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종 (2)
우리는 항상 둘 뿐이었다. 그래서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나와 함께 다닌 지 오래됐기 때문인지, 유미는 제법 만약의 경우를 짚어낼 줄 알았다.
“식인종 놈이 그냥 앞뒤 신경 쓰지 않고 무조건 잡아먹겠다고 하면 어떡해요.”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선물이 필요한 거야.”
“선물이요?”
“그래 화끈한 선물.”
내가 고개를 들어 모여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를 바라보자, 유미도 내가 보는 방향을 따라봤다. 그 시선의 끝에는 황씨 아저씨의 딸이 있었다. 유미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나와 그 여자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며 물음표를 동동 떠올렸다.
*
작전이든 계획이든 성공하기 전까지는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한정적일 경우 더욱 그랬다. 하지만 단순히 희망사항이 된다고 하더라도 계획을 짜는 게 무계획 보다 유리했다.
안현철과 (전)리더들이 말했던 것처럼 식인종 두목이 변종에 준하는 신체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분명히 자신감이 흘러넘칠 것이다. 게다가 안현철과 다른 리더들이 식인종과 싸우기를 포기하고 번호표를 뽑겠다고 결정할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줬다는 소리였다.
저항을 포기할 정도로 힘의 격차를 보여줬다면, 최소한 유미와 비슷하거나 그 바로 아래라고 보였다. 어쩌면 미노처럼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
‘발화 능력이나 그런 능력이 있을 수도...’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만약 미노처럼 발화능력이 있었다면 함정을 파서 진작 맨홀 좀비를 사냥했을 것이다. 남는 것은 신체능력 밖에 없었다. 맨홀 좀비보다는 약한 신체능력이었기 때문에 맨홀 좀비가 있을 때는 나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놈의 자신감은 맨홀 변종 아래라는 것. 맨홀 변종이 사라지고 나서 식인약탈자들이 이 근방을 휘젓고 다닌다는 것. 이 둘을 동시에 감안해 보면, 20kg짜리 바벨을 던지는 여자와 한방에 단상을 박살내 버리는 나라는 존재를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식으로 나를 보려고 할 것인가?’였다. 안현철은 모르지만 다른 리더들은 식량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 끌려갔었다고 했었다. 그 말대로라면 두목을 만나려면 내가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소수와 함께 밖으로 나간다면 유미의 걱정대로 문답무용 일단 잡아먹자고 할 가능성도 배제하긴 힘들었다. 먹이들을 다독이는 역할은 다른 사람을 써도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예상이 맞아야 할 텐데.’
일단 기다려야 했다. 80명이라는 식인종들을 유지하려면 하루에 2명가량 필요했다. 더 필요하면 더 필요했지 남지는 않았다. 여자들이라면 하루에 3~4명을 잡아먹어야 할 판이었다. 최대한 이걸 이용해야 했다.
“좋아. 일단 계속해서 미끼를 던져보자.”
번호표를 뽑고 미끼가 되겠다고 애원했던 사람들이니 만큼 원하는 대로 해주면 그만이었다.
*
유미를 통해 놈들의 식습관이나 움직임 등을 간간이 파악했다.
“잡식이기는 한데요. 점점 사람을 먹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요.”
“그래?”
사람이 없으면 일반 식량을 먹지만 사람이 있으면 일반 식량보다 사람을 먹는다고 했다. 10명을 던져줬으니 5일은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고작 3일 만에 2명만 남기고 8명을 잡아먹었다고 했다.
“먹는 양도 점점 늘고요. 확실히 영역을 확장하고 있어요.”
“먹는 양이 늘었다고?”
“네.”
칼로리 소모 때문인가? 어쩌면 조금씩이지만 계속해서 변이가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확실히 빨리 처리하는 게 좋았다.
“영역도 확장하고 있다고?”
“맨홀 변종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을 전부 장악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흥!”
유미가 콧소리와 함께 살짝 인상을 썼다. 하긴 그랬다. 맨홀 변종을 우리가 죽였으니, 맨홀의 땅은 우리 것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유미가 경계지역에 가서 흔적을 남겨, 다른 변종이나 빗치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식인종들이 활개를 치는 꼴이었다.
어찌됐든 맨홀 변종이 장악했던 구역의 70%까지 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유미는 지도에 식인종들이 움직이는 방향과 좀비를 유인해 몰아놓은 곳을 표시했다.
“이쪽으로 좀비들을 몰아넣은 것을 보니까, 아마도 생존자들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다른 생존자 그룹이 있다고?”
“네. 일단 유인된 좀비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 것을 보면... 음... 그래요.”
“직접 확인한 건 아니지?”
“네.”
앓고 난 뒤, 유미의 피부는 바늘이 들어가지 않았다. 칼에도 베이지 않았고 예상이지만 5.56mm 총탄도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빗치들이 흘린 체향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페로몬도 자유자제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 모든 변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좀비들이 덤비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좀비들이 유미를 공격하지 않았다. 좀비들이 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공격하는 반면, 유미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유미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만약 유미가 작심하고 일반 좀비들과 뒤섞여서 싸운다면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좀비들을 몰아서 좀비들과 같이 싸우라고요?”
