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5)
흐릿한 실루엣에 집중했다.
인아?
인아는 아니다. 키도 체형도 달랐다. 훨씬 작은 키. 유미보다도 작은 키였다. 그렇다면 유미도 아니었다.
그럼 대체 뭐가?
안전지대를 만들었는데 그 안에 빗치가 숨어있었다고? 그건 말도 되지 않았다.
유미는 항상 영역표시를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빗치라면 그 영역표시 안에 들어오는 것을 꺼려할 것이 분명했다. 들어온다면 서로 치고받고 싸울 정도로 신경이 예민해진다고 봐야했다.
떠돌이라면 꾹 참고 지나가거나 아니면 유미와 싸우겠다고 할 게 분명했다. 어떻게 보더라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내가 살의를 느끼고 반사적으로 전투 준비를 하자 목표를 바꿨다. 미련 없이 묶여 있는 사내를 죽인 것이다. 처음 목표는 묶여있던 사내가 아니라 나였다는 것. 일반적인 빗치라면 애초부터 묶여있던 사내를 노렸어야 했다.
‘대체...’
1초도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에 머릿속이 엉망이 될 정도로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스치고 지나갔다.
‘일단 잡자.’
일반적이지 않다면 잡아보면 됐다. 사람이 다양하듯 모든 빗치가 강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대응하자 날 포기하고 약한 쪽을 공격했다면 그렇게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하다면 자존심 상해서라도 날 공격했을 테니까.
우걱우걱.
성의 없이 씹어 삼키는 소리. 배가 고파서 죽였다기보다는 죽였으니 맛이나 보자는 느낌이었다.
문답 무용으로 여자의 실루엣을 후려쳤다.
퉷-
메이스로 후려치는 것과 동시에 그것이 씹던 고기를 내 얼굴에 뱉었다. 살점이 한쪽 눈을 때리며 시야가 흔들렸다.
“이게!”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단 말인가?
놀라지 않았다. 한쪽 시야가 가려졌어도 그뿐이었다. 30kg짜리 메이스는 흔들리지 않고 여자를 향해 휘둘러졌다. 뻑!- 메이스를 팔뚝으로 막은 여자가 쫙-뒤로 밀려났다. 메이스를 잡은 손에서 둔탁한 반탄력이 느껴졌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스펙은 하나, 중화제도 하나였다. 스펙 하나당 3회를 쓸 수 있고 중화제도 마찬가지. 스펙을 2회 이상 쓰면 신체 붕괴의 위험이 있다고 했다. 붕괴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성을 가질 수도 있었다. 최근 스펙을 너무 자주 쓰고 있었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스펙과 중화제를 한 방씩 밀어 넣고 있었다. 혈관이 타들어 가는 느낌과 동시에 중화제의 차가운 감각이 전신을 뒤집으며 감각이 예민해졌다. 여자가 입고 있는 옷은 상당히 독특했다.
굵고 거친 재질로 만들어진 잠수복 같은 느낌이었다. 몸에 쫙 달라붙은 라인, 올록볼록 급소마다 돌출된 부분은 일종의 갑옷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냥은 힘들다는 소리였다. 재빨리 뒤로 거리를 뒀다. 내가 뒤로 빠지는 것을 그냥 두고, 다시 묶여있는 남자를 향해 다가가는 여자였다. 먹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은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더러운 놈. 어설프게 되살아나면 짜증 나니까.”
여자가 작게 중얼거리더니 남자의 머리통을 뜯어냈다. 으지지직-소리와 함께 목뼈가 반쯤 달린 머리통이 떨어졌다. 뗀 머리통을 사내의 무릎에 얌전히 올려놓은 여자가 날 쳐다봤다. 나를 치우고 싶은데 뭔가 위험한 느낌을 풍기니, 슬쩍 간을 보는 느낌이었다.
“......”
“......”
잠시간의 침묵, 스펙과 중화제가 몸속에서 날뛰는 것을 가만히 누르며 물었다.
“연방인가?”
“......”
여자는 입을 스윽 닦고 날 노려봤다. 스펙을 맞은 지금이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어야 했다. 죽이는 게 아니라 잡아야 했다. 연방이든 아니든 일단 잡아서 쥐어짜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스펙과 중화제를 한 번씩 더 밀어 넣었다. 여자가 살짝 동요했다. 아까는 약 쓰는 걸 제대로 보지 못했었나? 아니면 싸워보기도 전에 연속으로 쓸 줄 몰랐나?
피식- 여러모로 웃음이 나왔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나 사용하던 약을 이렇게 쉽게 쓰다니. 시야가 녹아내리고 균형이 잠시 일그러졌다. 악 다문 입 사이로 짐승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순간 갑자기 여자가 몸을 뒤로 날렸다. 도주?
