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렬 (2)
총소리와 클레이모어가 터지는 소리가 점점 뒤로 후퇴하고 있었다. 본진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뒤쪽으로 밀리고 있다는 의미. 사상자가 더 생기기 전에 돌입하는 게 좋았다.
인아와 슬레이브들, 미희와 빗치들이 벽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밖에 있는 저격수와 전파교란 장치를 처리하러 이동했다.
먼저 보냈던 슬레이브 둘에게서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그쪽도 전파교란 장치 인근에서 교착된 상태 같았다.
“쯧-”
통신이 두절된 상태다 보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 갑갑했다.
-욱신.
직선의 살의가 느껴졌다.
고개를 꺾자 탄환이 스치고 지나갔다.
저격수?
슬레이브 둘이 움직이고 있으니, 여기서 위에 있는 놈들의 시선을 끌면 됐다. 총알을 피하면서 계속 접근하자 건물 1층과 2층에 있는 놈들이 발광했다.
“죽여!”
“쏘라고! 쏴!”
투두두두둑!
흔들리는 총구가 느껴졌다. 예전 같았다면 엄폐물 뒤에서 숨어있었을 것을 지금은 시선을 끌어야 했기 때문에 미친 짓을 해야 했다.
“쏘라고. 병신 새끼들이!”
“저걸 왜 못 맞혀!”
“씨발!”
총탄이 마치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 총구의 떨림과 고함소리가 길게 늘어나는 것 같았다.
-욱신 심장이 내리눌렸다.
수류탄인가?
빗치나 변종과는 달리 총화기에 취약한 피부를 가졌기에 수류탄은 위험했다. 너무 성급했는지 그냥 수류탄을 던지는 놈들이었다.
툭!
데구르르 굴러오는 수류탄을 발로 걷어찼고 공중에서 날아오는 수류탄은 야구공 때리듯 때려버렸다.
깡!
“으악!”
“미친!”
수류탄이 안쪽에서 터지면서 앞에서 알짱거리던 놈들이 죽어 나갔다. 2층에서 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계속 견제를 했지만 그게 내 목적이었다.
그렇게 대치하는 동안 뒤편으로 올라간 슬레이브들이 저격수와 전파교란 장치를 파괴하는데 성공했다.
잡음만 나왔던 리시버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치직- 장치를 파괴했습니다.]
뒤쪽으로 보낸 슬레이브들이었다.
*
맨 처음부터 같이 움직였던 슬레이브 둘 가운데 하나는 죽었고 나머지 하나도 전투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전파교란 장치를 박살냈다는 것이다. 옥상을 장악했으니 2층에서 견제하던 놈들을 잡는 건 순식간이었다.
자신들이 던진 수류탄에 곤죽이 된 시체들이 1층에 널려있었다. 시체를 피해 곧바로 2층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다시 콕콕 뭔가가 심장을 찔렀다. 자세히 살펴보니 클레이모어와 수류탄을 엮어 만든 부비트랩이 계단에 빼곡하게 붙어있었다.
탕! 총으로 선을 잘라내고 위로 올라갔다. 계단을 날듯 뛰어 올라가자 한 놈이 기폭장치를 콱콱 누르며 어째서 터지지 않느냐는 것처럼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기폭장치를 나에게 집어 던지고는 곧바로 옆에 있던 주사기를 자기 목에 박아 넣는 놈이었다.
“이- 새끼가아!”
욕을 하며 주사제를 한 번에 박아 넣고 덤비기 시작했다. 확실히 스펙은 효과가 좋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너 타격조가 아니네.”
“닥쳐라. 괴물 새끼!”
제대로 훈련된 타격조에 비하면 애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스펙을 갑자기 맞아서 그런지 아니면 스펙을 사용한 실전경험이 없는지, 눈이 붉게 충혈된 채 마구잡이로 나이프를 휘두르는 놈이었다.
