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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102화 (102/261)

조짐 (3)

유미의 체향도 문제였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여러 문제들이 많았다.

방벽 세력과 아더스가 대립하면서 죽인 좀비 사체처리 같은 주요한 부분을 양측 모두 놓치고 있었다. 두 세력이 점차 영역을 정리해 나가면 좀비들의 시체가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생긴 좀비 사체들이 정리되지 않고 계속 소모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장 방벽인근에 모인 좀비들만도 십만 단위는 넘어 보였다. 그렇게 모인 좀비들이 다른 좀비의 사체를 먹고 변이를 일으킨다면? 변이가 확산이 된다면 그 때도 나와 유미 둘을 중심으로 살아남는 게 가능할까?

좀비들의 변이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임문제도 중요한 문제였다. 종구와 세 여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만약 이게 종구와 세 여자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문제라면? 그런 문제를 확인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시설도 필요했고 다른 분야의 의사들도 필요했다.

여차하면 시험관 아기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됐든 불임전문의가 됐든 다양한 영역의 의사들과 합심을 해야 그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가를 만나려면, 어설픈 세력이 아닌 큰 세력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 좋았다.

방벽세력이거나 아더스거나. 둘 가운데 하나에 속하는 것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아더스 쪽에는 연구원들이 있어 보여. 중화제 보여줬지? 그것만 봐도 그래. 그런 걸 연구하고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는 소리거든.”

“......”

이번에는 종구가 침묵했다.

“아더스는 방벽세력과 싸우면서 체계도 갖추고 있고 제법 무장도 충실하더라고. 조짐을 보니까 좀비들도 그렇고 불임 문제도 그렇고 또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데 날 중심으로 생존자 그룹을 만들자고? 다른 걸 다 떠나서 날 중심으로 뭉치는 게 생존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해? 문제 해결은? 그냥 되는 데로 살기만 하면 그만이야? 정말로?”

“......”

“까놓고 말해서 너도 알겠지만 내가 일반인들과는 좀 달라. 가끔 어쩔 때는 식욕이나 파괴욕구 같은 게 미칠 듯이 끓어오르기도 한다고. 그러다가 갑자기 정신이 확 나가 버리면 어떻게 될까? 변종이나 좀비처럼 변하거나 그러지는 않을 지,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그런데 나를 중심으로 생존자 그룹을 만들자?”

“......”

묵묵하게 내 말을 듣기만 했던 종구가 입을 열었다.

“넌 왜 아더스에 가담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방벽 쪽에서 생체 실험한다는 걸 알았는데. 그걸 보니까 도저히 쉽게 믿기 힘들더라... 내가 아더스로 가면? 처음에야 당연히 잘 해주겠지. 전력이 부족하니까 당장이야 대접을 해주겠지만 부상이라도 입고 빌빌거리면? 그대로 실험체가 될지 누가 아냐? 방벽세력과 싸우는데 도움이 된다 싶으면 날 해부라도 하려고 들지 누가 아냐고? 절대 아닐 거라고 장담할 수 있냐?”

“그럼 처음부터 우리만 연결하지 다른 생존자 그룹은 왜 알아봤는데?”

“처음에는 아더스에 흡수되는 형식이 아니라 독자적인 자치그룹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지.”

“그 옐로우 플래그인가 하는 곳처럼?”

“그래.”

종구가 날 보고는 한 숨을 푹 내쉬었다.

“아- 생각 좀 해보자.”

“그래 저 사람들도 돌려보내야 하고 그래야 하니까. 오후 3시까지 생각해 보고 답을 줘. 아- 그리고 말이야. 내가 말하면 오해할 지도 모르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네가 운을 띄워봐.”

“...그래...”

*

종구가 나가고 잠시 뒤에 나가 보니 1층 로비 대기실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40대와 20대가 보였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미래를 생각할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40초반으로 보였던 사내는 단 몇 십분 만에 몇 년은 늙은 것처럼 피부색이 죽어있었다.

그는 멍하게 담배를 태우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담배를 급하게 끈 사내가 날 불렀다.

“후- 이보게. 아까 의사양반이 한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지금 있는 사람들이 몰살될 거라고? 그게 정말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죽고 다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건장한 남자들이 조금씩 줄고 다음에는 나이 많은 남자들 그 다음에는 청소년들과 건장한 여자들 그 뒤는...”

“모두 살 방법은 없나? 전혀 방법이 없나?”

“방법이야 제대로 무장한 세력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사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총으로 뭉친 놈들 치고 제대로 된 놈들 없다는 건 알 텐데? 그런 놈들에게 가족의 목숨을 맡기란 말이야?”

이 남자 상당히 다혈질이었다.

“맡기고 말고 할 상황은 아니지요. 간다고 해서 상대방이 받아 준다는 보장도 없고요. 쓸모 있는 사람들만 받고 나머지는 받지 않겠다고 할 수 있으니까 지금부터 흥분하지 마십쇼.”

