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종 (3)
대량으로 총기가 풀리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총기를 사용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총소리를 듣고 좀비들이 몰려온다면 전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식인종들을 잡고 이 지역을 안전구역으로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의지는 위험에 굴하지 않았다. 싸울 의지가 없는 사람들을 한 번 걸렀기 때문인지, 사람들의 전의는 꺾이지 않고 견고했다.
자연스럽게 내가 리더의 역할을 하게 됐다. 안현철이 그렇게 나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귀찮은 자리는 사양했을 것이다. 뒤에서 한 명을 조종하는 게 낫지, 앞장서 이끈다는 것은 생각보다 부담됐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지휘하고 조율해 본 경험이 없어 정신적인 피로가 상당했다.
식인종 때문이라고는 하나, 200명 넘는 사람들이 총기로 무장을 시키고 보니,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은 우릴 존경하고 있었다. 단 둘이서 좀비들을 뚫고 몇 차례나 왕복해 총기를 가져왔다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을 아낀다고 생각한 것이다.
*
사람들이 우릴 존경한다고 하더라도 유미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항상 최악을 대비하라고 했잖아요.’ 유미가 그렇게 말하는데 웃어 줄 수밖에 없었다.
보고를 받는 동안 유미는 굳은 얼굴로 내 곁을 지켰다. 그녀는 근거리 총격에도 버티겠지만 난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재생능력과 신체능력을 제외한 내구성에 있어서 일반인과 그다지 차이나지 않았다. 총에 급소를 맞으면 죽는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그런지 유미의 신경은 날카로워 보였다.
“총을 들 수 없는 사람을 제외하면 전부 훈련시키도록 하세요.”
“네.”
“본관 지하실이 넓으니 지하에서 사격 연습을 하도록 하고, 사격훈련에는 아이들도 참관시키세요.”
“알겠습니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총이 없으면 살기 힘든 세계가 될 것이다. 총, 석궁, 화살과 같은 무기를 다룰 줄 알아야 했고 총기 사고가 나지 않으려면 미리 경험시키는 것이 나았다. 그렇게 대규모 전투 준비가 착착 진행됐다.
*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자세히 관찰하고 찔러보던 유미가 놈들이 점차 더 체계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녀석들이 10명 단위로 움직인다는 거지?”
“네. 유인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네 체향을 사용해도 마찬가지였어?”
“페로몬은 쓰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내가 페로몬에 걸리지 않다보니 실험을 해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멀쩡한 사람에게 쓰고는 죽여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식인종들에게 찔러봤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10m 정도만 떨어져도 효과가 떨어졌고, 바람의 방향이나 세기에도 영향이 컸다.
“무슨 생화학병기도 아니고...”
바람과 날씨, 지형과 거리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니 꼭 생화학병기가 떠올랐다. 내 중얼거림에 유미의 표정이 변했다.
“아... 그런 뜻이 아니라. 조건이 까다롭다는 뜻이야.”
“.......”
화제를 전환했다.
“그럼 제일 많이 유인했던 건 몇 명이지?”
“10명이요.”
유인을 한다고 하더라도 10명 정도 밖에 끌어내지 못했다. 유미의 말대로라면 걸리기는 걸린다고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제약이 있어 전부 무력화 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좀비도 문제가 된다고 했다.
“좀비 때문에 오픈된 장소에서 계속 뿌리기는 힘들어요.”
“좀비가 문제라고?”
“네.”
내 어이없는 반문에 유미의 얼굴표정이 노랗게 떴다.
“설마 페로몬을 강하게 뿌리면 좀비들도 반응하는 거야?”
“......”
그러니, 식인종들을 잡자고 길거리에서 페로몬을 펄펄 뿌리면 몇 놈 걸리지도 않는데 유미 가까이 있는 좀비들이 환장을 하고 달려드는 상황이 됐다.
유미의 장점인 좀비들에게 공격받지 않는다는 것이 깨진다는 소리였다. 페로몬을 쓰면 좀비들에게 공격(?) 받게 되는 상황이 된다는 의미였다.
“난감하네."
변종이나 사람들을 유혹한다고 생각했는데 좀비들까지 그렇게 만들 수 있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좀비들도 그게 될까? 저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페로몬은 주변에 변수가 없는 상황에서만 쓸 수 있다고 봐야겠군.”
“예. 상황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 생각이라면...”
“일단 페로몬은 좀 더 확인하고 쓰자.”
“... 그 꼭 써야 해요?”
유미가 페로몬을 쓰자는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좀비들이 달려들었던지라 영 좋지 않은 표정이었다. 유인해서 처리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유미 입장에서 보자면...
“그랬구나... 알았다.”
"헤헤..."
알았다고만 했는데도 유미의 표정이 바로 밝아졌다. 헤헤 웃는 모습을 보니, 신경쓰지 못해준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그랬다. 헤헤 웃던 유미의 표정이 살짝 심각해졌다.
“그리고 식인종들 말이에요.”
