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는 생존자들 (3)
좀비와 식인약탈자들 가운데 누가 더 위험할까? 변종이나 빗치를 제외한다면 식인약탈자들이 절대적으로 위험했다. 인간의 이성을 가지고 인간사냥을 하는 이들. 어떻게 보면 단독으로 움직이는 변종보다도 악질적이었다. 위험도를 따진다면 빗치와 동급이라고 할까?
식인약탈자들을 생각하면 걸리는 게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혹시나 싶었지만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자리를 비울 때, 이곳을 통제할 사람이 필요한데...”
여자를 보며 말하자. 여자의 표정에 약간의 안도감이 어렸다. 그 미약한 안도감이 사라지기 전 이야기를 꺼냈다.
“식인약탈자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나?”
‘네 능력을 보여 봐라.’는 식으로 식인약탈자에 대해 묻자, 여자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 대답했다.
“네.”
“아는 대로 말해봐.”
맨홀 변종 때문에 고립됐던 약탈자들이 식인을 시작했다. 그 뒤 식인의 효과를 깨닫게 됐고, 식인약탈자가 됐다고 했다.
“그렇군.”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미소를 짓자 미약했던 안도감이 짙어지는 여자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 내가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근데 말이야. 그건 어떻게 알았지?”
“네?”
퍽-그대로 명치를 때리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꺽꺽거리는 여자였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걸 직접 봤나? 아니면 누구에게 들었나?”
꺽꺽 숨을 쉬려고 버둥거리는 여자의 눈동자에 체념이 깃들었다.
생존자들이 하나로 합쳐지고 있는 게, 단순한 우연이 아닐 수도 있었다.
*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던 유미가 돌아왔다.
“다들 잘 따르고 있어요. 생각보다 말을 잘 듣던데요.”
‘질서가 있다고 해야 하나?’ 혼잣말을 하던 유미가 바닥에 널브러진 여자를 보고 말했다.
“어? 저 여자는 그냥 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중간 관리자가 필요하다면서요?”
“일단 저 여자는 빼고. 다른 사람을 구해야겠어.”
“예? 왜요? 사람들이 저 여자 말을 잘 따르는 것 같던데요.”
“그것도 문제지만... 아무래도 감이 좋지 않아서 말이지.”
인망이 있는 사람을 대리로 내세우는 것은 장점과 단점이 명확했다. 안정적인 상황에서는 장점이 더 많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믿을 사람이라고는 유미 밖에 없는 상황에서 저 여자를 대리로 내세우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식인약탈자들에 대한 정보를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안현철도 그렇고 이 여자도 그렇고 식인약탈자에 대한 정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안현철과 이 여자의 행동을 보고 제일 처음 떠오른 것은 바로 종구였다.
“종구와 그 일행이 떠올라서.”
“빌딩사람들이요?”
유미는 종구일행을 언급하자 살짝 인상을 썼다. 미끼가 돼서 스스로 다른 사람을 낚은 자들이라는 인상이 박혔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하고 이 여자가 무슨 상관인데요?”
“식인약탈자들에게 이곳의 윗대가리들이 정보를 흘렸다면?”
“네? 설마요?”
“가능성을 말하는 거야. 식인약탈자들은 이성을 가지고 있어. 미도나 미노처럼 말이지. 그들이 일반좀비들에게서 보호를 해줄 테니, 제물을 바치라고 했다면? 안현철이나 저 여자가 어떤 선택을 할까?”
“네? 그러면 왜?”
그렇다면 왜 나에게 수면제를 먹이려고 했는가? 아이러니하게 저들에게 양심이 있다는 반증이었다.
약탈자들에게 희생자를 던져주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 그 힘을 얻기만 한다면 식인약탈자들에게 더 이상 제물을 바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마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 힘이 온전히 스펙에서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리수를 뒀을 것이다.
내 설명에 유미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런 유미에게 단언했다.
“그래도 결론은 같아. 어찌됐든 이들은 자기들의 입장에서 일을 처리했다는 소리지.”
변하는 건 없었다. 생존자들이 하나로 뭉치고 있다는 것은 식육약탈자들에게서 대항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역으로 본다면 한 곳에서 가둬놓고 양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이다. 싸울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제거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현실이 밝혀져도 저항하는 자들이 없어질 것이다.
지휘부는 안전하게 다음 희생자를 물색하고 새로 들어온 생존자들을 먹이로 던져주며 안전한 삶을 영위하게 됐을 것이다. 종구일행이 그렇게 했듯 말이다.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하실 건데요?”
