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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99화 (99/261)

영역정비 (2)

처음에도 대들었던 여자가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그래도 그들은 헬기도 가지고 있고 무기도 충분히 있는데... 생체실험할지 아닐지 어떻게 알죠? 그 적합자라는 게 일종의 면역체계를 갖고 있는 사람을 찾는 과정일 가능성도 있잖아요.”

내 괴력을 봤었기 때문인지 미도 미노에게 죽지 않고 빠져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에 놀랐기 때문인지 여자는 지극히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면역자라고 했겠죠. 분명히 적합자라고 했거든요.”

아더스 사내는 ‘적합자’가 뭐냐는 내 질문에 조금 미묘한 대답을 했다. ‘~에 적합하다.’ 대체로 적합이라는 표현은 그렇게 쓰였다.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목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용례였다.

‘그들의 용례에 필요한 사람인가? 아닌가? 판별하는 것이지. 유전자적 단위로 말이야.’

방벽 세력들은 인간의 분류기준으로 유전자적 단위에서 필요한 인간 필요하지 않은 인간으로 구별한다고 했다. 장근태가 적합 판정을 받고 방벽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필요한 유전자적 소양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어떤 의미로든 쓸모 있는 인간이거나, 쓸모 있는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만 받아들이겠다. 그게 방벽 세력의 기본 입장이었다.

스펙을 사용해도 어느 정도까지는 버텨줄 만한 특질을 가지고 있든지. 이러저러한 조작을 한 음식들을 먹다 죽거나 변이가 되면 고기나 실험체로 쓸 몸을 가졌든지. 다양한 관점에서 ‘적합판정.’을 받은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방벽이었다.

아더스 사내는 방벽농장이라고 했다. 유명한 동물농장이라는 소설에 빗대서 한 말이기도 했지만 방벽 세력은 ‘적합자 판별’이라는 과정을 통해 정말 1등급 한우를 구별하듯 품평을 했다는 소리였다.

*

“크크흐흐- 그래? 용케도 그런 사실을 알았군. 또 그런 삶을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지...”

피부과가 적합자에 대한 내 이야기를 듣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정신 줄을 놓고 약에 취한 세 여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침묵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나한테 말한 그 생존자 그룹이라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이런 세상에서?”

“가능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만 간다면 인류는 멸종될 테니까.”

바이러스를 이용한 급속 진화는 기본적으로 인류를 대상으로 한 프로토콜이지만 바이러스의 특성상 종간을 뛰어넘어 전파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일반 좀비들도 변하고 있었다. 급속진화의 여파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방벽 안쪽에서도 개와 고양이 심지어 비둘기까지 보지 못했다. 이제까지 애완동물도 보지 못했다. 벌써 5달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동물이 없었다.

동물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동물도 변이를 일으키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약탈자든 생존자든 인간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뭉쳐야 했고 조직을 이뤄야 했다.

“그래? 하지만 개미가 100마리 모여도 개미핥기에게는 소용이 없을 텐데?”

천적에게는 소용없다는 말.

“인간은 개미가 아니니까 말이야. 그리고 무기만 있다면 변종이든 빗치든 충분히 싸울 수 있어.”

“큭-크하하핫- 그래? 하긴.”

피부과는 ‘인간들이 개미만도 못할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작게 중얼거리며 옆에 있는 봉긋 솟아오른 가슴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피부과는 짙은 염세주의적 성향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 말에 전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곳에 있던 괴물들이 죽었기 때문에 이곳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약탈 될 겁니다. 그 상황에서 좋지 못한 일을 당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겠죠. 상관없다면 모르겠지만 아니라면 장소를 옮기는 것이 좋을 겁니다.”

“......”

“......”

“저와 피부과가 괜찮은 생존자그룹을 찾아 볼 테니 일단 이사 준비를 하세요.”

“그러지...”

한의사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팔에 파스를 붙인 한의사의 눈은 우묵하게 들어가 있었다. 다른 여자들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각자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짐을 챙기기로 했다. 미도와 미노가 죽은 뒤에는 새로 공급되는 식량이 없었다.

그래서 식량문제도 조금씩 거론되고 있었던 차였기 때문에 장소를 옮기는 것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뭐야? 큭- 내 의견은 무시하고 그냥 진행인건가?”

피부과가 건들거리며 말했다.

“나 혼자 결정하는 건 아니잖아.”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뭐 됐다.”

“우웅- 아- 밥 먹을 시간인가요?”

“이런 식충이 같은 년. 밥이 아니라 이사 갈 준비나 해라.”

“예? 이사요?”

