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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127화 (127/261)

선택 (3)

변종 이야기가 나오자 유미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근처에 변종이 있다는 게, 기분 나쁘다는 표정이었다. 예전에는 담담하게 지나갔었는데...

“그때는 우리 둘밖에 없었으니까요. 스펙도 부작용이 심하다고 했고 또... 지금은 쟤네들이 있잖아요.”

유미가 의자에 앉아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세 여자를 쳐다보며, 살짝 든든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즘 세 여자와 함께 다녔다. 같이 하는 일이 많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자주 몰려다니기는 했다. 세 여자들도 처음에는 완전히 인형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최근에는 조금씩 의사소통도 하고 있었다.

“그래 얘들과는 의사소통이 잘 되고?”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어요.”

승리한 것처럼 가슴을 앞으로 쑥 내밀고 뿌듯해 하는 유미였다.

“일상적인 대화가 되는 거야?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제대로 의미전달은 되고?”

“흐음 숙녀들의 대화 내용이 궁금하신 건가요?”

유미가 짓궂게 억양을 바꿨다.

“아니. 그게 아니라.”

“하는 말이 다 그렇죠.”

유미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세 여자를 쳐다봤다.

“다들 임자 있는 몸이잖아요. 저도 그렇고. 쿡- 그럼 무슨 이야길 하겠어요.”

뭔가 아줌마들이 쑥덕이는 그림이 떠올랐지만, 설마 그럴까? 임자 있는 몸이라고? 한의사는 죽었고 종구도 죽었고. 난 쟤들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그냥 링크를 했을 뿐이라고.

“어라? 네?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유미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흑-흑-흑- 링크라니요. 정신적인 연결이라니요. 그러시고는 이제 이 여자들을 모르신다 하시는 것이옵니까? 너무 하옵니다. 몸은 줄지언정 마음은 주지 않는다고 하시더니 마음을 주신 것 아니시옵니까? 소녀... 소녀는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저들은 이제 어찌하란 말입니까?”

사극체로 돌변하는 유미였다. 그런데 가만히 있던 세 여자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에라! 딱콩-이다.

“아얏! 이... 이건 뭔가요? 증거인멸?”

“증거인멸은 무슨 장난치지 말고.”

“칫- 진짠데.”

“진짜는 무슨.”

유미가 이마를 슥-슥- 문지르고는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마트에 있는 변종은 안 잡을 건가요?”

종로에서 딱콩 맞고 한강에서 변종을 사냥하고 싶은 건가?

“4:1이니까 금방 잡을 수 있다고요. 그렇지 얘들아!”

자기와 세 여자들이 함께 싸운다면 충분히 자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끼리 가겠다고?”

5:1이 아니라 4:1이라고 말했다. 나는 빼겠다는 소리였다. 여자들끼리 몰려가 두들겨 대겠다는 건데... 유미는 내 질문에 당연한 말을 왜 묻느냐?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 수는 없겠는데.”

“왜요?”

“안전지대를 만들었으면서 여기 근처를 뺀 이유가 뭐라고 했지?”

“다른 사람들이 여기 근처에 오는 게 싫고, 변종 때문이라고 했잖아요.”

“그래. 변종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다른 사람들도 이 근방에 올 수... 아? 그보다 먼저, 이 근처에 있는 생존자들이 움직이겠군요.”

생존자들이 움직이는 건 상관없었다. 이제는 흡수냐? 아니냐? 양자택일만 남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생존자들은 문제가 아니야. 우리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자들은 쫓아내면 그만이니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야.”

“뭔데요?”

“여기 있던 시체 어디로 갔지? 여기에 있던 그 시체들 말이야. 기억 안나?”

“아- 그... 여자 말이군요.”

떠올리는 순간, 유미가 묘하게 반응했다. 민감한 반응. 그 당시 인아, 바비, 유미의 배다른 여동생의 시체가 사라졌었다.

인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빗치라면 난감했다. 인아는 상당히 과감하게 행동하는 편이었다. 그런 성격이 남아있다면 쉬운 상대가 아닐 것이다.

‘어디로 갔을까?’

어찌 됐든 시체가 있던 자리에는 빗치 특유의 체향이 남아있었고 그 체향을 추적해 펜트하우스를 통째로 뒤졌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뚝 끊겨버린 체향이었다.

그 당시 흔적을 놓치고는 그냥 손을 놓을 수 없어 대비를 했었다. 작동되는 CCTV를 덕지덕지 붙여놓고 환풍구까지 철근으로 막는가 하면, 경보기를 달았었다.

“인아가 빗치로 변해서 나갔다면, 인근에 있을 가능성도 있어.”

유미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빗치를 생각하거나 부르는 것이 싫은 것 같았다. 유미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가만히 창문 밖을 살폈다. 인근에 빗치가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자존심이 상한 것처럼 보였다.

