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벌 (2)
사이렌이 울리자 밖이 부산스러워졌다. 복도가 울릴 정도로 발자국소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벌집을 들쑤신 것처럼 초등학교 전체가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옆으로 슬쩍 빠졌다.
그 순간, 소파에서 일어서는 두목 놈과 눈이 마주쳤다. 두목의 눈에는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뭐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표정. 놈은 변종이나 빗치만 못했다. 강했다면 당장 저 싸움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빠가가각!
뼈와 살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피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후두둑-소리를 내며 피와 고깃덩이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 틈 사이로 양 손에 톱과 도끼를 든 여자가 두목을 바라봤다.
두목이 자신을 바라봤던 그 눈빛 그대로. 먹이를 바라보는 그 눈빛 그대로 두목을 바라보던 그것이. 고개를 살짝 돌려 날 쳐다봤다.
샐죽-
나를 보곤 미소를 짓는 그것이었다. 뭔가 묘한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본 두목 놈이 고함을 빽 질렀다.
“너... 너... 네놈... 무슨 짓을 한 거냐!”
창문을 향해 달려 나가면서 두목에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선물이다.]
“으아아아아! 저 새끼 죽여!”
두 손가락을 눈썹 옆에 댔다 떼며 경례를 해줬다.
“굿 럭.”
“죽여! 죽여 버려!”
와장창!
교장실 유리창을 깨고 나오자 식인종들과 추종자들이 달려들었다. 유미는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밖에 있는 놈들을 처리하고 오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바닥을 구르며 화단에 있는 장식용 조약돌을 한 웅큼 쥐며 벌떡 일어났다.
“우아아아!”
“우오오오!”
철근을 갈아 만든 뾰족한 창과 철판을 뜯어 만든 거대한 중국식 식칼 비슷한 무기가 사방에서 짓쳐들었다. 몸을 비틀어 찔러오는 창을 피하고 손에 들고 있던 흰 조약돌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단순한 튕김이었지만 위력은 그렇지 않았다. 손가락 힘으로 튕겨낸 조약돌이 식인종의 눈알에 틀어박히자 안구가 터져나갔다.
“끄악! 내 눈!”
놈이 들고 있던 창을 잡아당기자 수평으로 휘둘러지던 식칼이 눈알이 터진 놈을 긁어버렸다. 가죽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내장이 쏟아졌다.
식인종과 추종자들은 동료가 죽었음에도 전혀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이빨을 드러내고 고함을 질렀다. 피의 광기가 번지는 것처럼 사방에서 벌떼처럼 몰려왔다.
팅-
“악!”
다시 손가락 끝에서 튕겨지는 조약돌이 한 놈의 머리통에 틀어박혔다. 두 놈이 쓰러지면서 흘린 철근 창과 거대 식칼을 양 손에 각각 쥐고 앞으로 내달렸다.
기사의 차지처럼 쭉 뻗은 철근 창이 한 놈의 명치를 꿰뚫고 그 뒤에 있는 놈들까지 셋을 꿰었다. 팍! 칵! 팔뚝과 다리에 피가 덕지덕지 붙은 칼들이 스쳤지만 무시하고 밀어 붙였다.
어묵처럼 줄줄이 꿰인 놈들을 방패삼아 밀어 붙이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자동차 휠을 발로 걷어찼다. 깡!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자동차 휠이 날아가 한 번에 두셋을 박살냈다.
‘젠장. 스펙만 있으면 순식간에 쓸어버리는 건데.’
욱신-이제까지 내리누르지 않던 심장이 내리 눌렀다.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던졌다. 팍!-타아아앙! 서 있던 자리에 총탄이 박히며 총소리가 곧바로 이어서 들렸다. 건물 옥상에서 저격을 하는 놈이 있었다.
“쯧- 귀찮...”
묵직-내리누르는 것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다시 개구리처럼 옆으로 펄쩍 뛰었다. 탕! 내가 피하자 내 뒤를 찌르려고 했던 놈의 가슴에서 피가 튀었다. 저격하는 놈이 한 놈이 아니라 두 놈이었다.
“우오오오오!”
“와아아아악!”
뽕 먹은 놈들처럼 밀려드는 놈들이었다. 유미가 유인해서 처리한 놈들도 있을 것이고 밖에 돌아다니는 놈들과 건물 안으로 들어간 놈들을 빼면 많이 있어봐야 30~40명 일 텐데, 꼭 수백 명이 달려드는 것 같았다.
‘변이를 일으킨 건가?’
사람을 잡아먹고 강해졌다고 하더니 통증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대뇌에서 생체 마약이라도 분비하는지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놈들에게 공포란 없었다.
‘공포가 없다면.’
더 좋았다.
“우오오오오!”
“죽여어어어!”
놈들을 피하지 않고 식칼을 마주 휘둘렀다. 칼끝에 걸리는 뼈 썰리는 느낌을 무시하고 발을 내딛었다. 쿵! 진각을 밟는 것처럼 내려찍은 발을 축으로 허리에서 어깨까지 만들어진 회전력으로 거대한 중국식 식칼처럼 생긴 것을 휘둘렀다.
