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스트 DUST-121화 (121/261)

조직 (4)

사람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의한다고 주의했고 대할 때도 공평하게 대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쪽에서는 머리를 치니 장악을 하니, 그런 소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필도는 탄식했다.

“이런 일이... 어쩌자고.”

조장들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 새끼들을...”

“아주 이참에 그냥...”

특히 D조 조장인 김경택이 이를 뿌득 갈며 중얼거렸다.

“그놈들이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냥 쓸어버렸어야 했는데...”

다들 분노하고 있었지만 최필도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최필도는 119 소방관 출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부분도 많았다. 위험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최필도에게 있어서 직업병에 가까운 것이었다. 품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나 약자인 사람들에게 있어 믿음직스러운 최필도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최필도의 생각은 그랬다. 생존자들끼리 총질을 해 좀비들을 자극하는 것보다, 품에 안아 성비의 균형도 잡고 더 안전해진 그룹을 만들려고 했었을 것이다. 실제로 숫자도 급격하게 늘었고 늘어난 숫자에 비해 큰일 없이 지금까지 왔다.

‘그래서 필도에게 사람들을 통솔하게 했던 거고.’

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최필도를 실질적인 대리자로 삼았다. 최필도는 내 예상대로 사람들의 인심을 잘 잡아챘고 다독였다.

하지만 악의를 가진 사람들 관점에서 본다면 이건 ‘나를 잡아 잡수.’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숫자는 힘이었다. 나중에 합류한 사람들이 보기에 이 그룹은 천 명에 육박하는 힘을 가지고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큰 문제가 없었지만 그것은 폭풍전야 같은 고요함이었던 것이다.

“처리를 하기는 해야 하는데 조금 애매하네요.”

“.......”

문답 무용으로 쓸어버리면 간신히 균형이 잡히기 시작한 성비가 다시 벌어질 게 확실했다.

“새로 들어온 자들은 남자들이 많다고 했죠?”

“예.”

최필도가 살짝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비는 중요한 문제였다. 나중을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성비가 맞는 게 좋았다.

“전부 쓸어버린다고 하면 일이 커지겠군요.”

“......”

최필도는 침묵을 선택했다. 일이 커진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빨리 처리하는 게 중요했다. 시간을 끌면 내전처럼 피해가 급격히 커질 가능성이 있었다.

“이 목소리 주인공이 누군지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문제는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했다. 방법은 크게 둘이었다.

강당에 모였을 때 잡느냐? 아니면 저들이 뭉치기 전인 지금 각개격파를 하느냐?

강당에 모였을 때 잡으면 유미와 세 여자를 이용해 압도적인 무력차이를 확인시킬 수 있었다. 총알이 통하지 않는 유미와 세 여자가 합세해 배신자들을 학살하면 그걸로 자연스럽게 통제 문제가 해결됐다.

‘힘의 격차를 눈으로 확인시켜 줄 수 있으니, 통제하기가 쉽겠지만 희생이 많겠군.’

유탄에 맞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고 인질극도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반대로 각개 격파를 하면 목소리의 주인공이 말한 것처럼 대가리와 윗부분을 치면 됐다. 구심점을 없애고 딴생각을 하는 놈들을 중심으로 치면 그만이었다. 단점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는 자들이 또 딴마음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A조 조장. 이용우씨.”

“예.”

반 대머리인 이용우가 대답했다.

“D조 조장. 김경택씨.”

“네.”

결단력 있고 일처리가 확실한 걸로는 D조 조장인 김경택과 이용우가 제격이었다. 내가 두 사람을 부르자, 최필도가 자기도 모르게 탄식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개격파 합니다. 두 분이 팔다리를 제압하세요.”

“예.”

“반란에 동참하거나 반항하는 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김경택이 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한번 결정하면 인상을 바꾸는 데 오래 걸릴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강하게 나가는 게 맞았다.

“단호하게 처리하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손을 쓸 때는 단호하게 쓴다는 원칙을 세워야 했다. 조금 미안했지만 이 일에는 유미와 세 여자가 제격이었다. 총기를 무시하는 몸은 적들에게는 공포심을 줄 것이고 같은 편에게는 경외감을 줄 것이다.

“유미야 애들 데리고 가서 사지를 꺾어와.”

“네.”