나이프의 궤도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제대로 훈련받은 타격조의 칼질도 피했는데 이건 뭐 아무것도 아니었다. 깊게 찔러오는 나이프를 살짝 피하면서 그대로 놈의 중심 발을 걷어찼다.
쩍!
로우킥 한 방으로 놈의 정강이뼈를 박살냈다. 스펙의 통증 감소 효과가 있더라도 뼈가 생으로 꺾이는 고통을 참아내기란 불가능했다.
“으악!”
엉거주춤 부러진 다리를 붙잡고 쓰러지는 놈을 마무리하려는 순간. 찌릿한 감각이 심장을 찔렀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압박감. 뒤에 뭔가 있다. 생각과 행동이 동시에 이뤄졌다.
로우킥을 맞고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 놈의 목을 붙잡아 휙-뒤를 막았다.
총소리와 함께 툭!툭! 묵직한 충격이 방패로 삼은 놈의 몸통을 타고 올라왔다. 뒤에서 튀어나온 사람이 총질한 것이다.
회심의 일격이었는지, 내가 동료의 몸을 방패로 삼아 막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사내였다.
“어... 어떻게?”
축 늘어진 고기방패를 던지고 그대로 스트레이트를 때렸다. 고기 방패로 삼았던 놈의 머리통이 진자처럼 움직여 총을 든 놈의 안면을 때렸다.
“크억!”
비명을 지르면서도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사내였다.
두두두둑!
하지만 9mm파라블럼탄을 쓴 K9경기관총은 방탄복을 입은 시체를 관통하지 못했다. 다시 스트레이트를 때려 박았다. 둔탁한 소음과 함께 두개골이 터졌다. 고기방패의 머리통을 박살 낸 주먹이 총질하는 사내의 안면을 함몰시켰다.
6명. 1층에 넷. 2층에 둘이 있었다. 옥상에 넷이나 다섯이 있다는 소리였다. 슬레이브가 모두 전투불능이 됐으니 어찌 됐든 뒷정리는 내가 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슬레이브 둘이 AWS를 정리했다는 것이었다.
죽은 놈들의 무장을 털고 장비를 챙겼다. 주사제를 넣는 총 모양의 주사기가 보였다.
‘어?’
이성그룹 특유의 트윈스타 마크가 없었다. 스펙이 아니란 말인가? 죽은 놈들의 옷을 확인했다. 연방에서 입는 옷이 아니었다. 일반 군복. 일반 군복을 입고 있는 자들은 연방에서 본 기억이 없었다.
‘연방 측에 붙은 놈들인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무장이 빈약했다. 연방의 특징이라면 제대로 된 무장과 10~20년은 앞선 기술력이었다. 연방에게 붙었다면 최소한 스펙에는 이성그룹의 트윈스타 마크가 찍혀 있었어야 했다. 고개를 흔들고 다시 전리품을 챙겼다.
너저분한 군복. 5.56mm 일반탄. 조악한 품질의 방탄복에 일반 군복. 뒤지면 뒤질수록 연방에게 붙은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 방탄복에 군복을 입은 놈들이 떠올랐다. 동맹의 주력부대들이 갖춰 입었던 복식과 똑같았다.
“빌어먹을...”
전파교란 장치를 작동하고 있던 놈들은 인류 연방이 아니라 자유 동맹 측이었다.
*
1층과 2층에는 사체가 많았다. AWS들의 사체였다. 최소한 셋 이상의 AWS가 이곳을 공격했지만 뚫지 못하고 죽었다. 옷은 연방의 AWS들이 입고 있는 검은 잿빛의 옷이었다.
‘연방의 AWS와 동맹 측이 싸웠다?’
동맹이 자리를 잡고 뒤치기를 했고 통신이 두절된 연방이 AWS를 이용해 전파교란 장치를 파괴하려고 했지만 뚫지 못하고 쓸려나갔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연방이 우리 본진을 공격했고, 유미와 이쪽 병력이 막는 동안 동맹이 연방을 뒤에서 때렸다는 소리였다. 중간에 낀 연방이 동맹을 때리려고 했지만 동맹 측에서 AWS까지 동원해 연방의 AWS를 때려잡은 뒤, 우리 본진을 공격했다는 소리였다.
