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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101화 (101/261)

조짐 (2)

남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내용이 아니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일반적인 생존자 그룹이 가진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부인과 두 딸을 가진 가장이 약탈자 무리에 속하기는 불가능했다. 자기 부인과 딸을 약탈자들에게 던져주지 않을 것이라면 약탈자들과 같이 살기란 힘들었다.

결국 가족들과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은 약탈자들이 아닌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행동하는 생존자 그룹에 속하려고 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가족들과 함께 살아남은 사람들은 상식선에서 행동하는 생존자 그룹으로 몰려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숫자는 곧 힘이고 안전과 동의어였다. 하지만 그걸로 끝날까? 그렇게 안전한 생존자 그룹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4인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가장이 움직여야 했다.

당연히 식량 수색조에 성인 남성인 가장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위험하기 마련인 식량수색을 하다 남편이 죽게 되면 졸지에 여자만 셋이 남아버리는 상황이 됐다.

그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이 죽어버린 세 명의 여자를 생존자 그룹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남자가 없는 군식구니 버려 버린다? 그럼 다른 남자들이 그 그룹에 남아 있으려고 할까? 남아있는다고 하더라도 위기가 닥쳤을 때 최선을 다할까? 자기가 죽으면 남은 가족들이 버림받는데?

생존자 그룹은 살아남은 여자들을 공동 부담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생존자 그룹이 유지되고 세를 불려나갈 수 있었던 근원이 바로 기존의 가치관을 지켜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존자 그룹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탈자 그룹에 비해 결속력이 단단해지기 마련이지만 그 만큼 더 가중된 부담을 질 수 밖에 없었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 지 종구가 질문을 계속했다.

“연령대랑 뭐 그런 거는 몰라?”

“스물이 남자고 그 가운데 열다섯에서~ 쉰 까지가 열 둘, 다섯 명이 열다섯 살 이하, 세 명이 쉰 이상이라고 하네.”

“그래? 거긴 끝났네.”

종구가 고개를 흔들며 단언했다. 이런 쪽으로 빠삭하게 머리가 돌아가는 종구였다. 내가 어이없어서 픽 웃으며 말하자 종구가 곧바로 받아쳤다.

“거기까지 생각했냐?”

“망할 놈 지도 생각했으면서...”

종구가 툴툴 댔다.

열다섯부터 쉰까지 열둘이었다. 그런데 약탈자들에게 셋이 죽었으니 지금 남은 성인은 아홉. 그럼 남자 9명이서 나머지 51명의 식량을 대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 상황에서 여기에 있던 여덟 명이 합세하면? 종구까지 식량을 구하려 돌아다닌다고 해도 열 명이서 쉰일곱 명의 식량을 대야 한다는 소리였다.

“1인당 부양인구가 6명꼴이라면 확실히......”

내가 쓰게 웃자 종구가 한 술 더 떴다.

“알면서 떠 본거냐? 현실적으로 봤을 때, 저 양반네 그룹은 끝났다고...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면서 저쪽으로 가라고? 큭- 뭔 속셈이냐? 좀 잘 살아보자고 했더니 그냥 두지 않는 구나?”

“잘 살아야지. 지금까지 해온 짓이 있는데.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는 방법도 있잖아.”

“이런 세상에서? 나한테 뭘 바라는 거냐?”

어깨를 으쓱 올리고 말았다. ‘아주 기회를 안 줘요. 기회를...’ 중얼중얼하는 종구였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40대 남자가 불쑥 들어왔다. 종구와 내가 갑자기 난입한 40대 남자를 쳐다보자, 사내는 얼굴이 붉게 변한 것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가망이 없다니, 끝났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큼- 들으셨으면 아실 거 아닙니까?”

종구가 냉정하게 말했다. 부상자를 성실하고 꼼꼼하게 치료해주던 종구가 차갑게 말하자 사내는 순간 당혹스러워했다.

“뭐... 뭐요?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해도 되는 거요?”

40대 남성은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쳐다봤다.

“......”

“뭐... 뭡니까? 정말 이대로 가면 전부 같이 죽는단 말입니까? 아직 여유가 있다면 무슨 방법은 없겠습니까?”

종구는 마치 말기 암환자를 대하듯 냉정하게 말했다.

“무슨 방법 말입니까? 9명이 50명 먹을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판에 무슨 방법이요?”

“이보게 의사양반.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

“이 사람들이 정말!”

나와 종구가 침묵하자,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진 40대 남자가 소리를 꽥-질렀다.

“황씨 아저씨! 무슨 일이라도?”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고함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들어왔다.

“이... 이 사람들이...”

“일단 나가죠. 나가서 이야기하죠.”

흥분한 40대 남자를 끌고 나가는 청년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저런데 나보고 저쪽으로 가라고?”