“크으으. 서!”
30kg짜리 방패가 쏘아졌다. 쉑- 등 뒤에 눈이 달리지 않았을진대, 여자는 무슨 훈련이라도 받았는지 기계체조 선수라도 되는 것처럼 유연하게 몸을 비틀어 피했다.
방패를 비틀어 피하면서 옆으로 구른 여자의 몸통을 그대로 걷어찼다. 뻑! 벽에 틀어박히는 가녀린 몸뚱이를 향해 그대로 몸통 박치기를 했다. 열차가 탈선한 것처럼 벽이 박살나며 여자와 내가 하나로 엉켜 들었다.
뒤엉키면서 체격을 이용해 상위포지션을 잡았다.
“잡았다. 크르.”
“!”
빗치의 피부는 질기고 단단하다. 전투에 돌입하면 확실히 그렇게 변했다. 유미만 하더라도 5.56mm 총탄의 관통력을 무시할 정도. 하지만 이런 식의 충격을 계속 주면 칼로리 소모가 급격하게 많아졌다.
어느 한계까지 칼로리 소모가 되면, 그 뒤로는 급속재생이라든지 질기고 단단해지는 신체가 약해졌다. 가장 쉽게 육체를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안구를 뚫고 뇌를 타격하는 것이었다.
메이스를 내리찍어 눈을 찔렀다. 슬쩍 고개를 틀어 피하는 여자였다. 하지만 압도적인 힘과 체격으로 누르는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내가 눈을 찌르려고 했던 것의 반격인지 여자가 손가락을 뾰족하게 오므려 내 눈을 찔렀다.
하지만 스펙을 2연속으로 맞아, 동체 시력과 운동 능력이 극에 달한 내가 당할 리 없었다. 빠각-인체에서 제일 단단하다고 하는 이마를 썼다. 여자의 손가락을 이마로 들이 받자, 내 눈을 쑤시려던 손가락이 엿가락처럼 부러지고 뒤틀렸다.
“!”
나를 공격하던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제야 상대방의 얼굴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아- 빗치들은 전부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말 그렇다는 생각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빡-팔꿈치로 조막만한 얼굴을 찍었다. 맨홀 변종을 작살냈던 그 힘으로 찍었다. 한 방에 안면이 함몰된 여자의 얼굴이 다시 재생되려는 순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래~ 그래!”
빡- 빡- 빡-
팔꿈치로 때리던 것이 어느새 파운딩으로 변했다. 위에서 아래로 때려 박는 주먹. 망치질 하듯 내리꽂힐 때마다, 여자의 작은 머리통이 바닥에 틀어박혔다.
여자가 손톱을 세워 내 몸을 긁어댔다. 날카로운 손톱이 살가죽을 가르고 들어왔지만 친절하게 답례를 해줬다. 박치기로 턱을 박살내고 팔꿈치로 눈두덩이와 관자놀이를 으스러뜨린 뒤 다시 파운딩.
빠각!
여자의 머리통이 재생되고 으스러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콰직! 우적!
어느 순간부터 단단한 소리를 냈던 뼈가 비스킷 깨지는 소리를 내며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마운트 포지션에 올라간 나를 밀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던 여자의 사지가 서서히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잡았다는 생각과 함께 식욕과 파괴욕구, 성욕이 치밀어 올랐다.
“묻는 말에.”
“......”
“대답.”
“......”
“똑바로 하라고!”
“!”
콰직! 머리통을 반쯤 작살내자. 밑에 깔린 여자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
꿩 대신 닭이라고 할까? 아니면 닭 대신 꿩이라고 할까? 어찌 됐든 스펙을 쓰고 난 뒤의 탈진으로 잠시 몸을 쉬었다. 벽과 바닥에서 잡아 뽑은 철근으로 둘둘 말아 전신을 구속한 여자는 재생을 못하고 있었다.
칼로리가 없으니 아마도 저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면 신체가 붕괴할 것이다. 처음에는 유미처럼 피를 줄까 싶었지만, 유미가 그렇게 끔찍하게 싫어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그렇게 싫어하는데 굳이 내 피를 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피는 많았고 말이다. 여자가 머리를 뽑아 죽인 사내의 몸통을 들어 흔들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피가 주룩 떨어졌다. 반쯤 박살난 여자의 입과 머리 부분에 피를 떨어뜨리자 서서히 머리가 재생됐다. 이윽고 꿀꺽이며 피를 받아 마시는 여자였다.
아주 작게 여자의 몸을 둘둘 감은 철근에서 소리가 났다.
“하- 힘을 줘? 힘을?”
