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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132화 (132/261)

스케빈져 Scavenger (2)

목덜미에서 화끈한 느낌이 들었다.

이빨이. 혀가. 그것이. 내 목덜미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신경을 잠식하는 열기.

알싸한 감각이 후각과 촉각을 동시에 헤집었다.

“으아아아악!”

달라붙은 그것을 잡았다. 떨어지지 않겠다는 것을 억지로 잡아 뜯는 순간, 목에서 살점이 뭉텅이로 뜯겼다. 콰직!

“아저씨!”

쾅!

유미가 메이스로 내려치는 것을 냉동고 문짝으로 틀어막고 옆으로 훌쩍 피한 그것이었다. 입 안 가득 물어뜯은 살점을 음미하듯 꿀꺽 삼키고는 웃었다. 웃는다. 지금까지 기다렸다는 것처럼.

“흐으~아아아~호호호”

절정에 달한 교성을 내는 것처럼 색스러운 소리.

그 끝에 매달린 광소. 양팔로 자기의 팔뚝을 감싸 안고 흥분하는 그것이었다.

유미는 그것의 소리에, 그것의 입가에 띤 미소에 눈이 돌아갔다.

“죽어버려!”

콰자작!

30kg짜리 메이스가 수직으로 떨어지고 강철방패가 수평으로 갈랐다. 그것은 정신 나간 여자처럼 비틀거리며 유미의 공격을 피했다. 그것의 하부에서 흐르는 미끈한 애액.

“이-야아아아!”

유미의 분노에 찬 공격을 그것은 스텐 냉동고 문짝으로 막았다.

콰....지지직

거대한 폭음과 함께 동그랗게 충격파가 생겼다. 유미의 눈동자는 그것이 막았다는 것에 대한 놀람과 죽이지 못했다는 분노 그리고 살의가 뒤섞여 흔들렸다.

그것이 유미를 보며 이죽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지독한 혐오감을 표출하는 두 여자였다.

“알고 있을까나? 그는 널 사랑하지 않아.”

“닥쳐!”

가각-거리며 두 여자가 엉겨 붙었다.

“......”

“그가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 지 알아?”

유미는 입을 꾹 다물고 힘을 집중했다. 맨홀 변종과도 1:1로 싸웠던 유미의 힘을 그것은 버텨내고 있었다.

“그는 말이지. 결단력 있는 여자를 좋아해.”

“......”

“과감하고. 솔직하고.”

“......”

“능력 있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

“질투하는 여자는 추하다고. 안 그래?”

그것이 마치 과거를 추억하는 목소리로 유미에게 속삭였다. 유미가 살의를 담아 외쳤다.

“죽어! 네가 뭘 알아!”

스텐으로 된 문짝이 우그러지고 찢겨질 정도로 짓누르는 유미.

그것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것과 내가 눈이 마주쳤다.

느려진 시간.

폐허가 된 정육코너가 지우개로 지워진 것처럼 사라졌다.

검붉게 칠해진 공간 속에 그것과 나와 유미만 남았다.

할짝-

그것이 혓바닥을 내밀에 입술에 묻은 피를 마저 핥았다.

[*******]

두근-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느낌. 내 심장의 중심이 내리 눌리는 것이 아니라 약간 빗겨난 곳이 내리 눌리는 느낌.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는 감각.

욱신-

그것은 유미와 힘겨루기를 하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달싹이는 입술.

언제부터인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것에게 물린 곳으로 투명한 무엇인가가 파고들어 오는 느낌이었다.

넝쿨 식물이 파고 들어오는 것처럼 내 몸속을 헤집으며 자라는 무엇.

상처를 헤집고 척추를 움켜쥐었다. 뱀이 먹이를 옥죄는 것처럼 죄어졌다.

그렇게 머리를 향해 조금씩 기어오르는 감각.

하반신이 마비되며 푹! 무릎이 꺾였다.

바닥에 있던 살찐 바퀴벌레들이 엉금엉금 기어가다 툭 터져나갔다.

“......”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음의 공간에서, 불꽃이 튀고 공기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것과 유미가 충돌할 때마다 바닥에 널브러진 바퀴벌레와 썩은 고기들이 튀어 올랐다.

[*******]

그것은 나를 보고 뭐라고 하고 있었다.

뭐라고?

대답을 했지만,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의 눈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유미가 절규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동공에 박혔다.