유독 그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얼마 전까지 장난을 쳤었다는 게 거짓말 같은 침묵이 흘렀다. 작게 숨을 들이쉰 유미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말을 할 때마다, 창문에 유미의 입김이 어렸다.

“부활한 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다른 빗치가 안으로 들어와 시체들을 전부 가져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셨잖아요.”

하얗게 채워졌다 사라지는 입김. 미도와 연합을 하자고 했을 때보다 더 강렬한 적의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인아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일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이번에 마트 변종 잡으면서 주변을 싹 정리해버려요. 시체가 부활했든지, 떠돌이가 와서 시체만 가져갔든지, 이 근처를 싹 정리하면 처리할 수 있잖아요.”

창문 밖을 보던 유미가 주변 풍경을 천천히 살피며 말했다. 어디에 숨어있든 찾겠다는 눈빛이었다.

“이왕 정리하는 김에, 조금 더 넓혀도 되지 않을까요? 애들도 늘었는데...”

영역확장에 의욕을 보이는 유미였다.

“영역을 넓히는 건 당장은 무리야. 이 근방의 세력권이 변하면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서 그건 안 돼.”

변종과 빗치의 생태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차근차근 가야 했다.

“그럼 그냥 두자는 거예요? 변종이든 주변에 있는 빗치든, 그냥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게 아니잖아. 일단 차근차근하자는 거지.”

유미가 창밖을 보던 시선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고집이 담긴 눈빛이었다. 유미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 대답했다.

“알겠어요.”

당시 느낌이 떠오르는지 유미가 조금은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곳에 남겨진 흔적이 기분 나빴다고 한참을 투덜거렸던 것이 떠올랐다. AWS로 변한 여자들에게는 적대감이 없지만 빗치에게는 굉장한 적대감을 보이고 있었다.

“일단 먼저 정리할 게 있으니까 그것부터 해결하고 하자.”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여줘야 했다. 이곳이 우리가 지켜야 할 터전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했다, 그게 먼저였다. 변종을 잡은 뒤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몰랐다. 방벽 세력과 싸우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맞서 싸우게 하려면 이곳에 대한 애착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

유미는 고개를 돌려 가만히 창밖을 바라봤다. 유미가 보는 곳에는 멀리 마트가 있는 상가건물이 있었다.

*

벽을 만들고 난 뒤,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졌다. 벽 안에서만큼은 좀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얼굴에 부쩍 웃음이 늘었다. 은신처 밖으로 나갈 때는 항상 목숨을 걸어야만 했었다. 좀비 때문이든지 약탈자나 식인종 때문이든지 목숨의 위협을 받았었다. 그런 긴장감이 사라지면서 다들 조금씩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이것 봐요. 벌써 이만큼이나 자랐어요.”

“어머 정말 많이 컸네.”

한 아이가 엄마의 손을 붙잡고 손가락 크기만큼 삐죽 올라온 상추를 보고 신기해했다.

“캬- 상추쌈에 삼겹살... 소주가 떠오르네.”

“소주는 언제 안 푸나?”

“풀겠지.”

사람들도 상추를 보곤 한마디씩 하고 지나갔다. 사람들이 잘 다니는 방향에 상추를 심었다. 상추가 잘 자라기 때문이었다. 빨리 자라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라고 한 선택이었는데 의외로 먹히고 있었다.

조금씩 이곳에 대해 애착을 보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었다. 마트에 있는 변종을 잡으면서 의도하지 않게 주변에 자극을 줄 가능성이 있었다. 그 결과 인근에 있던 변종과 빗치가 벽 안쪽으로 침투해 들어오면 답이 없었다.

“안전하다고 풀어졌을 때가 제일 위험한 겁니다. 다닐 때 혼자 다니지 않도록 하세요.”

내 말에 행정부장인 최필도가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을 지었다.

“예?”

“정찰을 다니듯 최소한 3~4명씩 모여 다니라는 말입니다.”

“전부 소탕했는데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혹시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모여 다니는 것은 습관입니다. 습관. 우리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희생자가 생겼다는 소립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 싶지 않습니다.”

“......”

살인하면 사형, 강도 및 범죄를 저질러도 사형이었다. 새로 편입된 사람들 가운데 설마 사형일까 싶어 손을 잘못 놀렸다가 사형당하는 것을 보곤, 사람들은 오히려 안심했다. 동료들이 있는 벽 안쪽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항상 무기를 가지고 다녔지만 보름 정도 지난 지금은 서서히 무기를 놓고 다니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기를 들고 다녀도 권총 정도만 가지고 다녔지 소총과 같은 큰 무기는 조금씩 두고 다니는 추세였다.

