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 진화 (1)
폭발음을 들어보니 제대로 터진 것 같았다. 한 방 먹였다는 정신적 충족감에서 오는 달콤함. 그 뒤를 따르는 씁쓸함과 걱정. 연방과 척을 지기는 했지만, 이렇게 거하게 일을 치러버리면 뒤가 없었다.
‘하긴, 언제 뒤가 있었다고.’
연방이든 동맹이든 뒤를 남겨줄 생각이 없는 것들이었다. 뒤는 내가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예전이든 지금이든 약자는 뒤가 없는 법. 등 뒤에 절벽을 두고 죽기 살기로 싸워야 그나마 살아날 확률이 있었다.
선빵을 날렸으니 끝까지 가야 했다. 토우 미사일과 바주카포 그리고 중기관총을 설치한 곳으로 유인을 시작했다. 미희와 빗치들에게 찌르고 빠지라고 했다. 타격조는 본디 빗치와 변종을 잡으려는 놈들이었다. 일반인들보다 빗치를 미끼로 흔들면 조건반사적으로 달려들 것이다.
“안으로 유인해. 깊게 유인한 뒤 빠진다.”
[치지지직- 예.]
예상대로였다. 폭탄이 터진 곳이 지휘부였는지 유기적인 움직임을 잃은 모습이었다. 아마도 공격 명령을 내린 뒤, 추가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명령을 그대로 지속한다는 것은 타격조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공격 명령이 있었고, 빗치들이 보였다. 처음 명령대로 공격하되, 빗치들을 우선 잡으려고 했다.
일반병력보다 빗치들이 위험했기 때문에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타격부대는 빗치들을 잡기 위해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타격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빼곡한 총구와 바주카포, 클레이모어였다.
쾅!
유탄 발사기에서 발사된 유탄이 터졌고, 바주카포에서 로켓탄이 날아갔다. 클레이모어가 사방에서 터져 폭풍처럼 타격조를 쓸어버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적의 피해가 미미했다.
스펙을 쓰는 타격부대의 능력은 생각보다 뛰어났다. 일반인의 육체능력을 1이라고 했을 때, 스팩을 사용하는 타격부대원의 능력은 1.3 정도였다. 두 번을 연속해서 맞으면 1.5~1.8까지 올라갔다.
단순히 일반인 전투력 2배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수와 다수의 접전. 그것도 시가전의 양상을 띤 교전이 이어지자 예상외의 결과가 생겼다. 기습적으로 공격했던 첫 교전을 제외하면, 계속 뒤로 밀렸다.
[치직- 적이 근거리까지 접근했습니다. 전선을 유지할까요?]
근접전이 벌어지면 순식간에 밀릴 가능성이 있었다. 일반인은 팔다리에 총탄이 스쳐도 전투력이 급감하지만 뽕 맞은 타격조는 어지간한 총상은 무시하고 달려들 것이다. 게다가 무장의 차이도 현격했다.
놈들은 방탄/방검복에 방탄 헬멧까지 입고 있는 데 반해, 이쪽은 말 그대로 민병대였다. 근접전은 피하는 게 맞았다.
“순차적으로 뒤로 빠진다. 토우 미사일을 설치한 곳까지 빠지고 클레이모어와 지뢰를 이용해 전진을 늦춘다.”
[알겠습니다.]
안승현에게 명령을 내리고 기다렸다. 인아가 탐지 능력을 가진 슬레이브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고 페니를 찾으면 좋겠지만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계속 기다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인아가 이제까지 장악한 슬레이브의 숫자는 18명.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18명이라면 일반인 100명에 필적하는 전력이었다. 슬레이브들이 열화된 빗치라고 하더라도 소구경화기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뛰어난 육체능력에 5.56mm탄을 무시하는 내구력. 지속적으로 맞으면 칼로리 소모로 인해 위험하겠지만, 짧은 시간 난전을 벌이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니 인아와 슬레이브들이 적의 퇴각로 차단에 성공한다면, 궤멸 시킬 수 있었다.
인아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괜찮겠어?”
[네- 치직- 탐지능력이 있는 아이는 실패했어요.]
감염 장악이 100% 확률로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지. 저쪽은 빗치와 변종을 잡는데 특화된 특수부대야.”
[천적인가요?]
“슬레이브들을 무장시켜. 어차피 사격술이나 그런 쪽으로는 기대하기 힘드니까 칼이라도 좋고 둔기라도 좋으니까.”
[방패하고 창을 쓸게요.]
일전에 나와 유미가 쓰려고 만들어둔 창과 방패, 메이스를 말하는 인아였다.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조심하고 되도록 뒤에 빠져있어.”
[알겠어요.]
무운을 빌었다.
멀리서 총소리와 폭발음이 점차 심해졌다. 그렇게 날이 저물었다.