“뭐... 뭐라고?”

사내는 화가 나지만 나에게 뭐라고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엄한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저기... 실례지만...”

“네. 무슨 일이신가요?”

상당히 유약해 보이는 청년이 날 불렀다. 본래 나이라면 10살은 차이 났겠지만 젊에 변화된 내 신체는 청년 또래로 보이는 상황이었다. 자기 또래로 보이는 데도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는 남자였다.

“부상당한 분 때문에 말입니다. 환자를 이곳에 잠시 맡겨도 괜찮겠습니까?”

“그건 제 소관이 아니라 대답해드리기 어렵겠네요. 의사에게 말해보세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아직도 식식대며 분을 이기지 못해 너구리를 잡아대는 40대 남자를 뒤로 하고 펜트하우스로 가려는데 젊은 남자가 다시 날 불렀다.

“저기 잠깐만요. 아까 의사선생님하고 하셨던 이야기 말입니다.”

“네.”

“식량이 가장 큰 문제라면 식량 문제만 해결되는 되는 일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럼 아파트 옥상이나 건물 옥상에서 농사를 지어도 되지 않을까요?”

“저는 농사를 몰라서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주식으로 삼을 만한 작물을 기르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흙이나 종자를 구하기도 힘들고요.”

“건물 옥상이 힘들다면 서울에서 조금 만 벗어나도. 농사를 짓고 사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젊은 사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농사를 지을 줄 아냐는 것이었다.

도시에서 자라 도시에서 큰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란 쉽지 않았다. 예전의 세상이라면 인터넷을 통해 정보라도 얻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농작물을 기른다는 생각은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잠깐만요. 농사지을 줄 압니까?”

“어르신들 가운데 지을 줄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까지는 어떻게 갈 생각인데요? 6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도보로 이동하면서 좀비 무리들을 뚫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인적도 없고 좀비도 없는 땅까지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최소한 수십 키로 넘게 걸어야 하는데 가능하겠어요?”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죄송하지만 그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죠. 저도 사정이 있어서요. 부상당한 분에 대해서는 의사선생에게 확실히 물어 보세요. 그럼 이만.”

갑자기 농사이야기를 해서 혹시나 싶었더니 역시 그런 이야기였다. 이들이 농사를 지으러 가겠다고 한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사실 도울 수도 없었다. 싸울 수 있는 남자 9명이 51명의 비무장 일반인을 호위하며 서울을 빠져 나간다?

수십만 아니 수백만이 넘는 좀비들을 뚫고? 대체 150일 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이해하기 힘든 발상이었다. 현실이 영화보다 극적이니 지금까지는 살아왔겠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는 살아남기 힘들어 보였다.

적당한 인원을 아더스에게 넘기고 스킨종구를 통해 아더스의 정보를 캐내는 것이 좋겠지만 종구 하나만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한의사도 의사는 의사니까.’

한의사 양반과 단발머리 간호사도 전문 인력은 전문 인력이었기 때문에 아더스에서 정보에 접근하기 쉬운 위치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한의사든 단발머리 간호사든 일단 하나씩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다.

위층으로 올라가자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임간호사 생각은 그 남자를 믿을 수 없단 말인가?”

“아니요. 그 남자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전문 인력을 그렇게 쉽게 생체실험에 사용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에요.”

“큭-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말이야...”

한의사와 단발머리 간호사 그리고 종구의 목소리가 진지하게 섞이고 있었다. 그냥 내려가려는 찰라 뾰족한 목소리가 들렸다.

“잊었나 보군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우리들 이외는 믿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요? 그렇게 살아남았는데 도박을 하겠다고요? 전 반대에요.”

뭔가 평범하게 생겼던 여자. 미용실 직원 친구였다.

“큭-그래? 다른 그럼 당신도 같은 생각이고?”

“......”

종구의 웃음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큭크크크.. 한의사 양반은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도 방벽으로 가겠다고 하고, 임간호사는 당연히 한의사를 따라가겠다고 하고 있고... 이래서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니까.”

종구의 비틀린 목소리가 듣기 싫다는 것처럼 뾰족한 여자의 목소리가 조용히 비꼬기 시작했다.

“화장실이라뇨? 우린 항상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지 화장실에 들어간 기억은 없는데요? 따져보죠 당신과 저 여자들 셋이 어떤 그룹으로 가든 어느 세력으로 가든 넋 나간 여자들을 받아줄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긴... 셋 다 생긴 건 반반하니 환영 받을지도 모르겠군요.”

“크-크큭- 닥쳐라-”

“어라? 뭘 닥치죠? 그 남자를 휘두를 생각을 할 때는 여자쯤은 언제든 던져줄 것처럼 말하더니 양심이 부활하기라도 했나보죠? 기억나지 않나요? 그 남자에게 했던 말? 여기 여자들은 쿨-하다고 했었나?”

