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습 (1)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원은 10명. 게다가 이동 속도도 빨랐다. 3~4분이면 도착했다. 인아가 거의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적들을 보며 말했다.
“어떡하려고? 생각보다 많은데?”
“먼저 숫자를 줄이자.”
“어떻게?”
“내가 저격을 할 테니, 근처에 이걸 깔아둬. 설치 방법은 간단해.”
클레이모어를 설치해 격발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설치할 포인트를 집어주고 바로 내가 잡았던 저격수들이 쓰던 바렛 M82를 겨눴다. 인아에게 설명해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놈들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8명? 둘은 어디 갔어? 뒤로 빠졌나? 옆으로 샜어?’
그 순간 앞쪽으로 달려오는 둘이 보였다. 300m거리가 순식간에 200m로 좁혀졌다. 반사적으로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렸지만 꾹 참았다. AWS라면 12.7mm 탄환에도 어느 정도 내성이 있을 수 있었다.
최악에는 AWS에 스펙을 꽂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가까이 오면 인아가 설치한 클레이모어로 터뜨리면 그만이었다. 찬찬히 뒤에 있는 8명 가운데 맨 앞으로 다가오는 인영을 겨냥했다. 숨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총소리가 났다. 몸통을 겨냥했는데 머리가 터졌다. 정확하게 따지면 왼쪽 광대뼈 부분이 날아갔다. 영점이 맞지 않았다. 살짝 영점을 조정하고 다시 겨눴다. 뒤따라오던 7명은 산개해서 엄폐물 뒤로 숨어있었다. 총알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콰아아앙!
클레이모어가 터지는 소리. 인아가 제대로 격발시켰는지 AWS가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 발에 두 마리를 전부 쓸어버렸다면 이익이었다. 이걸로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클레이모어 파편에 휩쓸려 버둥거리는 동안 인아가 깔끔하게 마무리를 할 것이다.
클레이모어가 터진 것을 확인했는지, 한 놈이 머리를 쏙 내밀었다. 그냥 뒀다. 영점이 완벽하게 맞지 않은 상황이라 헤드샷을 쏘긴 무리였다. 7명 가운데 몇 놈이 앞으로 다가왔다. 무시했다.
다가오는 놈은 인아와 클레이모어가 처리할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딱 2놈만 더 잡자. 그럼 AWS둘에 저격으로 셋을 잡아 다섯을 처리하면 남은 것은 셋. 3:2라면, 놈들이 스펙을 쓰든 뭘 하든 순식간에 잡을 수 있었다.
탕!
철컥!
12.7mm 바렛의 탄환은 얇은 스텐 쓰레기통 뒤로 엄폐했던 사람의 몸통에 구멍을 냈다. 조금씩 접근하던 자들의 몸이 딱 굳었다. 다시 영점을 조절했다. 그래도 확실히 초탄보다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대로 시간을 끈다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포위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적들은 좋든 싫든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AWS 둘을 잡았지만 아직 하나가 남았다. 8명 가운데 셋이 AWS라면 하나는 링커일 것이다. 그럼 4명은 그쪽이고 나머지 4명이 타격조라는 소리였다.
방금 또 한 명이 움직였다. 그냥 뒀다. 2분이 넘게 움직임이 없던 놈들이 서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움직이기 싫다고 버둥거리던 사람을 억지로 밀어낸 느낌으로 한 명이 나왔다. 겁에 질린 듯한 남자가 허겁지겁 자동차를 엄폐물 삼아 몸을 숨겼다.
후- 작게 심호흡을 하고 자동차를 노려봤다.
탕!
대물 저격총이었다. 거기에 철갑탄. 내수용 철판이 12.7mm탄환을 막아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래도 완벽하게 한 방에 죽이지는 못했는지 비명소리가 들리자 앞쪽에 있던 여자가 엄청난 속도로 남자를 향해 움직였다.