여자의 머리통을 그대로 후려쳤다. 스펙의 효과가 떨어져서인지 고개가 휙 돌아갔을 뿐 제대로 함몰되거나 깨져나가지는 않았다.
“힘을 주셨어요?”
“......”
“대답을 안 하시네요.”
“......”
여자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고개를 꺾었다. 머리통이 180도로 돌아가며 목뼈가 부러졌다. 뒤로 돌아갔던 머리를 다시 앞으로 만들자 목뼈가 부서져 머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여자가 나를 노려봤다.
푹!
“!”
“어딜 노려봐.”
다시 전기로 굽는 작업을 거쳐, 고문 아닌 고문이 시작됐다.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말이 없었다.
“AWS냐? 너 슬레이브야? 왜 말이 없어?”
“......”
비명을 지를지언정, 대답하지 않는 여자였다.
“좋아. 슬레이브라면 나도 마음의 부담을 덜었네. 이성이 있는 걸 망가뜨리기는 좀 뭐했거든.”
얼굴을 끝없이 뭉개고 고문한 놈이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을 짓는 여자였다. 역시 대답은 하지 않더라도 얼굴표정은 드러났다. 정말 슬레이브나 생체병기로 만들어진 빗치였다면 이런 감정 표현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주사기를 꺼내 여자의 앞에 보여줬다. 이성그룹 마크가 선명한 주사기였다. 주사기를 보자 여자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않나? 사실 고문한 건 일종의 실험이었다고 뭐 조금은 취향이 된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야.”
“......”
“슬레이브가 되고 싶나? 그렇게 살고 싶어? 하나 약속하지. 슬레이브로 만들어서 네년이 알고 있는 걸 전부 토설하게 할 수도 있어.”
“!”
여자가 드디어 당황했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려고 했지만, 확실히 이건 먹혔다.
슬레이브화가 되면 일종의 기억상실 상태가 됐다. 다시 말해 슬레이브로 만들면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종구가 슬레이브로 만들었던, 페니도 그전의 기억을 상실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기억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내 협박은 반쯤은 공갈이었다.
그런데 그 공갈이 먹힌다는 건 이 여자가 가진 정보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줬다.
“내가 이걸 바로 쓰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지?”
“......”
“이걸 쓰면 그걸로 끝이야. 널 보낸 세력과는 협상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말이거든.”
“......”
“그건 나도 원하지 않고 좀 곤란하거든.”
나를 죽이려고 했다가 곧바로 사내를 죽였다. 맨 처음 목표로 했던 내가 방어 태세를 갖추자 즉시 사내로 목표를 바꿨다는 건,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왜 사내를 죽였을까? 입막음을 하려고 했다는 소리다. 단순한 빗치는 아니고 연방이 아니라면 남은 건 하나, 자유 동맹 그러니까 아더스의 요원이라는 소리였다. 나상철이 말했던 말이 통하는 빗치를 내가 잡은 것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정말 이해가 안 돼서 말이지. 나상철이가 시켰어?”
“.....”
“아니면 윗대가리가 시킨 건가? 어쨌든 말이지, 내가 왜 동맹측 사람을 잡아다가 고문까지 하면서 정보를 들으려고 했겠어? 생각을 해보라고. 오죽 그쪽에서 나를 물 먹였으면 내가 그랬겠냐는 말이야.”
“......”
고통을 참는 훈련이 된 여자였다. 아마도 정신적으로도 단련됐을 확률이 높았다. 이럴 경우가 제일 피곤했다. 고통은 알지만 영양만 공급해준다면 회복하는 신체,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은 무너뜨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내게는 시간이 없었다.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길게 잡고 정보를 캔다면 좋겠지만, 잘해야 2~3일 안에 연방과 충돌할 가능성이 컸다. 어떻게 하는 게 효과적일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했다.
“여기서 AWS링커의 시체를 보내줬어. 뭔가 알아낸 게 있냐고 물었더니, 없데.”
“......”
“동맹이라고 하면서 정보는 하나도 주지 않으면서, 있는 것만 빼먹을 생각을 하네?”
“......”
“급기야 연방과 싸우라는 말을 하면서 보급도 제대로 안 해줘. 그래놓고 챙겨 갈 건 챙겨 가겠다고 해.”
연방과 싸우라는 말에 아주 미미하게 여자의 표정이 변했다. 연방이라는 말에 반응한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생각했지. 정보를 알아야겠다. 동맹이라고 하는 놈들이 정말 동맹인지... 아니면 연방과 짜고 치는 고스톱을 치고 있는 똑같은 놈들인지 말이야.”
이건 내 가설이었다. 동맹 그러니까 아더스의 시작 자체, 대의명분 자체를 부정하는 가설. 하지만 이건 효과가 있었다.
“닥쳐!”
