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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93화 (93/261)

실전 (1)

‘죽는 것보다는 낫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기에 새벽 6시부터 나와서 운동을 해대는 저들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스펙의 부작용은 여러 가지였다. 허용량을 넘게 투여하면 괴사가 일어난다고 했던 USB의 내용은 일부였다. 스펙의 효과. 신체능력전반적인 향상과 반응속도 증가 전반적인 고양감은 일종의 마약처럼 작용하는 것 같았다. 어떤 생리적인 마약이 분비되는 것으로 보였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처절함이 느껴진다기보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의 성취감이나 쾌감처럼 보이는 표정이 언뜻 드러났다.

‘러너스하이?’

러닝머신의 속도를 최고 속도로 올려놓고 달리는 사람들... 내가 나갔다가 올 때까지 전력질주를 해대고 있으면서도 웃고 있었다.

“중독성은 없다고 했는데... 이상하군요.”

“중독성이 없다고? 크하하핫. 없기는...”

중독성을 순순히 인정하는 근육몬이었다.

자신의 신체능력이 향상됐을 때의 고양감, 성취감 그리고 자신감까지. 게다가 스펙을 투여한 상황에서 운동을 하면 스펙의 효과로 인해 기본적인 운동능력이 향상된다고 했다.

“스테로이드 같군요.”

“응? 스테로이드? 뭐...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크하하핫.”

100%였던 몸이 스펙을 맞고 130~140%효율을 낸다. 스펙의 효과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운동량을 늘리면 순수하게 운동을 했을 때 생기는 효과보다 훨씬 좋은 효과를 냈다.

운동을 하면서 느껴지는 통증은 느껴지지 않고 러너스하이 현상만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잠을 적게 자도 상쾌했고 점점 초인이 되는 것만 같은 감각.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전부 자발적으로 이러는 겁니까?”

“그럼 누가 강제로 시키면 할 것 같나?”

“......”

“놈들과 싸워보면 네놈도 스펙을 달고 살게 될 거다. 가자.”

근육몬이 3조 조장인 얼음공주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신입 데려왔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어? 적당히 하라고 했잖아 적당히...”

“......”

얼음공주는 근육몬의 굵고 낮은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물끄러미 날 쳐다봤다. 뭔가 감정이 결여된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오늘은 개인 정비?”

“아니. 아니. 오늘 바로 실전 가는 걸로 됐다니까?”

근육몬이 내 옆에서 곧바로 해설을 했다.

“그러니까 표정 좀 풀고... 조원들 소개를 시켜줘야지 미우나 고우나 같이 밥 먹을 사인데.”

“3조 집합.”

근육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3조 집합이라며 차가운 소리를 지르는 얼음이었다. 소리가 울려 퍼지기가 무섭게 운동을 하던 여자들이 순식간에 모였다. 얼음공주가 한 명씩 불렀다. 호명된 여자들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왔다. 바짝 군기가 든 병사들 같았다.

“안미진.”

척-

“김수연.”

착-

“최하나...”

슥-

“척인경이다.”

처음으로 얼음공주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한... 장근태입니다.”

*

‘척인경.’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척인경이 아니라 척인아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쌍둥이든 친인척이든 뭐든 간에 어차피 앞으로 볼 일이 없는 사람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같은 조가 되고 보니 무시하려고 해도 자꾸 신경이 거슬렸다.

‘설마 진짜 친인척이나 그런 건 아니겠지?’

나도 모르게 척인경의 얼굴을 곰곰이 뜯어보게 됐다. 마치 그 얼굴에서 척인아의 흔적이라도 찾으려는 것만 같았다.

“어이 신입~ 눈이 너무 높은 걸.”

근육몬이 내 어깨를 툭 쳤다. 그제야 내가 빤히 인경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게 아니라...”

척인아와는 생김새가 많이 달랐다.

시체가 사라진 인아도 상당한 미인에 속했지만 인경은 굉장한 미인이었다. 차가운 표정- 무표정함 속에 깔려있는 표정은 차가움? 서늘함?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인아와 상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의미가 없었다. 시체가 사라졌다는 건 척인아는 빗치로 부활했다는 소리였다. 빗치로 변한 인아와 인경이 만나면? 가족이라고 해서 진한 가족 상봉을 할 것인가? 그럴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힐끗-나도 모르게 다시 척인경의 얼굴을 살폈다.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치 정물을 쳐다보는 것처럼 나를 보는 인경이었다. 무표정이라서 그런지 인아와 닮은 구석을 찾기 힘들었다. 생김새를 떠나서 다른 인종이라는 느낌에 가까웠다.

‘무슨 사람 얼굴에 표정이 없어.’

스펙의 마약 같은 효과를 받고 있으면서도 전혀 겉으로 테가 나지 않았다. 작게 번들거리는 눈동자만이 그녀가 인형이나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줬다.