콰가가가각!
포위하고 달려들던 5명이 한꺼번에 두 동강이 났다. 뒤 따라 오던 놈들의 눈동자에 떠오른 것은 공포가 아닌 놀람이었다.
욱신-내리 누르는 것과 동시에 옆으로 피하는 것이 아닌, 달려오는 놈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탕! 총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탕! 내 옆에 있던 놈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하지만 저격하는 놈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 총을 쏴댔다.
탕! 반 박자 먼저 다시 총알을 피해 다시 같은 편을 쏘자. 조준하는 시간을 길게 잡는 저격수였다. 두목이 있는 건물 안으로 50명 정도 들어갔고 나를 잡으러 30~40명가량 몰려들었지만 순식간에 10명 넘게 나자빠졌다.
“우와아아아!”
“죽여!”
“우우우우우!”
허옇게 분칠한 몸뚱이들이 서로 뭉개지며 달려들었다. 가까이 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하고 달려드는 놈들. 지긋지긋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자동차 휠을 걷어차 두 놈을 엎어뜨리고 뒤따라오는 놈들이 엉켜 쓰러지는 그 틈으로 밀고 들어갔다.
욱신- 위기감응은 위험을 피하게 해줬지만 한계가 있었다. 정확하게 신체 어느 부분이 노려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동작을 크게 할 수 밖에 없었고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던 움직임이 흐트러지자 낚싯바늘처럼 끝이 휘어진 갈고리에 허벅지가 걸리고 말았다.
“우오! 잡았다!”
서걱!
잡았다고 고함을 지르는 놈의 목을 쳤지만 놈이 들고 있던 갈고리는 다른 놈의 손에 쥐어졌다.
“끌어당겨!”
갈고리가 잡아당겨지면서 중심이 무너졌다. 욱신- 잡아당기는 쪽으로 달려 나가려 하자 놈들 가운데 내 움직임을 간파한 놈이 소리쳤다.
“창! 창으로 찔러!”
“우오오오!”
창을 내지르는 식인종들에게 마주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래! 찔러봐!”
뾰족한 창의 숲 안으로 뛰어들어 식칼을 휘둘렀다. 금속과 금속이 충돌하고 뼈와 쇠가 마주쳤다. 살과 피 그리고 광기가 강물처럼 흘렀다. 그리고 그것을 관통하는 총소리. 갈고리가 박힌 허벅지에 굵직한 구멍이 뚫렸다. 내 몸통을 맞추기보다 기동력을 차단하려는 심산 같았다.
‘젠장. 이래서는.’
심장을 옥죄어오는 감각이 극대화 됐기 때문인지 방아쇠를 당기는 타이밍을 알 수 없었다. 주변에서 날 노리는 흉기들이 너무 많았다. 너덜거리는 허벅지에 박힌 갈고리는 생으로 잡아 뜯자 총상과 갈고리로 인해 생긴 자상에서 피가 뭉클 솟아올랐다.
중심이 무너져 비틀거리자. 희고 검은 칠 위에 붉은 피까지 덧칠한 놈들이 피를 본 피라냐처럼 퍼덕이며 달려들었다.
“다리가 묶였다!”
“먹자!”
“먹이!!”
“우오오오.”
그 순간 묵직한 파공음과 함께 세 놈의 머리통을 박살낸 막대기가 내 옆에 떨어졌다. 쾅!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막대기는 메이스였다.
“아저씨!”
유미의 목소리였다. 옥상에 있는 저격수를 처리했는지 더 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바닥에 박힌 메이스를 뽑아들었다.
“옆으로 피해욧!”
유미의 고함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틀자 동그란 원반이 다시 갈고리를 걸겠다고 달려든 놈의 몸통을 작살내고 땅에 박혔다. 내가 쓰는 방패였다.
“땡큐!”
30kg이 넘는 메이스. 기존의 것보다 5kg 정도 더 무겁고 길게 만든 메이스였다. 훈련의 효과로 기초체력이 강해졌는지 예전보다 더 수월하게 휘두를 수 있었다.
콰직!
묵직한 쇳덩이는 방어가 불가능했다. 철근으로 만든 창으로 막으면 철근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몸통이 다져졌고 철판으로 만든 방패로 막으면 팔과 함께 척추까지 뭉개졌다.
방패까지 들었으니 창으로 찌르고 화살로 쏘는 공격은 무용지물이었다. 삽시간에 시체가 쌓였다. 눈이 돌아간 놈들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놈들은 얼마 없었다.
“왜? 먹이라며? 안와?”
“......”
“......”
=위이이잉! 위이이잉!
