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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164화 (164/261)

서열 정리 (2)

먹이고 때리는 것으로 서열이 정리된다면 나쁘지 않았다.

하나가 내 손가락을 꺾어 놓고 직접 체험하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하나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본다면 나쁘지 않았던 것처럼,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고통은 효과적이었다.

퍽! 퍽! 퍽!

북어 패는 소리가 무심하게 들렸다.

지속적인 구타는 이성을 무너뜨린다. 폭력과 회유 그리고 반복되는 고통은 결국 저항을 깰 것이다.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러대는 미희와 빗치였다. 살아있기 때문에, 통각이 마비된 것이 아니었기에 고통은 몸에 새겨지는 법이었다.

‘이렇게 하는 게 옳다.’

피가 튈 때마다 내 몸이 움찔움찔 거렸다. 유혈이 낭자한 폭력의 현장을 주도하고 싶은 욕구가 슬그머니 치밀어 올랐다. 맨홀 변종의 능력만 가져온 것이 아니란 말인가?

벌컥벌컥

칼로리 보충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형용할 수 없는 구역감이 치밀어 올라오면서 낯선 욕구를 깨끗하게 잊게 만들었다.

벌컥벌컥

“우욱- 진짜.”

저절로 욕이 나오는 느낌이었다.

“괜찮아요?”

인아가 내 등을 토닥거렸다. 삼키려고 하는데 등을 두들기면 어쩌라고.

“등 두드리지 마. 욱-”

“아- 죄송해요.”

퍽.

때리는 소리가 딱 멈췄다. 유미가 때리다 말고 나와 인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기계적으로 다시 미희와 빗치를 두들겨 패기 시작하는 유미였다.

빠악! 뻐어어억! 쿠지지직!

“......”

“......”

약 때문인지 인아와 유미는 죽이고 죽고 하는 그런 증오어린 충돌은 없었지만 위태로운 건 사실이었다. 인아가 슬레이브들을 장악해 일종의 세력을 통제하자, 유미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하면서 인아를 의식했다.

자신보다 인아가 더 쓸모 있고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유미는 내가 필요한 것들을 챙겨줬다. 마치 오피스 와이프처럼 일 처리를 했고, 하우스 와이프처럼 날 챙겼다.

옆에 붙어서 내가 뭘 필요로 할까 미리 챙기는 그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고마웠지만 동시에 애절하게 느껴졌다. 일대 일로 놓고 볼 때, 인아와 비교해서 뒤처짐이 없는 유미였지만, 인아를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전술, 전략적인 가치를 제외하고라도 인아라는 존재 자체가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챘는지 유미는 조금은 초조했다.

스펙의 효과가 남아있는 내 피를 먹고 보여준 행동이 떠올랐다. 터프하게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던 유미였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나를 갈구한 유미의 모습이 그녀의 무의식이라면, 유미는 내가 그녀를 떠나 인아에게 가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는 것일 수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미희와 빗치를 때려서 서열을 잡으라는 말에 일고의 반대나 고민 없이 즉각 때린 것인지 몰랐다.

어쩐지 신경질적으로 두들겨 패는 유미의 모습을 보며 인아가 내 귓가에 살짝 한마디를 하고 물러섰다.

“열심이네요. 좋으시겠어요.”

“......”

여러 여자를 거느렸다는 옛날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

유미의 폭력은 점차 강도를 더해갔다. 하지만 서열 정리는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다 죽어갔던 빗치를 어느 정도 살려놓자 불꽃을 일으키며 반항했고, 미희는 특유의 완력으로 저항했다.

유미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까지 가면 내가 도와줬다. 반항은 간단하게 진압됐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이거 고통에 내성이라도 생기는 건가?”

“고통에 내성이 생겼다기보다는 조금씩 강해지는 것 같아요.”

유미가 살짝 인상을 썼다. 열심히 두들겨 패기를 반복했더니, 이것들이 더 단단하게 변하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강해지고 있었다.

“나를 죽이지 못한 시련은 나를 강하게 해준다고 했던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죽을 정도의 시련, 죽고 싶을 정도의 시련은 결국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밑거름이라는 말이지.”

“그러니까 얘들이 강해지고 있다는 소리잖아요. 서열은 어떻게 하고요.”

죽기 직전까지 몰았어야 했나? 그러고 보니 빌딩에서 만났던 빗치가 떠올랐다. 유미를 거의 해체하듯 짓이겨 놨던 빗치. 그건 어쩌면 유미를 자기 휘하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행동일지 몰랐다.

‘빗치들 가운데서 자연적 발생적으로 서열을 생각하는 년이 있다?’

본능적으로 다른 빗치를 배제하려는 성향을 지닌 빗치들이 서열을 만들려고 했다는 소리였다. 어찌 됐든 지금까지 단순하게 두들겨 패서 서열을 잡으려고 했던 방법은 실패였다. 단순하게 행동불능 상태로 만드는 게 아니라 죽음 직전까지 가야 했다. 아니,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몰아 붙여야 한다는 소리였다.

