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1)
불꽃을 피워대던 빗치의 이름은 소아였다.
“왜 자유 동맹에 참가했지.”
“보. 복수하기 위해서.”
“복수라고? 그게 의미가 있나?”
내 말에 불꽃을 피워 올리려던 소아가 유미의 눈빛을 받고는 그대로 침몰했다. 확실히 서열이 정해지고 나자 유미에게 기어오르지 못했다.
“미안하군. 말이 심했다. 복수의 의미가 있으니까 너도 그렇고 미희도 동맹 쪽에 붙었던 거겠지. 소아라는 이름은 예전 이름 그대로인가?”
“네.”
일반 빗치와 이성적으로 대화가 가능한 빗치의 차이점은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달랐다. 일반적인 빗치는 기억만으로 남은 과거를 지우고 과거와는 다른 자신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바꿨다. 미도나 미노가 대표적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미희나 소아 같은 빗치들은 달랐다. 과거에 대한 감정이나 의미가 없어졌을지언정 과거를 버리지 않았다. 이들이 자유 동맹에 귀순했던 이유도 자신의 가족들을 죽게 만든 연방에 대한 복수심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대한 감정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복수심을 가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모호했다.
‘복수심이 원동력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근거가 빈약한 추측이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빗치들 가운데 변이의 특이성을 가진 빗치가 있어서 어느 정도 통제가 될 수 있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복수를 원했던 것인지 머리를 열어 본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머리를 열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응? 뭐라고?”
“그렇잖아요. 강한 복수심이나 감정의 변화가 있으면 호르몬인가? 대뇌에 반응이 변한다고 하니까요. 장비랑 연구원만 있으면 알 수 있을 텐데요.”
인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유미가 톡 쐈다.
“제 부하 머리를 열어보자고요? 농담이 과하네요.”
“어머? 농담이라니. 진심인데.”
두 사람 사이에 스파크가 튀었다. 유미가 인아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우리도 서열을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어떻게 할까? 나도 유현씨 피를 먹.어.야. 공.평.하.겠.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인아의 공격에 유미가 당황했다.
“뭐... 뭐라고욧?”
“왜 이러실까? 지금 이대로 싸우자고?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해? 너만 강해진 채로 싸우자는 건 공평하지 않지.”
유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예전이라면 어떻게든 힘이나 숫자로 막았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유미가 꼭지가 돌아 폭주하면 태반이 육편(肉片)이 될 상황이었다.
“인아야 그만 놀리지.”
“놀리는 거 아닌데. 저 진심이에요.”
“위험해서 안 돼.”
“어째서요?”
“미희와 소아가 가져온 자료에 나왔어. 연방의 연구기록 말이야.”
“......”
기록에 따르면 변이도 한계가 있고 위험요소가 많았다. 가장 큰 위험은 변이를 견디지 못하고 세포 단위로 괴사하는 것이었다. 섭식의 방법으로 인자를 섭취하는 것도 동일한 위험이 있을 수 있었다. 능력을 키우겠다고 이것저것 먹어댔다가는 위험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럼 전 유현씨 피를 영영 먹지 못한다는 소린가요?”
“지금 당장 먹어야 할 건 아니잖아. 위험할지 모르는데. 천천히 알아보자는 거지.”
유미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열은요?”
서열 싸움을 하면 자기가 이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서열? 지금 둘이서 서열 싸움을 하겠다는 거야? 둘이 싸우면 둘 다 날 안보겠다는 걸로 알겠어.”
내 강경한 태도에 인아와 유미가 서로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
우루루룽!
여기저기 숭숭 구멍 뚫린 건물이 천둥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깔끔하게 건물 하나를 철거한 유미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팔을 붕붕 휘둘렀다. 장난삼아 팔을 붕붕 돌리는데,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막- 뭐든 부술 수 있을 것 같아요.”
“으응. 그래.”
“잘했죠? 네?”
“응. 잘했다. 잘했어.”
“그럼. 상 주세요.”
“상?”
유미의 뱃속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꼬르륵.
내 피가 어떻게 변했는지, 식사를 마치고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그대로 정신 줄을 놔버리는 유미였다.
“히히히.”
자면서도 웃는 유미였다. 인아와 비교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았다. 이제는 강한 빗치들도 부하로 뒀기도 했고 누가 봐도 ‘강하다’고 할 수 있으니 긴장하고 경계했던 것이 풀어진 것 같았다.