“잠꼬대 하지 말고 푹 자고 있어났으면 힘 좀 쓰라고.”

한 명이 깨자 곧이어 두 사람도 깼다. 그나마 둘은 거의 벗고 있다시피 한 자신들의 모습을 의식하는 듯 했지만 맨 처음 깬 여자는 별다른 감흥도 없이 피부과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오- 지금 그럴 시간 없으니까 이사 준비를 해. 알지 내가 챙기라고 했었던 거.”

“아- 그거요...”

“그래. 그 목록에 있는 것부터 챙겨 놓고 있어. 난 이 친구와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꽈악

-와락

세 여자가 동시에 피부과에게 달라붙었다.

“우릴 버리고 가려는 거죠?”

“안 버린다고 했잖아요.”

“아니 이것들이 내가 왜 버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세 여자를 떼어 놓고 빌딩 밖으로 나왔다.

“퇴행인가?”

“뭐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셈이라고 볼 수 있겠지...”

빌딩 밖으로 나온 피부과는 잠시 말이 없었다.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제자리에 멈춰서 서 어깨를 들썩였다.

몇 분을 멍하니 서있던 피부과가 우는지 웃는지 모를 목소리로 말했다.

“영화는 영화라고 생각했었는데...”

“무슨 영화?”

“쇼생크 탈출이라고 말이야.”

한바탕 비가 쏟아진 뒤 맑은 하늘은 햇볕이 쨍쨍 내리고 있었다. 그는 양 팔을 벌려 하늘을 껴 앉듯 하고는 중얼거렸다.

“비가 오네...”

그가 중얼거렸다. 잠시 아주 잠시 햇살이 그를 쓰다듬는 것만 같았다.

*

자조적이고 염세적이었던 피부과는 빌딩 밖으로 나오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의욕적으로 변했다.

“김종구다. 언제까지 너. 야. 피부과로 부를래?”

“쯧- 댁이 그렇게 소개했잖아 피부과라고.”

“그 때는 그 때고... 고기 1번이 고기 2번에게 이름 묻게 생겼냐?”

“한유현이다.”

피부종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도 그 생체실험이라는 거에 당했냐?”

“뭐?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다시 만 난지 3주가 되지 않았지? 근데 피부과 전공인 내가 보이게 넌 3주 만에 최소 4년 아니 5년은 어려진 것 같다.”

“자세히 말해봐.”

“저번에 봤을 때는 그래도 이십 대 중후반으로 보였는데 말이야. 지금은 많이 봐도 이십 대 초반으로 보여.”

“......”

“사실 이 사태에 대해서 내가 안다고 뭐가 달라질 건 없지만, 너를 보면 이번 사태로 이익을 본 사람들이 제법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젊음이란 모든 사람의 꿈과 같은 것이니까 말이야.”

피부종구가 안경을 올리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그 때 보여줬던 괴력. 단발머리를 한 팔로 번쩍 들어 올리는 것도 그 여파냐?”

“어쩌면?”

종구의 표정이 더없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인간은 고도로 진화된 생명체다. 하나를 건드리면 다른 부분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그런데 젊음에 근력강화라니.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는 거다. 교감 신경이 있으면 부교감 신경이 있고. 들숨이 있으면 날숨이 있기 마련이다. 보톡스에도 부작용이 있는데 반노환동(返老還童)이라니... 농담 같은 일도 유분수다. 아마도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거니까 어지간하면 조심해라.”

“......”

내가 멍하니 피부종구를 쳐다보자. 종구가 인상을 팍 썼다.

“뭘 그렇게 쳐다봐?”

“아니. 내가 알던 그 피부과가 맞나 해서.”

피부종구는 정말 신의 아들이라고 해도 될 법한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됐다. 고등학교 조기졸업으로 대학에 입학했고 군대는... 여튼, 30대 초중반에 강남에 피부과를 개원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 그걸 했으니 알수록 대단한 놈이었다.

“앞으로 뭐라고 소개할까? 피부종구? 스킨종구?”

“닥쳐!”

“그건 그렇고 그 세 여자 말이야. 그 전에도 아는 사이였냐?”

종구의 눈썹이 살짝 흔들렸다.

“뭐. 그런 여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여자도 있고 왜? 마음에 드는 애라도 있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종구가 담배를 딱 한 모금을 빨더니 훅 하게 내 뱉고는 중얼거렸다.

“같이 잘 살아봐야지. 기회가 왔으니까.”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 세 여자가 보여준 행동은 일종의 정신적인 퇴행이었다. 어떻게 보면 철저하게 종구에게 의존적이 된 모습. 그게 좋다 나쁘다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 여자들 가운데 보균자라도 있으면?