‘유미가 당시 끝까지 저항한 이유가 나를 살리려고 했다면... 이들은?’

이들도 저항할 이유가 있을지 몰랐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이유가 있다면 죽으면 죽었지 밑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이제까지 했던 방식으로는 힘들 것 같아.”

“어쩌죠?”

그렇다고 지금 멈추면 아니 시작한 것만 못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늦었다.

“끝까지 가야겠지.”

“끝까지요?”

“그래. 죽기 직전까지 밀어붙여 보는 수밖에...”

서열의 핵심은 강자존. 강한 자에게 굴복하는 것이었다. 고로 내가 도와주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걸 지금 해야겠다.

생각은 간단했다. 스펙의 효과가 남아있는 내 피를 마시면 유미가 영향을 받았다. 맨홀 변종의 사체를 먹고 변한 내 피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높은 확률로 뭔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유미는 이미 급속재생능력과 높은 수준의 완력을 가지고 있었다. 최소한 빗치 둘의 사체를 통째로 먹은 인아와 싸워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유미는 강했다. 그런 유미가 맨홀 변종의 능력을 얻는다면? 엄청나게 강해질 것이다.

문제는 부작용이었다. 맨홀 변종의 사체를 먹은 자들은 모두 넷. 미희와 빗치 둘 그리고 나까지 넷이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변이를 이기지 못하고 신체가 붕괴됐다. 사 분의 일 확률. 치사율 25%라는 소리였다.

적지 않은 확률이었다.

‘어떻게 할까?’

인아와 유미의 신경전도 그렇고 앞으로의 상황도 만만하지 않았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실질적인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도 선을 넘지 않았는가? 부작용도 있고 위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견딘다면 확실히 강해졌다.

“서열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위험해.”

“무슨 방법인데요?”

“피를 먹어보는 거야.”

“아-”

25% 치사율이라고 하지만 언제고 해야 할 일이었다. 유미는 내 피만 먹고 있었다. 내 피가 변해서 유미가 먹기 힘든 피가 됐다면, 유미는 유미대로 다른 피를 먹는 연습을 해야 했다.

“그. 그럼 지금요?”

유미가 어쩐지 살짝 부끄러운 표정으로 힐끔 내 목을 쳐다봤다. 저번에 먹고 난리를 쳤던 것이 생각난 것 같았다. 폭 안아주자. ‘아우.’ 하면서도 ‘앙’하고 살짝 무는 유미였다.

“앙?”

“......”

유미가 냉큼 목을 물었다. 그럼 피가 빨려야 하는데 피가 빨리는 느낌이 없었다. 유미는 다시 힘을 줘서 목을 물었다.

“아앙!”

“?”

몇 번을 물어뜯던 유미가 뭐라 형용하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아. 안 물려요.”

“응? 아?”

유미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나이프로 손바닥을 그었던 것이 떠올랐다. 칼날이 손바닥을 파고들지 못했었다.

“전혀?”

“네. 더 세게 물면 어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물면.”

그러니까 온 힘을 다해 물면 어쩔지 모르겠지만, 어지간해서는 상처를 낼 수 없다는 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미진의 팔에 달려있던 진동 나이프가 떠올랐다. 그거라면 충분히 통할 것 같았다.

위이이이잉-

기묘한 소리와 함께, 목에서 피가 튀었다. 유미가 해맑은 미소로 빨대를 꽂았다. 예전에 비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아물었기 때문에 몇 모금 마시지 못하고 상처가 아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박아 넣은 빨대로 쪽하고 피를 삼킨 유미의 표정이 황홀하게 변했다. 뭔가 느끼는 표정이었다. 스펙의 효과가 있을 때와는 또 다른 표정이었다. 그렇게 오묘한 얼굴로 그대로 기절해 버리는 유미였다.

유미가 정신을 차린 것은 거의 반나절 뒤였다.

“정신이 들어?”

“예? 네.”

아직도 비몽사몽 오락가락하는 유미였다. 그나마 큰 부작용 없이 변이가 끝난 것 같았다.

“기분이 어때?”

“이제 좋아졌어요.”

내가 변이에 성공했으니 내 피를 먹고 산 유미도 성공확률이 높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미가 정신을 잃자, 정말 가슴이 철렁했었다.

“힘은? 몸에 힘이 들어가? 다른 힘이 생긴 것 같아?”

“아직 잘 모르겠어요.”

발화 능력을 얻었다면 좋았을 것을 유미는 완력을 얻었다. 기존에도 약하지 않은 완력이었는데 완력이 더 강해져서 이제는 자동차도 혼자서 번쩍번쩍 들 정도로 힘이 세졌다. 유미는 변한 자신이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유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서열 싸움에서 이기면 뭔가가 변하는 것이 분명했다. 일단 유미도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빗치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 존재였다. 그러니 서열 싸움에서 이기면 뭔가 또 다른 변화가 생길지 몰랐다.

