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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119화 (119/261)

조직 (2)

좀비들을 피해 다닐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유미는 거침없이 갔다 올 수 있었다. 몇 시간 만에 대학교 생존자들을 만나 일 처리를 하고 돌아온 유미였다.

“알아서 잘하고 있더라고요. 사람이 늘어서 식량이 문제가 된다고 하던데요. 그래도 보름치는 있으니까 내일이나 모레부터 도와주기로 했어요. 저 없는 동안... 음-그러지는 않았죠?”

“뭘 그래?”

유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슬쩍 냄새를 맡는 것 같았다.

“으응? 아니에요. 헤헤헤.”

금방 헤헤거리는 유미였다.

“얘들 이름을 지어줬으니까 이름으로 부르도록 해.”

“칫- 이름을 부르면 뭐해요. 어차피 제 말은 듣지도 않는데.”

세 여자는 한쪽에서 가지런히 앉아있었다. 그걸 보곤 유미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 조금씩 좋아질 테니까 기억해두라고. 같이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이름은 알아야지.”

“알았어요.”

“저기 맨 왼쪽이 페니, 단발머리가 캐리, 파마가 좀 풀렸지만 파마머리가 제티.”

이름을 듣는 유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네? 이름이 뭐라고요?”

“순서대로 페니, 캐리, 제티.”

유미가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표정을 고쳤다.

“뭐 나쁘지는 않네요. 근데 솔직히 말하면 꼭 정을 안 주려고 지은 이름 같네요.”

유미의 날카로운 말에 살짝 찔렸다. 같이 붙어있던 시간이 오래됐기 때문일까? 때로는 너무나 놀랍게 내 마음을 알아채는 유미였다.

얼굴과 몸매가 너무 바뀐 나머지 자매 가운데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반응을 보면 펜트하우스에 있던 두 여자 가운데 한 사람이 분명했다.

그 당시 노예처럼 대하지도 않았다. 죽이자면 죽일 수도 있었지만 풀어줬었다. 그랬더니 식인종이 되어 식인그룹 두목과 같이 사람을 잡아먹으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내가 붙잡고 있었거나 죽였다면 어땠을까? 두 여자에게 희생되는 사람들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사람을 잡아먹고 살던 여자를 친근하게 대한다? 링크로 통제됐다고 하더라도 정을 주기는 조금 힘들었다. 다른 두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럽게 꺼려졌다. AWS에 의해 통제되는, 지배될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정신적 스트레스가 적었다.

만약 세 여자가 죽어야 유미가 살 수 있다면, 저들을 버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을 주지 말아야 했다. 혹시라도 최악의 상황이 된다면 버릴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왜 그런 표정을 하고 그래요.”

유미가 내 머리를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안았다. 두근거리는 유미의 심장박동 소리가 어쩐지 포근하게 들렸다.

“헤헤-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죠? 제가 좀 철이 없었잖아요. 헤헤-”

“......”

“냉정해야 하는 거 알아요. 저도 이제 알아요. 냉정해야 한다는 거.”

“......”

유미가 내 머리카락을 살살 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말이죠...”

“......”

“정신이 팍 끊겼을 때, 정말 무서웠어요. 몸이 막 제멋대로 움직이고...”

그때를 생각만 해도 목이 메는지 유미가 잠시 말을 끊었다.

“만약 제 손으로... 그랬다면 전...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을 거예요.”

“......”

유미는 살짝 고개를 돌려 한쪽에 가만히 앉아있는 페니를 바라봤다.

“그런데 페니가 저를 막아 줬잖아요. 과거에는 누구였든... 무엇 때문에 그랬든, 목숨을 구해줬고 비극을 막아준 건 사실이잖아요.”

“......”

“이유가 있어서 그러시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같이 있으면서도 정 붙이지 않겠다고 하시는 모습은... 좀 안타깝다고 생각해요.”

“......”

내 침묵에 유미는 언제 진지했었냐는 것처럼 헤실헤실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저들에게 정을 주지 않고 차갑게 대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 유미의 위로에 조금은 말랑해지는 것 같았다. 위로가 아니었을지라도 위로처럼 느껴졌다. 차갑고 삭막했던 마음이 조금은 적셔지는 느낌이었다.

‘참 많이 변했네...’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는 손을 잡자, 유미가 손가락을 넣어 살짝 깍지를 껴왔다. 열린 창문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

두통이나 간섭현상 같은 것은 하루가 지나자 많이 좋아졌다. 여자들이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게 조금 문제였다.

“우- 진짜. 꼭 같은 방에 있어야 하는 건가요?”

“당분간은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싶어.”

