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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117화 (117/261)

링크 (3)

종구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구가 링크를 걸어놓고 나간 것을 하나는 죽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권한을 뺏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저것은 내 피를 먹고 내게 예속됐다. 종구보다 내가 더 강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는 건. 나도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문제는 방법을 찾는 것. 너무 강하면 유미가 완전히 예속될 위험이 있었다. 너무 약하면 의미가 없었다. 그 사이를 찾아야 했다. 이미 내게 예속된 저것에게는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유미는 자유로웠다. 어쩌면 그래서 정신공격에 취약했을 것이다. 이대로 유미를 자유롭게 살게 하려면 지금부터 한계까지 훈련시켜야 했다.

“움직여 봐. 천천히.”

유미가 내 품에서 벗어나 움직이려고 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반대되는 생각을 했다.

‘멈춰!’

‘멈춰!’

유미가 멈췄던 그 순간. 그 느낌을 재현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너는 내 것이다.’

‘너는 내 것이다.’

유미를 바라보고 정신을 집중한다. 찌이이잉-두통이 생기는 것처럼 골이 울리는 느낌. 막 내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유미가 움찔-몸을 떨었다. 그 감각을 그대로 유지해 유미의 정신을 파고들어 갔다. 벽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

유미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뭔가 느껴졌다. 안으로 파고드는 느낌? 두통과 함께 엉켜졌던 실타래가 풀리는 것 같았다.

“아으아-”

서서히 공포에 질리는 유미였다.

“정신 차려! 집중해. 견뎌!”

말과는 달리 더 집중해서 멈추라고 명령했다. 어느 순간, 삐이이이- 높은 고주파가 쏘아지는 느낌과 동시에 유미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났다.

“아아아앗! 아으.”

한계였다.

“여기까지.”

고개를 흔들어 집중을 풀자. 전신을 부들부들 떨더니, 풀썩 주저앉아 버리는 유미였다. 학학-숨을 몰아쉬는 유미의 등을 다독였다.

“잘했어.”

성공이었다. 이렇게 훈련한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

하수구는 자유롭게 이동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움직일 수 있는 곳까지 간 뒤, 미도가 있던 식육빌딩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일단 놈들이 한 번 확인하고 갔을 테니까 말이야.”

종구에게 한 번 크게 덴 뒤로 유미는 매사에 조심했다. 조심하는 건 좋은데 유미 정도의 능력이 있으면서도 너무 조심하기만 하면, 그 조심성 때문에 더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때로는 힘으로 돌파하는 것이 최선임에도, 작은 함정이나 위험에 지레 겁을 먹어 버리면 문제였다.

“CCTV같은 걸 설치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랬을지도 모르지, 저번에 빌딩에도 그런 걸 설치했었으니까 말이야.”

유미는 따라는 오지만 영 내키지 않아 했다.

“그런데도 가야 해요?”

“그냥 대학교로 가거나 펜트하우스로 돌아가는 건 위험해. 생체칩이나 추적기가 달려있을 수도 있거든.”

“그냥 시체도 버리고 저것들도 치워버리면 되잖아요.”

그나마 살기는 아니었다. 황씨 딸이 변한 빗치에게는 살기를 폴폴 풍기고 죽이겠다고 했던 유미인데 이상하게 그것과 멍하니 뒤따라오는 단발머리, 파마머리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유미였다.

‘아니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

멍한 둘은 확실히 관심 외였고 그것은 약간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적개심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관심이었다. 그것은 그저 나와 유미가 달라 붙어있는 것을 보곤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분명히 의사를 표현하려고 했었는데.’

약간 불분명했지만 자기 의사를 표현했던 그것이었다. 빗치라고 하기도 뭐했고 그렇다고 일벌이라고 하기도 그랬기 때문에 명칭을 붙여주기는 해야 했다. 일단 대비를 한 뒤, 과거의 기억은 있는지 어디까지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유미는 종구와 한의사의 시체를 버리고, 여자들도 정리했으면 하는 생각을 내비쳤음에도 내가 뭔가 생각에 빠져있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정신적인 충격에서 빨리 회복되는 편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슥슥-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살살 달랬다.

“생각해 보자.”

“하아- 알겠어요.”

그 순간 부우웅- 소리를 내며 천장에서 뭔가가 유미 앞에 떨어졌다.

“꺅!”

유미가 반사적으로 메이스를 휘둘렀다. 콰자작! 하수구 천장을 박살내며 휘둘러진 메이스가 발바닥 크기는 됨직한 벌레를 분쇄했다. 공중에서 분해된 벌레의 날개가 내 손바닥보다도 더 커 보였다.

“무슨 벌레가 이렇게 커?”

“바.. 바퀴벌레? 이거 저번에 손바닥만 한 거였는데...”

천장을 보니 25cm 될 법한 바퀴벌레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유미가 기겁했다. 꺅꺅- 거리며 메이스로 때려잡으려는 것을 말렸다.