운이 좋았다. 총에 맞은 놈이 링커였다. 링커를 지키기 위해 하나 남은 슬레이브가 달려갔다. 다시 한 방으로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는 남자를 침묵시키자. 달리던 슬레이브가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엎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셋이었다. 하지만 타격조는 확실히 달랐다. 슬레이브가 뛰어들어 시선을 뺏는 동안 몸을 숨겼던 셋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링커와 슬레이브에 눈이 팔린 것을 이용해 움직인 것이었다.
“조심해.”
[치직- OK.]
인아가 가볍게 대답했다. 무전을 끊고 10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클레이모어가 터졌다. 하나가 터지고 이윽고 순식간에 두 번째가 터졌다.
이어지는 총소리. 계단을 사이에 두고 총격전이 벌어졌다.
콰아아앙!
마지막 남은 클레이모어가 터지는 소리와 다시 시작되는 총소리를 뒤로하고 인아가 올라왔다. 머리에 내려앉은 먼지와 콘크리트 가루를 손으로 털털 털어낸 인아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먼저 빠져나간 놈들도 이쪽으로 오고 있었어.”
“박격포를 뺏으려는 건가? 박격포를 뺏는다고 해봐야...”
81mm 박격포를 뺏어 2차 방어선을 뚫어버릴 생각이거나, 아니면 벽을 무너뜨려 좀비들을 끌고 들어올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차피 탈출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난전을 벌일 속셈으로 보였다.
대응이 좋았지만 늦었다. 대물 저격총도 없고 유탄 발사기나 중기관총도 잘해야 한두 정이나 있을까? AWS를 이용해 뚫으려고 했겠지만, 이쪽에 인아가 있는 이상 저쪽은 힘들었다.
“무는데 제한 있어?”
“또 물라고?”
“그러니까 묻는 거잖아. 물어도 괜찮으면 여기서 숫자를 늘려보자는 거지.”
“......”
인아가 살짝 인상을 썼다. 말하기 힘든 제한일까? ‘무-’하고 울부짖었던 변종을 잃었을 때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었었을까? 인아는 모르겠지만 나는 좀 그랬다. 링크의 경우 정신적으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둘이 죽었을 때, 뭔가 상실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을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정신 건강상 좋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내 경우고 인아는 다를지도 몰랐다.
“꺼려지는 부분이 있으면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일단 올라오는 놈들부터 정리하도록 하자.”
“포로는?”
“포로보다는 물어서 장악했으면 좋겠는데. 일단 그것도 나중에 잡아놓고 생각해 보자.”
“알았어.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야.”
무전기를 들었다.
“신승현 조장. 박격포 2문을 미끼로 삼습니다. 놈들이 박격포를 탈취하려고 하면, 날려버리도록 하세요.”
[치직-알겠습니다.]
박격포 2문이 아깝지만, 2문으로 타격조를 쓸어버릴 수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타격조만 잡으면 나머지는 금방이었다.
클레이모어를 터뜨린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아래쪽을 막아 놓고 옆으로 돌아 박격포가 있는 곳으로 향한 것이 분명했다.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 우리는 사냥을 시작해 보자고.”
*
건물 밖으로 뛰어내렸다. 20층 빌딩에서 그 옆에 있는 22층 건물 중간을 뚫고 들어갔다. 요란하게 밖으로 뛰어내렸으니 저쪽에서도 나와 인아가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겠지만 이미 승기가 이쪽으로 넘어온 이상 상관없었다.
멀리서 폭발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뭉클 피어올랐다. 박격포를 노리고 같던 놈들이 신승현조가 쳐놓은 덫에 걸린 것이다. 30명가량 됐다는 타격조를 꾸준히 줄였으니 지금쯤이면 15명 이하로 줄었을 것이다.
“어느 쪽으로 가려고.”
“박격포를 뺏는 데 실패 했고, 유인책도 먹히지 않았으니 저쪽이 쓸 수 있는 방법은 게릴라전밖에 남지 않았어. 가장 먼저 신궁이 있을 법한 건물을 노리겠지. 우리는 뒤치기를 한다.”