“그놈들이?”
“추종자들이 생기고 있어요.”
“추종자들이 생긴다고?”
“네. 제 발로 가서 잡아먹히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 추종자들로 보여요.”
“숫자는? 그렇게 모이는 사람이 많아?”
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좀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80명이 넘는 식인종들인데 숫자가 늘면 힘들었다. 졸지에 시간 싸움이 됐다.
“아무래도 시간을 끌면 좋지 않을 것 같다. 계획을 바꾸자.”
“예? 계획대로 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시가전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유미는 무장이 충분하니 놈들과 시가전을 벌이자고 했다. 그건 위험했다. 저쪽은 사람을 먹는 놈들이었고 인간사냥을 해 본 놈들이었다.
그에 반해, 이쪽은 절대 다수가 성인 남성들에게 보호를 받았던 사람들이었다. 진짜 총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여자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100명이 넘었다. 전면전이나 시가전은 무리였다.
공멸을 각오하고 싸운다면야 상관없지만, 나를 믿고 따라오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들이 있어야 아더스와 거래를 틀 수 있었다.
“전면전은 안 돼.”
“그럼 어떻게 하시게요?”
*
전)리더들의 증언에 따르면 식인종 두목은 인간을 초월한 강함이 있다고 했다. 내가 스펙을 맞지 않은 상태에서 주먹질 한 방으로 단상을 박살내는 것처럼 그 놈도 그랬다는 소리였다.
성인 남성 3배에 육박하는 힘은 인간을 초월한 힘으로 보일 것이다. 어지간한 자동차는 혼자 폐차하는 것도 가능할 정도의 힘이었으니까 말이다.
만에 하나 나와 식인종 두목이 비슷한 케이스라면, 나처럼 페로몬 면역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나와 식인종 두목의 차이는 하나 밖에 없었다.
‘식인’
내가 참지 못하고 사람을 잡아먹었다면? 혹은 스펙을 맞고 솟아난 식욕을 참지 못하고 좀비든 뭐든 씹어 먹었다면? 어쩌면 그 두목처럼 변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방벽에서 만든 전투식량을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뭔가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그냥 단순히 망해버린 세상이 아니라 미쳐버린 세상. 이 세계는 언제 어떻게 변해도 이상할 게 없는 폭탄 같은 세상이었다.
“읍-읍-”
황씨의 딸이 격렬하게 발버둥 쳤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지. 왜 나를 그렇게 미워할까?”
“으으읍-으읍” 마치 ‘네가 아빠를 죽였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럼 내가 죽었어야 해? 그 양반이 쏜 총에 맞아 죽었으면 되는 건가?”
“으읍!읍!”
“내가 당신을 이곳에 따로 묶어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해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읍! 으으읍 으읍!” (몰라 이 미친 새끼야.)
“그래. 멍청하지 않으면 알겠지. 생각해 보라고 화를 낼 번지수를 잘못 찾았어. 당신 남자친구 이름이 현상이라고 했지? 그 남자가 왜 죽었는지 알아?”
“......”
그 사내가 왜 죽었는지 말해주겠다고 하자 여자의 발버둥이 뚝 멈췄다. 두 눈에서는 눈물을 막 쏟아낼 것처럼 나를 노려봤다.
“강당에서 했던 말 들었지? 믿지 못하겠다고? 믿거나 말거나 안현철이 식인종들과 내통했다는 건 진실이야. 그렇게 식인종들에게 넘겨준 제물이 당시 식량을 수색하기로 하고 나갔던 6명의 사내들이었어.”
“으읍!” (웃기지마!)
“잘 기억해 보라고 당신 남자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5명 가운데 안현철과 대립했던 사람들이 누구였나. 당신 아버지 황씨도 안현철과 대립했던 사람이었을 걸. 그 비리비리한 청년도 뭔가 반대의견을 많이 냈었을 거야. 아닌가?”
“......”
“그렇게 안현철은 식인종들에게 식량수색조가 이동하는 경로를 알려줬고, 식인종들은 매복을 하고 있다가 습격했다. 그걸 내가 구해줬어. 그런데 결과는 뭐지? 당신 아버지는 날 팔아먹었고 안현철을 날 죽이려고 했지. 아니라고? 그럼 안현철이 날 살려줬을까?”
“으으읍!”
“자- 다시 생각해 보자고,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아? 화를 낼 번지수가 잘못됐다는 걸 알려주려는 거야. 당신 남자친구는 누구 때문에 죽었나? 나 때문에? 아니지. 아니야.”
“으읍!”
“화살을 쏜 놈들은 식인종이고. 식량을 찾으러 나간 자들을 팔아먹은 건 안현철이야. 그리고 안현철과 대립했던 건 당신 아버지고... 그런데 왜 내가 제일 원수지?"
"......"
