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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177화 (177/261)

레드 존 (2)

장갑차는 결사적으로 도주하는 인아의 슬레이브를 향해 돌진했다. 수천이 넘는 좀비들이 장갑차를 둘러싸고 허우적거렸지만, 육중한 중량의 궤도차량을 피륙으로 된 좀비들이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군부대가 감염 확산 때 서로 상잔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군인들과 무기가 온전히 남았다면 좀비든 변종이든 제압했을 것이다. 아파치 헬기 수십 대가 남았다면? 하다못해 네이팜으로 폭격할 수 있었다면 사태는 또 달라졌을 것이다.

멀리서 장갑차 한 대가 수천의 좀비를 뚫고 움직이고 있었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불꽃을 뿜는 총열. 대구경 탄환이 한 발에 대여섯이 넘는 좀비들을 터뜨렸다. 조각한 파편을 으깨며 무한궤도가 회전했다. 묵직한 엔진 소리와 함께 전진하는 장갑차였다.

“인아의 슬레이브는 다르네.”

“그렇죠?”

인아가 감염 장악한 슬레이브는 일직선으로 도망을 치다가도 가끔 지그재그로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일반적인 슬레이브라면 무작정 최고속도로 달려가다 당했을 것이다. 내가 감염시켰던 슬레이브도 그랬었다. 생각보다 잘 도망치고 있는 인아의 슬레이브를 보니, 잘하면 살릴 수 있어 보였다.

“여기서 견제한다. 총 이리 줘.”

“총소리는요?”

“저쪽이 워낙 요란스러워서 괜찮아.”

유미가 자기 몸통보다 더 큰 짐에 매달려 있는 바렛을 건네줬다. 인아의 슬레이브를 포위하려는 동맹 측 슬레이브를 조준했다. 바렛의 총성은 발칸포의 소음에 묻혔기 때문에 부담 없었다.

맨 앞에서 달려가는 슬레이브를 노려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탄피가 튕겨져 나갔다. 머리를 노렸지만, 어깨에 맞았다. 어깨가 반쯤 뜯기며 옆으로 널브러지는 슬레이브. 저격이 있으니 추격 속도를 늦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슬레이브들은 저격을 무시하고 추격을 계속했다.

두두두두둑!

발칸포의 소음에

탕! 탕! 탕!

바렛의 총성이 녹아들어 갔다.

삽시간에 슬레이브 넷이 이동불능 상태에 빠졌다. 사람이라면 스쳐도 사망이었겠지만 슬레이브들은 그렇지 않았다. 장갑차에는 링커들이 타고 있으니 자기들 슬레이브가 저격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추격을 우선했다.

“추격을 멈추지 않네요.”

인아가 쌍안경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제가 갈까요?”

유미가 짐을 내려놓고 방패와 메이스를 들었다. 남은 숫자는 17명. 유미가 달려든다면 5분 안쪽으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유미에게 피를 먹이는 게 부담인 상황에서 에너지 낭비는 피해야 했다.

“장갑차는?”

“계속 전진 중이에요.”

탕! 탕!

전문 저격수가 아니었지만, 예민해진 감각에 기대 명중시킬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일반 슬레이브들은 링커의 명령대로 추격을 우선했다. 일반적인 슬레이브의 특성상 명령을 따랐다. 최대속도로 단조로운 직선운동을 하는 슬레이브들은 움직이는 과녁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원사격을 받은 인아의 슬레이브는 기어코 레드 존으로 표시된 구역으로 들어갔다. 추격하던 슬레이브들은 숫자의 힘을 믿었는지 계속 뒤따랐다.

“아- 안 멈추네. 추격을 멈출 줄 알았는데.”

레드 존에 대해서는 저쪽도 알 텐데. 몰랐나?

“그러게요.”

“우리도 들어갈 건가요?”

인아와는 달리 유미는 전의를 불태웠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씩 과격해지는 유미였는데, 맨홀 변종을 먹고 변이한 내 피를 마신 뒤부터는 눈에 띄게 과격해졌다. 나도 그렇고 유미도 그랬다. 변이가 육체적인 능력만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격에도 영향을 준다고 봐야 했다.

“장갑차. 계속 전진하고 있어요.”

인아가 쌍안경에서 눈을 떼고 말했다. 슬레이브들은 시야에서 벗어나, 레드 존 지역으로 진입했다. 장갑차가 마음에 걸렸다.