“일단 아는 걸 전부 쥐어짜 봐야지. 내가 예상한 게 틀렸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약탈자들이 습격을 하는 것을 봤을 때부터 기미가 이상했다. 어디로 움직인다는 정보가 없는데 습격을 할 수 있을까? 우연히 만나서? 좀비들이 돌아다니는데? 아니었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
선량한 사람들이 모여서 상식적인 수준에서 움직이는 생존자 그룹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 가운데서 리더십이 있고 생각이 깊은 사람을 대표로 뽑았다. 그런데 그 대표가 선택한 방법이 식인약탈자들과 결탁하는 것이었다.
맨홀 변종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그러니 희생자를 던져주는 방식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괴수에게 제물을 바치고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받는 장면이 떠올랐다.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인간의 사회는 급속도로 중세 그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도덕적인 개인이 모여 결과적으로는 비도덕적 행동을 하는 상황들... 아주 오래전 읽었던 내용이 살짝 떠올랐다 사라졌다.
내가 가지고 있던 스펙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안현철은 다른 결정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개인적인 성향과는 상관없는 결정을 하게 됐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남은 사람들 가운데 누구를 대표로 선출하든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개인을 포함한 집단의 생존이 걸려있을 때, 도덕성을 따지기란 쉽지 않았다.
‘종구도 걱정이군.’
이곳으로 오기 전에 일행들과 다투던 종구가 떠올랐다. 종구가 정말 개과천선을 했을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일행들의 리더로 남아있으려면 예전처럼 망가져야 할지도 몰랐다.
*
그룹의 우두머리 격인 사람들과 그 가족들 싸우다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을 분류했다. 그렇게만 하더라도 20명이 넘는 인원이었다. 과거 부족들 사이에 싸움이 한 부족의 말살 전쟁까지 가는 이유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이 지난다면 이 작은 사회 안에서는 한 다리 건너 혈연관계가 이어질 것이다. 그런 사람이 외부 그룹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자연스럽게 피의 복수가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분절되고 단절됐던 인간관계는 이번 사태로 인해 완전히 변해버렸다. 기존의 인간관계는 무너져 버렸고 이리저리 얽혀진 관계로 변하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비가 그치자, 여자가 말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상했다.
“어 누구십니까? 안현철씨가 대표 아니었습니까?”
새로 40명 정도를 이끌고 온 등치 좋은 남자가 날 보고는 아는 사람이 없는 지 주변을 둘러봤다. 역시 이 사람도 안현철을 알고 있었다. 안현철이 그렇게 마당발이었을까?
“유미야.”
“네.”
퍽-
“커윽- 이게 대체 무슨...”
빡!
늘씬한 미녀가 자기보다 머리통 하나 반은 더 큰 사내를 기절시키는 것을 보고 같이 온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유미가 사내를 기절시키는 동안 총을 꺼내려고 하는 자들은 내가 제압했다.
“쯧- 너도 나도 총을 가지고 있군.”
리볼버가 아니면 공기총이라도 들고 있었다. 하긴, 이제 조금 있으면 8월이었다.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 반년이 흐른 것이다. 이 그룹도 그간 부침이 많았는지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은 구성비였다.
“기존에 있던 사람들과 섞어놔. 끼리끼리 모이지 못하게 말이야.”
“네. 들었지? 다들 따라와.”
유미가 사람들을 이끌고 강당으로 갔다. 나는 덩치 좋은 사내와 완강하게 저항했던 두 명을 심문했다.
여자와 새로 들어온 그룹의 리더들을 심문해서 규합한 정보에 따르면, 식인 약탈자들의 숫자는 50여명이었다. 성인 남성의 몸무게를 70kg정도라고 했을 때 고기의 무게는 대략 50kg이 나왔다. 성인 남성 한 명으로 이틀 정도의 식량이 되는 것이었다.
저들이 사람만 먹었을 때를 가정하면 그랬다. 하지만 식인약탈자들은 잡식성이었다. 일반식량도 먹고 사람도 먹고. 그냥 두면 먹을 수 있는 건 전부 먹어치울 놈들이었다.
두목이라는 놈은 변종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강하다고 했다. 다른 놈들도 좀비들과 완력으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고 했다. 대략적인 정보를 얻고 보니 좋지 않은 예상만 맞아 떨어졌다.
“그러니까 그 놈들이 이곳으로 모이도록 좀비들을 막아섰다는 거네.”
“크윽- 그렇습니다.”
어쩐지 별다른 싸움 없이 40명씩이나 되는 인원이 이동했나 싶었다.
“그렇다는 건 인근에 있는 다른 그룹들도 이곳으로 모이기로 했다는 건가?”
“으-윽 그렇습니다.”