사이렌 소리가 변했다. 그 순간 건물 안에서 총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총소리가 나는 교장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달려들지 못하고 눈치를 보던 놈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
총구멍이 뚫리고 갈고리에 찢긴 허벅지가 아물었다. 벽에 기대 본관 건물 안에서 들리는 고함소리와 총소리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것이 예상대로 잘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사이렌 소리를 듣고 뿔뿔이 흩어진 놈들은 초등학교 밖으로 도망친 것 같았다. 하지만 멀리서 들리는 총소리로 보아 포위망을 뚫고 도망친 놈은 없어보였다.
“괜찮아요?”
유미가 옥상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말했다.
“그럭저럭.”
“그러니까 무기도 없는데 달려들면 어떻게 해요? 여기요.”
유미가 건네준 물병을 받아들고 마셨다. 물병 안에는 보충제가 들어있었다. 순식간에 한 병을 비우고 나자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며 허기졌던 몸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밖에 있던 식인종들 가운데 30명 가량을 죽였고 10명 내외가 도망쳤다. 하지만 유미가 말했던 여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네가 말했던 여자들은?”
“유인한 놈들 가운데는 없었어요.”
“두목 옆에도 없었어.”
“안에 있겠죠. 안에서 싸우는 건 뭐에요?”
“선물.”
“예? 선물이요? 설마 그 황씨네 딸이 싸우고 있다고요?”
유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픽-웃고 말자, 냄새를 맡는 것처럼 킁킁 거리더니 인상을 팍-썼다.
“그 여자. 뭐에요? 네?”
꼭 고양이가 털을 세우고 경계를 하는 것 같았다. 유미에게 간략하게 설명해줬지만 유미는 안절부절 못했다.
“그 여자가 식인종들 먹고 계속 변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두목을 잡아먹으면 맨홀 변종처럼 강해질 지도 모른다고요.”
“그 놈이 그렇게 쉽게 잡힐 놈이 아니야. 지금은 총 들고 싸우겠지만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도망칠 걸.”
“그게 아니라요.”
유미는 꼭 내가 미도를 만나러 갔을 때, 불안해했던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뭐가 그렇게 불안해?”
나도 유미도 전신에 피칠갑을 하고 있어서 살짝 떨어져 있었지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니 그냥 두는 건 아니다 싶었다. 살짝 안자 짙은 피 냄새로도 지울 수 없는 짙은 체향이 새어나왔다.
반사적으로 체향을 뿜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미도가 있을 때 보다 더 경계를 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처럼 내 품에서 부비 대던 유미와 눈이 마주쳤다. 유미의 뱃속에서 살짝 허기진 소리가 들렸다.
*
유미는 다른 때보다 더 집요하게 피를 빨았다.
“아- 너무 많이 먹었죠.”
“...... 괜찮아.”
보충제를 목구멍으로 쏟아 붓듯이 넘기며 대답하자 유미의 얼굴이 부끄러움과 미안함으로 달아올라있었다.
“그나저나 총소리가 계속 났고 시끄러웠으니 좀비들이 몰려들겠는 걸.”
“맨홀 변종이 있던 지역이라 다른 곳에 비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곳에 있던 좀비들은 13구역 미도와 미노가 있는 식육빌딩 인근으로 내려갔다가 맨홀이 죽고 난 뒤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래서 맨홀 변종이 있던 이 근처에는 좀비의 밀도가 낮았다.
식인종들이 이곳에 거점을 잡으면서 좀비들을 처리하기도 했고, 다른 곳으로 적극적으로 유인하기도 했기 때문에 인근엔 좀비가 매우 적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방에서 울리는 총소리와 초등학교 본관 확성기에서 울리는 사이렌소리를 생각하면 다른 구역에 있던 좀비들이 몰려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일단 유미야. 네가 가서 사람들 퇴각 좀 시켜라.”
“네? 왜요. 저 여기 있을게요. 사람들은 식인종을 잡으면 바로 퇴각하기로 했어요.”
“몇 명이나 유인 했는데?”
“16명이요.”
두 번이나 유인했는데도 16명밖에 유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곳에 80~90명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유미가 16명을 유인했으면 최소한 14~20명 정도가 비었다. 유미도 두목과 함께 있던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고 했고 나도 본관 건물에서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네가 봤다던 여자들이 신경 쓰여서...”
하지만 유미는 고양이처럼 경계했다.
“그럼 여기에 제가 있을게요.”
“응? 뭐라고?”
“중화제도 아껴야 하잖아요. 식인종 두목과 있던 여자들은 빗치는 아니었어요.”
“.......”
유미가 의외로 단호하게 자기주장을 했다.
“아저씨가 여기 있다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요? 빗치를 잡으려면 제가 여기 있어야지요.”
“아니. 그러니까. 꼭 잡아야만 하는지...”
빗치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빗치들과 만난 것만 벌써 3번 아니 이번까지하면 4번째였다.
함정에 빠졌을 때, 타격조를 피해 도망친 빌딩에서 그리고 약을 구하러 간 곳에서 만난 미도까지...
3번의 경험을 통해 빗치들이 나를 무턱대고 적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두 번은 우연이라지만 세 번은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황씨 딸이 변한 빗치도 나에게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