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스트 DUST-94화 (94/261)

실전 (2)

하나는 내 등을 팡-팡-치면서 말했다.

“자- 처음 약기운이 돌 때 연습을 해봐야 해.”

“?”

또 무슨 연습을 한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강하훈련이 마지막인 것처럼 말하더니 또?

“손 내밀어 봐. 숙달이 돼야 하니까.”

손을 내밀자, 하나가 내 새끼손가락을 잡았다. '뭘 하려는 거지?' 내 표정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새끼손가락을 감싸듯 쥔 하나가 히죽-웃으며 말했다.

“이런 거.”

으직-

“!”

새끼손가락이 뒤로 꺾였다. 너무 놀라 뭐라고 입만 뻥긋거렸다. 실전 나간다며? 새끼손가락에 깁스라도 시킬 생각인가? 관절이 깨끗하게 꺾여버린 것을 보고 하나가 생글생글 웃었다.

“어때? 별로 안 아프지?

“이...미...”

스펙을 맞는 시늉만 했기 때문에 생으로 고통을 참아야 했다. 게다가 유미보다는 느리지만 재생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저절로 새끼손까락이 낫게 되면 의심할 수도 있었다. 하나를 처리하고 지금이라도 탈출해야 할까?

“응? 뭐라고 이? 미?”

우둑-

"아!"

뒤로 꺾었던 손가락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는 하나였다. 찡한 고통 때문에 잠시 생각이 끊겼다.

“그 정도는 1~2시간이면 저절로 치료되니까. 기억해 두란 거야.”

“......”

“새끼손가락 관절 부상과 비슷한 부상은 1~2시간가량이면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럼 무릎관절은 얼마나 걸릴까? 골절이나 탈골 말고 자상이나 총상은? 몸으로 자기 상태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해.”

설마 전부 찔러보고 쑤셔보고 그렇게 몸으로 배우게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작전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마당에 새끼손가락이 치료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면서... 내 표정을 보며 생글거리며 하나가 계속 설명했다.

“통증도 마찬가지. 한 번 맞으면 적게는 20% 많게는 40% 이상 통각이 둔해져. 처음 스펙을 맞으면 통각이 많이 둔해지지. 새끼손가락이 생으로 꺾였는데도 참을 만하지 않았어? 고통을 무릅쓰고 전투를 속행해야 할 때는 상당히 도움이 되는 효과지.”

“.......”

“하지만 말이야. 통각이 둔해진다는 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항상 그렇지만도 않다는 게 문제야. 통각은 생존에 필요한 중요한 감각이거든.”

통각이 둔해진다는 건 심각한 부상을 경상으로 오판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통각과 촉각은 민감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통각이 둔해지면 촉각이 무뎌질 가능성도 있었다. 미세한 감각이 생사를 가르는 현장에서 통각의 둔화는 양날의 검이라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통각이 둔해지지 않도록 자극을 주는 게 좋단 말이지.”

‘어떻게?’라는 내 표정에 대답이라도 하듯 하나가 말했다.

“이렇게.”

으직-

“!”

되돌렸던 새끼손가락을 다시 비틀어 버리는 하나였다.

“어때? 좋아? 느껴져?”

‘이런 미친!’

반사적으로 욕이 나오려는 것을 꾹 눌러 참았다. 진짜 장근태가 여기 있었다면 어제 밤에 자살을 했든지, 심하면 출동 전에 총기난사를 벌였을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하나는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까딱했다.

“오- 밥 먹을 시간이다.”

“......”

“자- 이것도 써봐. 이것까지 쓰면 겹쳐서 쓰게 되는 거니까 작전 중에는 더 쓰지 말고.”

내 손에 또 스펙을 쥐어주는 하나였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색이 달랐다.

“이건?”

“아까 설명했잖아. 스펙1이라고 자가 치유력을 극대화 시키는 스펙.”

“지금 씁니까?”

하나가 나와 비틀어진 새끼손가락을 번갈아 쳐다보곤 고개를 저었다.

“일단 통증에 대해서 감을 잡아야 하니까. 그대로 씻어봐. 고작 새끼손가락이 불편한 게 얼마나 큰지. 움직이는데 얼마나 지장을 주는지 직접 경험하는 게 최고니까. 씻고 난 뒤에 그거 써. 중복효과로 금방 좋아질 거야.”

“이렇게 겹쳐서 써도 되는 겁니까?”

하나가 히죽-히죽 웃었다.

“막내야. 그럼 그 손가락으로 출동 할래?”

“아닙니다.”

“막내야. 내가 너 죽으라고 그랬겠니?”

“아닙니다.”

“그래. 이 누나가 하라는 대로 하는 거야. 응?”

“넷.”

“뭐 좋아. 적합성 판정 받았으니까 너무 쫄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무사히 귀환 할 수 있을 거다.”

“넷.”

