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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136화 (13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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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 묵직한 양손용 소방도끼를 자루를 잡고, 한쪽을 손바닥에 쳤다. 툭-툭- 끊어지는 소리가 부르르 떠는 냉동 탑차 엔진 소리와 뒤섞여 리듬을 만들었다. 사내는 처음에는 당혹해 하더니, 정신을 조금 차렸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러고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하...”

콱!

도끼가 사내의 두 다리 사이를 스치고 틀어박혔다. 시멘트 바닥을 박살낸 도낏자루가 부르르 웃었다. 소중한 곳과 함께 수직으로 쪼개질 뻔했던 사내는 딸꾹질을 하며 얼어붙었다.

-흐끅

-히끅

지린내와 함께 노란 액체가 깨진 시멘트 바닥을 채웠다. 딸꾹질을 멈추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온실의 화초처럼 살아남았나 보다.

“날 걱정해주는 건 좋은데 말이야.”

우직-

옆에 스테인리스 선반을 한 손으로 구겼다. 한 손으로 철제 선반을 알루미늄 캔 구기듯 구기자 사내의 동공이 흔들렸다.

-흐끅

“두 다리와 두 팔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필요하다면 고개를 끄덕여봐!”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내였다.

“좋아. 내가 궁금한 것이 있어서 그러는데 말이야. 대답해줄 수 있겠지?”

사내 사내를 향해 서서히 다가섬에도 사내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래도 내가 서서히 다가오자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걸음씩 다가갔던 내가 사내의 옆으로 슬쩍 지나가자 남자는 다리가 풀렸는지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허공을 보고 있는 사내를 뒤로하고 벽에 걸린 경보벨을 눌렀다.

=따르르르르릉

비상벨이 울렸다. 날카로운 비상벨 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 사내가 ‘왜?’라는 표정을 지었다. 비상벨을 왜 눌렀냐는 눈빛이었다.

피식- 웃음으로 답해줬다.

*

비상벨이 울리고 사방에 어수선해졌다. 치누크 헬기를 조종해 온 조종수와 부조종수가 밖을 살피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AWS가 침입했습니다. 시체를 회수하러 침입한 것 같습니다.”

부조종사가 주변을 살피며 사내를 찾았다.

“같이 간 박사님은? 그 사람은 어떻게 됐습니까?”

내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예쁘게 포장된 팔다리가 담긴 상자를 넘겨줬다.

“AWS가 언제 밀려들지 모릅니다. 빨리 이륙하세요.”

“그럼...”

“AWS와 교전이 벌어지면 헬기도 위험합니다. 아마 헬기를 집중 공격할 겁니다.”

“그냥 이대로 복귀하란 말입니까?”

“자세한 내용은 통신으로 합시다. 지금 본 대로 보고하도록 해요.”

치누크 헬기가 내가 준 상자를 싣고 이륙했다.

*

텅 빈 건물 최상층. 자기를 버리고 헬기가 이륙한 것을 본 사내는 멍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쉽게 헬기가 떠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싶었다.

“뭘 그렇게 머리를 굴리나.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움찔- 떠는 사내였다.

“나한테는 연기가 소용없어. 잘리고 난 뒤 후회하지 말고 편하게 쉽게 가자고.”

연기가 아니라는 것처럼 전신을 꿈틀대는 사내였지만, 글쎄. 연기가 아닐까? 이미 연기의 달인 바비를 경험했었던 내게 있어 사내의 과도한 몸부림은 우습기만 했다. 아무리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호받았던 연구직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사지를 자른 것도 아니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오줌을 지리고 넋이 나간 표정을 지어? 어쩐지 바비가 그 모습을 보면 코웃음을 칠 것만 같았다. 환상적인 얼굴과 몸매의 여자가 했어도 될까 말까한 짓을 다 큰 사내자식이 하다니...

일단 발가락 하나부터 작살내고 시작할까 싶었지만, 우선 쉽게 가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시간을 들여서 쥐어짤 생각이었다. 쥐어짜고 짜다 보면 불기 마련이었다.

사내의 입에 묶었던 재갈을 풀어 줬다.

“.......”

“미리 말하는데 머리 쓰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해. 사실대로 아는 대로 대답하면 안전을 보장하지.”

“.......”

“허나, 잔머리를 쓰려고 헛소리를 할 때는 발가락부터 뭉개질 걸 약속하지.”

“.......”

사내는 대답이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겁에 질려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꼭 너무 무서워 병신이 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렇게 하시겠다?

콱!-꽈드드득!

새끼발가락을 철근으로 눌렀다. 아주 서서히 한 번에 내리누르면 일순간만 통증이 생겼다. 그러니까 아주 천천히 뼈가 으스러질 것만 같은 고통과 통증을 느끼도록 눌렀다.