유미의 절규에도 마주 선 세상은 침묵하고 있었다.

*

어째서 위기감응이 발동되지 않았지?

왜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지.

그것과 마주치는 순간 움직일 수 없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신공격?

두근-두근-

몸속으로 파고든 뱀이 내 심장을 조이기 시작했다.

터질 것처럼 반항하는 심장.

꺾인 무릎에 힘을 넣어보지만, 석상처럼 굳어버린 두 다리엔 감각이 없었다.

그것이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저 미소. 본 적 있다.

“너...”

처연하게 울던 모습.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속였던 마음.

그렇게 평행선처럼 지나갔던 행동의 끝에 한 여자가 떠올랐다.

의자.

의자엔 관통된 시체가 앉아있었다.

그녀의 시체였다.

어깨까지 내려왔던 머리카락은 항상 내 곁에서 흔들렸었다.

실없는 농담이었지만 주고받을 때마다 웃어줬던 미소.

그렇게 망가져 버린 세상에서 온기를 나눴던 모습이 생각났다.

커다랗지만 단호한 눈매. 그 눈동자는 나를 보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나를 찔렀었기에 오히려 믿을 수 있었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시 상황이.

잊었던 과거가.

그것으로 변해버린 얼굴에 겹쳐졌다.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어지는 무심한 기계음.

=문이 열립니다.

푸욱!

날카로운 금속창이 울먹이던 몸을 꼬치 꿰듯 꿰었다.

벼락에 맞은 것처럼 꿈틀거리던 육신은 탄식을 잊었다.

그래, 그랬을 뿐이다.

그녀의 늘어지는 몸뚱이는 분명 의자에 앉아있었다.

“인아?”

과거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그것이 내 중얼거림에 미소로 화답했다.

[*******]

들리지 않았다.

들리지 않아, 들을 수 없다. 유미의 분노어린 공격을 막아내던 그것이 중얼거리자 심장을 옥죄던 것이 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아무런 감각이 없는 두 다리가 저절로 움직였다.

터벅. 터벅.

유미와 그것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한 걸음씩 움직이는 몸.

두 다리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건... 내 정신은 또렷했다. 육체장악인가?

나에게 살의를 뿜지 않았다. 날 죽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위기감응이 발동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날 노리고 있었다. 내 주위에서 숨어있었다. 기회를 보며 힘을 기르고 있었다. 빗치와 변종들의 시체를 먹으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한 걸음씩 다가가는 그것이 나를 보고 말했다.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의 말을 들은 유미의 동공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유미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것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봤다. 뭐라고 말했기에...

내 몸은 그것이 묻는 말에 대답하고 있었다.

뭐라고 대답하는 거지?

혀가 움직이는 느낌, 내 입술이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것을 무시했다.

‘와라!’

*

무엇에 충격을 받았는지 유미는 그것의 공격을 힘겹게 막고 있었다.

그것은 유미를 조롱하며 공격하고 있었다.

그것의 말은 저주라도 되는 것처럼 유미를 갉아먹고 있었다.

소리가 없는 공간.

침묵의 공간에서 불꽃이 튀었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금이 가던 유리창이 터지며, 햇빛을 등에 업고 페니가 뛰어들었다.

유미를 몰아치던 그것의 표정에 순간 당혹스러움이 드러났다. 그것이 유미를 밀치고 페니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페니가 내 허리춤에 있는 가방을 뺏어 중화제를 꺼내 내 목에 찔러 넣었다.

그것의 입 모양.

[멈춰.]

꽉 막혔던 청각과 석고상처럼 굳었던 촉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두 다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 번 더.’

내 생각을 알아들은 것처럼 페니가 중화제를 한 번 더 밀어 넣었다. 내 몸속에 자라있던 검은 넝쿨이 빠르게 시들었다. 내 심장과 두 다리를 옥죄던 뱀이 버둥거렸지만, 결국 힘을 잃었다.

“페니. 잘했어.”

치익-

스펙을 넣었다. 한 번.

말라비틀어진 넝쿨에 불이 붙은 것처럼 스펙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혈관을 녹여 버릴 것처럼 끓어오르는 약효.

“크윽!”

“안 돼! 멈춰! 내 거야. 당신은 내 거라고!”

그것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절박한 목소리였다. 약간은 변했지만 목소리는 예전 그대로였다. 과거의 기억만 남았지 감정은 없다고 했다. 속을 줄 아나? 절대로 속지 않는다.