의존적이기 때문에 변화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보균자들은 조금씩 신체가 변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페로몬을 뿌리기 시작하고 죽은 뒤에는 빗치로 부활하게 됐다.

“그러니까 여자들 가운데 너처럼 피부가 좋아지거나 뭔가 분위기가 변하는 여자가 있으면 따로 말하라고?”

“그래.”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죽으면 빗치로 부활한다며?”

목을 잘라 죽인다고 말하기는 뭐했다. 게다가 아더스 사내의 말대로라면 뭔가 방법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중화제도 그렇고.

“일단 관리를 해야겠지.”

“아니 네 말대로라면 여자들 가운데 보균자가 생기면 페로몬인가가 나와서 남자들이 발정 상태가 된다며?”

“......”

“그래서 시원하게 한판 나면 어떻게 되는데? 보균자라며? 그럼 남자도 감염될 거 아니야?”

“그렇겠지.”

“방역조치에 따라서 격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한정된 공간과 물자를 생각해 보면...”

종구가 인상을 쓰며 중얼거리더니 날 획 노려봤다.

“정말 지랄 맞네. 다른 증상 없냐? 아니. 너도 그 보균자인지 뭔지 그거 아니야?”

“일단 내가 누군가를 감염 시킨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아오. 진짜. 그렇게 대충이냐? 역학조사. 됐다. 됐고. 일단 위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문제 있는 여자는 아직 없어 보인다. 생기면 별도로 격리하고 연락하마.”

그렇게 종구와 함께 적당한 곳을 찾았다. 펜트하우스에서도 10분 안쪽에 갈 수 있는 거리였고 방벽 세력의 외곽 단위인 13구역에서도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곳이었다.

*

빌딩 사람들은 제법 순순히 잘 따랐다. 너무도 잘 따라서 놀랄 지경이었다.

“괜찮을까요?”

유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을 거다. 피부과가 있으니까 미친 짓을 하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그 사람들 다른 사람들을 미끼로 삼아서 살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더욱 그래.”

고려해서 한 행동이었다. 저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할 것이 분명했다.

“100% 믿기는 힘들어도... 괜찮을 거야.”

종구가 밖에 나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던 모습이 언뜻 스쳤다.

“그리고 인간이 다른 인간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면... 결국엔 멸종되겠지...”

“그런가요?”

*

극단적인 상황에서 사람은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끼리 힘을 합해 이 상황을 극복하려고 할 것이고, 반대로 사람들을 믿지 않고 가족 단위 혹은 개인으로 남아 고슴도치처럼 경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가다 보면 결국 경향은 둘로 나뉜다. 이런 상황이니까 죽이고 뺏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상황이라도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둘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전자가 후자를 이해할 수 없듯 후자 역시 전자를 인정할 수 없기 마련이다.

소수가 생존할 경우 전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할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모이고 뭉칠수록 후자의 힘은 점점 더 커지기 마련이다.

혼자-홀로 살아남아 지킬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약탈의 길로 들어서도 후회 없겠지만, 지킬 가족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믿을 만한 동료라는 것을 찾아 뭉치기 마련이었고 그렇게 모인 생존자 그룹은 일정한 행동 원리를 갖기 마련이었다.

그런 일정한 규칙을 가진 생존자 그룹과 종구 일행을 연결시켜 주는 게 처음 계획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좀 아까웠다. 종구는 의외로 상당히 유능한 의사였다. 피부과 보톡스-필링 전문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었다. 게다가 한의사도 실력이 상당했다.

“아깝기는 하지만 당장은 누굴 챙길 상황은 아니니까.”

일단 맨홀이 있던 영역에서 만났던 생존자들을 찾아 연결시켜 보기로 했다. 약탈자들은 억제하고 생존자들 그룹을 활성화 시킨다. 그리고 그들을 아더스와 이어준다. 그래서 아더스의 중화제라든지 아더스의 정보들을 확보하는 계획이었다.

*

그렇게 며칠을 맨홀 영역 인근을 확인하면서 그쪽에서 있던 생존자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식량을 확보하러 나온 생존자들이 약탈자들의 기습에 걸렸다. 약탈자들의 기습이 생존자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흐억!”

화살에 가슴을 맞은 아저씨가 비명을 질렀다. 6명 가운데 순식간에 4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고 쓰러지자 생존자들도 이판사판으로 총을 꺼내 들었다.

“이 씨발 새끼들아 같이 죽자!”

탕!-

약탈자들은 곧바로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그들이 피한 뒤로 좀비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쿠워어어어-

어디서 나왔는지 슬금슬금 몰려오는 좀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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