“그리곤 미진이와 진한 대화를 하겠지. 풉-”

“......”

“뭐하고 있어? 빨리 올라가서 씻고 개인 장비 챙겨! 30분! 딱 30분이다. 식당으로 와!”

“넷.”

*

확실히. 스펙을 이런 식으로 사용했다면 몇 년을 훈련한 정예병과 맞먹는 전투력을 가진 병사들을 붕어빵 찍어내듯 찍어낼 수 있을 것이다. 기술적인 부분은 경험이 쌓이면 해결될 문제였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 이놈들은...”

샤워할 때 쓰는 바디 워시도 체향을 지워내는 특수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타격조와 마주쳤을 때 그들의 땀 냄새를 제대로 맡은 적이 없었다. 근육몬이 어깨동무를 했을 때도, 하나가 바로 옆에 달라붙었을 때도 이상하게 무취였다.

집지키는 개는 사냥개가 아니라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던 보안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보안팀의 특성상 여러 가지 비밀시설의 보안 경비도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타격조가 아니라 보안팀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아니, 그랬다면 스펙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타격조가 받는 훈련이나 이들의 행동원칙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적당히 끊어야 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욕심이 생겼다. 숨겨진 비밀을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도박심리나 마찬가지였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뭔가 문제가 있기에 통행금지를 때려 버린 뒤, 일제 수색을 하고 그랬을 것이다. 전상상의 오류도 석연치 않았다. 감시체계에 문제가 생긴 부분도 그렇고 서류를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인트라넷이 작동했다면 서류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컴퓨터를 사용해 정보를 전달했을 것이다.

‘그들이라고 했지?’

지금 이 방벽 안쪽에서도 뭔가 통일되지 않은 저항세력이 있다는 소리였다. 어쩌면 그들의 힘을 원천적으로 약화시키기 위해 T라는 특수한 전자화폐체계를 도입한 것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내가 걸리지 않고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전산이 복구된다면? 감시체계가 완벽하게 작동하기 시작한다면? 장근태가 발각된다면? 방벽세력과 그들의 갈등으로 생긴 틈에 내 명줄이 달려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순간 이대로 이탈해서 유미에게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이런 기회가 올 가능성은 없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했다.

이제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마음을 정하자 몰래 빠지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첫 실전을 경험하는 나를 중심으로 포메이션을 짤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당장은 탈출하기 어렵겠군. 일단 스펙을 보관한 곳부터 찾자.’

처음 목적은 스펙을 안전하게 쓰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부작용을 없애는 방법이라거나, 신형 스펙을 구하면 좋고 아니면 아닌 대로 넉넉하게 챙겨나가는 것이었다. 목적을 잊지 말아야 했다.

*

30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기본 무장인 베레타와 소총을 챙기고 작은 가방에 응급키트와 여러 가지를 챙겼다. 아래로 내려가자 하나와 미진이 날 반겼다.

“막내 왔어? 꼭꼭 씹어 먹어라~그 이빨로 씹는 게 오늘이 마지막 일지 모르니까.”

미진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다. 하나는 미진의 말을 자르듯 화사하게 웃으며 식판을 내밀었다.

“아이구~ 우리 막내. 많이 먹고 힘써야지.”

“네... 넷.”

다행인 것은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스펙으로 인한 칼로리 소모 때문이었는지 다들 엄청난 먹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눈치 보지 않고 적당히 먹을 수 있었다. 어느 새 다 먹은 얼음이 하나를 불렀다.

“하나.”

“넷.”

“신입 어때?”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얼음이 날 살짝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좋아. 신입.”

“넷.”

“오늘 네 역할은 후방지원이다.”

“넷.”

*

후방지원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짐꾼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유분 스펙들과 비상식량 탄창 등을 운반하는 역할인데 일반적으로 가장 안전한 위치라고 했다. ‘그런데 저번 신입은 왜 죽은 거지?’

3조를 이끌고 얼음이 로비로 향했다. 로비에는 예의 그 안경 여자가 다른 조들이 요구하는 물품을 꺼내주고 있었다.

“3조 추가 보급.”

얼음이 용건만 간단히 말했다.

“헬기에 적재할 분량입니까?”

얼음은 안경의 질문에 대답대신 서류를 내밀었다. 커다란 원형 안경 뒤로 서류를 보는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군요. 확인했습니다. 분량은 어느 정도가 필요하십니까?”

“5배.”

“네?”

“5배.”

“휴- 아시다시피 그 사건 이후 스펙 추가 생산이 어렵기 때문에...”

“5배.”

“하지만... 지금 여유 재고를 생각해 봐도.”

“5배.”

쾅!

얼음이 로비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안경 여자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고는 두 손을 들고 마이크에 오더를 내렸다. “스펙1 25개, 스펙2 50개, 철갑탄 삽입한 탄창 50개, 프로즌 볼트 50발, 스피어 15자루.”

