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전 (3)
링커들이 잘 훈련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AWS의 부작용인 제한적인 수명이 해결되지 않은 이상 고급 인력을 링커로 만들었을 리 없었다.
링커가 처리하지 못하는 정보를 처리할 수 있고, 전체를 유기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역시 지휘관은 지휘관인가?’
“이 새끼들 뭐 하고 있어. 정신 똑바로 안 차려!”
“가스. 가스. 이 병신들이. 마스크 써!”
“슬레이브로 틀어막아! 숫자는 우리가 많다!”
“너희 둘 빨리 각인하고 동기화를 하란 말이야!”
지휘관과 상사로 보이는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상황을 정리했다.
순식간에 혼란에서 벗어나 방어 태세를 갖추는 것을 보니, 감탄이 나올 정도로 깔끔했다. 하지만 적이 너무 대단했다. 슬레이브 빗치, 변종을 탐지하는 능력은 사기였다. 이런 기습상황에서 탐지능력은 절대적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쾅! 푸확!
다시 연막탄과 수류탄이 동시에 터졌다. 처음 연막탄과는 달리 묵직해 보이는 연기. 하얀색 연기가 시간이 지나자 아주 약간, 노란빛으로 변한 것처럼 보였다.
‘연기 색이 저절로 변한다고? 설마.’
설마 했던 생각을 무색하게, 병사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백린이다!”
백린으로 만든 연막은 호흡기에 치명적인 피해를 줬다. 백린연막탄이 터진 근처에 있던 병사 하나가 백린을 뒤집어쓰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지글지글 타들어 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곤, 옆에 있던 병사가 급히 응급처치를 했다. 백린이 달라붙은 부분을 대검으로 도려낸 것이다.
‘백린이라고! 이런 미친!’
연방이 백린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면 동맹도 백린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백린만 쓸까? 네이팜이나 신경가스 같은 무기들도 마구 사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 연방이 이렇게까지 나온다는 건, 무슨 짓을 하더라도 탐지능력이 있는 슬레이브를 넘겨주지 않겠다는 표시였다. 뺏길 바에야 전부 처리해서 증거인멸까지 해버릴 속셈이었다.
서로 오순도순 싸울 때 쌈 싸먹으려고 했더니, 잘못하면 쫄딱 망하게 생겼다.
‘페니와 인아를 불러야 하나?’
아직은 아니었다. 동맹과 연방의 전투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백린연막탄이 터졌음에도 동맹 측은 최소한의 피해로 잘 막아내고 있었다. 링커들도 제법 육체능력이 좋아졌지만 종구와 한의사가 그렇듯 괄목할 변화는 없었다. 링커의 육체적인 능력은 연방이나 동맹이나 비슷하다는 이야기.
링커는 거의 같다고 보면 됐고 슬레이브들의 차이는...
백린연막탄이 터지는 인근에 있던 슬레이브가 백린에 의해 화상을 입었다. 연방의 슬레이브라면 온 전신에 불이 붙은 상황이라도 전투속행을 했었다. 지금 동맹의 슬레이브는 분명 싸울 준비를 하고 있지만 전신에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경련하고 있다는 건 고통을 느낀다거나 아니면 공포심을 갖고 있다는 소리였다. 슬레이브 본래 취지가 생체병기임을 고려해 본다면 전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문제가 있었다. 고통과 공포심이 전투력 저하만 일으키는 것은 아니었다.
타격조에 침입해서 하나의 훈련을 받으면서 확실히 알았다. 새끼손가락이 꺾이는 고통을 통해 어느 정도로 움직일 수 있는지, 고통으로 인해 행동 능력이 얼마나 제한받는지 알 수 있었다. 고통을 회피하려는 행동은 신체를 보호하려는 행동과 연결된 것이고, 고통의 회피를 위해 오감이든 육감이든 발달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어중간하다면? 연방의 슬레이브들은 거의 고통 무시에 가까웠다. 백린을 뒤집어쓰고 전신이 타들어 갔다 회복되기를 반복하며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동맹의 슬레이브들은 과연 제대로 반응할 수 있을까?
고통의 무시도 아니고 회피도 아닌, 어중간함은 결정적인 순간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동맹의 신형은 연방보다 빗치에 더 가까운 개체를 만들어 높은 전투력을 확보하려고 했겠지만 이건 어중간했다.
‘대규모 공격인가?’
검은색 특수복을 입은 연방의 슬레이브들이 백린연막을 뚫고 들어왔다. 곧바로 슬레이브대 슬레이브의 처절한 전투가 시작됐다. 인간을 훌쩍 넘어서는 신체능력과 재생력을 이용한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너무 숫자가 적은데?’
기능적으로 볼 때, 동맹의 슬레이브가 능력이 더 좋았다. 게다가 숫자 차이도 두 배 정도 동맹이 많았다.
뭔가 이상했다. 전력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데 공격했다? 슬레이브를 그냥 버리겠다는 소린가? 구석에 숨어있는 캐비닛 속으로 하얀 연기가 들어왔다. 매콤한 느낌을 넘어서 폐를 긁어내는 느낌이었다. 독했다.
