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스트 DUST-115화 (115/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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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이익-

두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찢어버리는 여자들이었다. 우두둑-옷이 찢어지는 것처럼 피부가 찢어지며 새 살이 돋기 시작했다. 기괴한 문신으로 덮여있던 얼굴 가죽이 훌떡 벗겨지면서 안에서 새 살이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지 않고 그대로 메이스를 휘둘렀다.

퍼억! 30kg에 육박하는 메이스로 한 여자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구조물에 해머를 휘두른 것 같은 반탄력이 느껴졌다. 무시하고 다시 메이스를 내려치면서 방패를 이용해 옆에서 변하고 있는 여자를 튕겨냈다.

뻐!-빡!-타격음과 방패의 울림이 동시에 들렸다. 메이스에 두들겨 맞아 머리통이 W모양으로 움푹 들어갔음에도 변이를 일으키고 있는 여자였다. 방패에 튕긴 여자도 벽에 틀어박힌 채 전신이 뒤틀리며 변하고 있었다.

“미친 새끼. 무슨 짓을 한 거야!”

두 년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은 무리 그렇다면 하나를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나았다. ‘변신 마법소녀도 아니고!’ 저절로 욕이 나왔다. 그대로 메이스를 이용해 머리통이 W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여자를 다지기 시작했다.

떡메로 떡을 내려치는 것처럼 질기고 오지게 내리쳤다. 통짜 구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반탄력이 느껴지는 여자의 머리통이었다. 한 방씩 때릴 때마다 메이스가 윙 울렸다. 조금씩 휘어지는 메이스를 무시하고 필사적으로 내리쳤다.

30kg의 메이스가 머리통만 치는 것은 아니었다. 바닥이 박살나고 보일러 파이프가 순식간에 노출이 됐다. 팍팍-철썩 어느 순간 여자의 머리통이 찹쌀떡마냥 말랑말랑하게 변했다.

퍼억! 고무장갑을 터뜨리는 것처럼 커다란 소리와 함께 우그러졌던 여자의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번데기가 벗겨지듯 허물을 벗던 그것의 몸뚱이가 흐느적거리다 움직임을 멈췄다.

재빨리 다른 것을 봤다. 들썩이며 부푸는 모습. 늦었나? 아직 늦지 않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변하기 전에 처리하면 끝이었다. 빡! 벽에서 변이를 일으키고 있는 여자의 머리통을 내려치는 순간, 그게 팔로 메이스를 막았다.

우직! 팔뼈가 부러지는 순간 연체동물처럼 늘어난다 싶더니 다시 원상태로 복구가 됐다. 급속재생? 유미와 비슷할 정도? 아니 유미보다 더 빠른 재생력이었다. 순식간에 그것의 팔이 재생되면서 내 팔뚝을 할퀴고 지나갔다.

“크윽!”

손톱에 살점이 걸릴 정도로 내 팔뚝이 찢겼다. 뚝뚝 핏방울이 흘렀지만 금방 지혈이 됐다. 그것은 자기 손톱에 걸린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내 살점을 입에 넣었다. 츄릅-부르르르- 뭔가 느끼는 것처럼 부르르 떠는 그것.

“이런 씨발!”

머리통을 향해 미친 듯이 메이스를 내리쳤지만, 벽에 틀어박힌 채 두 팔로 머리를 보호하는 그것이었다. 머리를 부수려고 하는 나와 머리를 지키면서 변이를 마치려는 그것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그것의 승리로 마감됐다.

마치 탈피를 하는 것처럼 전신이 부풀어 오르락내리락하던 여자의 얼굴이 쫙 찢어지면서 안에 있던 모습이 쑥 드러났다. 뽀얀 속살은 마치 아기 피부 같이 매끄럽고 광택이 느껴졌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찌지직-소리와 함께 얼굴에서 시작된 찢어짐이 목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껍데기를 완전히 벗고 나면 덤비겠지? 신형 빗치인지. 빗치를 이용한 생체병기인지 모르겠지만 스펙을 한 번만 사용한 힘으로는 없애기 힘들어 보였다.