“어디를 가든 3~4명이 모여서 다니도록 하고... 항상 총기를 휴대하고 다니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당장 시행하도록 하세요.”

*

그렇게 며칠 동안 사람들에게 주의를 준 뒤, 회의를 소집했다.

“안전지대 인근, 아파트 단지에 변종괴물이 있습니다.”

“근처에 괴물이 있다고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 녀석은 마트로 접근하는 생존자들을 공격하는 놈이었습니다.”

“마트를 덫으로 쓴다는 것이군요. 밖으로 나다니지 않고 가만히 있는 놈을 건드릴 필요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았다. 바로 도로 건너가 안전지대였다. 주변에 있던 생존자들이 합류했고 좀비들이 벽으로 몰려들었다. 그 여파로 인근에서 마트를 노리고 들어가던 생존자들이 뚝 끊겨 버렸다.

“놈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치겠습니다.”

무력부장 김경태가 물었다.

“몇 명이나 준비할까요?”

“이번에는 그녀들이 움직일 겁니다. 비상경계를 내리도록 하고 접근하는 것은 무조건 배제하도록 하세요.”

“옛.”

유미는 새로 만든 메이스와 방패를 들고 휙-휙- 휘둘렀다. 변종을 잡으라고 했더니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럼 변종을 잡고 바로 빗치가 있는지 확인하면 되는 건가요?”

“일단은 변종을 잡고 생각하자. 급하게 움직이다 벌집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거든.”

“근데 같이 가게요?”

“내가 봐야하지 않겠어?”

혹시라도 마트에 있는 놈이 뭔가 특수능력이 있다면 위험했다. 누가 종구가 정신지배를 쓸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그러니 조심 또 조심하는 게 맞았다.

“그럼 일단 뒤에 있으세요. 저랑 애들이랑 먼저 들어갈 테니까요.”

“조심하고.”

“네. 가자 애들아.”

유미가 세 여자와 함께 마트로 진입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발걸음은 전혀 긴장감이 없었다. 천천히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유미는 거침없이 상가 건물을 헤집고 다녔다. 위기감응이 발동될까 싶어 바짝 긴장했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이놈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겼나 본데요?”

유미가 산더미처럼 쌓인 백골들을 보며 인상을 썼다.

“상가에는 확실히 없어요. 그리고..”

“그리고? 뭔가 이상한 게 있으면 바로 말해.”

“약간 연하지만 그... 냄새가 남아있네요.”

“그 냄새?”

“예. 지하실에서 놓쳤던 그 냄새요.”

“일단 돌아가자.”

마트에 있던 변종이 자기의 영역을 버리고 어디론가 갔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

비상경계는 금방 해제됐다.

“오늘 점심에 여자들만 따로 강당에 모아주세요.”

최필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전부 나를 쳐다봤다.

“여자들만 말입니까?”

“확인할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결혼한 사람도 말입니까?”

“여자들은 전부. 아이건 할머니건 성별이 여자면 단 한사람도 빠지지 말고 모여야 합니다.”

무력부장 김경택이 작게 소리를 냈다.

“큼-그래도 남편이 있고 애인이 있는 여자들까지 전부 모이라고 하시는 것은...”

“오해하지 마세요. 여자들만 걸리는 일종의 전염병 때문에 그걸 확인하고자 모으라고 하는 겁니다.”

“네? 전염병이요?

“지금은 그렇게만 알고 계세요. 확인도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저를 따르는 여자들이 할 테니 남자들에게는 걱정 말라고 하세요.”

“큼. 큼. 알겠습니다.”

유미는 이제 능숙하게 세 여자를 지휘했다. 내가 곁에 있을 때는 내 안전과 내 명령이 우선이었지만 내가 없을 때는 유미가 우두머리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세 여자였다. 점심 무렵 유미를 불러 이야기를 했다.

“흐음... 그러니까 모인 여자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라고요?”

“그래. 뭔가 미묘하게 기분이 나쁘거나 그런 여자가 있으면 이야기를 하도록 해.”

혹시 몰랐기 때문에 내가 옆에 있기로 했다. 빗치로 변할지도 모르는 보균자가 있다면 그 뒤에도 문제였다.

“흐으으음...”

유미가 뭔가 묘한 콧소리를 내며 내 눈치를 살폈다. 약간은 음흉한 표정이었다. 손가락을 들어 딱 밤을 주려고 하자 옆으로 살짝 한 걸음 피하는 유미였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니다.”

“진짜요?”

“그 음흉한 표정은 뭐니? 아니라니까.”

“그럼 링크가 되는지 확인해 보려는 건 아니고요?”

요즘 너무 활발해진 유미였다. 하긴 정신지배 방어연습을 매일 했기 때문에 정신에 방화벽이라도 쌓은 느낌이었다. 연습을 할 때는 끝까지 몰아붙였던 것이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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