‘전파교란 장치를 미리 설치해 놓고 있었나?’
아마도 수송헬기로 보급했을 때 전파교란 장치까지 설치했을 확률이 높았다.
‘노리고 있었군.’
나와 인아가 조금만 늦게 도착했다면, 전부 죽인 뒤 연방에게 뒤집어씌웠을 것이다.
통신이 회복됐으니 곧바로 본진에 연락했다. 잠시 잡음이 이어졌다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치지지직- 신승현입니다. 대장님이십니까?]
“현재 상황은 어떤가?”
[치직- 유미님께서 AWS들을 유인해 동쪽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신승현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묻어있었다.
“사상자는?”
대략 800명가량 남아있던 사람들이었다.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지만, 최소한 200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치지지직]
“챙길 수 있는 건 전부 챙기도록.”
[치직- 설마 거점을 옮길 생각이십니까?]
“기름을 최대한 많이 챙기도록 하고, 유조차를 구하도록. 자세한 것은 돌아가서 이야기하지.”
[알겠습니다.]
“토우 미사일 여분이 있으면 토우 미사일과 바주카를 챙겨서 동쪽으로 보내도록.”
[넷.]
유미는 통신이 끊겼기 때문인지 무전기를 가져가지 않았다. 유미와 연락을 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연락이 되지 않으니, 내가 직접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가기 전 인아와 연락했다. 인아와 슬레이브들은 교전 중이었다.
[치직- 아- 괜찮아요?]
나에게 붙여준 슬레이브들이 무력화됐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인아가 걱정했다.
“괜찮아. 슬레이브 덕분에 전파교란 장치를 부쉈어. 그쪽은 어때?”
[넷을 더 확보했어요.]
AWS 넷을 더 확보했으면 다시 열 명이 됐다는 소리였다. 슬레이브 열이면 상당한 전력이었다.
“열 명이면 그쪽은 금방 정리하겠는데?”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시간이 걸릴 듯싶어요.]
AWS들도 많이 남았고 병력도 많이 남았다고 했다. 동맹 측이 작정을 했었나보다. 얼추 확인해 본 결과 AWS도 최소 서른 가량 투입됐고, 병력도 300명은 밀어 넣은 것으로 보였다. 이 숫자를 교착 상태인 전선에 연방에 밀어 넣었으면 연방의 방어선도 뚫었을 것이다.
‘뻔히 보이는 짓을.’
아마도 이쪽을 빨리 장악한 뒤, 여기에 있는 사람들까지 전선에 투입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휘부인 유미와 신승현, 안진욱이 있는 중앙을 집요하게 노렸을 것이다.
“무리하지 말고, 위험하게 접근하지 마. 또 뭘 숨겨놨을지 모르니까.”
[알겠어요.]
연방이든 동맹이든 중앙만 노렸기 때문에 잘 막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동맹 놈들이 뒤통수를 친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동맹 놈들이 없었다면 연방이 유미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치직- 뒤에서 공격하니 동맹 측이 퇴각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죠?]
“잡을 수 있을 만큼만 잡도록 해. 절대 무리하지 말고.”
퇴각하는 병력들은 이대로 전선으로 빠질 것이다. 인아와 슬레이브들이 동맹을 차근차근 밀어내 압박했고, 미희와 빗치들은 연방의 AWS들과 싸우면서 상황을 안정시켰다.
나상철과 완전히 틀어졌기 때문에 동맹과도 끝장이었다. 하지만 동맹은 뻔뻔했다. 아마도 이쪽을 공격했던 지휘관이었는데, 다짜고짜 연방에게 공격 받고 있어서 도와줬는데 자신들을 공격한 것이냐고 난리를 쳤다.