“닥쳐-”

“아- 그렇죠. 그러고 보니 맨 처음이 생각나네요. 다른 사람들을 유인하자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그런데 지금은 또 무슨 음흉한 생각일 까나?”

“이 씨발년이-”

“이봐- 진정해!”

종구가 뾰족한 목소리 여자에게 달려들고 한의사와 간호사가 종구를 말리는 소리가 났다.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종구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뾰족한 목소리의 여자가 쐐기를 박았다.

“사람을 저렇게 망가뜨려놓은 걸 누가 모를 줄 알아? 당신이 이제까지 한 짓을 알면 그 남자가 당신을 믿을 거 같아?”

“아가리 닥쳐-”

“자꾸 닥치라고 하는데. 뭘 닥쳐! 개새끼야! 네가 뭐라고 했었어?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자며! 근데 한다는 소리가 화장실?”

미도, 미노의 식육빌딩에서 맨 처음 종구 일행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저들은 15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서로 갈등하고 경계하고 의지하면서 한 그룹으로 뭉쳐있었던 자들이었다. 저들 가운데 리더가 있었다고 한다면? 종구가 암묵적인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

유미는 오늘도 영역표시를 하러 나갔다. 날이 맑을 때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돌아다니며 꼼꼼하게 영역표시를 하곤 했다. 처음에는 귀찮아했지만 요즘에는 농사꾼이 자기 땅을 살피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갔다왔다.

“다녀왔습니다.”

“어- 그래 수고했어. 별 일은 없었고?”

“네. 좀비들의 숫자가 좀 늘은 것을 빼고는 별다른 이상은 없었어요.”

“좀비들의 숫자가 늘어?”

“방벽이 있는 쪽으로 좀비들이 몰리는 것 같아요. 전부 지나가면 좋은데 가다 말고 인근에서 자리를 잡는 놈들도 있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래? 이상하네.”

방벽으로 유인하는 요인이 있다면 그 유인을 따라 전부 이동해야 하는 게 맞는데 일부가 가다 말고 근처를 배회한다?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어쩌겠어요. 좀비들이 그러는데. 아? 맞다 그리고 저 이-따-만한 바퀴벌레를 봤어요. 진짜 손바닥만 했다니까요?”

“바퀴벌레라고?”

“진짜 얼마나 놀랐는데요. 막 점프도 하고 날아다녔다니까요.”

“어디서 봤는데.”

“그러니까 이쯤에서요.”

붉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 근처였다.

“한 마리만 있었어?”

“네 눈에 띈 건 한 마리였어요.”

바퀴벌레라.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제대로 된 벌레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여름인데 모기도 없었고 파리도 없었다. 개나 고양이도 사라진 적막한 도시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바퀴벌레라니.

“다음에는 약국에서 바퀴벌레 약이라도 들고 나가야겠어요. 아우-”

유미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바퀴벌레가 있다면 다른 벌레들도 있을 수 있었다. 150일이 넘게 보이지 않던 벌레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은 좋은 조짐일까? 익충이 아니라 해충부터 보인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유미가 본 바퀴벌레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냥 엄청나게 크다는 의미로 손바닥만 하다는 건지 진짜 크기가 그렇게 크다는 건지 알아야했다. 정말 15cm가 넘어가는 바퀴벌레라면 우리나라에는 없는 종이었다. 그런 종이 갑자기 생겼다면? 바이러스가 인간 이외의 종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소리였다.

“이따 나갈 때는 같이 가자.”

“진짜요? 헤헤헤.”

*

종구는 오후 3시가 되도록 내려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아직도 의견규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소리였다. 종구의 변한 태도가 빌딩에 있던 다른 생존자들에게 반감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저들이 의견규합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부상자는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데려가라고 하시더군요.”

젊은 남자가 약간은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40대 남성은 굵직한 목소리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게 안 봤는데 그 사람이 참.”

“윽- 움직일 만합니다. 이쪽도 식량사정이나 그런 게 있을 테니...”

“에이. 더러워서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고 하지만 정상인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도 힘든 판국에.”

40대 남자는 약탈자들이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상인과 비정상인 그리고 좀비들 이렇게 분류를 하는 것 같았다.

“일단 제가 근처까지 같이 가드리죠.”

“고맙습니다.”

“큼. 그래? 고맙네.”

*

종구일행이 아더스에 합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안면을 익혀두는 것도 좋아 보였다. 이들이 있는 곳은 맨홀 좀비가 있던 영역과 접해있는 곳이었다.

“미친놈들. 사람이 사람을 기습해?”

40대 남자가 중얼거렸다. 약탈자들에게 습격당한 장소가 가까워지자 화가 나는 것 같았다.

“약탈자들과 자주 충돌했나 보죠?”

“그 미친놈의 새끼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확실히 그건 조금 이상했다. 식량을 옮기고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말 그대로 습격을 해봐야 빈털터리인데도 기습을 했다. ‘기습이라.’ 기습을 했다는 건 이들을 노리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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