40대인 황씨 아저씨라는 사람이 리더는 아니라고 생각됐다. 리더였다면 인구 구성비와 식량수급 같은 문제를 간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단순하게 식량이 부족하니, 부족하지 않니, 그런 식으로만 생각해서는 장기적으로 그룹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했다.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내 질문에 종구가 담배가 생각난다는 표정으로 지나가듯 중얼거렸다.

“살아남으려면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겠지.”

“구체적으로.”

“너도 알면서 무슨...”

“됐으니까 말해봐. 네가 생각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뭐냐?”

종구가 지긋지긋한 놈이라는 표정으로 내 질문에 대답했다.

“일단 입을 줄여야지.”

“그 방법 말고는 없겠냐?”

“이 상황에서? 약탈자들이라도 없었으면 모르겠지만 걔들 때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 놈들을 어떻게든 정리한다고 생각하면?”

“뭐? 약탈자들이 몇 명인 줄 알고. 찾았다고 하더라도 약탈자인지 생존자인지 구분을 어떻게 하게?”

“됐고 말해봐.”

“네가 약탈자들을 때려잡았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시간문제야. 성비의 불균형도 그렇고 인구감소도 그렇고 일단 한 번 시작되면 최소한 15~20년은 계속 문제가 누적되거든. 지금 상황으로 본다면 저 아저씨네 그룹은 이번 겨울이냐? 아니냐?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야.”

“앞으로도 계속 성비문제는 이어지고... 가치관의 문제까지 겹친다는 건가?”

“정확해. 그게 문제다.”

종구가 큭-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

약탈자들은 기존의 가치관을 완전히 박살낸 자들이었다. 생존우선, 쾌락중심으로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이에 반해, 그렇지 않은 생존자 그룹은 기존의 가치관을 최대한 유지-보존하려고 했다.

약탈자들이 남자들은 죽이고 여자들은 겁탈하는 것과는 달리, 여자와 아이들을 우선 대피 시킨다든지 질서를 지키려고 한다든지 하는 쪽이 일반적인 생존자들이었다. 그런 가치관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룹의 결속력과 안전성을 높이는 요인이 됐지만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장애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뜻하지 않게 성비가 무너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바로 답이 나왔다. 이런 세상에서 살다보면 여자 하나에 남자 넷이 생존하게 될 경우도 생기고 반대로 남자 하나에 여자 넷이 살아남는 경우가 생기기도 할 것이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

약탈자들이라면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남자 넷이 있는 경우는 적당히 돌려가며 공유할 것이고 여자 넷이 남은 경우에는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하나 혹은 둘만 챙기고 나머지를 버려 버릴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가치관을 지키려고 하는 생존자 그룹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기존의 윤리-도덕적인 가치관으로 그냥 1:1 관계만을 인정한다면 짝이 없는 남자 셋이 두 삶을 지켜보며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상관없는 여자들 먹을 것까지 챙겨야 한다는 압박을 장기적으로 버틸 수 있을까? 장기적으로 본다면 성비가 무너진 상황에서 기존의 가치관을 유지하며 존속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지. 극단적으로 보면 결국에는 모든 게 걸림돌이 된다는 거야. 나도 처음에 대놓고 난교를 벌였을 때는 욕을 처먹었지.”

“그 상황에서 그랬으니 욕을 처먹어도 쌌고.”

내 말에 종구가 실룩거리며 웃었다.

“킥-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약이라도 쓰지 않았으면? 섹스라도 하면서 미치지 않게 했으니 망정이지 여자들이 목매고 자살이라도 했으면 자살 열풍이 불었을 걸.”

“그래 잘한 짓이다.”

“큭- 그런데 말이야. 웃기지도 않은 문제가 생겼어.”

“무슨 문젠데?”

종구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세 여자와 빌딩에 틀어박혀서 4달 넘게 매일 했는데도 셋 모두 기미가 없다.”

“기미라니...”

종구의 표정은 좀 묘한 표정이었다. 뭔가 안도한 것 같은 표정이기도 하고 걱정스럽다는 표정이기도 한 그런 착잡한 표정. 기미?

“설마. 임신?”

“그래. 내 건 확인해 봤더니 꼬리도 건강하고 활발하더라고. 여자들의 몸도 딱히 이상하지는 않았어. 피임도 하지 않고 4달 넘게 그랬으면 최소한 셋 가운데 하나는 기미가 있어야 하거든? 그런데 기미가 없다는 건....”

“하- 이거야 원”

이런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변이되는 좀비들도 그렇고 이런 문제까지 조짐이 좋지 않았다.

*

변종과 빗치의 위협. 그리고 점점 강해지는 일반좀비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일정 규모의 집단을 유지하려면 옐로우 플래그처럼 방벽 세력에 의지해 필요한 무기를 구하거나 아니면 중소 규모의 약탈집단을 만들어 메뚜기처럼 쓸어먹으며 이동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일반적인 생존자 그룹은 겨울을 넘기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넘는다고 하더라도 아이가 없는 상황에서는 미래가 불투명하기 마련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라니 끔찍하기도 했지만 아이 때문에 힘을 내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었다.