내가 다시 힐끗 얼음의 얼굴을 살피는 것을 봤는지 근육몬이 크핫-하며 이두박근을 꿈틀 거리면서 내 목을 꽉 끌어안았다. 울퉁불퉁한 근육에 압살 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래... 신입 남자라면 꿈은 크게 가져야지.”

“......”

“......”

“응-여기 여자들 다들 왜들 표정이 왜 이래?”

“......”

“......”

“신입 영계가 왔는데. 한창 팔팔할 나이의 여자들이 말이야.”

“용무 끝났으면 가세요.”

얼음이 한 마디를 하자 근육몬이 입을 합 다물고 내 목을 감았던 팔을 풀고 내 어깨를 툭툭 지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힘내라. 힘!]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할 수 있다는 표정을 지은 근육몬이 제일 늦게 나온 자기 조원들을 향해 걸어가며 내 소문을 퍼뜨렸다.

‘저 빌어먹을 주둥이를...’

겉보기에는 우직하고 묵직하고 안정적이고 그렇게 보였는데. 근육몬을 노려보는 내 시선을 강탈이라도 하는 것처럼 얼음이 말했다.

“장근태. 기본 훈련은 이수했나?”

서류상에는 이수라고 적혀있었다. 기본훈련에서 뭘 배웠는지는 대충 들었지만 말 그대로 대층 들었을 뿐이었다. 시작부터 난리였다.

“이... 이수했습니다.”

약간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 잘 모른다는 것을 어필했다. 이 정도 표현을 했으면 알아먹을 것이다. 그러기만을 바랐다.

“그래? 하나.”

“넷.”

“기본수신호부터.”

“넷. 따라와.”

역시 약간 주저하면서 대답했던 것이 주요했다. 예상대로 기본적인 사항을 다시 점검 받을 수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후딱 지나갔다. 기본적인 수신호를 따로 외우고, 명령에 따른 포메이션을 숙지하는 것도 정신이 없었는데 나를 보고 이를 드러내는 스포츠머리 미진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신입 너 주먹이 맵더라.”

“아닙니다.”

“오늘 끝나고 보자 응?- 꼭- 한 번 다시 붙자. 알았지?”

“......”

“대답 안 해?”

“알겠습니다.”

*

하나는 스펙의 효과도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스펙의 혈중농도를 일정수준 이상으로 꾸준하게 유지할 경우, 스테로이드처럼 극적인 운동효과를 볼 수 있었다.

적게 잠을 자도 됐고, 자가 치유능력도 좋아졌다. 괴물이 될 지도 모른다는 단점도 임계점을 넘지 않도록 조절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설령 괴물이 된다고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녹아서 죽어버렸기 때문에 주변의 동료들이 스펙오남용으로 괴물로 변한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순간적인 쾌감은 마약과도 같았다. 그것만 문제일까?

단순한 중독의 문제라면 보안팀이나 다른 부대에서도 사용할 법한데 그쪽은 스펙을 마지못해 쓰는 것 같았다. 아니 안 쓰고 있었다. 비상용으로 하나씩 찔러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다른 팀들은 스펙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드러난 부작용 말고 또 다른 이유가 있겠군.’

아마도 보안팀에게 쉬쉬하며 알려진 내용일 가능성이 있었다. 장근태가 신입이 아니었다면 그 쉬쉬하는 내용까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일단 스펙의 부작용을 확실하게 알았으니 부작용을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으면 됐다.

긴 생머리를 고무줄로 묵은 하나가 설명을 마치고 물었다.

“여기까지... 질문 없나?”

“스펙 말입니다.”

“뭐가 궁금한데?”

“부작용은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과학적인 방법이든 비과학적인 방법이든 어떤 방법이든 찾아 부작용을 최소화 하려고 할 것이다.

“8조 근육조장이 겁을 줬나 보구나?”

최하나의 말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길게 묶은 머리카락이 놀려줄 것을 찾았다는 것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마약 같은 부작용도 있고 또 위험한....”

어쩐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보는 하나였다.

“그래서? 계속 말해봐.”

“뭔가 해독하거나 그럴 방법이 없이 쓴다는 건 솔직히... 내키지 않습니다.”

“호호호홋- 겁먹었구나?”

“......”

“너 이렇게 보니까 상당히 귀엽네. 조숙해 보이는 얼굴이고 말이야.”

“......”

“혹시 형이나 사촌형 있니?”

순간 당혹스러워서 버-벅 거리는데 하나가 옆으로 착 다가왔다.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만 같았다. 이 여자 그러고 보니 자기소개를 할 때도 그랬다. 다른 두 사람과 다르게 스윽-으로 반응한 여자였다.

“없어? 진짜 없는 거야?”

있다고 말해야 만 할 것 같은 느낌. 뱀 앞에 선 개구리가 된 느낌이었다. 그럼 살랑거리는 저 묶음 머리가 방울뱀의 꼬리? 살랑살랑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서서히 옆으로 다가오는 하나에게 얼음 같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하나.”

“넷.”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표정부터 분위기까지 싹 바뀐 하나가 대답했다.