링크가 불안정했기 때문인지 조금이라도 멀리 있다가 오면, 다시 주파수를 맞추고 그러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정도 길이 들 때까지는 붙어있는 게 좋아 보였다.

“무슨 방법이 없나요? 불편해서... 좀...”

유미가 침대에서 날 끌어안고 투덜거렸다. 어제는 의연하게 대처하더니 하룻밤 사이에 투덜이로 변했다. 귀여워서 피식-웃었더니 기습적으로 앙-하고 내 가슴을 깨무는 유미였다.

“아야야야.”

“흥- 물릴 만했으니까 물죠.”

순간, 옆에 앉아있던 세 여자가 침대 위로 뛰어올라 유미의 사지를 잡아 눌렀다. 일반인이었으면 사지가 부러졌어도 부러졌을 정도의 힘과 압력. 하지만 유미는 거뜬히 견뎠다.

“뭐? 뭐야? 이거 안 놔?”

유미도 나도 당황스러운 나머지 반응이 조금 늦었다.

“그만!”

내 말에 유미를 잡아 누르던 힘을 풀었지만 유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뭐하는 거지?”

“......”

“......”

“너희들이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지? 따라 나와!”

“유미야. 얘들은 아직.”

아직 불안정한데 나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유미를 진정시켰지만, 그녀는 미소로 응수했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자들끼리 대화를 좀 해야겠어요.”

유미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세 여자는 유미를 따라 나가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소소한 일들이 벌어졌다.

청소기를 돌리던 유미가 셋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처음에는 청소기를 돌리거나 말거나 가만히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유미가 청소기를 돌리면 살짝 발을 들어 청소기가 지나가게 자리를 만들어주는 세 여자였다. 그 모습에 유미가 흥분했다.

“뭐야 이거? 발만 살짝 들어? 너희들도 청소 좀 하라고!”

“......”

“......”

유미가 세탁기와 빨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탁기 돌릴 줄 몰라? 세탁기 말이야.”

“......”

“......”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닐까?”

내 말에 유미가 가슴을 탕탕 쳤다.

“아우 진짜 속이 터지네요. 이렇지 않았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밥만 축내고 진짜 너희들... 일부러 이러는 거지? 그렇지?”

“......”

“.......”

유미가 발을 동동 굴렀다.

“유미야 흥분하지 말고.”

“어? 지금 얘네 편드는 건가요?”

“아직 링크도 단단하지 않은 것 같고...”

“링~크~요~ 그러고 보니 링크를 단단하게 연결하는 방법이 있었지요?”

오호호호호. 하는 표정을 지은 유미가 매의 눈으로 날 쳐다봤다. 눈을 콕 찔러줬다.

*

막 열심히 이것저것 하겠다며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유미와 우두커니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세 여자를 보니 뭔가 간질간질했다.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이런 일상에 익숙해지는 기분이었다.

먹을 것을 든든히 먹어야 힘을 쓴다고 말하며 허공에 밑줄을 쫙 긋고는 몸을 배배 꼬는 유미를 보니, 어제 먹은 것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배고파?”

“헤헤헤.”

뭔가 유미의 식욕이 더 강해졌다고 해야 할까? 세 여자가 들어온 뒤로는 먹는 양이 좀 많아진 유미였다. 설마 잠자리 문제 때문은 아니겠지?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푼다거나.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행복한 표정으로 달라붙어 있는 유미였다. 피를 빨리는 것도 익숙해졌고 소실된 혈액을 보충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이 정도 빨리는 건 금방 보충이 됐다.

“잘 먹었습니다.”

유미가 내 목에서 입술을 떼면서 밝게 외쳤다.

“그래. 충분히 먹었어?”

“네~”

너무나도 밝은 표정이라 일단 가만히 지켜봤다. 내 컨디션에는 문제가 없어보였다. 유미가 먹는 양은 거의 1.5배 정도 늘었는데, 너무 잘 먹는 것을 보니 그 전에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알차게 식사를 마친 유미가 옷매무새를 고치고는 인사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너희들 잘하고 있어. 집 잘 지키고 있으라고.”

역시 유미에게는 일절 반응하지 않는 세 여자였다.

유미가 침대 위에서 날 물었을 때, 유미를 제압하겠다고 덤벼들었던 것을 제외하면 반응하지 않았다. 어찌됐든 유미와 세 여자가 서로 적대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기에 다행이었다. 유미는 기분이 나쁘다는 것과는 별개로 저들이 나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는 것에 대해 만족하는 듯 보였다.

내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미는 오전 일찍 생존자들을 관리하러 갔고 유미가 없는 동안 세 여자는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종구는 이들을 도구라고 노예라고 했다. 반쯤은 이들이 가진 행동방식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있거나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 이틀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벌써 며칠째 그러고 있으니, 종구가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게 이런 이유 때문일까 싶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종구가 장악했던 여자들도 그렇고 한의사가 지배했을 때 파마머리와 단발머리도 그렇고 지금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웠었다.