내 설명에 인아가 동의했다.
저쪽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개인이 들고 있을 수 있는 탄약은 한계가 있었다. 덤프트럭과 버스가 박살났고 헬기가 추락하면서 보급이 끊어진 상황. 교전하면 탄약이 급속도로 소진됐다. 싸우려면 이쪽의 중기관총 진지를 공략하거나, 신궁을 설치한 발사대를 수비하는 진지를 공략해 보급을 해결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싸우지 않고 숨어있으면 어쩌려고.”
“걱정 마.”
숨어있다면 탄약이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식량은 별개였다. 1인당 가지고 있어봐야 3끼 분량이었다. 식량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물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장기전이 벌어지면 이쪽 승리였다.
[치직-적들이 둘로 나눠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블록에서 교전시작. 적 대응사격하지 않고 우회합니다. 추격하겠습니다.]
무전기에서는 현재 상황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적들의 남은 인원은 30명이 조금 넘었다. 이걸 둘로 나눴다는 것은 한 조당 15명가량이라는 소리였다. 중화기를 잃었으니 숫자로 화력을 보충하겠다는 건데, 지금 상황이라면 적들도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깊게 추격하지 말고 거점을 잡아 조이도록.”
급한 건 이쪽이 아니었다. 둘 가운데 하나는 막았고 나머지 하나가 문제였다. 그쪽에 지휘관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지금 사라진 쪽이 주력일 것이다. 그냥 인아와 나 둘이서 뒤치기를 하기엔 조금 불안했다.
길바닥에 널브러졌던 슬레이브가 떠올랐다.
“하나 정도는 물어도 괜찮겠지?”
인아가 잠깐 나를 쳐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
그건 미묘한 모습이었다. 나도 저렇게 발버둥 쳤을까? 링크가 끊겨 엎어진 채로 멍하게 있던 슬레이브를 인아가 물자, 불에 구워지는 오징어가 몸부림치는 것처럼 버둥거리는 슬레이브였다.
몇 분을 발버둥 치던 슬레이브가 잠잠해지더니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링크와는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지켜보니 확실히 달랐다.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일단 그건 나중이었다.
빌딩과 건물 사이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수류탄 터지는 폭음이 총성을 눌렀지만, 총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포위한 적을 섬멸했습니다. 적 18명 가운데 16명 사살 2명 포로로 잡았습니다.]
한쪽은 끝났다. 이제 나머지 한쪽만 남았다.
[치직- 공격받고 있습니다.]
[적의 규모는 7명 이상. 중화기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신궁을 운용하는 안진욱조에게서 연락이 왔다. 뒤치기를 하려고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돌격시켜.”
“?”
“슬레이브를 돌격시켜. 옆으로 돌면서 탄약 소모를 유도해.”
“그리고.”
“어느 정도 돌았다 싶으면 앞장세워서 뚫고 들어가자.”
저쪽이 쓰던 방법이었다. AWS를 고기방패 삼아 돌격시키고 뒤따라가는 방법.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인아가 슬레이브에게 명령을 내리자 슬레이브는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슬레이브가 놈들에게 다가갈수록 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빗치의 열화판이라고 하더라도 5.56mm 탄으로는 단번에 제압하기 어려웠다. 예상대로 2분도 지나지 않아 화망이 약해졌다.
“지금!”
나와 인아가 슬레이브의 뒤를 따라 달려들었다. 나는 총화기에 약했지만 인아는 아니었다. 부랴부랴 있는 탄환 없는 탄환을 모아 화망을 만들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슬레이브다!”
“조장은?”
“위에서는?”
“버텨 5분만 버티면 된다.”