슥-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잠결에라도 행복한 표정을 짓는 유미였다.
“그나저나 이건 또 이것대로 문제인데.”
강해진 건 좋은데 연비가 너무 나빴다.
‘주먹질 한 방에 빗치를 잡을 수 있으니 효율이 낮은 건 아닌가?’
확실히 위력은 발군이었다. 시험 삼아 자동차를 때려보라고 했더니, 한 방에 자동차가 박살났다. 말 그대로 미친 파괴력이었다. 하지만 힘을 낼 수 있는 지속 시간이 너무 짧았다.
‘길어야 5분? 단기 결전용이라는 건가?’
지구력을 높이기 위해 훈련이 필요했지만, 5분 움직이고 피를 먹어야 해 길게 훈련하기도 힘들었다. 훈련하려면 피가 필요했고 유미가 피를 빨아먹으면 나 역시 칼로리 보충을 해야 했다.
피를 만들기 위해 먹는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일반적인 음식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위가 받지 않았다. 어떻게 먹으면 소화는 시켰지만 진이 빠진다고 할까? 계속 먹어서 익숙해지면 좋겠는데, 익숙해지기는커녕 조금씩 알레르기 반응 같은 것이 생겼다.
그래도 꾸역꾸역 먹었다.
우욱-
유미에게 피를 주려면 먹어야 했다.
‘어차피 버린 몸이잖아.’ ‘그래 이미 버린 몸인데.’ ‘네가 이런다고 누가 알아주겠어?’ ‘효율을 생각해야지. 효율을...’
강한 힘을 얻기 위해 선을 넘었다. 내가 힘을 얻었기 때문에 유미도 강해졌다. 그러니 변명할 것도 없고 변명해서도 안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식육을 하기 시작한다면 이제까지 내가 했던 행동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식인종들과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우욱-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삼키며 억지로 삼켰다.
“그렇게까지 고생하면서 그래야겠어요?”
인아는 내가 변하지 않을까 싶어 걱정했었다. 하지만 변이를 하고서도 변함없는 태도를 보이자 날 갈구했다. 지금도 억지로 먹고 구토를 참는 나를 보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인아였다.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우욱-”
“일반음식을 먹기 힘들다는 걸 알면서 계속 먹는 건 뭐죠? 자기 학대인가요?”
“그럴지도 모르지.”
담담하게 대답하는 날 보곤 인아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먹지 않았으면 했어요. 어떻게 변할지 몰랐거든요. 만약 일반 변종처럼 변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기억하고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변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두려웠죠.”
“......”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모를 일이에요. 당신이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니, 한 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참 이상하지요?”
“후- 못난 꼴을 보였나 보군.”
인아가 화제를 바꿨다.
“페니라고 했던가요? 그 무너진 건물에 파묻혀 있다는 슬레이브.”
“그래.”
“많이 변하긴 했지만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더라고요. 그 때 풀어준 자매 가운데 하나같던데 맞나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페니를 찾았나? 구출했어?”
“네. 오랜 시간 굶주려서 위험했어요.”
“위험해?”
“신체붕괴가 일어나고 있었거든요. 회복하는데 이틀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이틀이라... 수고했네. 고마워.”
“뭘요.”
발견 당시, 페니는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했다. 빗치든 변종이든 칼로리를 보충하지 못하면 이성을 잃고 발광했다. 그 뒤에는 신체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유미도 그렇고 나와 인아, 그리고 슬레이브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체는 많이 있었다. 하지만 미희와 빗치 그리고 인아와 슬레이브들을 합하면 스무 명이 넘었다. 100명이 넘는 시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먹어대면 얼마 지나지 않아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 인간을 사냥하거나 아니면 사육하거나.
“무슨 생각을 하세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해서 말이지.”
인아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고개를 끄덕이자. 조심스럽게 말하는 인아였다.
“페니 말이에요.”
“......”
“풀어주고 난 뒤 마음이 편했나요?”
“그게 무슨 말이지?”
“사실 아직도 그 때 왜 내보냈는지 모르겠어요. 이유가 있었겠죠. 하지만 풀어준 결과는 모두에게 편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던 결말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이야기를 하는 건가?
“왜 그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렇게 속에서 받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울컥하는 마음대로 대답하려던 것을 참았다. 내가 식육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결과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인아는 편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결말이 될지 모른다고 하고 있었다.