“신입 교육은?”

“기본적인 내용. 전달했습니다.”

“신입.”

“넷.”

“이게 뭐지? 대답해.”

얼음이 수신호를 했다. 다짜고짜 테스트냐?

“전방 20m앞에 주의”

다시 수신호가 변했다.

“포메이션 D... 전후에 1. 2. 좌우에 3. 4. 중앙에... 5.”

얼음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나에게 말했다.

“사격, 강하연습 시켜.”

“넷.”

얼음이 뒤돌아서자 하나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서서히 음흉하게 변하는 미소.

“아유 우리 막내 머리도 좋네... 그럼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스.. 스펙의 부작용을 해독하거나 줄이는 방법을...”

“아? 형이나 사촌형까지 이야기했었지? 없어? 정말?”

“......”

*

스펙의 종류는 2종류였다.

10%정도 신체향상과 자가 치유능력 극대화에 특화된 응급키트처럼 사용하는 스펙1.

30~40% 가량의 신체향상과 치유능력, 통각제한을 비롯한 여러 가지 효과가 혼합된 스펙2.

스펙1은 모든 거주민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했다. 스펙 2는 무장한 병력들만 사용하는 약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2개 이상 가지고 있는 곳은 타격조가 유일했다.

“타격조만 스펙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죽고 싶어?”

“......”

“아니잖아. 그러니까 써야지.”

“스펙의 부작용은 어쩔 수 없는 겁니까?”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해 계속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 그래서 빗치가 필요하다고 하던데?”

하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일까? 빗치의 생명력을 놓고 생각해 본다면 이렇게 매일 목숨을 걸고 포획하려 나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최소한 이틀에 한 마리 꼴로 빗치든 보균자들 잡혀 들어가고 있었다. 이곳이 기능하고 난 다음 최소한 30마리 이상을 잡아들였다고 했으니 실로 엄청난 숫자였다. 그 만큼이나 많이 잡아들였다면 연구가 충분히 진행됐을 것이다.

“(부작용 없는) 신형 스펙에 대한 소문도 없고요?”

“뭐야- 너 정말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제 정신으로 싸우고 싶지 마약효과에 의존하고 싶지 않습니다.”

“호호호홋- 제법 사내다운 소리를 하는데?”

하나가 호호호 웃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말이야 막내야... 마약이건 뭐건 써야지. 폼 잡다 죽으면 똥 되거든?”

“.......”

끈끈하게 변하는 느낌은 살기였다. 사람처럼 생긴 것들을 포획하고 죽이는 게 일상인 타격조라서 그런지 너도나도 살기를 뿌려대고 있었다.

“병신 같은 부작용 무섭다고 써야 할 때 안 쓰면 죽는다.”

“......”

“알아들었어?”

“예.”

‘죽는다.’라고 말했지만 ‘죽인다.’로 들리는 묘한 어감. 역시 이 전의 신입이 일주일을 버티지 못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장근태가 그렇게 부들부들 떨었던 게 겁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지상으로 움직이는 조와 헬기로 움직이는 조는 번갈아가면서 바뀐다. 어제 지상으로 이동했으니 오늘은 헬기로 이동할 차례라고 했다. 그러니 로프를 타고 내려가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요령은 그냥 편하게 하는 거야.”

“네?”

하나가 강습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헬기로 복귀 할 때는 윈치로 끌어 올려주니까 그냥 있으면 된다고.”

“내려 갈 때도 그렇습니까?”

“어느 세월에? 내려 갈 때는 그냥 내려가야지. 자세는 이렇게 잡고. 내려가는 속도는 이렇게 조절하면 되는 거야.”

참 쉽지요. 하는 표정으로 시범을 보이는 하나였다.

“본래부터 이렇게 하고 바로 실전입니까?”

이렇게 한 번 하고 바로 실전이라니. 훈련하다 낙상 사고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잘못 떨어지면 그걸로 끝이었다. 하나가 키득키득 웃으며 대꾸했다.

“아- 우리 막내는 똘똘하니까. 다른 신입들은 며칠 동안 따로 훈련을 받았거든.”

“......”

“뭐 일주일 받은 놈이나 보름 동안 빠지게 받은 놈이나 며칠 못 버티더라고.”

“......”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죽어라 고사를 지내도. 살 놈은 사니까.”

키득키득 웃으며 위로하는 하나였다.

“스펙 맞고 하면 다 된다. 걱정하지 말고 그냥 하면 되니까 따라 내려와.”

툭툭-내 등판을 때리곤 내 손에 스펙 주사기를 쥐어준 뒤, 휙-로프를 타고 먼저 내려가는 하나였다.

“야- 빨리 내려와.”

스펙을 사용한 척 연기를 한 뒤, 로프를 타고 내려왔다.

“어때? 죽이지?”

“예? 예.”

“거봐. 정상적으로 훈련을 했어봐, 며칠이 걸렸을지 모른다고. 약 한 방이면 끝나는 걸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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