“그래. 좀비들이 식인종들을 공격하니까 말이야. 좀비들이 식인종들을 공격하는 동안, 중간에 네가 난입하면 얼추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그러기엔 장소가 좋지 않아요.”
“장소라. 놈들이 있는 곳이 초등학교라고 했지?”
“네.”
하필 초등학교를 거점으로 삼고 있었다. 본관 건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노출 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좀비들이 몰리면 일부가 나와 좀비들을 유인할 것이 분명했다.
“유인하는 건 어떨까요?”
“마찬가지야. 80명이 넘는 놈들이 전부 유인 당하지는 않을 거야.”
숫자가 좀 적었다면 모를까 80명이라면 나눠서 대응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확실히 적의 숫자가 많다보니 이것저것 신경을 쓸 것이 많았다.
“역시 한 번에 소탕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사람을 먹는 놈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 영 문제인데.”
사람을 먹는 놈이 변종이라도 잡으면 그 시체를 먹지 않을까? 변종은 고사하고 조금 지나면 좀비들도 잡아먹을 지도 몰랐다. 좀비를 잡아먹고 멍청한 좀비가 되거나 말도 못하는 변종이 되면 상관없는데, 똑똑한 좀비가 되거나 말하는 변종이 되면 그게 더 피곤했다.
어떻게든 한 번에 쓸어버리려고 했는데, 여러모로 걸리는 게 많았다.
“쯧- 공격헬기라도 있으면 모아놓고 쓸어버릴 텐데.”
“그냥 저번처럼 둘이 나눠서 한 쪽씩 잡으면 안 될까요?”
유미는 미도와 미노를 잡았던 것이 마냥 떠오르는 것 같았다. 변종과 빗치를 잡은 것치고는 계획대로 딱딱 잡혔으니 그럴 법도 했다.
“놈들이 둘로 비슷하게 나뉘면 가능하겠지만 60명 20명 이렇게 나뉘면 힘들어. 20명이 떨어져 나온 쪽을 잡는 동안 다른 쪽이 60명에게서 버텨야 하는데, 두목 놈의 능력도 아직 확실히 모르고...”
“사람 수라면 우리도 많잖아요. 300명이 전부 달려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포위만 해주면 가능할 것 같은데요?”
좀비들이 유미를 공격하지 않는 것뿐이지 유미가 좀비들을 조종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좀비들 틈에서 유미가 활약을 하기 위해서는 좀비 몰이를 할 사람이 필요했다.
좀비들을 유인하면서도 잡아먹히지 않을 정도인 사람. 결국 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유미와 좀비들이 식인종들과 교전을 벌일 때까지 내가 유미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나와 유미 없이 일반인들이 다른 한 쪽을 맡아서 막아야 했다.
“그래도 식인종들을 잡으려면...”
“일단 생각 좀 해보자.”
“......”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동하는 건 놈들이 못 알아챌 리 없어. 어떻게 몰래 움직인다고 해도 문제야. 총기는 34자루가 전부인데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300명 가운데 최소한 200명은 총화기로 무장하는 게 좋았다.
“일단 무장부터 시켜야 한다는 말이죠?”
“그래. 최소한 200명은 무장을 시켜야 해. 할 수 있다면 애고 늙은이고 할 거 없이 전부 무장을 시키는 게 좋아.”
“총소리가 나면 좀비들이 몰릴 텐데요?”
“그러니까. 더욱 총이 필요해. 200~300명이 한꺼번에 집중 사격한다고 생각해봐. 두목이나 그 아래 급들은 몰라도 일반 식인종들은 확실히 제압할 수 있을 거야. 한 번에 놈들에게 타격을 입히고 곧바로 자리를 뜨려면 총이 많이 필요해.”
300명이 초등학교를 포위해 집중 견제를 하는 동안 유미는 떨어져 나온 놈들을 정리하면 됐다. 유미가 유인된 놈들을 정리하는 동안 내가 먼저 초등학교를 포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 돕고, 사람들은 퇴각을 시작한다.
유인된 놈들을 처리한 유미가 곧바로 돌아와 총소리를 듣고 몰려온 좀비들과 함께 살아남은 식인종들을 공격하면 됐다. 도망치는 놈들이나 옆으로 새는 놈들이 없도록 내가 정리할 수 있다면 얼추 그림이 나왔다.
타이밍이 중요했고 혹시라도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신호를 보낼 수 있어야 했지만 비상 신호체계는 충분했다. 초음파 피리도 있었고 내 피 냄새를 통한 위급신호도 있었다. 300명이 5분에서 10분 정도만 견제하고 버텨주면 가능성이 있었다.
“좋아- 한 번 해보자. 주변에서 총기를 구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없다면 새총이라도 만들어야지 뭐.”
