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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155화 (155/261)

폭파 (4)

가정이나 가설이었던 것들이 높은 확률로 현실이 됐다.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도 있었다.

[네? 동맹 측에서 보낸 빗치들과 만났다고요?]

아주 간단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인아는 하필 내가 있는 곳으로 빗치들이 이동했고, 결국 나를 만났다는 것에 불안해했다. 말은 불안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화를 내는 것에 가까웠다.

‘화낼 일은 아닌데.’

사실 나도 그 부분을 조금 의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루트 가운데 가장 안전한 곳으로 움직인다고 가정하면, 내가 있던 곳을 선택할 확률도 없지는 않았다.

궁예의 관심법도 아니고. 선무당이 찍어서 맞추듯 맞아 떨어지는 일에 좋아하고 집착하다 보면, 결국엔 사람을 잡기 마련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다 보면 결국 의심암귀에 빠지게 되기 마련이었다.

“대략적으로 주요 자료만 파괴하려고 했었는데 잘됐지 뭐.”

[그래요.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일단 창고를 털자. 창고를 털고 터뜨리게. 슬레이브를 보내 줘.”

[제가 갈게요.]

“아니, 너는 계속 하던 일을 해야지. 호텔 건물 알지?”

[네.]

“그 호텔 인근으로 슬레이브 넷만 보내. 폭탄은 절반만 챙겨서.”

[알겠어요.]

지하연구시설과 생산시설은 특수부대 빗치들이 폭파한다고 했으니, 나는 창고를 털어먹기로 했다.

*

‘영 찜찜한데.’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지만, 빗치와 변종으로 이뤄진 부대를 버리는 패로 사용한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것뿐이라면 이렇게 찜찜한 느낌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일이 잘 풀리고 있음에도 뭔가 꼬이는 느낌이었다.

간질간질 등판이 가려운데 손이 닿지 않는 것 같았다. 뭔가 문제가 있기는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선무당 사람 잡을 수 있다고 하지만 내 감각을 무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감각이 이렇게 끝나지 않을 거라 속삭이고 있었다. 잘 폭파하고 창고까지 털기로 했는데 이게 끝이 아니라니? 그럼 뭐가 어떻게 꼬인다는 거지? 감각을 자극하는 것을 추론하다 보니 속이 답답해졌다.

콰아아아앙!

갑갑한 속을 뻥 터뜨리는 것처럼 폭음이 들렸다.

인아와 슬레이브들이 깔아놓은 시한폭탄들이 재깍재깍 터지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경비들은 매뉴얼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또 터졌어.”

“연쇄 폭발이다. 시간폭탄으로 테러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할까요?”

“코드 레드 상황이다. 매뉴얼대로 간다.”

통신기를 들고 있는 통신병은 ‘코드 레드’라는 말을 반복했다.

“각자 자리를 지키고 2인 1조로 묶어 움직인다. 처음 폭탄이 터진 구역을 기준으로 구별로 수색해!”

“알겠습니다.”

“CCTV전부 돌리고. 개미 새끼 하나 지나가지 못하게 하란 말이야.”

장근태로 침입했을 때, 모텔에는 경비대가 있었고 호텔은 타격조가 사용했었다. 타격조가 있는 호텔 인근에 물류창고가 있었다. 그곳에는 무기와 스펙들이 쌓여 있었다. 안경을 낀 프런트 직원이 떠올랐다.

여기저기 터졌으니 창고의 경비도 삼엄해졌을 것이다. 인아가 보낸 슬레이브들이 도착했다. 내가 링크를 걸고 한 참이 지나서야 자율행동을 했었던 것에 비해, 인아가 감염시켜 장악한 슬레이브들은 상당히 빨리 자율행동을 시작했다.

인형처럼 조금 딱딱했던 행동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았음에도 훨씬 자연스럽게 변해있었다. 마치 슬레이브가 되기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인아가 보내준 슬레이브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잠시 당황하고 있는데,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주인님께서 명령에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편하게 명령해 주세요.”

넷 가운데 하나가 대표로 말했다.

“그래. 잘 부탁해. 우선 경비대의 머리를 친다.”

“알겠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슬레이브들의 반응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의심스러웠다. 해서 즉석에서 작전을 바꿔봤다. 하지만 슬레이브들은 즉석에서 변한 작전에도 잘 따랐다. 인아의 감염, 장악이 슬레이브화 시키는 약물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게 확실했다.

슬레이브들은 AWS를 의미하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여기저기 피가 묻어있었지만, 이성그룹을 표시하는 트윈스타 로고는 깨끗했다. 척 봐도 AWS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가서 폭탄을 설치해.”

“알겠습니다.”

자연스럽지만 명령에 대해서는 절대적이었다. 인아가 내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르라고 했던 것이 제대로 먹히고 있었다.

“좋아. 경비대 중추는 1층 상황실이다. 너는 거기를 터뜨려.”

