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스트 DUST-130화 (130/261)

습격 (3)

시체가 또 없어졌다고?

“아무리 상황이 어수선하다고 하더라도 이게 무슨 일입니까?”

허수아비가 서 있었어도 시체가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겠다. 울컥하는 심정을 꾹 내리눌렀다.

“뒷정리 한 사람들 전부 파악해두세요. 그 사람들 가운데 저쪽 스파이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단 한사람도 빼놓지 말고 확인하세요.”

“친인척들은 어떻게 할까요?”

“친인척뿐만 아니라 친구들까지 파악해두세요. 여차하면 전부 잡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아더스에게 넘기고 소모된 탄약과 토우 미사일 등을 챙겨야 했다. RPG같은 게 있다면 더 좋았을 것을. 아니 토우가 낫나? 발칸이나 유탄발사기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넘겨주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도 이쪽은 새로 획득한 은색금속상자가 있었다. 상자 안에는 알약과 주사제를 포함한 다양한 내용물이 있으니 협상을 하는 건 문제없었다.

“지금부터 경계는 비상으로 돌리고, 경계 배치표는 다시 짜도록 하세요. CCTV 설치는 어떻게 됐습니까?”

“북쪽은 완료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른 방향도 최대한 빨리 설치하도록 하세요. 인력으로는 전부 확인할 수 없습니다.”

1400명이 4km²에 가까운 면적을 감시하기란 쉽지 않았다. 좀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지만 지능이 있는 놈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란 쉽지 않았다.

이건 방벽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놈들은 방벽의 높이를 높였다. 10m가 훌쩍 넘는 방벽으로 차단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쪽은 자동차로 쌓아올린 벽이었다. 6m 이상 쌓았지만 이성이 있는 존재가 마음먹고 오르려고 한다면,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높이었다.

“2차 방어선을 고치도록 하고, 중간에 벙커처럼 방어 진지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이번처럼 방어선으로 후퇴하다 맥없이 당하는 인원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 때 밖에서 다시 긴급보고가 올라왔다.

“헬기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아더스는 아니었다. 그들이라면 동맹이라고 말했을 테니까 말이다.

“헬기의 숫자는 3대.”

보고는 계속 올라왔다.

“자신들을 ‘인류 연방(Human Federation)’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각 무장을 해제하고 항복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항복하라고?”

“공격하겠다는 건가?”

“헬기가 3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인류 연방이라고?

연방이라고 하면 자치권을 가지는 작은 국가 또는 지방이, 공통의 정치 이념 아래 결합하여 구성하는 국가를 의미했다. 연방에 속한 지방정부가 자치적으로 대내 주권을 행사하고, 연방 정부가 외교권, 군사권과 같은 대외 주권을 행사하는 구조로 구성된 국가형태를 말했다.

‘연방이라고 했단 말이지?’

제국이나 공화국도 아니고 연방이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놈들도 정책노선을 바꿨다는 소리였다. 왜 바꿨을까? 아더스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바꿨을 것이다.

“신궁 발사 준비, 비상경계 발동, 헬기 기종은?”

“2대는 블랙호크 계열, 한 대는 공격헬기. 아파치입니다.”

분위기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

공격헬기 아파치. 그냥 단순히 헬기 한 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탱크 5대보다도 무서웠다. 실로 하늘 위의 저승사자였다.

아더스 나상철의 말대로라면 아파치는 저쪽에서도 몇 대 없는 헬기였다. 아더스도 몇 대 없고 그래서 전력의 균형이 잡혀있는 상황. 그런 아파치를 끌고 왔다는 건, 무력시위를 하겠다는 것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겠다는 심산이었다. 이길 자신이 있으니, 까불지 말고 항복하라는 소리였다.

‘신궁을 들키지 않았다?’

지대공미사일이 있다는 것이 발각됐다면 저런 식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행정부와 무력부로 나누고, 무력부 가운데도 강경파 계열에게 화력을 집중시켰던 것이 의외의 성과를 올렸다.

‘아파치가 뜨면 항복할 거라고 봤군.’

박격포와 중기관총, 토우까지는 확인했지만, 신궁이 걸리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아파치가 떴다면 포기해야 합니다.”

“미쳤습니까? 저 놈들이 누군 줄 알고 무장해제를 합니까?”

“싸웁시다!”

“개죽음이요!”

“저들이 이곳에 온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합니까? 뒤처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 갑자기 등장해 무장해제하라고 협박하는 게 우연이라고 생각하느냔 말입니다.”

“우연이든 우연이지 않든 전력차이가 확실합니다.”