좀비들에게는 통하지 않더라도 식인종들에게는 충분히 통할 것이다.
“알겠어요. 그럼 한 번 찔러 볼까요?”
시키지 않아도 척척 다음을 생각하는 유미였다. 기특한 나머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깊게 찔러보지는 말고. 놈들이 몇 명이나 따라 나오는지 확인해봐.”
“네.”
유미가 곧바로 일어섰다.
“그 두목 옆에 있다는 여자들이 실질적으로 지위가 높은지. 다른 중간급이 따로 있는지 자세히 확인해봐.”
“알겠어요. 그럼 오늘 번호표 4번 그룹 차례인데 보낼까요?”
“그래. 바로 보내고 사람들 좀 모아줘.”
“네.”
“아- 잠깐. 4번 그룹에 황씨 아저씨 딸이 있거든. 그 여자는 따로 빼둬.”
“예? 네... 저번에 봤던 그 여자 말이죠?”
약간 신경 쓰인다는 표정을 짓는 유미였다.
“그래.”
“흐응- 알겠어요.”
유미가 살짝 눈을 흘겼다. 허허롭게 웃자 째릿- 째려보고 나가는 유미였다.
*
싸우기로 한 사람들에게 무장을 돌려줬기 때문인지 사람들과 아주 약간이지만 신뢰가 생겼다. 전)리더들과 그 가족들이 자신들을 미끼삼아 오래 살려고 했다는 배신감도 좋게 작용한 것 같았다.
같이 싸우겠다고 한 사람들을 100% 믿는 것은 바보였지만, 그렇다고 모든 정보를 꽁꽁 감추고 있는 것은 더 멍청이 같은 짓이었다. 안현철의 그룹에 있던 사람들은 안현철이 나를 잡으려고 했던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갸날픈 유미가 괴력을 발휘하는 것도 주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주사만 있다면 싸워볼만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뜻 싸우겠다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설령 주사를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주사를 사용해 힘을 쓸 수 있는 나와 유미가 있으니 턱없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싸울 사람들과 번호표 사람들로 구분한지 며칠이 지났으니 싸우겠다고 모인 사람들 사이에 주사에 대한 소문이 충분히 퍼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모이라고 하자, 사람들은 은근히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그 주사만 있으면 힘이 강해진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사람을 잡아먹으면 힘이 세진다고 하는데 그게 미친놈들이지.’
‘번호표를 뽑는 놈을 리더라고 했으니.’
‘차라리 싸우다 죽지. 제 발로 날 잡아 잡숴 하는 새끼들은 뭔지.’
‘잘됐어. 설마 우리에게도 약을 주는 게 아닐까?’
‘설마 300명이 넘는데?’
‘전부는 아니더라도 남자들만이라도 쓸 수 있으면 식인종들 싹 밀 수 있을 것 같은데.’
‘쉿- 왔다.’
서로 속닥거리는 소리들이 순식간에 뚝 끊겼다.
“우선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에 앞서. 궁금해 하실 것 같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내 설명이 끝나자 사람들은 잠시 실망에 빠졌다. 스펙이 많지 않다는 소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스펙 자체는 3조에게서 털어온 양이 있었지만 그걸 풀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중화제도 없는 상황에서 스펙을 쏜다면 중독성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 나았다. 반은 믿고 반절은 믿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일단 스펙에 대해 내가 공식적으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다음으로 무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총기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뜻하지 않게 몇 명이 의견을 제시했다.
“**3동 경찰서는 아직 털리지 않았습니다.”
“@@2동 동사무소 창고에도 예비군용 총화기와 탄약이 있습니다.”
인근에 살고 있던 주민과 방위의 도움으로 아직 털리지 않은 곳을 알 수 있었다. 알면서 왜 털지 않았느냐는 내 질문에 당시에는 맨홀 변종 때문에 꼼짝할 수 없었다는 답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좋습니다. 5일 전까지 털리지 않았다고 했으니 일단 한 번 정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작전은 어떻게 됩니까?”
“보안상의 문제로 작전 직전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300명이 넘는 인원이었지만 운동능력이 너무 떨어지는 사람들을 걸러내고 보니 255명 정도가 총기를 들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일단 여자들도 전부 총을 쏘는 연습을 시키도록 하세요. 작전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곳 방어는 남는 사람들이 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총과 석궁. 화살을 다루는 법을 훈련시키도록 한 뒤, 아직 털리지 않았다는 경찰서와 동사무소에 가봤다. 안타깝게도 경찰서는 털려있었다. 식인종들이 털었거나 아니면 다른 생존자들이 털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동사무소 창고에 있는 예비군용 무기는 멀쩡했다. 칼빈과 K-1에 M-1 개런드까지 뒤죽박죽 섞여 있었지만 얼추 200자루는 넘어 보였다. 탄도 제각각이지만 있었다. 유미와 함께 둘이서 열심히 날라 사람들을 무장시키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