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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134화 (134/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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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와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또래로 보였지만 그 내용물은 분명 달랐다. 유미는 변이를 일으키면서 조금 더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 됐고, 나는 말 그대로 어려졌다. 그렇게 되다 보니 언뜻 보기에는 선남선녀가 사랑다툼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내용은 살벌했다.

유미가 단단한 표정으로 말했다.

“끝내러 갔다 올게요.”

“위험해.”

“누가요? 제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해야지. 걱정하지 말라니.”

내 걱정과 만류에 유미는 살짝 웃었다. 걱정은 고맙지만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그 미소에 반응한 내 입을 막으려는 것인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먼저 설명을 시작하는 유미였다.

“싸워보니 충분히 해볼 만했어요. 정 불안하시면 페니랑 같이 가죠 뭐. 페니랑 둘이 갈게요.”

“유미야.”

유미가 인아를 끝내러 가겠다고 나올 줄은 몰랐다. 빗치들이 가진 고유한 적대감 때문일까? 아니면 일종의 질투 때문일까? 여러모로 심경이 복잡해졌다.

목이 부러지고 머리통이 반쯤 함몰된 페니는 하룻밤이 지나서야 본래대로 회복됐다. 변이가 됐던 손톱이나 이빨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상으로 돌아온 페니를 데리고 사냥을 간다?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일단, 어째서 그런 변이를 일으켰는지도 확실히 모르고 있었다. 링크의 폭주 때문인지, 아니면 링크를 통해 그렇게 순간 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인지, 뚜렷하지 않았다. 폭주 때문이든 아니든 링크와 관련된 것이라면 내가 곁에 있어야 하는 게 맞았다.

과격한 움직임을 하고 나면 칼로리 소모가 엄청난 것은 나와 유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페니의 경우 일부지만 신체변형까지 일어났다. 신체변형 이후 상당히 향상된 운동능력을 보여줬지만, 그만큼 칼로리 소모가 높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신체변형을 한 상황에서 유미와 함께 추적하기는 힘들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태로 같이 가야 한다는 소린데, 다시 싸움이 벌어진다면 결정적 카드가 되긴 힘들었다.

차근차근 설명했지만 유미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이게 있잖아요. 제가 신호를 보내면 도우러 오시면 되죠.”

유미가 목에 걸고 있던 초음파 피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안 돼. 지하에서 마주치면? 밖이 아니라 큰 건물 안에서 마주치면? 그렇게 가고 싶으면 차라리 나도 가자.”

아무리 초음파 피리라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었다. 유미를 말릴 수 없다면, 같이 가는 게 나았다. 내가 같이 가겠다고 나서자 유미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절 못 믿으세요?”

“이건 믿고, 못 믿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왜 그러는데?”

“믿어주세요. 이건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요.”

이렇게까지 고집을 피울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그럼 최소한 링크로 부스트를 걸 수 있는지만 확인해보자. 어느 정도까지 연결이 되는지 거리도 확인해봐야 하고.”

“시간을 끌면 그게 회복하고 함정을 팔게 분명해요. 그러기 전에 잡는 게 좋아요.”

“유미야.”

“설마 아직도 미련이 남으신 건 아니시죠? 정리해야 할 때는 깔끔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손을 쓸 때는 확실하게 손을 써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이건 고집이자, 일종의 집착에 가까웠다. 인아와의 관계를 가감 없이 말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인아와 싸웠을 때 뭔가 자극받을만한 일이 있었을까?

여기서 나도 같이 고집을 피운다면 그건 또다시 평행선이 될 뿐이었다. 차라리 멀찌감치 떨어져 따라가는 게 나았다.

“행여 따라오실 생각하지 마세요. 만약 그러시면 절 믿지 못해서 그런다고 생각할 거예요.”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유미가 협박했다. 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자 유미가 나를 꼭 끌어안고 중얼거렸다.

“저도 성인이에요.”

“......”

“저도 할 수 있어요.”

“......”

“꼭 제가 제 손으로 처리하고 싶어요.”

“......”

“정말 안 돼요? 제가 그렇게 믿음직스럽지 못해요?”

여기에 왜 믿음이나 신뢰의 문제가 결부되는지 알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다. 이기는 것이었다.

“하아- 믿어. 믿지만.”

“그러니까 믿어주세요. 반드시 돌아올게요.”

“너 진짜. 하아-”

“고마워요.”

내 한숨을 허락의 뜻으로 도장 찍어버리는 유미였다. 그렇게 유미는 페니와 함께 추적을 시작했다.