“이쪽 하수구는 많이 노화됐기 때문에 잘못하면 무너져. 그냥 빨리 지나가자.”

바퀴벌레는 동족들도 잡아먹는 놈들이었다. 죽이면 동족의 사체를 먹겠다고 더 모일 수도 있었다.

“으윽- 정말 싫어요.”

유독 바퀴벌레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유미였다. 벌레에 호들갑이라니... 방금 전까지 우울했던 것을 완전히 잊은 것처럼, 빨리 가자고 앞장서서 걸어가는 유미였다. 확실히 회복이 빨랐다. 픽-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저번에는 손바닥만 했는데. 저거 보셨죠? 발바닥만 한 거. 아니 제 발보다도 더 큰 놈도 있었다니까요.”

“그래. 그래.”

“그냥 그래가 아니라고요. 저게 막 더 커지면 어떻게 해요? 괴물 바퀴벌레라도 나오면 어떻게 해요?”

“쉽지는 않을걸.”

“어째서요?”

“음...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고생대인가? 그 당시에는 커다란 곤충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큰 곤충이 살 수 없다고 하더라고.”

“막 공포영화에서는 괴물 거머리도 나오고 모기도 이따만 한 것도 나오고 그러는데 그런 게 생길 수도 있잖아요.”

유미는 더 큰 벌레가 나올 수도 있다며 흥분했다.

“곤충들은 대부분 폐가 없어. 숨구멍인가? 그런 호흡기관으로 숨을 쉬는데, 현재 산소농도로는 거대한 몸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

“확실하죠?”

“뭐 절대적이라고 하기는 좀... 우리도 그렇고 좀비들도 그렇고 변종이나 빗치들도 있는 판국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만 한 벌레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걸.”

“진짜죠?”

유미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밝은 게 좋았다.

“그래도 한 절반 크기까지는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1m 정도쯤 되는 바퀴벌레?”

“지금 저 놀리는 거죠? 1m면 큰 거잖아요. 1m짜리 바퀴벌레라니...”

투덜대는 유미가 앞장서서 나갔고 그 뒤를 따르는 여자들이었다.

‘바퀴벌레라.’

인간 이외의 생명체를 찾아보기 힘들어진 도시. 다른 생명체가 보인다는 건 좋아해야 할 일이었지만 25cm가 넘는 초대형 바퀴벌레가 그 주인공이라면,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하수구를 이동하면서 때때로 유미에게 정신공격을 하고 막는 연습을 시켰다. 아직 미숙했지만 조금씩 사용하는 방법과 막는 방법에 요령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우으- 냄새도 심한데 꼭 하수구에서 해야 해요?”

“그래야 집중력 훈련이 되지.”

*

하수구로만 이동하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목적지인 빌딩에서 200m 안쪽까지는 갈 수 있었다. 주변에는 맨홀 뚜껑이 없었다. 맨홀 변종의 짓이기도 했고 미도와 미노가 맨홀 변종이 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주변의 맨홀 뚜껑을 싹 치워버렸기 때문이었다.

도로에는 좀비들이 거의 없었다. 유미와 여자들은 좀비들이 공격을 하지 않았고, 나도 하수구 냄새를 풍겼기 때문인지 별달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싸움을 피해 재빨리 빌딩 안으로 들어가 발전기를 돌렸다.

윙윙윙 돌아가는 발전기를 보며 유미가 전기가 필요하면 펜트하우스로 가지 왜 발전기를 돌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발전기로 뭐 하시게요?”

나는 대답 대신 직접 행동했다. 발전기 코드를 가져다 그대로 그것의 몸을 지졌다.

파지지지직!

고압 전류가 순식간에 그것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다시 한 번! 코드를 가져다 대자 움찔-몸을 떨며 뒤로 물러서는 그것이었다. 내가 메이스로 공격을 했을 때, 두 팔로 머리를 보호했었다. ‘자기방어 본능은 살아있는 게 확실하고. 고통도 느끼고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정신을 집중했다.

‘멈춰라!’

‘멈춰라!’

‘거기 서!’

“멈춰!”

한 걸음 다가서면 한 걸음 물러서던 그것이 바르르 떨더니 제자리에 뚝 멈췄다.

파지지지직!

순식간에 연기가 피어오르며 타들어가는 냄새가 났다. 이윽고 전기로 타버린 몸을 급속 재생하는 그것이었다. 단발머리와 파마머리도 전기로 지져보니, 그것과 단발머리 파마머리는 재생능력에서 차이가 났다.

확실히 단발머리와 파마머리는 빗치의 열화판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났지만, 그것은 좀 달랐다. 빗치에 버금가는 어쩌면 더 좋을지도 모를 급속재생능력이 있었다.

종구가 가지고 있던 기계 잠김 폴더에 그 내용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들고 온 한의사와 종구의 시체도 전기로 지졌다.

“그 생체칩? GPS? 같은 거 박아 놨을까 봐 전기로 지진 거예요?”