"당신과 현상이가 만나는 것을 반대했던 사람은 누구야? 당신 아버지라고 당신 남자친구가 화살에 두 발이나 맞은 게 우연일까? 그렇게 서로 얽혀있는 거야. 그런데 이렇게 얽힌 상황에서 무조건 내가 제일 죽일 놈이다?”
“......”
“난 죽게 생긴 당신 아버지와 남자친구를 구해줬었는데도? 당신 아버지가 은혜를 원수로 갚지만 않았어도 나는 이곳을 그냥 떠났어. 아닌가?”
“......”
“반대로 생각해 보지, 당신 아버지가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 주사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면? 안현철이 주사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나를 그냥 보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
“여기 사람들은 안현철과 식인종들 사이의 거래대로 하나씩 먹이가 됐겠지. 그리고 사사건건 딴지를 걸었던 당신 아버지는 안현철의 계획대로 가장 먼저 처리됐을 거고. 아닌가? 그래도 내가 그냥 단순한 원수일까?”
“......”
“원수라. 생각해보니 나를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있군. 궁금한가?”
황씨의 딸을 앞에 두고 펜트하우스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했다. 두 자매를 풀어줬던 이야기.
“그렇게 살려줬어도 그 사람들에게는 내가 원수일 따름이겠지. 아마 어디선가 복수를 하겠다고 몸을 팔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 걸까? 그냥 변덕이라고 생각하라고. 혹시라도 식인종 놈들을 죽일 기회가 생긴다면 식인종 놈들을 죽인 뒤에, 나에게 화풀이를 하라고. 식인종들을 죽이고 그 다음에 날 원망하든 말든 하란 말이지.”
난 씁쓸한 표정을 지어주고 일어났다.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황씨의 딸은 날 노려봤다. 하지만 욕을 하거나 발버둥치지는 않았다. 그러면 충분했다.
*
꼬박꼬박 때가 되면, 번호표를 뽑은 사람들을 던져줬다. 그러다 일주일 넘게 사람들을 던져주지 않았다. 열흘 정도 지나자 식인종들에게서 반응이 왔다. 꼬박꼬박 떨어지던 먹이가 뚝 끊긴 꼴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습게도 처음에는 식량이 출입구 앞에 쌓였다. 식량만 챙기고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자, 좀비들을 유인해 주변을 봉쇄하는 식인종들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을 보내지 않았다. 결국 식인종들이 화살에 편지를 묶어 쏘아 보내왔다. 전멸하고 싶지 않으면 약속을 지키라는 협박이었다. 그래서 답장을 보냈다.
일단 두목을 한 번 보자.
내가 직접 식인종들 아지트인 초등학교로 간다고 하자 유미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꼭 이런 방법 밖에 없나요?”
“여차하면 생각해둔 수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신호를 보내면 알지?”
“알았어요.”
예전 같았으면 절대 반대를 외치며 떼를 썼을 텐데. 내가 픽-웃자 유미가 쏙 품에 안겨왔다.
“그렇게 웃지만 말고, 위험하게 하지 말라고요. 알았죠? 약속해요.”
“그래. 약속.”
처음 계획을 폐기해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식인종들의 숫자도 늘었고 식인종도 아니면서 추종하는 것들도 모였다. 식인종과 추종자를 합하면 거의 150명에 육박했다. 전부 무장한 놈들이었다.
놈들이 흩어지지 않았을 때 일망타진하려고 했었는데, 그런 방법을 찾기 힘들었다. 페로몬으로도 국지적인 효과밖에 볼 수 없었고 오히려 유미의 기동력이 제한되는 꼴이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몇 개 없었다. 그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두목을 죽이고 나머지를 몰이 사냥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유미의 지휘로 무장한 사람들이 15명 20명씩 조를 짜 이동했다.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손에 잡은 밧줄이 딸려오며 여자가 끌려오며 으르렁 댔다.
“안현철이 사람들을 식인종에게 던져줬다고 하더니 너도 똑같은 새끼잖아. 응?”
황씨의 딸이 역겹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문제지? 번호표를 받고 순서가 되면 잡아먹히겠다고 선택한 사람들이었어. 잊었나? 난 그런 사람들만 보냈던 거야. 나와 안현철이 어디가 똑같지?”
“날 끌고 가는 이유가 뭐지? 놈들에게 던져주려고 호호호 더러운 새끼.”
“뭐가 더럽지?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4번째로 죽을 당신을 이제까지 살려준 게 누군데.”
“차라리 죽여. 이 미친 새끼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황씨의 딸이었다. 입에 재갈을 물리고 번쩍 들어 옮겼다.
대학교 주변을 가득 메웠던 좀비들을 다시 유인해 치웠는지 거리에는 좀비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골목을 나서자 얼굴에 칠을 했는지 뭘 발랐는지 하얗고 검은 칠을 하고 웃통을 깐 사내들이 손짓을 했다. 식인종들이 점차 늘고 추종자들까지 생기면서 급속도로 조직화가 되는 놈들이었다.
“따라와라.”
허옇고 꺼멓게 칠한 10명이 날 에워싸고 인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