*

그렇다고 그냥 보내기는 위험했다. 인아가 변한 그것은 분명 감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유미와 싸웠을 때 적극적으로 감염시키려고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남성체에게만 특화된 능력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상이었다. 종구에게 당했던 경험을 또 당하고 싶지 않았다.

유미에게도 단단히 주의를 줬지만 역시 그냥 혼자 보내기는 영 불안했다. 해서 위치 추적기를 달아줬다. 아더스에게서 받은 근거리 위치 추적기인데 지하나 밀폐된 공간에서는 탐지 거리가 짧아지지만 아쉬운 대로 쓸 수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빵조각으로 흔적을 남긴 것처럼, 지하나 건물로 들어가기 전에 위치추적기를 하나씩 떨어뜨리면서 이동하라고 했다. 지하로 들어가거나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입구에 1번 추적기를 던져놓고 들어간다. 추적 중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되면 2번 추적기를 던지고 계속 추적한다.

나중에 내가 추적을 할 때, 가장 마지막 추적기의 신호만 잡아 인근을 살피면 됐기 때문이다. 조악한 방법이지만 이 방법이라도 쓰는 것이 나았다.

‘12시간.’

내가 유미에게 준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전전긍긍 기다릴 수 없었다. 12시간 안에 결판을 내고 돌아오라고 했다. 유미는 24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그건 양보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따라가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을 지키는 신사였기 때문에.... 사람들 보고 따라가게 시켰다.

“약속대로 내가 따라가는 건 아니니까 말이지.”

김경태가 나를 보고 웃었다.

“한창 좋을 때입니다.”

“큼- 그래서 지금 어디쯤 갔다고 하는가?”

외모적으로 보면 거의 10살은 어려 보이는 나에게 꼬박꼬박 경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본래 내 나이를 밝히기도 했지만, 이제까지 보여준 무력이라든지 협상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단지에 있는 마트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주변에 좀비들은 많지 않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것 그쪽으로 사람들을 좀 더 보내요.”

“예?”

“이왕에 거기까지 갔으니까. 마트와 창고에 있는 물건 실어오라는 말입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눈에 띄게 가까이 접근하지는 말고.”

“알겠습니다.”

김경태가 밖으로 나갔다. 아더스 쪽에서는 보급 연락이 없었다. 나상철은 대전 지역에서 벌어진 배신을 처리하기 위해 간다고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급을 보내주기로 했는데 이렇게 감감무소식이면 좋지 않았다.

“버스와 트럭들은 몇 대나 구했습니까?”

사실 1300명에 육박하는 인원을 버스로 실어 나르려면, 단순히 계산해도 30대 이상의 버스가 필요했다. 거기에 식료품이나 무기까지 나를 생각하면 80대 이상의 버스와 트럭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버스와 대형 트럭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사태가 발생하면서 계엄이 떨어졌고 계엄으로 인해, 교통이 상당히 제한됐었다. 버스들은 대부분 차고지에 있었고 트럭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길거리에 있는 버스와 트럭만으로는 80대를 채우기란 불가능했다.

최필도가 서류를 보곤 내 질문에 대답했다.

“버스와 트럭을 합해 13대를 구했지만, 절반은 수리가 필요합니다.”

“SUV차량도 최대한 구해보라고 하세요.”

도로사정이 엉망인 것은 알고 있었다. 군대가 서로 치고 받고 하면서 도로에 퍼진 장갑차나 탱크까지 고려한다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퍼진 탱크나 장갑차 가운데 하나라도 작동하는 게 걸린다면 그걸 앞장세워 밀어 머리고 움직일 수 있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부딪쳐봐야 했다. 앉아서 당하는 건 사양이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했다.

“떠나실 생각입니까?”

“보급이 오지 않는다면, 지금 남은 것을 최대한 아껴서 자구책을 찾아야지요.”

“겨울 전에 갈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 보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계절을 무시하고 무조건 떠나는 게 답입니다. 보급 없이 여기에 묶이면 겨울이 지나기 전 탄약이 동나고 말 겁니다.”

탄약과 미사일이 떨어진다면 그다음에는 노예가 되는 길만 남을 것이다.

최필도가 내 말에 곧바로 반응했다.

“그렇다면 보급을 받는다고 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약속대로 보급을 받는다면 버틸 수 있습니다.”