“효과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고압 전류가 흘렀으니 민감한 칩이라면 문제가 생겼겠지. 자-전신 엑스레이를 찍어볼까?”

처음 엑스레이를 찍자 팔뚝에 쌀알 크기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유미가 호들갑을 떨었다.

“와 정말 있었네요.”

“그래.”

어차피 전부 재생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살을 찢고 꺼내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조그마한 게 뭘 할 수 있다는 거죠?”

“GPS기능과 아마도 바이털사인을 출력할 거다. 어쩌면 음성녹음기능이 있을 수도 있고, 더 많은 기능이 있을지도 모르지.”

유미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말 그대로 쌀알 하나 정도의 크기였기 때문이다.

“에? 찾았는데 또 찍어요?”

“그래. 놈들이라면 하나만 넣지 않았을 수도 있거든.”

그렇게 전신을 찍자 두 개를 더 찾을 수 있었다. 하나는 두개골에 박혀 있었고 다른 하나는 허벅지 부분에 있었다. 빼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다. 그걸 보고 유미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좋은 경험을 했거든. 너도 기억해둬라. 심리적인 틈을 노린 거야.”

“심리적인 틈이요?”

“그래 찾았으니 안전하다고 믿게 하는 거지. 팔뚝처럼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서 칩을 찾았으니 이제 없겠지, 그렇게 안심을 시킨 거지.”

“그럼 왜 전기로 지졌어요? 그냥 처음부터 엑스레이로 찍어보면 됐잖아요.”

“생체칩이 뭐로 만들어졌는지 몰랐기 때문이야.”

생체칩 가운데는 세포를 배양해서 만든 것도 있다는 소리가 기억났다. 만에 하나, 그렇다면 엑스레이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무엇으로 만들었든 전기적 작용에 의해 작동되는 것이다 보니, 고압전류를 사용하면 최소한 리셋이 되거나 파괴가 되리라 생각했다. 일단 파괴시킨 뒤 빼려고 했다는 내 설명에 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인데요?”

“장기적으로? 아니면 단기적으로?”

유미가 입을 비죽 내밀며 서 있는 여자들을 봤다.

“우- 장난치지 마시고요. 일단 쟤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데요?”

문제였다. 하나는 일단 각인과 링크가 된 상황이었고 나머지 둘은 멍하니 끌면 끄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종구가 한의사의 통제권을 뺏었으니, 지금이라도 내 피나 살을 먹이면 단발머리와 파마머리를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유미야, 너 말이지. 쟤들한테는 별다른 느낌이 없어? 그 왜 황씨 딸은 싫다고 했잖아.”

“그... 그러게요...”

당혹스러워하는 유미였다. 일단 나도 마찬가지였다. 숫자를 늘려 안전을 추구하고 싶은 본능은 때로 이성보다 더 강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들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 유미야 쟤들 좀 씻기고 옷을 좀 입히자.”

“네. 너희. 따라와.”

유미의 말에 꼼짝도 하지 않는 그것이었다.

“유미 말에 따르도록 해, 씻고 옷 입고 다시 오도록.”

무표정하게 있던 그것이 줄을 붙잡고 단발머리와 파마머리를 끌고 나갔다. 유미를 휙 지나쳐 나가는 그것이었다. 앞장서서 가던 유미가 어버버 했다.

“지금 저 무시당한 거죠? 방금 무시한 거 맞죠?”

“쟤들이 어떤지 아직 확실히 모르니까...”

“취소에요. 저거 마음에 안 들어요!”

다독이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일단 그것은 내 말에만 반응했다. 정확하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음, 아까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했지? 우선은 생존자들부터 관리해야겠어.”

“네? 그냥 우리끼리 있으면 안 될까요?”

“왜? 사람들 돕는 거 좋아했었잖아.”

“이 정도 도왔으면 됐잖아요. 식인종도 정리했고 무기도 넉넉하게 줬고. 문제가 생기면 모를까 너무 관여하면 그... 시간이...”

유미가 둘이 있는 시간이 너무 줄었다며 살짝 얼굴을 붉히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쟤들도 있으니까 쟤들한테 지키라고 하면 되겠네요. 말 잘 듣잖아요. 쟤네들.”

“아직 안 돼. 종구나 한의사 같은 놈들이 있다면 제어권을 뺏길지도 모르고. 정보도 부족하고 안전하다고 보기도 힘들기 때문에 눈 밖으로 내돌리기는 힘들어.”

“그럼 계륵인가요?”

“그건 아직 모르지, 일단 링크를 해보고 확인도 해보고 그래야지... 단발머리하고 파마머리는 한의사가 죽고 난 뒤, 빈 깡통 상태니까 말이야.”

“링크요?”

“그래. 내가 링크를 해도 되겠어?”

링크를 하려면 각인을 해야 했다. 링크라는 말에 유미가 주저주저했다. 빗치를 각인하는 것은 그렇게 싫어하더니, 극단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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