뻔히 보이는 수작질이었기 때문에 무시했다. 명분 쌓기. 부하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공격할 명분을 쌓는 짓이었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미희와 빗치들이 유미가 있는 곳과 가까웠지만 유미도 그렇고 빗치들도 서로에게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움직였다.
*
동쪽으로 연방의 AWS를 유인하러 갔다고 하는 단서만 가지고 유미를 찾기란 힘들었다. 벽의 밖으로 유인했을 수도 있고, 아직 안쪽에서 돌고 있을 수도 있었다.
‘무전기를 챙겼어야지.’
다급했으니 그랬겠지만, 아무리 다급했어도 챙길 건 챙겼어야 했다. 정신을 가만히 집중해봤다. 링크가 된 페니는 아직도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사지육신이 멀쩡해서 밖으로 탈출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깔렸었다고 생각했는데,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알아서 탈출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링크한 슬레이브는 이제 페니 하나 남았다. 어떻게든 하나 정도는 유지하고 싶었다.
‘음-’
링크를 통해 페니의 상태가 살짝 흘러들어왔다. 재생을 하기 위해 에너지 소모가 극심했다. 인육이나 변종, 빗치의 사체를 먹지 말라고 금칙사항을 정해놨는데, 지금 상황으로 보자면 유지하기 힘들었다.
AWS든 빗치든 변종이든. 하다못해 나도 허기가 지면 눈이 돌아가는 판이었다. 아무리 링크를 한 슬레이브라고 하더라도 한계를 넘어서면 신체가 붕괴되든지 아니면 먹어야 했다. 페니에게 걸어둔 제한을 일시적으로 풀었다.
‘시체라면 들키지 않게 먹도록.’
페니가 재생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둔 뒤, 유미가 움직였을 법한 곳으로 이동했다.
유미는 내가 가르쳤다. 이동 방법이나 어디로 움직이는 게 좋을지 위치 같은 것을 알려줬었다. 그래서 대략적이나마 유미의 이동선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유미가 이동할 것으로 예측되는 곳을 택해, 12층짜리 건물 옥상에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대로 기다리는 것도 좋았지만 유미가 이 근처로 오도록 유인하는 게 더 확실했다. 나이프를 꺼내 손바닥을 살짝 그었다.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짭짤한 피 냄새가 바람을 하고 사방으로 흩날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 언뜻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유미였다. 유미가 내 피 냄새를 맡고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유미의 옷은 엉망이었다. 거의 헐벗고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뒤로 추격하는 AWS가 보였다.
‘하나. 둘.’
검은색과 잿빛의 복식. 연방의 AWS였다. 중간에 남자 둘이 껴 있었다. 링커로 보였다. 링커의 옷도 검은색과 잿빛이 섞여 있는 옷이었다. 연방이 유미를 노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질기게 추격하다니 치가 떨렸다.
철컥! 바렛의 격철을 잡아당기고 목표를 확인했다.
이제까지와는 달랐다. 기존에는 부작용 때문에 일반인으로 링커를 만들었었는데, 남자들의 옷도 그렇고 AWS들도 그렇고 타격조인 자들을 AWS로 만든 것 같았다.
‘일곱. 여덟. 아홉?’
모두 아홉이나 되는 숫자가 유미를 추격하고 있었다. 남자들도 스펙을 맞았는지 슬레이브들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았다. 남자 둘에 여자 일곱. 남자들은 링커일 테니 하나만 잡아도 넷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후흡. 호흡을 멈추고 남자의 머리통을 겨냥했다.
탕! 12.7mm짜리 열화우라늄탄환이 남자의 머리통을 박살냈다. 동시에 앞장서서 달려가던 슬레이브 셋이 마네킹처럼 굳었다. 달려가다 멈춰 버리자. 관성에 의해 뒤엉켜 쓰러지는 슬레이브들이었다.
다음 먹이를 노리기 위해, 스코프의 좁은 화면으로 주변을 살폈다.
웃는 얼굴이 보였다.
‘응?’
유미의 얼굴. 환하게 웃는 모습이 스코프에 가득 채워졌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