시간을 맞춰 움직이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슬레이브 둘을 타격조가 쓰는 호텔 프론트와 타격조 대장이 있는 곳으로 각각 보냈다. 4곳에서 동시에 폭발이 일어나면 창고를 공격해도 제대로 막지 못할 것이다.

잠시 뒤 거의 연속적으로 폭발음이 터졌다.

쾅! 쾅! 콰콰콰쾅!

셋은 성공했고 하나는 실패했다. 실패한 쪽은 타격조 대장이 있는 곳을 터뜨리기로 한 방향이었다. 미련 없이 원격 기폭장치를 눌렀다.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터지지 않고 있던 폭탄이 터졌다.

원격기폭장치를 던지는 것과 동시에 창고에 있는 경비 둘을 공격했다.

툭! 퓨듁!

낮고 묵직한 소리가 소음이 달린 권총에서 새나왔다. 한 명당 두 발씩 머리에 박아 넣고 곧바로 CCTV를 무력화시켰다. 창고는 굳게 닫혀있었다. 비밀번호와 지문인식 방식의 잠금장치였다.

“젠장.”

비밀번호와 지문인식을 찾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대로 문짝을 날려버리고 들어가자 하얀 금속 상자들과 차곡차곡 쌓여있는 여러 물품들이 나를 반겼다. 문을 폭파시키면서 문 근처에 있는 것들이 많이 망가졌지만 안에는 충분히 많은 물품이 쌓여있었다.

스펙 1과 스펙 2의 알맹이만 꺼내, 타격조들이 사용하는 배낭에 쑤셔 넣었다. 하얀색 상자는 분명히 AWS를 만드는 약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종구가 들고 있던 상자였다. 그것도 몇 상자를 챙겼다. 열심히 창고를 털고 있을 때, 인아가 보내준 슬레이브들이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는 밖에 망보고, 나머지는 각자 하나씩 들고 나가.”

“예.”

슬레이브 가운데 하나는 한쪽 팔이 완전히 뜯긴 상태였다. 타격조 대장이 있는 곳으로 갔던 슬레이브였다. 원격기폭 장치로 터뜨렸는데 용하게 살아서 돌아왔다.

아마도 생포되려는 찰라, 원격기폭장치로 터뜨려 빠져나온 것 같았다. 슬레이브라고 하더라도 열화된 빗치였다. 인아에게 감염된 AWS는 빗치에 가깝게 변했다. 그러니 팔이 뜯겼다고 하더라도 살아남는 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격조 대장이라면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타격조 대장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 폭탄 설치해.”

“알겠습니다.”

창고가 컸지만 빈곳이 많았다. 생산 시설을 풀로 돌리고 있지 못하다는 소리였다. 타격조 대장과 경비대 대장을 테러한 것은 효과가 좋았다. 특히 경비대 상황실을 터뜨렸기 때문에 CCTV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슬레이브들은 알아서 척척 사주경계를 하면서 움직였다. 내가 강제로 링크 했던 세 여자보다 인아가 감염시킨 슬레이브들의 움직임이 더 좋게 느껴질 정도였다. 돌아가면 인아의 감염 메커니즘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탈출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소리였다. 어둠을 틈타 움직이는 인아와 슬레이브들을 잡기란 불가능했다.

“7~8분 뒤 도착해. 동맹 측 빗치들은?”

[치직- 아직 연락이 없어요.]

“그래? 탈출 준비해놓고 있어.”

[네.]

시간이 되면 냉정하게 출발해야 했다.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거하게 폭발이 일어났어야 하는데 조용했다.

‘실패인가?’

빗치들이 실패했을 수도 있었다. 혹시 몰라 C4와 기폭장치를 챙겨오기는 했지만 동맹 측 빗치들이 맡은 장소로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전방에 경비대 두 명이 있습니다.”

짧게 수신호를 알려줬다. 슬레이브들은 금방 배웠다.

[오른쪽 코너]

[2명]

[접근 중]

[소리 나지 않게]

[처리해]

끄덕

슬레이브 둘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고양이처럼 움직였다. 마치 양손으로 박수를 치는 것처럼 동시에 움직이는 슬레이브들. 경비대는 방아쇠를 당기지도 못하고 목이 꺾였다.

풀썩!

경비대의 몸뚱이가 낮은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이번에 두 명을 합하면 벌써 여섯을 죽였다.

[전방 이상 무]

순식간에 경비대의 목을 비틀어버린 슬레이브가 수신호를 보냈다. 경비대의 움직임이 신경 쓰였다.

느린 반응속도. 단순한 일반인들의 반응속도였다.

스펙을 쓰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왜 쓰지 않았지?’ 경비대는 스펙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목숨이 달린 상황이거나 위급한 상황이라면 스펙을 사용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쪽으로 생각이 돌아가자 여러 가지 위화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방에서 테러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스펙을 쓰지 않고 있다? 정상이 아니었다.

작정하고 몰래 다니는 빗치급 슬레이브들을 일반인들이 잡기란 힘들었다. 그렇다면 저쪽도 생각이 있다면 AWS를 써야 했다. AWS들이 경비를 서고 수색을 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이는 자들은 전부 일반인들이었다.