끄아아아악!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며 비명을 지르는 사내였다. 콧속에 스프레이 최루액을 뿌려줬다. 발가락의 고통을 잊었는지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처음 사내가 상식적인 행동을 했다면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원이었다. 말단이라고 하더라도 필요한 부위를 챙길 정도로 대략적인 내용을 아는 사람이었다. 이런 아수라장에서 처음부터 보호받고 있었을 리 없었다.

만약 있었다고 한다면 자유 동맹이라고 불린 세력도 연방처럼 사태가 발생되기 전부터 대비하고 있었다는 소리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 조금 잔혹하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알아야 했다.

고급인력이었기 때문에 사내가 입고 있는 옷에는 위치추적기가 붙어있었다. 옷에만 있을까? 사내의 몸속에도 칩이 박혀 있었다.

엑스레이를 통해 사내의 몸속에 박힌 칩을 뽑아냈고, 혹시나 몰라 생체칩을 처리하기 위해 전기로 지졌다. 자연스럽게 전기고문이 된 꼴이었다.

연방에서도 손을 썼는데 동맹 쪽이 손을 쓰지 않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보안이 제일 중요했다. 그래서 손수 고문하고 뒤처리를 다 했다. 위급한 일이 벌어지면 무전기로 연락하라고 하고 빌딩하나를 통째로 접근 금지 시켰다.

*

그렇게 시작된 고문. 질문은 없었다. 손도 대지 않았는데 공포에 질려 넋이 나간 연기를 하는 놈이었다. 똥과 된장을 구분할 수 있을 때까지 굴리는 게 답이었다.

처절한 비명소리에 화답하듯, 시간은 빨리 흘렀다. 해가 뉘엿뉘엿 노을을 뿌렸다. 주황색으로 젖어든 아름다운 하늘이 폐허의 도시를 잔잔하게 휘감아 돌았다.

처음에는 사실을 알기 위한다는 명분이었다. 진실의 끝을 보자고 생각했던 고문이, 지금은 기계적인 행동이 됐다. 6시간 동안 나는 사내에게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냥 고문할 뿐이었다.

한참 고문하는 도중 창문 밖으로 소리가 들렸다. 뭔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잠시 후 무전기에서 연락이 왔다.

=치익-7층짜리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공격인가?”

=삐익- 공격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 정찰하도록 하고 다른 문제가 있으면 바로 연락하도록.”

그렇게 사내가 똥오줌을 지리고 나서야 저녁 식사시간이 됐다. 식사도 내가 직접 챙겨줬다.

“천천히 먹어.”

참치 죽과 과일 통조림 그리고 초콜릿이었다.

잘 먹이고 체력을 회복할 시간, 편한 시간을 주는 것이 하염없이 고문하는 것보다 효과가 좋다고 했다. 편했던 시간, 고통을 받지 않고 쉰 시간이 다음에 올 고통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 것이다.

다음에 어떤 고문을 어떻게 할까? 뭐가 효과적인 고문일까 골몰하던 차, 사내의 상처를 치료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호선생에게 말해야 하나?’

아는 사람이 생기면 보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대충 소독약만 뿌려놓기에 사내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소금이 상처 소독에 도움을 준다고 했지?’

소독약을 뿌리는 것보다 소금을 뿌려볼까 하는 생각으로 힘겹게 밥을 먹고 있는 사내를 보는 순간. 뭔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문이 목적이 아니었다. 사내는 의사였다. 그렇다면 고문도 고문이지만 포섭할 생각을 했어야 하는데, 지금 행동은 버릇을 고치겠다는 생각으로 고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확실한 정보를 알 수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고문한 사람을 포섭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후- 조금은 영향을 받은 건가?”

가능성이 있었다. 인아에게 물렸던 것이 떠올랐다. 그 여파가 있는 것일 가능성도 있었다. 변이를 제한하는 중화제를 2번 맞았지만 나상철의 말대로 중화제는 중화제일 뿐 완벽한 백신이나 치료제는 아니었다.

“뭐- 조금 차가워지고 단호해진 느낌이기는 하지만.”

맨 처음 사태가 벌어졌을 때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9월이라 조금씩 해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유미가 인아를 추격한 지 9시간이 넘었다. 오늘은 대충 마무리를 하고 유미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음식 먹는 소리가 그쳤다. 슬슬 다시 시작해야 했다.

“다 먹었어?”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뭘 잘못했는데?”

“대답하지 않은 것 잘못했습니다.”

쯧- 아직도 김이 빠지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일단 기회를 주기로 했다.

“AWS에 대해서는 얼마나 확인됐나? 설명해봐.”

“남자의 시체를 통해 봤을 때, 잔존 수명은 2개월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한의사의 시체를 넘겨줬었다. 해부해 보니 수명에 문제가 생겼더라는 말이었다.