*
30~50명 사이의 생존자 그룹들이 하나 둘씩 모이더니 순식간에 총 인원이 300명이 넘어가는 대규모 그룹이 됐다. 하루에 먹는 양만해도 엄청난 양이었다. 352명이나 되는 숫자 가운데 나이든 사람을 제외하고 어린 아이를 빼면 270명. 그 가운데 싸울 수 있는 성인 남성은 80명이 넘지 않았다.
무려 8개 그룹이 모여 352명을 만들었다. 리더의 숫자만 하더라도 8명. 죽은 안현철을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7명이었다.
식인약탈자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여자를 떠올려 보면 분류해야 할 인원은 더 늘었다. 각 그룹에서 최소한 한 명 또는 두 명 정도는 리더들이 식인약탈자와 거래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80명 가운데 대략 20명 정도가 빠진다고 하더라도 60명이었다. 20명의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나와 유미가 죽인 사람의 가족들을 합하면 그 인원이 50명이 넘었다. 그룹 하나 정도의 인원이었다.
유미는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나와 함께 다니면서 손속이 단호해지기는 했지만 무방비인 사람을 학살하는 것 내켜하지 않아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세상에서는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았다.
‘죽이거나 아니면 떠나보내거나.’
하지만 떠나보낸다는 것은 식인약탈자들에게 이곳의 정보를 전해주는 것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저들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대답하지 않는 저들을 식인약탈자들이 고이 보내줄까? 잡아먹기도 할 것이고 자신들의 무리로 끌어들일 자들은 끌어들일 것이다.
‘일단 식인종들을 처리하기는 해야겠는데...’
그간 얻은 정보로는 놈들이 있는 곳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지역이었다. 좀비들을 유인해 한 쪽으로 몰았고 생존자 그룹들과 마주치면 싸우기보다 이곳으로 가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50명은 넘어 보인다고 했었지.”
“좀비 정도면 충분히 죽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일반인이 스펙을 맞은 정도로 강해졌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 때 그 놈들과 비슷하다고 봐야 할 거야.”
인육을 먹고 강해졌다고 했으니, 타격조 정도의 육체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게 나았다. 그런 놈들이 50이 넘는다면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게다가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한 번에 처리해야했다.
“그 정도로 강할까요?”
“그렇게 강하다고 생각하고 처리해야지.”
나와 유미 둘만으로는 그들을 잡기 힘들었다. 변종을 잡느라 한 번 사용했으니, 중화제는 이제 두 번 분량만 남았다. 계획이 필요했다.
*
며칠 동안 생존자 그룹이 셋이나 더 합류하면서 400명이 넘게 모였다. 사람들이 모였으니 이제 공개를 해야 했다. 배터리로 작동되는 이동식 마이크로 각 그룹의 리더들이 고백했던 내용을 틀어줬다.
=...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했나?
=크윽... 놈들은 하루에 한 명만 희생하면 나머지는 안전하다고 약속을 했다....
=여기까지 좀비의 습격 없이 올 수 있었던 건 이유가 뭐지?
=놈들이 좀비들을 다른 곳으로...
=아는 건 다 말했다고...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버렸다. 이제까지 믿고 따랐던 리더들이 희생자들 던져주고 살아남으려고 했다는 것에 놀랐고. 그 가족들은 틀어준 내용이 조작이라며 흥분했다.
주먹을 들어 단상을 내려쳤다. 쾅! 수류탄이 터지는 소리를 내며 단상이 박살났다. 웅성이던 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400명이 넘는다. 한 사람이 한 끼에 쌀 150g만 먹는다고 생각해도.”
“.......”
“.......”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한 끼에 20kg짜리 세 포대가 소모된다는 소리다. 하루에 두 끼만 먹는다고 해도! 하루에 20kg짜리 쌀 여섯 포대씩 소모가 된단 말이야. 한 달이면. 180포대의 쌀이 소모된다.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그렇다는 말이다.”
“......”
“이곳에 생존자들을 몰아넣은 이유를 정말 모르겠나? 이제 식인종들이 좀비들을 몰아와 주변을 포위하면 어떻게 할 건가? 도망치지도 못하고 놈들이 던져주는 식량만 받아먹으며 사육되게 됐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가축처럼 도축되고 싶은가? 그걸 원하는가?”
“.......”
“가축처럼 죽고 싶지 않다면 싸워라. 애고 늙은이고 여자고 할 거 없이 싸워. 놈들만 죽이면 이 근방에는 큰 위험이 없다. 식인종 놈들만 죽이면 이 주변에서 식량을 확보할 수 있다. 결정해라. 싸울 것인가? 아니면 너희들을 팔아먹은 저자들의 말처럼 번호표를 뽑고 죽을 순서를 기다릴 건가?”
“.......”
“싸울 사람은 이쪽. 번호표를 뽑을 사람은 저쪽으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