슬레이브는 이미 반쯤 너덜거리고 있으면서도 명령에 따라 착실하게 공격을 하고 있었다. 역시 타격조라 그런지 스펙을 맞고 잘 버티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인아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순식간에 두 명을 찢어 죽인 인아가 다음 희생자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런 인아를 막아선 남자가 있었다. 사내는 수염이 거뭇하게 난 남자였다. 허리춤에 주렁주렁 매달은 것은 C4였다.
“씨발. 먼저 간다!”
사내가 인아를 덮쳤다. 인아의 손이 사내의 가슴을 꿰뚫었지만 사내는 비웃었다. 그러모은 피 섞인 가래를 인아의 얼굴에 뱉으며 웃었다.
“같이 죽자!”
콰아아아앙!
불꽃과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뜨거운 불꽃이 내 등판을 할퀴고 지나갔다. 어이없는 상황. 이렇게 인아가 죽나?
“인아야!”
“으윽-”
인아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사내의 몸을 꿰뚫었던 양팔이 뜯겨 나갔고 전신에 화상을 입은 모습이었다. 강철처럼 단단했던 육체는 한계를 넘어선 충격에 의해 말랑해져 있었다. 말 그대로 쇠약해진 상황.
배낭에 있던 보충제를 먹이고 주변을 살폈다. 폭발의 여파로 반쯤은 너덜거리던 슬레이브도 터져 죽었다. 폭발의 여파 때문에 주변에 있던 놈들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나이프를 들고 한 놈의 목을 쳤다.
코와 귀에서 피를 흘리고 버둥거리고 있던 한 놈을 죽이고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여자의 목을 자르려는 순간 욱신-심장이 내리눌렀다.
지이이잉!
고주파 진동음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날카로운 검격을 앞구르기로 피하면서 내 등을 노린 자를 노려봤다.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
날카로운 단발머리를 한 그녀가 검을 고쳐 쥐고 있었다.
3조. 척인경이었다.
그리고 방금 내가 죽이려고 했던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였다. 폭발 때문인지 코와 귀에서 피를 흘리고 있던 하나가 소매로 코피를 스윽 닦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막내야. 보자마자 칼질이냐? 얼굴은 보고 칼질을 하든 지 해야지.”
하나가 넉살 좋게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경은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것처럼 칼을 뻗었다. 손잡이에서 나온 전선이 허리춤에 달린 배터리 팩에 연결되어 있었다.
대치가 이어졌다.
나야 피하면 그만이었지만, 나를 무시하고 인아를 잡으면 그건 피곤했다. 내가 주저하자 하나가 넉살좋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노려보지만 말고 말이지.”
“조용.”
내가 인아를 지키는 것처럼 인경도 하나를 지키고 섰다.
“쿨럭- 조장. 이거 우리 임무 실패했어요.”
내상을 입었는지 하나가 붉은 기침을 했다.
“아직 실패 아니야.”
인경은 예전처럼 임무에 집착했다.
“쿨럭- 목표는 여기 없어요. 저 뒤에 있는 건 목표가 아니라고요.”
“......”
목표? 이들에게 따로 주어진 임무가 있었단 말인가?
“협상하는 건 어때? 이곳이 아더스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나가 나와 협상을 하려고 했다.
어쩌면 월권행위일지도 모르는 하나의 발언을 인경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쯤이면 인아도 어느 정도 회복됐을 것이다. 에너지만 충분하면 잘라진 두 팔은 금방 재생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됐다. 나이프를 꽉 쥐었다.
“인아야 움직일 수 있어?”
내가 인아의 이름을 부르자. 차갑게 식은 인경의 눈동자가 아주 살짝 내 등 뒤를 살폈다.
“네.”
반말을 하던 인아가 조신하게 대답했다. 피식-웃음이 나왔다.
“셋에 도망쳐.”
“으윽- 어떻게 하려고.”
“끝을 봐야지.”
내 말에 하나가 비틀거리는 팔로 스펙을 꺼내 들었다. 인경도 칼을 고쳐 잡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인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언니? 인경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