“최필도씨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요주의 인물을 지목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대가리를 집어내라는 말에 최필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

저녁 식사 시간. 100~200명 내외로 순서대로 배식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김경택과 이용우 그리고 유미와 세 여자가 움직였다. 총소리와 비명으로 인해 잠시 소란스러웠지만, 금방 진정됐다.

“잡아왔어요.”

유미와 세 여자가 10명 남짓한 사람들을 카트에 구겨 넣어왔다. 사지가 꺾인 상태로 신음을 흘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래? 수고했어. 생각보다 많네?”

“너... 네놈이 두목이구나.”

“끄으으윽- 우린 죄가 없다.”

“생사람을 잡다니...”

“이게 무슨 짓이오?”

“이것들은 괴물들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들을 끌어들이다니. 크윽-”

놈들은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 유미와 세 여자를 보고 괴물이라고 말하는 놈들이었다. 유미와 세 여자가 활약하는 것을 지켜본 몇 사람들은 질려있었다.

유미도 그렇고 세 여자도 5.56mm 소총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38구경 리볼버나 엽총으로 상처를 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유미 혼자였다면 숫자로 밀어붙어 어떻게든 잡을 수 있었겠지만 세 여자가 합세를 하니,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괴물이라고? 괴물이 내 말을 듣나?”

내가 피식-웃으며 대꾸하자. 놈들이 악을 썼다.

“그래. 네놈이 원흉이구나!”

“총알이 들어가지 않는 년들이 사람이란 말이냐? 괴물이지.”

“이놈이 결국 전부 잡아먹을 거다!”

“괴물들 먹이로 던져줄 거라고.”

“지금 죽는 건 우리지만 다음에는 당신들이야 너희들이라고!”

잡혀온 놈들이 목에서 핏발을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유미가 잡아온 사람 말고도 이용우와 김경택 조가 상대방을 제압하면서 생긴 부상자들도 숫자가 제법 됐다. 다 합하면 40명이 넘어갔다. 죽은 자만도 20명이 넘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최필도가 유미가 붙잡아온 사람들과 이용우, 김경택 조가 제압한 자들의 처우 방법을 물었다.

“일벌백계해야죠.”

내 말을 들은 놈들이 아우성을 쳤다. 단호한 손속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손속은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됐다.

“공개 처형합니다.”

내가 공개 처형을 하겠다고 하자 최필도를 비롯한 몇 조장들이 만류했다.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공개 처형이라니요.”

“리더의 생각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생길 겁니다.”

“그렇습니다.”

“공개 처형을 할 바에야 깔끔하게 죽이는 편이 나았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필도에게 물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최필도가 눈을 감고 대답했다.

“이유를 말씀해 보세요.”

“공개 처형은 공포와 힘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요?”

“공포나 힘으로 사람들을 규합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감시도, 통제도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최필도는 은근히 핸드폰으로 녹음한 것을 꼬집었다. 사태를 미연에 막은 것은 막은 것이고 녹음을 했다는 것은 감시를 한 것이라는 소리였다. 최필도는 내가 녹음한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언제 감시와 통제로 지배한다고 했나요?”

“의도와는 상관없습니다. 공개처형을 하는 순간 사람들은 공포로 다스리는 지배자를 떠올릴 테니까요.”

최필도가 담담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최필도의 의견에 동조하는 조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곤 김경택을 비롯한 강경파 조장들이 반론했다.

“그럼 저놈들이 지배하는 건 괜찮다는 소리요?”

“저놈들이 댁들 머리에 총구멍을 내줬으면 그런 소릴 잘도 하겠소?”

“옳소! 저놈들 하는 짓을 보면 반대하는 사람들을 죄 죽였을 겁니다.”

“거 녹음한 내용 다 듣고서 무슨 소립니까? 공개처형이 아니라 사지를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은 판국에.”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게 아니라. 일단 저들은 계획은 가지고 있었지만 실행은 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피해는 없었단 말입니다.”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다음도 문제입니다. 일단 죽이지 않고 잡아오지 않았습니까? 무장이 해제된 자들을 공개 처형한다니요?”

“지금 저들을 공개 처형하면?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겁니까?”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공개 처형 할 겁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문명인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사람 목숨을 가볍게 생각하면 앞으로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리더가 없었으면 진작 죽었을 사람들이 이제 안전해졌다 생각하니까 그새 반대요?”