쾅! 퍼어어엉!
다시 백린연막탄이 터졌다. 두 슬레이브들이 엉켜 싸우는 도중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백린연막탄을 터뜨리는 연방이었다.
‘저건.’
기세등등하게 뛰어 들어온 것과는 달리 연방의 슬레이브들은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하고 있었다. 질척한 움직임으로 방어위주로 나갔기 때문에 2:1의 숫자적 차이와 성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맹이 제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을 끌고 있어?’
슬레이브들의 재생력이 좋다고 하지만 백린연막탄의 농도가 짙은 곳에 있으면서 가스 마스크 없이 움직이는 것은 위험했다.
재생력이나 회복력도 한계가 있었다. 한계 이상의 데미지를 입으면 약해진다. 빗치든 변종이든 슬레이브든 공통적인 약점이었다. 백린연막이 폐로 들어가면 지속적으로 데미지가 축적된다. 재생하고 해독하기 위해 에너지 소모가 많아져 양측의 슬레이브들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재생능력을 상실한 슬레이브들이 서로 치명상을 주고 받았다. 숫자가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연방 측 슬레이브들이 순식간에 전멸됐다.
“빌어먹을 연방 새끼들. 백린을 썼단 말이지. 전부 퇴각 준비한다.”
“각인과 동기화는 어떻게 할까요?”
“그냥 들고 움직인다. 개새끼들에게 뭔가 능력이 있는 게 분명하다. 탐지능력이라든가 아니면 위성을 사용할 수 있다든가.”
지휘관은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매우 나빠 보였다. 그 잠시 동안의 승리가 무색하게 사주경계를 하고 있던 병사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적이닷!”
“연방의 슬레이브닷!”
“쏴!”
타다다다당!
백린연막이 거의 걷힌 상황에서 대놓고 공격을 시작하는 연방의 슬레이브였다. 숫자는 고작 셋. 가스마스크를 쓰고 있는 연방의 슬레이브 셋이 쏜살같이 난입했다.
“개새끼를 설마 이걸 노리고?”
“슬레이브를 둘로 나눠!”
“앞이 버티는 동안 후열 에너지를 보충시켜. 빨리!”
“이곳에 있는 시체들은 백린에 오염됐습니다.”
“비상식량 먹이라고.”
“넷.”
동맹 측 지휘관이 사태를 파악했지만 늦었다. 장거리 저력과 중기관총의 총성이 들렸다. 12.7mm특수탄이 쏟아지자 뒷줄에서 에너지 보충을 하던 슬레이브들이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하지만 꾸역꾸역 에너지를 흡수하고 다시 방비에 들어가는 슬레이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전선이 교착되는가 싶더니, 백린연막탄이 또 터지기 시작했다.
24명의 슬레이브 가운데 이제 남은 것은 고작 다섯이었다. 그나마도 백린연막에 의해 급속도로 약해지고 있었다. 밖에서는 타격조가 언제든 난입할 준비를 하고 견제하고 있었기에 병사들은 타격조의 진입을 저지하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동맹의 지휘관이 허탈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가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웅얼거리는 소리였다.
“이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백린을 쓰고 놈들에게 우리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중대장님 피하십시오.”
“아니. 내가 가면 놈들이 끝까지 추격할 거다.”
“......”
“두 팀으로 나눈다. 승만이와 슬레이브 하나를 빼고, 도 병장을 불러.”
도 병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다가오자. 지휘관은 현재 상황에 대한 것과 전달해야 할 상황은 알려주곤 환풍구로 탈출하라고 했다. 그쪽은 유미와 미희가 알아서 할 것이다. 링커 하나와 슬레이브 하나를 탈출시키기 위해 화력을 한쪽으로 집중시킨 뒤 보냈지만, 탐지능력이 있는 연방의 슬레이브가 놓칠 리 없었다.
백린연막 때문에 다섯으로도 셋을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나가 빠지자 확실히 힘들어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맹 측 슬레이브의 운동능력이 저하됐다. 결국 5분을 버티지 못하고 동맹의 슬레이브들은 전부 곤죽이 됐다. 연방의 슬레이브도 하나는 죽고 나머지 둘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어찌됐든 연방의 승리였다.
슬레이브들의 사투를 보는 동안,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동맹에 싸울 수 있는 슬레이브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타격조가 난입을 시작한 것이었다. 수류탄이 터지고 유탄이 폭발했다.
슬레이브에게는 별로 위력 없는 유탄이지만 사람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부하들이 처절하게 싸우는 동안 지휘관은 링커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상황이 이렇게 돼서 유감이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운 용사로 기억될 것이다.”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링커 하나가 도망치려고 했지만, 지휘관이 빨랐다.
쾅!
폭음과 함께 뜨거운 불꽃이 링커와 지휘관을 삼켰다.
화르르륵
단순한 폭탄으로 보기에는 불꽃이 너무 강하고 끈끈했다. 동맹군 지휘관이 가지고 있던 것은 네이팜이었다.