버틸 수 있다는 내 말에 최필도는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일 좋은 것은 지금처럼 동맹을 유지하면서 보급을 착실하게 받는 겁니다. 넉넉한 보급을 이용해 선발대를 보내 도로를 미리 개척하고, 다른 루트를 찾는 것이지요. 그러는 동안 농업에도 익숙해지고 각자 자기 자리를 잡아가는 겁니다. 그런 방식으로 연방을 압박하는 세력이 되는 것이 제일 좋지만, 여의치 않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최필도 역시 나름 생각하고 있던 바가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곳을 버리게 된다면,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생각해둔 곳이 있습니까?”

“강원도로 가야지요. 가능하다면 섬으로 가는 게 제일 좋겠지만 너도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

식량과 무기만 충분하다면 숫자는 곧 힘이었다. 각 지방마다 생존자들과 살아남은 군인들이 모여 군벌이나 지역자치세력을 만든 지금, 천 명이 넘는 숫자는 확실히 무시하기 힘든 세력이었다.

연방을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버티는 것이 좋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로 인력의 수급 문제였다. 무장과 식량만 받쳐준다면 세력을 가장 빨리 키울 수 있는 곳이 서울이었다.

서울시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동은 화곡4동이었다. 무려 5만5천의 인구였다. 지방도시급 인구가 화곡동도 아니고 화곡4동이라는 좁은 지역에 밀집되어있었다. 다른 동들이야 3만 정도의 인구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건 압도적인 인구밀도였다.

아무리 많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인구밀도와 생존자 숫자 비율을 따져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사람을 모으는 게 가장 쉬웠다.

강원도에 가서 모은다? 강원도 전체의 인구가 113만 명 선이었다. 전방에는 군인들이 많이 있는 상황, 군인이 많이 살아남았다면 군벌이 됐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적은 지역이 강원도 지역이었다.

초기 감염 여파로 미쳐 날뛰었을 때 밀집된 군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좁은 GP와 GOP에서 무장한 병력이 감염되어 총기를 난사했다면? 군벌이 될 정도로 남아있기란 힘들었다. 아마도 좀비들과 변종, 빗치들이 돌아다니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 강원도로 1천 명이 넘는 단일 무장 세력이 넘어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과연 그렇군요. 이왕에 이동하는 것 섬으로 가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속초항이나 동해항에서 배를 이용해 울릉도로 가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최필도는 서해안이나 남해안의 도서 지역이 아닌, 울릉도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일단 가기만 한다면 제법 안전한 곳이 울릉도였다.

“울등도라면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겁니다.”

최필도가 울릉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게 있는지 몇 가지를 언급했다.

“일단 생각해두고 있겠습니다. 오늘 낮 12시까지 보급을 보내라고 했으니 보급이 오지 않는다면 일을 추진하도록 하죠. 미리미리 준비해두시기 바랍니다.”

“네.”

*

아더스에게 말했던 낮 12시가 이제 30분도 남지 않았는데, 도통 연락이 없었다.

“아더스 나상철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바로 받았다.

[보급이 늦어지면 정말 탈퇴할 생각인가? 아직 여유가 있으면서?]

“간을 볼 생각이라면 실수하는 거야.”

[까칠하군. 그리드라고 할만 해.]

“그리드건 뭐건 어떻게 됐지? 이대로 시간을 넘길 생각이라면 오산이라고 말해주고 싶군.”

[말했다시피 당장 이쪽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야. 후방에 있던 탄약창, 병기창 쪽에서 배신을 때렸기...]

“했던 말 반복하게 하지 말고.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 없는지만 말해.”

[일부. 그러니까 요구했던 분량의 절반만 우선 보내지.]

“좋아. 절반 받고, AWS의 사체는 나머지 절반을 받으면 보내주도록 하지.”

[그것 때문인데 말이야. 하나라도 먼저 보냈으면 좋겠는데. 둘을 보내기로 했지만 우리가 절반을 보냈으니 그쪽도 절반은 보내줄 수 있지 않은가?]

“이 말은 이미 끝난 이야기라고 생각되는군.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했을 텐데.”

나상철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좋아. 절반 보내고 이쪽 정리가 되는 데로 나머지 절반을 보내지. 잊지 말라고 작전이 시작되면 그쪽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 보급만 받고 입 닦지 말라고.]

그 억양은 경고였다.

“약속은 지키니까 보급이나 제대로 보내.”

경고라. 아마도 뭔가 보복할 방법이 있다고 은연중 말하는 것 같았다.

후방에 있는 탄약창과 병기창을 장악한다면, 지대지 미사일이나 토마호크 같은 것을 구할지도 몰랐다. AWS과 같은 생체병기가 아니더라도 미사일 같은 무기를 넉넉하게 확보하는 쪽이 유리해지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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