처음으로 반응이 왔다.
*
나상철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당시 국제적인 음모 집단의 계획을 망가뜨린 사람이 아더스 소속이라는 명확한 말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인류의 지배를 막기 위해, 테러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그건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에는 내부 고발자도 있고 양심에 따라, 불의와 싸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허나. 생각을 다시 바꿔보면 그 이면은 달랐다.
방사능 오염으로 멸종된 인류를 살리기 위해 강제진화프로그램을 연구했던 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내부 고발자가 됐고, 양심에 따라 테러를 일으켰다는 말이었다. 그걸 순진하게 100% 믿는다면 아더스의 세력 확장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연방측도 가지고 있지 않은 중화제를 가지고 있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연방에게 붙은 과학자보다 동맹(아더스)에 붙은 과학자들이 압도적으로 우수해야 한다는 소린데 그렇게 보기는 어려웠다.
연방은 기존의 대기업과 정부 윗대가리들이 주축이 된 세력이었다. 과학이 자본의 시녀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다시 말해 뛰어난 과학자들이 연방에 속해있기 마련이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랬던 과학자가 갑자기 판을 깨고 나왔다. 어째서? 그럼 과학자만 나왔을까? 과학자 몇 명이 깽판치고 나왔더니, 아더스라는 전국구적 조직이 똿-하고 생겼다? 그게 가능할까? 그 판이 마음에 들지 않아 깨고 나온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연방에서 나온 사람들이 세력을 만들어 대항하기 시작했다. 이게 전부 대의명분으로만 이뤄질 수 있는 일이었을까? 그리고 연방이 세계적인 조직이라면 아더스는? 이제 자유 동맹으로 간판을 바꾼 쪽은 한반도에서만 활동하는 조직일까?
“닥쳐!”
“왜 화를 내지? 당연한 생각 아닌가? 사람을 잡아먹고 홀리는 빗치가 아닌 다음에야 머리가 있다면, 내 말이 그냥 헛소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텐데?”
철근에 묶여 몸을 비틀고 발버둥을 치는 여자의 목을 다시 꺾었다. 목을 꺾어 놓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흥분하지 말고 들어, 내가 왜 저 남자를 잡아서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는지 들어 보란 말이야. 아니면 아니라고 네가 이야기를 해주면 그만이고. 나를 납득시키란 말이지.”
“......”
목이 꺾여 성대가 비틀려 대답을 못 하고 나를 노려보는 여자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상철은 내가 사이코 메트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했다. 처음에 보여준 호의가 막연한 호의가 아니었다는 소리였다. 어찌됐든 자유 동맹은 그런 특수능력을 가진 변종이나 빗치를 포섭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사이코 메트리 능력이 있다면 1300명이 연방과 싸우다 자멸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살아서 나올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
“너도 들었지? 그래서 나를 공격하려고 했지만 내가 반응하자, 남자의 입을 막은 거고 말이야.”
역시 목을 꺾어 놓길 잘했다. 눈꺼풀을 부르르 떠는 모습을 보니 괜찮았다. 하나씩 따져보자.
1. 스펙과 대칭되는 중화제라는 것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
2. 연방의 내부에도 동조자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넓은 인맥.
3. 빗치와 변종에 대해 연방과 다른 독자적인 해석을 하고 영입하는 방식.
4. 세계적 규모의 대기업과 각국 정부가 뿌리가 된 연방과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
“그리고 동맹이라고 하더라도 믿지 않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처리하려는 암살자를 보냈지. 너 같은 암살자 말이야.”
“......”
“그러니까 너는 나를 감시하고 있다,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날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거야. 그러다 저 남자를 내가 고문하는 것을 봤고, 저 남자가 비밀을 불기 시작하니까 죽인 거지.”
“......”
“그럼 보자고, 레지스탕스처럼 연방에 저항하는 한미한 세력인 줄 알았던 동맹이... 사실은 중화제를 만들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고 대덕연구단지까지 장악해서 팍팍 연구하고 있었다? 심지어 너 같이 특이한 빗치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자기편으로 끌어 들여서 요원으로 쓰고 있네? 그것도 모자라, 나에게 정보가 흘러가는 걸을 막기 위해 저 남자의 입을 막았지. 그런 세력이 자유 동맹이란 말이야.”
“......”
“그런 동맹을 내가 믿어야 할까?”
“배. 배신할 셈이냐?”
목을 재생시킨 여자가 이를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어딘가 떨리고 있었다.
“배신이라니? 납득을 시켜달라는 거야. 내가 왜 동맹과 손을 잡아야 할지. 내가 잘못 추론했다면 잘못 추론한 부분을 알려달라는 거지.”
내 넉넉한 미소에 여자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