‘스펙을 한 방 더 써야 하나?’ 맨홀 변종을 잡을 때 스펙을 두 번 연속해서 맞았었다. 하려면 빨리하는 게 맞았다.

“썅-”

내려치던 메이스를 겨드랑이에 끼고 뒤로 물러선 뒤, 방패로 앞을 가렸다. 재빨리 주머니에서 스펙을 하나 더 꺼내려는 순간, 그것이 입을 열었다.

“아-으-아?”

내가 뒤로 물러서자 X자로 교차했던 팔을 내리며 멍청한 소리를 내뱉는 그것이었다. 심장을 내리누르던 기운이 사라져있었다. 그것은 날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왜 때렸느냐는 것처럼 원망하는 눈동자였다.

“아-응-”

아직 구강구조가 완벽하게 변하지 않았는지 감탄사를 흘리는 그것이었다. 꼭 옹알이하는 것 같은 소리였다. 심장을 내리누르던 위기감응이 사라졌다. 그것은 분명히 나를 적대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변한 분위기 때문에 당혹스러웠다.

꼬르르르륵-

그것의 뱃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 공허한 울림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빗치인가? 이게 뭐든 이렇게 요란하게 변하는 것은 본 적 없었다. 그것은 나를 보고, 머리통이 날아간 시체를 보고, 다시 나를 봤다.

투명한 눈동자가 내 눈동자와 마주치자, 욱신- 가벼운 두통이 생겼다.

꼬르르르륵-

나에게 달려들지도 않고 제자리에 서서 나와 시체를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는 그것이었다. 그것의 입에서 조금씩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뭘 기다리는 거지?’ 공격하지도 않고 달려들지도 않았다. ‘뭘 원하는 거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그것.

찡-다시 두통이 생겼다. 딱따구리가 이마를 콕콕 쪼아내는 것 같은 느낌.

[....요.]

어?

무슨 소리? 아니 소리는 아니었다. 리시버를 낀 채였다. 머리가 울리는 느낌.

욱신-

[배.... 요]

환청인가? 그건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은 나를 쳐다보고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쳐다봤다. 식욕을 참느라 바르르 떠는 그것이었다. 왜 참지?

찌이이이잉- 두통이 커졌다. 마치 두개골을 헤집는 느낌.

[배고파요. 먹어도 돼요.]

“크윽- 그... 그만...”

[먹어도 돼요.]

두개골이 깨질 것만 같았다.

“그... 먹어. 그만.”

내 말과 함께, 순식간에 두통이 사라지며 그것이 시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직-으적- 뒤통수가 보였다. 이대로 메이스로 내려치면? 잡을 수 있을까? 스펙을 더 맞고 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의 뒤통수에는 눈이 없을진대 마치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묘한 느낌이었다. 고개를 숙였는데 나를 마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메이스를 쥔 손이 떨렸다. 그것은 순식간에 시체 하나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자기 몸통만 한 시체의 뼈까지 꼭꼭 씹어 먹는 그것이었다. 뼈까지 오독오독 씹어 먹는 소리 사이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먹었냐? 킥- ”

밖에서 종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옆에 있는 화장실 안으로 몸을 숨겼다. 끼이익- 살짝 문이 열리며 종구가 들어왔다. 종구의 곁에 여자가 없는 것을 보니, 그들은 유미와 충돌한 것 같았다. 둘이면 유미를 막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셋 모두 유미를 막기 위해 아래층에 있다는 소리였다.

한의사는 변종처럼 강하지 않았다. 종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회를 노려 단숨에... 숨을 죽이고 종구가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종구는 그것이 뜯어먹고 있는 시체가 나라고 생각했는지 혀를 찼다.