“그게 아니라. 공개 처형을 꼭 할 필요가 있냐는 겁니다.”

“공개 처형을 해야 딴 생각하는 놈들이 없을 것 아니요?”

“사람이 짐승입니까? 협박하게? 죽이면 죽였지 왜 공개 처형을 한다는 겁니까?”

조장들은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숫자가 적을 경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명분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수백- 수천이 모인다면 명분은 힘을 갖기 마련이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규합하는데 뭐가 좋을까? 명분? 그렇다면 공통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명분은 뭐가 있을까? 이익? 안전한 사회,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익만큼 좋은 명분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위험한 세상에서는 안전이 가장 중요한 명분이 됐다.

안전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최필도와 온건파의 말은 안전한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온건파들은 이제 어느 정도 안전을 확보했으니, 인간답게 살 질서를 만들자는 쪽이었다.

김경택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지금 가진 안전이나 질서는 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강경파들은 단호한 처벌이 필요했고 강한 힘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쾅!

내가 발을 구르자. 바닥이 울렸다. 격화됐던 분위기가 순간 조용해졌다.

“간단하게 말하죠. 나와 이 친구들이 떠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

“......”

“남은 사람들이 900이 넘습니다. 식량 수급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현실적인 문제가 닥치자. 조용해졌다.

“다른 생존자들과 계속 충돌할 겁니다. 충돌을 피하려면 흡수를 해야 하고,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 가운데 불만을 품고 이번 일과 비슷한 일을 벌이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

“......”

“현실을 보자는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공개처형이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최소한 이번만큼이라도 공개처형을 해야 합니다.”

최필도를 비롯한 온건파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규칙이 필요했다. 앞으로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었다. 규모가 더 커진다는 것은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가능성을 차단하려면 임의적으로 처리하기 보다는 기본적인 규칙을 확고히 하는 것이 좋았다.

“제가 생각한 기본 규칙입니다. 보고 의견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1.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고의적 살인. 사형.

2. 내란(內亂), 외환(外患)에 해당하는 행동과 그에 대한 방조. 사형.

3. 임무거부, 근무태만. 사형.

4. 절도, 강도, 사기, 횡령, 배임, 무고, 위증. 사형.

5. 외의 상황에 대해서는 대표자 회의를 거쳐, 처벌수위와 방법을 결정한다.

한 사람이 질문했다.

“내란은 알겠는데, 여기서 외환은 무슨 의미입니까?”

“외부로부터의 위협이나 공격과 관계된 말입니다. 예를 들자면, 적대 세력과 결탁하거나 적대 세력을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3조와 4조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들이 나왔다.

“너무 과한 것 아닙니까? 물건을 훔친 걸로 사형이라니, 너무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평화로운 세상입니까? 문명이 복구됐나요? 사람들 좀 모였다고 살만하다고 생각합니까? 당장 식량이 부족해져 배식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합니까?”

“감옥에 가두거나 위험한 임무를 맡기는 것도...”

“감옥에 가둬요? 식량은 공짜로 나옵니까? 적당히 훔치고 적당히 죄짓고 감옥에 들어가서 위험한 임무를 피하겠다고 하면 그걸 막을 수 있습니까? 감옥은 누가 관리하죠? 위험한 임무를 맡긴다? 물건을 훔치는 사람에게 위험한 임무를 맡기면 그 사람이 그 임무를 제대로 처리할까요?”

“추방하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추방이요? 내부 사정을 아는 자를 밖으로 그냥 풀어주자는 말입니까? 얼씨구나 추방되겠다고 하면 막을 방법이 없겠네요?”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명확하게 선을 그어야 했다.

“냉정하게 따져서 저런 행위를 하는 자들에게 등 뒤를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도둑질하고 사기 치는 자들과 전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전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겠는데 말입니다.”

“......”

“......”

최필도가 길게 탄식한 뒤 입을 열었다.

“이런 규칙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든다고 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이 규칙에 따른다고 하면 그 뒤에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유미야 지도를 펼쳐봐.”

“네.”

유미가 지도를 펼쳤다. 차단벽을 세울 장소를 표시한 지도였다.

“여기 표시된 지역을 막아, 안쪽을 안전지대로 만들 것입니다.”

내 설명이 계속될수록 사람들의 얼굴에서 불안감이 지워지고 희망이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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