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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139화 (139/261)

반응 (2)

연방의 연구소를 공격하지 못한다면 동맹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AWS가 부작용이 많은 무기라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본다면 굉장히 위력적인 무기였다. 일단 뽑아서 밀어내기 시작하면 연방이 한반도를 점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러니 동맹 측에서는 AWS가 양산되기 전, 연방의 연구 자료와 생산시설을 파괴해야 했다.

이건 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맹이나 연방이나 똑같은 놈이라고 연방을 그냥 둔다면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동맹의 특수부대가 방벽 내부로 침투하도록 틈을 열어주는 것까지는 해야 했다. 동시에 동맹 측의 수작질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주력을 옮기는 것이 맞았다. 주력을 강원도나 울릉도로 옮겨 버리고 이곳에서 생존자를 충원하는 방식이 단시간에 세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

“......”

침묵이 흘렀다. 현장 요원이자 빗치였기 때문인지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복수를 위해 연방과 싸우려고 했기 때문에 돌아가는 일들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전부 알아낸 상황. 여자는 살리든 죽이든 마음대로 하라는 표정이었다.

살려준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방벽 안쪽으로 투입되는 부대에 편입될 것이다. 연방의 주요 시설을 폭파하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탈출은 불가능했다. 아마도 살아남을 확률은 없었다.

내가 고문을 했다는 것을 동맹에 알린다면? 동맹 측에서 나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여자가 내 능력이 사이코 메트리라고 보고하면 좋았다. 내가 사이코 메트리라고 착각한다면 쉽게 사지로 몰아넣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여자를 살려줘 오해하게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어떻게 생각하면 죽이는 게 더 피곤했다. 만약 여기서 죽여 버린다면 동맹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오해할 소지가 있었다. 연구원이 하나 실종됐고 비밀요원으로 쓰던 빗치도 실종됐기 때문이었다. AWS가 습격했었다고 변명을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동맹과 보조를 맞춰 연방을 압박해야 하는 상황이니 반간계를 쓸 것도 아니었고, 동맹과 척을 지고 바로 3파전을 벌이기에는 아직 세력이 미약했다. 독자적인 연구진이나 기술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살려준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절반 이상 살려줄 생각으로 물었다. 여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미소는 처음에 보였던 그 어리바리한 미소가 아니었다.

“그냥 죽이는 게 편할 텐데.”

살려주고 난 뒤 어떻게 할 건지 묻는 이유가 뭐냐고 되묻는 여자였다. 쯧- 역시 내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건가? 이렇게 되면 또 문제였다. 어쩌면 이 여자는 자신의 본능을 이성으로 억누르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연방에게 복수하겠다는 그 복수심으로 살인 충동이나 식인 충동을 자제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동맹이 자신을 인간으로 피해자로 대접해줬기 때문에 자기검열을 하고 있었다면? 그런 자기검열과 자기규제를 내가 풀어버린 꼴이라면 위험했다.

동맹으로 돌아가지 않고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영역을 꿰차고 앉는 빗치가 돼버린다면 살려줄 이유가 없었다.

“그렇군.”

“죽일 건가?”

“복수는 이제 의미가 없나?”

“복수? 복수라. 복수심 때문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말해놓고는... 당신 너무한데?”

“세상이 그렇지 않나? 이용하고 이용당하고. 복수를 위해서 이용당했다고 생각한다면 배신당한 것도 아니지 않아.”

“후호호호홋. 그래? 그런가?”

“알고 속아주는가? 모르고 당하는가? 그 차이가 있겠지. 알고 당해주는 것은 빠질 시점을 결정할 수 있고, 빠지고 나서 어떻게 할지 미래를 생각할 수 있지만... 모르고 당할 경우엔 그렇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당신도 날 이용할 생각?”

“어떨까 생각 중이다. 살려주면 골치 아플 부분도 있고, 오히려 죽여서 피곤해질 경우도 있고 말이지. 그래서 물어본 거다. 살려주면 뭘 하고 살겠냐고 말이야.”

여자가 씨익-웃었다. 빗치들은 정말 반칙이었다. 화사한 미소를 앞세워 페로몬을 뿜어대며 날 유혹했지만 넘어갈 리 없었다.

“당신. 정말 흥미로워.”

“다들 그렇다고 하더라고. 이렇게 망가지기 전에 관심 좀 주지. 요즘에는 그렇더라고 왜 이렇게 망가지고 나서야 여자들이 관심을 보이는지...”

내 말에 여자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호호호호홋. 당신 정말. 살려주면 목숨을 빚진 거로 할게.”

“좋아.”

내가 쿨-하게 살려준다고 대답하자, 여자가 의외라는 목소리를 냈다.

“헤에~ 믿는 거야?”

“그래.”

“뭘 믿고?”

“감이라고 할까.