표정이 휙휙 변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주인에게 살갑고 애교도 있었고... 음... 섹시하게... 문득 한의사와 뜨거운 정사를 벌였던 여자들의 모습이 언뜻 떠올랐다.

‘그 때는 정말 자연스러웠었는데.’

*

약간 걱정했었는데 시간이 흐르자 확실히 조금씩 좋아졌다. AWS의 특징인지 아니면 그렇게 조작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링크가 견고해지면서 조금씩 자율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종구의 옆에 있던 노예들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여자들이었다. 알아서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유미가 했던 청소를 대신한다거나 세탁기를 돌린다거나 그런 것들이었다.

단발 캐리와 파마 제티가 일을 하고 페니는 나를 밀착 감시하는 역할 분담 비슷하게 움직였다. 청소와 요리, 빨래 정도인데 유미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식량 수급은 어때?”

“모은다고 모아도 순식간에 없어지네요.”

내 위에 올라와서 고양이 식빵 자세를 하고는 가르릉거리는 유미였다.

“생존자들이 계속 모이고 있다고?”

유미가 폭-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진짜 그 말이 맞았어요.”

“어떤 말?”

“언젠가 그랬잖아요. 지구가 멸망해도 바퀴벌레와 인간은 맨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거라고요.”

“그렇게 많아?”

바퀴벌레를 싫어하는 유미가 예를 들 정도라면 정말 많이 모이고 있다는 소리였다.

“네... 이제 열흘 정도 지났는데 벌써 500명이 넘었어요. 하루에 10명 15명씩 계속 모이고 있으니, 이대로 가면 순식간에 700~800명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한 개 동이라고 하더라도 인구 밀도가 많게는 몇만 단위였다. 나와 유미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은 예전 행정구역으로 따진다면 2~3개 동이 있었을 지역이었다. 맨홀 변종이 있던 곳과 미도, 미노가 장악했던 지역까지 합쳤으니 넓을 수밖에 없었다.

그 넓은 지역에서 여기저기 숨어있던 사람들이 한 곳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식인종들도 사라지고 좀비들의 밀도도 낮아졌기 때문에 이동하기 편해졌기 때문이었다.

대학교에 있는 사람들의 성향도 각자 생존하고 있던 생존자들의 합류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었다.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하고 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새로 합류한 생존자들도 빠르게 동화되고 있었다.

“분위기는 괜찮고?”

“나쁘지 않아요. 필도씨도 그렇고 조장들이 통제를 잘하고 있어요.”

소방관이었던 최필도가 나름 제 역할을 잘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슬슬 얼굴을 비치고 관리에 들어가는 것이 좋지 싶었다. 내가 분위기를 물은 이유를 알아챘는지 유미가 내 컨디션을 걱정했다.

“몸은 괜찮으세요? 두통은요?”

“며칠 지났더니 거의 없어졌어.”

간만에 오랫동안 쉴 수 있었다. 쉬면서 생각을 정리해봤다. 나와 유미 그리고 여자들이라면 서울 근교에 있는 수백만 좀비들을 뚫고 탈출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도망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는 미래가 없었다.

방벽의 독주를 막지 못한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노예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내 몸이 제멋대로 움직인다는 악몽 같은 전개가 마냥 상상은 아니었다.

뇌파를 이용하든지, 정신공격을 하던지 할 놈들이었다. 기지국이라도 세워 전국의 빗치들과 변종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면? 이곳에서 도망친다고 해 봐야 의미가 없었다.

결론은 방벽 세력을 무너뜨리거나 최소한 견제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존자들을 규합해 나름대로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아더스와 동맹을 맺을 정도로 규모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했다.

“규모가 생기면 방벽에서도 관심을 가질 텐데요?”

“어쩔 수 없지.”

계획은 간단했다. 우리 영역을 요새화를 시키는 것이었다. 방벽이 안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말 그대로 외부 방벽이 있기 때문이었다. 빌딩과 건물들을 이용해 막은 거대한 방벽이 있었기 때문에 좀비들과 변종, 빗치들에게서 안전할 수 있었다.

“벽을 만들자고요?”

“그래. 불가능하지 않아.”

지도를 보고 설명했다. 건물과 건물을 이용해 중간을 채울 수만 있다면 차단벽을 만들 수 있었다.

“재료가 있을까요?”

“자동차가 있으니까.”

“아?”

자동차를 벽돌처럼 사용해 쌓는다면? 불가능하지 않았다. 몇 만 대의 자동차가 도로에 쌓여있었고 재료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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