“쯧- 왜 몸부림을 쳐. 병신 새끼- 시한부라도 사는 게 낫지. 뭐 됐어. 됐다고. 힘도 감추고 있었지? 그래 봐야 안 되는데 감추기는 씨발...”

불만인지 넋두린지 변명인지 주절거리며 살며시 안을 살피는 종구였다.

“믿을 놈 하나 없다니까. 킥- 그래도 마지막엔 고마웠어. 짜증 나는 양반이었는데 처리해 줘서 고맙다고. 잘 가라. 큭큭큭-”

종구는 아마도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회수하려고 온 것 같았다.

“야- 그만 먹어. 다른 하난?”

으적으적

종구의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그 목소리를 듣자, 미약한 두통이 생겼다.

“야- 그만 처먹으라고!”

우직우직

그것은 종구를 무시하고 계속 먹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뭐야 이년 불량인가? 왜 대답이 없어? 링크 불량이야?”

종구가 그것을 보곤 인상을 썼다.

“아직도 실험 중이라는 건가? 개새끼들 문제가 생기면 회수하러 오겠다고? 빌어먹을 개새끼들... 이게 불량이면 밑에 있는 년을 막기가...”

밑에서 뭔가 부서지고 박살나는 소리가 서서히 크게 들리고 있었다. 종구가 초조했는지 그것에게 다가갔다. 그것은 종구가 다가옴에도 신경도 안 쓰고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으적우걱우걱

“그만 처먹으라고 썅년아. 또 한 마리는 어디 갔어? 두 년 다 불량이었나?”

종구의 폭언에도 그것은 반응하지 않고 먹기만 했다. 그러자 종구가 안으로 조금 더 들어왔다. 조금만 더 들어와라, 조금만 더.

“야? 너 뭐 먹고 있는 거야? 이거 지들끼리 잡아먹은 거냐? 그 새끼를 잡은 게 아니라 지들끼리 싸운 거야?”

‘지금!’

쾅! 화장실 문을 박살 내며 종구의 머리통을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순간, 종구가 앞으로 엎어지듯 메이스를 피했다. 다다다닥- 마치 강아지가 기어가는 것처럼 기어 그것의 옆으로 도망치며 소리를 지르는 종구였다.

“저 새끼 죽여!”

하지만 그것은 으적으적 먹다 슬쩍 종구를 쳐다보고 다시 먹기 시작했다.

“저 새끼를 죽이라고 이 병신 같은 년아! 처먹지만 말고 저 새끼 죽여!”

종구가 나를 죽이라고 명령해서 긴장했건만, 그것은 종구의 발악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먹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으적으적!

저건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종구가 바로 옆에서 폭언했는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는 건, 종구 말대로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종구와 나 단 둘이 해결할 문제만 남았다. 메이스를 고쳐 쥐고 종구를 향해 다가갔다.

“난 널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고. 그냥 아더스... 그 새끼들만 잡으면 됐다고, 아더스를 잡고 세력을 키우면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고! 그럼 됐단 말이야. 네가.. 네가 거부한 거잖아.”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호의에는 호의로. 하긴 이놈도 날 처음부터 죽이려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 딴에는 내게 호의를 베풀려고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6개월 시한부 인생에 목줄이 채워지는 삶이었지만 말이다.

“.......”

“날 죽인다고 뭐가 달라져. 널 살리기 위해서 AWS를 쓰려고 했던 거야. 네가 그냥 제대로 맞았으면 이년도 네가 장악했을 거라고. 우리-우리는 생각이 잘 맞았잖아. 그래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알잖아 이게 내 뜻이 아니라는 거. 살려줘.”

내 침묵에 종구의 눈동자가 공포로 물들었다.

“설마 아더스가 그런 것도 개발한 건가? 응? 그럴 리가 없어. 막아. 저놈을 막으라고 막으란 말이야!”

종구가 등판을 바닥에 대고 기어가면서 처절하게 외쳤지만, 그것은 종구를 무시했다.