죽을 상황에서도 내 새끼 때문에 이를 꾹 물고 참기 마련이었고 목숨이 위험해도 사랑하는 사람 하나 붙잡고 버티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면? 이유야 어찌됐든 더 이상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게 된다면...

“그냥 자연적으로 정관수술 했다. 그렇게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만이기는 한데..”

종구가 중얼거렸다.

“꼭 씨 없는 수박이 된 느낌이기도 하고. 그냥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진지하게 나가다가 꼭 초를 치는 종구였다.

“내가 말했었지? 방벽세력 말고 그들과 대항하는 세력이 있다고?”

“그래. 아더스라고 했나? 설마 그쪽으로 생존자들을 데려가게?”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아더스 쪽은 전투인원이 많을 거란 말이지.”

“호- 성비 불균형을 그런 식으로 해소하려고? 근데 내가 아더스 쪽 리더라면 거절하겠어.”

종구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지금은 싸우는 상황. 민간인을 어설프게 돕겠다고 하다가 조직 전체가 위험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3조를 함정에 빠뜨렸던 감시병을 떠올려 보면 아더스의 정책이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시병으로 위장했던 노인들이 자기스스로 미끼역할을 자처했든 아니면 강제로 미끼역할이 됐든, 그런 노인들이 150일이 넘는 동안 살아있었다는 것은 아더스가 무조건 적으로 생존자들을 걸러 내고 있는 건 아니라는 반증이었다.

“너 설마 진짜 목적은 아더스와 연결해보려고 했던 거였냐?”

내 표정을 살피던 종구가 눈치도 빠르게 핵심을 짚어왔다. 슬슬 이야기를 꺼내야 할 상황이었는데 알아서 화제를 돌려주니 좋았다.

“일단 내 이야기를 들어봐.”

설명이 필요했다.

*

종구는 처음에 펄쩍 뛰었다. 방벽 세력과 아더스 사이의 관계도 그렇고 자신이 그 틈바구니에 낀다는 것을 극렬하게 거부했다. 어떻게든 살살 달래서 아더스 쪽으로 넣어야 했다.

“종구야.”

“그렇게 말해도 아닌 건 아니다.”

“나하고 내 동료가 지켜주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이게 있잖아.”

종구는 총을 들고 큭-웃었다. 내가 준 소총과 탄창이었다. 베레타도 줬으니 한의사 양반과 둘이 총기로 무장하면 약탈자들이야 어느 정도는 막겠지만... 총을 쏜다는 것 자체가 좀비들을 불러 모으는 짓이었다.

“일반좀비들이 영 이상하다. 전부 변한 건 아닌데. 한 200마리 가운데 두 셋 정도 이상하게 강해진 놈이 있어. 5.56mm 철갑탄으로는 막지 못할 수도 있다.”

“너도 힘들겠냐?”

내가 일반인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종구였다.

“아직까지는 쉬운데. 숫자가 많아지면 확실히 문제거든.”

일반좀비도 숫자가 쌓이면 답이 없는데 변이된 놈들이 일반좀비 마냥 물량으로 나오면 정말 힘들었다. 게다가 나와 유미는 죽이고 시체를 태워버리기 시작했지만 방벽 세력이나 아더스도 그렇게 처리하고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수연이 헬기조종사의 머리를 자르는 것으로 봤을 때, 목을 자르기는 하지만 시체를 태우거나 그렇게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네 동료는 너보다 강하다며?”

종구는 유미를 거론하며 어떻게든 버텼다.

“다시 말하지만 쪽수 앞에는 장사 없다. 심지어 중간에 묘한 놈들까지 껴있으면 더 그렇고.”

“그냥 우리가 너희랑 합치면 안 될까?”

종구는 나와 유미와 함께하자고 말했다.

“그건 안 돼.”

“왜? 차라리 너희를 중심으로 뭉치는 게 낫지 않겠어?”

“......”

내가 침묵하자 종구가 계속 설득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들 그룹은 오래 버텨야 이번 겨울이야. 약탈자들에게 당하든지 아니면 좀비에게 죽든지, 굶어죽든지... 뻔히 보이는 그룹과 조인(join)하라는 건 아니지. 그리고 아더스도 마찬가지야. 그 사람들이 네 말대로 방벽과 싸우는 세력이라면 그들도 전투원이 필요하지 먹여 살려야 할 입이 필요한 건 아니거든.”

종구의 생각도 이해는 됐다. 하지만 나와 유미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자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었다. 유미는 주기적으로 영역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 말은 페로몬이 함유된 체향을 풍기고 있다는 소리였다. 나는 유미의 체향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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