*
결과는 압승이었다. 희생자가 없지는 않았지만, 연방의 타격부대는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봤다. 말 그대로 우리의 압승이었다.
폐허가 된 시가지. 건물과 도로에는 연방의 옷을 입은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사람들이 시체에서 쓸 만한 것들을 벗겨내고 있었다.
“시체는 어떻게 할까요?”
“한쪽으로 쌓아둬요.”
이제는 시체도 자원이었다. 인아도 슬레이브들도 그냥 굴러가는 게 아니었다. 인육이 가장 효율이 높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너희도 수고했어.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먹도록 해. 손질도 해서 챙겨 놓고.”
미희와 빗치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동맹과 연방의 주요 전장은 일진일퇴를 반복하고 있었고, 충분히 밀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가 밀리지 않자 양측 모두 이쪽을 경계만 했지 추가 병력을 보내지는 않고 있었다.
동맹과 연방 모두 생각외의 손해를 입었다. 동맹은 우리를 흡수한 뒤, 그 여세를 몰아 연방을 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신형 AWS만 넘겨준 꼴이 됐다.
연방의 피해는 더 심각했다. 유미를 포획하기 위해 보낸 부대도 전멸했고, 이어서 타격부대가 총동원된 싸움에서도 졌다. 두 차례에 걸친 작전 실패로 인해 실질적 여유 병력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렇겠죠? 설마 그렇게 데였는데 또 쳐들어올까요?”
유미가 이주 준비를 하면서 머뭇거렸다.
“또 쳐들어온다.”
“그렇게 당하고도요? 예비 병력이 없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지금 둘이 싸우고 있는데 여기를 또 공격한다고요?”
“그래.”
“......”
내 감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것은 위험하고 계속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나올까?’
지원군으로 동맹 측에 들어간 최필도를 귀환시키면서 수작을 부릴 가능성이 있었다. 지원군으로 나갔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AWS의 링커로 만들어 돌려보낼 수도 있었다. 돌아오는 자들을 뚜렷한 이유 없이 격리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하죠?”
“돌아온다면 미희나 인아에게 뒤처리를 맡겨야지.”
사람들이 모르게 없애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과잉대응일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동맹 측과 사이가 틀어진 지금, 멀쩡히 돌아오는 자들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설령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알아.”
단순히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원군으로 나갔던 자들의 가족들 입장에서 보자면 난 미친놈에 살인마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사실 여부를 떠나서 결과만 본다면 반대파를 숙청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방법이 없단 말인가?’
최필도를 비롯한 온건파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기존의 질서, 도덕, 가치관을 대표하는 자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배제한다는 것은 결국, 기존의 가치관을 배제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끌어안고 가려고 했지만 내 능력으로는 힘들었다. 내 우울한 표정을 보곤 유미가 손을 잡아줬다.
“어쩔 수 없네요.”
유미는 이주하는 것을 싫어라 했다. 유미뿐만 아니라 인아와 미희를 비롯한 빗치들은 자리를 잡은 곳에서 떠나는 것을 싫어했다.
“떠나지 않으면 동맹은 계속 이곳을 찔러볼 거야.”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유미였다. 동맹이 원하는 것은 이곳의 세력이었다. 천 명이 넘는 세력 그 자체를 원하기도 했지만, 예지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나를 포획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손해만 본 동맹이 그냥 물러설 가능성은 없었다.
“연방이 있는 데도요?”
“이번 전투가 끝나면 중부지역의 주도권을 동맹 측이 잡게 될 가능성이 커.”
“휴- 그럼 동맹만 막으면 되는 건가요? 차라리 이번에는 동맹의 힘을 빼는 쪽으로 움직이면 되잖아요.”
“그것도 불가능해. 연방에게 한 방 먹였으니, 연방도 이를 갈고 있을 거다. 연방이 동맹을 공격하지 않고 우리를 공격하면 이쪽만 샌드위치가 될 거야.”
연방이 우리에게 본 피해가 생각보다 컸다. 그러니 오래지 않아 뭔가 해올 가능성이 컸다.
“그럼 어떻게 하시게요?”
“떠나야지.”
“차라리 싸우는 게 낫지 않을까요?”
“탄약이 없어서 불가능해. 너와 인아, 미희를 비롯한 슬레이브와 빗치만으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야.”
유미의 말도 일리 없는 건 아니었다. 이래도 위험하고 저래도 위험하다면 그냥 죽자고 싸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크게 한 방 먹이고 장렬하게 산화하는 것도 방법이기는 했다.
“우리의 목적이 뭐라고 했지?”
“생존과 번영이요.”
“그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탈출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네? 방법이 있어요?”
안전을 확보할 방법이 있기는 있었다. 위험하긴 했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
인아가 물어서 감염시키는 것을 보면 일정한 확률이 있었다. 물었다고 전부 감염시켜 장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또 먹는다고 전부 진화하는 것도 아니었다.