‘의미가 있냐고? 행복하냐고?’
인아는 스케빈져의 삶을 살았었다. 그녀가 빗치로 부활한 뒤 옆에 있던 것이 시체였기 때문에 시체를 먹고 살게 된 것인지 아니면 그녀 또한 산 사람을 잡아먹지 않기 위해 시체만을 노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그녀는 인간을 먹었다.
산 사람을 잡아먹는 것과 죽은 사람을 먹는 것의 차이는 뭘까? 지금도 인아는 시체를 먹고 있었다. 어쩌면 그 심리적 거부감 때문에 그때의 포옹 이후, 나와 인아의 사이가 더 가까워지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게 있어 식육하지 않는 것은 내가 아직 인간이라는 인간적이라는 그 무엇과 닿아있는 것이었다. 인아가 내 생각을 짐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작게 말했다.
“인간이라고 인간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거겠죠.”
“......”
“왜 인간에 집착하죠? 인간이든 아니든 유현씨는 유현씨잖아요. 당신의 피를 먹고 행복해하는 아이도 인간은 아니잖아요. 인간이 아닌 것과 사랑을 나누고 인간이 아닌 것과 신뢰를 쌓으면서 뭘 하고 싶은 거죠?”
“......”
“그래요. 전 모르겠어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모르겠어요. 옛날 같았으면 지금 이런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당신을 위로해주거나 당신의 마음에 맞는 말만 했겠지요. 하지만 그래서는 변하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솔직해졌으면 좋겠어요. 인간인척하면 마음이 편한가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하다면 그렇게 해야지요. 하지만 유현씨는 인간이 아니에요.”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이라도 시체를 먹고 낄낄거리라고?”
“그런 소리가 아니잖아요. 뭘 먹든 이제 유현씨는 인간이 아니에요. 그전까지는 인간과 변종의 중간이었다면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단 말이에요. 저도 그렇고 그 아이도 지금 당신을 사랑할 거라고요.”
“......”
“언제까지 그렇게 자기의 마음을 갉아 먹을 생각이에요?”
“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으니까 나가줘. 혼자 있고 싶으니까.”
억지로 일반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이 인아에게는 그렇게 보였나 보다.
“하-”
테이블에 쌓여 있는 통조림과 즉석식품들을 밀어 버렸다. 와르륵-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쏟아지는 음식들.
나는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리더였다.
‘빌어먹을.’
처음에는 나와 유미의 안전이 제일 중요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날 따르는 사람들 각자에게는 모두 각자의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사실. 지금까지 함께 한 사람들은 내 부하였고, 전우였으며 진정한 의미의 이웃이었다.
이 변해버린 세계에서 괴물들의 습격에서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벽이었고, 연방과 동맹의 횡포에서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힘이었다. 그래서 모두의 생존을 위해 규칙을 만들었다. 나와 유미의 생존뿐만 아니라 우리들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연방과 동맹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맨홀 변종의 시체를 먹었다.
그 결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모든 것이 변했다. 지키고자 했던 의미는 퇴색됐고 넘지 않았던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다.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이제 사람들과 나는 양립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젠장.”
이걸 생각했어야 했다. 맨홀 변종을 먹기 전에. 모든 것이 변하리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전까지는 그랬다. 비록 내가 인간에서 벗어난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인간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핑계다.’
지금 이것도 핑계일지 몰랐다. 외부의 압력만 생각했었기 때문에 간과했던 것이지. 이건 예정된 결말이었다.
에너지가 부족하면 이성을 잃고 날뛰는 빗치들과 슬레이브들을 거느렸으면서 평화를 추구한다는 게 가능할까?
인아에게 슬레이브들을 감염시켜 장악하라고 했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동맹과 연방의 위협에서 지킬 힘을 얻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따지고 보면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인아가 슬레이브들을 늘리면 늘릴수록 더 많은 시체가 필요했다.
유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강해진 유미가 주변의 빗치들을 복속시킨다면 빗치들이 먹을 사람이 필요했다. 싸움이 벌어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식량이 돼야 했다.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사람이 필요했다.
결국, 힘이 강해질수록. 그렇게 힘으로 안전을 추구할수록. ‘우리’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었다.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빗치-슬레이브 부하들을 거느리기 위해, ‘먹이’가 돼야 하는 사람. ‘죽어야 하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