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스트 DUST-168화 (168/261)

게릴라전 (2)

링커가 죽자, 슬레이브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멍하게 서 있었다. 탐지능력이 있는 꼬맹이도 마찬가지였다. 미희가 꼬맹이를 번쩍 들었다.

“탐지 슬레이브 확보했습니다. 바로 이동할까요?”

유미는 아깝다는 표정으로 슬레이브들을 봤다.

“전파교란 때문에 통신이 불가능하니까 좀 아깝네요.”

작게 ‘그래도 전력이 강해지면 좋은 거니까.’라고 중얼거리는 유미였다.

“페니를 통해 연락하면 돼.”

“아. 맞다. 자기 링크 능력도 있었죠?”

유미는 슬쩍 나에게 ‘자기’라고 말하고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기 위해 주변에 있는 짐들을 뒤적거렸다. 눈에 확 띄는 행동인데도 자기 딴에는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 하는 짓이 귀여웠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변한 건 없었다.

[페니, 인아를 데리고 이곳으로.]

집중해서 사념을 보낸 뒤, 전리품을 정리했다. 소득이 제법 괜찮았다. AWS를 만드는 은색 상자 하나. 스펙은 1과 2를 합해 38개가 있었고 전투식량은 그보다 훨씬 많았다.

“일단 전부 들고 갈 수 없으니까. 한쪽에 숨겨놓자.”

“근데, 이거 먹어도 괜찮을까요?”

유미가 전투식량을 쿡쿡 찔렀다.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쓸모가 있을지 모르니까 일단 숨겨둬.”

“눼에.”

소총은 전부 쓸 수 없게 됐다. 권총도 그렇고 건질 게 없었다. 그나마 수류탄이 터지지 않은 게 신기했다.

“수류탄은 어떻게 할까요? 저기 통조림처럼 생긴 건 섬광탄이죠?”

이것저것 꼼꼼하게 챙기는 유미가 새까맣게 탄 시체를 뒤적이다 말고 깜짝 놀랐다.

“어맛? 이거. 이 사람 숨이 붙어있어요!”

전신화상을 입어 숯덩이가 된 사람이 갈라진 신음을 냈다. 스펙의 효과 때문인지 전신화상을 입었음에도 살아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치료해서 정보를 캘까요?”

미희가 짐들을 정리하다 말고 물었다. 치료라. 스펙1을 쓴다면 어느 정도 회복되겠지만, 화상은 생각보다 심각한 상처였다. 빗치나 변종급의 재생능력이 없다면 치료하기는 불가능했다. 어설프게 치료한다고 해서 심문을 할 정도로 상태가 좋아질 것도 아니고, 서로 피곤할 뿐이었다.

“편하게 해줘.”

내 말에 미희가 곧바로 사내의 울대를 밟았다. 꾹- 그 작은 행동에 힘겹게 버티고 있던 생명이 끊어졌다. 변한 것은 없었다.

짐을 정리하고 숨길 것은 숨졌다. 페니가 인아와 함께 올 때까지 기다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동맹 측 슬레이브들이 접근했다.

[어떻게 할까요?]

유미가 수신호를 보냈다. 동맹 쪽은 탐지능력이 있는 슬레이브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 근처를 생으로 수색하고 있었다. 진형이 넓게 퍼진 상태. 숫자도 제법 많았다.

상황과 조건을 살펴보니 잘하면 대박을 칠 수 있었다. 가능성은 5할 이상.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산개. 은신. 신호는 피리로.]

[슬레이브들은요?]

[미끼로 쓴다.]

유미와 미희가 환풍구로 올라갔고, 나는 문짝이 반쯤 뜯긴 케비닛을 골라 몸을 숨겼다. 동맹 측 슬레이브들은 적당한 간격으로 흩어져 주변을 탐색했다. 모두 12명이었다. 6명씩 움직였던 조가 일순간에 당하자 두 배로 숫자를 늘린 것 같았다.

슬레이브들은 현재 상황을 텔레파시의 형태로 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슬레이브가 한 명의 링커에게 전해주는 정보만으로 열둘이나 되는 슬레이브들을 통솔하기란 어려웠다. 열둘의 슬레이브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네 명의 링커들 사이에서 정보교환이 이뤄져야 했다.

링커들이 한곳에 모여있다면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겠지만 1:3으로 나눠져 있거나 2:2로 나눠져 있는 상황이라면? 슬레이브를 매개로 의사전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연방의 슬레이브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면, 동맹의 신기술로 만들어진 슬레이브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동맹의 슬레이브은 자신들끼리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

슬레이브들이 신호를 주고받는 다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의사소통이 이뤄질까? 의사소통이 이뤄진다면 링커들의 명령과 슬레이브의 자율성은 어떤 방식으로 엮일지 기대됐다.

이곳에는 먹음직스러운 먹이까지 있었다. 주인을 잃은 연방의 슬레이브들이 9체나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오면서 동맹 측 슬레이브 6명을 제거했다. 다시 말해 슬레이브를 잃은 빈 링커가 최소한 둘이 있다는 소리였다.