“그렇습니다. 아파치 헬기라면 1~2km밖에서 일방적으로 유린하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싸워보지도 않고 총을 버리겠다는 겁니까? 놈들에게 끌려가 생체실험을 당해도 좋다는 말입니까? 인류 연합이라고 했지만 헬기를 운영할 수 있는 세력은 둘, 방벽 놈들과 우리와 동맹을 맺은 아더스 밖에 없습니다. 방벽 놈들이 명찰을 바꿔 달은 이유가 뭔지 모른단 말입니까?”

“현실을 봐야 합니다.”

“그 현실을 말하는 겁니다. 놈들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항복을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고 했습니다.”

"선제 공격을 하지 않고 항복을 요구했다는 건 대화가 통한다는 소립니다."

그 말을 듣고 김경택이 목소리를 높였다.

“싸우지도 않고 그냥 항복하겠다는 소리요?”

하지만 김경택의 분노어린 목소리는 새로 합류했던 사람들의 말에 묻혔다.

“막말로 그렇지 않소? 여기서도 우리에게 항복하라고 하지 않았소?”

“옳소. 우리가 항복하지 않고 싸웠다면? 우린 전부 죽었을 것이오.”

새로 합류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예전과 같은 상황이었다.

저들은 처음에 싸우지 않고 항복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흡수됐다. 흡수되고 보니, 예전보다 더 안전해지고 좋아졌다.

그러니 싸우지 않고 더 크고 강한 세력 휘하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경험에 의한 판단이었다.

“대표가 보여준 자료를 잊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놈들은 생체실험을 하는 것들입니다.”

“그게 저들과 상관있는지 어떻게 압니까?”

“우리가 생체병기에게 공격당한 뒤, 바로 왔단 말입니다.”

“박격포에 토우 미사일까지 쏴댔으니 인근에 있는 자들이라면 그 소리를 듣고 정찰을 왔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생체실험을 한다고 했지만, 그 증거라고는 USB에 나온 자료밖에 없었다. 그 USB의 정보에서 나온 세력이 지금 헬기를 가져온 저들이라는 증거가 없었다.

전력차를 인정하고 금방 항복하는 사람들을 합류시켰던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말이 통하는 인간과는 협상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조용!”

“......”

“......”

여기서 강압적으로 나간다면 최악의 경우 총구를 거꾸로 돌릴 가능성도 있었다. 조직을 유지하고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생각해야 했다. 놈들이 기습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항복을 종용한 이유가 뭔지 파악해야 했다.

놈들은 AWS실험을 했다. 안에 들어와 분탕질을 했다.

그 정보를 받고 타격조를 출동시켰다. 블랙호크 계열 2대, 아파치 1대. 침투한 놈을 통해, 1400명이 넘는다는 것은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AWS를 막아낸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항복하라고 한다.

왜?

내 정보는 놈들에게 들어가지 않았다. 정보가 들어간 것은 유미였다.

유미? 유미를 생포하기 위해?

지금 상황에서 무조건 공격하면 유미까지 공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장해제를 하고 나면 변종이나 빗치를 포획하는데 특화된 타격조를 투입해 포획하기 쉬웠다.

사람을 먹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특이한 빗치, AWS로도 장악하기 힘든 독특한 개체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인간과 함께 있으면서 인간을 돕는 개체는 저들에게 필요한 샘플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게 목적.’

이 말을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면 역효과였다. 나와 유미만 넘기면 안전을 보장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저들은 스스로를 연방이라고 했습니다.”

“.....”

“.....”

지금 이 상황에서 연방이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은 대략 1/3가량. 그래도 소수였다. 이번 위기를 넘기면 뜯어고쳐야 했다.

“연방이라고 말하고서 우리에게 무장해제와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까? 연방은 그에 속한 그룹에게 자치권을 주는 정치형태입니다. 미국의 주정부와 미연방정부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우리에게 연방에 들어오라고 권유하지 않고 항복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규칙을 알려주지도 않고 어떤 제의도 없이 무조건적인 항복만 강요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약간의 관심을 보였다.

“저렇게 협박을 하는데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을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서로를 대하듯 평등하게 대할 거라 생각합니까?”

생각할 틈을 주지 말고 밀어붙인다.

“상식적인 자들이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며 무장헬기까지 동원하겠습니까? 역으로 생각해서 무장헬기를 동원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저 정도의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제까지 뭐하고 있다 지금 왔을까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계속 압박했다.

“저들이 이곳에 스파이를 심어 놓지 않았다면 우리 상황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놈들이 처음부터 우리를 노린 것이 아니라면 지금 온 이유는 뭐냔 말입니다.”

틈을 주지 말고.

“소란? 식인종들을 토벌하면서 초등학교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렸고, 만 단위 좀비를 태우느라 이틀 동안 불꽃과 연기가 피워 올랐습니다. 그때는 꿈쩍도 하고 있지 않다가 지금 얼씨구나 하고 왔다고요? 교전한 시간을 따지자면 10분 정도도 되지 않았는데?”

입을 벌리려는 것을 틀어막았다.