“서열전을 해야 둘을 잡을 수 있는데 괜찮겠어?”

“할 수 있어요.”

먼저 미희를 회복시켰다. 미희는 맨홀 변종에게서 완력을 얻었기 때문에 유미가 유리한 상대였기 때문이다.

“또. 하려고?”

으적으적 씹어 먹으며 상처를 회복하던 미희가 또 때리려고 하냐고 물었다.

“아니. 일단 먹고 이야기하지.”

“웃기지 마. 저런 비리비리한 년 밑으로 들어갈 바에야 혀 깨물고 죽겠어.”

유미에게 두들겨 맞았던 상처들이 회복되면서 힘이 돌아왔는지 전신을 묶은 굵은 쇠사슬을 뜯어내며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는 미희였다. 하지만 이미 인아의 슬레이브 18명과 나까지 주변을 포위한 상태. 미희는 사방을 둘러보고는 비릿하게 말했다.

“이제는 공개적으로 두들겨 패겠다는 건가? 구경꾼이 많기도 하네. 흥.”

“제안하지. 유미와 1:1로 싸워서 이기면 네 마음대로 해라. 잡지 않겠다. 하지만 네가 진다면 아래에 들어와야겠어.”

“흥. 말귀를 못 알아듣네. 서열을 여자끼리만 만들 수 있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 그거 떼어 버릴 건가?”

“내가 싸우는 게 아니다.”

유미가 앞으로 나섰다. 유미를 보는 순간 미희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까드득! 어금니 가는 소리를 낸 미희가 날 노려봤다.

“일대 일이라고 했지.”

“그래.”

“내가 이기면?”

“자유다.”

미희의 시선이 나에게서 유미로 넘어갔다.

“크흣! 그래? 좋아. 언제 시작하지?”

“지금.”

내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미희의 몸이 폭탄처럼 유미를 향해 날아갔다. 온 전신의 힘을 다해 유미의 얼굴을 향해 내지르는 주먹. 한 방에 유미의 머리통을 터뜨려 버리겠다는 일념이 담긴 주먹이었다.

“저런 미친.”

자유를 준다고 했더니 죽여 버릴 심산이었다. 다짜고짜 저런 공격을 하다니. 유미의 머리통이 뒤로 젖혀지는 것과 동시에 유미의 주먹은 미희의 복부를 두들겼다.

뻐엉!

유미의 주먹에 맞은 미희의 복부가 터져나갔다.

“마. 맙소사.”

유미를 걱정하던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복부를 터트린 유미의 주먹은 미희의 몸통을 절반으로 갈라버렸다.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나눠진 미희의 몸이 허공에 떠오르며 내장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후두두둑!

안면이 함몰되고 목뼈가 부러졌던 유미의 얼굴이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처럼 순식간에 재생됐다. 본래 가지고 있던 급속 재생 능력은 더 괴물 같이 변했다. 미희는 두동간이 난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눈을 깜박거렸다. 그런 미희의 머리통에 유미가 발을 얹었다.

“죽을래. 살래.”

미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발에 힘을 주는 유미였다.

으지지직-

내가 유미를 말리려는 순간, 미희가 눈을 감았다. 졌다는 표시였다.

“헤헤헷. 잘했죠? 저 이겼어요.”

칭찬해 달라는 것처럼 달려오는 유미를 보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미희는 거의 죽었다고 봐야 했다. 아무리 재생능력이 있는 빗치라고 하더라도 토막이 난 걸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아니 방법이 없지는 않지만.’

유미를 소생시켰던 방법은 내 피를 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유미처럼 될지도 몰랐다. 내 생각을 알아챘는지 유미가 말했다.

“피를 뿌리면 되잖아요.”

“내 피를?”

“아니요. 제 피요.”

“그래도 되겠어?”

“이제 제 부하인데요. 뭐.”

토막 난 상반신과 하반신을 대충 맞춰둔 미희에게 다가간 유미가 자신의 팔뚝에서 피를 흘려보냈다.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미희의 육신이 유미의 피를 머금고 재생되기 시작했다.

*

불꽃을 다루는 빗치도 순식간에 정리해 버린 유미였다. 내가 불에 내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내성을 유미도 어느 정도 얻었는지 불꽃에 휩싸인 채로 달려들어, 딱 한 방에 박살내버렸다.

“무슨 주먹 한 방으로.”

보고도 어이가 없었다. 주먹의 펀치력으로만 따지자면 나보다도 강해 보였다. 중첩효과가라도 받은 걸까 싶을 정도였다. 내 황당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미는 기분 좋게 웃었다. 화상을 입은 전신이 순식간에 재생이 되면서 다시 뽀얀 피부로 되돌아갔다.

“헤헤헤.”

서열 전의 핵심은 죽기 직전까지 모는 게 아니었다. 거진 죽은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었다. 유미의 피를 통해 되살아난 애들이 유미처럼 피만 먹게 변하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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