링커들은 링커들끼리 모여 있다고 했을 때, 동맹의 링커들은 어떻게 나올까? 미끼를 물까?

‘자. 어떻게 할 거냐? 월척이냐?’

한 슬레이브가 참혹한 상황을 발견하자 피리를 불었다. 이쪽도 초음파 피리를 쓰고 있었다.

[삐이이익!]

아마 발견했다는 뜻이나 찾았다는 의미의 신호 같았다. 소리를 기억하고 틈 밖으로 상황을 살폈다. 초음파 피리를 듣고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초음파 피리를 썼다?’

슬레이브들을 통제하고 있는 링커들이 한곳에 모여 있지 않다는 소리였다. 12명의 슬레이브를 통제하는 4명의 링커가 서로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한 슬레이브가 다른 슬레이브에게 초음파 피리로 정보를 전달했다는 의미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동맹의 링커들은 한 장소에 모여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AWS가 가진 약점. 슬레이브 시스템은 최소한 두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슬레이브가 되면 링커의 명령을 최우선으로 따랐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그 최우선적으로 따른다는 것은 의외로 다양한 변수를 가지고 있었다. ‘공격’이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하자. 슬레이브들이 그 ‘공격’ 방식은 슬레이브가 경험한 과거의 경험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이뤄질 것이다.

어떻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각기 다른 ‘공격’ 방식과 ‘타이밍’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따지자면 훈련의 문제였다. 슬레이브와 링커를 체계적으로 훈련시켜야 해결될 문제였다.

따라서 유기적 움직임이 필요한 작전을 펼칠 경우, 슬레이브 각각의 차이로 인해, 즉각적이고 유기적 대응이 어렵다는 치명적 약점 하나.

그리고 그 약점을 어떻게든 보완하기 위해 링커들을 한곳에 모아둔다면 생길 수밖에 없는 약점 둘.

슬레이브들을 유기적으로 조종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링커들을 한곳에 모아 두는 것이었다. ‘내 슬레이브가 이런 상황에 처해있으니 도움을 바람.’ 실시간으로 슬레이브에게서 받아들인 정보를 교환에 전장에 반영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약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링커들이 모여 실시간으로 의사교환을 한다? 약점인 링커들이 모여야 한다는 소리였다. 슬레이브는 링커가 없으면 멈춘다. 연방이든 동맹이든 링커가 약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적 링커를 최우선으로 제거하려고 했다.

그런 링커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려고 할 것이다. 특히 연방은 탐지능력이 있는 슬레이브가 있었다. 탐지능력을 갖춘 슬레이브로 동맹의 링커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가능한 마당에, 한 곳에 뭉쳐 있는 것은 죽여 달라고 목을 내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피리소리를 듣고 모인 슬레이브들은 현재 상황을 자신들의 링커에게 실시간으로 전송했다. 이곳의 상황 10구 화상입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총신이 파열된 총기의 흔적. 그리고 링커들의 머리통이 박살한 모습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슬레이브들은 연방의 슬레이브를 향해 다가갔다. 탐지능력이 있는 슬레이브가 어떤 건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꼬마를 들고 간다면 덮치려고 했는데, 동맹의 슬레이브들은 이 자리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는지 주변 경계에 돌입했다.

‘됐다.’

대박을 칠 확률이 5할에서 7할 이상으로 확 뛰어올랐다. 동맹에서는 이곳을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연방의 부대가 전멸한 곳이다. 게다가 이곳에 있는 흔적은 특이했다. 슬레이브로 탐색하고 지나가기에는 아까운 정보들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슬레이브들이 정보를 보내준다고 하더라도 링커들이 받아들이는 건 한계가 있었다. 이곳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이 올 것이다. 사람만 올까? 이왕에 오는 김에 이곳에 있는 연방의 슬레이브들을 가져갈 링커들이 올 것이다.

그럼 그렇게만 올까? 현재 상황을 직접 파악하기 위해 소대장 이상급. 중대장급이 함께 올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동맹의 슬레이브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면, 게다가 자신들의 슬레이브들이 기능 정지된 채 한 곳에 멈춰있다면 연방은 어떻게 나올까?

주렁주렁 매달려 나올 것이다.

‘큭-’

인아와 함께 오고 있는 페니에게 바로 텔레파시를 보냈다.

[이곳으로 오지 말고 지나가는 것처럼 이동해.]

[네.]

*

얼마 지나지 않아 슬레이브 12과 함께 링커들이 등장했다. 본래 이곳에 있던 슬레이브의 숫자는 12명 여기에 12명을 더하니 슬레이브만도 24명이나 되는 숫자였다. 거기에 슬레이브를 통제하는 링커가 10명이었다. 10명 가운데 2명은 슬레이브들을 잃은 빈 통이었다.

슬레이브와 링커만 하더라도 소대 단위인데, 링커뿐만 아니라 내가 기대하고 있었던 인물이 등장했다. 딱 봐도 동맹에서 중간 이상은 갈 만한 지위를 가진 놈과 정예로 보이는 병사들까지 합해 스무 명이 넘었다.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23명.