갑자기 폭발한 네이팜 자폭에 휘말려 동맹군 병사들은 순식간에 진압됐다. 네이팜을 터뜨린 이유는 아마도 제대로 된 샘플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네이팜을 가지고 있었다니.’
링커들이 들고 다니던 가방에도 네이팜이 들어있던 것이 분명했다. 아니라면 이 정도로 강한 열기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긴 힘들었다. 내가 숨어있는 캐비닛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구석에 있었지만 뜨거운 불길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치이이익- 고기타는 냄새, 고통 그나마 화염내성이 어느 정도 있어서 다행이었지, 없었다면 통조림 안에서 타 죽었을 것이다.
연방도 자폭하려고 하더니 동맹도 이럴 줄이야. 하긴 그랬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괴물이 되기 마련이었다. 연방이 독하다면 그 연방과 싸우는 동맹도 독할 것을 상정하는 게 맞았다.
각자의 신념이 무엇이든 동맹 측도 제정신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샘플이라고 한 것과 아직 부작용이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은 AWS를 도입하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피했을까?’
박살 난 천장을 보니, 유미와 미희는 알아서 피한 것 같았다. 둘 다 화염내성이 있으니 큰 부상은 없을 것이다.
화르르르륵!
시뻘건 불길이 모든 찌꺼기를 태울 듯 타올랐다.
*
얼마나 지났을까? 불길이 잦아들자, 검은 옷을 입은 타격조가 소화기를 뿌려대며 안으로 들어왔다.
먼저 사방을 살핀 타격조원이 조장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보고했다.
“생존자 없습니다.”
“반응은?”
링커로 보이는 남자 옆에 서 있던 꼬맹이 슬레이브가 멍하니 입술을 달싹거렸다.
“없습니다.”
어쩐지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링커였다.
‘없다고?’
나를 찾지 못했을 리 없었다. 나도 분명히 탐지에 걸렸을 것이다. 내가 자폭을 하기 전에 사로잡으려고 하는 건가? 탐지능력에 나는 링커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었다. 유미와 미희도 바로 난입할 수 있는 위치에 숨어있을 것이다.
“동맹 놈 쓸데없는 짓을. 조금이라도 상태가 좋은 게 있다면 챙겨라. 시체 조각이라도 챙겨.”
“전부 숯입니다. 뼈도 제대로 남지 않았습니다.”
“네이팜을 가지고 다녔었나? 놈들의 링커를 구해야 했는데 말이야. 그 도망친 놈들은 어떻게 됐지?”
바로 초음파 피리로 신호를 보내는 타격조원이었다.
[삐이이익!]
“......”
“......”
“가청거리 밖으로 나간 것 같습니다.”
숫자는 타격조 8명 링커 5명이었다. 3명은 부상이 심각했고 5명은 정상이었다. 링커가 5명이라는 소리는 슬레이브가 15명이라는 소리였다. 처음 10명이 미끼로 죽었고 나중에 셋이 추가로 죽었다. 둘 남았는데 하나는 탐지 꼬마, 일반적인 전투 슬레이브는 하나뿐이었다. 유미와 미희까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이렇게 쉽게 들어올 리 없었다. 그렇다면 뭔가 탐지에 오류가 생겼거나 아니면 유미와 미희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링커가 죽어 동작 불능 상태에 빠진 슬레이브라고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까 나는 슬레이브를 잃은 빈 통 링커, 가만히 숨어서 움직이지 않고 대기하고 있는 유미와 미희를 동작 불능상태인 슬레이브로 착각하고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확실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연 인척 타격조 다섯이 내가 숨어있는 캐비닛을 향해 소화기를 뿌려가며 접근했다. 놈들의 목적은 링커로 보이는 내가 자폭하기 전에 제압하는 것으로 보였다.
[페니- 빨리!]
텔레파시로 페니에게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초음파 피리로 유미와 미희에게 신호를 보냈다.
[삐이잇삐잇!] (조장을 죽여!)
놈들이 내가 자폭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나도 놈들이 자폭하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검게 그을린 천장이 터지면서 유미와 미희가 불꽃 위로 떨어졌다.
콰득!
바닥으로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타격조 조장을 향해 달려드는 유미와 미희. 나를 향해 포위망을 좁히려고 했던 타격조원들이 유미와 미희를 보고는 즉각 반응했다. 소화기를 내던지고 총을 잡는 순간을 노려, 발화능력을 사용했다.
팡! 쾅! 퍼어어엉!
쪼기에 달려있던 탄창과 수류탄이 폭발하면서 타격조원들이 산산 조각났다.
“윽. 한계?”
타격조원 셋의 탄창을 폭발시키자 어질한 느낌과 함께, 강한 두통이 생겼다. 네이팜이 터진 여파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것 같았다.
치익-
“읏-”
달궈진 캐비닛에 갑작스럽게 화상을 입었다. 화염 내성이 있는데? 이제까지 괜찮았던 온도에서 화상을 입어? 그만큼 약해졌다는 소린가?
잠시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두근두근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이어서 가슴 전반을 내리누르는 것 같은 묵직한 감각. 위기감응이 발동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