끼익- 돌돌 말은 철근을 풀어 주자. 가만히 날 쳐다보는 여자였다. 눈이 마주치자. 여가가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뭔가 나한테 원하는 게 있을 거 아냐?”

“그런 거 없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정말? 내가 당신이 저 남자를 고문해 동맹의 정보를 뺏으려고 했다고 보고하면?”

“마음대로.”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여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

“복수. 잘하도록 하고.”

여자는 가만히 날 쳐다보다. 깨진 창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빚. 언젠가는 갚도록 하겠어.”

“기대하지.”

여자는 붉게 물든 노을 속으로 사라졌다.

텅 빈 공간에는 자신의 머리통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남자의 시체가 덩그렇게 앉아있었다. 여자가 이 상황을 말하든 말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놔줬지만 약간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빗치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생포한 김에 링크를 거는 실험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빗치에게 링크를 걸 수 있다면 상황은 반전됐다.

“쯧-”

빈사상태로 만들어 내 피를 먹인 뒤, 링크를 걸면 걸릴 법도 했다. 황씨 딸의 경우도 그랬고 방금도 마찬가지였다. 간질간질한 느낌.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유미가 극도로 거부 반응을 일으켰던 것이 떠올랐다.

생존이 절대명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했다. 유미가 없는 지금이야말로 확인할 기회일지 몰랐다.

실험해 보고 링크가 되면 그 뒤에 문제를 해결해도 됐다. 정말 그럴까? 극도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유미를 무시하고 링크를 걸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제까지 함께했던 유대감이 깨지지는 않을까? 링크를 걸어 장악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 뒤는 뭐가 될까?

향후 생존이 유리해지는 건 확실했다. 방벽이 AWS라는 열화판으로 운영하는 것에 비해 나는 오리지널 빗치를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 대가가 유미를 잃는 것이라면 그래도 좋을까?

다른 빗치들과 링크를 하면서 유미와의 유대관계가 약해진다면? 그게 아니더라도 피에 민감하고 다른 빗치들에게 적개심이 강한 유미가 링크를 건 빗치들과 충돌한다면? 링크를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으로 링크에 걸린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었다. 빗치와 링크를 걸지 않더라도 충분히 대화 가능한 빗치가 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수확은 있었다. 미노만 특이했던 것이 아니라 그런 빗치들이 또 있다는 건 빗치라고 무턱대고 죽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돌아온다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봐야겠지.”

빗치들이 서로 경계하고 적대감을 느끼는 부분만 완화할 수 있다면, 유미가 적대감을 갖는 원인을 알 수 있다면 강력한 부대를 만들 수 있을지 몰랐다.

*

9월 아직은 완전히 깜깜하지 않았지만, 저녁 7시가 넘어가자 어둑어둑해졌다. 유미에게 말했던 12시간이 이제 2시간도 남지 않았다.

“추격조 위치는?”

=치직- 3번가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습니다.

“지하로 들어갔나?”

=예. 건물 내부로 들어간 뒤 신호가 끊겼습니다. 돌입할까요?

“아니. 다른 소리는 없나?”

=조용하...

쿠르르릉- 굉음과 함께 무전기에서도 잡음이 심하게 들렸다.

=치직-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아까도 건물이 붕괴됐었다. 설마 둘이 싸우면서 건물이 무너진 건 아니겠지? 유미의 능력이 맨홀 변종과 필적한다고 하더라도 건물을 붕괴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설마. 함정?

인아가 건물로 함정을 파두고 있었다는 말인가?

“주변 확인하고 인근 하수구를 막아!”

=치직 알겠습니다.

명령을 내리고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가을이 시작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인지 비가 온지 제법 오래됐다. 사람들이 블록과 건물 잔해를 하수구에 밀어 넣고 있었다.

“상황은?”

“빠져나간 흔적은 없습니다.”

“주변 경계를 철저하게 하고 교전하지 말고 나에게 바로 연락하도록.”

“옛.”

‘빌어먹을.’

건물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함정을 파두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먼저 링크를 점검했다. 페니와의 링크는 끊어지지 않았다. 복귀하라는 사념을 강력하게 보냈지만 복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했군.”

“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페니와의 링크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페니가 살았다면 페니보다 내구가 좋은 유미는 분명 살아있을 것이다.

‘인아는... 인아도 같이 매몰됐는가?’

인근 하수구를 완전히 틀어막았는데 그쪽으로 인아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낮에도 건물이 무너졌던 것이 떠올랐다. 함정을 팠지만 유미와 페니가 걸리지 않자. 스스로 미끼가 되어 같이 죽자고 무너뜨렸다는 소리였다.

“하- 그 성격이 그대로라면...”

결코, 혼자 죽지 않았을 것이다. 유미와 페니가 끈덕지게 따라붙고 2:1로 점점 몰리자. 이렇게 한 것이 분명했다.