치익- 두 번.

“크아아아아아!”

혈관을 뒤틀면서 흘러들어 간 스펙이 전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맨홀 변종을 죽였을 때와는 다른 감각. 근육으로 가야 할 약효가 머리로 몰리는 것만 같았다. 뇌수가 끓어오르는 느낌. 앞으로 보던 시야가 둘로 변했다. 하나는 내 시야였고 다른 하나는...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끔찍한 두통이 엄습했다. 시야가 나뉘고 몸이 조각조각 찢어지는 것 같았다. 둘로 나뉘었던 시선이 셋으로 이윽고 넷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이곳으로 달려오는 것 같은 느낌. 몸이 조각나 셋으로 나뉘는 것 같은 느낌.

스펙을 맞으면 생겼던 부작용. 식욕이 뇌리에서 반복됐다.

“으아아아아!”

식욕.식욕.식욕.식욕.

페니의 눈동자가 내 욕구에 물든 것처럼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부르르 떨던 페니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치이익-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하는 페니였다.

깨진 창문으로 단발머리, 캐리와 파마머리 제티까지 들어왔다. 세 여자의 눈동자가 루비처럼 붉게 변해 빛나기 시작했다. 캐리와 제티도 고양이 손톱마냥 삐죽 늘어나고 송곳니가 돋았다.

내 눈앞에 보이는 그것은 식욕과 살의 그리고 파괴의 대상일 뿐.

‘적이다.’

죽여라. 죽이고. 죽여서.

단 한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먹어치워!’

먹어. 먹어. 먹어. 먹어.

세 여자의 입이 옆으로 길게 찢어지며, 송곳니가 더욱 길게 돋아나왔다. 가장 먼저 페니가 반응했다. 그녀가 발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잔상만 남았다.

쾅!

그것이 스텐 문짝으로 달려드는 페니를 막았다. 까가각- 손톱에 걸린 문짝이 사과껍질 벗겨지듯 벗겨지며 불꽃 냈다.

“크아아아아!”

페니의 입에서는 내가 지르는 소리처럼 고함만 들렸다. 캐리와 제티도 그것을 향해 달려들었다 유미는 갑자기 날뛰는 여자들 때문인지 아니면 뭔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지 옆으로 밀려나 있었다.

‘죽여! 죽여 버려!’

그것이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포위해 몰아붙이는 세 여자였다. 짐승과도 같은 움직임, 방어를 무시하고 공격만 하는 그 괴악한 몸놀림에 그것이 구석으로 몰렸다.

“무우-! 막아!”

그것이 뭔가를 불렀다.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근육질의 변종이 세 여자를 가로막았다.

“무우우우!!!!!!!!!!!”

‘죽여!’

‘가로막는 건 죽여 버려!’

‘먹으라고. 먹어 치우라고!’

타들어 가는 혈관,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나도 뛰쳐나가 싸우고 싶지만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모든 신경이 세 여자의 움직임에만 집중됐다. 마치 내 몸이 셋으로 변한 것처럼 시야가 뒤섞이고 붉게 변했다.

주륵- 실핏줄이 터지면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세 여자는 천장을 뚫고 내려온 근육질 변종에게 달려들었다. 콰득! 근육질 변종이 페니의 몸통에 주먹을 박았다. 일격에 갈비뼈가 박살나며 몸통이 꿰뚫린 페니가 자신의 몸을 뚫고 들어온 팔을 붙잡고 뒤틀었다. 몸을 내주고 팔꿈치를 잡아 뜯어낸 페니가 몸통에 박힌 변종의 팔을 뽑아들고는 게걸스럽게 뜯어먹기 시작했다.

캐리와 제티가 그것을 공격하자. 한쪽 팔을 잃은 근육 변종은 자기의 팔을 뜯어먹고 있는 페니를 버려두고 그것을 지켰다.

“무우우우우!!!!”

한 팔로 두 여자를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두 여자는 마치 늑대처럼 물고 늘어졌다. 그것이 변종을 도와 두 여자를 뜯어내려고 했다.

치이익- 캐리와 제티의 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수분이 증발하면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서서히 색이 변했다.

점점 붉게 변하기 시작한 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붉게 변했다. 피 안개처럼 모공에서 붉은 연기를 피워 올리기 시작하는 제티와 캐리였다.