“2개월?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뇌가 변형됐고 일부가 암처럼 변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게 암 확실해?”

변하면 전부 암인가? 암이 아니라 슬레이브를 통제하기 위한 특별한 기관으로 변이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뇌암이라서 시한부 인생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걸 이놈들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차갑게 식은 내 눈빛을 봤는지 사내가 열심히 설명했다.

“암이 아니더라도 조직이 계속 증식되고 있었습니다. 뇌 기능이 마비된다면 죽든 행동능력과 사고능력을 잃든 그랬을 겁니다.”

“연구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뇌의 변형을 막는 방법과, AWS를 일으키는 변인을 찾는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AWS의 변인을 찾는다? 동맹도 AWS를 만들려고 하나?”

“그... 그렇습니다.”

적과 닮게 된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는 말이었다. AWS는 연방의 상징이 결집된 생체병기 체계였다. 수직적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 분쟁이 없고 각자 자기의 역할을 하게 만들어진 세상.

그런 시스템을 자신들도 활용하려고 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쁠지도 몰랐다. 아니면 동맹도 자유나 인류라는 말을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고... 어느 쪽이든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연구소는 대덕에 있나?”

“예.”

뭔가 능력이 있어 보이는 나상철이 왜 갔나 했더니만, 대전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곳이 있었다.

“빗치나 변종과 같은 편먹고 함께 싸우나?”

“그런 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확실히는 모르고?”

“예.”

맨 처음 나상철과 이야기를 했었을 때, 슬쩍 지나가는 말로 했었던 이야기였다. 빗치나 변종들과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었다. 나상철은 내가 버린 갈아 만든 고기가 들어있는 전투식량을 챙겼었다.

“변종이 다른 변종을 먹거나, 빗치가 다른 빗치를 먹고 강해지는 경우가 있지?”

“예.”

“그거에 대해서 말해봐.”

맨홀 변종도 강해졌다. 나중에는 미노의 불꽃을 다루는 능력이 개화되려고 했었다. 인아가 변한 빗치도 바비와 꼬맹이의 시체를 먹었으니 상당히 강할 것이다. 유미는... 유미도 몇 차례 사선을 넘었고 내 피를 먹으면서 컸으니 일반적인 빗치와는 규격이 달랐다.

“우리는 그걸 섭식진화라고 말합니다.”

“섭식진화?”

“식육하는 행위를 통해 변이인자를 흡수해 진화한다는 말입니다.”

“자세히 말해봐.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한 입만 먹고도 가능한가? 부작용은 없나? 한계는 어떤지. 내가 묻기 전에 알아서 말해.”

“무한하게 강해지지는 않습니다. 일정한 한계를 넘으면 더 이상 변이가 되지 않습니다. 부작용은 제어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제어?”

“네. 변이를 통해 진화를 하면 할수록, 파괴적인 성격이나 동물적인 본능이 강해지기 때문에 스스로를 통제하기 힘들어집니다.”

“중화제가 있잖아?”

“중화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섭식진화를 계속한 개체의 경우, 중화제가 듣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전부는 아니고?”

“예. 중화제에 내성을 갖게 된 케이스가 있고 내성 없이 잘 듣는 케이스도 있지만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지는 아직 연구 중에 있습니다.”

인간을 갈았든, 변종이나 빗치를 갈았든 갈아 만든 고기가 들어있는 줄 알면서도 그걸 챙겼던 나상철이었다. 섭식진화를 알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런 전투식량을 아직 변종이나 빗치가 되지 않고 있던 타격조 전투식량으로 공급한 연방 놈들은 무슨 생각이지?

“일반인이 변종이나 빗치의 피와 살을 먹으면 어떻게 되나?”

“서서히 변이를 일으키게 됩니다.”

“변종이나 빗치로?”

“어떻게 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대다수는 그렇게 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슨 병신 짓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혹시... 미노가 떠올랐다. 일반 변종은 대화도 불가능했다. 그저 교활한 사냥꾼에 불과한 변종이었는데, 미노는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개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려는 것은 아닐까?

“이능을 가진 돌연변이가 있나?”

“네?”

“그래. 변종이나 빗치의 사체를 먹다 보면 일반인도 돌연변이가 될 가능성이 있냐는 말이야. 특수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

“그...”

사내가 막 뭐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욱신- 심장이 내리눌렀다. 살기? 메이스와 방패를 챙겨 드는 순간, 천장에서 뭔가가 떨어져 내렸다.

콰직! 묶여있는 사내의 머리 위로 떨어진 그것. 사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숨이 끊겼다. 그 뒤로 이어지는 소리. 고기를 씹는 소리.

우걱우걱.

우직.

피 냄새와 함께 하얗게 피어오른 먼지 속으로 여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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