중장비가 없는 이상 7층짜리 건물이 무너진 잔해를 인력으로 치우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랐다. 지하층까지 무너졌다면 7층의 잔해를 다 걷어낸 뒤에야 수색이 가능했다.

‘젠장. 내가 같이 갔었어야 했는데.’

나였다면 함정이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위기감응이 발동됐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잔해를 치운다. 가용 인력을 전부 모아서 잔해를 치우고, 자동차를 이용하든 뭘 이용하든 쓸 수 있는 걸 전부 활용해서 최대한 빨리 치워.”

“알겠습니다.”

레커차의 윈치를 이용하고, 간이 크레인을 만들어 쓰고 거의 400명이 넘는 인원이 투입되어 7층짜리 건물의 잔해를 밤새 치웠지만 쉽지 않았다. 건물이 무너진 잔해가 서로 엉켜있었기 때문에 어설픈 기계로는 치울 수 없는 구간이 나왔다. 내가 스펙을 맞고 철거용 망치로 벽을 뚫고 해체했지만, 하루 이틀 사이에 치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

동맹쪽 끄나풀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AWS를 추격하다 사고가 벌어졌고 구호작업을 한다고 이야기를 해뒀으니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래, AWS가 또 습격했다고?]

나상철이 깔린 목소리로 연락했다.

“그래. 지금 난리다.”

[이쪽에서 손을 좀 보태줄까?]

이건 은근히 떠보는 짓이었다. 현재 나상철은 대전지역에서 연구 단지를 지키며, 인근 지역에 있는 탄약창을 수복하기 위해 똥을 싸고 있을 시점이었다. 끌고 내려간 병력도 감당 못 하면서 손을 보태주겠다?

“좋지. 치누크 헬기라도 있으면 도움이 되겠군.”

한 번에 12톤씩 채워서 옆으로 나르면 도움이 많이 됐다.

[크흠. 헬기는 어렵고. 이번 작전에 투입될 병력을 미리 보내주지. 내일 새벽 4시를 기해 기습작전을 펼치려고 하니...]

“지금 장난해? 병력 보내준다며? 지금 오후 5시인데 내일 새벽4시?”

[......]

나상철과 윗대가리가 유미와 페니가 깔린 것을 알고 있다면, 이번 기회에 내 세력을 확 덜어낼 속셈이 분명했다.

“이쪽의 주요 전력이 깔려있다고. 이들은 구하지 못하면 공격도 못해. 그 둘이 없다면 연방 놈들의 AWS 전력에 대항하기 힘들다고. 이번 작전의 목적이 그거 아닌가? 이쪽에서 연방의 주력을 묶어 두는 것? 주력을 묶으려면 그들이 필요해.”

[지금 연방을 막지 않으면 AWS가 양산된단 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10마리가 나올 게 20마리로 는다고 하더라도 구조가 우선이야. 급해? 그럼 병력 보내, 치누크 헬기도 보내고. 크레인이나. 포크레인도 보내. 아니면 기다리든가.”

[하- 이렇게 할 건가?]

“이렇게 해? 하긴 뭘 해? 안 한다고! 무너진 잔해 아래 깔려있는 둘은 AWS를 막을 수 있는 핵심 전력이라는 걸 뻔 히 알면서 그냥 무시하고 싸우라고? 그 둘이 없이 1300명을 꼴아 박으면? 난 그렇게 못해. 그리 알아.”

[계약을 어길 셈인가?]

“계약을 어기긴 누가 어겨? 구조작업 끝나고 하지. 헬기와 중장비를 보내서 구조작업을 돕든지 아니면 작전을 연기하든지 알아서 하라고.”

[대를 위해...]

팍- 그대로 끊어 버렸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건 너희들이나 그렇게 하고. 바로 구조 현장으로 돌아갔다. 얼마 뒤 최필도가 무전기를 들고 왔다.

“내일 새벽 작전 관련으로 긴급 통신입니다.”

“최필도씨. 다른 사람들보다 여기 묻힌 둘을 편애하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그게 아니라. 내일 벌어질 작전에서 행여 실패하게 되면...”

공무원이었던 직업병일 가능성도 있었고, 선택의 순간에 더 많은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판단일지도 몰랐지만 그걸 받아줄 정도로 여유 있지 않았다.

“최필도씨 내일 작전 들어가면 AWS와 정면으로 싸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저번에 AWS가 내습했을 때, 이 둘이 없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됐겠습니까? 이 둘이 없이 생으로 싸운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게 소수일까요?”

“하지만 이대로 이쪽이 빠진다면, 더 큰 희생이 생길 겁니다.”

“더 큰 희생이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 어느 쪽이 큰지, 그걸 누가 정합니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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