는 나상철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바퀴벌레도 그렇고 맨홀 변종보다도 단단한 변종들이 다섯이나 있었다. 이곳 레드 존에만 이런 게 있을까? 왜 이곳에만 있지? 동맹과 연방이 싸우고 있는 것만 신경 쓰느라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었나?

아직 여유가 있었는지 많이 먹지 않는 유미였다. 잠시 뒤, 얼굴에 살짝 홍조가 든 유미가 입술을 떼자, 길게 늘어지던 붉은 타액이 끊겼다. 인아의 슬레이브들도 정비가 필요했다. 잠시 먹고 쉬게 한 뒤, 정신을 잃은 인아를 데리고 계획대로 움직였다.

“차라리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바퀴벌레들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수구를 막았어.”

레드 존이 확장되면서 하수구를 전부 틀어막고 있었다. 바퀴벌레들이 하수구를 타고 움직인다면 서울 중심부. 연방과 동맹이 싸우고 있는 그쪽 지역으로 갈 확률이 높았다.

“바퀴벌레들이 뭣 때문에 이 근방에만 있는지 모르겠지만 열린 곳이 서울 번화가 방향이니까 그쪽으로 퍼질 거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벗어나는 게 맞아.”

“그럼 펜트하우스는 버리는 건가요?”

“일단은 그래.”

유미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일단 빨리 가자.”

“대전으로요?”

“그래. 연구 자료를 해석하는 것도 그렇고 뭐든 대비하려면, 전문가가 필요해.”

“저. 인아는요?”

“데려가야지. 금방 일어날 거야. 우선 옷하고 가방 좀 챙기자.”

인근 등산용품 판매장에 들어가 옷과 신발을 챙겼다. 고작 8~9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뽀얀 먼지가 내려앉은 매장에는 인간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스팔트 틈과 보도블록 사이로 잡초들이 삐져나와 있었다.

인간의 흔적이 없는 도시. 살아남겠다고 발버둥 쳤기에 놓치고 있던 황량한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낡아가는 건물들, 부패한 음식과 시체들... 멸망은 곁에 있었다.

“무슨 생각 하세요.”

“하- 이렇게 변할 때까지 모르고 있었구나 싶어서.”

“네? 뭐가요?”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 이구나. 그런 생각... 우습지? 계절이 언제 어떻게 지나갔는지 생각나지 않아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 아직까지 내가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먹고 죽이고 먹는 그런 굴레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 생각해야 했다. 자조적인 미소가 일그러졌다. 그런 내 손을 유미는 말없이 꼭 잡았다.

*

레드 존에서 시간을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너무 많았다. 여러 흔적 가운데 빌딩 빗치의 흔적이 있다고 했는데, 빗치들은 구경도 못 했다. 2m가 넘는 거구의 근육질 변종들과 충돌했다. 그 뿐만 아니라, 바퀴벌레들도 이상했다. 최대한 빨리 레드 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로를 타고 달렸다.

슬레이브 넷이 인아가 누워있는 간이 침상을 들고 달렸다. 인아는 얼굴뿐만 아니라 전신이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해열제와 항생제를 물에 섞여 먹이기는 했지만, 일반인이 먹는 약물이 효과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인아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연구원이 필요했다. 최대한 빨리 연구소를 털어야 했다.

“그 바퀴벌레들이요. 좀비 바퀴벌레인가요? 아니면 변종?”

“좀비는 아닐 거야. 변이를 일으킨 거겠지. 아마.”

바퀴벌레들은 확실히 좀비는 아니었다. 변종이라면? 바퀴벌레 그런 방식으로 8~9개월 만에 변이를 일으켰다면 다른 곤충은? 어쩌면 바퀴벌레처럼 변이를 일으켰을 가능성도 있었다. 유충을 거쳐 성충이 되는 곤충들이 바퀴벌레처럼 저런 식으로 변했다면 심각했다. 바퀴벌레 이야기를 하던 유미가 살짝 뒤를 돌아봤다.

“변이를 일으킨다고 했잖아요.”

“그래.”

“어떻게 변이를 일으킬지 예측하기 힘들겠죠?”

“아마도. 어쩌면 연방이나 동맹의 연구원들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 모르지.”

유미가 다시 힐끗 뒤를 돌아봤다.

“변이를 일으키면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뭐라고?”

“그러니까. 그 변종에게 역으로 감염된 것 아닌가요? 그럼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아요. 꼭 데려가야...”

유미의 양어깨를 잡았다. 유미의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둘이 조금 사이가 좋아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내 일그러진 표정을 본 유미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화를 내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타인, 인아는 유미에게 있어서 나와 자신 사이에 끼어든 불순물 같은 존재였다. 혐오감을 낮춰주는 약을 먹었어도 소용없었다. 이건 혐오감의 문제가 아닌, 관계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얼굴에 살짝 경련이 일었다. 유미가 말한 게 맞는 말이었다.

아마도 인아가 아니었다면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인아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지금 유미가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나에게 배운 방식이었다. 생존을 위한 방식, 냉정하게 마무리하고 결정하는 법을 알려준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유미야. 나는...”

“.......”

뭐라고 말해야 할까? 냉정하지 말라고 해야 할까?

“네가 저렇게 누워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을 거야.”

유미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알아요. 하지만...”

“내가 의식을 잃었을 때, 왜 날 죽이지 않았어? 내 피 때문에?”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뭐라 말하기 힘들었다. 그저 유미를 끌어안았다. 망해버린 세상에서 나는 뭘 하고 싶었던 걸까? 어떤 사람과 함께 살고 싶었던 걸까? 답답하지 않고 한 사람 몫을 하는 사람? 믿고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사람? 냉정한 사람을 만들고자 했다니, 나는 어떻게 살고 싶었던 걸까?

“알아. 하지만 유미야. 난 약속했어.”

“......”

“약속했다고. 결코, 먼저 버리지 않겠다고.”

“......”

“내가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내가 거짓말했으면 좋겠어?”

“......”

냉정해야 했다. 그래서 냉정했다. 살아남기 위해 도덕심을 접은 적도 있었고, 죄책감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렇게 발버둥 쳐서 얻은 삶은 언제 계절이 변하는지도 모르는 삶이었다. 어설픈 이기심과 어중간한 냉정함으로 조각난 삶이었다.

정신을 잃고 아무나 잡아먹는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의식을 갖고 싶었다. 의식적으로 내 의지로 움직이고 싶었다. 가만히 있으면 더는 희망이 없기에 동맹의 연구소를 습격하기로 했다. 같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버릴 수 없었다. 더 이상 변하기 싫었다. 이제는 버리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무엇도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하기 싫었다. 유미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가만히 있던 유미가 살짝 팔을 들어, 내 허리를 감았다.

작게 ‘바람둥이. 나빠요.’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쿡- 웃음이 나왔다. ‘미안. 바람둥이라서.’하고 살짝 속삭이자. 유미가 감고 있던 팔로 내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 순간, 비릿한 바람이 불었다.

“호호호호.”

철길을 가로지르는 육교 위에서 들리는 높은 웃음소리. 신경이 곤두섰다. 내리누르는 느낌이라기보다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느낌. 유미를 안은 그대로 몸을 던졌다.

콰직!

두꺼운 철근이 투창처럼 날아와 땅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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