“장갑차를 잡자. 탄이 얼마나 남았지?”

내 물음에 유미가 가방에서 탄창을 꺼내며 대답했다.

“탄창은 셋이요. 30발 남았어요.”

지금 남은 탄환이 두 발. 탄창 셋이니 서른 두발 남았다는 소리였다. 해볼 만했다.

장갑차보다 먼저 움직여 자리를 잡아야 했다. 왕복 8차선 도로 건너편인 레드 존. 레드 존은 유명한 주상복합빌딩이 있는 지역이었다. 버려진 차들이 많았던 8차선 도로에 비해, 레드 존 안쪽에 있는 6차선 도로는 의외로 한적했다.

탕! 탕! 탕!

반자동이었기 때문에 고속으로 쏠 수 있었다. 발칸포 사수를 먼저 저격했다. 발칸포가 멈춰버리자 좀비들이 순식간에 에워쌌다. 장갑차는 힘으로 좀비들을 깔아뭉개며 움직였지만 발칸포를 쓸 때처럼 수월하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 틈을 타. 장갑차의 몸통에 총탄을 박아 넣었다. 탄이 박힐 때마다 장갑차가 몸부림치며 도망치려 했지만, 탄창 두 개를 비웠을 때쯤 움직임이 멎었다.

그 모습을 본 유미와 인아가 놀라워했다.

“와. 지금 그 총으로 장갑차를 잡은 거죠?”

“놀랍네요. 이게 있었으면 헬기도 쉽게 잡았겠는데요?”

“......”

장갑차가 멈췄으니 마무리해야 했다. 안에 타고 있던 링커들이 몇이나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장갑차가 멈췄으니 살아남은 링커들이 움직일 것이다. 장갑차 안에 있던 지휘관이 죽었는지, 링커들이 자체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6명의 슬레이브가 장갑차로 돌아왔다. 나머지는 레드 존에서 멈춘 것 같았다.

“기다려 보자.”

확인할 것이 있었다. 예상대로 링커들은 장갑차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좀비들이 링커들을 공격한다는 소리였다. 링커들은 완전히 변종으로 변이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확인할 것을 확인했으니,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사제 네이팜을 만들어 넣은 화염병을 장갑차에 던졌다. 펑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네이팜 화염병 몇 개를 던져 넣자, 안이 달궈졌는지 견디지 못한 링커들이 해치를 열었다. 해치가 열리는 것과 동시에 좀비들이 안으로 밀려들었다. 기다란 비명과 함께 좀비들을 뚫고 장갑차로 돌아가려던 슬레이브들이 그 자리에 멈췄다.

우워어어어어

좀비의 파도가 장갑차를 훑고 지나갔다.

*

먹을 것을 다 먹었는지, 좀비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는 6명의 슬레이브를 인아가 장악했다.

“숫자를 너무 늘리는 건 좋지 않아. 유지하기 힘드니까 말이야.”

“알고 있어요. 하지만 동맹의 연구소를 습격해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숫자가 많은 게 좋지 않을까요?”

한 번 쓰고 버릴 생각을 한다면 그렇겠지만, 인아의 고유한 감염 흔적이 남아있는 시체를 남겨 둘 수 없었다.

“숫자가 많으면 관리하기 힘들어. 시체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자폭이 있잖아요. 화염병을 하나씩 들고 다니게 한다든지 방법은 있으니까요.”

폭탄을 들고 다니게 한다면 시체를 잃을 염려가 없으니까 괜찮기는 했지만 좀. 화제를 바꿨다.

“도망친 애는? 괜찮지?”

“예. 이쪽으로 오라고 할까요?”

“그래.”

인아가 눈을 감고 가만히 집중했다. 집중하던 인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신호가 끊겼어요.”

“신호가 끊기다니? 뭐가 공격했는데? 어떻게 된 건데?”

“모르겠어요.”

나는 페니와 감각 공유를 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강하게 링크를 연결했을 때는 그랬다. 강하게 연결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뭐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인아는 그렇지 않았다. 슬레이브의 자율성이 높은 대신 링크의 민감성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죽은 거야?”

내 질문에 인아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확신하지는 못하는 표정이었다.

“뭔가 있어요. 뭔가 내 슬레이브를 끌고 갔어요.”

인아가 살짝 흥분한 것 같았다. 강제로 링크가 해제된 건가? 아니면 죽은 건가? 죽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건가?

“진정해. 링크가 끊겼다며?”