“괜찮아요? 세 마리나 덤벼서 시간이 좀 걸렸어요. 어?”

유미가 밖에서 쑥 들어오며 말했다. 역시 그 셋으로는 시간을 끄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유미를 보자 종구의 표정이 절박함과 처절함 그리고 분노로 물들었다. 자기를 지키던 세 여자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은 종구의 얼굴은 죽음의 공포에 잠식됐다.

거부하는 것처럼.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는 것처럼 종구가 소리를 질렀다.

“죽여. 막아. 날 지키라고!”

필사적인 종구의 외침.

찌이이잉- 초음파처럼 울리는 소리에 저절로 인상이 써졌다.

종구의 입을 막으려는 순간, 위기감응이 발동됐다. 아주 미약하게 내리누르던 감각이 순간적으로 묵직하게 변했다.

"으으..."

내 뒤에 있던 유미가 부르르 떨며 필사적으로 말했다.

"피... 피해..."

유미는 자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메이스를 치켜들었다. 반사적으로 방패를 틀어 막았다. 쾅! 몸이 화장실 변기를 박살내며 샤워부스에 틀어박혔다.

정신을 차리는 순간, 내 머리를 향해 메이스 내려찍는 유미의 모습이 보였다. ‘뭐... 뭐야 이건?’ 하얀 것이 옆에서 튀어나왔다. 유미가 휘두른 메이스가 내 머리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콰직! 유미의 몸을 끌어안은 채, 벽을 뚫고 들어간 그것이었다. 시체를 먹고 있던 그것이 나를 죽이려는 유미를 끌어안아 막은 것이었다.

‘유미가 나를 공격해? 저게 나를 살려줘?’

벽을 뚫고 옆방으로 간 곳에서는 부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 속에서 종구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들렸다.

“크크크크큭! 그래. 이거야. 이제 알았어! 이거라고!”

종구의 안구에는 실핏줄이 터져 시뻘겋게 변해있었다. 피눈물을 흘리며 웃는 모습은 괴기스러웠다.

“그래. 느껴져. 느껴진다. 넌 내 거다. 넌 내 거야! 죽여! 저 새끼도 불량품도 모조리 죽여 버려!”

종구는 그것과 뒤엉켜 싸우는 유미를 보고 미친 듯이 웃었다.

반사적으로 놈을 향해 방패를 던졌다. 뻐억! 30kg이 넘어가는 원형 방패가 죽여 버리라고 고함을 지르는 종구의 턱을 박살내고 목을 으스러뜨린 뒤 벽에 틀어 막혔다.

메이스와 방패로 그것을 두들겨 패던 유미의 몸이 순간 뚝 멈췄다. 마치 코드를 강제로 뽑아버린 컴퓨터가 멈추는 것처럼 움직임이 멎어버린 유미였다. 방어만 하던 그것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돌려차기로 유미가 쥐고 있는 메이스를 발로 걷어차자 팅! 소리와 함께 메이스가 빙글빙글 날아가 벽에 푹 틀어박혔다. 돌려차기로 몸을 회전시킨 회전력을 이용해 유미의 눈에 주먹을 꽂아 넣으려는 그것의 모습.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나를 공격한 유미, 그런 유미를 막은 저것.

유미가 죽는다. 멈춰! 멈추라고!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멈춰!”

욱신- 두통과 함께 귀에서 이명이 들렸다. 삐이이이잉-

나도 모르게 꾹 감았던 눈을 떠보니 그것은 주먹을 멈추고 있었다. 멍하니 서 있는 유미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기 직전에 멈춘 그것.

바로 눈앞에 주먹이 날아오고 있음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멍하게 서 있는 유미. 그리고 머리통이 날아간 채, 비척거리다 쓰러지는 종구의 몸통까지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

유미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유미는 대성통곡을 했다.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넋 놓고 우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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