저쪽에서 난리가 난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하면 재고가 없다느니 당장 어쩌고 하는 소리들이 작게 들렸다.

“3조 조장이 명령서를 가져왔어요. 가져와요. 됐죠?”

얼음이 냉랭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가져가시려고요? 헬기에 적재하려면 공간이 부족할 텐데요? 3조 단독 작전인가요?”

얼음은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안경 낀 여자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나를 아는 체 했다. 나도 살짝 인사를 받아줬다. 안경녀가 나를 보고 뭔가 아는 게 있냐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고개를 흔들자 안경녀가 포기한 표정을 지었다.

스펙 1과 2를 합쳐 스펙만 75개였다. 배낭의 절반 이상을 자치하는 부피였다. 스펙 하나에 3번 분량이 들어있으니 분량으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게다가 전투식량부터 모든 물품의 양이 5일분이었다.

큰 배낭 3개가 가득 찼다. 그걸 나 혼자 들었다. 거의 120kg이 육박하는 무게였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조원들이었다.

“괜찮아? 칵테일이라 그 정도는 들 수 있을 거야.”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스펙 2와 스펙 1을 섞어서 맞으면 칵테일이라고 했다. 자가 치유를 극대화하는 스펙 1이었지만 두 개를 섞어서 맞으면 전체적으로 신체능력이 향상되기 때문에 120kg정도는 충분히 운반할 수 있다고 다독였다.

“어머. 터프한 막내가 왜 그런 표정?”

미진이 거들자 하나가 부연설명까지 곁들였다.

“이것도 다 훈련이라고.”

얼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앞장서서 헬기에 탑승했다. 이윽고 시작된 진동과 소음. 그 뒤로 헬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전부 전술헬멧의 안에는 근거리 통신기가 달려있었다.

“채널고정 통신확인.”

“이상무.”

“미진.”

“넷.”

얼음의 말에 미진이 서류를 나눠주며 작전 개요를 설명했다. 3조는 추적의 역할을 맡았다. 일반적으로 두 개조가 한 대의 헬기를 이용하는데 반해 이렇게 1개 조만 움직일 경우에는 추격포획 임무가 하달됐을 경우였다.

“옐로우 플래그에서 가져온 정보와 헬기수색조의 관찰 결과에 의하면 13구역 4블록에 위치한 빌딩에 빗치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T타입 빗치로 추정된다.”

미진의 설명에 하나가 옆에서 작게 해설을 해줬다. 그 짧은 시간에 개인 통신망을 겹쳐 연결한 것 같았다.

“트렙(Trap)형 빗치라는 소리야. 함정을 파고 기다려서 낚는 놈들을 말하지.”

서류에는 인근에 P형 변종이 서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의사항이 있었다.

“P는 프레데터(Predator)를 말해. 이놈들이 가장 위험한 놈들이지. 아직까지 발견된 숫자는 적지만 7개조 이상 달려들어도 사상자가 나올 정도로 위험한 놈들이야.”

“그럼 지금 T형 빗치와 P형 변종이 같이 있는 곳으로 간다는 겁니까?”

하나에게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다른 조원들이 전부 날 쳐다봤다. 개인 통신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에게 전달해 버린 것이었다.

“막내.”

“옛.”

“중간에 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

“넷.”

미진이 차게 식은 눈으로 설명을 계속했다.

“우리조의 임무는 T형 빗치를 둥지 밖으로 끌어내 잡는 것이다.”

하나가 개인 채널로 풉-웃으며 해설을 해줬다.

“T형은 약해. 머리는 좋지만 전반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일단 둥지에서 끌어내기만 하면, 지구력사냥(Persistence Hunting)으로 잡을 수 있어. 대략 이틀에서 삼일 정도 몰아붙이면 잡을 수 있어. 그래서 보급을 넉넉하게 챙긴 거야.”

변수를 생각해서 5일치를 챙긴 건가?

얼음을 쳐다보는 순간 얼음과 내 시선이 엉켰다. 그럼에도 얼음은 무표정이었다.

미진의 설명은 계속됐다. 그리고 미진의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하나가 해설을 해줬다.

13구역은 아직 지상으로 이동하는 루트가 개척되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12구역까지는 옐로우 플래그에서 도로를 개척하며 이동했지만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후퇴했다는 보고였다.

“다음 장 지도를 보겠다.”

다음 페이지를 펼치자 항공지도가 나왔다. T타입 빗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빌딩이 표시되어있었다.

‘어?’

어디선가 익숙한 거리였다.

“T타입이 둥지를 튼 것으로 보이는 빌딩은 여러 병원들이 밀집된 병원 빌딩이다.”

“......”

“T타입의 특성상 아우터들을 미끼로 삼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

“우리의 목표는 아우터의 구조가 아니라 T타입 빗치의 포획 또는 사살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작전에 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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