근육 변종의 팔뚝을 다 뜯어먹은 페니가 가세하자 순식간에 상황이 변했다. 날카롭게 변한 세 여자의 손톱이 근육 변종의 몸을 난도질했다. 자동차 사고에서 날 법한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가죽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고 피가 튀었다.

세 여자의 팔다리가 기형적으로 꺾였다가 다시 회복됐고, 뜯어 먹혔던 근육 변종의 팔은 도마뱀 팔처럼 다시 자라났다. 뼈와 살이 갈리는 싸움. 찢고 자르고 씹는 싸움이었다.

“무우! 뿌리치고 가자!”

그것이 근육 변종에게 외쳤다. 근육 변종은 달라붙는 세 여자를 뿌리치기 위해 옆에 있던 냉장고를 집어 던졌다. 바로 앞에 있던 제티가 피하지 못했다.

제티의 몸통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반동이 느껴졌다. 내 몸이 터지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주륵- 내 코에서 코피가 흘러내렸다. 제티의 머리통이 박살났는지, 더 이상 연결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죽여. 죽여 버려.’

근육 변종의 팔을 뜯어먹은 페니는 조금 더 강해졌다. 내 분노와 감정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것을 향해 달려드는 페니였다.

근육 변종이 총알처럼 날아가는 페니의 발목을 잡는 순간, 캐리가 변종의 뱃가죽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찢었다.

창자가 쏟아지고 이윽고 장기들이 흘려내렸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아무는 변종의 상처를 그냥 두지 않았다. 내장을 잡아 뜯어 먹고, 간을 터뜨리는 캐리였다.

먹어 치우라는 내 명령대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식욕을 대신 해소하려는 것처럼. 캐리는 변종에게 달라붙어 이를 박았다.

으르렁거리는 짐승들의 싸움 속에서 맑은 기합소리가 들렸다. 유미였다.

“이아아얏!”

콰직!

유미가 휘두른 메이스가 근육 변종의 머리통을 반쯤 박살냈다. 머리통이 함몰된 채로 변종이 몸부림쳤다.

“무우우우우!”

놈이 달라붙은 캐리를 두들겨 팼지만 소용없었다. 캐리는 마치 병정개미 같았다. 몸통이 터져도 물고 있는 적은 놓지 않는 병정개미처럼. 캐리는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캐리가 맞을 때마다 전신이 찢기는 감각. 시선이 흔들리고 격통이 역류했다. 머리통이 반쯤을 박살난 변종과 사지가 찢어져 나가는 캐리 그리고 그 사이로 메이스를 휘두르는 유미.

우직-변종이 달라붙은 캐리의 목을 뽑아내는 순간, 유미가 변종의 머리통을 메이스로 으깼다. 내 목이 생으로 뽑히는 감각과 함께 입에서 피가 나왔다.

울컥-

넷이었던 시선이 셋으로 줄었는데 순간적으로 또 하나가 사라진 느낌. 모니터가 갑자기 꺼진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역류한 통증으로 집중력이 흩어졌다. 집중력이 흩어지며 두 개의 시선이 일그러졌다. 페니의 시선과 내 시선이 동시에 흔들렸다.

그 잠깐, 아주 잠시 흔들린 찰라. 그것이 페니의 머리통을 문짝으로 내리쳤다. 목뼈가 부러지며 페니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내 머리통을 맞은 것처럼 시야가 뭉개졌다.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감각.

스펙의 열기가 순식간에 꺼지고 내 몸 자체를 녹여버리는 것 같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야.”

비틀- 수족이 없어졌다면. 이젠 내가 움직일 때다.

살의가 녹아내리는 육신을 연료 삼아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식욕, 파괴욕, 살의, 성욕.

“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제 남은 건 하나.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

주륵-코피가 멎지 않았다. 폐를 가득 채운 피가 호흡을 방해했다.

‘한 번 더.’

스펙 주사기를 들었다.

주사기를 목에 박으려는 순간.

꽈악! 뭔가가 내 팔을 막았다.

스펙을 쥔 내 팔을 막은 보드라운 감촉.

방금 전까지 허공을 찢을 것처럼 날카롭게 채운 살기가 꿈인 것만 같았다.

붉게 물든 시야에도 하얗게 보이는 모습.

유미였다.

유미가 스펙을 쥔 내 팔을 막고 있었다.

어째서?

“그만해요. 이제 그만해요.”

유미가 나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것이 그런 나와 유미의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다.

그것은 유미를 노려본 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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