슬레이브 24명+링커 10명+중간지휘자와 정예부대원이 23명 모두 합하면 57명이었다.

“현장은 그대로인가?”

“네.”

“사주경계하고 링커들은 슬레이브들 각인 준비해.”

“연방의 슬레이브와 동기화 가능합니까?”

지휘관의 명령에 링커가 질문했다. 지휘관은 질문한 링커를 노려봤다.

“불가능하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준비해.”

연방의 슬레이브를 동기화시키는 방법은, 주사제를 투여하고 링커의 피를 먹였다. 내 경우에는 피만 먹였어도 연결이 됐었지만, 동맹 쪽은 어떻게 할까?

동기화시키라는 명령에 두 링커가 자신의 팔뚝에서 피를 뽑았다. 뽑은 피를 가지고 기계에 넣어 혈청을 분리하고는 무슨 약품을 섞어 주사제를 만들었다. 뭔가 연방과는 다른 방식으로 동기화하는 것 같았다.

정예로 보이는 병사들이 주변의 흔적을 살피고 경계를 섰다. 훈련되지 않은 슬레이브에 비해 훈련된 정예병이 경계에 효과적인 것은 당연했다. 지휘관은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을 불렀다.

“상병 나용석”

“링커가 하나 부족하다. 네가 해라.”

지휘관의 무심한 명령에 병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

“지금이야 위험하다고 하지만 연구 속도로 보면 육 개월 안에 부작용을 없앨 수 있는 약물이 개발될 거다. 그때가 되면 링커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해.”

“......”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되는 거다. 그리고 알다시피...”

지휘관이 목소리를 살짝 내리깔았다. ‘링커가 되면 슬레이브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않나?’ 아주 작게 소곤거리는 지휘관이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건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그렇게 하는 게 링크를 견고하게 하는 방법이니 권장하기도 하고. 자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안세준 일병을 시키도록 하겠네.”

“하.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준비하도록.”

“옛.”

상병은 두 링커들이 뭔가를 만들고 있는 곳으로 가서, 입에 막대기를 물었다. 재갈을 물듯 막대기를 물자. 링커들이 상병의 어깨를 다독거리곤 그의 몸을 꽁꽁 묶었다. 딱 봐도 몸을 묶은 장비는 일반적인 구속구가 아니었다.

저럴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단단한 장비로 전신이 꽁꽁 묶인 상병이 고개를 끄덕이자. 링커가 커다란 주사기를 상병의 목에 꽂았다. 이윽고 주사를 맞은 상병은 몸부림을 치며 난리를 쳤다. 악 다문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오다 점점 김빠지는 소리를 냈다. 잠시 뒤, 상병의 입에선 신음 대신 하얀 게거품이 줄줄 새어 나왔다.

“이런 씨발. 중화제! 중화제! 넣어!”

옆에 있던 링커가 의식을 잃은 상병에게 중화제를 놨지만 늦었다. 심폐소생술을 하던 링커가 낮은 목소리로 지휘관에게 보고했다.

“나용석 상병. 사망했습니다.”

링커의 말에 지휘관이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지. 안세준 일병 이리와.”

“일병 안세준.”

지휘관이 일병에게 뭐라고 하려는 순간. 죽었던 상병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벼. 변이한 것 같습니다.”

링커의 말에 지휘관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후-좀비야 변종이야?”

“변종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그래? 중요한 샘플이니까. 제대로 포획해 놓도록 해.”

“알겠습니다.”

두 링커가 변이를 일으킨 상병을 다시 한 번 더 묶고는 입에 가스마스크를 씌웠다. 변종이 되면 바늘이 들어가지 않으니 호흡기를 통해 약품을 넣는 것 같았다. 가스를 한 참이나 주입했음에도 변종의 몸부림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거의 10분이 넘도록 가스를 주입하고 나서야 변종의 몸이 축 늘어졌다.

링커들이 만들었던 주사제가 거의 완성이 됐는지 두 링커는 서로 마음에 드는 슬레이브를 골라잡았다. 그러던 중 나이가 어린 슬레이브를 보고는 연방을 씹어 댔다.

“뭐야 이거 유치원? 초등학교?”

“연방 놈들 미쳤나? 애들을 슬레이브로 만들고 지랄이야.”

“됐다. 이걸 어디에 쓰겠냐?”

“근데 동기화가 될까?”

“해봐야지. 우리가 처음인 것 같은데.”

“씨발 저거 못 봤냐? 부작용 뜨면 그냥 뒤지는데.”

“그럼 명령 불복종 할래?”

“아- 미치겠네.”

“됐으니...”

맨 외곽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의 몸이 뒤로 풀썩 쓰러졌다.

“어? 저... 저...”

그 모습을 본 링커가 고함을 지르려는 순간.

퉁- 팅-

동그란 물체가 금속음을 내고 떨어졌다.

쾅! 콰쾅! 푸쉬쉬쉬쉭!

섬광탄과 수류탄, 연막탄이 동시에 터졌다.

“으악!”

“내 다리!”

“위생병!”

“눈이. 눈이!”

“적이다!”

“전투준비!”

기다리던 연방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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