발현 확률이 낮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건 확률이 낮다는 것이었지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섭식 진화에 대한 것을 전혀 모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 진화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연방에서는 탐지 능력이 있는 꼬마 슬레이브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럼 왜 하필 탐지능력일까? 더 강맹한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이 있는 슬레이브를 만들었을 것이다. 연방이 유미를 포획하는 데 혈안이 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어찌 됐든 저쪽에서 불을 다루는 능력이나, 인아처럼 다른 슬레이브를 감염시켜 일종의 권속으로 만드는 능력을 가진 AWS는 없었다.
그에 비해 나에게는 맨홀 변종의 사체가 있었다.
“그렇군요. 그래서요?”
미희가 내 설명을 듣고는 나를 보고 변종 맨홀의 시체를 바라봤다. 꽁꽁 얼려놨던 맨홀 변종의 시체는 알맞게 해동된 상태였다. 인아는 살포시 인상을 쓰고 있었다.
“설마 빗치들에게 사체를 넘길 생각을 하시는 건가요?”
“그래.”
내 대답에 유미와 인아가 동시에 말했다.
“제가 먹겠어요.”
“차라리 제가 먹을래요.”
유미는 내 피만 먹었다. 내 피만 먹는 것과 내 피만 먹을 수 있는 것은 다른 의미였다. 이제까지 내 피만 먹던 유미가 갑자기 맨홀 변종을 먹겠다고 하자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먹겠다고 말해 놓고도 주저주저하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 것을 보니, 미희와 빗치들에게 주기 싫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았다.
“혹시라도 섭식 진화가 잘되면 모르지만 실패하면?”
“네?”
“가능성의 문제다.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소리지.”
“......”
“......”
진화의 결과가 항상 좋은 쪽으로만 간다는 보장이 없었다. 기형적으로 발현할 가능성도 있었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능력이 무너질 위험도 있었다. 지금 인아가 감염 시킨 뒤, 장악하는 능력이 변질될 위험이 있다면 먹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건 유미도 마찬가지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내 피를 먹고 급속재생능력을 얻게 된 유미가 불꽃의 능력까지 가지면 좋겠지만, 문제가 생길 위험도 있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먹을 필요가 있을까?
“과연 도박이란 말입니까?”
“그래. 실패할 확률도 있고, 부정적 결과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미희와 빗치들이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맨홀 변종의 사체를 보고 침을 꼴깍 삼키더니 내 이야기를 듣고는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런 능력이 없으면 부작용 걱정이 덜하다는 말씀이군요.”
“솔직하게 말하면 확신은 없어. 다만 인아가 능력을 얻게 된 것을 따져보자면 그렇다는 거야.”
“저쪽도 섭식 진화를 했다는 말입니까?”
“그래. 링커의 시체를 먹고 능력이 개화했지.”
“그럼 이 사체를 주는 것도 섭식 진화를 할 수 있나 실험하기 위해서라고...”
“실험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원하지 않으면 먹지 않으면 그만이야. 말했지만 힘을 얻는 것도 너희들이고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도 너희다. 강제하는 사람은 없어. 내가 아는 것을 말했고 결정은 너희 몫이다.”
미희와 빗치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더니 한 빗치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이렇게 전부 이야기하는 이유가 뭐죠?”
“말했지? 내가 먼저 너희를 버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현재 상황은 상당히 심각해. 연방과 동맹 양쪽에서 우릴 노리고 있다, 전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게 위험한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시도해 봐야 할 상황이야.”
“차라리 대표가 먹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나도 먹을 생각이다.”
“아저씨!”
“무슨 소리여요!”
유미와 인아가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거 먹으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고 했잖아요. 이제까지 안 먹다가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래요. 지금 그대로가 좋아요.”
두려웠다. 스스로가 특이한 변종이라고 인정했지만 사람을 먹는 괴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주한다고 끝일까? 연방이든 동맹이든 계속 추격을 할 것이고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연방이나 동맹이 함부로 찔러보기 힘들 정도로 큰 세력이 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라도 힘이 있어야 했다. 이성이 있는 빗치나 변종을 포섭하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변종이나 빗치들은 대부분 약육강식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미희와 빗치들도 마찬가지였다. 맨 처음 미희를 만났을 때 내가 미희를 제압하지 못했다면? 이야기는 고사하고 살아남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겼기 때문에 대화할 수 있었다. 이성을 가지고 있는 미희가 그런 판국에 특수한 능력이 있는 빗치나 변종과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위기감응으로는 도망칠 수 있었다. 공격을 회피할 수는 있었지만 공격능력이 부족했다.
언제까지 스펙만 맞을 것인가? 스펙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중화제에 대한 내성도 같이 올라가고 있었다. 결국에는 파국만 있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도박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지금 하는 것이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