AWS가 없다? 그럼 어디 갔을까?

“이런 젠장.”

콰아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바닥이 흔들렸다. 지하 연구실을 폭파하겠다고 했던 빗치들이 성공한 것 같았다. 이제 탈출하면 그만이었다. 슬레이브들을 데리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맨 앞에 있던 슬레이브가 수신호를 보냈다.

[전방에 적]

[검은 옷]

[한 명]

[중무장]

검은 옷이라면 타격조였다. 타격조가 왜 여기에? 그래도 혼자였다.

[조용히]

[처리]

슬레이브 둘이 좌우로 동시에 공격했다. 타다다당! 경비대와는 달리, 스펙에 절어 있는 타격조라 그런지 순식간에 반응했다. 귀에 꽂은 리시버로 들리는 소리. 고주파 호루라기 소리였다.

“빌어먹을!”

타격조는 입에 고주파 피리를 물고 있었다. 우리가 이동하는 경로가 들켰다고 봐야했다.

“통로를 폭파시킨다.”

[네? 그럼 어떻게 합류하려고요?]

“합류하면 좋겠지만 힘들게 됐어. 각자 탈출하는 거로 하자.”

[그렇지만.]

인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동맹 측 빗치들과 합류시간까지 기다린 뒤, 정시에 바로 출발해. 나는 이쪽에서 바로 탈출할 테니.”

[알겠어요. 조심해요. 그럼 어디서 만나죠?]

“탈출하는데 성공하면 곧바로 본진으로 이동해. 아마 공격 받고 있을 거야.”

[본진이요?]

“아마도.”

연방 내부에 AWS가 너무 없었다. 아마도 가용 병력 전부를 외부로 돌렸을 것이다. 힘과 힘이 충돌하는 전선에 투입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고래 싸움에 낀 새우인 우리 쪽에 불똥이 튀었을 가능성도 컸다.

그러고 보면 옐로우 플래그도 너무 쉽게 공격할 수 있었다. 물고 물리는 상황에서, 동맹과 연방이 서로 주고받고 하는 중이었다. 복잡했다.

동맹 측이 빗치와 변종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를 버리는 패로 쓴다는 것은 AWS에 준하는 뭔가를 만들었다는 소리였다.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보냈어.’

게다가. 안쪽으로 들어와 보니, AWS의 숫자가 너무 없었다. AWS가 대거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소리였다. 동맹으로 갔거나 아니면 유미가 방어하고 있는 본진으로 갔을 가능성이 있었다.

‘유미 혼자서 막기는 벅차.’

인아였다면 감염을 시켜 슬레이브들의 숫자를 늘렸겠지만 유미는 아니었다.

옥상에 올라보니, 서치라이트가 사방을 휘젓고 있었다. 패러글라이더로 침투했다는 것이 들킨 것 같았다. 방법이 없었다. 슬레이브들에게 C4에 기폭장치를 박아 건네줬다.

“아래로 던져.”

“네.”

폭격을 하는 것처럼 사방을 불바다로 만들며 이동하면 조금이나마 탈출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탈출이 시작됐다.

*

처음에는 탈출에 큰 문제가 없었다. C4로 폭격을 하면서 움직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금방 악화됐다.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예광탄의 불꽃이 사방으로 뻗어갔다.

두두두둑!

굵직한 소리와 함께 아파치에 달린 총구에서 불꽃이 뿜어졌다. 패러글라이더로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순식간에 슬레이브 둘이 공중에서 갈기갈기 찢겼다. 그나마 김경태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김경태로 하여금 신궁을 쏘라고 했다.

[사거리 밖입니다.]

“지금 쏴!”

사정거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상황에서 신궁을 쏘자. 아파치는 플레어를 쏘며 회피기동을 했다. 너무 먼 거리에서 신궁을 쐈기 때문인지 아파치를 격추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패러글라이딩으로 최대한 멀리 이동했다. 들고 있는 짐도 짐이거니와 지상으로 움직이는 건 너무 힘들었다. 거의 5km가량을 활강하면서 최대한 멀리 움직였다. 인아가 붙여준 슬레이브 넷 가운데 둘이 죽었고 둘이 남았다.

발이 땅에 닫자마자 김경태와 유미에게 연락했다. 김경태는 연락이 됐지만 유미가 있는 본진 쪽은 연결되지 않고 있었다.

“상황은?”

[작전대로 연방의 측면을 공격했지만, 강한 저항에 부딪친 상황입니다.]

밀어 붙일 것처럼 했지만, 결국 전선은 고착화된 상황이라는 소리였다.

“피해는?”

[그나마 깊게 들어가지 않아서 피해가 많지 않지만, 이대로 가면 사상자가 급증할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퇴각합시다.”

[네?]

“동맹 측에게 우리 본진이 공격받고 있다고 말하고. 우리는 바로 퇴각합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김경태를 비롯한 공격부대는 가족이나 애인이 본진에 남아있는 자들이 많았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김경태였다.

“본진과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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