“네. 어떻게 하시게요. 그냥 지나가실 건가요? 슬레이브를 뺏기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시체라도 처리해야 한다면서요. 저쪽의 슬레이브들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레드 존에는 동맹의 슬레이브들도 10명 넘게 들어가 있었다. 링커들이 죽었으니 정지 상태로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지의 적과 만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위기감응을 믿고 만용을 부리다가 위험에 빠졌었다. 실수를 반복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었다. 내가 주저하자 유미가 인아 편을 들었다.

“그래요. 지금 우리 전력이라면 뭐가 됐든 충분히 잡을 수 있어요.”

유미가 인아 편을 들다니 의외였다. 내가 주저하자. 인아가 쐐기를 박았다.

“레드 존에 있는 게 뭐든 변종 아니면 빗치 아니겠어요? 변종이나 빗치면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잖아요.”

“맞아요. 지금이라면 맨홀 변종도 저 혼자 잡을 수 있어요. 그 식육 빌딩에 있던 애들도 저 혼자서 잡을 수 있다고요. 걔들이 위험하다고 표시했다고 하수구로 가는 건 싫어요.”

그거였나? 하수구로 가기가 싫어서 그런 건가? 내가 유미를 살짝 째려보자. 유미가 아바바거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하수구로 갔다가 냄새가 배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시궁창 냄새 때문에 사람들에게 걸릴 거라고요. 중간에 씻으러 갈 수도 없고요.”

“변종이나 빗치면 레드 존도 언젠가는 공략될 텐데, 제 슬레이브가 이곳에 남아있으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시체를 찾는 한이 있더라도 소거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섭식 진화의 가능성이 있다면서요? 제 슬레이브를 잡아먹었으면 큰일이잖아요. 그 변종인지 빗치인지 저처럼 감염 장악 능력을 획득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후- 생각 좀 해보자.”

변종이라면 상관없지만 빗치라면 문제가 심각했다. 사냥 본능만 가진 변종에 비해 빗치들은 이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성을 가진 빗치라면 우루루 몰려 들어갔을 때 공격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아마도 꼭꼭 숨겠지. 탐지 능력이 있는 슬레이브를 얻었어야 했는데, 얻지 못한 게 아까웠다.

이 세상은 계속해서 강퍅해지길 강요했다. 슬레이브를 안타까운 희생자로 생각했던 처음 생각은 어느새 변해 버렸다. 슬레이브를 사람과 인형의 중간쯤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뒤에는 슬레이브를 살아있는 도구로 생각하게 됐다.

탐지 슬레이브의 사체를 먹여, 섭식 진화 실험이라도 했다면 좋았을 것을... 이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젠장.’ 그렇게 생각하는 놈들과 싸우다 보니 나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았다.

‘젠장.’

쉽고 간편한 방법은 다른 생명을 수단이나 도구로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인간을 먹이로 생각하고 슬레이브를 단순한 도구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행동하기 쉬워졌다. 살아가기 편해졌다. 살아남기 유리했다. 당장은. 그래 당장은 그랬다.

그 속에 숨겨진 함정. 인간을 먹이로 생각한 끝에 남은 것은 더 많은 인간을 먹이로 삼게 되는 대식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슬레이브를 도구로 생각하는 끝에는 인아와 유미도 도구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편해지면 나만 잃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잃게 된다고.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내 표정을 보곤 유미가 눈치를 살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모순적이었다. 인아의 슬레이브들은 도구로 생각했으면서 말이다. 저절로 고개가 흔들어졌다. 지금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레드 존에는 변종이나 빗치가 살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둘 가운데 뭐가 살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까? 맨 처음 유미가 인아의 흔적을 발견했을 때가 떠올랐다. 빗치는 또 다른 빗치의 흔적, 일종의 페로몬 같은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혹시 이 근처에 빗치의 흔적이 느껴져?”

“음. 그러니까요. 음.”

유미는 내 말을 듣곤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인아는 날 보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을 살핀 유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물음표를 동동 띄운 표정을 짓던 유미의 얼굴이 갑자기 와락 구겨졌다. 갑자기 살기를 폴폴 풍기기 시작하는 유미였다.

“여기 있어요. 여기에요.”

“뭐가?”

“하하하하하하하. 여기라고요. 그년이 여기에 있다고요.”

유미가 미친 듯이 웃었다. 갑자기 정신이 나간 것처럼 웃는 유미의 눈동자가 서늘한 살기를 뿜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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