쾅!

회의용 원형 탁자에 금이 갔다.

“정신 차리세요.”

쾅!

콰지직-원형 탁자의 금이 길게 그어졌다.

“정신 차리란 말이다!”

“싸워야 놈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신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에게 항복하라고 하기 전 신궁부터 공격했을 거다. 지대공 미사일이 있는데 헬기를 타고 와? 공중에서 선회하면서 항복하라고 협박해? 알았다면 신궁 발사대부터 공격했을 거다. 놈들이 우리 전력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소리다.”

“그런 놈들에게 겁을 먹고 총 한 방, 가지고 있는 미사일을 쏘지도 않고 항복해?”

몇 명이 눈치를 봤다.

“우리가 먼저 선제공격한다. 신궁발사준비.”

쾅!-

테이블이 박살났다.

“신궁 발사. 시간차로 쏜다.”

“넷.”

“눈치 본 놈들 무장 해제시키고 가둬.”

“넷.”

신궁은 적 항공기의 엔진에서 나오는 열을 추격하는 적외선 열추적 미사일이지만, 플레어와 같은 적외선추격 회피기능에 대응하는 대적외선대응방해 기능을 갖추고 있는 미사일이었다.

게다가 목표에 명중하지 않더라도 근접에서 폭파되는 근접폭파 기능까지 있어, 탁월한 명중률을 가진 미사일이었다. 전투기라면 모르겠지만 헬기라면 거의 확실하게 잡을 수 있었다.

1~2km를 오가며 무력시위를 하던 아파치가 지대공 미사일이 발사된 것을 보곤 즉각 반격했다. 헬파이어로 대응 사격 후 플레어를 사용하며 회피기동에 들어가는 아파치였다.

콰아아앙!

“적이 쏜 미사일이 방어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처음부터 벽을 무너뜨릴 생각을 하고 있던 놈들이었다.

“버스로 틀어막아. 적 헬기는?”

아파치가 회피기동을 하며 빌딩 사이로 피했다. 굉장히 숙련된 조종사였다. 아파치가 필사의 회피기동을 하는 동안, 블랙호크 두 대는 이미 산산조각 났다. 이윽고 굉음과 함께 아파치의 산해가 빌딩 위로 추락했다.

“적 헬기 모두 격추했습니다.”

혹시라도 자동차벽이 뚫릴 때를 대비해 휘발유를 뽑지 않았었는데 그게 도움이 됐다. 벽은 무너졌지만, 주변이 불바다였기 때문에 좀비들이 들어오지 못했다.

“U자로 벽을 쌓는다.”

무너진 부분을 그대로 두고 안쪽으로 벽을 쌓았다.

*

신궁을 4발이나 소모했기 때문에 좋든 싫든 추가 보급을 받아야 했다. AWS와 교전 시간은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탄약 소모량은 4만 발 넘게 소모했다. 거기에 토우까지 사용해서 잡은 숫자는 고작 2마리, 그나마 토우가 없었다면 끔찍했다.

아더스 나상철에게 보급을 요청했다. 보급을 요청하면서 방벽 측이 스스로를 인류 연방이라고 불렀고 무조건 항복을 하라고 했다는 것을 알렸다.

[그랬군.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 때문에 연락하려고 했었다.]

“일단 약속대로 보급을 해준다면 좋겠는데?”

[후방에서 이탈이 생기기 시작했어.]

“동맹을 깨고 저쪽으로 배를 갈아타는 놈들이 생겼다고?”

[대의를 버리는 놈들이 생겼다는 소리다.]

“그래서? 더 이상 보급은 어렵다는 건가?”

[헌신짝처럼 대의를 내버리고, 동맹을 깬 놈들을 그냥 둘 수 없다.]

“내분인가?”

나상철은 대답이 없었다.

“그쪽 상황은 알겠는데, 여기도 엉망이거든. 연방 놈들이 AWS를 계속 실험하고 있다고. 언제 무슨 일이 생겨도 모를 상황이란 말이지.”

[......]

“슬레이브 시체를 구했으니, 시체가 필요하면 보급품 가져와.”

[다시 연락하지.]

헬기 3대를 잃은 방벽 놈들, 이제는 인류 연방이라고 하는 놈들은 더 이상 도발도 접근도 하지 않았다. 신궁의 최대 사거리는 7km 내외, 헬파이어는 8km 내외였다. 충분히 선제 타격을 할 수 있음에도 놈들은 더 이상 무력도발을 하지 않고 있었다.

선제공격을 했으니 전면전이 벌어질 거라는 걱정과 달리 연방에서 몸을 사리자. 사람들은 다시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내부 불안요소를 미연에 제거해야 했다.

“유미야.”

“네.”

“스케빈져(scavenger-시체를 먹는 동물)부터 잡자.”

“예~”

유미가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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